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물건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자전거를 사는데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겨우 샀다. 인터넷으로 살까 하다가 고장이 나면 대리점에서 수리를 잘 안 해 준다고 해서 학교 근처의 대리점에서 샀다.(그것도 한 번 가서 구경하고, 한 달 후에 다시 가서 산 거다. 사장님이 알아보시고, 만 원 더 깎에 주셨다.) 

   집에서 학교까지 한 1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기 귀찮아서(사실, 귀찮다기 보다는 아침에 더 일찍 나서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자전거를 샀다.(이명박이 자전거 타기를 강조하는 바람에 짜증이 확 났지만, 그래도...이명박이 주장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안 하고 싶다.) 

   직접 타고 다니니까 도로의 문제점이라든가, 자전거 전용 도로의 필요성이라든가 이런 게 몸으로 확 와 닿는다. 이런 거 제대로 하려면 정책 담당자들이 직접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어쩌다 한 번 사진이나 찍는 '쇼'에 익숙하신 분들이라 어느 세월에 해결되려나? 아무튼 환경은 열악하지만 조심해서 타고 다녀야겠다. 


내가 산 자전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부터 중간고사 기간. 늦어도 한참 늦었다. 늦게 찾아와도 중간고사 기간은 기분이 좋다. 왜냐면 오전에 시험감독만 하면 오후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각자 맡은 업무에 따라서 답안지 채점도 하고, 다음날 시험이면 문제지 검토를 최종적으로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학년 담임을 맡은 사람들은 다 같이 모일 기회가 적기 때문에(야자감독을 해야 하니, 밤마다 두 명씩은 꼭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한다.) 시험기간에 학년 담임 모임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례가 되어 있다. 

   학년모임 알러지가 있는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모임을 빠질 수 있을까, 궁리만 한다. 그러다 빠지기가 쉽지 않으면 어떻게든 1차로 빨리 끝내고 2차부터는 안면몰수하고 집으로 가려고 애를 쓴다. 

   모임을 주도하는 분들은 어디서나 그렇듯 '주당'들. 40대 후반의 남교사들이 주축이다. 자식들도 이제 다 컸고, 사모님들도 남편이 집에 일찍 오는 걸 그리 반기시지(?) 않는 연배가 된지라 어떻게든 모임을 연장해서 2차, 3차 여러 명이 어울려 다니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회식에 다 오면 서로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 그렇듯, '옛날에 우리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어법을 주로 구사한다. 항상 2차를 생각하고 장소와 시간을 주도한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으나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젊은 여선생님들. 미혼인 그들은 늦게까지 놀아도 딸린 식구가 없기 때문에 노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되나, 과히 학교의 '노땅'들과 노는 것이 그리 썩 유쾌한 것은 아니나 안면몰수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기 때문에, 다 같이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분위기를 타서 다 같이 2차를 가서나 모두 집으로 흩어지거나. 대체로 모임에서의 발언권은 약하나 단체로 움직이고, 이 집단의 참석 여부가 회식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에 주도자들이 적절하게 의견을 수용해 주는 편이다. 대신 자기 의견을 내는 것에 비교적 소극적이다.

   집에 가면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애들도 있고, 회식을 싫어하는 (나를 포함해서) 세 사람. 어떻게든 회식에 빠지기 위해서 애쓴다. 그러나 소심한 반대파로  한 두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참석하는 편. 모임에서는 자리만 채우고 있기 일쑤나(그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더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모임에 빈자리가 없어야 학교 '분위기'가 좋다는 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잘 빠지지 못한다.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으로 몰려 학교 생활을 피곤하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학년부장. 학년의 담임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그게 결국 좋은 모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회식을 즐기는 스타일. 역시 집에 가서 챙겨야 할 식구가 없기 때문에 늦는 것에 상관 없이 맘 편하게 모임을 주도할 수 있다. 대신 여자 특유의 배려심이 있어, 갈 사람은 먼저 보내자는 주의. 

   나는 항상 회식이 싫다. 옛날에도 그런 공식 모임을 아주 싫어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애들 얘기도 싫고, 학교 얘기도 싫고, 그냥 분위기를 위해 하는 싱거운 소리도 다 싫다. 지금은 거기에다 내 처지를 생각해 볼 때 더욱 회식이 싫다. 내가 평소에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데, 시험기간만이라도 집에 일찍 가서 진복이랑 놀고 싶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저녁도 먹고 싶은데 그런 날 꼭 다 같이 회식을 해야 한단다. 백 번 양보해서 그런 회식이 조직원의 의무(?)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1차로 끝내야 한다. 

   서로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제발, 회식에서 나를 좀 빼달라! 내 돈 내고 안 먹을테니, 제발 나를 좀 빼달라!! 

>> 접힌 부분 펼치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주말과 휴일은 공부방 청소년 나들이 날. 주말은 휴무토요일이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있으니 나도 학교에 있었다.  공부방 선생님들이 봉고차 두 대에 아이들을 태우고 우리 동네 맥도널드로 오신 것인 12시 30분. (아이들에게 맥도널드 햄버거 먹이는 게 좀 그랬지만, 그날 회의에 못 갔으니 달리 할 말은 없다.)  

   나도 얼른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학교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로 달려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북구빙상문화센터까지 길안내를 했고, 빙상장에 들어가니 거긴 완전 겨울 날씨! 빙상장이 녀석들이 생각한 것보다 좀 넓었는지 처음엔 쭈뼛쭈뼛하더니 들어가서 조금 있으니까 금방 좋아했다. 나도 망설이다가(다시 학교로 가야해서) 1시간만 놀아야지, 싶어서 스케이트를 탔다.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래도 너냇 번은 간 보람이 있는지 걸음마는 겨우 지났다. 

   3시 40분에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1시간 반을 자습하는 교실에 앉아 있었다. 빙상장에서 있던 아이들은 봉고차로 오래 전에 예약해 둔 금정산 학생수련원으로 갔고, 나는 뒤늦게 오는 학생 한 명을 더 데리고 수련원으로 갔다. 

   수련원에 도착하니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끼여서 식사 준비를 거들고-그래봐야 밥상을 펴고, 행주로 닦는 수준이지만- 수녀님께서 해 주신 제육볶음을 맛나게 먹었다. 이후에는 공부방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나와서 피구 시합을 했다. 난, 이런 거 하면 언제나  심판이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을 때 날이 어두워지고 야간 산행도 가기로 했기 때문에 피구 시합을 끝나서 아쉬웠다. 

   드디어 야간 산행. 지난 토요일은 마침 음력 4월 보름이라 달이 훤 했다. 수련원에서 차를 타고 북문 밑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산행을 했다. 북문까지 20분, 다시 고당봉까지 30분. 1시간 좀 넘게 걸어서 모두 고당봉에서 시내 야경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야간 산행으로도 고당봉엔 가끔 오른 적이 있었지만, 지난 토요일처럼 좋은 날은 없었다. 맑은 데다가 보름달에 둥싯 떠올라 있고 때마침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서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그러나 고당봉에서 20미터쯤 내려왔나 아무튼 새로 놓은 계단에서부터 한 녀석(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배가 아프다며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꾀병인가 싶었는데, 눈물까지 흘리는 걸로 봐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 자리에 앉아서 조금 기다려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남학생이랑 내가 번갈아서 업고 내려왔다. 북문까지 오니 먼저 내려간 선생님 한 분이 계서서 다시 그 선생님과 내가 번갈아서 업었다. 

   봉고차가 준비된 곳까지 내려와 녀석을 겨우 내려놓으니 가만히 힘을 빼고 있어도 팔이 덜덜거렸다. 그래도 숙소에 맛있는 간식이 있어서 서둘러 간식을 먹으니 시간은 벌써 10시 45분. 아내랑 약속한 시간은 밤 11시까지인데, 서둘러야 했다. 선생님들께 먼저 나가서 죄송하다고 인사드리고, 아이들과도 내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내려왔다. 

   허걱! 근데, 아직 진복이가 안 자고 있어서 녀석이랑 밤늦게까지 씨름 좀 하고, 온 가족이 늦게야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말 그대로 몸이 천근만근. 공부방 식구들은 수련원에서 내려와 이곳 구민운동장으로 내려오는 중이란다. 우리 가족은 서둘러 챙겨서 중간지점에서 공부방 식구들을 만났다. 구민운동장에 함께 도착하고 보니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운동장에서 가볍게 운동(축구)도 하고, 나무 그늘이 있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으니 좋았다. 

   중간에 도시락 배달에 좀 문제가 있어서 늦게야 점심을 먹었고, 운동장에서 3시간도 넘게 보낸 우리 가족은 또 먼저 일어섰다. 3시에 있는 고종사촌 결혼식 때문!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양복으로 갈아입고, 예식장에 도착하니 2시 50분. 진복이는 또 어찌나 신바람이 났는지 신부의 드레스를 밟으러 재빨리 뛰어가서 우리들 당황하게 했고,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다시 들어 가고를 반복해서 아예 예식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다른 친척들은 밀양에 있는 고모님댁으로 가시는데, 우리 가족만 힘들어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 한창 졸리는 진복이를 겨우 달래서 데리고 오니까 집에서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때부터 집안의 평화! 다들 서너 시간씩은 자고 일어나 늦은 저녁을 느긋하게 먹었다. 거의 며칠만에 처음으로 먹는 집밥. 아내의 김치찌개에서 어머니가 끓인 맛이 났다.

   이후로는 이틀 동안 손도 안 대고 놔둔 청소시간. 내가 빨래를 개는 동안,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내가 안방을 닦는 동안에 아내는 거실 청소를 말끔하게 해치웠다. 늦게 깨서 잘 놀던 진복이도 실컷 놀았는지 자러 들어갔고, 다시 집안이 조용해졌다. 

   그 때 새삼 느낀 온몸의 근육통!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더욱 심하다. 학교에서도 계속 앓는 소리만 내고,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꼭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일들이 잘 풀려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정말 힘든 하루가 될 뻔했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만, 그 때까지 힘들겠다. 

   아, 오늘 드디어 자전거를 샀다. 나로서는 거금인데, 본전 뽑으려면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 잘 타고 다녀야 할텐데...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5월 1일, 노동절이다. 작년 드팀전님의 서재에서 인터내셔날가를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도 검색해서 다시 들을까 하고 있었는데 아까 드팀전님의 서재로 가 보니 노동절에 대한 새 글이 올라와 있어서 냉큼 읽었다.  

* 혼자 읽고 아까워서 학교내 메신저를 통해 다른 선생님(전교조 조합원)들께도 읽어 보시라고 권했다. 아래는 선생님께 드린 쪽지글! 

* 드팀전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보실 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복도를 다니면서 '인터내셔날가'를 흥얼거리는 하루가 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노동절'의 유래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입니다.

컴퓨터를 하다가 의미 있는 글이 눈에 띄어서 같이 읽어 봐 주십사 싶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쳐왔습니다.

아래의 블로그 주소로 놀러 한 번 가 보셔요.ㅋ


http://blog.aladin.co.kr/apple21/2817635


* 요건 보너스로,


손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 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 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 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 상가처럼

외국 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 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 흐르고

프로 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

선진 조국의 종로 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 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 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노동의 새벽>(19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알라딘 메인에 자주 보이는 소가죽 필통 쿠폰에 당첨되었다. 냉큼 주문해서 오늘 저녁이면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음... 명품 수첩과 명품 도장(장서인)에 이어, 명품(?) 필통을 가지게 되었다. 알사탕 있는 걸 하루에 다 적었더니 당첨되었다. 당첨 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오늘 계정을 보니까 새 쿠폰이 있어서 뭔가 싶어 봤더니 바로 필통 쿠폰이었다. 나는 가끔 응모할 땐 꼭 내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는 거 아닌지 몰라.ㅋ 암튼, 자랑해야지.    

  • 오늘이 어머니의 음력 생신. 예순 번째다. 환갑인 셈이다. 어머니의 삶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 사연도 남들 못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며칠 있다가 이번에는 환갑 기념으로 중국여행을 가신다. 첫 해외여행이다. 이 여행도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다가 일주일 전에야 최종 결정이 되어 떠나시는 거다. 빠듯하게 사는 세 남매가 각자 형편대로 돈을 마련해서 떠나시는 첫 여행이다. 이 여행의 두 분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일, 일 밖에 모르시는 부모님,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고 아직도 당신이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팍팍한 삶은 계속 되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고된 현실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의 무사 귀환을 바래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9-04-2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남은 알사탕 몰아서 응모했을 때 당첨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님 생신 축하해요~ 첫 해외여행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패키지지요? 중국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패키지가 더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느티나무 2009-04-23 16:26   좋아요 0 | URL
아마도 마노아님의 서재에서 필통 당첨된 거 읽고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패키지인가요? 그냥 몸만 가면 되는 여행이던데... 내일 가시는 데 조금 걱정입니다. 아무튼 관심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노아 2009-04-24 13:17   좋아요 0 | URL
알사탕 몽땅 털어서 필통 당첨되신 분은 하이드님이에요. 저는 알사탕 몽땅 털어서 앨범을 받았지요. 오늘 날이 흐려서 좀 걱정이에요. 중국은 땅이 넓으니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느티나무 2009-04-24 13:46   좋아요 0 | URL
필통 받으신 분은 하이드님이셨군요.ㅎ 어디선가 봤더라 했는데, 요즘은 알라딘 서재는 잘 들여다보지 않으니까요, 마노아님인 줄 알았지 뭡니까? 부모님께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으니 무사히 출발하신 거겠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