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약속이나 모임이 뜸해졌다. 언제부터였더라? 아마도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그런 거 같다. 한 때는 부모님께서 제발 주말에는 집에 좀 있어라,라는 푸념까지 들었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점점 나가는 게 귀찮아졌다.

   그래도 늘 정해진 모임은 일단, 선생님들과의 공부 모임인 모두아름다운아이들. 다음엔 공부방 교사모임. 그 다음엔 아이들과 지난 1년간 꾸린 독서토론동아리. 이 모임들은 내가 아주 사랑하는 모임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밖에 부정기적인 모임들.

   학교엔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있는데, 나는 노동조합(수구언론 찌라시들이 말하는 '빨갱이 전교조')의 공식모임에만 참여할 뿐 어느 형태의 모임에도 가지 않는다. 가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지는 걸 부담스러워 하게 된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거의 가지 않는다. (좋긴 하지만, 놀고 오면 그냥 속이 허하다.)  특히, 학부모들이 만나자는 모임은 저번 페이퍼에서도 말했지만 질색이다. (교사가 학생의 문제를 학부모와 의논해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꼭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보면 되지 밖에서 만나야 할 이유는 뭔가?-교사의 홈그라운드라 부담스러우신가?)

   내일도 약간 부담스러운 모임이 생겼다. 고등학교 총동창회 집행부 모임! (학연으로 얽매이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임이다.) 내가 저기에 가는 사연은 이렇다.

   나는 2년전부터 모교에 근무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촌스럽고 약간 낡은 학교가 참 좋다. 그러나 모교에 근무하는 단점은 은근히 사람들이 기대한다는 것!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모교에 왔으니 뭔가 힘들고 귀찮고 어려운 일은 먼저 나서주겠지, 하는 떠맡기에 대한 기대말이다. 나? 그러나,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선배로 이 학교에 온 게 아니라, 교사로 이 학교에 부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와 동창회 업무는 피해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일 자체도 무척 싫었으나, 학교로 찾아오는 선배들을 보면서 아무 조건 없이 후배들을 위해 자기 몸으로, 돈으로 헌신하는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걸 느낀 게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다.

   그런 동창회가 올해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내일 모임을 한다며 연락이 왔다. 나보다도 한참 선배들이라 내가 낄 자리도 아닌데, 동창회 사업으로 지급하는 재학생 장학금 문제를 좀 의논하고 싶다고 오라고 했다. 어떤 기준이 가장 좋은지 현장에서 근무하는 후배의 의견이 가장 정확하지 않겠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굳이 내가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도 우리집에서는 한참 먼 범내골이라는데... 그래도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간다고 말씀드렸다.

   그게 내일이다. 저녁 7시. 약속은 했으니 무조건 간다. 모르겠다. 나도 선배들처럼 몸으로라도 때워야겠다.

   * 이 글 보고 오해할 분들도 계신 것 같아 사족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알리딘 부산 모임에 초대를 받고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그냥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서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등산 가셨던 어머니께서 눈길에 미끄러져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셨다. 학교 근처의 병원에 계신데, 지난 월요일에 수술을 받으셨다. 눈물까지는 아니고, 아쉬움을 머금고 다음 모임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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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2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가 젊은날의 깨달음에서 <저 도도한 패거리 문화가 만드는 억압과 불평등, 무사상과 무실천의 야만을 당당하게 갈아 엎어라.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자를 스승은 커녕 벗으로도 삼지 말라. 젊은 벗이여, 굽히지 말라>고 하는 말을 참 반갑게 들었습니다. 정말 의미없는 모임들 많죠. 저도 내일 모임 하나(보충수업 마무리 모임이래나 뭐래나, 그것도 남의 학교에서) 도망쳐서 피아노 배우러 갈 겁니다.^^ 다음 모임엔 함 봅시다. 복이가 협조해 주셔얄텐데... 어머님의 쾌유를... 복이와 사모님의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기원합니다.^^

드팀전 2007-01-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임 별로 안좋아하지요.특히 회사 회식은 기를 쓰고 도망다녔습니다.대개 맨 구석자리에 있다가 술들 취하고 1차정리할 때쯤 슬쩍 사라졌습니다.그런데...그게 언젠가는 다 뽀록이 납니다.언젠가는 회사 부장이 1차를 할 때 제가 카드를 주더군요.니가 계산하고 2차까지 정리해라..이러면서.ㅜㅜ 이거 딱 걸린거다 싶었지요.하지만 제가 누굽니까...전 그래도 도망을 가야했습니다.그래서 부장이 거의 헤롱헤롱 비몽사몽하는 틈을 타서 술 잘 먹고 끝까지 가는 후배에게 카드를 넘겨주고 도망갔습니다.다음 날...그 후배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받았지요.그리고 부장에게 카드를 돌려주러갔습니다.아직도 술냄새가 풀풀나는 부장이 '어..그래.어제 몇 차까지 갔나?" 대충 그러길래.."예..2차까지 대충 계산하고 나머지 그냥 알아서들 3차가고 그랬습니다." 카드로는 2차까지만 계산했습니다." 부장..여전히 헤롱거리며 '그래..수고했다.그래도 어제는 안 도망가고 할 일을 좀 했구만." ...."넵" ( ㅋㅋㅋ )....
그 후에도 전 회사 회식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물론 회사에서도 몇 몇 마음맞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즐기지만..그것도 신데렐라이다 보니..^^

느티나무 2007-01-26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피아노 배우시는 군요. 멋있습니다. 저도 내일 보충수업 마지막 날이지요. 얼른 집에 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는데...
드팀전님은 역시 머리가 좋으신 듯! 그나마 학교는 저 정도 분위기(카드 맡기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한결 낫네요. 얼마 전에 보니 직장인들이 싫어하는 날의 상위권에 회식하는 날이 있더군요. ^^ ;; 웃었습니다.
아, 오늘 모임, 나름대로 의미 있었는데, 집에 오니 10시더군요. 왜 그리도 시간이 아까운지...(집에 있어도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런 날은 시간이 무지 아깝다고 느껴집니다.)

글샘 2007-01-2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교가 집에서 아주 가깝고, 공립고등학교인데요, 별로 안 가고 싶습니다. 부담스럽거든요. 요 전에 이동할 때 교감샘이 전화까지 몇 번 와서 쓰라고 했는데, 저는 11군데 모두 모교는 못 쓰겠더라구요. 남의 학교가 편하죠. ^^
한국의 회식 문화는 <검은 돈>과 <연줄>이 얽혀 빚어낸 기형적인 非문화적 양태라고 생각합니다. 회식이라면 같이 식사하면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힘든 일은 풀고 해야하는데, 1차에서 취하고, 2차에선 미치고, 3차에선 개가 되는 일을 문화라고 하기엔 쩍팔리죠.^^

느티나무 2007-01-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교에 근무하게 된 건 완전 우연이었어요. 아내랑 같은 학교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제가 옮긴 거죠. 그럴 때 특별전보가 되어서 선택지를 안 주던데요 ^^ (발령 받고 좀 부담은 됐었지요.) 회식...아직도 그런가요? 학교마다 분위기는 많이 다른데, 학교의 공식 회식 자리는 그 정도 분위기는 아닌데요...(제가 워낙 안 가서 잘 모르지만...그래도 학년 모임엔 가끔 갑니다.) 다른 곳이야 더욱 문외한이니 잘 모르구요. 진짜로 저러면 '문화'가 울고 갈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전화가 처음 온 게 지난 주 월요일이었지, 낯선 번호가 부재중 수신 번호로 찍혀 있었다. 보통 같으면 '꼭 필요하면 다시 오겠지' 싶어서 내버려 두는데, 그 날은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의외로 우리반 학생의 아버님! 만나자고 하신다.

   이유? 나도 잘 모르겠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는데, 나는 학교로 오시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려도 막무가내시다. 통화 내내 어떻게 하면 예의를 지키면서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할까,를 고민하다가 이상한 결론이 나버렸다.

   미리 잡아둔 일정이 있어서 이번 주는 불가능하다고 다음 주에나 생각해 보자고 했더니 어제 또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를 보고 안 받으려고 하다가 내가 너무 지나친 것 같아서 전화를 받고, 만나 뵙기 곤란하다고 다시 말씀드려도 역시나 소통이 어렵다. 덜컥, 오늘 6시에 약속을 정하셨다. 어제 전화를 끊고 나서 내내 기분이 상했다.

   알 수 없는 불쾌감! 보통 때는 5시에 학교를 나서서 집으로 가는데, 좀 있다 나서야 한다. 아~! 정말 점심도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불러 죽겠는데, 또 어떻게 저녁을 먹는단 말이야. 애기도 봐야 하는데...참 어쩔 땐 딱 잘라서 거절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어이 없는 일에도 거절을 잘 못 한다. 가끔은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

   일단 나가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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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1-1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 오셨나요? 님의 그 곤혹스러운 기분 손에 잡힐 듯 하네요. ^^

2007-01-16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7-01-1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너무 늦은 건 아닌데요... 그냥 몰라도 상관 없구요.ㅋㅋ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아래의 페이퍼에 한 대목 써 두었죠^^ 그냥 논쟁의 정리 마당에 올려볼까, 잠깐 생각했으나 뭐 해 준 것도 없는 사이에 감정만 상할까봐~! (사실, 좀 무섭다고 할까...^^;; 제가 좀 더 비겁하지요.ㅋ)
 

   마을의 맨 끝자락에 사는 지라, 소식에 어둡고 둔감하다. 조선인님 페이퍼를 보고서야 중복 리뷰에 대한 논란이 엄청나게 벌어진 사실을 알았다. 중복 리뷰에 대한 문제 제기가 목적이었으나, 표현 방식에 대한 적절성 여부 때문에 정작 문제 제기의 내용은 묻혀지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 분의 서재에 중복 리뷰 문제로 한창 논쟁이 되고 있다.

   내가 논쟁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럴 실력도 안 되고) 사실 관계를 잘 모르기도 하고(늘 그렇듯 논쟁의 이면에는 복잡한 이해(?) 관계들이 존재한다.), 논쟁으로야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 한다고 본다.(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중복 리뷰가 자기 이해 관계와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위하는 것임에도 '전체'-이 전체가 누구 일까요?-를 위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이대로 가면-반대로 그렇게 하면- 대자본의 온라인 서점이 온라인 서점을 독점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다른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중복 리뷰를 막아야 한다고 하고, 중복 리뷰를 막으면 대자본 서점이 우수 리뷰어를 독점해서 도리어 피해는 일반 소비자가 본다고 한다.

   * 논쟁에서 젤 얄미운 사람이 자기 주장 없이 심판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 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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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1-1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량 리뷰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고, 중복 리뷰에 대해서만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온당한가, 에 대한 생각 - '불량' 리뷰라는 이름을 붙인 리뷰에 어떤 논쟁이 필요하랴? 이건 아예 논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그래서 한 번 붙은 이름은 무서운 것이다.)
내 글 내 맘대로 올리는데, 웬 상관이야,에 대한 생각 - 이렇게 따지면 '불량' 리뷰를 올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의 항변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누군가가 붙인 '불량'이든 말든 내가 쓴 글 내가 올리는데, 뭔 상관이야? ^^;;(그것이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느티나무 2007-01-15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우리 편이 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보기 좀 그렇다. (나야 소심하고, 논쟁할 만한 글쓰기 수준이 안 되는지라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우리(?)끼리 말 잘 통하고, 응원하고, 좋아해 주면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여기도 논리로 논쟁하는 한 편에서는 정서적으로 여전히 '우리'라는 느낌이 강한 거 아닐까?)

느티나무 2007-01-15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수의 알라딘 마을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중복 리뷰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알라딘에 참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거 다시 한 번 느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뭐, 어떤 그런 것! 딱히 찍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나와 아무 상관더 없는데, 이번 논쟁건으로 좀 찝찝하다. ^^

2007-01-15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7-01-1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만약 이번에 문제를 제기하신 분이 알라딘에서 오래 활동하시고, 아는 지인들도 많고 그랬다면 이렇게 논란이 일방적으로 정리되었을까 하는 생각이요. 정혜신님의 글인가에서 본 건 같은데, 차를 몰고 갈 때 차선을 자기가 바꾸면 다 이해가 되고, 남이 하면 안 듣겠지만 무지하게 욕하는 게, 행동을 평가할 때 의도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더라구요.(이건 출처와 내용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엔 충분히 논란이 되고,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 제기였는데 안타깝습니다. 평소, 알라딘마을답게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물론 충분히 멋지게 대응하신 분들도 있었지만요...) 자기가 아는 알라딘의 누군가가 '당했다'-이름이 나왔다 정도 였겠지요-고 받아들이니까 당한 대로 갚아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느티나무 2007-01-1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적으로 세 분이 서재를 떠났다,고 말씀하시면서 안타까워 하신 분들도 많으시던데... 물론 그렇기는 한데요. 어쨌든 판단은 그 분들의 몫이지 않을까요?(제가 그 분들을 잘 몰라서 이렇게 '객관'을 가장한 주관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따라서 '알라딘에서 내가 잘 아는 누군가가 상처받아서 서재 문을 닫게 만든 나쁜 X(들)'이라고, '나쁜 X'을 쫓아내고 마을의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으로 이 논쟁의 결과를 정리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 우려스럽습니다.(<--누가 그랬냐고 물으시면 딱히 누구라고는 말 못하겠는데요, 그냥 어쩌다 논쟁을 보게 된 느낌이 그랬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분위기라는 거 있잖아요 ^^ 뭐, 물론 제 맘대로의 해석이었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슬쩍 치고 빠지기 ^^;;)

프레이야 2007-01-1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오랜만이에요. 부산 사시는 줄 알면서 잊고 있었네요.
새해에도 좋은 일 많이 엮으시기 바랍니다.^^
참, 이번 논쟁건 보며 저도 느낀 게 많아요. 중복리뷰는 딱 두 번 올린 적이 있지만요... 출판사측 블로그와 알라딘에요.. 그걸 떠나서 사람들의 여러가지 태도에 대해서지요. 저도 회색 같아요 ㅎㅎ

느티나무 2007-01-1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논쟁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넋두리였어요. 이번 부산 모임의 초대장을 받아들고 고민을 하고 있어요. ^^;; 제가 중복리뷰를 쓰고 있느냐, 아니면 어떠한 이유에서든 중복리뷰를 쓰고 있지 않았느냐가 자기 태도를 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겠지요 ^^(뭐 아닌 사람도 있었겠지만...)

느티나무 2007-01-1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진지하게 중복 리뷰에 대해 고민해 보고 중복리뷰를 써야겠다고 결정한 사람보다는 그냥, 하다 보니, 중복 리뷰를 쓰게 된 사람들도 많을텐데, 그 사람들에게 중복리뷰, 문제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는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고 봐요. 적어도 논쟁할 가치는요. 그러면 자기 행위를 되짚어 볼 기회도 되잖아요. 또 중복 리뷰를 쓰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어떤 파장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이야기하게 되고... 그런데 오히려 만들어진 결과를 마치 자기가 그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태도는 좀 아니라고 봅니다.

느티나무 2007-01-1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행위의 합리화를 위해 다른 공익적 목적으로 포장하는 거 아닐까요? 결론은 똑같더라도 아닌 건 아닌거죠. 결국 중복 리뷰는 문제가 안 된다, 라는 결론이 똑같을지라도 왜 문제가 안 되지, 라는 물음에 남에게 폐를 주는 행동은 아니니까,라는 자기 성찰을 과정을 거쳤으면 더 좋았을 것을요. (아, 논쟁 중에 이런 성찰 하신 분도 많으시겠지요. 제가 잘 몰라서요. 어디까지나 그냥 제 느낌이 그랬다는 말이니, 오해 없으셨으면 해요. 그래도 기분 나쁘시면 모른 척 해 주세요^^)

느티나무 2007-01-1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배혜경님, 반갑습니다. 저는 특히 옆지기님과 함께 하시는 글(사진과 글)에 생각거리가 참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며칠 전부터 아내랑 가야산 남산제일봉으로 산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남산제일봉 입구에 있는 청량사에서 시작해서 남산제일봉에 오르고, 해안사 아래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은 해인사와 주변 암자를 여유있게 둘러 보고 올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박을 하는 건 우리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진복이를 돌봐 주시기로 했기 때문에 허락이 있어야 한다.)되어서 당일 산행으로 바뀌었다. 대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남산제일봉은 부산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무척 힘든 곳이라 부모님께 하루만 낡은 자가용도 빌렸다.

   산행 준비물을 대충 다 챙겨두었고, 미리 사전 조사도 좀 해 두어서 가는 길에 현풍나들목에서 나와 유명한 곰탕집에서 아침을 먹고, 남산제일봉 산행을 한 다음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렸고 현풍 나들목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초록색 액체(부동액)를 내뱉고 있었다. 예감은 안 좋았지만, 보험사에 연락을 해서 일단 견인 조치를 했다. 현풍에 있는 정비센터에서 여러가지 점검을 해 보더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한 세 시간 정도 수리를 해야한다고 했다. (얼굴에 성실이라고 써 붙여놓은 사장님이 믿음직스럽게 말씀하셔서 좋았다.)

   세 시간이라... 좀 난감했다. 현풍은 그냥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도 예정대로 산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가 여행가고 있다는 걸 아신 사장님이 정비센터 차를 빌려 주겠다고 했다. 멀리 가는 건 어렵고 가까운 곳에서 일단 아침 먹고, 근처의 비슬산 휴양림에나 다녀오라고 하셨다.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일단 차를 빌리고, 읍내의 곰탕집을 찾아갔다.

   곰탕 치고는 비쌌지만, 국물 맛이 진하고 부드러워 아내는 꽤 만족했다. 그래도 시간이 꽤 남았는지라 사진기 챙겨 들고, 예전부터 현풍에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도동서원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재를 넘고 나니 안온한 시골 마을이 펼쳐지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도동서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의 5대 유학자인 김굉필을 기리는 사당과 함께 근처의 유생들이 공부했던 서원으로 사액서원이었다. 서원 앞에 400년 된 은행나무도 장관이었고 특히, 건물을 올리기 위한 석축의 기단부를 짜 맞춘 솜씨가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웠다.햇볕이 들어 따뜻하고, 사람 없어 한적한 도동서원에 앉아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사진기의 배터리가 나갔다. 아내와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최근에 우리집의 가전제품이 모조리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났었고, 오늘 자가용에다 사진기까지 ^^)

   도동서원에서 나와 이번에는 유가사와 비슬산으로 향했다. 비슬산에는 휴양림의 얼음공원이 볼 만하다는 정비센터 직원의 말 때문을 들른 곳인데, 실망 그 자체였다.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간 시간과 주차료, 입장료 모든 게 아깝더라. 얼른 방향을 유가사 쪽으로 향했으나 유가사 입구에서 그냥 차를 돌리고 말았다.

   정비센터에 들르기 전에 우리가 쓴 기름을 채워넣고 돌아왔다. 그러나 차는 한창 조립하는 중이었다. 그냥 서 있기 뭐해서 이번에는 마을 구경을 나섰다. 마침, 당당한 고가(古家)가 눈에 띄어 그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여느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내려왔다. 돌아오니 오후 3시 30분 수리가 얼추 끝났다. 차를 건네 받고 진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해가 곧 질테니 시간이 별로 없었다. 돌아오는 길, 거기서 가까운 관룡사 아래의 쌈밥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창녕과 영산 사이, 화왕산 아래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관룡사는 아내와 가끔 갔던 곳이다. 관룡사에 닿으니 해가 곧 지려고 했다. 절에는 답사를 나온 듯한 대학생 일행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절을 휑하니 둘러 보고, 용선대로 향했다. 이른 아침, 해가 뜰 때의 용선대는 진짜 장관이지만, 해가 다 기울어가는 때도 온 하늘에 붉으스름한 기운이 퍼져 멋있었다. 우리 뒤를 이어 절에서 본 학생들이 올라왔다. 내가 단체사진을 찍어줬더니, 답례로 관룡산을 배경으로 해서 아내와 나의 즉석사진을 찍어줬다.

   용선대를 내려와 절 입구에 서 있는 창녕 석장승을 살펴 보았다. 매번 관룡사에 올 때마다 제대로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 꼭 보리라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보게 되어 다행이다. 잘 생겼다는 소문대로 깔끔한 모습이다.

   드디어 해는 완전히 졌고, 저녁을 먹기로 한 곳에 도착했다. 갓 지은 밥을 온갖 쌈과 집된장, 산나물을 반찬으로 해서 맛나게 먹었다. 배가 불러도 숭늉까지 다 마시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도 별로 막히지 않아 예상한 대로 도착했다.

   차 고치러 떠난 여행인 셈이 되고 말았나? 그랬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먹고, 함께 다니면서 행복한 추억거리를 만들었으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래저래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던 듯 하다.

 * 아내는 남산제일봉의 그 멋진 경치가 못내 그리운가 보다. 공부하는 선생님들이랑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얘기를 꺼낸다. 언젠가 그런 날이 다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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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품을 닮은 지리산, 그 속에 아름다운 절을 찾아서

  왜 지리산인가? 지리산의 모습은 한국인의 속으로 정 많은 심성과 닮았다. 그 깊이와 폭을 가늠할 수 없으면서도, 언제나 후덕하고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리산에도 그 속에 품은 절이 없다면, 그 절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사람들의 흔적이 없다면, 지리산도 우리나라 사람의 참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리산과 그 품안의 절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미래까지도 오롯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지리산 성모설화의 배경인 노고단,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에 지어진 쌍계사,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그 절의 속살을 채운 고려와 조선의 유적들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물 맑은 섬진강, 쌍계사의 벚꽃 길, 연곡사의 계단식 논밭, 천은사의 석축은 현재를 일구어 가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준다. 실상사 주변의 생태 논밭과 그 절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동 쌍계사의 벚꽃과 쌍계 - 지리산의 계곡이 품은 절

  봄날,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전라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끝의 화개 장터에서 시작된 벚꽃이 말 그대로 십리. 벚꽃 길의 벚꽃만큼이나 사람도 많다. 모두 어우러져 장관이다. 그러나 어느 때 가도 기본은 갖춘 절이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계곡으로 이름난 절이다. 쌍계사는 최치원이 '쌍계'라는 석문을 써서도, 섬진강 그림자를 본 딴 팔영루 때문도, 절집이 우아하거나 아름다워서 이름이 높은 게 아니다. 오직 쌍계사의 그 이름처럼 절을 깊게 두르고 있는 두 계곡(=쌍계)이 이름값을 한다.
  심지어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한 "진감선사 부도비"도 보통의 관광객에겐 별로 의미가 없다. 오히려 담장에 기와 조각을 넣어 만든 소박한 꽃문양이 우리나라 사람의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성품과 더 닮았다.
  쌍계사가 이름 높은 이유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비경인 불일폭포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물을 받아 잘 자라는 녹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번잡한 것을 싫어한다면 쌍계사는 들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벚꽃이 핀다면, 그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벚꽃 길을 걸어보는 맛도 있다. 차로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벚꽃 길을 걸으면 산 중턱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차밭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참, 그리고 범종각 앞에 소담스럽게 핀 연보랏빛 수국과 절집 담장을 따라 핀 천리향, 분홍 꽃빛이 든든한 배롱나무, 그리고 흔하디흔한 나리꽃도 좋은 물과 함께 해서 그런지 참 예쁘다.

 

구례 연곡사의 부도 - 나라 안 최고 작품 두 가지

  연곡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안 최고 작품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아골에 펼쳐진 계단식 논밭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돌조각품인 부도이다.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단풍이 곱다는 피아골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산 중턱에 어떻게 저런 곳에도 밭을 일구었을까 싶은 산중턱의 밭들이 나온다. 층이 많은 곳은 100여 층도 넘는다고 하니 농부들의 지혜가 사뭇 놀라울 따름이다.  
  쌍계사가 계곡의 절이라면 연곡사는 부도(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넣어둔 돌조각)의 고향 같은 절이다. 우리나라 모든 부도의 아름다움이 이곳 연곡사에서 나와 다시 이곳에 모인다. 지리산 피아골에 사는 사람들의 억센 기운을 보여주는 계단식 논밭을 거슬러 올라 피아골 적당한 중턱에 자리 잡은 연곡사는 공간이 넓지 않음에도 규모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아마도 담장이나 번잡한 무엇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앞 꽃밭이 정갈하게 가꿔져서 절 주인의 정갈한 솜씨가 배어난다.
  우리나라의 최고 수준의 부도는 대적광전의 산기슭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름은 건물의 동쪽에 있어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는 아마도 탑으로 치면 불국사 석가탑의 엄정함과 단아함, 다보탑의 화려함과 산뜻함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것 같다. 차갑고 시커먼 돌덩이에 이렇게 환상적이고 멋진 옷을 입혀놓을 수가 있을까 싶다. 연곡사 동부도만으로도 한국 전통 예술의 자랑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다. 돌에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부도의 아름다움은 바로 위의 북부도와 반대편의 서부도, 그리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부도들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부도들은 줄을 잘 못 서서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이들도 다른 곳에 있었으면 그래도 꽤 괜찮은 평을 들었을 텐데, 사람들이 연곡사 동부도를 보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눈이 높아져서) 평가가 박하다. 

 

구례 천은사 - 아름다운 전설과 우아하고 정갈한 분위기

  천은사(泉隱寺-샘이 숨은 절이라는 뜻이다.)는 분위기의 절이다. 그리고 자리 잡음의 절이기도 하다. 이 절집의 분위기는 절집 앞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호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절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지리산의 끝자락인 노고단 아래에 푹 둘러친 곳에 앉은 것도 그렇고, 절집의 공간을 끌어당기기 위해 일주문 옆에 헛담(담의 기능을 하지 않는 담)을 세운 것도 그렇다.
  천은사에서는 입구의 감로수(甘露水)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 한숨 돌리고 감로수를 마시며 천은사의 전설을 들어야 절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천은사의 원래 이름이 감로사였다. 그 감로수 때문에 절이 세워진 것인데, 그 물에서 뱀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 사는 스님들이 그 뱀을 잡아서 죽였더니 이제는 절에 화기가 일어 불이 자주 났다. 이 때 조선시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 라는 편액을 마치 물이 흘러가는 듯한 글자체로 쓴 이후부터는 절에 불이 한 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는 것이 자연석을 아주 잘 써서 건물의 터를 잡고, 공간 배체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천은사의 돌담과 돌계단이 오랜 세월에 잘 갈린 것처럼 둥글둥글하며 적당히 색이 바랬고(사실 은행잎이 노란 가을엔 천왕문 뒤에 선 은행나무 때문에-지천이 노란색이다- 정말 장관이다.) 알맞게 높으며 또 곧다.
  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보제루’의 기둥 쓰는 법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지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스님들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에 보제루에 앉아서 현판을 쓴 호남 명필 "창암 이삼만"을 떠올리며 지리산을 바라보면 좋다. 아픈 몸으로도 평생 벼루 10개를 붓으로 뚫고 천 개의 붓을 사용했다는 사람이 이삼만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저 정도의 글씨가 나오려면 보통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천은사 담벼락에 곱게 핀 능소화가 천은사 분위기를 닮아 유달리 우아하고 정갈하다. 

 

남원 실상사 -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희망의 공동체

  천은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차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성삼재에 차를 두고 잠시 야생화의 천국인 노고단을 올라보는 것도 좋다. 10년도 넘게 걸린 야생화 복원 프로그램 덕에 겨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는 한 노고단에서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운해를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성삼재를 지나 도로를 달리면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은 그 유명한 춘향이의 고향이고, 이곳 남원과 이웃 동네 함양 어름엔 흥부/놀부 형제가 살았다는 곳으로 우리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남원읍에서는 꽤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 지리산의 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 앞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바로 돌장승이 서 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해 온 삶의 모습 그대로, 익살이 잔뜩 묻어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실상사 주변의 논과 밭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실험실이다. 실상사에서 운영해 온 귀농학교 출신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다양한 생태 농업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사에서 눈여겨 볼 보물은 보광전 앞의 동서 3층 석탑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탑인 석가탑과 다보탑의 상륜부(탑의 맨 꼭대기를 해당하는 부분)를 복원할 때 그 원형을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이곳 실상사의 동서 3층 석탑 상륜부를 본 따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석가탑의 모습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상사에도 멋진 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절에는 ‘이것을 봐야 한다.’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실상사를 찾는 이유는 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씨가 좋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생명체의 한 그물로 얽혀있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드라망’ 공동체 운동의 중심인 실상사답게 수행자만을 위한 절이 아니라 낯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절이다. 그런 마음들은 생태 뒷간을 비롯해서 절집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미래의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갈 젊은 스님들이 치열하게 고뇌하는 절! 작은 배려로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 줄 아는 절! 절도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절! 아직은 겉멋이 들지 않아 풋풋한 사람 냄새가 나는 절이 바로 실상사이다. 
그래도 실상사에서 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실망한 사람은 실상사에 속한 실상사 백장암으로 가면 된다. 백장암은 실상사로부터 약 6-7킬로미터 떨어진 산 속에 있는데 우리나라 조상들이 얼마나 돌을 기막히게 다루었는지를 실증한 탑이 있다. 깊은 산 중에 제대로 기단(탑의 밑받침)도 갖추지 못한 탑이 국보 제 10호! 이 탑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은 연곡사 동부도에나 비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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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1-0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보니 지리산의 모습이 맘속에 환히 더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연곡사는 가본지 꽤 됐네요. 퍼갈게요.

마노아 2007-01-0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사여행을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가보았던 지리산 일대의 사찰이네요. 유독 반갑습니다. 저도 바람돌이님처럼 퍼갈게요. 정리를 아주 잘 해주셨어요^^

느티나무 2007-01-0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마노아님 퍼 가신다니 부끄럽구요. 연곡사 동부도는 진짜 최고지요.^^ 아는 분이 외국인에게 소개할 경우가 있다고 하셔서, 그냥 써 봤어요~!!

2007-01-07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7-01-0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 주신 님, 좋은 글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 곳으로 여행 다녀 보시면 제 글이 실상에 턱 없이 못 미친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