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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이윤기의 번역은 참으로 유려하다. 이 두꺼운 책을 이렇게 단숨에 재미있게 읽어내릴 수 있게 한건 카잔차키스의 글을 살아있는 말로 옮겨준 번역자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역자후기에 그리스의 크레타에 방문한 이야기가 있다. 카잔차키스 참배를 위해 연극 연출가 김석만 교수가 서울에서 가져온 진로 소주, 바나나, 그리고 국산 담배 한 대로 젯상을 차리고 절을 했다고 한다. 일행은 묵념으로 경의를 표했지만 이윤기는 묵념으로 부족하다 싶어 구두 벗고 절을 했다고 한다. 안내인 크레타인 여성은 먼 동양에서 온 언어도 외모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고향이 사랑하는 작가에게 지극한 경의를 표하는 사태에 치밀어 오르는 격정의 눈물이 치밀어 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작가에 대한, 작품에 대한 경의를 가진 번역가가 온 열정을 쏟아 우리 독자에게 소개한 소중한 책이다.
항구 도시 피라에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항구는 그가 전쟁터로 나가는 친구를 배웅했던 곳이다. 위험에 처한 동포를 구하기 위한 전쟁에 함께 가기를 청하는 친구에게 침묵으로 대답하고 그렇게 친구와 이별했던 곳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를 발견한 '조르바'의 자신을 이유불문하고 크레타로 데려가달라는 공갈 비슷한 태도에 응한다.
'나'는 펜대운전자. '조르바'는 산전 수전 다 겪은 노인네. '나'는 크레타 섬에서 광물을 캐려하고, 조르바는 인부들을 관리하게 된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 반면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
느끼고, 행동하고, 현재를 사는 조르바를 보고, 나도 저런 자유로운 영혼의 세례를 받아보았으면 끊임없이 생각한다. 책벌레인 나는 조르바를 곁에 두고, 그에게 말을 시키고, 그에게 눈을 고정시킨다.
나는 조르바와 같고 싶지만, 그와 헤어지고, 가슴에 묵혀두고, 이별에 아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에잇, 나는 조르바가 될 수 없고, 평생 빛나는 그 존재를 부러워하고 동경할 주제밖에 못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올 가을에는 조르바를 찾아 크레타 섬에나 가볼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