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1965년에는 영국의 수치가 56퍼센트로 껑충 뛰었는데, 이러한 변화에는 그사이 여름철에 몇 차례 폭염이 발생했고 1958년까지 약 10년간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두 배로 늘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1959년에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도 밝혔듯이 그즈음 일어난 소비자 혁명은 크나큰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사람들은 "맥주와 담배를 사거나 당구를 즐기고 애완견을 위해 쓸 약간의 여윳돈"을 두기보다 "기계로 된 노예들을 할부 구매" 하는 데 돈을 썼고, 과거 영국 노동당 총재였던 휴 게이츠켈Hugh Gaitskel은 이런 현상을 "세계관의 미국화"
라고 일컬었다.  - P149

가정용 냉장고에 아직 적용되지 않은 대표적인 기능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진열창인데, 냉장고 내부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 실제로 그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전혀 볼거리가 못 된다. 냉장고에 저장된 음식은 엄밀히 말하면 매우 느리게 썩어가는 상태라 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런 모습을 일부러 구경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이 기능은 실용성도 높지 않다. 견고하게 설계된 문에 창을 낼 경우 오히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저온 보관실 온도가 높아지며 빛이 투과되어 식자재가 더 빨리 변질할 수도 있다. 또 미관상으로도 냉장고의 내용물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내내 밖으로 보이는 상태가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 P190

냉장고는 우리 인류의 일상을 말 그대로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지난 150여 년간 저온 유통 체계 덕분에 식품류를 냉장·냉동 상태로 수송·거래하고 가정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현대인의 음식 소비 습관과 식생활, 요리법 등은 과거와 비교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특히 우리가 먹는 음식의 종류와 식습관이 변화하는 데에는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주방기기보다도 냉장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문명의 이기 덕분에 인간은 제철 여부와 상관없이 수많은 농수산물을 맛보고 이용하는 사상 초유의 능력을 손에 넣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많은 현대인이 먹거리를 키워내는 방법을 잊고 그 근원과도 멀어진 채 농수산물의 주기적인 성장·수확·가공이라는 일련의 흐름과 점점 더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냉장고는 먹을 것을 저장하고 요리하고 소비하는 도구로서,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던 인류의 유구한 습성을 1년 내내 먹을 것을 모으고 소비하는 습성으로 바꾸어놓았다. 또한 1년에 걸친 기나긴 수확 과정을 매일, 매주 음식을 사고 저장하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P208

음식 칼럼니스트인 로즈 프린스는 저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들처럼 먹기 aspirational greed 증후군에 빠져 있다. 장을 볼 때 우리 집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도 꼭 먹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산다. "이처럼 낭비를 유발하는 속성 이외에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냉장고 속 먹거리들이 전달하는 사회·문화적인 의미다. 몇 년 전 발표된 한 기사에 의하면, 모든 소비자가 공통으로 구매하는 식료품이 존재하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는 그 밖의 먹거리는 각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투자 전문가로 세계 각국의 냉장고 사정을 깊이 들여다본 태소스 스타소풀로스 Tassos Siassopculos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욕망"이 냉장고에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냉장고를 처음 구매한 이들은 대개 그 안에 요리 재료와 먹다 남은 음식들을 보관한다. 그러다 차츰 중산층에 가까워지면 어느 국가나 문화권 할 것 없이 다들 달달한 향료가 첨가된 우유나 잼처럼 탐닉적인 음식을 사들인다. 그보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어느 계층보다도 건강식품을 많이 보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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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살아도, 하늘이 무너져도 이혼만은 안된다고 군게 믿는 어머니의 신념은 일면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는 삶을 지속하면서도 아내, 어머니라는 역할에 이를 악물고 매달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분노와 절망, 슬픔과 의문이 뒤섞인 감정에 휩싸였다. 단언하건대, 어머니가 그토록 한탄하던 ‘뒤웅박 팔자‘를 깨 버리지 못한 데에는 무엇보다 어머니 당신이 스스로 먹고살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어머니가 교직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경제력이 있었다면 아버지와 이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결혼 제도 밖의 여성을 철저히 단죄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차별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단단히 얽매여 있던 어머니가 달리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누군가의 아내, 엄마라는 이름을 버리고 혼자 살아가기가 죽기보다 더 두려웠을 것이라고, 차마 뒤웅박을 깨 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으리라고,
- P35

그동안 한국 사회는 언제나 개인보다 집단, 나보다 가족, 사람보다 국가를 우선시했다. 오직 ‘우리‘만 존재했다. 하지만 그 우리는 언제나 성별, 젠더와 연령을 비롯해 경제력과 권력이 우위에 있는 사람만이 기득권을 쥔 차별적인 우리였다. ‘나‘는 없고 불평등한 위아래 서열관계의 ‘우리‘다. 그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자연스레 부정당한다. 젊은세대는 더는 그런 불행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 P44

비흔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또는 나는 결혼을 포기했어‘가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이렇게 꾸려 가겠다‘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결혼 아니면 비혼‘이라는 양자택일 역시 결혼을 전제로 놓고 보는 생애 주기다. 결혼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발상을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결혼이 사라진 사회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만일 결혼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사랑을 하고 어떤 삶을 꾸려 갈까. 아마도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 그 자체에 충실하지는 않을까. - P56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은 "자기가 결혼하고 싶은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그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세상 모든 여자가 가부장제 사회의 남자처럼 행동하고 명예남성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들은 자신이왜 결혼을 꿈꾸는지 그 이유를 ‘남편‘이 되어 줄 남성이 아니라 바로자기 자신을 통해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당신은 당신이 결혼하고 싶은 남성의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결혼할 남성의 경제력에서 비롯되는 물질적 풍요와 안정, 그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가져다주는 지지와 보호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 P96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소비 자본주의때문에 여성들이 임금노동자가 되어 일터로 나가게 된 측면이 있다고했다. 자본주의 사회가 돈을 쓰기‘ 위해 ‘벌게 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반박할 자신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한들 생각만큼 돈을 벌고 있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쓴 돈을 갚기 위해 왜 하는지도 모르는 일, 싫은 일까지 하면서 겨우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잖은가.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빚을 갚기 위해서였나 싶을 정도다. 더구나 일할수록 돈을 더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나이 먹을수록 나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무언가 덫에 걸린 것만 같다. - P172

그때서야 깨달았다. 열심(無心), 말 그대로 심장에 열이 나도록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다.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힘쓴다는 것, 좋은 뜻이다. 하지만 되지 않을 일에 지나치게 애쓰거나,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참거나, 죽을힘을 다해 버티면 마음이 타 버린다. 심장이 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면 정말 죽는다. 강철 정신은 있다. 하지만 강철 몸은 없다.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리면 종국에는 멈추지 못한다. 가속도가 붙은 삶은 멈춰야 할 때 연착륙하는 게 아니라 추락한다.  멈출 수가 없어서 그대로 땅에 고꾸라진다. 과로하면 살다가는 삶의 위기가 온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고비가 온다. 중년이 되어 건강을 잃거나 돈을 잃거나 사람을 잃거나 삶이 공허해 지거나 한다. 정말 죽거나 혹은 아프거나 삶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한다. 만일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다면, 아직 멀쩡하다고 자신 한다면 당신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 P184

그러나 제한 없는 소비를 하고 대출을 받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미래의 시간을 빚과 맞바꾸는 행위다. 유동하는 불안정의 시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불투명한 미래가 확실한 빚으로 되돌아온다. 잠시 소비자로서 누린 행복(?)의 결과는, 빚을 갚기 위해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일터로 가는 피로한 노동자의 초상이다. 물건으로 개성을 연출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소비자의 미래는 다름 아닌빚의 노예 곧 자본의 노예로 사는 삶이다.
- P188

나는 쓰기 위해 돈을 더 벌고 빚을 갚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삶 대신 시간을 얻었다. 시간이라는 자유를 얻었고 그 자유를 천천히 느린 속도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하는 데 쓴다. 기억하기 위해서, 더 오래가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다.
사실 먹고 자고 입고 사는 데 많은 돈이 들지는 않는다. 돈은 필수적이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적게 갖고, 적게 쓰면 덜 스트레스 받는 작은 삶을 살 수 있다. 작은 삶은 긴요한 것에만 소비할 수 있는 절제력,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것들에 나를 빼앗기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능력, 결핍을 채우려고 애쓰기보다 결핍인 상태를 받아들이는 여유, 삶을 욕망으로 채우려 몰아붙이기보다 멈추어 만족할 줄 아는 삶의 기술 등을 기르거나 알게 해 주었다.
- P195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제 자신을 어떻게 명명하든지 간에, 함께 사는 이가 있든 없든 간에, 누구나 홀로 살아갈 힘을 길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혼자가 될 가능성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 된다. 백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초고령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자식이 있든 없든 일생에 한 번은 누구나 비혼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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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3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8월 책 안사는 달, 책 안 사기는 이틀째 순항중. 

이번주에 도착하는 책들이 있지만 음.. 음.. 

일 때문에 찾아보고 싶은 책들이 있었는데, 밀리도 없고, 리셀도 없고, 도서관 찾아보니 탐라도서관에 다 있다. 

아싸. 하고 갈 길을 보니, 버스 갈아타고 한시간 반 찍힌다. 강기사를 부르자니, 나 데려다 주면 강기사 왕복 200키로 찍게 생겼고, 가는 것만 버스 타고 가볼까 하자니 한나절 걸릴 것 같아 엄두 안 나고. 택시 탈까 보니 한 삼만원 나오겠는데, 이번달에 책 안사기 방어하는 방법들 중에 도서관 두 번 가기 있었다. 시간이며 경로며 고민하다보니, 아니, 그 돈과 시간이 드니깐, 책을 사 보는거였지! 됨. 다시 타협. 이게 원래 중독 끊을 때는 무타협이어야 한단말이야. A 작가 책은 다른 책 읽었으니, 패스, B 작가 책은 오더블 크레딧으로 들어볼까. C 작가 책은 안 읽어봤으니 전자책 캐시 남은걸로 사봐야겠다. 사실, 적립금이랑 포인트도 안 쓰고, 전자책 매일 이백원씩 적립금 찍는것만 쓰려고 했는데, 최대한 타협해서, 전자책은 (일단 실물 배달 안 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캐시랑 포인트로는 사는걸로. 일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니깐. 포인트 4,750원 모자라서 지난달에 네이버 장보기 한 거 냉장고에서 꺼내서 열심히 사진 찍어서 리뷰 올리고, 포인트 챙겼다. 이제 포인트로 살 수 있어. 

  

여튼, 안 사기로 마음 먹으니깐, 있는 책들 더 둘러보게 된다. 오늘은 책박스 하나도 안 오고, 두 박스(6권) 나갔지! 

책 안 사니깐, 돈 쓰기도 싫어서 무지출데이 2일째 달성중. 7월말에 고대에서 30% 쿠폰 풀어서 냥밥 넉넉히 주문해두었고, 강기사가 당근에서 물품정리하는 곳 가서 고양이 모래 7봉지쯤 쟁여두었으니, 이번달 고양이 물품도 더 안 사도 될 것 같고, 진짜 돈 안 쓰고 지나갈 것 같아. 지난 달 연세의 여파가 작지 않다. 내년 연세는 미리미리 모아둘거야. 흑.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책 읽는 시간이 언제냐면 


빗소리 들리는 시간, 거실에서. 고양이들이랑. 


방금 소나기가 지나갔다. 빗소리가 좋았고, 일하다 잠깐 들린 집에서 농심 메밀소바 먹으면서 이번 주 읽을 책들 꺼내 놓고 뒤적이는데 기분 좋았다. 지금은 다시 일하러 와서 읽던 책 마저 읽기 전에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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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1-08-02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고먐미님!! 너무 귀여워요 ㅠㅠㅠ

하이드 2021-08-03 19:56   좋아요 0 | URL
귀엽죠. 소파에서 책 읽고 있으면 같이 딩굴딩굴 ㅎㅎ

독서괭 2021-08-02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오 고양이 너무 예뻐요 ㅜㅜ

하이드 2021-08-03 19:57   좋아요 1 | URL
예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니를 방석으로 알고 있어서 움직이면 물어요. ㅋㅋ

붕붕툐툐 2021-08-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와 독서라니, 천국이네용~🌹

하이드 2021-08-03 19:57   좋아요 0 | URL
더 바랄게 없습니다~~ 여름에 에어컨이랑, 옆에 아이스커피랑 추가하고요 ㅎㅎ

2021-08-03 0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3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무말미에 걸터앉아 일기를 쓴다. 날짜를 적고, 기분이나 날씨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혼자서 말하고 나면 나아지는 이야기가 있다. 말하지 않아서 통증처럼 남겨지는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말하게 된다. 나무말미의 시간 속에서, 어쩌면 영원하고 다시는 떠올리지않을 이 흔들림에 젖은 머리를 말린다. 일기는 잠깐 들어찬 겨를 동안 내게로 온 것들, 머물다 떠나간 것을 배웅하거나 마중하는 일이다. 내가 가진 짐작 중 가장 확실한 것이다.
- P22

책을 거들떠보지도 못한 채 하루를 끝마치는 날이면,
꼭 책 한두 권을 골라 침대로 가져갔다. 잠들기 전 침대맡에 스탠드를 켜두고 책을 읽었다. 그때 가장 먼저 눈 감고 잠드는 것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의 조급함이었을 테다. 아니면 독서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맡에는 다시 읽다 만 책들로 쌓이기 시작했고, 책으로 지은 벙커 속에서 나는 부스럭대며 자기 바빴다. 그때 책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안심이었을까.
- P35

갑자기 냉장고 청소를 하거나 욕실 타일을 닦고, 손이많이 가는 가사 노동을 애써 하는 자리마다 우울한 내가 주저앉아 있었다.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을 골라 열심히 말았다. 김밥을 잔뜩 말아서 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고, 그다음 날 아침에도 먹었다. 김밥이 물릴 때까지. 무언가를 집요하게 해내고 나면 우울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내게 덤빌 수 없다는 듯이 회미하게 일렁이다가 이내 사라지고야 말았다. 이런 게 가정식 우울일까.
- P44

새로운 물건이 새로운 기분을 선사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로 생각하면서부터는, 빈티지 옷을 사는 일이 줄어들었다. - P50

소설보다 더소설 같고, 시보다 더 시 같은 삶은 문학적인 반동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삶에 시적 허용을 적용하며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자기합리화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는 못마땅했다.
한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스스로를 책망했지만, 나는 시를 쓴다‘라는 자의식으로 나를 용서하던 시기가 내게도있었다. 전업 시인이 되겠다고 꿈꾸었던 열망이 생계 전선 앞에서 얼마나 무지했던 소리인지를 뒤늦게야 알게 된것. 그제야 불성실하고 때론 충동적이며, 자신의 삶을 중력의 상태에서 내버려두는 것을 시를 쓰는 사람의 태도라고 허용하며 살았던 시간을 철회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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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통로에 선 채로 읽기를 끝마친 뒤, 나라면 이 글들보다 백배는 더 재밌는 소설을 하룻밤 만에 쓸 수 있겠다 생각하며 그 문예지를 책장에 되돌려놓았다. 그순간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설가가 되면 전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매일 집에서 일할 수 있다.
북적이는 곳을 걷지 않아도 된다. 이제 이것 말고는 내가 처자식을 먹여 살릴 길은 없다, 하고.
- P82

생과 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느 시기에 ‘자연‘과 ‘풍경과 인간 그 자체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살아가자, 멋진 소설을 쓰자, 하는 필사적인일념이 내게 가져다준 최초의 보물이었다.
같은 때 나는 문학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인물을 만나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 어린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사람 덕분에 소설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써 직조해나가는 것이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안에서만 나오니까. 나라는 인간을 크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 병은 그 때문에 내 내부에서 솟아난 것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에 따라온다. 마음속에 있는 풍경과 자연과 인간이 하는 다양한 일을, 애정을 담아 소설로 쓰자.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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