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나는 말하지 않겠다
캐리어 가방을 놔두고 한 여자가
갑자기 뛰어갔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어쩌다 그 가방을 감시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주인 없는 가방은 그냥 주인이 없어도
되는 가방인지 나도 기차시간이 있기에
가방 주인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이제 아무나 들고 가도 되는 건지
이 가방은 분실물로 소속을 바꾸게 되는 건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러자 사라진 가방
그게 주인이 다시 찾아간 것인지
그냥 누군가 밀고 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기적은 기척도 하지 않은 순간에
한갓 가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얘기다
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은
평범한 기적이다 평범하기에 기적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얻을 수 있는 기적
가방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적은 언제든 얼마든지 적들을 만난다
무슨 일이건 일어나는 게 세상이다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야 기적은 달성되는지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는 기적을 보라
기차라고 욕심이 없겠는가
여차하면 뛰어가는 건 일도 아니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의 기적
그런 것 빼고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대전역을 떠났다
분명 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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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8-09-0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아직 살아있는 것이..기적이지요.
이 세상을 떠나도...기적이지요..
奇蹟이던, 汽笛이던 간에....

로쟈 2018-09-05 23:36   좋아요 0 | URL
네 일상의 기적.

2018-09-07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이 내렸다 어제는
빗길이었지 보고싶은 사람이
떠오를 것도 같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떠오르다가 가라앉는 것도
흔한 일이지 그대는 익사자

바람이 불었고
한 편의 시도 읽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건
시도 아니고 그대도 아니었으니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
바람은 어디에 묻히는지 궁금했다

무슨 글자라도 적고 싶었다
옆좌석의 타인들처럼 낯설었다
얼만큼 친해야 묘비명이 될 수 있는지
얼만큼 사랑해야 눈물자국이 될 수 있는지
눈물자국은 수술로 지운다는군

비가 내린다고 쓴다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나는 자유다 무슨 일을 해도
일이 아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나는 열중한다
나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보고싶었다고 적는다
더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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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8-09-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내 몸에..다시 내 영혼이 깃들기를 기다린다.

로쟈 2018-09-05 23:37   좋아요 1 | URL
네 다의적으로 해석가능합니다.

물들래 2018-09-0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그림은 어느 작가의 작품인지요? 그림이 말을 걸어오네요.

로쟈 2018-09-09 11:05   좋아요 0 | URL
작가는 모르겠습니다. Waiting for Godot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뜨는 이미지입니다.

dmsdud5789 2018-09-13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마음에 드네요.
 

지난번 폭염은 잘 받았니
땡볕이 요즘은 안 나와서 폭염으로 보냈다
마음은 뙤약볕인데

아쉬운 마음에 물폭탄도 보낸다
며칠을 잠 못자고 준비했다
전깃줄에 앉아서 맞아보면 더 좋을 거다

한결같은 사랑이 어디 있겠니
다음 생에 다시 만나려면
우리 원한은 품지 말도록 하자

아낌없이 모든 걸 주고 싶었다
모두 지나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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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9-0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끝자락에 납량특집 시인가요?ㅎ
헤어지는 연인의 마지막말보다 더 무섭네요.
잘가라 우리 다시는 보지말자 하고 싶네요~

로쟈 2018-09-01 11:39   좋아요 0 | URL
여름과 작별도 겸하여. 원한을 갖지 않으려면 다 풀어야죠.~

dmsdud5789 2018-09-1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 기분이 한결 나아졌네요
 

아침에 해가 뜨고 비가 와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당신은
친절하지 않았다고 구름에게 전했다
구름은 무슨 잘못인가
찌푸린 얼굴로 버킷리스트를 꼽는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어쩔 것인가
죽어야 할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건 누구도
묻지 않았다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명백하게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외출을 핑계 삼아
나는 죽은 척하고 심심하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불러모은다
당신은 죽기 전에 무얼 하고 싶었을까
명백하게 죽을 운명인 나는
오늘도 살아있는 척하며
외출에서 돌아와 드러눕는다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빙벽을 오르는 아이스클라이머를 생각하다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에서 지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찢어버리는 일
다만 구름에게 한 마디 전해야겠다
아침에 해가 뜨고 비가 와도
당신이 그립지 않았다
모두가 저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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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8-2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전에 하고픈 일이
왜 한가지도 생각이 안나는지.
어떻게 한가지도 없는지
그게 신기할뿐~~

로쟈 2018-08-28 23:00   좋아요 0 | URL
시기상조여서 그러실 수도.~
 

어제는 태양탐사선 파커가
아니 이건 이미 쓴 시다
파커는 잘 가고 있다
내가 노량진과 용산을 지나듯이
예정된 진로로 잘
가지 않으면 인생은 뭐란 말인가
아침에 집을 나오고
흔들리는 전철에서 같이 흔들리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파커는 태양이 고향인가
집 떠난 파커는 태양의 궤도를 돌다가
언젠가 장렬하게 생을 마친다
파커는 파커답구나
서울역에서 부산행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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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8-1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은 30도씨에 바람 불고있음~
저는 나흘간 따스한 햇살과 싱싱한 초목기운 듬뿍 받고 오후에
귀가해요^^* 이 기운으로 일년 버텨야죠~ 쌤도 활기차고 따끈한
기운 받고 오셔요~*^^*

로쟈 2018-08-18 12:56   좋아요 0 | URL
네 부산도착. 날씨도 쾌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