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신문에 실리게 되는 듯싶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내달 1일로 탄생 200주년을 맞게 되는 러시아 작가 고골(고골리)을 다루고 있어서다(구력으로는 3월 20일이 그의 생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기념해서 이번 학기에 고골 강의를 여러 강좌에 잔뜩 집어넣었다. 이미 <광인일기> 같은 작품 강의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5월말까지는 고골을 손에 들고 있을 듯싶다. 단, 유감스러운 건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죽은 혼>은 강의 목록에서 빠졌다는 것. 마땅한 번역본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번듯한 번역서가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09. 03. 20) [여적]죽은 혼 

19세기 중엽의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 지극히 낙후된 상태였다. 여전히 가혹한 농노제가 유지돼 농민을 가축이나 물건처럼 매매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해방령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시기 러시아 농노제 사회의 폐해와 관리들의 부패를 풍자 기법으로 예리하게 비판한 작가가 니콜라이 고골리다. 그 중에서도 장편 <죽은 혼>은 대표적 걸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고골리는 러시아 근대 리얼리즘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굳힌다. 

고골리는 이 소설에 일부러 중의적(重意的) 제목을 붙였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어에서 ‘혼’을 뜻하는 ‘두쉬’에는 ‘농노’란 뜻도 있다. 농노를 세는 단위로도 ‘두쉬’가 쓰였다. 따라서 <죽은 혼>은 <죽은 농노>로 해석되기도 한다. 국내 번역본 가운데 <죽은 농노>란 제목이 있는 까닭이다. 그나마 이 책은 1842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될 때 엄격한 검열 때문에 <치치코프의 모험 또는 죽은 혼>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주인공 치치코프는 탐욕스러운 협잡꾼이다. 그가 시골 마을에 나타난 건 죽은 농노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호적상 살아 있는 것으로 돼 있는 죽은 농노를 저당으로 은행에서 거액을 빌려 한 밑천 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새 인구조사 때까지 꼬박 꼬박 죽은 농노에 대한 인두세를 물어야 하는 지주들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렇게 해서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 400명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죽은 혼>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중의가 나타난다. 바로 ‘속물성’이다. 치치코프뿐 아니라 그가 만나는 지주들도 하나같이 탐욕적이고 인색하며 사납고 편집광적이다.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심지어 이들 집의 가구들까지 주인의 분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풍자와 해학, 사실주의가 뒤섞인 <죽은 혼>을 읽다 보면 절로 우리 시대에 죽은 혼은 누구인지 묻게 된다.

20일이 구 러시아력으로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이다. 현재 쓰는 그레고리력으론 4월1일이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집은 박물관으로 단장되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 고골리는 <죽은 혼> 2부를 집필하다가 정신적 동요를 못 이기고 원고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단식에 들어간 지 아흐레 만인 1852년 2월 어느날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김철웅 논설위원) 

09. 03. 19. 

 

P.S. 자신의 마지막 원고(<죽은 혼> 2부)를 태우는 고골의 모습. 일리야 레핀의 그림(1909)으로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 소장품이다. 작년에 국내에서도 전시된 바 있다. 참혹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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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0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0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2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60년대에 번역된 을유문화사 것을 읽었는데 재미있더라구요.해학과 익살도 있구요.

로쟈 2009-03-22 16:03   좋아요 0 | URL
정본으로 쓸 수 있는 번역본이 나오면 더 좋겠습니다...

2009-03-21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2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9-03-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은 고골이고..^^
난 파우스트 예매 했어요. 보실 작정 아니었남유?

로쟈 2009-03-22 16:04   좋아요 0 | URL
저도 볼 예정입니다.^^

수유 2009-03-22 17:16   좋아요 0 | URL
전 2층으로 잡았어요!! 토요일. 2층에서 만나요^^

2009-03-22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세곰 2009-12-03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신문 김철웅 논설위원은 70년대 후반 고대에서 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최근의 논설은 어쩔 수 없지만 그가 쓰는 칼럼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재가 상당히 러시아틱합니다^^
 

이달말 '안나 카레니나' 내한 공연을 앞둔 러시아의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자주 강의도 하게 되는 작품이어서 어떻게 발레로 공연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조만간 알게 될 듯싶다... 

 

한겨레(09. 03. 03) 그의 발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나의 무대는 열려있는 감정의 경험이다. 내가 지배하는 캐릭터가 사는 곳에서 미스터리를 창조하여 그것의 대단원을 가지고서 나만의 세상을 만든다.”

러시아 ‘드라마틱 발레’의 거장 보리스 에이프만(63)과 그의 발레단이 이달 말 한국을 찾는다. 에이프만은 뛰어난 심리묘사와 애크러배틱에 가까운 극적인 안무, 장엄한 스케일의 연출로 세계 무용계의 눈 귀를 끌어온 안무가. 우리에게는 2001년부터 <차이코프스키-미스터리 한 삶과 죽음>, <레드 지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돈키호테> 등의 내한 무대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3월27~29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02-2005-0114)에서 신작 <안나 카레니나> 국내 초연을 앞둔 그를 전자우편으로 미리 만났다.

에이프만은 “한국 관객들은 매우 감성적이고 지적이다”며 “나의 작품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을 방문한다는 것이 가장 기분 좋다”고 기대감을 에둘러 표시했다. 그는 러시아 고전발레의 빼어난 테크닉을 바탕으로 현대무용을 접목시켜 철학적 이야기를 그려낸다. 고전문학이나 역사상의 극적 이야기와 철학적 주제가 그의 크고 화려한 현대발레로 무대화된다.  

그의 발레단이 한국 무대에 처음 선보이는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명작에 현대 발레의 옷을 입힌 작품. 19세기 러시아 왕정 관료인 남편과 유복한 삶을 누리던 안나 카레니나가 청년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의 도피를 하지만, 혹독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을 담았다. 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으며 꾸준히 영화화된 작품이다.

에이프만은 카레니나의 타오르는 열정과 내면적 고통을 숨막히도록 격정적인 안무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등의 극적인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19세기 러시아 왕정의 시대상을 그린 소설과 달리 에이프만은 안나의 심리적 억압과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06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일컫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상을 수상했다. 

“사랑에 관한 발레를 만들고 싶었다. ‘3각 관계’라는 영원하고도 신화적인 주제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젊고 현대적인 배우들로 이뤄진 우리 무용수들은 사랑의 현대적인 개념과 증오를 표현한다.”

에이프만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다”며 “주인공 안나가 받아들인 감정적이고 에로틱한 세계는 우리 공연의 세계였다”고 작품 동기를 밝혔다. 그는 안나의 심리를 극적인 독무뿐만 아니라, 남편 카레닌 또는, 애인 브론스키와의 화려한 듀엣 춤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그는 “안무가는 수많은 여성과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나의 발레에서 여성의 주제는 언어가 아닌 몸을 통해서 표현된다”며 “나 자신을 춤추는 안나의 열정으로 드러내야 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에이프만은 안나의 심리 상태에 따라 흰색, 검은색,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게 해 순수, 어둠, 열정에 대한 상징성을 덧입혔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생활에서도 색깔은 특별한 드라마적인 의식과 연관이 있다. 예를 들면, 검은색은 죽음의 비극과 관련 있고, 흰색은 결혼, 붉은색은 열정을 연상시킨다. 그것의 전형성을 바꾸고, 새로운 드라마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13살 때부터 안무를 시작한 에이프만은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와 옛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컨서바토리에서 수학했고, 1975년 키로프 발레의 <불새>를 안무하면서 처음 세계 무용계의 눈길을 받았다. 1977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을 창단한 뒤로 연극성이 강화된 ‘현대발레’ 장르를 선보여왔다. 그는 옛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공연 예술인 최고의 찬사인 ‘러시아의 국민 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러시아 최고 권위의 ‘골든 마스크상’을 두 번, ‘황금 소피트상’을 다섯 번 받았다.

그는 고전 발레뿐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체호프 등이 지은 고전문학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현대발레로 창작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몰리에르, 발레리나 올가 스페시프체바 등 천재 예술가들의 고뇌를 극적인 무용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에이프만은 “처음에는 발레의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나서 심오한 문학세계와 진실한 음악을 발레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2007년 10월 내한했을 때 “발레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 내면세계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는 예술”이라고 말했던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에게 춤은 무엇일까? “나는 춤에 의해 살아가고, 춤을 위해 산다. 춤은 구경꾼들을 인간의 열정을 끌어올리는 사람들에게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나는 그 지점이 가장 흥미롭다.”

<안나 카레니나>는 서울공연에 앞서 3월20일 거제문화예술회관, 22일 대구 오페라하우스, 24일 김해문화의전당에 이어 3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4월2일 울산 현대예술관에서 지방 관객과도 만난다.(정상영 기자)   

 

■ 보리스 에이프만 인터뷰 전문  

-발레 <안나 카레니나>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저는 사랑에 관한 발레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3각 관계’에 대한 영원하고도 신화적인 주제였습니다. 이 주제는 항상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신화적인 스토리를 읽는 동안 영감이 생겨납니다. 우리 무용수들은 젊고 현대적인 무용수들로서 사랑과 증오의 현대적 개념을 표현합니다. 만일 우리가 타이틀 <안나 카레니나>를 지운다고 해도, 이 공연은 여전히 (톨스토이의) 그 소설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발레는) 톨스토이 작품의 영향 아래서 쓰인 독립적이고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작품에서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당신이 음악에 대해 특별한 노력과 관심이 있는 것은 컨서바토리에서 공부했기 때문인가요?

=아마 당신이 알 텐데요, 나는 컨서버토리에서 안무를 공부하였습니다.(참고로 에이프만은 옛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컨서바토리에서 수학했다) 그런 연유로 음악의 세계와 특별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음악과의 연관성은 사실 매우 미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음악을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음악의 ‘조형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감정들이 표현되는지, 그리고 드라마투르그에 무엇을 답하는지 말입니다. 음악은 더 이상 내 작업에 ‘보조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창조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입니다.

음악을 고르는 것은 발레를 만드는 작업의 첫번째이자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후의 모든 작업의 과정을 규정합니다. 음악을 고르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이것은 단지 많은 시간 음악을 듣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이며, 무언가 음악 안에 있는 새롭고 현대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음악이 잘 알려진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한국 관객들에게 팁을 준다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저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당신은 그의 주인공들의 심리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작가의 이해력을 느낄 것이며, 또한 러시아 삶을 반영함에 있어서 놀라운 열정과 정확성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는 여주인공의 내면세계에 대한 몰입뿐 아니라 그녀의 성격에 대해 완벽한 사이코-에로틱한 이해가 있습니다. 현대 문학에서 우리는 그러한 열정과 은유와 환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내 안무에 필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마침내는 소설을 넘어섰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받아들인 감정적이고 에로틱한 세계는 우리 공연의 세계와 같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남자와의 에로틱한 관계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여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희고, 검고, 붉은 드레스는 그녀의 감정변화와 처해있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공연을 위해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술과 삶 속에서 색깔은 특별한 드라마적 의식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검은색은 죽음의 비극과, 흰색은 결혼과, 붉은 색은 열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전형적인 것을 바꾸고, 새로운 연극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만난 후 심리변화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이해시키고 주제를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무를 창작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안무가는 수많은 여성과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냅니다. 제 발레에 있어서 여성의 주제는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열정을 춤추는 그녀에게 구체화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표현의 한계를 위해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안나 카레니나가 제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무용수들과 함께 우리가 이러한 사이키델릭 타입의 여성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우리의 비전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사이코드라마로 불려지는 동시에 관객들을 감정적이고 지적으로 영향을 주는 황홀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엘리트적이거나 실험적인 예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현대 발레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스타일을 발전시켜왔고, 이것은 최근에 많은 추종자를 양산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우리의 스타일과 유사한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았습니다. 발레의 다른 경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발레로 만든 첫 번째 안무가로 유명합니다. 그런 작업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런 작업을 하면서 오리지널 작품의 명성과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이나 우려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발레를 비롯한 많은 무대예술의 바탕이 되는 문학 작품은 발전되어야 합니다. 최초에 저는 발레 작품을 위한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지한 문학과 진실한 음악을 결합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저는 항상 새롭고 독립적인 작품을 만듭니다. 문학적 주제는 단지 발레의 바탕이 될 뿐이며, 제 공연들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판타지아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체홉,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발레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몰리에르, 발란신 같은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의 삶과 이야기를 발레화하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 발레화하고 싶은 위대한 아티스트나 작품이 있습니까?

=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삶에 대한 발레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특별히 프로이트의 심리와 연관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어떤 인물입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비극을 위해 창조된 매우 특별한 타입의 여성입니다. 그녀의 관능적인 세계는 매우 모호합니다. 만일 그녀가 브론스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겁니다. 조금만 밀어 부쳤어도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안나는 한 남자에 대한 성적 집착에 의해 파멸하게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는 약물 중독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지속적으로 아편을 먹으면서, 신경과민으로 인한 신경쇠약증에 빠진 그녀, 바깥 세상을 향한 적개심… 흉악한 존재로 변한 그녀는 그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자살을 택함으로써 그녀는 자신과 그녀를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친척들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저는 톨스토이의 소설이 훌륭한 작품이지만 톨스토이의 잠재의식의 세계를 작품전체에 다 이식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프로이드보다 더 깊은 프로이드의 세계입니다. 그녀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그녀 자신을 희생토록 했습니다. 이것은 희생당한 여성의 타입입니다. 그녀는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비난하거나 죄를 면제하여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녀는 동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삶은 그녀에게 점차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모성애를 잃었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녀는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그 두 가지의 사랑이 명백하게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브론스키를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19세기가 일치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여성과 어머니로서 궁극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카테고리는 가정이란 개념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넘어, 신의 도덕성을 포함한 모든 것을 뛰어 넘어 - 이것은 당신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녀는 남자를 잃은 상실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악마 같은 세상의 창조물로 다시 태어난 한 여성의 비극입니다.

제 견해로 남편 카레닌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합니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결국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바로 그의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로부터 이것을 숨기고 귀족들과 함께 즐기는 것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혼자였고, 발가벗겨졌고, 내면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당신에게 춤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춤에 의해 살아가고, 춤을 위해 삽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춤의 철학을 소개한다면?

=안무는 선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안에는 미학적인 아름다움, 감정과 에너지가 있습니다. 안무가가 문학을 어필한다고 해도, 특별한 형식의 세계는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예술이며, 발레는 발레 고유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반대로 춤은 구경꾼들을 인간의 열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며, 저에게는 무엇보다 그 지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의 움직임은 애크러배틱에 가깝고 무용수들에게는 어렵고 위험하게까지 보입니다. 이런 어려운 움직임을 요구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은 매우 어렵습니다. 무용수는 기본적으로 매우 훌륭한 테크닉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별한 작용, 테크닉과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수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전통적인 작품에서는 밖으로 보여지는(외적인) 면, 움직임(안무)의 그림, 현상(그래픽)이 보다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전문성이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 단체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 무용수들은 신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깊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단체에 우리를 하나로 묶고 다 함께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에 대한 지시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는 리더가 있고 그 리드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리더를 믿는, 그리고 상호 합의된 지향점에 따르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에 의해 이루어 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리더의 아이디어가 성공이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지향점을 포기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향점이 우리 모두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매우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나는 결과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했습니다. 나는 목표를 위한, 거의 금욕적인 삶을 삽니다. 그리고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남았고, 그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무용수들의 역할이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안나의 역할. 몸으로 표현하기 불가능할 것 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시스템이 있습니까?

=창작에 어떤 시스템은 없고 만들기 원치도 않습니다. 어쩌면 나 대신 누군가가 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매일 열심히 안무적 창조를 하고 그 실현은 우리에게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신이 매일 스케일을 연습하면 당신의 손가락은 점차 자유롭게 키보드를 날아다닙니다. 무용수가 안무(움직임)를 이해하고 느끼면 그의 몸은 점차 가장 어려운 테크닉이라도 자기 몸에 익숙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무용수들은 연극적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무용수들이 눈부신 테크닉뿐 만 아니라, 연극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나라 많은 도시에서 공연을 했다. 당신이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 만났던 한국 관객들의 느낌은?

=한국 관객들은 매우 감성적이고 지적입니다. 나의 작품이 올려지는 곳에 있을 때 기분이 좋고 나의 작품을 잘 이해하는 무용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이 좋습니다.

-이번 한국에 왔을 때 하고 싶은 것이나,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요?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고 낮은 칼로리의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에서는 김치를 좋아합니다.

-앞으로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 당신의 작품은?

=당연히 나의 최근 작품인 <오네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3월3일에 오픈 4월 말까지 공연하고 미국 투어를 갑니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오는 3월 당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젊은이들과 일해 왔으니까요. 그들에게 자신 안으로 깊이 들어가 스스로를 파악하기 위해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느끼고,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미션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많은 것이 나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 누군가 탓해야 한다면 자신을 탓하십시오. 정부나 이웃에게 이유를 돌리거나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절대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하십시오. 인생 전체를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09. 03. 05. 

P.S. 인터뷰에서 내게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카레닌에 대한 에이프만의 옹호. "제 견해로 남편 카레닌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합니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결국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바로 그의 재앙이었습니다." 카레닌을 열정을 가진 인물이자 '비극적인 인물'로 보는 견해를 나는 따로 접해보지 못했다. 그의 발레에서 왜 카레닌에게 그토록 많은 비중이 두어지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두번째는 '서프라이즈'. 그의 신작 <오네긴>에 관한 얘기다. "당연히 나의 최근 작품인 <오네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3월3일에 오픈 4월 말까지 공연하고 미국 투어를 갑니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호,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발레 작품이 하나 생겼다. 내년에는 우리도 볼 수 있을까? 참고로, 에이프만 발레단의 리허설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pVTjdr724Ac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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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스 에이프만의 차이코프스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07 15:14 
    한국을 자주 찾는 러시아의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차이코프스키>의 공연을 위해 주연 발레리노와 함께 내한했다는 소식이다.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연합뉴스(09. 09. 07) <인터뷰> 안무가 에이프만ㆍ발레리노 말라코프 "한국 무용수들은 정신적인 면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통하는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에이프만) "일본에서는 90번 넘게 공연했는데,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한국에 대한 여러
 
 
하이드 2009-03-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엘지 티켓 오픈할때 방심했더니, 벌써 코앞이군요. 3일만 하는거라 좋은 자리가 남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님 소개해주신 덕에 오랜만에 공연나들이 하게되었네요. ^^

로쟈 2009-03-06 22:37   좋아요 0 | URL
며칠전까지는 자리가 좀 있던데요.^^

하이드 2009-03-06 23:47   좋아요 0 | URL
2007년 왔을때는 그 해 티켓 오픈하자마자 공연 3개를 모조리 가장 먼저 하는 바람에, 정말 좋은 자리로 예매 했었는데 이번엔 좀 많이 늦었죠.

그래도 늦게 한 것 치고는 꽤 좋은 자리에 예매했습니다. ^^ 가격도 너무 착하네요.

비로그인 2009-03-06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는 남자를 잃은 상실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악마 같은 세상의 창조물로 다시 태어난 한 여성의 비극입니다." 인터뷰 기사가 여러군데 좀 이상하지만 이것은 유독 그렇군요. 사회가 안나 카레니나를 정죄할 권리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요. 이 소설이 성경을 인용(로마서 12:19)하고 시작하지 않습니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는 구절이지요. 나보코프가 이 구절에 기대어 해설한 바에 의하면, 사회도 안나를 비판하고 정죄할 아무런 권리가 없지만, 안나도 복수의 자살을 함으로써 브론스키에게 복수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메시지가 있지요.

"제 견해로 남편 카레닌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합니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결국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글쎄... 알렉세이 카레닌이 "비극적"이고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카레닌의 위선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겠죠? Pavear & Volokhonsky 부부의 번역(위의 영역본에서 제일 왼쪽)을 읽으면서 알렉세이 카레닌의 위선과 교묘한 심리가 혐오스럽더군요.

독자마다 나름 달리 읽을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인정하면서도 간혹 제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부 작품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 그냥 넘어가려다가 에이프만의 말에 - 어쩌면 좀 이상한 번역(?)에 - 토를 약간 달아봅니다.^^;

로쟈 2009-03-06 22:37   좋아요 0 | URL
러시아어 원문을 보고 싶네요. 아니 영어로 인터뷰를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urblue 2009-03-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예매해뒀습니다. 지금은 안나 까레니나를 다시 읽고 있는 중이구요. 대학 때 읽었지만, 그때는 톨스토이 작품은 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아주 재밌네요. 문제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만. ^^;
존 크랑코의 <오네긴>은 9월에 공연이 있습니다. 내년엔 에이프만의 <오네긴>도 왔으면 좋겠네요.

로쟈 2009-03-06 22:38   좋아요 0 | URL
네, <오네긴>을 같이 기다려보지요.^^

anthony 2009-03-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기대중이에요-
저번에 '차이코프스키'가 최고의 무용 공연이었던지라ㅠㅠ

로쟈 2009-03-07 13:32   좋아요 0 | URL
^^
 

한겨레 홈피에서 며칠 전 블로그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1050.html). 작성자는 '내 마음속의 굴렁쇠'님이고,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기사에 이미지 몇 개를 추가했다). 빅토르 최의 노래는 나도 자주 유튜브에서 찾아듣는 편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 책 정리를 하다 보니까 빅토르 최에 대한 러시아어 평전도 눈에 띄었는데(러시아에는 여러 종이 출간돼 있다), 국내에도 그럴 듯한 규모의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키노(빅토르 최)의 노래 링크는 '키노-슬픔-젬피라'(http://blog.aladin.co.kr/mramor/1735750) 참조.   

한겨레(09, 02, 26) [블로그] 빅토르 최, 그는 살아 있다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Victor choi)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말 그대로 불꽃 같이 살다간 청년이다. 그에게는 조선의 피가 흐른다. 1962년 그가 태어난 나라는 카자흐스탄공화국. 아버지는 고려인 2세며,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강제이주 70년 고려인의 삶을 더듬던 나에게 이 젊은 요절가수는 계단 끝 비상구와 같은 존재다.

Igla.jpg picture by vkovalch 

까레이스키 3세, 그는 옛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다. 영화에도 출연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영웅’(Last Hero)이라 부른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언제나 그리워하고 지금도 빅토르 최가 남긴 흔적을 태양의 흑점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뀐 것이라면 빅토르 최는 죽었고 추모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 뿐이다.

빅토르 최의 신화는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에 있는 추모의 벽(일명 ‘통곡의 벽’)과 제단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조국공연을 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영혼은 이 세상에 머물고 있다.     

» <추모의 벽>. 이 벽에는 "그는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빅토르! 너는 영원히 우리의 심장에 함께 있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빅토르 최는 우리를 바꿨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낡은 벽 앞에서 언제나 울려 퍼지는 노래 ‘끄루빠 끄로위’(혈액형), 그의 배지를 단 젊은이들이 어깨 걸고 부르는 생전의 그의 노래들, 그를 기리는 빽빽한 추모글들, 이곳 그의 제단과 페테르부르크 보코슬로 스코야 클라드비세 묘지를 지키는 마르지 않는 조화들, 그의 이름으로 러시아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리들.  

그랬다. 그는 1993년 모스크바 콘서트홀 앞 명예가수의 전당에 장군의 아들이면서 ‘민중의 양심’으로 불렸던 옛소련의 영원한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1938~1980) 다음으로 헌액(獻額)되는 영광을 누렸다.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난이 뒤따랐고, 가난을 벗지 못했다. 그 역시 세상의 슬픔과 희망을 안고 살아갔던 고려인이었다. 월급 50루블을 받는 청년노동자로 살며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내몰린 서러운 조선인의 후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음악혈관에는 이렇듯 고려인의 애환과 꿈이 뒤엉켜 있었다. 낡은 아파트의 보일러실 화부로 일하며 노랫말을 짓고 곡을 만들며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곳은 그를 추모하는 또 하나의 성지가 되고 있다.

음악은 빅토르 최를 이 세상에 발을 딛게 한 힘이었다. 그는 음악에 관한 그 어떠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천부적인 음악 재능에 더없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짧다면 짧은 음악활동 10년, 화구의 불꽃과 함께 그의 노래는 점화되기 시작했다. 옛소련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 키노(KINO)는 그의 삶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4년 핵무기가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한 '나는 선언한다'로 러시아 국제평화재단이 주는 반전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빅토르 최의 음악은 러시아 펑크록의 대명사다. 그의 노래를 이끄는 선율은 저항과 자유의 음표로 가득 차 있다. 펑크록답게 노랫말도 살아있다. 목소리는 낮고 음울하지만 뿌리를 휘감는 힘이 있다. 대표곡으로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변화를 원해(хочу перемен), 마지막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전설(легенда), 별(звезда)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으로 보고 있지만, 옛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던 페레스트로이카 전선에 그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인민을 위해 빅토르 최에게 ‘당신의 힘’을 빌려달라고 했다. 위기에 직면한 소련 공산당이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죽음에 ‘암살설’이 뒤따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노래한 곡으로 <변화를 원해>가 유명하다. 이 노래가 상징하듯 그는 러시아인들이 열망하는 시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는 아이콘이 됐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빅토르 최의 <변화를 원해>에서)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죽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옛소련의 진보신문들이 그의 죽음을 알렸고, 명복을 빌었다.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5명의 소련 여성이 목숨을 끊어 그의 저승길에 동행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그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그의 주검 앞에 눈물을 뿌린 장미꽃을 헌화했다.

빅토르 최가 죽자 이 ‘영웅’을 차지하려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국적 논쟁이 벌어졌다.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는 카자흐스탄으로 ‘반드시 표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인들에게 빅토르 최는 영원한 카자흐스탄인이다. 하지만 나라가 없는 슬픈 조선유랑민들에게는 그 역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살다가 간 고려인이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분신이었던 록그룹 키노는 해체됐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영혼의 날개를 달고 세상을 향해 비상 중이다. 이 젊은 영혼이 갈망했던 꿈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시대가 그에게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09. 02. 28. 

P.S. 기사에서 몇 가지 표기는 착오이다. 러시아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는 '비소츠키'가 맞다(비소츠키의 노래 링크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38835). 그리고 빅토르 최의 노래 '혈액형'은 러시아어는 '끄루빠 끄로위’가 아니라 '그룹빠 끄로비'이다(영화 <이글라>에 삽입된 버전으로는 http://www.youtube.com/watch?v=PuQ4Y_MnaFc 참조. 노래 가사에 맞는 버전으론 http://www.youtube.com/watch?v=kXRJkMsIwVg&feature=related) '이글라'는 '(주사)바늘'이란 뜻이다). '변화를 원해'(http://www.youtube.com/watch?v=f9dpPdbnTHA, 라이브는 http://www.youtube.com/watch?v=jyorQevSPI0&feature=related),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3m5peDpAFVs), '전설'(http://www.youtube.com/watch?v=ce3PBE9lUIk), '별'(http://www.youtube.com/watch?v=niTdmRhzyVM) 등도 한번 들어보시길(찾아보니 굉장히 다양한 버전들이다). 마지막은 러시아의 또 다른 젊은 영웅이었던(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연의 영화 <형제2>에 삽입된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m2HPWiqesks&feature=related) 1편에서 러시아 마피아를 상대하던 보드로프가 2편에서 상대하는 건 미국 마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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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었는데 거기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으리라"라는 말이 나오던데, 추모의 벽에도 비슷한 문구가 나오네요.
인용인것같은데, 누구의 말인지 알수 있을까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레닌에게도 그런 말을 쓰죠. 관용화된 표현 같아요...

비로그인 2009-02-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토르최의 노래중에 <엄마, 우린 모두 중환자예요>라는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했어요.
러시아에서는 키노의 가사를 시집으로 내기도 했다더라구요.
혈액형을 다시 부른 윤도현의 곡은 정말 별로였어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네, 빅토르 최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었어요. 좀 허름한 장정들이었지만...

Kir 2009-02-2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러시아 관련 강좌에서 혈액형이랑 마지막 히어로를 들은 적이 있어요. 가사를 알고 들으면서 더욱 그랬지만, 가사를 알기 전에도 -몇번 들려주고 난 뒤에 가사를 알려주셨거든요- 그 애조 띤 음울한 목소리와 그의 생애가 겹쳐져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참 우울했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러시아 강좌도 들으시는군요.^^

파란여우 2009-03-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쪽 롹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장소로 빅토르 최의 무덤순례를 한다더군요.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그것도 좀 미심쩍은 구석이 많고요, 아무래도 반정부 활동을 하다보니 정황이 묘하게 되었습니다만. 근데 아내와 무덤이 나란히 있는게 아니고 한 구역이긴한데 좀 떨어져 있어서 그렇더군요.

로쟈 2009-03-01 22:16   좋아요 0 | URL
빅토르 최의 무덤에도 가보셨나요?!..

파란여우 2009-03-02 14:33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갈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ㅎㅎㅎ
텔레비전에서 본겁니다.

로쟈 2009-03-03 00:04   좋아요 0 | URL
꿈이 이루어지시길!^^
 

체호프의 드라마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러시아 희곡은 아마도 고리키의 <밑바닥에서>(1902)일 것이다(일제때는 <밤주막>이란 제목으로 공연됐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대학로에서 뮤지컬로도 자주 공연되곤 했다. 오늘 기사를 보니 극단 유가 이번에 정극으로 다시 <밑바닥에서>를 무대에 올린다. 장소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고, 김수로, 엄기준 두 배우가 주연을 맡는다고 한다. 나로선 두 배우 때문이 아니라 고리키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번쯤 시간을 내보고 싶다. <밑바닥에서>는 강의시간에 가끔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한겨레(09. 02. 17) 김수로·엄기준 ‘밑바닥에서’ 희망을 쏘다 

영화와 티브이 브라운관을 누비며 활약 중인 배우 김수로(39)씨와 뮤지컬 무대 출신의 배우 엄기준(33)씨가 나란히 연극 무대에 섰다. 두 사람은 극단 유가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올린 <밑바닥에서>(연출 황재헌)에 젊은 도둑 ‘페펠’ 역과 사기도박 전과자 ‘사틴’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밑바닥에서>는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 막심 고리키가 1902년 발표한 희극. 싸구려 여인숙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간 군상의 삶을 그렸다. 지난 15일 저녁 공연을 끝낸 두 사람을 분장실에서 만났다. 

“10년 안에 꼭 무대에 서려고 했어요. 제 주변에서도 영화보다는 연극 무대에 섰던 향기가 더 짙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았죠. 9년 만에 서 보니 정말 무대의 향이 짙고 좋더라고요. 커튼콜 때의 전율은 말 그대로 짜릿하죠.”

2000년 연극 <택시 드리벌> 이후 9년 만에 출연한 김씨는 “다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없던 에너지가 다시 생겨 계속 무대에 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영화와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의 만능 연예인으로 인식되지만, 기실은 무대에서 배우의 길을 시작한 연극인 출신. 대학 시절 극단 목화에 들어가 <백마강 달밤에>(1994)를 시작으로 <택시 드리벌>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등 많은 연극에 출연했다. 

엄기준씨의 무대 경력은 김씨보다도 화려하다. 지난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매력적인 까칠남 손규호로 스타가 되었지만 뮤지컬계의 원조 꽃미남 배우 출신이다. 지난해 연극 <미친 키스> 뒤 1년여 만에 돌아온 그는 “14년간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 서 왔고, 드라마를 시작한 지도 2년이 채 안 되어 아직도 무대가 더 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수로 형과 무언가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불러줘 고마울 뿐이다.”   

고리키가 <밑바닥에서>를 썼던 1890년대 러시아는 자본주의 제도의 모순, 경제 공황 등으로 사회 밑바닥 빈민들이 급증하던 때였다. 도둑, 사기꾼, 알코올 중독자, 성공하고 싶어 하는 수리공 등의 극중 군상들은 어쩌면 2009년 한국의 ‘밑바닥’ 사람들과 너무도 닮았다. 이 작품이 100여 년을 뛰어넘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밑바닥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고,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든 인간이므로 끝까지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엄기준)

“동시대에서는 덜 행복하고 덜 만족스럽더라도 미래의 나 자신과 나의 후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더 좋은 인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공감했다.”(김수로)   

두 사람은 “고전의 힘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앞으로도 1년에 1~2편씩 꾸준히 무대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드라마, 뮤지컬 무대에서 계속 러브콜을 받고 있는 엄씨는 “알아보는 분이 많아질수록 무대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수로 형처럼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김씨에게도 이번 무대의 의미는 남다르다. 1997년 서울예술대 연극과를 졸업했다가 올해 동국대 공연예술학부에 다시 입학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연극을 더 공부하고 싶고, 제대로 된 배우 훈련을 하고 싶었다”며 “좋은 정극, 좋은 고전을 많이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더 좋은 배우로 거듭나서 김수로가 나오는 연극은 볼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3월22일까지.(정상영기자) 

09. 02. 17. 

 

P.S. 러시아어 문고본 <밑바닥에서>의 표지이다. <밑바닥에서>는 러시아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다(이 드라마가 최초로 흥행을 거둔 건 독일에서라고 한다). 아래는 1902년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밑바닥에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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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리키 휴머니즘의 최대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24 23:43 
    내일자 한겨레에 실리는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어제 오전에 쓴 글인데,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의 한 대목을 다루고 있다. 시중에는 세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밑바닥>(동천사, 2005)은 영어본을 옮긴 중역본이며 기억에 번역이 좋지 않았다. 이 글에서의 인용은 <밑바닥에서>(지만지, 2008)와 <밤주막>(범우사, 2008)을 근거로 한 것이다.  
 
 
2009-02-18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r 2009-02-1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에 대학로에서 뮤지컬 버전으로 본 적이 있어요. 이 공연도 보러갈까 싶었는데 장소가 예술의 전당이라... 개인적으로 예술의 전당을 참 싫어하거든요-_- 교통도 불편하고, 주변에 먹을만한 밥집 하나도 없어서 말이죠;

무해한모리군 2009-02-18 10:18   좋아요 0 | URL
Kircheis님 좋아하시는 밥종류 말씀하시면 바로 추천 들어갑니다..
회사가 거깁니다 ㅎㅎㅎ

로쟈 2009-02-18 22:18   좋아요 0 | URL
백년옥 같은 두부집도 괜찮은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8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로에서 하는 뮤지컬 버전을 본 적이 있는데, 이 공연도 한번 봐야겠네요.

Kir 2009-02-18 17:14   좋아요 0 | URL
(로쟈님, 신성한 서재에서 본문과 무관한 엉뚱한 댓글 죄송합니다!!!)
휘모리님, 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육류를 제외한 모든 식단 OK입니다. 저의 비루한 위장을 비롯한 소화기관에 육류는 엄청난 압박과 부담을 주거든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9 17:50   좋아요 0 | URL
어떤 종류를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일단 로쟈님 추천 집도 괜찮구요.
1. 예술의 전당 맞은편에서 사당역 쪽으로 조금 올라오다 보면 양마니라는 곱창집 옆에 오리엔탈국수집이 있습니다. 여기도 무난하군요.

2. 예술의 전당 길건너편에 에릭스스테이크가 있는 뒷편에 있는 백반을 파는 복있는집도 괜찮구요..

3. 한정식이라면 바로 앞에 있는 농군도 점심엔 괜찮은데 저녁엔 비쌀라나~
 

"톨스토이가 추리소설을 썼다면 바로 이런 소설일 것이다."란 평을 듣는 작가가 있다. 단연 최고의 추리소설가란 얘기겠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아쿠닌이 바로 추리소설의 '톨스토이'이고(그는 러시아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주인공 에라스트 판도린이 말하자면 러시아판 '셜록 홈즈'이다. 아쿠닌의 소설 두 편이 번역돼 나왔다. 추리소설의 독자나 러시아문학 애호가에게는 마치 연말 보너스 같은 책이다.   

합뉴스(08. 12. 22) '러시아의 셜록 홈즈' 탐정 판도린의 모험

러시아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 보리스 아쿠닌의 대표작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아자젤의 음모'와 '리바이어던 살인'(황금가지 펴냄)은 러시아에서만 1천200만부 이상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인 '에라스트 판도린'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이다.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젊고 매력적인 수사관 에라스트 판도린이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아자젤의 음모'에서는 수사과에서 갓 근무하기 시작한 하급 관리 판도린을 처음 등장시킨다. 1876년 모스크바의 한 공원에서 스물셋의 젊은 청년 하나가 벤치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를 희롱하다가 보란듯이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한다. 사건을 맡은 판도린은 숨진 청년이 한 매력적인 젊은 여인에게 빠져 친구와 목숨을 건 내기를 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려는 순간 정체불명의 자객이 판도린에게 남긴 '아자젤'이라는 한 마디는 사건의 배후에 더 거대한 음모가 있음을 암시한다.

'아자젤의 음모'가 모스크바와 파리, 런던을 넘나들며 역동적으로 펼쳐진다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리바이어던 살인'은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애거서 크리스티'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파리의 유명한 수집가 리틀비 경의 집에서 리틀비 경을 포함해 10명의 사람들이 살해된 채 발견되고, 리틀비 경의 손에서 발견된 배지를 단서로 찾아간 고급 여객선 리바이어던 호에서 또다른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



번역에 참여한 이항재 단국대 교수는 "이 작품이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무거움'을 떠올리는 한국의 독자들,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많이 읽혀서 러시아 문학에 대한 그들의 고정된 시각을 조금이라고 변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미혜기자)

08. 12. 23.

Борис Акунин АзазельБорис Акунин `Левиафан`

P.S. 러시아어본의 표지이다. 러시아어본의 제목은 둘다 그냥 <아자젤>과 <리바이어던>(<레비아탄>)이다. 한편, <아자젤>은 지난 2003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다(영화의 한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t3ESN21VzdA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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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24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련 시절에도 추리소설이 있었나요? 사회주의 국가는 추리소설이 발달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로쟈 2008-12-25 00:24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에선 보통 장르소설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과문할 수도 있지만, 소련 시절의 추리소설은 저도 못 들어봤습니다. '범죄'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니었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12-25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앵글로 색슨 문화에서 추리소설이 발달한다고 하니까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요...

로쟈 2008-12-25 21:28   좋아요 0 | URL
많이 하는 얘기로 법질서가 '안정된' 사회에서 추리문학이 읽힌다잖아요. 소련에는 '공식적으로' 매춘도 없는 사회였기 때문에 '범죄'를 다룬 문학이 나올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쿨리나 2009-01-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비에트 초기 추리소설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해요. 러시아(소련)가 나름대로 추리소설의 긴 역사를 가진 유럽국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최근에 번역된 <러시아의 민중문화>(스타이츠)에 좋은 정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