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개막된 반 고흐전과 함께 늦가을(과 올겨울)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될 대형 전시회가 하나 더 있다. 어제부터 시작된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이 그것이다(홈피는 www.2007kandinsky.com). 이미 소식은 전해듣고 있었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의 대규모 전시회로 러시아의 거장 54명의 그림 91점이 이번에 한국을 첮았다. 칸딘스키 전은 12년만이라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지난 95년쯤인가 러시아 아방가르드 전시회가 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3년전 러시아에서 본 그림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서 반가움을 감추기 어렵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해럴드생생뉴스(07. 11. 26) 칸딘스키가 다시 왔다..12년만의 러시아 거장전

칸딘스키와 말레비치가 다시 왔다. 12년 만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이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됐다. 러시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를 낳은 문화대국. 그러나 이외에도 우리가 러시아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광대한 국토만큼이나 폭과 깊이를 자랑하는 러시아 미술이다.

20세기 추상미술의 시조인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를 필두로 카지미르 말레비치(1875~1935), 일리야 레핀(1844~1930), 레비탄(1860~1900) 등 러시아 근현대미술의 백미를 한데 모은 특별전이 27일부터 2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는 러시아 미술의 보고로 꼽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미술관과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러시아 거장 54명의 유화 91점이 내걸렸다. 이번 미술전은 특정 유파에 집중하기보다는 러시아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세기 말 러시아 미술계 내부에서 시작된 혁신의 산물인 리얼리즘 회화에서부터 유럽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 구성은 러시아 미술사에 있어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빛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한국 땅을 밟은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작품 63점, 20세기 아방가르드 작품 28점이다. ‘현대추상의 아버지’라 불리는 칸딘스키의 작품은 완숙기의 걸작 ‘블루 크레스트’(1917년)와 ‘구성#223’(1919년) 등 2점과 초기 작품 2점이 소개된다. 특히 ‘블루 크레스트’는 혁명기에 변혁을 열망하면서도 조국 러시아의 파국에 대한 불안한 예감, 세계대전이 낳은 인간에 대한 환멸에 휩싸여 있던 한 인텔리겐치아 화가의 고뇌가 역동적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크레스트는 ‘닭의 볏’이란 뜻으로, 불안한 시대를 상징한다. ‘블루 크레스트’의 화폭에는 칸딘스키의 고유한 모티프였던 ‘형태의 폭발’이 자리하고 있다. 산 위의 도시, 그 위로 솟은 태양의 형상은 다양한 의미층을 드러낸다.



한편 19세기 리얼리즘 회화 중에는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골, 차이콥스키 등 위대한 작가와 음악가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렸던 러시아 화가들의 초상화들이 유난히 많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물의 본질을 깊숙이 통찰해 표현한 레핀의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 ‘작가 고골의 분신’을 비롯해 낭만적 분위기의 대작인 크람스코이의 ‘달밤’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러시아 회화사를 통틀어서 대표적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유형지에서 돌아온 여대생을 맞는 가족들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또 전쟁을 극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전쟁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베레샤긴, 러시아 역사화의 대가 수리코프의 대작도 나왔다. 이 밖에 러시아 대륙의 장엄한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사브라소프, 바다를 격정적으로 그렸던 해양화가 아이바좁스키의 그림 등 풍경그림도 만날 수 있다.

20세기 아방가르드 작품 중에는 예술의 숭고한 경지를 담아내고자 ‘절대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던 추상미술가 말레비치의 빼어난 추상화 ‘절대주의’와 광선주의의 선구자 라리오노프와 곤차로바, ‘러시아 구축주의’의 중심 화가 포포바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이영란기자)

07. 11. 28.

P.S. 러시아 미술에 관한 소개는 '러시아 미술 매뉴얼'(http://blog.aladin.co.kr/mramor/1024055)이란 페이퍼를 참조하시길.

P.S.2. 송연님의 지적으로 다시 보니 레핀의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로 엉뚱한 그림이 제시돼 있다. 내가 아는 그림은 민음사판 <체호프 단편선>의 표지로도 들어가 있는 위의 그림이다. 레핀이 같은 제목으로 다른 버전의 그림도 그린 것인지, 아니면 패러디 그림이 잘못 게시된 것인지는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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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1-2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의 전당을 가려면 무슨 여행하듯 가야된다는...차 없는 뚜벅이들은 말이지요.
여하튼 방학을 기다려야..오랜만에 레핀으로 눈요기나 하고 와야겠습니다

로쟈 2007-11-28 18:06   좋아요 0 | URL
레핀을 꽤 찾으셨지요?^^

송연 2007-11-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작품이 또 있나요? 제가 신문서 봤던 작품에는 여대생이 아닌 좀더 성숙해뵈는 남자였던것 같았고 문에도 어떤 중년여인이 서있는 그림이었던듯 했는데요...

로쟈 2007-11-28 18:0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다시 보니 그렇네요. 무슨 영문인지는 확인해봐야 알 거 같습니다...

소경 2007-11-2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마다 자꾸 서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알바 좀 해 놓았더라면 '짬'좀 낼 수 있었을 텐데, 단지 인터넷과 텍스트로써 만족해야하니. 이게 '진품'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도달하기가 이토록 머니... 도서관에서 막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온 터라 상실감이 크네요 ^^:

따님이 귀엽습니다. ㅋ 그림도 잘그리네요.

로쟈 2007-11-29 01:04   좋아요 0 | URL
아직 기한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기회를 내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네파벨 2007-11-2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꼭 가서 봐야쥐...
고흐는 안땡기는데 (고흐는 물론 훌륭한 화가지만 너...무...인기가 많아서 심술궂은 무관심으로 대응...) 이 러시아전은 꼭 보고싶네요.
책소개뿐만 아니라 늘 이런 좋은 정보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로쟈 2007-11-29 12:35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이런 기사를 옮겨오는 거야 손쉬운 일이죠...

아쿨리나 2007-11-2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전시회에 온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로쟈님이 위에 올리신 유명한 작품이 탄생하기 전에 그린 최초의 그림입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로 치면 습작이라고나 할까요? 그것도 아주 훌륭한 습작. 그래서 조금 거칠고 둔하지만 이후 작품의 의도와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더 우울하긴 합니다만) 작가의 내밀한 기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느껴집니다. 처음엔 유형을 갔던 여대생이었다가 위에처럼 나중에는 아버지로 바뀌지요. 이번에 온 그림의 여대생은 당시의 실존인물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여대생의 얼굴에 레핀의 딸의 모습을 담았다고 해요.
12년만에 온 러시아미술전, 정말 멋진 전시회였답니다^^

로쟈 2007-11-29 22: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여대생 그림은 왠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져서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천천히 시간을 내보려고 합니다...

kwangdol 2007-11-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번 전시회 관계자입니다.
레핀은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아무도기다리지않았다'를 완성하기 위하여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러차례 방안의 들어온 소녀의 모습이있는 부분을 수정했습니다.햇수로 15년에 세월이 흘러 1898년의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로쟈 2007-11-30 23:18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레핀의 노작을 서울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사인에서 러시아 관련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6). 최근 들어 부쩍 밀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관계에 관한 기사이다.  

시사인 10호(07. 11. 20) 북극곰과 판다 사랑에 빠지다

‘북극곰과 판다가 밀월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최근 여러 경로로 친분을 돈독히 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작년 중국이 베푼 ‘러시아의 해’ 행사에 대한 화답으로 올해 러시아가 주최한 ‘중국의 해’ 행사에서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임을 재차 확인했다. 요즘 러시아와 미국이 대립하는 터라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은 더욱 대비된다.

올해 중국의 해 행사는 여러모로 다채로웠다. 500여 개 중국 회사와 연인원 수십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장장 8개월에 걸쳐 200여 회 행사가 펼쳐졌다. 지난 3월 개막식에는 후진타오 중국 총서기가 수뇌부들을 대거 대동하고 참석한 데 이어, 11월6일 폐막식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참석해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양국은 경제 외교 군사 과학(우주)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고 각종 협약과 계약을 체결했다. 행사 기간 중 체결한 계약 액수는 자그마치 77억 달러(7조400억 원)에 달한다.



11월5일 원자바오 총리의 예방을 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관계가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양국은 결과에 만족한다. 러시아는 중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원 총리는 “외교 정책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 양국의 안정적 성장은 양국 발전은 물론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국 협력에서 일차적 걸쇠는 경제다. 지난 8년간 양국간 교역량은 매년 30%씩 증가했다.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러시아의 3위 교역국이고, 러시아는 중국의 8위 교역 상대다. 올해 9월까지 양국 간 교역량은 349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40% 증가하리라 예상된다. 폐막식 전 경제 포럼에서 알렉산드르 주코프 러시아 부총리는 “2010년에는 양국 간 교역량이 600억-8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 에너지다. 이른바 원유 가스 전기 등에서의 협력이다. 빠른 성장세인 경제 버팀목인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된 중국은 에너지 수입 노선의 다변화 전략을 세우고 세계 각지의 산유국들과 발 빠르게 접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고려할 때, 러시아 원유가 가장 매력적이다. 풍부한 매장량에 지리적으로 가까워 송유관 건설이 가능할 뿐 아니라, 나아가 동반자 관계를 내세워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이 러시아에 밀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양국 관계가 긴밀해지자 중국 석유회사 ‘시노펙’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티’와 원유 수입 계약을 맺었고, 현재 원유가 몽고를 경유해 기차로 운송되고 있다. 국영 러시아철도회사(RZHD)로부터는 운송비 할인 혜택을 받았다. 작년 중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전체 수입량의 10%(1500만t)에도 채 못 미친다. 하지만 내년에 착공될 동시베리아(이르쿠츠크∼다칭) 송유관이 완공되면 3000만t의 원유를 추가로 공급받게 된다.

양국은 핵 분야에서도 협력한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회사인 테넥스(TNS)는 중국에 50만톤급 핵농축용 원심분리기 시설을 건립하기로 했고, 중국의 장쑤(江蘇)성 톈완(田灣) 발전소의 1/2호기 원자로를 건설한 러시아 원전공사 아톰 스트로이 엑스포트(ASE)는 3?4호기 수주 계약을 마쳤다. 러시아 관계자는 “톈완 발전소는 러시아와 중국 간 핵 협력에서 가장 혁혁한 성과물이다”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러시아 가스에도 눈독을 들였다. 11월11일 러시아 제1부총리이자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회장인 드미트리 메드베제예프는 국제외교대학(MGIMO) 강연에서, “현재 가스프롬은 680억 큐빅(㎥)의 가스공급 문제를 놓고 중국과 협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중국의 투자가 주 관심사다. 중국은 2020년까지 120억 달러를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에너지 금융 통신 수송 등 30개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여기에 우주 과학 분야에서 협력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화성 포보스(공포란 뜻으로, 화성 주위를 떠도는 형체가 불분명한 위성) 탐사에 관해서 논의했다. 일명 ‘포보스 프로그램’은 러시아 우주 기지에서 화성으로 우주선을 띄워보내 포보스 토양 표본을 채취한 뒤 지구로 운송하는 한편, 우주선 내에 화성 궤도를 순항할 중국 미니 위성을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경제 협력 다음은 양국 간 군사 외교 협력이다. 이념 논쟁과 국경 분쟁은 잊은 지 오래다. 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의 결성과 무기/기술 협력은 물론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정도로 군사 협력이 긴밀해졌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군사 협력에서 우선 주목할 것은 상하이 협력기구(SCO)다. 이 기구는 러시아와 중국이 주축이 되어 중앙아시아 4개국과 함께 만든 일종의 집단 안보기구다.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을 원용한다면, 냉전 종식 이후 유일한 초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유라시아 공략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체제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앙아시아 방어전략인 셈. 처음 느슨한 체제로 출발한 이 기구는 유가의 고공비행 덕분에 부국(富國)이 된 러시아와 높은 경제성장세를 탄 중국의 주도하에 점차 영향력을 불리면서 인근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등을 옵저버로 참가시키는 등 도미노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의 해 폐막식 참석에 앞서, 원 총리는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수도)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총리 회담에 참석했다. 러시아는 MD(미사일 방어체제) 문제로 미국과 불협화음이 커지자,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경계 지역인 사마라 주(州)에서 상하이 협력기구 합동 군사작전 시위를 벌였다. 한편 지난 8월 러시아와 중국은 우랄산맥에 위치한 첼랴빈스크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첼랴빈스크 인근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지하 저장고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군사 강국이다. 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중국은 군수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하다. 중국은 전투기/탱크/지대공미사일/잠수함 등을 수입함은 물론 수호이-27 전투기를 합작/생산하고 있고, 최근에는 수송용 헬기(Mi-171) 부품을 전량 납품받아 청두(成都) 헬기 수리공장에서 조립/생산한다.

경제/군사 협력은 외교 공조로 통한다. 얼마 전 중국은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에서 러시아 방침을 옹호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각을 세웠다. 양국 간 밀월에서 동병상련도 한몫한다. 푸틴의 최대 약점은 체첸 분리주의다. 중국도 타이완과 티베트 독립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원 총리는 ‘지역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라는 3대 악(惡)의 세력과 싸우는 데 양국이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라 언급했다.

최근 푸틴은 이란 핵 문제 등과 관련해 부시와 다른 행보를 보였고, 러시아·미국 외교 관계는 악화했다(<시사IN> 제6호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 참조). 미국과 맞서고 중국과 협력하는 러시아의 행보에 워싱턴이 긴장하고 있다.(모스크바= 정다원 통신원)

07. 11. 26.

P.S. 기사의 말미에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는데, 모스크바에서 절친하게 지내며 신세도 많이 진 터줏대감 '동기'이다(나이가 한참 많아서 내가 '형'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한 대학의 기숙사로 찾아갔을 때 형은 당시 '시사저널'에 보낼 원고를 교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시사인의 모스크바 통신원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기사에서 근황을 알 수 있어 개인적으로 반갑다. 둘이 몇 차례 '장시간' 산책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볼쇼이극장의 분수대 앞에서 나눈 긴 대화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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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레프 톨스토이의 서거일이라 한다. 구력으로는 1910년 10얼 28일에 가출해서 11월 7일 6시 5분에 간이역 아스타포보(현 톨스토이역)에서 숨을 거두었고 11월 9일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묻혔다(http://www.youtube.com/watch?v=E8_Th7UdsBw). 요즘 쓰는 달력으로 환산하여 오늘이 이 대문호의 기일이 되는 것이다.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을 보니 그렇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전공자인 나도 읽어보지 않은 책이지만(하긴 전집 90권을 어찌 읽는단 말인가? 그의 소설들만 읽기에도 인생은 짧다), 이번 학기가 가기 전에 조금은 들춰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11. 20) [오늘의 책<11월 20일>] 인생이란 무엇인가

1910년 11월 20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82세로 사망했다. 구소련에서 1958년 완간된 톨스토이 저작전집은 모두 90권. <전쟁과 평화>나 <부활>을 ‘오늘의 책’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톨스토이의 마지막 저작이다. 1884년 ‘1년 365일을 위한 세계 모든 민족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의 빛나는 지혜’를 한 권의 책에 담을 구상을 한 그는 사망하던 해에도 이 책의 개정3판을 내는 등 만년의 열정을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쏟았다.

매일 일기 쓰듯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자신의 단상을 적고, 노자 부처 파스칼 칸트 등 동서고금의 사상가와, 성서에서 당대 무명 저널리스트의 글까지 인용한 다음, 자신의 생각으로 마무리한 형식이다. 톨스토이가 고른 인류의 지혜라 할 만한데, 솔제니친은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책만 가지라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1월 1일, 톨스토이는 무엇을 주제로 인생론을 시작했을까? ‘책’이다. “그리 중요치 않은 평범한 것을 많이 알기보다는 참으로 좋고 필요한 것을 조금 아는 것이 더 낫다”고 쓴 그는 책에 대한 에머슨, 로크, 세네카, 소로의 글을 소개한 뒤 쇼펜하우어를 마지막으로 인용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자가 언제나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법이다. 악서는 아무리 적게 읽어도 지나치지 않고, 양서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과하다고 할 수 없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은? 톨스토이는 ‘시간’을 묵상했다. “현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무한한 접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 그 시간이 없는 한 점에서, 인간의 진정한 생활이 영위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정신력을 그 현재에 집중시켜야 한다.”(하종오기자)

07. 11. 20.

P.S. 톨스토이에 대해서도 할 얘기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털어낼 짬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최소한 페이퍼 하나라도 적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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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세곰 2008-01-05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톨스토이 생애에 관한 유투브 영상 따라간 주소에 없어요 ㅠ.ㅠ

로쟈 2008-01-05 09:48   좋아요 0 | URL
유용한 자료였는데, 삭제된 모양입니다...
 

오늘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탄생 186주년이 되는 날이다. 저녁 무렵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오는데, 아이가 오늘이 '빼빼로데이'라고 얘기해주는 바람에 떠올리게 됐다. 작년 11월 11일에 올린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997543)에도 적었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일이 신력으로 11월 11일이다(그래서 잊어먹기가 좀 어렵다). 185주년만큼의 의미를 갖는 건 아니어서 러시아신문에도 '오늘의 소사(小史)' 같은 란에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가 뭐해서 잠시 시간을 내 르네 웰렉이 편집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열린책들, 1987)를 꺼내들고 영국작가 D. H. 로렌스가 쓴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종교재판장> 서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한 장인 <대종교재판장>은 흔히 <대심문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대심문관>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는 이종진 편역, <도스토예프스키 대심문관>(한국외대출판부, 2004)를 참조할 수 있다. 이하에서 '종교재판장'은 '대심문관'으로 바꿔서 인용한다).

사실 로렌스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호의적인 작가가 아니다. 동료 비평가의 도스토예프스키 숭배에 반발하면서 그는 (웰렉이 인용하는 바에 따르면)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증오와 어둠 속을 미끄러져 다니다가 빛을 쪼이기 위해 사랑, 온갖 사랑을 부르짖는 쥐같은 놈이다."(28쪽)라고 말했다. 가끔 인용해먹는 구절인데 원문은 이렇다: "I don't like Dostoevsky. He is like the rat, slithering along in hate, in the shadows, and in order to belong to the light, professing love, all love."

그럼에도 로렌스는 <대심문관>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는 최소한 양가적인 태도를 보인다. '"단지 하찮은 것(just rubbish)'처럼 생각된다고 폄하하면서도 그는 다시 읽은 <대심문관>에서 뭔가 의미있는 대목을 발견한다: "나는 아직도 냉소적이며 악마적인 하찮은 과시를 본다. 그러나 그 밑에서 나는 최종적이며 답변할 수 없는 그리스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치명적이며 파괴적인, 인류의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증명된 답변할 수 없는 요약이다."(150쪽) 그러니까 이 작품에 대한 로렌스의 매혹은 전적으로 대심문관-이반의 그리스도 비판에 대한 공감에 근거한다.

"만일 누가 대심문관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반 자신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반은 반란하는 인간의 사고하는 정신으로, 즉 모든 사물을 쓰라린 종말 안에서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는 물론 사고하는 러시아의 혁명가와 동일한 유형이다. 이반은 물론 정열적인, 영감을 띤 자아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색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다."

로렌스의 명명을 빌면, 카라마조프의 삼형제는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세 자아이고, 세 분신이다. 이반=사색적 자아(thoughtful self), 드미트리=정열적 자아(passional self), 알료샤=영감을 띤 자아(inspirational self). 물론 로렌스가 단연 맘에 들어하는 인물은 이반 카라마조프이다(반면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알료샤를 편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예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반을 반쯤은 증오한다. 요컨대, 이반은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중추적인 인물이다. 격렬한 드미트리와 영감을 받은 알료샤는 결국 이반의 분파(offset)일 뿐이다."

마지막 문장을 다시 옮기면, "하지만 결국 이반이야말로 삼형제 가운데 가장 위대하며 핵심적이다. 열정적인 드미트리나 신앙 깊은 알료샤도 궁극적으로는 이반의 곁가지에 불과하다."(Yet, after all, Ivan is the greatest of the three brothers, pivotal. The passionate Dmitri and the inspired Alyosha are, at last, only offsets to Ivan."

그에 따른 총평: "우리는 대심문관이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예수에 대한 최종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 견해란 노골적으로 '예수여, 당신은 무력하다'라는 것이다. 인류는 당신의 잘못을 지적해야만 한다. 그리고 알료샤가 이반에게 한 것처럼 예수는 마침내 대심문관에게 묵인의 입맞춤을 한다. 영감을 받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영감의 불충분함으로 인정하고, 사려깊은 사람은 완전한 조정의 책임을 수락해야만 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두 사람(two inspired ones)'은 물론 각각 대심문관과 이반에게 키스하는 그리스도(예수)와 알료샤를 가리킨다. 그리고 '사려깊은 사람(the thoughtful one)'은 대심문관이고. 로렌스가 보기에 그리스도의 키스는 자신의 무력함을 자인한다는 의미이고 그 뒤치다꺼리(완전한 조정)는 모두 대심문관의 몫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대심문관이 그리스도를 비판하기 위해 내세우는 인간의 세 가지 약점은 기적과 신비, 그리고 권위에 대한 요구이다. 그리스도의 불찰은 이 요구들을 간과하면서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것. 인류의 본성에 대한 대심문관의 요약은 아래와 같다.

"이 기적, 신비, 권위의 세 가지 요구가 인간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막는다. 그것들이 인간의 '약점'이다. 다만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빵, 기적, 신비, 권위의 절대적 요구를 끊어버릴 수 있다. 그들은 강력한 사람들이고 기독교도들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든 요구의 실혐만큼이나 신과 같아야 한다. 나머지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은 아기들, 혹은 어린애들이나 바보들이며, 그들은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악할 뿐만 아니라 한푼의 값어치도 없는 반역자들'이기 때문에 심지어는 그들에게 주어진 지상의 빵조차도 공평히 분배할 능력이 없다." (151쪽) 

한마디로 대다수 인간들은 그리스도의 기대와는 달리 어중이떠중이들이라는 것이다(루쉰식으로 말하면 대다수가 '아Q'들인 셈).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예수의 무력함은 기독교가 인간들, 거대한 집단으로서의 인간에게는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기독교는 소수의 '성자들'이나 영웅들만이 깨달을 수 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인간이란 자신이 지탱할 수도 없을 정도의 짐을 지고 있는 말과 같다."

사실 여기서의 '기독교'는 '사회주의'로 대체해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http://blog.aladin.co.kr/mramor/1010978 참조).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또한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근거하며(역사에 대한 터무니없는 낙관은 거기에서 나온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들이란 소수의 '영웅들'(=성자들), 곧 혁명가들밖에 없다. 어중이떠중이들은 체게바라의 티셔츠를 입는 것으로 체게바라-되기를 대신한다(http://blog.aladin.co.kr/mramor/828441http://blog.aladin.co.kr/mramor/924030 참조).

이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 "그렇다면 기독교란 이상일 뿐이고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 본성이 해낼 수 있는 만큼 이상을 요구하므로 실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남을 수 있고 실용적인 책략을 얻기 위하여, 대심문관 자신과 같은 약간의 선택된 사람들은 다른 위대한 영, 악마에 의지하여, 그 위에 교회와 국가를 건설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이상으로서의 기독교'와 대비되는 대심문관의 교회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으로서의 공산주의'에 대비되는 현실사회주의(스탈린주의)가 아니었던가.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예수는 인간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 즉 자유롭고 무제한의 인간을 사랑했다. 대심문관은 모든 제한을 가진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한다." 물론 여기서 인간에 대한 대심문관의 사랑이 '경멸'과 구별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건 염두에 두어야겠다.  

그리하여, 다시 로렌스로 돌아오면, "인간 본성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진단은 간단하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그렇다는 것에 대해서 수긍하고 동의해야만 한다. 심지어 빵을 분배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인간은 너무나 악하고, 심술궂고 또 다른 그 무엇 때문에 스스로 빵조차 분배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빵을 분배받기 위해서는 그는 차르나 레닌과 같은 절대적 권위에 빵을 넘겨주어야만 한다..."

"대다수의 인간이 삶이란 위대한 실재이며, 진정한 삶은 밝은 생명(*살아있는 삶), '하늘의 양식'으로 우리를 채우며, 지상의 양식은 단지 이것을 보좌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니다. 인간은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고, 한번도 이해한 적이 없다..(...) 단지 소수의 능력있는 영웅들, 혹은 '선택된 자들'만이 이것의 뚜렷한 차이를 알고 있다. 대중은 그것을 볼 수 없으며, 결코 보지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마도 그리스도가 보지 못한 이 무서운 진실을 깨달은 최초의 인간이었다."(153쪽) 

이런 정도가 로렌스가 평가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진단이고 통찰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것은 '지상의 양식'에 대한 로렌스 자신의 견해인데, 그걸 마저 적는 건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듯싶다. 대신에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로렌스의 태도를 집약해주는 한 문단만 더 옮겨적는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서 언제나 그렇듯이 놀라운 통찰력을 불온한 사악함과 융합되어 있다. 어느 것도 순수한 것은 없다. 그의 예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예수에 대한 괴퍅하고 독기어린 증오와 혼합되어 있고, 악마에 대한 그의 도덕적인 적개심은 악마에 대한 비밀스런 숭배와 혼합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언제나 괴퍅하고, 항상 불순하며, 늘 악을 생각하는 놀라운 예언자이다."(152쪽)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Dostoevsky is always perverse, always impure, always an evil thinker and a marvellous seer."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아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

0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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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1-1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네 웰렉이 편집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열린책들, 1987)에 확 반가운 마음이.. 내 책장에도 꽂혀있네요..

확실히 여아들이 민감해요.. 우리 조카는 빼빼로데이에 아무런 멘트, 관심 표명 없던데 말이죠..닌텐도에 빠져서..

로쟈 2007-11-12 00:15   좋아요 0 | URL
아이는 이미 금요일에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에는 유익한 논문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절판되어서 유감입니다...

소경 2007-11-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보를 취하는 즉시 구입해야할 여력이 필수군요. 이리 후회거리가를 많이 껴앉고 나자빠지지 않을려면요.


로쟈 2007-11-12 08:57   좋아요 1 | URL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서라면 바흐친의 책마저 품절된 상태이니 옛날이 훨씬 사정이 좋았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영어권만 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연구서들이 나오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뭉실이 2007-11-1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심문관에 공감이 가는 이유는 저 자신이 완전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절대 소수의 영웅이 될수 없음을, 불혹의 나이에도
절대 불혹일수 없는.

위의 빨간(?) 사진은 체게바라의 사진을 연상시키네요.^^

로쟈 2007-11-12 09:50   좋아요 0 | URL
체게바라와 그리스도를 합성한 것이니까요.^^

소경 2007-11-1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으로 인류-고고학분야에 종사코 싶은데 오히려 로쟈님 덕에 인문학쪽으로 너무 자주 우회 하네요 ^^ 답글에 열정이 홀라당 다른 쪽으로 흘러 가니.
D.H 로렌스의 마지막 언급은 충격적이네요...

로쟈 2007-11-12 16:17   좋아요 0 | URL
인류학-고고학이 인문학 '바깥'은 아닌 거 같은데요.^^
 

이번주 한겨레21(684호)에 게재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여느 때와 달리 며칠 앞당겨 옮겨놓는다. 그건 칼럼 자체가 러시아혁명 90주년을 돌이켜보기 위한 것이었고 오늘은 그 9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에서는 아무런 공식적인 기념행사도 갖지 않는다고 하며 아예 무관심하다고 전한다(현지 르포기사는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0250081,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0260147 참조).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푸틴 대통령은 2년 전 혁명기념일을 없애고 대신 11월 4일을 ‘국민통합의 날’이라는 새 국경일로 지정했다고(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11월 7일은 국경일이었다!).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통감한다...

한겨레21(07. 11. 13) 사악했다기보다는 무능했다

11월 7일은 러시아혁명 90주년 기념일이다. 보통 ‘10월 혁명’이라 불리는 것은 구력(舊曆) 1917년 10월 25일에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고 이것을 현재 쓰고 있는 신력(新曆)으로 환산한 날짜가 11월 7일이다.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지만 이제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에게조차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러시아혁명의 의의는 무엇일까? 러시아 혁명과 관련한 몇 권의 책을 들춰보게 된다.

소비에트 해체 이전인 1977년(즉 혁명 60주년이 되는 해)에 서문이 씌어진 <러시아혁명>(나남 펴냄)에서 E. H. 카는 “목표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해도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은 종종 사회주의의 부정 바로 그 자체였다.”고 혁명 이후의 볼셰비키 독재체제를 비판했지만 혁명의 성과마저 부인하지는 않았다.

 

혁명 50주년인 1967년을 기준으로 소련의 인구는 반세기 동안 1억 4천 5백만에서 2억 5천만 이상으로 증가했고, 도시 거주민의 비율은 20%이하에서 50% 이상으로 상승했다. 서구에 비하면 생활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원시적이고 후진적이었지만, 생활수준은 향상되었고 의료 및 교육 서비스는 소련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때문에 “1967년의 소련 노동자와 농민은 1917년의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다.”(하지만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현재 러시아 노동자의 파업 참여인원은 혁명 당시 100만 명 단위에서 1000명 단위로 줄었다. 40년 전과는 또 매우 다른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카는 가난하고 문맹인 대중이 아직 혁명적 의식의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위로부터의 혁명’이 혁명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가혹한 전제주의와 전쟁의 궁핍에서 러시아 인민을 해방시킨 러시아혁명이 바로 그런 혁명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다. 스티브 스미스가 <러시아혁명>(박종철출판사 펴냄)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도 그것이다. 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믿음이 그들의 요구에 잘 들어맞아서, 그들은 수단이 목적을 훼손하는 방식을 못 보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이 볼셰비키 혁명은 그것이 이루려고 시도한 변화에 맞먹는 규모의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소련의 역사적 정통성과 스탈린시대를 옹호했던 푸틴조차도 최근 모스크바 남부의 공동묘지를 방문하여 1937-8년에 자행된 ‘반혁명분자들’에 대한 대숙청을 가리켜 너무나 큰 비극이며 믿기 어려운 광기라고 토로한 것은 정치적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상징적이다. 그것은 러시아 혁명사가 다시 반복되어도 좋은 역사인가에 대한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러시아인들의 회의를 응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에.



무엇이 문제였던가? 카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가장 높은 이상으로의 전진이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사회주의의 진보는 정체되고 일련의 역행과 참화에 의해 중단되었다. 물론 이러한 역행/참화는 피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피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스미스의 보다 구체적인 지적에 따르면,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은 뒤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제대로 된 해답을 주지 못하는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과 부딪혔다. 따라서 그들의 정책은 이데올로기의 소산이었던 것만큼이나 임기응변과 실용주의의 소산이었다. 즉 그들은 사악했다기보다는 무능했다.

결국 러시아혁명사는 “1917년에 열렸던 가능성이 자꾸만 닫혀 갔던” 역사로 기술된다. 오늘날 그 가능성은 다시 열릴 수 있을까? “러시아 혁명은 정의와 평등과 자유가 어떻게 화합할 수 있는가에 관한 심오한 물음을 던졌고, 비록 볼셰비키가 이 물음에 준 답에 치명적인 흠이 있다고 해도 이 물음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이 스미스의 결론이다. 러시아혁명이 써낸 답안은 틀렸지만, 요는 그 오답과 함께 문제까지도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오답을 적어내는 것보다 더 무책임한 일이기에.

 

07.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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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거 다음날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7-12-20 09:38 
    * 17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 * 진실이 거짓을 이깁니다. ; 정동영 대통령 후보 슬로건 * 첫째.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제가 평생을 두고 공부하고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 싸움은 내가 평생을 두고 도달하고자 노력해도
 
 
마립간 2007-11-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를 발췌하여 저의 페이퍼로 옮깁니다.

로쟈 2007-11-08 21:19   좋아요 0 | URL
네, 오픈된 자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