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엄마는 밥이 없다고 했고, 그래서... 저녁은 외식을 하기로 결정.
뭐 드시고 싶으신감요? 했더니 족발이 드시고 싶다신다. 족발? 흠칫... 놀랐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데....;;;;
얼라도 아니면서 무섭게 생긴 음식을 보면 겁을 먹는다. 꼬맹이적 오징어에 놀라서 이후 계속 못 먹게 된 데에도 녀석의 생김새가 큰 몫을 했지 싶다. 그 무섭게 생긴 오징어를 억지로 먹어보다가 된통 체한 게 두 차례, 이후 나와는 앙숙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바다 음식이 생선 빼고는 다 싫어졌다는..ㅡ.ㅡ;;;;
집 근처에 확장 오픈한 족발 집에 들어섰는데, 화장실에서 뜨악!
보통의 화장실은 문쪽을 바라보고 앉게 되어 있는데, 여긴 문을 등지고 앉게 되어 있다. 헉... 뭐 이래..ㅡ.ㅡ;;;
아무튼 족발, 小자 시켜서 둘이 먹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다는 게 흠이지만, 하여간 밥없이 족발만 먹어도 맛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커피 한잔 여유 있게 마시고 일어나고 싶었는데 어무이께서 서두르신다. 와이??
인간극장을 보아야 한다고, 오늘의 주인공은 대전 중문교회의 장경동 목사님이시란다.
호곡, 그렇단 말야???
기독교 방송을 벼얼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간혹 오가다가 어무이께서 보고 계시는 장경동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 너무 재밌고 유익해서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방송국에서조차 섭외를 했겠지만...
내가 본 부분은 주영훈의 주례식에 참석하시느라 부랴부랴 기차에 오르시는 모습 부터였다. 순식간에 20분이 흘러가고 참으로 감동깊게 끝이 났으니... 월요일부터 했을 테니 못 본 분량도 찾아보리라 결심.
여기서 꽤 인상깊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옮겨 보면 이렇다.
처음 전도사 시절 목회할 때는 사례비가 월 6만원이었댄다. 월세 3만원 내고, 십일조 6천원 내고, 주정헌금 내면 한달 생활비가 2만원이었단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때는 그게 고생인 줄 모르고 즐겁게 일했다고...
한번은 아내가 주인집 김장을 도와주면서 겉 껍데기 떼어내는 것을 모았단다. 그거 모아다가 겉저리 하고 시레기국이라도 끓이려고. 그러나 속도 모르는 주인집 아낙은 "뭐 하게? 돼지 주려고?"라고 했단다.
여기서, 세 가지를 깨달으셨다고 한다.
첫째는, 생각 없이 뱉은 말이 남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구나...였고,
둘째는, 생각 없이 뱉은 말에 상처 받지 말자!였단다. 상처 주려고 하는 말에도 상처 받지 말아야 할 것을,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닌데 괜히 상처 받지 말라는 것이다. (신선한 충격!!!!)
셋째는, 그 이야기를 아내가 고생할 때는 말해주지 않았단다. 그리고 살 만 해졌을 때 이야기를 해줬다는 것. 만약 그 시절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마도 나가서 돈 벌려고 했을 거라고...
고생할 때는 서러운 이야기가, 나중에는 '추억'이 되더라구...
사모님의 현명함에 혀를 내둘렀다. 고생조차 감사로 받아들인 그 미덕들에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2만 권의 장서를 구비하신 장목사님은 지금도 아날로그적 방법으로 공부를 하신단다. 검색보다도 직접 손때 묻은 자료들을 찾는 것. 아드님도 따님도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시는데, 요청을 하니 바로바로 필요한 책이 나온다. 우왓....!
직업을 계승하면 이런 점이 좋더라며... 차범근과 차두리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러고 보면, 대학교 때... 부모가 목사님인 학생이 수두룩 했다. 신학과가 아니었음에도 우리 과 30명 학생중에 24이 목사님 자녀였으니까.(발에 치일 정도랄까..ㅡ.ㅡ;;;)
사실 나도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그대로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 줄 알았다. 일종의 세뇌.;;;;교육이랄까.
아주 어려서부터 너는 사무엘처럼 서원 기도를 한 아이니까 나중에 목사가 되어야 한다...라는 얘기를 주문처럼 듣고 살았다. 어무이께서는 그게 소명이고 기쁨이고 찬양이었을 테지만, 내게는 족쇄였다.
나는 달리 내가 어떤 꿈을 가져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길이 이미 정해진 것 같아서. 엄마가 서원 기도를 한 상대는 절대자였고, 내 신앙 안에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거였다. 그래서 나는, 참 많이 방황도 하고 절망도 했더랬다. 난 싫어, 못해! 라고 하기엔 '불순종'의 두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게, 그리고 두 배의 시간을 들여서 졸업을 앞둔 4학년, 교생 실습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였다. 곧 졸업인데, 모든 게 너무 막막했다.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를 몰랐다. 그 무렵, 지도 교수님 한분과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지나가는 소리로 차례대로 상담 와라! 하셨는데, 아무도 안 가는 것을 혼자 갔더라는...;;;;; 순진했지....ㆀ)
그때 솔직히 이래서 힘들고 혼란스럽다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 너무나 가벼운 어조로 말씀하신다.
네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너는 그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네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면 그 길은 네 길이 아니다.
한 순간, 속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불필요한 고민을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던 것. 그날 밤, 진짜 큰 용기를 내어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
나, 학교로 갈거라고...
엄마는 너무 흔쾌히, "그래라."하셨다.
헉... 반대 안 해???
김이 좀 샜지만, 아무튼 내 짐작에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돌고 돌아도 돌아올 거라고. 가 보고 나서 알거란... 그런 생각.
아마도, 엄마는 지금도 내가 당신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다. 난 여전히 그럴 뜻이(게다가 능력도) 전혀 없는데..ㅡ.ㅡ;;;;
인생, 더 살아봐야 알 테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는 내 일이 좋다.
헉.. 근데 족발 얘기하다가 왜 이런 얘기가 나왔지? 삼천포의 대가...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