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무실 복사기는 이미 작년 말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오래 쓰기도 했고 잦은 부품 교환으로 인해 그 수명이 다 한 것...
그러다 보니 사무실은 새로운 복사기 구매를 위해 여러 곳에서 견적을 받아보고 있는 상황이며
그나마 하는 일 자체가 출력은 자주해도 복사는 거의 없다 보니 복사기의 사용빈도는 프린터에게
밀려난 상황..
그.러.나.
가끔 급하게 복사를 해야 할...주로 소장마마의 지시에 의한 몇장의 복사를 하기에는 참으로 곤욕스럽다
뛰어서 5분거리인 문구점까지 왕복을 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그나마 막내가 있다 보니 그 일은 전적
으로 막내가 도맡아서 하는 수고스러움이 간혈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하.필.이.면.
막내가 은행에 가고 자리를 비운 사이 소장마마의 긴급 복사 명령이 떨어졌다.
건축주 만나러 지금 가야 하니까 재빨리 복사를 해오라는 것.... 그곳도 기껏 2장...
신발 갈아신고 뜀박질 자세를 취한 후 부리나케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오자 마자 머리 속에 전구에 불이
번쩍 들어오고 사무실로 다시 리턴...다만..201호 사무실이 아닌 202호 사무실로 직행..
202호 사무실은 H모 건설사의 지하철 공사를 위해 차려진 전기공사 현장 사무소이다.
화장실에서 몇번 마주친 안면으로 무작정 밀고 들어가 최대한 사람 좋은 인상을 하며, 복사 2장만 할께요~ 살인미소(?)까지 지으면서 복사를 해결해 버렸다.
이럴 때...스스로 생각해도 능청의 범위를 벗어나 뻔뻔함의 경지에 올랐다고 판단하게 되버린다.
어쩌면 닳고 닳은 걸지도...??
뱀꼬리 : 소장마마 재미 붙었다. 복사꺼리 있으면 나보고 202호 다녀오란다.. 나원참...
하루 빨리 복사기를 사야 한다..!!
2.
일이 많다 보니 소장마마 인맥을 통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하게 되었다.
문제는 재택근무가 아닌 사무실에 나와서 손발 맞춰가며 일을 해야 하는 것...
하지만 머리수만큼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3대 정도의 여유가 있었으나 그.분.이 놀고 있는 컴퓨터라고 죄다 해체하여 쓸만한 부품을 싹쓸이 해버렸다.)
당장 일은 시켜야 겠고..컴은 사야 하고..택시타고 남부터미널쪽의 국전으로 달렸다. 오프라인 판매는
당.연.히. 인터넷판매보다 10~20만원 정도 가격 상승을 가져왔고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금을 걸고
사무실로 귀환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 그 사람...집에 가서 일한단다..! 컴퓨터..아직 안 샀지..?? "
계약금까지 걸고 오후 3시쯤에는 배달까지 약속받은 상황...난 대뜸 크게크게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계약 이미 했고 어짜피 사야 할 거 그냥 사자...궁시렁 궁시렁...위약금을 내라며 어쩌냐 궁시렁 궁시렁...
정말 난처한 상황이다 궁시렁 궁시렁..일부러 목소리 톤 3옥타브 높여서 전화기에 대고 주절주절거렸다는...
낌새 이상하게 돌아가는 한 5분 동안 옥신각신 하는 척(?)하면서 전화통화 끝내고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으로...
"어쪄죠~~!! 나 이거참..!!"
이미 5분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오바스런 몸짓과 수다로 그쪽도 상황을 간파한 듯....
"어쩔 수 없죠..." 하며 계약금을 고분고분 돌려줬다는...
재빨리 계약금 돌려 받고 여우꼬리 돌돌말아 곰가죽 속에 안보이게 꼭꼭 숨기고 재빨리 사무실로 돌아왔다.
여우꼬리 : 파란색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