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이윤기의 번역은 참으로 유려하다. 이 두꺼운 책을 이렇게 단숨에 재미있게 읽어내릴 수 있게 한건 카잔차키스의 글을 살아있는 말로 옮겨준 번역자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역자후기에 그리스의 크레타에 방문한 이야기가 있다. 카잔차키스 참배를 위해 연극 연출가 김석만 교수가 서울에서 가져온 진로 소주, 바나나, 그리고 국산 담배 한 대로 젯상을 차리고 절을 했다고 한다. 일행은 묵념으로 경의를 표했지만 이윤기는 묵념으로 부족하다 싶어 구두 벗고 절을 했다고 한다. 안내인 크레타인 여성은 먼 동양에서 온 언어도 외모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고향이 사랑하는 작가에게 지극한 경의를 표하는 사태에 치밀어 오르는 격정의 눈물이 치밀어 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작가에 대한, 작품에 대한 경의를 가진 번역가가 온 열정을 쏟아 우리 독자에게 소개한 소중한 책이다.

항구 도시 피라에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항구는 그가 전쟁터로 나가는 친구를 배웅했던 곳이다. 위험에 처한 동포를 구하기 위한 전쟁에 함께 가기를 청하는 친구에게 침묵으로 대답하고 그렇게 친구와 이별했던 곳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를 발견한 '조르바'의 자신을 이유불문하고 크레타로 데려가달라는 공갈 비슷한 태도에 응한다.

'나'는 펜대운전자. '조르바'는 산전 수전 다 겪은 노인네. '나'는 크레타 섬에서 광물을 캐려하고, 조르바는 인부들을 관리하게 된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 반면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

느끼고, 행동하고, 현재를 사는 조르바를 보고, 나도 저런 자유로운 영혼의 세례를 받아보았으면 끊임없이 생각한다. 책벌레인 나는 조르바를 곁에 두고, 그에게 말을 시키고, 그에게 눈을 고정시킨다.

나는 조르바와 같고 싶지만, 그와 헤어지고, 가슴에 묵혀두고, 이별에 아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에잇, 나는 조르바가 될 수 없고, 평생 빛나는 그 존재를 부러워하고 동경할 주제밖에 못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올 가을에는 조르바를 찾아 크레타 섬에나 가볼까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적오리 2005-05-30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 하이드님 글을 읽다 보면 그 책들을 안 읽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이드 2005-05-30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날나리님,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주 2005-05-3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웃...마태님에 이어 이카루님, 그리고 미스 하이드님까지 조르바를 읽으라고 내 목을 조르는 군요...으윽...(글고 날나리님 말씀이 옳아요)
 
소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은 단상들이 모여 있는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존 버거와 다이앤 애커먼을 본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서 존 버거를 보고, 지구상의 희귀한 동물들과 희귀해져 가는 동물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와 그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다이앤 애커먼의 모습을 본다. 그의 작품에 고저가 있기는 하지만, 2000년에 쓰인 이 작품은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는 행동파 작가이다. 산도적같이 생긴 얼굴에 눈만은 맑고, 빛난다.

책의 들어가는 이야기는 '소외된 이야기들' 이다. 작가는 독일의 베르겐 벨젠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한다. 수억가지 감정을 안고 있는 그는 거기 수용소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칼끝이나 못으로 써 놓은 글귀를 보게 된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모르지만 세풀베다는 깨닫는다. '그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걸'

어느날 밤 집에서 끌려 나와 몰매를 맞으며 자식과 헤어져, 번호판 없는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끌려와 붕대로 두 눈이 가린채 세상과 멀어져 군화자국과 피부에 새겨진 전기 고문흔적들로 만신창이 된 금발머리 여자와 검은 머리 여자. 한 가족이었던 고귀한 고양이 소르바스에 대한 이야기. 실수로 칠레에 가서 실수로 결혼하고 실수로 좋은 친구들을 두고, 다른 더 큰 실수로 행복했던 이탈리아 남자 주세페.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배를 폐선장까지 이끌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주는 벵골 남자 심파, 등등 세계 구석구석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 멈추지 않고 항상 움직이는 세풀베다와 함께 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유려한 문장이라거나, 반전이라거나 그런 재미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할 때 나올 수 있는 힘.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장에서 쓰는 세풀베다의  필력은 대단히 영향력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을 억압하는 자들이 있다. 세풀베다는 지키려는 자, 자유를 추구하는 자의 편에서서 강력한 글들을 써낸다. 그들은 소수이다. 극소수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 했다. 과연 '펜은 돈보다 강할까?

작가의 인생은 치열했고, 지금도 치열하다. 작가가 인용한 브레히트의 '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라는 말처럼. 루이스 세풀베다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almas 2005-05-2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보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들게 만드는 리뷰군요.
땡스투에 추천 하나요~

하이드 2005-05-2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해요. 읽으면서 계속 소름 돋더라구요. 단편 하나 '책/작가 이야기'에 올려놨어요.

바람돌이 2005-05-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작가가 또 한사람 느네요.
연애소설읽는 노인을 읽고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늘 뒤로밀려 아직 저는 루이스 세풀베다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님의 리뷰덕분에 이제 만나러 가야겠네요.

moonnight 2005-05-3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읽고 싶어요. ㅜㅜ 저도 아직 세풀베다를 읽지 못했거든요. 미스 하이드님 덕분에 좋은 작가를 알게 될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

하이드 2005-05-3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과분한 추천들이^^;;
네. 정말 한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인줄 알고 있던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특이한 이야기들도 많고, 울컥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워낙에 좋아하던 작가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다시 봤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5-05-3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읽어보고 싶으네요.. 추천..

다른사람 2005-08-0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주문했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매튜 본과 그의 날개 AMP
앨러스테어 맥컬리 지음, 이동우 옮김 / 어드북스(한솜) / 2005년 4월
장바구니담기


매튜본과 그의 날개 AMP.
이 책은 25,000원. 서점에서 휘리릭 넘겨 보고, 경악을 하며 아니, 디게 재미도 없게 생긴 이 인터뷰책같은게 이런 가격이라니...
.
근데, 그게 아니었다. 어째어째 책을 샀고, 책은 완전 마음에 들었다.
내용도 맘에 들었을뿐만 아니라, 포토제닉하기까지했다. 씨익-
포토리뷰를 올리기로 했다.

일단 이 책이 보통의 인터뷰책이 아니라는 건 저자(?)를 봐도 알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공연비평가이며 대영댄스 지도자 협회의 무용사 부문 수석 연구원이다. 등등등 등등등.
매튜본이 라반스쿨에서 학사과정을 딸때 엘러스테어 맥컬리는 그의 무용사 선생이었다. 유명한 무용비평가가 그의 제자였던 매튜본을 인터뷰하는 책이다.
그들의 친분이 인터뷰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세한것까지 모두 기억하는 인터뷰어의 날카로운 질문과 매튜본의 답변들. 인터뷰형식의 이 책은 그 낯선형식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읽히는 꽤나 괜찮은 책이다!

첫 페이지에 매튜본이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싸인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매튜본과 그의 날개 AMP' 의 한국어판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언어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저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팬들이 많이 계셔서 저는 늘 기쁘게 생각하며 또 저희는 한국에서의 공연을 늘 즐겁게 생각합니다. 저희를 향한 여러분들의 성원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제 작품을 전에 보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작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짖 알게 되시길 바라고,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제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리며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스완레이크, 두번째 넛크래커, 그리고 올해 세번째 1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바뀐 캐스팅의 스완레이크. 매해 그를 향한 한국관객들의 열광!( 특히 여자들;;; 대략 10에 9이 여자임. -_-a) 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람 약력.
근데, 외부에 나오는 프로필 사진은 다 이사진으로 통일한거?
1960년 영국런던 출생이다. 책을 읽어보면 런던에서 낳고 자란 뼛속까지 런더너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작품 중에선 '호두까기 인형' 이 1992년 가장 먼저였고, '백조의 호수'는 1995년. 그러니깐 올해 10주년.

TV & Film 에서는 '로알드 달의 빨간모자'가 몹시 궁금하고, '빌리 엘리엇'이 있다. 마지막 장면 백조의 호수에 날라등장하는 자가 바로 1대백조 아담쿠퍼라는건 잘 알려진 사실.

특이하군. list of Illustrations.
사진, 그림, 무보, 작업모트 등이 많이 나오는데, 이렇게 앞쪽에 따로 정리해 놓았다.

책의 본문은 볼드체의 맥의 질문과 본의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번역은 둘 다 존댓말. - 했죠. - 했습니다. 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본문 모습.
그러니깐, 나는 서점에서 책을 휘리릭 넘겨보고,
우와, 디따 재미없겠는걸! 하고 안 샀던거.

무보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매튜본의 무보!!
정말 멋지다!

작품 사진들이 종종 올라와 있다.
초창기에 매튜본이 직접 참여하던 시절의 사진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프로필 사진과는 느낌이 많이 틀리다. ^^

백조의 호수 포스터 장면.위의 사진은 '빈사의 백조'로 유명한 안나 파블로바가 그녀의 런던 아이비하우스에서 아끼는(?;;) 백조 한마리와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살아있는 백조를 안고 있는 스콧 앰블러(왕자) 의 홍보이미지이다. 이 남자 누드와 새의 연결이 미국 투어 때 광고에서 누락된것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리허설 연출 중인 매튜 본.

이부분도 맘에 든다. 작품 연보.
연도별로 제목, 음악, 의상, 조명, 등장인물, 시연일과 장소, 메모 등이 나와 있다. 그야말로 총정리!!!

이것이 궁금하다! ' 로얼드 달의 빨간모자 '

뒤에는 인덱스가 나와있다.
정말 친절하군 이 책.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5-05-2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_ㅠ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이드 2005-05-2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판다님 정말 좋아하실 꺼에요. 발레 얘기도 많이 나오구요.

에이프릴 2005-05-2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도 읽지말았어야했는데 ㅠ.ㅠ

강한벌레 2005-06-0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억~ 이거 완전 사고 싶은 책이네요.
완전 소장용이잖아요....ㅠ_ㅠ (살까 말까 고민중...)
 
13의 비밀 - 미스터리 베스트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그레는 유럽의 소설에서, 그리고 아마 세계의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경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75살 가량이며, 현재 은퇴하여 생활하고 있다. 그는 1920-1940년대의 프랑스 사법 경찰의 가장 위대한 탐정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과학적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인내와 직관과 범인 심리의 섬세한 이해와 살인자와의 정신적인 감응으로 추리한다...'  미국의 추리소설 평론가 앤소니 바우처가 심농의 단편집 소개에서 메그레를 소개한 글이다.

책의 제목 '13의 비밀'은 좀 싱겁다. 제목도, 내용도. 조젭 르보르뉴의 13가지 사건파일이라는 부제 아래 조젭 르보르뉴가 해결하는 13가지 사건들이 있다. '나'( 기자인듯)에게 이미 본인이 해결한 사건들의 기사를 보여주며 사건을 해결해보라고 하고, '나'는 사건에 대해 질문하고, 결국 해결 못하고, 조젭 르보르뉴는 타박(?) 하며 사건의 결말을 알려준다. 는 똑같은 패턴의 짧은 단편들이다. 단 마지막 사건만 좀 의외스러운면이 있는걸 보면, 그래서 제목이 '13의 비밀'인가 싶기도 하다.

심농의 사나이의 목을 읽고 열광했던것에 비해 '13의 비밀'은 왠지 모르게 실망스러웠다. 그다지 기발하지만은 않은 사건의 해결들, 안 친절한 조젭 르보르뉴에 대한 비호감 등등이 이유다. 로얼드 달의 '당신을 닮은 사람' 에서럼 한 작품 끝낼때까지 숨을 참게 하지도 않고, 스텐리 엘린의 '특별음식' 에서처럼 결말이 뻔히 보여도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흡입력을 지니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휙휙 넘어가는 장점만을 지녔다고 할까. 몇가지 괜찮은 작품들도 보였지만, 고르지 않은 작품의 질때문에 전체적으로 심농의 단편에 대한 인상은 '별로' 로 남게 되었다. 혹은 조젭 르보르뉴가 등장하는 작품들에 대한 비호감인가?

아무튼.

13개의 단편 이후엔 드디어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 수문 1호' 라는 멋대가리 없는 제목의 중편이 등장한다. 역시. 우리의 메그레 경감님. 이 책에선 어쩌면 주인공이 '경감'이란 직책을 가진것을 빼고는 추리소설이라고 부를만한 면이 전혀 없을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과 일반 소설의 차이를 정확히 어디에 두는지는 사람마다 약간씩 틀리겠지만, 심농의 소설들에 대해서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문학소설' 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한밤중 바닷가, 마주보고 있는 목로주점 두개, 그 중 한 곳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온 노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뛰어난 심리묘사로, 절정부분에 이르렀을때는 흡사 기괴한 싸이코드라마라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메그레와 갓생노인, 그리고 듀크로라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선주의 불꽃튀기는 심리전을 밀접하게 볼 수 있다. 메그레처럼 심리분석/묘사의 달인인 심농의 작품에는 빠리의 그 헤어나오기 힘든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심리의 미묘하고 격렬한 변화들, 그리고 '죄를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가 깔려있다.

아무래도 첫작품으로 접하고자 한다면 '사나이의 목'을 권하겠지만, 일단 한번 심농에 빠지게 되면 이 책 역시 빠트릴 수 없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츠로 2005-05-2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단편집이었군요. 심농 책은 황색개 하나만 읽었는데 메그레경감의 따뜻한 인간애와 연인간의 애절한 사랑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하이드 2005-05-2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심농 작품의 메그레 경감만큼 ' 인간애' 라는 말이 어울리는 탐정은 없지뇨요?
 
정신의 탐험가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여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있다.

제목은 '정신의 탐험가들' 이다. 이 책에서는 프란츠 안톤 메스머, 메리 베이커 에디,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각각 '인간의 정신'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최초로 발을 디디고 결실을 낸 3명의 선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때 내 머릿속에는 '심리학' 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는 '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이름에 대한 얕은 지식밖에 없었다. 프란츠 안톤 메스머는 현대심리학이라는 영역에 첫발을 내디뎠던 인물이고, 메리 베이커 에디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운동이라는 종교운동을 만들고 이끌었던 인물이고, 알다시피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심리학'을 비로소 현대적인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한 인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메스머라는 겸손하고 올곧은 신념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흡족한 기분의 만족감을 그리고 메리베이커 에디라는 불꽃같은 좀 정신이 나간듯한 광신도교주같은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불쾌감과 기이감의 만족감을 느꼈다면 프로이트에 대한 부분은 생각보다 잘 넘어가지 않았다. 작가역시 당시 살아있고, 평가를 내리기에 완결되지 않은  프로이트의 업적, 그리고 작가 자신이 도움도 많이 받은 그에대해 쓰기에 껄끄러웠다고 말하고 있다.

일단 슈테판 츠바이크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걸출한 전기작가이다. 객관성과 정확성만이 그의 장점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대담한 이야기전개와 '사람'과 '시대'를 꿰뚫어보는 그의 명석함, 직관을 엿볼수있다. 

프란츠 안톤 메스머 : 콜롬버스처럼 새로운 학문의 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현대심리학자. 메스머의 비극은 그가 너무 일찍 나타났고, 또한 너무 늦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있다. 그가 등장한 시대는 이성理性을 지나치게 자랑으로 여기고 직관은 무엇이 ‰永?싫어하던 시대, 즉 계몽주의라는 '수퍼 똑똑이' 시였다.부유하고 명석하고 겸손하며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메스머가 빈에서 처음 '자기치료요법'을 시작하면서부터 그가 빈에서 쫓겨나고, 프랑스로 건너가 그의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어내다가 어느 순간 몰락하고 스위스로 물러가 말년에야 그의 업적을 일부나마 인정받게 되기까지의 그 질곡있는 평생의 이야기이다.

메리 베이커 에디 : 가장 흥미롭게들 읽는 부분. 메리 베이커 에디라는 어렸을적과 젊었을적에는 신경증과 히스테리로 마비 상태가 대부분이었고, 배운 것 없고, 자기고집만이 불같은 여자가 만들어낸 크리스천 사이언스란 '오직 하느님만 계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선이기에 악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로지 감각이 오류를 범한 것, 즉 인간의 '오류(error)'일 뿐이다.' 라는 절대명제 아래 '병'을 부정함으로서 '치유'의 효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타고난 조롱의 재주를 모두 쏟아부어 메리 베이커 에디를 비난했지만, 결코 자신에 반대하는 얘기에는 굴하지 않는 이 어느 소설책에서도 보기 힘든 불꽃같은 여자의 이야기는 그 여자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어느 소설책보다도 드라마틱하다. 그녀를 묘사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방식도 너무너무 맘에 든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위의 두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시대와 그/그녀를 그렇게 이끈 그/그녀의 심성에 대한 묘사가 많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그의 업적과 그 학문에 대해 늘어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프로이트의 책들을 보고 알았던 부분들을 밖에서는(최소한 츠바이크는)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글을 읽는것은 여전히 재미있다.

가장 흥미로운 세명을 모아서 프로이트편을 빼고는 빠르게 이 책을 완성했다던 츠바이크. 정말 젠장스럽게 멋진 책이다!

* 이 책에 나오는 역자서문, 편집자후기는 내가 정말 바라마지 않는, 후기와 서문의 본보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