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돈독하게 -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김얀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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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휴면 계정 전환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받고,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작가님의 브런치글이 업데이트 되어 있다. 

'오늘부터 돈독하게'는 책 출판을 계획하고, 브런치 연재했던 글모음이다. 착 달라붙는 일러스트는 없지만, 이미 글 다 읽었던지라 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책으로 읽고 나니 계속 생각난다. 


여튼, 오늘 들어간 브런치 글에서 작가님과 나의 생일이 같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나홀로 내적 친밀감을 또 한 줌 쌓았다.안 그래도 이미 낯익은 지역을 책에서 보고, 친숙한 마음이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책 책보다 돈 책을 더 많이 읽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있게 쓴 이야기이다. 

팁들이 많고, 나도 나에게 맞는 것들 메모해두었지만, 팁이 문제가 아니라 늘 사람이 문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항상 있었고, 열심히 하기로 마음 먹으면, 정말 열심히 했고, 책부터 잔뜩 읽고 (이건 나돈데, 난 책만 읽다 끝났지. 지금까지는! ) 책대로 실천하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서른 여덟에 정신을 차리고, 돈 모으기 위해 치과 인터뷰 보는거 보고, 뭘해도 될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날짜가 있나요? 

- 여기 치과가 제일 바쁜 날이요.

일주일에 몇 번 출근하고 싶나요?

- 여기 치과에 맞출게요.

원하는 시급이 있나요?

- 제가 좀 오래 쉬어서 그냥 다른 사람이 받는 만큼 주세요.

그래도 경력도 되시니 어느 정도 생각한 시급이 있을텐데요?

- 없습니다. 다만 최대한 빨리 일하고 싶습니다. 


치과든 어디든, 아르바이트생 뽑는데, 저런 답변 나오면, 뽑지 않을 이유가?


이 책을 읽은 다음날 일하면서 이 책의 김 얀을 떠올렸다. 김 얀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해서 막 엄청 일 잘했겠지? 거기까지만 생각한게 나의 비극..이지만, 그동안 허랑방탕하게 살아온게 있는데, 김 얀 같은 사람은 김 얀 밖에 없고, 나는 내 페이스로 변할 것이다. 


계속 앞으로 나가려고 몸 앞으로 들이밀고 있으면, 타이밍이든, 운이든, 작은 노력이든, 큰 노력이든 앞으로 가게 되어 있다. 

올 한 해 잘 보내면, 내년엔 정말 괜찮을 것 같은데.의 내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마인드셋을 잘 다듬을 시기인 것이다. 


트위터에서 색엔시 시대를 살고, 물려준 3-40대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 하다가, 이제 시류에 맞게 돈 이야기 한다는 비난이 섹스칼럼니스트였던 그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텐데. 열심히 산 건 물론이고, 남자로 인한 성병 이야기도 착실하게 하고 있단 말야.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대부호의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이야기, 앞으로의 많은 정점들 중에 한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그를 응원하고, 나도 얼른 쫓아가야지. 


2021년의 목표는 (2020년 12월에 시작함) '나' 키우기. 이다. 나를 아주 잘 키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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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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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을 단숨에 읽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늘 굉장히 힘들었기에. 이번이라고 다르지는 않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소설 속의 여자들은 다음 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되었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이렇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나만은 다르겠지. (아니야. 다르지 않아. 유니콘이 괜히 유니콘이 아니야.) 하고 '어쩌다보니'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는데, 너무도 다른 종족과 '사랑'이든, '파트너쉽'이든의 콩깍지 같은 걸 양 눈에 끼고, 제 발로 걸어들어갔는데, 너무 끔찍하고, 나는, 내 이름은 없어지고. 


첫 단편 '우환'에서 근주는 "자궁경부 세포 검사상 반응성 세포 변화가 있습니다."  검진 결과를 받게 된다. 

병원을 다니며, 두 아이와 남편을 챙기는 일상을 이어간다. 님편의 해맑음이, 아, 다른 종족이구나. 생각하게 하는데, 

'산부인과 가서 성적흥분을 느끼냐?'거나, '생리대 싼 거 사면 안되냐'거나, 시도 때도 가리지 못하고,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 넣는다거나. 작가는 해맑다고 표현했고, 뭔지 알겠는데, 그걸 해맑음이라고 말해줘야 할까. 무식하고 공감력 실종한 종특이라고 해야 할까. 여자의 일상이, 평범한 일상이 고단하고, 그건 평범한게 아닌데, 너무 참고 살아서 다 병이 된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 에서도 집남자들의 적나라함은 계속된다. 

밥 차려줘, 비타민, 영양제까지 다 챙겨주는데, 약껍데기를 구겨서 식탁에 버리는, 단 한 번도 제 손으로 뭔가를 쓰레기통으로 넣을줄 모르는 남자. 매 번 이야기해도 매 번 구겨져 식탁위로 던져지는 약봉지에 누가 제정신일 수 있을까. 그는 그 스트레스를 딸에게 푼다. 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이야기는 굉장히 흔한 이야기지. 


" 세월이 지날수록, 그러니까 아빠를 그렇게 길들여놓은 건 엄마인데, 왜 자기에게 분풀이를 하느냐고 딸아이가 조목조목 반박하던 날까지, 나는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정도를 늘려가며 아이들을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아갔다. 내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미친 여자처럼 굴어왔다는 것을, 그러다가 아이들까지 잃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만삭이라 섹스를 못하자, 남자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다른 여자랑 자겠다고 허락 구하며,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거 아니냐고 하는 남자의 뻔뻔함에 여자의 상황이, 여자가 그걸 내치지 못하고, 얼떨결에 공범이 된다. 둘째를 가졌을 때에도. 그리고, 친구들과 동남아 여행 다니며 한 짓거리를, 정말 범죄행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넘어간다. 진정제 몇 알을 삼키고 방조한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범죄를 고발해 지금껏 누린 사회적 안락과 경제적 안온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남편의 허물이 나의 결함이나 아이들에게 치부가 되도록 둘 수도 없었다. 남편에 대한 불신은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 참으면, 나 하나만 입을 다물면 모두 펴화로울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이혼이라든지, 범죄자 남편 같은 건 계획에 없던 사항이었다. 내 삶의 틀을 부수고 싶지 않았다. 보편적이고 타당한 가족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비겁해지기로 했다." 


이 소설의 결말은 의외였다. 사는데 정담은 없지만,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가 '기만했던 날'들을 만회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그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언제든 준비 되면, 혹은 너무 힘들어졌을 때 멈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멈추기로 했을 때, 그의 딸이 그가 걷는 외줄 아래의 그물이 되어줄거다.


'미아'에서 소영은 길 잃은 채로 시작해 길을 찾았을까? 


마지막 단편인 '경년'에서의 그는 중학생인 한남 아들을 마주하게 된다. 


여자들은 이름을 잃었고, 많이 울었고, 화를 냈고, 병이 났고, 우울증 약을 털어 넣는다. 

앞에는 어쩔 수 없지만, 병원 간 이야기들이 꼬박꼬박 나오는 것이 좋았다. 나을 수 있고, 나을 거라는 그런 액션 같아서. 


작가가 많은 것을 읽고, 겪고 녹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덜 아파지시길. 몸도 마음도 늘 건강하시실.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나머지는 다 그 다음임을 늘 마음에 담아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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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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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각자의 속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무리해서 갈 때도 있고, 늦장부릴 때도 있지만, 쉼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추적단 불꽃이 n번방 이야기를 처음으로 수면으로 내놓았고,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깐, 대부분의 여자들에겐 저게 무슨 거짓말같은 이야기인가 다가왔다.
2차가해를 막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많은 걸 지운 채 옮긴 글의 일부만 봐도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았고, 매일 화가 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차마 글을 다 못 읽는 사람, 글만 읽고도 눈물 나고, 아팠다.

이들은 n번방에 잠입해서 가해자 특정할 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하고, 언론에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고, 처음 ‘공모전’에 내기 위한 기사 취재를 넘어선 평범하고 흔한 악마들로 마음에 큰 상처 내버렸고, 치료 지원 받으며 꿋꿋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와 유튜브, 언론과 리셋 등의 활동가들을 통해 뉴스는 따라잡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기록되어 나왔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n번방 추적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해낸 추적단 불꽃, 불과 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n번방 이야기 보기만 해도 남혐 맥스 되는데, 이 두 분은 다들 소중한 애인도 있고, 사랑하는 아빠, 학교 선생님들은 다 너무 훌륭하셨고, 하는데에 괴리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각자의 속도와 각자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말이고, 말보다 행동이다. 이 두 사람은 엄청난 액션을 해 낸 사람들이다.
미성년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들은 분명 빙산의 일각일텐데, 빙산의 팁이라도 드러난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 사회가 정말 어떻게 돌아가려고 하나. 어짜피 환경문제로 다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이런 나라에서 뭔 자꾸 애를 낳으래.

어떤 해악들은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상관 없을 것 같았던 해악들이 이렇게 현실에 펼쳐지고, 다가오고,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내가 그 해악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건 가학적이고 저질적인 하드코어 애니메이션들이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상관이 있어져버렸다. 여자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자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런 남자들과 한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 예전에는 성인지 감수성 떨어지는 세대들 다 죽어야 세상이 바뀌는건가 한탄했는데, 나보다 어린 세대에 이렇게 더 끔찍한 종양들이 자라고 있다.

그 견고한 고리들을 어떻게 흔들고, 결국 끊어낼 것인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쉬지 말고, 지치지 말고, 흔들어댈 수 밖에 없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무력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말로, 글로, 투표로, 청원으로 흔들고, 피해자들이 재기할 수 있게, 내가, 내 주변이 강해질 수 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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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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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예견 어쩌구로 마케팅 엄청 하길래, 한 번 사봤더니, 글쎄.. ‘우한’ 말고는 접점이 없다고.

여튼, 나는 바이러스가 퍼져서 세계 대위기!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어서, 초반에 나오는 으시시한 분위기에, 공포소설인가 싶어 그제야 리뷰들을 찾아봤다. 책 속의 티나처럼 나도 처음에는 폴터가이스트 현상들을 공포로 읽었지만, 시간 지날수록, 주인공에 이입해서 힘 내!. 하게 되었다.

딘 쿤츠의 초기작이라고 하는데, 단숨에 읽을만큼 재미 있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여성 캐릭터 묘사였고, 티나와 엘리엇의 티키타카도 다른 어떤 로맨스보다 재미있었다.

아들이 죽고 슬퍼하는 엄마이자 성공한 제작자인 티나는 물론이고, 잠깐 등장하는 비비안의 캐릭터도 남자 작가가 이런 캐릭터를 쓴 것이 좀 믿기지 않다가, 주변에 딱 티나 같고, 비비안 같은 사람이 있었을거라 결론.

이런 묘사들

다른 아이를 대니로 착각하며, 혹시 대니가 살아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자
“그녀는 이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제껏 스스로를 강인하고 유능하고 침착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인생에 무슨 일이 생기든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대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마음이 그저 착잡했다.”

티나의 전남편 마이클은 잘생긴 개쪼다고, 그에 맞는 비중과 앤딩을 가지고 있다.

라스베가스 쇼 댄서로 자부심을 가지고 성공적이었던 티나는 스물여덟 번째 생일이 되었을 때 현실을 깨닫는다. 운이 좋아도 쇼 댄서로는 기껏해야 10년밖에 남지 않았고, 서른여덟에 허무하게 일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결심 후, 다른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일, 안무가를 시작한다. 싸구려 호텔 라운지에서 공연하는 짧은 뮤지컬 안무가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다 라스베가스의 큰 손인 조엘을 만나 천만달러 예산의 큰 쇼를 제작하게 된다. 대니가 죽고, 그녀는 일에 더 몰두하게 되고, 쇼는 대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티나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강인함과 회복 능력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묘사들이 꾸준히 나온다. 사실,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과는 별개로 좀 멋대로지만, 나는 장르소설의 멋대로 설정에 너그럽기에 멋진 여주인공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초반에 잠깐 나오는 청소부, 76세, 비비안에 대한 묘사도 좋다.
대니의 방에 지독한 장난같은 일이 벌어져있는 걸 본 티나는 그녀 외에 집에 들어온 사람이 비비안밖에 없음을 알지만, 비비안이 “이런 말을 칠판에 썼을 리가 없다. 그녀는 상냥한 할머니였다. 혈기가 왕성하고 독립심이 강했지만 이런 잔인한 장난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고 티나가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비비안은 정말 용감하고, 독립적이지!

놀란 마음을 달래려 버번을 마시고,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그런 장면들이 두 세 번 나오고, “술을 너무 마시고 있다. 어젯밤에는 버번, 오늘은 와인이라니. 이제껏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술을 마신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술을 제일 먼저 찾았다. ‘매직!’초연을 끝내고 나면 술을 줄일 것이다.” 라는 말을 같이 하고 있는 것도 좋았다.

비비안으로 말하자면, 니켈 더처스다. 라스베거스에서 가장 싼 슬롯머신만 하며, 다른 어떤 큰 손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버티는 노인들을 니켈 더처스라고 하는데,

“니켈 더처스들은 대부분 남편과 사별했거나 독신이라 종종 모여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누군가가 아주 가끔 커다란 잭팟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서로 축하해주었다. 모임 중 누군가가 죽으면 일제히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기묘하지만 단단한 공동체를 형성했고, 함께 모였다는 소속감은 만족스러웠다. 젊음을 숭배하는 나라 미국에서 소외된 노인들은 어울릴 만한 공간을 찾고픈 마음이 간절하게 마련이다. 많은 노인이 결국 그러지 못하지만, 니켈 더처스들은 찾아냈다.”

비비언 딸이 계속 같이 살자고 하지만, 딸이 사는 동네인 새크라멘토에 몇 번 가보고, 세상에서 제일 따분한 동네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고 시끄럽고 불빛과 흥분이 가득한 라스베이거스를 떠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세크라멘토에 살면 더는 니켈 더처스가 될 수 없었다. 더 이상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저 다른 할머니들과 똑같이, 딸네 식구와 살면서 할머니 놀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고 죽을 때를 기다리겠지. 그런 삶을 어떻게 참고 살라는 말이야.”

그러고보면, 남자 주인공인 엘리엇은 티나와의 티키타카 외에는 그냥 딱 필요한 장면에 딱 필요한 능력으로 등장하는 한편, 조연인 비비안에 대한 묘사가 더 깊다.

비비언이 대니의 방에서 폴터 가이스트 현상을 겪은 에피소드의 결말은 너무 유쾌했지!

티나는 악몽을 꿔도, 집이 폭파되어도, 무서워하다가도 저 개새끼를 죽여야 해. 저 삽으로 때려죽일 거야. 남자를 몽둥이로 패야겠다. 고 생각하고, 내 앞에 있으면 눈알을 파버릴거야. 막 이런다.

그런 티나에게 전남편 마이클은 티나가 일을 계속 하려한다는 이유로 티나를 만난 십여년간 계속 발전하는 티나 옆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채 티나에게 “여전히 남자 자존심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년이야.” 라고 말한다.

티나는 이전에는 사랑했지만, 이제 굿바이. 미움도 아무 감정도 전혀 없다며 마이클을 떠난다.

티나와 엘리엇의 티키타카
++
엘리엇이 두 번째 잔을 헹구어 건조대에 놓는 모습을 보고 티나가 말했다.
“집안일을 아주 잘하시네요.”
“하지만 전 창문까지 닦지는 않습니다.”
“전 가정적인 남자가 보기 좋더라고요.”
“그럼 제가 요리하는 걸 보셔야겠군요.”
“요리도 하세요?”
“무척 잘합니다.”
“가장 잘하는 요리는 뭐예요?”
“전 다 잘합니다.”
“와, 요리 쪽에도 자신감이 대단하시구나.”
“훌륭한 요리사란 본인의 요리 솜씨에 극단적인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법이죠. 주방에서 제대로 일하려면 자기 재능을 평가할 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합니다.”
“당신 요리를 제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요?”
“그러면 제 몫에 더해 당신 몫까지 제가 다 먹을 겁니다.”
“그럼 전 뭘 먹고요?”
“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겁니다.”

.
.

“대단한 로펌을 세운 일을 이야기할 때는 상당히 겸손하시면서, 요리에는 아주 자부심이 넘치시잖아요.”
엘리엇이 웃었다.
“제 변호 솜씨보다 요리 솜씨가 더 좋기 때문이죠. 자, 제가 정장을 갈아입고 오는 동안 칵테일을 좀 만들어주시면 어떨까요? 5분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진정한 요리 천재가 작업하는 모습을 곧 보게 되실 겁니다.”
“작업이 잘 안 되면 우리는 언제든 차를 타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러 갈 수도 있겠죠.”
“왜 이렇게 절 괴롭히시죠?”
“웬만한 요리는 맥도날드 햄버거보다 맛있기 힘들어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후회를 곱씹게 될 테니.”

소설, 뭐 있냐. 술술 읽히고, 등장인물들 캐릭터 좋고, 해피앤딩이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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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 디지털 시대,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존 카우치.제이슨 타운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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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 모르고, 제목만 보고 사서 이제 읽었는데, 저자가 애플 교육담당 부사장이었다. 

디지털이 아이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최근에 소셜딜레마에서 

소셜미디어 그룹 고위층들은 아이들에게 소셜미디어 제한한다는 내용도 봤어서 좀 찜찜하게 읽기 시작했다. 


교육에 뜻을 둔 저자지만, 판매자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반신격화? 느낌이 강해서 교육서적으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궁극적인건 교사와 학생의 1:1 수업이라고 하는 (교사가 아닌) 비전문가의 이야기인데, 그게 참.. 싶은거지. 그래서 그 간격을 '기술'로 메꿔라. 라는 결론. 사람들은, 국가는 교사에게 전문가가 아니라 신이 되길 바란다는 그런 현실파악은 좋았다. 


애매한 포지션으로 읽긴 했지만, 컴퓨터 회사에서 컴퓨터로 어떻게 교육 잘 시키는지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책이었다.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모든 사람은 다르다. 신체만이 아니라 학습 방식과 속도에서도 그렇다. 또 사물을 보고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다. 물론 사전이 일반적인 정의를 제시해줄 수는 있지만 제가각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예를 들어 '성공'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독자들은 이 말을 경제적 성공과 동일시할지 모르지만, 나는 경제적 이익과 무관하게 어떤 사람이 특정한 분야에서 갖는 영향력과 동일시할 수 있다. -64- 


"교육이란 들통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일이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에릭슨이 전문과의 성과에 관한 연구에서 내린 결론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타고난 재능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 연습의 결과다. 이 말이 너무 빤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함정은 습관적 연습 regular practice이 아니라 의식적 연습deliberate practice 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의식적 연습은 '반복과 주입'이나 암기 훈련 같은 게 아니다. 이들의 유용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필요한 건 현재 수준을 넘어서기 위한 반복된 시도라고 에릭슨은 말한다. 이런 시도에서 실패할 때마다 무언가를 배우고 난이도가 매번 높아진다. 비디오게임에서 한 레벨을 통과하면 캐릭터가 더 강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 89


학습에 관한 한 실수는 처벌받을 만한 잘못이 아니라 귀중한 피드백이자 기회로 여겨야 한다. 예를 들어 애플에서는 초기에 실수가 나오지 않으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신이 교육에서도 일반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와 교실에서 직접 해보는 학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조직, 재정, 통솔력 등과 관련한 많은 이유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학생들이 산을 오르도록 돕는 데 쓰이는 산꼭대기형 공간, 말하자면 메이커 공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기회 등이 없기 때문이다. - 128- 


이런 이야기들은 개발자 마인드 같고, 좋아하는 이야기. 실수는 귀중한 피드백이자 기회. 


"미래가 도착했다. 하지만 그것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 윌리엄 깁슨


애플은 컴퓨터와 핸드폰과 태블릿 등을 파는 회사다. 코로나 시대에 아이패드와 아이북의 매출이 훅 뛰었다고 하고, 주변에는 아홉살, 열살 아이들이 최신형 아이패드를 들고 공부를 하고 있다. 애플사람이 이런 책 쓰면 당연히 위화감 들지!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중요하거나 기초가 되는 것이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하고, 따라서 졸업 요건이 되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교과목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항상 수학, 과학, 읽기다. 이 세 교과 아래에는 두 번째 단계의 교과들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흔히 '필수'이지만 세 교과보다 훨씬 덜 강조된다. 역사, 사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아래 단계에는 어느 한때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훨씬 덜 강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택 과목으로 격하되기도 하는 교과들이 있다. 여기에는 물리, 미술, 음악이 포함된다. 현재 컴퓨터공학, 기술, 코딩은 대부분 이 맨 아래 단계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 214


가장 노련하고 재능 있는 교사도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허우적거린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결함과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와줄 적절한 학습 활동을 찾아 준비하고 배치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시간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교육자들은 마지못해 효과보다는 테일러적인 효율에 의지해, 존재하지도 않는 평균의 학생을 위해 가르칠 수밖에 없다. 이는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있는 학생들, 다시 말해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뿐 아니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또한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 229- 


오늘날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려면 전문지식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마우스로 클릭하거나 손가락으로 두드리거나 문지르기만 해도 콘텐츠를 찾을 수 있는 오늘날에 딱 적용되는 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콘텐츠 전문가인 교사보다는 맥락context  전문가인 교사가 더 필요하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맥락 속으로 확실히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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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20-11-03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앞으로 당연히 생각해야 할 문제라 여겼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 빨리 변화하는 느낌이에요 국가에서 굉장히 중요한 교육제도가 어떻게 변해갈지 두려움반 설렘반이네요

하이드 2020-11-03 18:09   좋아요 0 | URL
네, 안 그래도 변화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변화가 급격해졌어요. 어른의 일도, 아이의 공부도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기를, 그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지요.

모든것이좋아 2020-11-03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기성세대는 잘 모르는 것 같고 아이들이 개척하리라 믿기엔 불안한 현실이네요.

하이드 2020-11-03 18:10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반복해서 나와요. 교사가 아이들보다 더 기술적으로 모른다는 거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가르치는 한계 같은 걸텐데, 생각해볼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조선인 2020-11-0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해보는 학습이 점점 줄어든다는 건 진짜 공감해요. 편의성, 비용, 윤리, 안전 등 다양한 이유로 실습 교육이 줄어들고 있는데저 다닐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실습 수업이 적다는 데 분개하고 있어요. 특히 안전사고 문제로 과학 실험이 줄어도 너무 줄어서 따로 과학반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실험실습이 거의 없다는 게 충격적입니다. 해부학 실습도 윤리상의 문제로 더 이상 안 한다는데 해부학 실습을 좋아했던 저로선 너무 아쉬운 대목이에요.

하이드 2020-11-04 17:12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나오는 프로젝트 수업들 정말 부럽더라구요.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꼭 실습수업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닌데, 올해는 이래저래 많이 힘들고, 많은 도전이 필요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