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탐험가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8월
품절


그런 것의 존재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저 사람들이 성적인 문제에 주목하지 않도록 만들기만 하면 그들은 그것을 곧 잊어버릴 것이다. 윤리라는 쇠창살 뒤에 가둬놓은 아주 오래된 이 야수를 말로 자극하거나 질문으로 먹이를 주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길들여질 것이다. 그저 모든 고통스러운 것에서 눈길을 돌리고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자, 이것이 바로 19세기 도덕성의 법칙이었다.
-306쪽

정직성에 대항한 이 집중적인 전쟁을 위해서 국가는 자기에게 종속된 모든 힘을 무장시켰다. 예술과 학문, 윤리, 가족, 교회, 학교, 대학 등 모두가 동일한 전쟁 지시를 받았다. 일절 대결을 피할 것, 적에게 신경쓰지 말 것, 그저 멀리 돌아가고 절대로 진짜 논쟁에 말려들지 말 것. 절대로 그 어떤 반박자료를 들고 싸우지 말 것, 그냥 침묵하기만 할 것, 계속 보이코트하고 무시할 것. 모든 정신적인 힘과 문화의 하인들은 이런 전략에 놀라울 정도로 복종하면서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슬쩍 비켜 지나갔다.
-307쪽

1백년 동안이나 유럽에서는 성적인 질문을 엄격하게 격리시켰다. 그것은 긍정되지도 부정되지도 않고, 제시되지도 해결되지도 않았다. 아주 조용히 병풍 뒤로 슬쩍 밀쳐버렸다. 교사, 교육자, 목사, 검열관, 가정교사 등 제복을 입은 엄청난 규모의 경비군을 세워 젊음이 솔직함과 육체의 기쁨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 어떤 자유로운 대기도 그들의 신체를 건드려서는 안 되고 그 어떤 솔직한 말이나 가르침도 그들의 순결한 영혼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건강한 민족, 정상적인 시대에는 언제나 남자가 되어 가는 소년은 축제에 가듯이 자연스럽게 성년으로 들어섰다. 그리스, 로마, 유대 문화에서, 심지어는 비非문화에서도 13,14살짜리는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솔직하게 받아들여졌다. 남자들 사이에 남자로, 전사들 사이에 전사로 말이다.
-308쪽

오직 여기서만(19세기 유럽) 신을 내세운 교육학이 인공적으로 그리고 자연에 반해서 모든 개방성을 차단하였다. 누구도 청소년 앞에서 자유롭게 말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청소년이 그런 문제를 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것은 창녀들의 골목이나 아니면 나이 많은 소년들의 속삭임에서 주워들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극히 자연스러운 자연의 지식이 다시금 속삭이듯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새로 자라나는 청소년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위선에 동참하게 되었다.
1백년 동안이나, 서로를 향해 이렇게 자기 감추기,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기 등이 계속된 결과, 정신적으로 뛰어난 19세기의 문화 한가운데서 심리학만이 유례없이 저조한 상태에 빠졌다. 솔직함과 개방성 없이 어떻게 근본적인 심리통찰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지식을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교사, 목사, 예술가, 학자들이 문화적 위선자 아니면 전혀 지식이 없다면 어떻게 명료함이 생겨날 수가 있겠는가?
무지는 언제나 냉혹함을 낳는다. 그래서 무지하기 때문에 동정심이 없는 교육자들이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게 되었고, 그들은 '도덕적'으로 되어라, '스스로를 통제하라'는 등의 영원히 지겨운 명령으로 어린이들의 영혼에 치유할 길 없는 손상을 남겼다. 사춘기의 압력 아래서 여자도 제대로 모른 채 자신의 몸에 유일하게 가능한 발산[=자위]을 구하던 소년들은, '개명한' 선생들로부터 자기들이 건강을 해치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현명한 경고를 받고 치명적인 심리적 상처를 입곤 하였다. 그리고 이런 신비로운 죄의식은 열등감으로 변화되었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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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2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길게 쓰면 등록안되는 거였구나. -_-a
 
세계의 동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편의 동화와 민담
크리스치안 슈트리히 지음, 김재혁 옮김, 타치아나 하우프트만 그림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품절


Das Grosse Maerchenbuch
아이보리색 표지의 책에 검고 굵고 분명한 글씨로 제목이 쓰여있다. 책을 보호하는 커버는 타치아나의 아름다운 수채그림이 감싸고 있는 단단한 하드커버이다.

커버에서 빼낸 겉표지.

크기비교를 위해 내 핸드폰. -_-v 근데, 아마 실제로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겉표지

겉표지 아래에 이름이 나와 있다.
이 많은 민담과 동화를 모아 놓은 크리스티나 슈트리히도 대단하지만,
뭐, 대부분은 타치아나 하우프트만의 그림에 먼저 끌리지 않을까?

껍데기를 벗기면 짙은 남색 바탕천에 하늘색 네모. 그리고 금박으로 제목이 찍혀있다. 벗긴 모습이 더 맘에 든다!

첫장이다.

타치아나의 아름다운 수채그림이 앞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동화의 세계로 안내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책 껍데기, 그러니깐 앞날개에 있는 책에 코박고 눈안경을 쓰고 있는 마법사? 의 모습. 맘에 드는 그림이라 한샷.


그 아래에는 츠바이크( 요즘 내가 읽는!) 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Maerchen kann man in seinem Leben zweimal und zwiefach lesen. Zuerst einfaeltig, als Kind, mit dem naiven Glauben, dass die belebt-bunte Welt ihrer Geschenhnisse eine wahrhaftige sei, und dann, viel, viel spaeter, mit dem vollen Bewusstsein ihrer Erfindung." Stefan Zweig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민담을 두 번에 걸쳐 두 가지 방식으로 읽게 된다. 첫 번째는 어릴 적에, 온갖 다채롭고 생생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세계가 진짜라는 믿음을 가지고 소박하게 읽는 것이고, 그 다음엔 훨씬 어른이 되어서 그 이야기들이 모두 꾸며낸 것이라는 점을 뚜렷이 의식하면서 읽는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 번역은 내맘대로 번역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알라딘 책소개에서,,,

첫 페이지.

보통 D 라고만 쓰는 독일의 'Diogennes' 출판사.


한 장 더 넘겨보면.
Alles ist ein Maerchen 이라는 노발리스의 말도 볼 수 있고, 츠바이크의 말도 여기 다시 반복되어 있다.

'임금님의 새옷' Das Kaisers neue Kleider 인데, 알라딘에는 ' 임금님의 해옷' 으로 되어 있네? -_-a
우리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알고 있는 동화다.


벌거벗고 행진하는 임금님~

사실, 타치아나의 흑백삽화가 페이지마다 있는데 비해, 수채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분명 많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68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 20페이지 정도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흑백삽화도 너무너무 좋지만, 올칼라의... 를 기대하고 산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로 컬러는 무서운 장면, 괴물 장면이던걸 ㅜㅜ
만약 내가 아기였을때 읽었으면 맨날 무서운꿈 꿀것 같다. 어렸을때 동화책 읽을때 맨날 무서운꿈 꾸었던 기억이...

표지에서나 커버에서 보았던 것에 비해 책안의 그림들은 대담하고 강렬하다.

그나마 찾은 예쁜 장면. -_-a

동화, 민담이야기들이지만, 왠지 있을법하게,실감나게 그려놓았다!

책을 덮고 나서 책 뒷페이지.
난장이와 춤추는 공주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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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5-2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참자.참자. 참을 수 있다ㅠㅠ

하이드 2005-05-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근데, 한번 사두시면 두고두고두고두고 읽으실 수 있을꺼에요!

mannerist 2005-05-2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문판은 없수? -_-;
음. 독어를 배우는거야. 뿌득.

하이드 2005-05-2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문판도 있어. 아마존에 ^^ 근데, 미국놈들이 책을 워낙 잘만들잖아. 모험 안 하려구, 그냥 원서로 샀지.

하루(春) 2005-05-2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다음주 포토리뷰 당선되는 거 아니에요?

날개 2005-05-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포토리뷰 진짜 근사하네요....! @.@ 너무너무너무 땡깁니다...ㅠ.ㅠ
이 비싼 책에 이렇게 멋진 리뷰를 달아놓으시면 어쩌라고...흑흑~

반딧불,, 2005-05-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그쵸?? 로드무비님 이하 고수분들의 리뷰를 견뎌냈건만^^;;

einbahnstrasse 2005-05-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오게네스라면, <좀머 씨 이야기>의 ;ㅂ;

하이드 2005-05-2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사실은 잘 몰라요 -_-a 보통 D라고 책 커버에 표시되더라구요.
아마 유명한 출판사겠지요?

돌바람 2005-05-2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오게네스는 알려져 있는 것처럼 독일 출판사가 아니라 스위스에 있는 출판사래요. 쥐스킨트의 <향수>, <비둘기>를 비롯해 최근 파올로 코엘료의 <11분>, <연금술사> 등을 히트시킨. 저들의 출판 자부심은 대단하여서 <세계의 동화>의 경우는 인쇄 전 가제본 상태(아마도 우리의 인쇄술이 못미더웠던가 보지요)까지 확인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래도 10여 년을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게 기다리는(밀어주는) 출판마인드는 부러워요. 그러니 자부심도 생기는 거겠지만.

하이드 2005-05-26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왠지,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큰일날 것 같군요.
10여년을 준비한 책이라니, 동화를 모은 사람도, 출판사도, 삽화가도 다 대단합니다.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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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800만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지하철 자살이 그다지 좋지 않은 방법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지하철에 몸을 던진다. 뉴욕에는 끝없이 긴 다리들과 고층 빌딩의 창들이 있다. 또 면도날과 빨랫줄과 약을 파는 가게들이 하루 24시간 문을 연다. 내 방 서랍에는 32구경 권총이 있다. 호텔 방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간단히 죽을 수 있다. 하지만 한번도 그런 종류의 일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겁이 너무 많거나 불굴의 의지를 가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지독한 절망이 생각만큼 절실했던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

맨해튼에 있는 800만의 사람들. 그리고 각각의 사람들마다 각각의 죽는 방법이 있다. 무참한 도시. 맨해튼.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이유있는 죽음보다 많아진다. 이유없는 죽음은 점점 더 '인간'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간다.

'백정들의 미사' 가 어느정도 기대에 못 미쳤던 반면. '800만가지 죽는 방법'은 어느 것 하나 버릴것 없다. 표지부터 볼작시면, 흔들리고, 기울어진 황사라도 낀듯 누렇고 뿌연 도시에 중절모를 쓴 좁은 어깨의 남자가 좁은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보도블럭 너머를 보고 있다.

본격추리물을 찾는 사람에게는 사건이 너무 밍밍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런 불쌍한 주인공들에 감정이입 깊이 하는 편이다.

'신문에 나는 사건들에 넌더리가 난다면 읽지 않으면 될꺼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잖어'

 '이건, 내 직업이니깐. 돈이 있다고 안 할 수 있는게 아니야. 직업이니깐 하는거지.'

매트 스커더. '술을 마시면, 죽습니다'  알콜중독자. 그렇게 죽기도 싫고, 필름이 끊겨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도 싫고, 그 후에 느끼는 자괴감도 싫고.

킴 다키넨이란 창녀의 의뢰를 받아 챈스라는 평범하지 않은 흑인포주와 그녀 사이의 중재를 하고자 한다. 그 중재는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끝나지만, 그 다음날 그녀는 무참히 살해된다. 이번에는 챈스가 그의 명예를 걸고 매트를 고용한다.

금주모임과 그가 머무는 호텔을 오가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각들을 모으는 매트.

뭐, 추리소설이 당연히 그렇듯이 매트는 사건을 해결한다.

두꺼워 보이지만 480여페이지밖에 안 되는 이 책은 그야말로 첫페이지를 열고 순식간에 책을 덮게 되는 책이다.

매트의 알콜중독은 알콜이 아닌 다른 것에 중독되어 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겨나가고자 하는 그 모습으로는 불쌍하지만, 격려하고 싶지만, 한심하지만,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아무곳도 해줄 수없는 그런 약한 존재인 인간. 그런저런 약함들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그런 모습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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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5-2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출장다녀오셨어요?
그런데 뭐가 급하다고 출장다녀오시자마자(아님 출장 중에) 리뷰를 다 쓰십니까?
올해 아직 한 편도 리뷰 올리지 못한 사람 염장지르려고 그러시죠, 네???

하이드 2005-05-20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거 공항에서 쓴거랍니다~

클리오 2005-05-2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공항에서도 리뷰를.... (한글이 안되었으면 영어로 쓰려 하셨죠? ^^)
 
내 이름은 콘래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최지원 옮김 / 시공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내이름은 콘래드 뒤에는 짧은 단편이 있다. '프로스트와 베타'라는 심심한 제목의 단편. 방금 막 책을 덮으면서 아- 긴 한숨을 내쉬며 책을 한번 쓰다듬게 만드는 그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나름대로 현학적이고 화려하고 통통튀는 문체의 로저 젤라즈니의 '내 이름은 콘래드' 에 비해 '프로스트와 베타'는 '이보다 더 건조할 수는 없다' 이다. 그도 그럴것이 인류가 멸망하고 인류가 지구를 관리하도록 만든 '솔콤' 만이 지구를 관.리. 하고 있다. 솔콤이 보안기능 장애를 겪는 와중에 만들어낸 '프로스트'는 지구의 북반구를 관리하고 '베타'는 지구의 남반구를 관리한다. 하루에 한두시간이면 모든 일을 다 해내고 남는시간에 취미로 '인간'을 연구하는 은청색의 120x120x120 입방체로 자가 발전과 수리가 가능하며, 지구상의 어떤 개체와도 동떨어진 존재로 어떤 모습으로도 변형하는 것이 가능한 프로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논리' 만으로 이해불가한 '인간'을 분석하고 솔콤에 대항하는 디브콤으로부터 함께 일할 제의를 받자, 인간에 관한 모든 자료를 넘겨받고 자신이 인간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때는 디브콤 밑에서 일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남아있는 모든 장서와 예술품과 비디오/영화 등을 보고 인간이 되어보고자 한다.

절박하게 인간이 되고자 하는 궁금중에 가득차 있는 프로스트의 모습은 이미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리지 않고 호기심의 노예인 인간의 모습을 이미 닮았다.

모르델이란 골동품로봇과 베타가 지배하는 남반구로 간다. 베타에게 논리적으로 분석 불능인 프로스트. 베타는 프로스트를 북반구로 추방하지만, 마지막으로 메세지를 보낸다. '왜?'

북반구를 지배하는 프로스트와 남반구를 지배하는 베타는 솔콤의 지배를 받는다. 디브콤은 솔콤이 복구불능의 상태가 되었을때 지구를 관리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다. 솔콤은 복구불능 상태가 되었을때 솔콤은 다시 완벽하게 자가회복을 하지만 디브콤은 이미 복구불능 상태인 솔콤은 지배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디브콤과 솔콤은 싸운다.

이렇게 어떻게 보며 뻔하고 불쌍하고 건조한 '프로스트'란 로봇과 그 주변로봇들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 말그대로 마지막장) 에서 갑자기 '시' 가 된다.

프로스트의 마지막 (하우스만의 시구를 인용한) 말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 이름은 콘래드'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SF소설에서 바라는 것을 다 충족시켜준다 . 젤러즈니 특유의 현란한 문체( 비록 번역된 것일지라도!) 에 읽는내내 즐겁다. SF 소설이 그렇듯이 무거운 주제의 무거운 미래 현실의 죽지 않는 '콘래드' 의 이야기는 미래의 '신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그는 미래에 보는 과거의 '신' 에 다름없다.  이미 오래전에 쓰여진 이야기이기에 설정이 귀엽게 느껴질정도로 후질때도 있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책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난 야수같은 남자주인공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내 왼쪽 뺨에는 아프리카 대륙처럼 생겨서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자줏빛 반점이 있다. 그 반점은 내가 뉴욕 관광사를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발굴하고 있을 때 곰팡이 핀 캔버스에 붙은 돌연변이 균에 감염되어서 생긴 것이다. 내 머리카락은 손가락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눈썹 바로 위에서 자라 있다. 눈동자는 좌우의 색깔이 다르다( 사람들을 위협하고 싶을 때는 차갑고 푸른 오른쪽 눈으로 노려본다. 갈색눈은 '성실하고 정직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쓴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가 짧아서 오른발에는 그만큼 굽 높은 구두를 신는다.'

사실 콘래드는 좀 더 길거나(두꺼운책 중독자), 시리즈로 (시리즈책 중독자)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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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1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어머,, 어머,, 지적 감사해요. ^^
그렇군요! 젤라즈니 중독자이시군요! 제가 워낙 정말 이상하고 말 안되지 않으면 번역에 신경 안(못!)쓰는 편이라서요. 역시나 별 신경 안쓰고 읽었습니다요. ^^

깍두기 2005-05-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서를 읽을 실력이 안되니 번역을 뭐라할 처지는 아니지만, 일단 김상훈씨 번역을 읽었기 때문에, 비교가 될 거 같아서요.
 
너 어디 있니?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마르크 레비의 책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난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희망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책들에 알레르기가 있다. 이 책은 어여쁘고 아름답고 몹시도 사랑스럽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거칠고 대담한 중남미 문학이다.

여기 책 속의 주인공인 수잔은 온두라스에서 남미의 거역할 수 없는 태풍과 맞서 싸우는 평화단의 멤버이다. 마르케스는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라는 산문에서 '우리 중남미의 거대한 현실이 문학도에게 제안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그런 현실에 적합한 단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막상 그 거대한 현실을 중남미 작가의 글에서는 미처 못 느꼈는데 여기 이 곱게 자란 프랑스 작가의 글에서 더 와닿는다.

여기 이 책에서 우리가 보게될  씩씩한 여주인공 수잔이 싸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과 태풍이라는 괴물이다.

이야기는 전혀 내가 원하는대로 진행되어가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처녀작인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이라는 긴 제목의 고스트로맨스 휴먼드라마의 앤딩을 생각해볼때 해피앤딩이려니 편하게 짐작해볼뿐이다.

작가는 루이라는 아들과 둘이 살고 있다. 잠자리에서 읽어주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작가의 처녀작이고 가장 센세이셔널한 데뷔작 중 하나가 되었다.  ' 너 어디 있니?' 라는 두번째 작품에서도 어쩌면 작가는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배경에서 반복하고 있다. '신뢰'와 '사랑'

이 작품은 일단 로맨스 소설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어렸을적부터 모든 기억을 공유해온 필립과 수잔은 어린시절의 종지부인 고교졸업후, 서로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 필립은 미술을 전공하러 대학으로 가고, 수잔은 온두라스를 강타한 태풍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평화단의 일원으로 온두라스라는 나라에 간다. 2년 예정으로 가지만, 자신을 필요로하는 그곳에서 필립과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사랑'보다 '희생'을 택한다.

온두라스에서의 처절함은 수잔을 점점 메마르고 황폐하게 하고 필립과 수잔은 서로를 끊임없이 보고파하며 1년에 한번씩 수잔이 워싱턴에 물품 보조를 받으러 오는 틈을 타서 공항 까페의 구석자리. 그들의 자리에서 잠깐씩 볼 뿐이다.

여기까지가 1부라면 1부이다. 소설은 전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고 따뜻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는 2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다.

읽는 내내 슬프고 읽고나면 마음에 안드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뜨거워져 있는걸 느낄 수 있게 한다.

사랑으로 가득하고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그들이 왜 헤어질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책이 그저그런 로맨스 소설이었다면 거기까지가 나의 고민이었겠지만,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의 탈을 쓴 몹시 아름다운, 가슴을 꽝꽝 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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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5-1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것 같군요.. 보관함에 담습니다..^^

하이드 2005-05-1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날개님. 이 책 참 독특하고 재미있어요. ^^

moonnight 2005-05-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 "내가 지금부터.."도 참 좋아했었기 때문에 주저없이 샀고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많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마르크 레비의 책은 이 세상에 '사랑'이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고, 그건, 때로 마술같은 일도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실비 2005-05-1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퍼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