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진복이가 어제 수술을 받았다. 지난 20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었는데, 한 나흘 전부터 감기가 왔는지 열이 올라서 정해 둔 수술 날짜를 미뤘다. 그래서 다시 잡은 날이, 1월 30일, 바로 어제였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차곡차곡 준비해 온 덕분에 29일 오전에 서울로 편하게 올라왔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진복이가 계속 잤기 때문에 좀 편했다. 입원 시간이 오후 3시 이후라 서울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했다. 녀석은 모든 게 신기한 지 환자복을 입고도 복도를 내내 신나게 걸어다녔다.(지나다시는 분들이 귀엽다고 다들 칭찬해 주셨다.)

   아내와 나는 한 열흘 정도의 입원 생활을 각오하고 왔는데, 전날 밤에 의사 선생님을 면담해 보니 그 정도까지는 걸리지 않겠다고 하셨다.(요도하열이 심하지 않아서 5-7일 정도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야 할 시간. 진짜 힘든 건 이때부터였다. 4인실에 배정을 받았는데, 밤새 진짜 힘들었다. 같은 병실의 다른 분들은 입원 생활이 익숙하신 지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부스럭거리고, 코를 골고, 전화벨이 울리고(옆에 계시던 할머님의 전화기가 압권이었다. - 한 시간 간격으로 "O시 입니다."라는 알람이 계속 울렸다.) 새벽엔 애기가 빽빽 울었다. 

   우리 가족은 좀 어리숙하게 구석에서 쥐죽은 듯이 지냈다. 저녁에 그렇게 걸어다니던 진복이도 밤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그럭저럭 잘 자는데, 예민한 아내는 거의 잠을 못 자고, 잠귀가 아주 먼 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다.(또 새벽 6시부터 금식이라 5시 반에 일어나 분유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예상 수술 시간은 오전 12시. 아침부터 하나하나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당연, 금식은 새벽부터 시작되었고, 오전에는 수액을 손에 꽂았다. 꽂는 내내 많이 아팠는지 꽤 울었다. 11시 30분에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다. 녀석은 수술실로 가는 내내 불안한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자꾸 보챘다. 나는 마취실 앞에서 아내와 진복이만 남겨두고 왔다.

   오후 3시 30분. 수술이 끝나고 회복시간을 거쳐 입원실로 이동한다는 방송이 나와서 반사적으로 달려가 보니 진복이가 약간 멍한 상태로 우리를 쳐다 봤다. 생각보다 훨씬 씩씩했다. 거의 병실에 와서야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날 밤의 고통 때문에 1인실로 옮기면 좋겠다고 했는데, 오전에는 없다고 하더니 진복이가 수술실에서 나오니까 바로 1인실이 생겨서 그리로 옮겼다.(수술하고 난 밤에 진복이가 힘들어 할 걸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폐가 많을 것 같았다.)

   전신 마취 수술하고 나서부터는 폐가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도록 하기 위해 계속 가슴과 등을 두드려줘야 열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팔이 아프도록 두드렸다. 진복이도 바짝 입술이 타고 볼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힘들어했다. 유모차에 태워 복도를 거닐기도 하고 침대에 앉아서 등을 토닥토닥해도 기분이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진복이가 저녁부터 계속 끙끙거리고 힘들어했다. 또 저녁 때까지 소변을 보지 못해서 결국 담당 의사가 왔다. 수술한 부위를 붕대로 감아뒀는데, 붕대가 너무 꽉 조여서 피가 안 통했는지 수술 부위가 새까맣게 변했다. 의사가 붕대를 칼로 잘라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색깔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소변이 안 나와서 소변줄을 꽂으려다 오줌 구멍이 작고 애기가 힘들어해서 그만 뒀다.

   새벽 1시에 다시 소변을 보는 지 점검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소변줄을 꽂기로 했다. 의사는 1시 반에야 왔고, 여전히 소변은 안 나왔다. 진복이는 배에 오줌이 가득 차서 빵빵했다. 의사가 아랫배를 살짝 눌러주자 오줌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시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 2시 반에 진복이가 울면서 조금 소변을 봤다. 조금 시원해졌는지 울음도 그치고 잠이 들었다.

   한밤 중에 여러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선 진복이가 소변을 못 봐서 다시 수술실로 가는 내용도 있었다. 악몽이었다. 아침 8시. 일어나니, 같이 일어났던 아내가 진복이의 기저귀를 살피더니 오줌을 어찌나 많이 봤는지 기저귀가 흥건하다고 반색했다. 이제, 다행이다.

   녀석의 얼굴색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입술도 조금 촉촉하다. 이후로는 계속 오줌을 본다. 아침을 먹이고 오전부터는 계속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하지 않는 평소 모습 그대로다. 음, 오늘은 그게 좀 고맙기도 했다. 수액과 무통 주사를 달고도 씩씩하게 잘 다닌다. 덕분에 아내와 나도 한시름을 덜었다. 진복이에게 음악도 틀어주고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오후에는 부산에서 오신 장모님이 진복이를 많이 봐 주셨고, 진복이가 자는 동안에, 아내와 나는 이틀 동안 못 잔 잠을 잤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교수님의 회진 시간. 진복이 상태가 좋다시며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내일 그냥 퇴원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2월 3,4일에나 퇴원할 줄 알고 미리 기차표를 샀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냥 기분이 멍 했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저녁에도 진복이는 방안에 있는 걸 싫어하고 유모차를 타고 복도를 다니는 걸 좋아했다. 며칠 있다 보니까  가까운 곳은 싫증을 내고 해서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녀석이 수술했던 곳 근처에도 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10시 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직 퇴원이 행정적으로 시작된 건 아니지만 담당 교수님이 퇴원하라고 하셨으면 아침에 준비를 해서 12시 전후로 퇴원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조금 전에는 지금껏 돌봐 준 간호사들에게 과일을 깎아서 돌렸다. (아내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고 조금 불만이 있었다.) 낮에 잠을 잤더니 아내와 나는 잠을 못 자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껏 진짜 힘든 과정을 잘 버텨주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진복이가 대견하고 고맙다. 태어났을 때는 직장에 있느라 자주 못 가봐서 우리 애가 얼마나 씩씩한 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계속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대견스러운 지... 마음이 뭉클하다.(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백절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번에 보니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쉽게 잠 못 드는 밤이지만, 이젠 자야겠다. 내일은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조금 불편한 건 오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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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2-0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어린 진복이가 수술이라니 정말 큰일이 있었네요. 진복이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합니다. 두분도 몸과 마음 모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수술이 잘 됐고 생각보다 빨리 퇴원한다니 수술경과도 아주 좋은 것이겠죠? 그래도 다행이예요. 이제 아프지 마라 진복아!

느티나무 2008-02-02 13:34   좋아요 0 | URL
네, 보통은 열흘 정도 입원하고 심한 경우는 보름 정도? 좀 상태가 가벼운 상태는 5-7일 정도 입원한다는데, 진복이는 뭐 어찌된 셈인지 그냥 나흘만에 나왔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드팀전 2008-02-0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큰 일이 있었군요.어린 진복이가 잘 해내서 정말 다행입니다.내용을 보니까 한 동안 쉬를 못했나봐요...
예찬이도 지난 주에 수술을 했답니다.사실 수술까지는 아니구요...기저귀 안간다고 도망가다가 의자에 꿍해서...눈 꼬리 옆을 5바늘 꿰맸어요...아이가 움직이면 안된다고 해서 아내와 둘이 아이의 팔다리를 꼭 잡고 있는데...울면서 '엄마..아빠' 하는데 가슴이 아프데요.하얀 살결 사이로 실이 서걱 서걱 오고 가는 모습도 마음아팠어요........어제 실밥을 뽑았는데 생각보다 흉이 커보이지 않아서 한숨 놓았습니다.(사실 잘 모르니까 약 잘발라줘야지요)

느티나무 2008-02-02 13:36   좋아요 0 | URL
예찬이도 다쳤네요. 맞아요, 아기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서 팔다리를 잡고 있으면 아파서 버둥대는 녀석의 마음이 전해져서 부모 마음도 내려앉지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없어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노아 2008-02-02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복이가 큰일 치렀군요. 수술이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씩씩한 진복이에게 상이라도 줘야겠어요. 느티나무님도 고생 많으셨어요ㅠ.ㅠ

느티나무 2008-02-02 13:37   좋아요 0 | URL
씩씩하다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퇴원할 때는 이 녀석이 간호사들에게 '살인 미소'를 날리니까, 간호사들이 진복이가 귀엽다며 안아줬거든요. 녀석은 또 입이 헤벌레 해가지고...ㅎ 아무튼 부산에 잘 와서 푹 자고 오늘은 집에서 잘 놀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마노아님도!
 

   새해 문자를 주고 받다 툭 내뱉은 말 - 지리산 한 번 더 갈까?-이 입밖으로 나온 후에는 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섯 명을 다시 지리산으로 몰았다.

   아이들과 떠날 계획과 준비를 마쳤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력 신장 프로젝트에 응모하는데, 국어과에서도 실천 방안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갔다가 숙제를 싸 들고 집에 와서 산으로 떠나기 전날 밤을 새웠다.

   한 시간인가 졸았는데 새벽에 녀석들이 먼저 전화를 했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벌써 지나고 있었다.^^;;(다행스럽게도 약속 장소는 집앞!) 서둘러 짐을 챙기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15분 정도 늦었다. 쏟아지는 아이들의 비난! 버스 타기에 빠듯한 시간이었다.

   서부터미널에 도착해서 8시에 출발하는 진주행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진주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우리가 진주에서 갈아타야 할 버스는 9시 20분에 출발하는 거림행이다. 만약 이 버스를 놓친다면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거나 중간까지 가서 히치하이킹을 해야 한다. 나는 1시간 밖에 못 잤지만 잔뜩 긴장해서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우리가 탄 버스가 진주터미널에 9시 19분에 도착했다. 셋은 짐을 챙기고 둘은 냅다 뛰어가 거림행 버스가 출발하는지 확인하러 뛰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버스를 세울 생각이었는데, 승객이 많아서인지 2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우리가 맨 마지막으로 버스를 탔다.(장날이라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버스는 1시간 30분후 종점에 도착했다. 거림. 세석고원으로 오르는 가장 짧고 비교적 평탄한 코스다. 철쭉으로 이름난 세석인지라 봄에는 산행객이 줄을 잇는 곳인데, 지금은 겨울이라 한산했다. 내리자 마자 젓가락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가게를 기웃거렸으나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젓가락만 안 판다는 한 식당에 들어가 500원에 젓가락 20개를 사서 챙겼다.

   거림에서 세석고원까지 오르는 길은 총 6킬로미터. 약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이다. 처음 3,5킬로미터까지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아주 완만한 산길이고, 이후 1킬로미터는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가, 다시 1,5킬로미터는 완만한 길이고, 그 길의 끝에 갑자기 넓은 평원이 나오면 세석대피소까지 다 올라온 것이다.

   우리는 오르는 중간에 점심도 챙겨 먹고, 걷다가 조금만 힘들어도 계속 쉬어서 예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물론 오르막길에서는 숨을 헐떡이기도 하고, 뭉친 다리를 주무르기도 하며, 시시껄렁한 농담도 계속 주고받았고, 살짝 언 눈길을 아이젠도 없이 조심조심 올라오느라 발끝으로 걷기도 했다.

   산장에 오르니 오후 3시 45분. 언제나 개방해 두는 중앙홀에 짐을 풀고 1시간 정도 쉬었다. 이후는 저녁 준비로 바쁜 중에 산장의 숙소자리도 배정받았고 담요도 빌렸다. 찌개용 김치에 국물이 없어서 멀건 김치찌개를 먹을 뻔 했으나, 역시나 산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후한 인심 덕분에 맛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끓은 물에 헹구고 휴지로 닦기-를 끝내고 나니 산속은 어느새 캄캄한 밤이었다. 준비해 간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들고 산장 밖의 간이의자로 나왔다. 그 때 올려다본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 누구는 생전 처음이라고 했고, 누구는 지난 번에 본 보름달이 더 멋있다고 했다. 캔맥주를 홀짝이며 이 녀석들이 온갖 얘기를 한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

   숙소는 8시에 소등했다. 이후는 비몽사몽이었다. 산장에서는 코를 심하고 고는 아저씨들 때문에 잠을 설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었다. 또하나 세석은 장터목보다 난방이 형편없어서 새벽엔 좀 추웠다. 6시 30분에 몸을 일으키니 우리 말고는 거의 다 떠났다.

   재첩국을 데워 아침을 먹었다. 또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이야기. 산장에서 시끌벅적하게 얘기를 주고 받는 사람은 우리들밖에 없다. 아직 해가 온전히 뜨지 않아 쌀쌀한데도 아랑곳 없이 활기찬 웃음이 아이들의 얼굴에 번진다.

   산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8시 30분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아이젠이 필수인 눈길이었다. 그렇지만 다음 대피소가 있는 장터목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라 2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걸을 수 있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지리산의 깊음을 새삼 실감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우뚝 솟은 반야봉과 그 뒤에 삿갓 모양으로 펼쳐진 노고단은 마치 딴 세상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느꼈졌다.

   10시 30분에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바람이 많이 불지는 않았지만, 오늘 걸어야 할 길이 많은 탓에 중앙홀에서 쉬려고 했으나, 교회에서 온 학생들이 단체로 앉아 있어서 시끌벅적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가운데에 앉아서 쉬었다. 좀 눕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멍하게 앉아 있는데, 애들이 그냥 천왕봉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장터목에서 출발하면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는데 그곳만 지나면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제석봉 주변의 고사목 지대를 지날 때면 바람도 세차지만, 늘 마음이 서늘해진다. 누구 말처럼 나무들의 공동묘지를 지나고 있으니까. 제석봉 전망대에서 복숭아 통조림을 꺼내 먹었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곧 눈앞에 성큼 천왕봉이 보인다.

   11시 30분. 천왕봉 도착. 겨울에 올라와서 이렇게 따스한 천왕봉은 생전 처음이었다. 바람도 잔잔하고 햇볕이 따뜻해서 마치 봄날씨 같았다. 아이들은 신나서 사진을 찍고, 나는 싱긋 웃으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다시 통조림. 아이들은 어디서나 소란스럽다. 천왕봉에 사람이 사는 것 같다. 나는 천왕봉에서 우리가 내려가야 할 곳을 짚어 주었다.

   모두 슬슬 배가 고팠다. 11시 50분. 천왕봉을 출발했다. 점심은 아래 로터리 산장에 가야 먹을 수 있다. 양지바른 곳으로 난 산길은 눈이 녹고 있었다. 눈이 녹은 돌길은 아이젠이 무척 불편하지만 중간중간에 꼭 필요한 곳도 있었기 때문에 한참 동안이나 아이젠을 신어야 했다. 중산리로 내려오는 길은 처음이 아주 가파르지만, 정상 부근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급경사는 거의 없다.

   오후 1시 20분에 법계사 아래 로터리 산장에 도착했다. 서둘러 점심을 준비했다. 1박 2일 산행의 마지막 식사였지만, 아주 성찬이었다.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고는 따뜻한 커피도 한 잔 끓이고, 중산리의 버스시간표도 미리 확인을 해 두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달 전에 올라온 쌀바위에서 중산리로 이어지는 최단 코스를 버리고 순두류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순두류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완만한 계곡길인데, 길 전체가 응달에 있기 때문에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멀어도 빨리 내려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잡은 코스인데, 눈 때문에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이 때부터는 아이젠도 배낭에 넣어둔 상태라 또 꺼내기도 싫었다. 조심조심 내려오는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다 내려와서 본 순두류 입구의 인공조림숲은 역시나 장관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쭉쭉 뻗은 나무들!

   순두류에서 중산리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인데, 약 3킬로미터이다. 지금까지 전화가 되지 않았는데 여기는 통화가 가능했다. 곳곳에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았다. 다섯 명이 웃고 떠들고 전화하고 장난치면서 내려오니 금새 중산리에 닿았다. 중산리 입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다시 20분 정도! 사람 사는 동네로 내려오니 기분이 더 좋았다.

   5시 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여유있게 탔다. 자리에 앉자 마자 다리가 많이 아파서 신발을 벗었다. 1박 2일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이 날은 특히 많이 걸었다. 노곤한 탓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니 사방이 어둡다. 속이 약간 불편했다. 진주 시내에 들어와서도 한참 돌아서 터미널에 닿았다.

   6시 25분,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드디어 집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신경 쓸 일이 없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무겁고 이내 잠이 쏟아졌다. 불빛이 환해서 깨니 서부터미널이 가까워졌다. 언제나 터미널 근처에 오면 마음이 푸근하다. 아무리 여행이 좋았어도 항상 그랬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사람이 늘 붐빈다는 뼈다귀해장국집이 근처에 있어서 거기로 갔다. 시원한 해장국 한 그릇씩을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행복했다. 이것으로 여행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나는 오늘 심한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산에 갔다온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다.

* 같이 간 녀석들 : 유성훈, 정진우, 최광석, 황의영

* 지난 번 산행에서 디카를 잃어버린 탓에 당분간 여행 사진을 올릴 수 없다. 얼른 돈을 모아서 콤팩트형 디카라도 하나 사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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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8-01-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놈들 보고 싶다... 잘 지내시죠? 요즘 정말 재미없는 연수받고있어요. ^^

2008-01-24 0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에서 디지털 카메라 잃어 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오른 지리산 천왕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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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시험이 끝나고 주말을 이용해서 우리 반 학생들 중 희망자들과 지리산에 오르기로 했다. 지금 열심히 계획표를 짜고 있고, 이미 대피소 예약도 끝낸 상태다. 다음 주에 있을 수능 시험 잘 치고, 그 다음 주에는 장터목 산장에서 아이들과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산불방지기간이라 종주는 불가능해서 1박 2일 산행일정이다.)

□ 여행일정[1박 2일]

[첫날]

07:30-서부시외버스터미널 도착 → 07:40-진주행 시외버스 출발 → 08:55-진주시외버스터미널 도착 → 09:05-중산리행 시외버스 출발 → 10:10-중산리 버스 종점 도착 → 10:40-지리산매표소 입구 산행 시작 → 13:00-로타리 산장 도착(점심) → 15:50-천왕봉(1915m) 도착 → 17:00-장터목 산장 도착(저녁) → 18:00-숙소 배정 및 취침

[다음날]

05:30-기상 → 07:00-천왕봉 도착(일출) → 08:30-장터목산장 도착(아침) → 10:00-장터목산장 출발 → 12:30-하동바위 도착 → 13:30-백무동 야영장 도착 → 14:00 함양행 버스 출발 → 15:00 함양버스터미널도착(점심) → 16:00-부산행 버스 출발 → 18:10-사상시외버스터미널 도착 → 이후 귀가[19시 이전]

□ 일출/일몰시간(2007년 11월 23-24일/지리산 기준)

 - 일출시간 : 07:10분 / 일몰시간 : 17:18분

□ 교통비[시외버스]

부산 → 진주 : 5500원(학생 할인)    진주 → 중산 : 3800원(학생 할인)

백무 → 함양 : 2600원(학생 할인)    함양 → 부산 : 9700원(학생 할인)

교통비 합계 : 21600원

□ 숙박비

 - 산장이용료 : 8,000원(장터목산장)

 - 담요이용료 : 2,000원(2장, 1개당 1,000원)               

 - 숙박비 합계 : 1인당  10000원

□ 부식 준비(개인당)

- 햇반 3개, 라면 2개, 수저, 밑반찬(찌개용 김치-1명) 1종류, 과일통조림 1개, 물, 쌀 한 줌

□ 공통 준비물[전날 마트에서 같이 준비함]

- 작은 버너(있는 사람만), 코펠 1개(있는 사람만), 얇은 옷 두 세 겹, 장갑, 칫솔, 치약
  <전날 지리산국립공원공단에 연락해서 아이젠 필요한지 확인할 것>

- 공통 부식을 준비하기 위한 3,400원

  [즉석미역국, 장조림(통조림), 깻잎(통조림), 스팸 1캔, 커피] 



지리산 1박 2일 총비용 :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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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1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멋진 추억을 또 하나 안겨주겠군요. 기대됩니다^^

느티나무 2007-11-11 01:36   좋아요 0 | URL
이번엔 힘들어도 제대로 사진 좀 찍어 오겠습니다.^^ 아이들과는 힘들게 고생해야 다음에 오래 남겠지요?ㅋㅋ
 

   지금 운동장 전체 조례 중이다. 조례라... 나가기 싫어서 교무실 책상에 앉아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사실, 학교에 있다보면 전체 조례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다. 날도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다가, 시험도 코앞인데 그냥 안 나가는 게 좋을 듯 했는데... 나처럼 안 나가고 싶으면 버틸 수 있는 선택권(이것도 살짝 눈치가 보이는 일이긴하다.)이 없는 애들이 불쌍하다.

   날이 흐리다. 가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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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1-0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장 전체 조례요?? 오늘같은 날씨는 더더욱 애들이 불쌍하네요. 저희는 그나마 강당에 앉아서 하는지라..

느티나무 2007-11-05 11:27   좋아요 0 | URL
애들 불쌍하지요^^ 근데 괘씸하기도 해요... 수능 열 흘도 안 남았는데,라고 궁시렁궁시렁 : 근데 토요일날 자습 안 하고 도망간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한 마디 쏘아붙였어요. <니네는 유리할 때만 고3이냐?ㅋ>

BRINY 2007-11-0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