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RNA, 노벨상을 휩쓸다 [제 511 호/2006-10-16]
생명체가 다음 세대로 자신의 정보를 건네주는 유전은 과학자들의 오랜 관심이었다. 과학자들은 유전을 일으키는 물질이 바로 세포 속에 들어있는 DNA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몇 바이러스는 DNA 대신 유전정보전달물질인 R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모든 생물은 DNA나 RNA의 정보로 단백질을 만들어 생체활동을 하고, 자신만의 독특함을 후대에 전한다.

그런데 지난 10월 초 발표된 올해 노벨상에서 RNA를 주제로 한 연구가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휩쓰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주제의 연구가 한 해의 노벨상을 두개씩이나 받는 일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RNA가 무엇이기에 두 분야에나 걸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됐을까?

먼저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미국 스탠퍼드대 로저 콘버그(59) 교수는 세포 내 DNA에서 RNA로 유전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규명했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로 세포의 핵 안에 있다. 이 DNA의 유전정보를 따라 RNA가 만들어지고, RNA는 핵 바깥으로 빠져나와 모든 생명 현상을 주관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이렇게 DNA에서 RNA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을 ‘전사(transcription)’라고 부르며, 이때 관여하는 RNA는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서 mRNA(messenger RNA)라고 부른다. 전사는 DNA와 RNA에 여러 효소가 달라붙어 일어나는데, 로저 콘버그 교수는 이 장면을 잡아냈다. 효모에서 전사 과정 중인 DNA, RNA, 효소의 집합체를 얼려서 분리한 후 X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로저 콘버그 교수의 연구는 전사와 관련된 집합체의 구조를 원자 단위까지 볼 수 있도록 해 향후 유전자 연구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저 콘버그 교수의 아버지인 아서 콘버그가 1959년 DNA의 복제과정을 밝혀 노벨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노벨상을 받을 당시 12살이었던 로저 콘버그는 자신도 유전자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한편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앤드루 파이어(47) 교수와 매사추세츠의대 크레이그 멜로(46) 교수는 두 가닥으로 이뤄진 이중나선 RNA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는 ‘RNA 간섭’(RNA interference)이라 불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RNA가 단순히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 뿐 아니라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RNA는 매우 안정적인 DNA와 달리 매우 활동적인 분자다. DNA를 이중 가닥의 꽉 닫힌 지퍼로 비유한다면, RNA는 단일 가닥의 열려진 지퍼다. DNA에서 RNA로 전사가 일어날 때 DNA는 RNA를 만들 수 있도록 지퍼의 중앙을 살짝 열어준다. DNA 지퍼에 꼭 맞는 RNA 지퍼 조각이 하나씩 차례차례 달라붙어 mRNA를 만든다. 전사가 끝나면 DNA는 열었던 지퍼를 황급히 닫아 유전 정보를 보존한다.

RNA는 활동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DNA, RNA와 쉽게 붙는다. 이런 성질 때문에 RNA는 생체 내에서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RNA 간섭’ 현상도 RNA의 이런 성질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 단백질 생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mRNA에 꼭 맞는 짝을 가진 RNA 조각이 있다면 그 mRNA에 달라붙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mRNA는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다.

이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꼬마선충에서다. 1998년 파이어 박사와 멜로 박사 연구팀이 우연히 단일 가닥의 RNA 염기들을 결합시킨 이중가닥의 RNA를 꼬마선충의 세포 안에 주입하자 짝이 맞는 RNA만이 특이적으로 파괴돼 유전자 발현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후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하등동물에서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에서도 RNA 간섭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RNA 간섭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과학자들은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RNA 간섭이 맹활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병은 특정 유전자의 발현 이상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에 짝을 이루는 RNA를 세포 내에 집어넣어 질병을 근원단계부터 치료할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 암 등에서도 RNA 간섭은 응용될 수 있다. 바이러스나 암세포가 해로운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도록 RNA를 넣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체에 주입해서 RNA 간섭 현상을 유도할 수 있는 소간섭 RNA(siRNA, small interfering RNA)는 많은 제약회사와 연구팀에서 신약개발 차원에서 활발히 연구 중이다.

물론 문제도 있다. 우선은 치료를 목적으로 주입한 siRNA가 생체 내에서 다른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RNA 간섭 현상이 특이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부작용의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siRNA를 생체 표적세포로 이동시킬 수단이 아직 없다는 데에 있다. 이 문제의 해결에 따라 siRNA의 활약이 달라질 것이다.

오랫동안 유전정보의 보조 역할로 여겨졌던 RNA가 올해 노벨상을 휩쓴 것은 우연히 아니다. RNA에는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기한 기능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RNA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생명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더 깊어질 것이다. RNA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글 : 김정훈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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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가 둘 다 노벨상을!
 

http://www.etnews.com/news/detail.html?id=20061010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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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서 컴퓨터 맨 위 도움말 클릭하고 정보를 보니 다행히 sp2다. 후...;;;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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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거 알려지면 부모들이 애들 과외시키고 닥달해서 점수 올릴려고 기를쓰는데요.

마노아 2006-10-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바른 가치관과 양심... 이런 것도 과외로 되나요? 그건 교육이죠. 과외도 교육이긴 한데 고것 참..;;;;;
 

동물 아이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 510 호/2006-10-13]
요즘 이런 뉴스들이 자주 들려온다. 붕어가 개보다 영리하고, 까마귀의 지능이 침팬지와 비슷하고, 돌고래의 지능이 애초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못하다더니 하는 이야기 등이다. 자료를 뒤져보다 코끼리 아이큐 150, 돌고래 190, 침팬지는 60, 제일 좋은 사람이 215라고 한다. 그런데 내 아이큐는 80이다. 거의 침팬지 수준이라는데, 난 가끔 전문적인 글들도 써 내고 있다. 그렇다고 IQ 테스트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IQ 테스트에서 그 많은 문제를 풀기가 지겨워 한 번호로 돌린 죄가 있기 때문이다.

IQ측정은 ‘시험’이기 때문에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 유리하다. 최근 발표된 여러 자료를 보면 IQ로 지능지수를 평가하는 것의 신뢰성이 흔들린다고 한다. 대안으로 EQ(감성지수), SQ(영성지수)등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들 역시 수치화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의 상황이 이런데 동물들의 IQ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어떤 학자는 동물들 지능을 IQ 대신 ‘어린아이 나이’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령 침팬지는 4살 아이 정도, 개는 3살 아이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런 식이다. 하나 요즘 애들은 조기교육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영어나 한문도 척척 읽어내고 구구단을 외기도 하니 이 측정법도 쉽지는 않다.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어떨까? 침팬지를 야생에 놓아두면 그저 천방지축 원숭이일 뿐이지만(막대기로 개미집 쑤시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조련용으로 가르치면 언어를 인식하고 혼자 장보기까지 한다. 또 사람들을 잘 관찰하다가 생전 처음 본 물통의 마개를 돌려 열기도 하고 밤도 속껍질까지 까 먹는다. 일본원숭이들도 ‘침팬지쇼’ 정도는 하고 있다. 새끼를 잃은 원숭이는 상심으로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곰들도 배고프면 일어서서 밥 달라고 일부러 박수치는 재롱을 부린다. 하이에나가 개처럼 길들여지고, 뱀이나 이구아나가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니고, 닭이나 토끼도 고양이와 똑같은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멧돼지가 달구지를 끌고, 코끼리가 사람 말을 흉내 낸다.

여러 동물들을 모아 놓으면 자기들끼리 서열(pecking order)을 정하여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알며, 공통육아가 보편적이고, 아픈 동물들끼리 동병상련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동물들이 사람을 각각 알아보고 사육사나 관람객들에게 판이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머리가 좋은 동물’이라고 부르기 보단 ‘길들이기 쉬운 동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타당하다. 게다가 어미보다 새끼가 훨씬 더 잘 길들여진다. 그렇다고 새끼가 더 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20년간의 내 사육사 경험으로 보면, 동물들의 IQ를 측정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고 필요치도 않다. 서두에서 언급한 수치는 조련사나 사육사, 동물학자 같은 누군가가 근거없이 제시한 말들이 와전되어 내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

동물들은 인간의 지능 측정 기준인 IQ와는 다른 지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잘 살아남는 지혜’다.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 전제하에 <시턴 동물기>를 보면 ‘늑대왕 로보’가 얼마나 교묘히 덫을 피해 다니고 무리를 잘 이끄는지, ‘회색곰 왈프’가 그 험난한 야생과 맞서 얼마나 영리하게 삶을 꾸려 가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야생에서 잘 살아남는 쪽으로 머리를 발달시켰을 뿐, 사람처럼 다른 이보다 우월하기 위해 머리를 쓰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물들은 생각이 많을수록 여러모로 불리해진다. 적이 가까이 오면 무조건 달리기 시작해야 하고 먹잇감이 있으면 일단 덤벼들고 보아야 한다. 호랑이가 고독에 몸부림 치고, 하이에나가 식중독을 염려하고, 사자가 먹잇감 앞에서 측은지심을 발휘한다면 그들은 그때부터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살아남기 힘들어 진다.

동물들은 지능이 낮아서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사람주변에 편안히 살던 동물들이 서서히 생각을 갖기 시작하고 마침내 자기들이 ‘벌거벗은 원숭이’인 사람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글 :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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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이큐 측정은 신뢰가 안 간다. 중학교 때 검사 결과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의 수치가 나왔는데, 3년 뒤 고등학교에 가서 받아 본 결과는 무려 -50점이었다. 3년 동안은 내가 똑똑한 줄 알았지..;;;;

비로그인 2006-10-1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중학교때는 190, 고등학교때는 140?

마노아 2006-10-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랬을 리가.ㅡ.ㅡ;;;; 거기서 -30이요..;;;;;
 

나치 핵무기!? 하이젠베르크의 변명 [제 509 호/2006-10-11]
최근 북한의 핵실험 강행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핵무기 개발은 언제나 과학의 사회적인 책임을 묻는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미국의 ‘맨하튼프로젝트’ 참여 과학자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때문에 비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맨하튼프로젝트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난 뒤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내손에는 피가 묻어있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비록 핵무기 개발에는 실패했지만 나치 독일 아래서 핵무기를 개발했던 독일 과학자들은 어땠을까? 당시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이끌었던 사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였다. 그는 1923년 22세의 나이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26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 정교수가 될 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이 젊은 천재 물리학자는 1925년 양자역학의 토대를 세우는 행렬역학을 만들고, 이어서 1927년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양자역학에 도입한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결정론적인 추론은 불가능하고, 확률론적인 추측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현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 공로로 하이젠베르크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이젠베르크는 청년운동 지도자로 적극 참가하는 등 정치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2차세계대전 중 미국 망명 권유를 뿌리치고 독일에 남아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물리연구소 소장으로 히틀러의 우라늄 계획을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이 1945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은 끝이 났다.

비록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졌지만 독일 과학자들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에 협력하려 했다는 ‘불순한 의도’에 대해 비판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이 미국보다 먼저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불순한 의도에 대한 해명’과 ‘무너진 자존심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절묘한 증언을 했다. “자신이 조국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한 양심적인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무기를 ‘안’ 만든 것이라는 얘기다.

정말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를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었을까?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성공한 원자로를 통한 플루토늄239 생산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에 대해 “자신은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폭탄이 아니라 발전소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의 그럴듯한 변명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지만, 몇몇 과학사학자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변명을 할 당시 그는 이미 미국 정부의 핵에너지 공식 보고서인 ‘스미스 보고서’(Smyth Report)’ 사본을 통해 미국 핵무기 계획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준비된 변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진위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1944년 미국 그로브즈 장군은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알소스(Alsos)’란 암호명의 특공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1945년 4월 경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우라늄클럽 과학자 10명을 체포해 영국 캠브리지 근처 팜홀이라는 시골에 6개월이 넘게 억류했다. 이곳에서 이들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비밀리에 녹음됐는데, 50년간 비밀로 분류됐던 이 자료가 90년대 후반 공개됐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 후 이들이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들어보자.

한 : 그들은 우리보다 50년 정도 앞서 있었어. 어떻게 30kg 정도의 순수한 우라늄 235를 가지고 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이젠베르크 자네는 왜 2톤이 필요하다고 했었나?
하이젠베르크 : 그들은 아마 우리가 모르는 동위원소 분리법을 사용했던 것 같아.
디브너 : 우리가 실패한 이유는 관리들이 즉각적인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미국처럼 장기적인 정책을 펴지 못한 게 우리가 진 원인이야.
바이체커 : 우리도 그들에 근접하긴 했지만, 결국 전쟁 중 완성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잖아.
하이젠베르크 : 나는 우리가 우라늄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가 폭탄을 만들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한 적 없네. 나는 그것이 폭탄이 아니라는 사실이 심장 밑에서부터 기뻤을 뿐이야.

대화를 통해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독일의 과학자들이 적어도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이론적 실수를 범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안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보다는, ‘만들려고 했어도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더 적절하다.

그럼 하이젠베르크가 나치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한 후 ‘선량한 독일인’들이 독일의 정권을 되찾게 되었을 때 독일의 과학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의도가 나치가 아닌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결정이 사회와 정치에 가져올지도 모르는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았던 점은 비판의 대상이다. 과학자가 과학의 정치적인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지금 북한의 핵실험에 참여한 과학자 중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과학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글 : 안형준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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