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은 식욕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단식첫날처럼 긴 하루는 없다. 아무것도안 먹으면 이상하게 시간도 안 간다.
굶어보면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먹는일들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구분되어있는지 알게 된다. 세 끼의 식사는물론 커피도 간식도 술자리도 야식도사라져버린, 그야말로 육중한 하루가통째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무슨 일을하든 누구를 만나든 시간이 늪처럼 고여흐르지를 않았다.

가끔 견딜 수 없이 어떤 국물이 먹고싶어지는 때가 있다. 무언가가 몹시 먹고싶을 때 ‘목에서 손이 나온다는 말을하는데, 그럴 때 내 목에서는 커다란국자가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당장그 국물을, 바로 그 국물을, 다른 국물이아닌 바로 그 국물의 첫맛을 커다란국자로 퍼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같아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게 될 때, 의외의 복병은음식이다. 처음 열정에 사로잡혔을 때에야 음식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음식뿐이랴. 세상 어느 것도 눈에 뵈는 게 없다. 넓디넓은 푸른바다에 오직 그 사람과 나, 단둘이만 작은 배 위에서 격하게 흔들린다.그런데 데이트를 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때로 술도 한잔 하다보면 비로소 음식이니 식성이니 하는 문제가 떠오르는 시기로 접어든다. 연인들의 항해는 어느덧 끝이 나고, 작은점처럼 멀어졌던 현실이 점점 거대한 해안선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기엔 온갖 비루하고 형이하학적인 문제들이 들끓고 
있는데, 음식도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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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소셜미디어 이용 효과가 심각하고 지대하며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경우에,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에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다. 2010년 이후 기분장애, 자해, 자살사고, 자살의 발생에 상당한 증가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은 ‘그렇다‘ 이다. 여기서 원인은 아이의 돌봄을 보모든 누구에게든 맡기며 부재한 부모에서부터 아이 생활의 모든 세부를 감시하며 고압적이고 소란스러운 돌봄으로 덮어버리는 극성 부모까지, 양육행동의 변화처럼 사회적인 것일 수 있다.  - P22

버지니아 헤퍼넌Sirentia Heffermian 이 정확하게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탈진해 기억상실증에 빠져버리기에 앞서, 끊임없이 읽고 반복해 자극받고  흥분하면서 과다각성과 과독증 typer-les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가 소셜미디어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많은 개인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긴 하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게 하고 당하기를 원한다. 수동적으로 구타당하는 상태 같은 것에 몰아넣는다. 거기에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를 연상시키는 외로운 무인 왕국으로부터 눈을 돌려 기억할 가치가 없는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갤러리를 본다.
- P26

가장 흔히 자살하는 계절은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듯 보이는 봄이고,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날은 사람들이 다시 일하려 노력하는 월요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자살에 미친 결과는 상황이 상당히 개선될 때까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자가격리와 봉쇄가 행해진 팬데믹 상황은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에게는 약간 더 낫다는 증거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참할 때는 자신의 우울증을 대하기가 더 쉽다는 생각이다. 우울증 기질은 집단적인 자가격리에서 위안을 찾는다. 실은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서 봉쇄와 격리 같은 상황을 약간은 즐겼고 벌써 그 금욕 생활로 보이는  것이 조금 그립다. 이 경우 팬데믹 이후 공유하는  봄날로서 그토록 찬양하는 ‘노멀normal,  정상으로  돌아가기‘는 우려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 P28

우리가 죽어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서일 것이다. 글쓰기는 삶으로부터의 작별이며, 세계의 일시적인 유기이면서 사물을 더 명확하게 보기 위한 작은 집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글 쓰는 사람은 삶을 더 냉정하게 보기 위해 거리를 두면서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밖으로나간다. 더 차분한 눈길로, 글을 쓰면서 없앨 수 있게된다. 환영, 잊혀지지 않는 것, 후회, 우리를 깎아내리는 기억들을.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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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일상에 방해가 되지도 않았고, 몸이 나빠지지도 않아서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별 이유도 없이 우리의 일상에서 술이 사라져버렸다. 그 시작은 스스로이 행동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부터였다.
술은 말하자면 행동중독의 하나였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의학적인 중독은 마악, 음식, 알코올 같은 물질 남용을 의미한다.
인터넷 중독이 대두되며 행동중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근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행동중독이 뇌에서 작용하는 방식은기존의 중독들과 별다르지 않다. 모든 중독은 그 중독을 촉발하는 환경과 사람이 한 덩어리로 작용한다. 그래서 재활 치료를 받고 끊었다가도 원래 중독 행동을 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면 쉽게재발한다.
- P55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염려하지도 않고,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신경이 안 쓰인다. 보통 사람들이 주위 사람 눈치 때문에 차마 못하는 행동들도 그냥 해버리곤 한다. 힘든 일이 있을때면 생각한다. 어려서 아무런 힘이 없을 때, 엄마의 비난이나 부모님의 불화도 견뎠는데, 이 정도 가지고 뭐. 실제로 지금까지 엄마보다 더 심하게 나를 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말이지,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너무나 친절하다.
- P98

나이가 많다는 것은 교사로서 자격을 따지자면 젊음보다 더 훌륭하지 않고, 그 자체로도 좋은 자격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서 잃어가는 것에 비하면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조차도 살면서 절대적인 가치를 배웠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위한 중요한 조언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은 단편적이고, 그들 자신도 믿고 있듯 각각 개인적인 이유로 그들의 삶은 비참한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믿음이라는 것도 그들의 경험과 반할 가능성이 높고 나이만 먹은 것 뿐일 경우가 많다. -헨리 소로, 월든
- P105

이상한 주장이다. 태어나서 말도 배우고 이런저런 요령도 터득하고 돈도 버는 등 뭐라도 쌓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로는 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소로가 말하는 나이 들면서 잃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든 한 번의 인생을 사는데,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의 선택을 쌓아가는 일이다. 선택이란 오로지 하나를 택하는 것인데 자연히 버려진 무한히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 가지 않은 길 말이다. 현명한 사람, 존경할 만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무수한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보지 않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들은 할 말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 P106

물건 버리기, 간소화하기, 미니멀리즘 같은 용어는 비우고 없애는 것, 포기하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비우고 없애기 위한 우리의 의식적인 살핌은 사실 더 많은 의미를 채우는 것이다. 내물건, 나와 함께하는 사람, 나의 일을 버리고 없애기 전에, 거기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의식하고 즐기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는 것들의 숫자가 줄어들게 된다.
그 우연한 결과가 미니멀리즘일 뿐, 어느 날 하루 고생해가며 죄다 치우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실제로 해보니 비우기 위해 비운물건들, 관계들, 습관들은 저절로 다시 채워졌다. 하지만 나의 현재에 중요한 의미, 맥락을 이해하고, 나만의 삶을 가꾸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조금씩 나에게 맞는 것들만 남는다. - P115

하지만 막상 내가 일할 때에는 그 긴 과정이 나에게 의미가 된다. 나의 성장, 나의 의미, 나의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일은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세상의 속도와 다른 방식의 성숙과 배움이기에, 이런 일들의 가치는 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방식에 맞추지 않는 것이다. 스콘이 훨씬 잘 팔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발효 빵을 굽는 것처럼.
- P126

그들 중 대부분이 내 상황도 생각도 모르며 더군다나 내 아이들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세상이 이처럼 무심코 던지는 평가도 우리를 아프게할 수 있다. 그 아픔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이유도 모른 채 남들이 달리는 방향으로 함께 달려가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욕은 그렇게 자칫 내 삶의 통제력을 가져가버릴 수도 있다.  - P162

고등학생이 된 큰딸이 얼마 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고 그들의 반응에 신경 쓰는 건 별로 쓸모가 없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타인을 보며 판단할 때,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가진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늘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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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여성은 재정적 안정을 위해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덜 평등한 국가의 여성은 성적인 관계가 사회적 계층 이동을 위한 방안을 제공한다는 것 - 신데렐라 판타지 - 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스스로 돈을 벌고 국가가 여성의 독립을 지원하는 사회에 산다면 백마 탄 왕자는 매력을 잃는다.  - P49

비록 과거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약간의 성공도 있었다. 우리는 이 성공을 연구하여 
오늘날 세계적 자본주의의 최악의 과잉을 제한할 가장 강력한 이론적, 실천적 도구 중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구해내야 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잃을 것이 거의 없기에 더 정의롭고 공평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으로부터 얻을 것이많다. 이 책이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 P56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주의는 정식 고용의 공적 영역에 남성을 집중시켰고,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무급 노동을 책임지도록 만들었다. 이론상 남성의 임금은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했다. 여성의 가정 내 무급 노동은 고용주의 이익을 보조했는데, 노동자 가정이 미래의 노동인구를 재생산하는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여성은 임신 조절, 교육 기회또는 의미 있는 고용 기회 없이 가족이라는 한계 안에 영원히갇혀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자신이 남성보다 더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1928년에 버나드 쇼는 썼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남성을 노예로 만들었던 것처럼 남성을 통해 여성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여성을 그 남성의 노예로 만들었고, 여성은 노예 중에서도 최악인 노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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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촬영 팀이 배를 탔는데프리랜서인 작가에게만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일화다. 구명조끼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시급 2천원으로부터, 
출산 후 4주 이내 복귀로부터, 내게만 지급되지 않는 구명조끼로부터. 그러기 위해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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