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불후의 명곡'이다. 

이제껏 중 최고의 무대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알리의 '킬리만제로의 표범'이 갑이었다.



작년에 본 최고의 무대는 JK김동욱의 '백만송이 장미'였다. 



처음 출연해서 438표로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그 전까지 그 점수는 정동하가 받았지만 당시 김태원이 같이 출연해서 기타를 쳐준 덕에 점수가 좀 후하게 나온 듯했다.

그렇지만 기록은 갈아치우라고 있는 법.

이후 정동하는 439표로 그 점수를 혼자 나와서 갱신했다.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던가? 

김태원과 함께 한 곡보다 더 좋았다. 인정!









그랬는데 얼마 전에 김종서가 출연을 했다. '전설'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가 출연 가수로 등장했다. 

그리고 눈물의 부르스를 아주 멋지게 불러주었다. 역대 최고 점수인 442표를 얻었다.

와우, 그 득표를 받아 마땅한 무대였다.



그런데 아뿔싸! 이어서 나온 거미가 445표를 받고 5분 만에 기록을 갈아치웠지 뭔가.

아무래도 그때 관객들이 점수가 좀 후한 편이었나 보다. 난 거미 무대가 그 정도 점수 받을 정도로 좋진 않았는데 말이다. 

아까비 김종서...


생각해 보니, 김종서가 영리했다. 전설로 나오면 1회 출연하고 말지만, 출연 가수로 나오면 매주 나올 수 있고 매주 새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 무대에 목마른 가수라면 이편이 더 낫다. 

한참 잘나가던 때의 그의 인터뷰를 보면 정말 프라이드가 하늘을 찔렀더랬다.

그러나 90년대 가수들이 그 좋은 시절을 켜켜이 묻고 찬밥 신세가 되고 얼마나 긴 암흑기를 보냈던가.

과거 잘 나가던 로커 시절엔 샴푸 광고 모델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섭외 들어오면 당연히 하겠다는 그의 솔직한 반응이 짠하면서도 격려의 박수를 주고 싶다. 

허세도 내려놓고, 불필요한 자존심도 내려놓고, 이제는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하는 듯 보인다.

얼마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는 크로스 오버 장르에 대한 도전을 이야기했다.

과거 오페라스타에 나왔을 때 비교적 초반에 떨어졌었는데, 그후 성악 장르에 대한 큰 관심이 생겼나 보다.

이날 카루소를 불렀는데 정말 훌륭했다. 아, 역시 김종서다!








그리고 지난 주, 작사가 박건호 편에 바이브의 윤민수가 나왔다.

그 전엔 잘 모르던 가수였는데 '나는 가수다' 때 많이 반했다. 내가 이런 목소리를 좀 좋아한다. 

흐느끼듯 노래를 부르면 애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내가 이승환을 좋아하나?








이날 윤민수는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불렀다.



아, 굉장히 유명한 곡이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완전 반했다! 올해의 불후의 명곡은 일단 윤민수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점 찍어둔다. 

확실히 오케스트라가 같이 나오면 소리가 풍성해진다. 성악 군단의 코러스도 훌륭했다. 

여가수 미가 나온 것도 좋았다. 


내친 김에 원곡도 찾아보았다. 아, 크게 바꾸지 않았구나. 원곡도 좋다. 그렇지만 나를 반하게 만든 건 윤민수 버전.


가사가 정말 훌륭하다.


우~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이 마음 다 바쳐서 좋아한 사람인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고마운 마음 감사하며 살게요
그 나머지도 나의 몫은 아니죠

늘 감사하며 잊지 않고 살게요
윤민수)그대를 미)그대를 윤민수)그대를 미)그대를 
윤민수) 그리워하며 같이) 살아야 하니까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그대를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니까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사랑을 어쩌면 좋아요
내 인생에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내 인생의 절반은 너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스무살을 갓 넘겼고, 세상이 우리에게 절대로 녹록치 않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늦은 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어느 길목에서 친구가 그렇게 말해 주었다. 학교는 기약 없이 휴학 중이었고, 버는 족족 집으로 몽땅 갖다 주어도 늘 마이너스이기만 했던 인생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낭만 따위는 애초에 없었고 자린고비 고용주의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일을 때려치우지 못하며 허덕이던 지친 나에게 친구가 해줬던 한마디는 최고의 선물이었고 자양강장제였다. 


친구는 일찌감치 결혼을 했고, 이제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이제 친구 인생의 절반은 내가 차지할 수 없다. 그렇게 된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결코 섭섭하지 않다. 한때 누군가의 인생에 절반을 차지했었던 나를 기념하고 축복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를 가진 나는 부자다. 좋은 노래 덕분에 친구 생각이 떠올라 오랜만에 하뭇하게 웃을 수 있었다.


친구는 노래를 무척 잘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합창단에도 들어갔는데, 그날 배운 노래를 저녁이 되면 같이 손잡고 동네 한바퀴 돌면서 나에게 들려 주었다. 가끔 노래방을 가게 되면 친구가 곧잘 부르던 이문세의 옛사랑을, 이문세보다 더 잘 불렀다. 그렇지만 친구 목소리는 유튜브에 없으니 이 노래로 대신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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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1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어느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처음 들으셨나요? ㅠㅠ 확실히 저는 올드세대인가봐요. 민해경이 너무나 절절하게 잘 부르고 곡도 좋아서 많이 따라불렀던 노래인데... 전주 부분이 어떤 클래식 작품 (어떤 곡이었는지 기억안남)에서 따왔다고해서 잠깐 시끄럽기도 했던 노래이지요.

이문세의 저 노래는 지금도 들으면 그냥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마노아 2014-02-17 23: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놀라웠어요. 이 노래가 그렇게 오래된 곡도 아니더라구요.
제가 아는 민해경 노래는 그대 모습은 장미와 보고싶은 얼굴 정도인데 발매 연도가 별 차이 없을 것 같아요.
이 좋은 노래를 왜 저는 여태 몰랐을까요.ㅜ.ㅜ
전주 부분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궁금해요.
이문세의 곡들은 언니가 듣던 별밤 방송 엿듣던 옛날을 떠오르게 해요.
그때는 언니가 듣는 곡, 언니가 보는 책 몰래 보는 게 큰 재미였어요.^^

비연 2014-02-1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해경의 노래... 좋았었죠. 이문세의 노래는 왜 들을 때마다 애잔한걸까요...

마노아 2014-02-17 23:51   좋아요 0 | URL
민해경 목소리는 정말 시원시원해요. 아버지였던가? 병상에 계신 부모님 봉양을 오래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후 그 큰눈이 더 슬프게 보였어요.
이문세 노래도 명곡이 정말 많죠. 불후의 명곡이에요.^^

antitheme 2014-02-1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가수들이 불렀을 때 이문세와 같은 울림을 주는 가수는 몇 없더군요. 특히 이문세의 노래는.

마노아 2014-02-17 23:51   좋아요 0 | URL
저는 그게 이영훈과의 시너지 효과 같아요.
아, 광화문 연가 뮤지컬을 봤어야 했는데....;;;

하늘바람 2014-02-1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노래방에서 부르던 기억이 나네요

마노아 2014-02-18 22:26   좋아요 0 | URL
저도 연습해서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어요.^^

수퍼남매맘 2014-02-18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해경씨 노래죠. 어릴 때인데도 가사가 철학적으로 들려 자주 부르던 기억이 나요.

마노아 2014-02-18 22:27   좋아요 0 | URL
정말 내공이 느껴지는 가사예요. 깊이감이 있어요. 오래오래 계속 듣게 될 것 같아요.^^

순오기 2014-02-1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거미가 김종서를 꺾은 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죠.ㅠ
우린 같은 감상이었군요.^^
민해경 노래, 우린 많이 듣고 따라 불렀는데... 마치 내가 그 소녀가 된 것처럼.^^

마노아 2014-02-20 23:1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번 윤민수 노래가 거미보다 훨훨 좋았는데, 이번엔 관중 점수가 좀 짠 것 같았어요. 아쉬워라..ㅜ.ㅜ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제목도 그야말로 소녀같아요. 소녀 아닌 누구로 대입해도 짠한 노래예요.^^;;

2014-02-19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0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0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1 0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1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2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2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맘 때 되면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묻는 리포터의 질문에 길가던 사람들이 "발렌타인 데이요!"하고 외치는 영상이 나오곤 했다. 

신기하게도 대보름날과 자주 겹친다. 

요즘은 보태기 설명이 하나 더 늘었다. 오늘이 안중근 의사가 사형판결을 받은 날이라는 것!



 


경기도 교육청의 바람직한 광고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손가락을 잘라 조국을 위해 일할 것을 맹세했던 그분은 제 목을 바쳐 그 조국에 헌신했고, 그 시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10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안중근 의사도 대단하지만 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도 놀라운 분이시다.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여기지 말라며 항소하지 말라는 이 의연함 앞에 숙연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피흘려 지킨 조국의 현실은....;;;;

 

 








몇 해 전 뮤지컬 '영웅'이 처음 막이 올랐을 때, 오프닝 날이 10월 26일이었다. 보통 이런 공연은 월요일이 휴무지만, 그날은 월요일인데도 날짜의 중요성을 기려서 오픈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바로 그날. 같은 날 또 다른 독재자가 부하 손에 죽던 그 날 이 작품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류정한 주연으로. 그 후 몇 차례 더 뮤지컬이 진행되었는데 최근 주연으로 JK김동욱이 나왔다. 마성의 목소리를 지닌 이 남자의 노래가 궁금했는데 지난 번 '해를 품은 달'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을 때 오페라 극장에서 이 작품 실황을 무대 밖 TV로 볼 수 있었다. 때마침 가장 하이라이트인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노래 잘하는 가수라 하더라도 뮤지컬 무대에 서면 긴 시간을 다 소화해내는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운 법. 마성의 목소리도 음이탈로 문밖 관객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중요한 노래에서..ㅜ.ㅜ

사형 당시 안의사의 나이는 31세였다. 오늘날의 31세를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가지 않는 의기다. 나의 31세도 마찬가지였다. 

'더 킹 투 하츠'에서 이순재는 아들 조정석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되라고 했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왔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 짓을 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라고. 어제 두가지 중요한 재판이 있었다. 모진 시간 무죄 판결을 기다려왔던 분들에게 사죄를 해도 모자를 판에 반박성명을 냈다. 인간의 얼굴을 기대하지 않았으니 사죄하지 못하겠거든 부디 그 입 다물라,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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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로 2014-02-1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서재를 눈팅하고 있는 독자인데요... 위에 소개하신 책 중에서, 초록색 표지로 된 "시대의 스타카토: 안중근 이상 남인수 황우석 김연아"라는 책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남인수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황우석은 안중근, 이상, 김연아와 나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거든요. 이왕이면 다른 책으로 바꿔주세요. ^^

마노아 2014-02-14 21:43   좋아요 0 | URL
제가 이글 쓰고 나가면서 조갑제 옹 책은 뺄까? 생각했는데 다른 책에서 원성이 들어왔네요.
책은 기꺼이 뺐습니다. 말씀대로 부적절한 선택이었어요.

수퍼남매맘 2014-02-1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날이었군요. 저도 몰랐네요.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꼭 알려줘야겠어요.

마노아 2014-02-15 17:40   좋아요 0 | URL
3월 26일에 사형이 집행됐어요. 그때 더불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듯해요.
안의사를 닥터로 아는 아이들이 있으면 곤란해요.ㅠ.ㅠ

순오기 2014-02-1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도 교육청 덕분에
올해는 광주시교육청도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라는 안내장을 보내서
우리동네 학교에서는 발렌타인 데이라고 초콜릿 돌리는 걸 자제했어요.

마노아 2014-02-17 11:33   좋아요 0 | URL
안중근 의사와 초콜릿은 분위기가 너무 상반되죠. 경기도 교육청이 바람직한 본을 보였어요.^^
 

친구가 출산을 했다.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고도 도무지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 유도 분만을 두차례 진행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 일주일 가량 지나고 나서 산후조리원으로 옮겼고, 바로 어제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다현 양은 겨울 방학 내내 아팠다. 장염으로 연말에 고생을 했는데, 그후로도 비염으로 인한 감기로 병원 신세를 계속 졌다. 며칠 전에도 설사가 멎질 않아서 병원 예약을 했는데 간호사가 날짜를 잘못 기록하는 바람에 어제 진료가 오늘로 밀려 있었다. 덕분에 언니는 당일 예약을 하기 위해서 일단 병원으로 출발했고, 학교 다녀온 다현이를 데리러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래저래 시간을 많이 잡아 먹으니 친구의 병실로 가기 전에 조카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다현양을 데리고 버스 정류장에 섰는데, 아뿔싸!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네. 조카를 남겨두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서 휴대폰을 챙겼다. 이렇게 맘 급할 때에 부츠는 얼마나 불편한 신발인가! 나오면서도 뒷덜미가 약간 불편한 것이 뭔가 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았고 조카가 기다리니 다시 부랴부랴 나와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생각났다. 친구 아기 선물과 친구 생일 선물을 몽땅 집에 두고 왔다. 


-다현아, 몇 정거장만 더 가면 엄마가 이 버스에 탈 건데, 다현이 그때까지 혼자 있을 수 있니?

-아니!


음... 그렇구나. 결국 언니가 버스에 타는 걸 확인하고서 내렸다. 그리고 되돌아 가서 선물을 들고 다시 친구의 병실로 고고씽. 아, 용인까지 가는 길은 얼마나 멀었던가. 4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힘들어...;;;;;


신생아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곳 창 너머로 친구는 자기 아기가 누구인지 맞춰보라고 한다. 하하핫, 맞춰볼까 했지만 친구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어서 본의아니게 컨닝을 한 셈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기는 딱 봐도 아빠를 닮아 있었다. 신기해라. 이 놀라운 유전의 법칙!


생김새와 체질, 식성과 성격... 많은 것들이 닮아 간다. 나를 닮은 내 자식을 보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겠지만, 때로 그 사실이 끔찍할 때도 있다. 엄마 팔자를 닮아가는 딸자식이라든가, 그토록 닮고 싶지 않은 제 아비를 닮아가는 아들이라면...


소설가 박부길은 끔찍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다. 아비를 몰랐고, 어미는 집안 어른들에 의해서 집을 떠났다. 아이는 큰아버지 집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큰아버지의 집에는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금역이 있었다. 그곳에 미치광이 사내가 결박된 채 있었다. 아이에게 손톱깎이 좀 갖다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던 사나이. 그 한번의 친절이 가져온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박부길의 삶 전체를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 원죄가 거기서 잉태했다. 그리고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 아버지의 길을 되밟았다.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할 때 아내 예씨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태어날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주몽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라면, 그리하여서 장차 아버지를 찾을 때에 얼굴도 모르는 그들 부자가 서로 알아볼 수 있는 표식 하나를 남기고 길을 떠났다. 이십 년 뒤 아들 유리는 아버지가 남긴 증표를 들고서 고구려로 찾아왔다. 주몽은 아들을 인정했고, 그 아들이 대를 이어 고구려의 2대 임금이 되었다. 아버지의 새 부인 소서노와 그녀의 자녀들은 유리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그녀가 자리를 다툼하지 않고 남쪽으로 떠난 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왕이 된 유리는 자기 세력이 없었다. 나라 밖에는 큰 나라들이 호시탐탐 신생국 고구려를 노렸고,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 역시 이웃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아버지를 모시던 신하들은 온전히 자기를 왕으로 섬기지 않았다. 어려서 아비 없이 자라며 겪었던 서러움, 강자 앞에 몸을 낮추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던 긴 시간들이 그에게 드리웠을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 기억이 그를 모진 아비로 만들었다. 해명태자는 강대국 앞에서 당당했다는 이유로 아비로부터 자결 명령을 받았다. 형님이 죽고 어린 동생이 태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린 임금이 되었다. 어린 임금 무휼은 아버지와 다른 왕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강한 군주가 되었고, 그리하여 그의 이름에는 '대무신왕'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하지만 강한 군주는 아들이 원한 따뜻한 아버지와 공존하지 못했다. 그 자신도 사랑에 울고 아파했지만 나라를 움직이는 정략적 판단 앞에 아들을 희생제물로 내놓았다. 그것이 호동왕자다. 무휼의 아비 유리왕은 힘 없는 나라를 핑계로 자식을 잡았지만, 무휼은 강한 나라를 핑계로 자식을 잡았다. 그가 가장 닮고 싶지 않아 했던 아버지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김진 작가는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대조적으로 잘 표현했다. 아버지 무휼이 찾으려는 '부도'는 눈에 보이는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아들 호동이 찾고자 했던 '부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향이었다. 피흘리는 아버지의 세상이 아닌 평화롭고 따뜻한 세상. 그걸 뮤지컬은 또 극적으로 표현해 냈다.



"저 부도로" -김법래, 고영빈, 조정석, 고미경


무휼 narr) 

무엇을 버렸느냐 네 손으로
너의 무엇을 버렸느냐
왕 될 자의 표식
왕 될 자의 신수

무휼  vocal) 

보아라 이 땅의 눈물을
들어라 바람의 소리를
이 땅을 지키려했던 염원들
그 피눈물을 닦아라

무휼 narr) 

약한 자는 왕위에 올릴 수 없다. 네가 네 스스로 신수를 버렸을 때, 이미 그렇게 결정 된거다

무휼 vocal) 

가리라 원한을 풀으러
가거라 이 칼을 들고서
잃었던 우리의 땅을 찾아라
그 붉은 땅을 향해서 달려라

호동 vocal) 

눈물없이도 이별없이도
사랑하는 세상은
정녕 없는 걸까
나의 부도는
하늘 나무 위
피 흘리지 않아도
평화로운 세상

그런 세상 원하는데

무휼 narr)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세계를 넘어
더 커지는 것
세상의 모든 왕들은
앞선 왕의 세계를 넘어
더 커지는 것

왕이 되고프면 목숨을 걸어라

무휼 vocal) 

따르라 태자의 운명을
가거라 저 피묻은 길
주어진 너의 운명 저버리면
네 목숨마저 위험해지리니

호동 vocal)

무얼 원하나 나의 아버지

당신 품은 사랑이 바로 이런 건가
나는 꿈꿨지 하늘 부도를
당신 손을 잡고서 함께 가길
나는 누군가 무얼 꿈꿨나
왕의 자리였던가
하늘 부도인가
나는 가리라 나의 뜻으로
당신 손을 놓고서
푸른 하늘길로
푸른 하늘 저 부도로
푸른 하늘 저 부도로









아들과 불화한 아버지를 찾기는 쉬울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싶고... 

아버지와 닮을 뻔한 인생을 제대로 수정한 사람도 분명히 있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변호인을 맡았던 간바라 가즈히코가 그랬다. 


제 아버지는-가즈히코가 목소리를 낮췄다.
“알코올중독으로 이성을 잃었고, 그 결과 어머니에게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닫고 나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으며 실은 정식으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나약했던 아버지는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가 저지른 행동을 견뎌내지 못했어요. 그래도 자기 책임을 제삼자에게 덮어씌우지는 않았습니다. 나약했지만, 그렇게까지 비겁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죗값을 치렀던 겁니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가즈히코는 말했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면. 더 늦기 전에.” -599쪽


늦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면 그건 분명 용기를 낸 것이다. 그것이 양심이건, 예의이건, 혹은 순정이건.









책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손난로는 따뜻했고 카드는 귀여웠다. 문앞에 붙여진 메모는 나름 낭만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여기까지다. 

덕분에 가졌다던 용기, 혹은 자신감이 나를 꼭 전리품처럼 느끼게 했다. 

그럴 의도 없었다고 믿지만, 나는 속상하고, 또 아프다.


모진 말을 쓰려고 했는데, 애써 지워냈다. 최소한의 예의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시간만한 명약이 없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처음엔 황당함이었다가,  한동안 노여움이었다가, 그러다가 해프닝이 되고, 언젠가 이것도 하나의 기억이라고 담담해진다면 좋겠다. 


좋은 책에 대한 내 작은 보답은 "유정정애"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것은 무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무죄
그렇지만 좋아해서는 안 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유죄
내 왕의 적을 믿는 것도 명백한 유죄
하지만 내 왕이 이미 마음 뺏긴 사람이니 우리는 공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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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2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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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2 17: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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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2 17: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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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2 17: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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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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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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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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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4-02-13 13:40   좋아요 0 | URL
잘 하셨어요. 절판이나 품절 마크 뜨면 꼭 뒤늦게 후회하게 되더라구요.^^
오늘 따뜻한 하루 보내셔요!!

2014-02-14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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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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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과학

제 2064 호/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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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스케이트 날의 과학

태연의 손에 질질 끌려 피겨스케이트장에 도착한 아빠, 얼음판 위를 가득 메운 여자아이들 무리에 깜짝 놀란다. 제2의 김연아를 꿈꾸거나 혹은 딱 붙은 레깅스에 피겨 스케이트화를 신고 김연아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그러나 그 속에서도 태연의 우람하면서도 노오란 자태는 단연 돋보인다. 태연, 민망하게도 김연아 선수가 지난 1월 국내경기에서 입었던 병아리색 의상과 싱크로율 99%의 옷을 입었던 것! 태연이 스케이트장이 들어서자마자 일순간 세상이 정지한 듯 모든 이들의 시선이 태연에게 꽂힌다. 

“홍홍홍, 다들 눈은 있어가지고. 소치에 가 있어야 할 김연아가 여긴 웬일인가 싶은가 봐요. 그쵸? 역시 운동은 장비와 의상이 반이라니까. 옷을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벌써 피겨의 소울이 딱 오잖아요.” 

“김연아 보다 다리가 딱 세 배쯤 굵지만, 암튼 딸이 소울 충만이라니까 아빠는 됐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타볼까?” 

태연, 아빠가 꺼내준 피겨용 스케이트를 보더니 얼굴이 팍 구겨진다. 

“아빠! 제2의 김연아가 될 꿈나무에게 이런 스케이트를 사주시면 어떡해요. 이렇게 짧고 뭉툭하고 못생긴 스케이트를 타고 어떻게 트리플 러츠를 성공하겠어욧!!” 

“아이고, 태연아. 이렇게 생겨야만 점프를 할 수 있어요. 스케이트 앞쪽을 잘 보렴. 아예 날이 없지? 대신 스케이트화와 연결된 부위에 톱니 모양의 요철이 나 있는 게 보일거야. 바로 이 부분으로 얼음을 딛고 뛰어오르거나 방향을 바꾸는 거란다. 또 스케이트화를 뒤집어 보면 날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양쪽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솟아있어. 이 날카로운 부분을 ‘에지(edge)’라고 하는데, 얼음을 파내며 균형을 맞추거나 강력한 도약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단다.” 

“아, 그렇구나. 피겨 스케이트화는 뭔가 길고 섬세하고 우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예요.” 

“사실 모양으로만 보면 가장 날렵하지가 않아. 점프한 뒤 착지할 때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서 스케이트 날의 두께도 4~5mm 정도로 가장 두껍고, 반면에 에지(edge)는 가장 날카로우니까.” 

“그럼 가장 날렵한 스케이트는 어떤 건데요?” 

“롱 트랙 스케이트, 즉 스피드스케이트가 가장 날렵하단다. 이 종목은 400m인 타원형 대칭구조의 트랙을 도는 경기인데, 정확한 자세와 강한 스퍼트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를 내는 게 중요하지.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을 할 때 잘 보면, 선수의 발이 빙판에서 떨어져 스텝을 옮길 때에도 스케이트 날은 그대로 빙판에 붙어있는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이때 ‘탁(clap) 탁’ 소리가 난다고 해서 ‘클랩(clap) 스케이트’라고도 부르지.” 

“에이, 말도 안 돼. 귀신이에요? 발은 바닥에서 떨어졌는데 스케이트 날은 그대로 붙어있게. 그리고 난 크랩은 먹는 거라고 봐요. 맛살 아니에요, 그거?” 

“그건 crab이고! 태연아 영어공부 좀 하자. 엉? 암튼, 선수가 얼음을 지치고 몸을 앞으로 이동하면서 발을 떼는 순간 스케이트화의 뒷굽에서 날이 분리되면서 날만 얼음에 그대로 붙어있게 된단다. 그렇게 되면 선수가 끝까지 바닥을 딛고 힘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로도도 크게 줄일 수 있지. 또 마찰은 줄고, 가속도도 잘 붙게 해준단다. 1997년 클랩 스케이트가 도입되면서 그해에 모든 세계 신기록이 다 바뀌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혁명적인 스케이트란다.” 

“와, 스케이트는 다 비슷할 것 같았는데 완전 다르네요? 그럼 피겨랑 스피드스케이트 말고 또 뭐가 있어요?” 

“둘레가 111.12m인 타원 트랙에서 스피드를 다투는 쇼트트랙이 있지. 쇼트트랙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추월이야. 너도 여러 선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순위가 바뀌는 경기를 본 적이 있을 거야.” 

“알아요! 선수들이 거의 옆으로 누워서 경기하는 거 맞죠?” 

“그래. 쇼트트랙 전체 코스에서 곡선구간의 비중은 48%야. 하지만 선수들은 곡선구간에 진입하기 전과 후에도 곡선주행을 일정부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의 70~90% 정도를 곡선으로 달려야 한단다. 누가 더 코너링을 잘하는가에 따라 승패나 갈리게 된다는 뜻이지. 그래서 쇼트트랙 스케이트화에는 코너를 돌 때 밖으로 나가려는 원심력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이 잘 고안돼 있어요. 날의 중심은 밑창의 가운데가 아닌 안쪽에 부착돼 있고, 날 방향도 코너를 도는 방향인 왼쪽으로 휘어져 있지. 또 날을 바닥 쪽으로 살짝 볼록하게 만들어 좁은 반경의 곡선을 돌고 나서도 바로 치고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이렇게 날의 성형하는 방법을 ‘로그를 준다’고 말한단다.” 

“음, 매력적이에요. 스피드스케이팅도, 쇼트트랙도. 그렇지만 저의 자태를 보세요. 아름다운 에스라인과 김연아를 능가하는 관능적인 표정연기! 타고난 피겨 여왕이라고요. 홍홍홍! 자, 그럼 이제 점프를 해서 트리플 러츠를 해 볼… 아아악, 꺅!!”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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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4-02-1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태범 선수와 이상화 선수의 딴딴하고 굵은 허벅지가 어찌나 섹시해 보이던지!!!
 

   FOCUS 과학

제 2060 호/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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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건강을 위협한다

눈밭을 뒹굴며 눈싸움을 하는 연인의 모습은 영화 ‘러브스토리(미국, 1970년 작)’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 ‘러브레터(일본 1995년 작)’의 메인포스터는 설원을 배경으로 여자주인공이 죽은 남자주인공을 그리워하며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를 외치는 장면이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개봉되며 관객을 찾는 두 영화의 공통점은 하얀 눈을 배경으로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것. 흰 눈은 영화를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도 옛말. 요즘은 연인들은 눈이 오면 우산을 편다.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이다. 지난 1월 20일 내린 함박눈의 산성도는 pH 4.2로 신김치 수준. 깨끗한 눈보다 산성도가 25배 높았다.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섞인 탓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세먼지 고농도 횟수가 전년 대비 7배 이상 증가했다. 희뿌연 하늘도 이제 일상이 됐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습격 

희뿌연 하늘의 정체는 미세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의 유해성분이 대부분이고 카드뮴, 납과 같은 중금속이 섞여 있다. 이것은 자동차 매연, 난방기구, 공장 가동을 통해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탈 때 나온다. 공장이 생기고 자동차를 탄 게 한두 해가 아닌데 왜 최근 1~2년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을까. 

중국 탓이다. 중국의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석탄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중국통계연보(2011)에 따르면 중국의 석탄 의존율은 70%를 넘어섰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서 석탄 사용량이 더 늘었고 미세먼지 농도도 높아졌다. 실제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3년 1월에는 993㎍/㎥(세제곱미터 당 마이크로그램), 10월에는 407㎍/㎥에 달했다. WHO 권고 기준인 25㎍/㎥와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농도로 연료사용이 많은 겨울에 특히 높았다. 

이것이 서풍이나 북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와 오염물질과 합쳐지고 축척되면서 뿌연 하늘을 만든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풍이나 북서풍이 불 때 국내 미세먼지 농도가 평균 44.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를 타고 온 몸으로 침투하는 미세먼지 

미세먼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일반적인 먼지는 코털이나 기관지 점막에서 대부분 걸러져 배출된다. 하지만 미세먼지(PM10)는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1/10정도인 10㎛로 코, 구강,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몸에 축척된다. 여기서 PM이란 Particulate Matter(입자상물질)의 약어이며 숫자 10은 앞에서 언급된 지름 10㎛를 나타낸다. 기관지에 쌓이면 가래가 생기고 기침이 잦아진다. 또 기관지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세균이 쉽게 침투, 만성 폐질환이 있는 사람은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 

실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0㎍/㎥ 증가할 때 호흡기 질환 입원환자 수는 1.06% 늘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층에서는 8.84%나 급증했다. 특히 지름이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협심증,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의 크기가 작은 탓에 폐포를 통해 혈관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혈관이 손상되면서 협심증,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쌓이면 산소 교환을 어렵게 만들어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기오염 측정 자료와 건강보험공단의 심혈관질환 발생 건수 등을 종합해 보면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10㎍/㎥ 증가할 때 심혈관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수가 전체연령에서 1.18% 늘고, 65세 이상에서는 2.19% 증가했다. 미국암학회의 자료에서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10㎍ 증가하면 심혈관과 호흡기 질환자의 사망률이 12%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발병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연구 결과도 많다. 지난 8월, 덴마크 암학회 연구센터는 유럽 9개국 30만 명의 건강자료와 2095건의 암환자를 대상으로 미세먼지와 암 발병률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상승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은 18% 증가했다. 미세먼지도 10㎍/㎥ 늘어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이 22% 증가했다. 

조기사망위험도 커졌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롭 비렌 박사팀이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Lancet)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증가할 때마다 조기사망 확률이 7%씩 증가하였다. 서유럽 13개국 36만 7000명의 건강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피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가 모공을 막아 여드름이나 뾰루지를 유발하고 피부를 자극하면서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의 경우 미세먼지가 코 점막을 자극해 증상을 악화시킨다. 또한 두피에 미세먼지가 섞인 눈을 맞으면 모낭 세포의 활동력을 떨어뜨려 모발이 가늘어지거나 쉽게 부러지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빠진다. 

∎물은 자주 마시고 외출 뒤에는 씻는 것이 우선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가급적이면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외출을 해야 한다면 황사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눈이 올 때는 우산이나 모자를 써 직접 맞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외출 후에는 깨끗이 씻어야 한다. 몸은 물론 두피에도 미세먼지가 쌓일 수 있기 때문에 머리도 바로 감는 것이 좋다. 눈이 가려울 때는 비비지 말고 인공눈물로 씻어내고 목이 칼칼하다고 느끼면 가글을 통해 미세먼지를 뱉어내야 한다. 물을 자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미세먼지는 기관지를 통해 체내 흡수되는데 호흡기가 촉촉하면 미세먼지가 체내로 들어가지 않고 남아 있다가 가래나 코딱지 등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Tip. 초미세먼지도 막는 마스크 제대로 쓰기 

미세먼지는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기 때문에 마스크 사용은 필수! 하지만 모든 마스크가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것은 아니다. 황사용 마스크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기능이 있다. 마스크를 쓸 때는 수건이나 휴지 등을 덧대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피부와 마스크 사이가 떠 차단기능이 떨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있는 것으로 인증 받은 황사용 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홈페이지 www.mfds.go.kr→분야별 정보→바이오→의약외품 정보→게시판 내 ‘황사방지용마스크’ 허가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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