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의 책읽기,라는 페이퍼는 머릿속에만 있었다. 방학하면 좀 진중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평소에 보관함에 담긴 책을 좀 샀었다. 그런데, 나의 여름 방학은 <나꼼수>,<운동(걷기, 수영)>,<보충수업>,<펀드>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내 여유의 전부를 소진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책 한 권 읽지 않은 날이 계속됐는데, 어떻게 8월의 책읽기를 쓸 수 있을까 싶어 9월의 책읽기와 함께 써두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오늘 책읽은 목록을 뒤적여 보니까 한 권도 안 읽은 건 아니구나, 싶어 다행이긴 하다. 

 

 

 

 

 

 

 

   분노하라, 열풍이 지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에서 일어난 열풍까지는 아니고, 미풍이 살짝 불다가 말었다. 아마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유럽의 모습이 우리의 오늘의 모습과 많이 다른 까닭일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이 유럽의 그것보다 더 열악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을텐데 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분노하는 힘마저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것도 자기합리화의 혐의가 짙다. 분노하기엔 지나치게 심약한 내 성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와, 부럽다' 이런 생각이 계속 들다가 책을 덮고 났더니, 그럼 우리는 "어떻게 분노할까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른 것 다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사자후를 토해 낼 수 있는 '노병'이 존재하는 나라가 부럽다. 우리는 누가 있어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칠 것이며, 한 사람의 외침이 청년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만들어 내고, 또 그들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데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나의 과문을 탓해야 할까 보다.

   조정래의 소설 황토를 읽었다. 올해 세 번째 읽는 조정래의 소설(불놀이, 허수아비춤). 오래 전(1970년대에)에 나온 중편 소설을 새로 고쳐 쓴 장편소설이다. 이 책의 광고처럼 소설가의 평생 화두인 굴곡의 현대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상처를 주는가를 명확하면서도 간결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과히 광고가 사기는 아닌 셈이다.(이 정도만 해도 착한 광고라고 봐줄 만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맏아들 태순이었다. 태순은 어머니와 6.25때 주둔한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을 경멸하지만, 정작 자신도 자기 어머니가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야마다라는 일본인과 살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면서 자기와 처지가 똑같은 동생에게 훨씬 더 냉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점례(어머니)를 비롯한 이 가족에게 닥친 현대사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받은 영혼들은 그들끼리 다시 상처를 주고 받는다. 이런 상황이야 말로 비극이다.

   확신의 함정은 동아리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읽었다. 조금 더 토론에 적합하도록 주제, 혹은 쟁점을 분명하게 소개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이 읽기에도 별 무리 없이 재미있게 잘 읽히는 장점이 있다. 확신의 함정, 이라는 제목은 아마 첫 번째 꼭지의 글을 설명할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배신당한 이야기-확신과 배신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를 나눠봤는데,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아마, 분위기 탓도 있었을테고, 내 설명이나 숙제가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꺼내보이기엔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상태일 수도있겠지.

   대한민국 원주민은 최규석이 그린 만화이다. 이미 최규석이 냈던 다른 만화는 꾸준히 읽어왔다. 이 책도 다른 작품처럼 대체로 우울하다.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나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읽을 가치가 있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원주민이란 근대적인 삶에 일반화되기 이전에 살았던-물론 지금도 보통은 노인이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주민과 근대인(가치의 개념은 빼고)이 공존하고 있는 이 나라의 문제는 너무 빨리 삶의 방식이 바뀐데 있다. 근 100년 전의 조선을 떠올리면 그때 그 시절의 삶과 지금의 삶의 간극이 너무도 크다. 이런 나라는 흔치 않을 거 같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나는 축복받은 사람일까? 

 

 

 

 

 

    

   이 네 편 책들의 공통점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름이 오기 전 진작에 사 둔 책이고, 시간이 좀 많았던 방학을 전후해서 호기롭게 펼친 책이었으나 점점 시들시들해져서 결국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꺼내 볼 책들이니, 아직 책장으로 보내지는 않아야겠다. 당분간은 내 책상 어느 모서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책들.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서양 철학의 흐름과 철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사기열전은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사기열전을 본 적이 있으나 거의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서 이번에 새로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사서 읽었다. 공자의 제자열전을 읽다가 지쳤다. 어느날 마음이 동하면 다시 집어들 수 있을 거다. 1,2권을 다 샀는데, 안 읽고 쌓아두면 무척 아까울 것 같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으면 소설가 김훈의 문장이 떠오른다. 당연하게도 '칼의 노래'를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진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마음 속에 벼린 칼을 품고 살았던 사람. 모래강의 신비는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었다. 아름다운 내성천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해서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여행 일정을 짜는데 꼭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꺼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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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알라딘 이벤트에도 자주 당첨되는구나!ㅋㅋ 진복이 주려고 댓글 달았는데, 신청한 도서가 온다. 다섯 권 신청했는데, 다 주시려나? (진복이 녀석, 이름처럼 진짜 복이 많은 녀석일세! 며칠 전에 어느 선생님께서 아들 이름을 어떻게 진복이로 기억하고 있냐면, 좋은 엄마 아빠 만나서 진짜 복이 많은 아이, 그래서 진복!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하셔서 어찌나 황송하던지...ㅋㅋ) 선물로 받은 책, 나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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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여름에 복이는 폐렴에 걸렸다. 조금 낫는가 싶더니 다시 감기. 이후 지금껏 계속 감기를 달고 살았다. 지금도 감기약을 먹는다.(아마 녀석이 먹은 감기약이 내가 지금껏 먹은 모든 약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 핑계로 지난 토요일에도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었다. 집에서는 컴퓨터에서 소파로, 다시 컴퓨터로 왕복운동(?)을 한다. 아마 이것들이 없으면 심심해 죽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유일한 나의 애청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지난주 특집인 ‘스피드’는 태호 피디의 천재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일요일 오전도 늦잠으로 지내다 나랑 같이 새장 같은 집에서 뒹구는 녀석이 불쌍하게 보여서 놀라가자고 했더니 좋다고 따라 나선다. 나올 때는 자전거 가게에서 타이어 공기 좀 넣고, 구민운동장 옆 자전거도로를 쉬엄쉬엄 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타이어 공기를 넣고 나서 어쩌다 보니 우리 학교로 들어왔다. 좋다고 따라오는 녀석에게 일단 자판기 코코아를 한 잔 먹이고, 빈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 역할 놀이를 했다. 녀석이 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칠판에 낙서를 한다. 제 이름만 겨우 써 놓고, 마구잡이로 선 긋기를 하고 있다. 녀석, 즐거워 보인다.

   나는 책상에 앉아 그 모습을 본다. 녀석은 학생이 되어서도 학교에서 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터트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씁쓸하게도 결론은 금방 내려진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한켠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래 내 아이만은…… 욕심을 버리자.

   학교에서 나와 태화마트에 들렀다. 평소에도 가리는 것 없이 잘 사주는 편이지만, 나랑 둘이 있을 땐 뭐든 제가 먹고 싶은 걸 골라준다. 녀석은 봉지에 사자 그림이 그려진, 카프리 썬을 집었다. 싱글벙글이다. 나도 새우깡 한 봉지를 챙겼다. 자전거에 달린 바구니에 싣고 나오다가 발견한 아파트 작은 놀이터. 녀석이 놀다가 가자고 한다. 잠시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다시 구민운동장으로 가는 길, 자전거 위에서 녀석이 말한다. “아빠, 가을 햇볕이 참 따뜻하고 좋아!” 녀석이 씩 웃는다.

   전에도 가 본 적이 있는 강가의 나무데크에 앉으니 녀석은, “아빠, 목말라!” 녀석의 뻔한 작전. “알았다, 그럼 나중에 목말라도 마실 게 없으니 참아야 한다.” “응, 당연하지” 이제 녀석은 카프리 썬을 쪽쪽 빤다. 나도 새우깡을 뜯어서 서걱서걱 먹는다. 녀석이 불안한 눈길로 나를 본다. 결국 자기 몫의 새우깡을 챙긴다. 커서도 제 몫은 챙길 녀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일까? 진짜 가을 햇볕이 따사롭다. 물결이 잦아드는 시간.

   구민운동장으로 가는 길도 도로가 새로 나서 자전거로 달리기엔 참 좋다. 녀석은 이럴 때 항상 시합을 하자고 한다. “아빠, 우리 누가 빨리 달리나 시합하자!” “왜?” “나 1등하려구!” 경쟁은 인간의 본능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잡생각은 다음에. “그래 좋아. 그럼 누가 빨리 달리나 해 보자. 준비, 시~작!” 이 말과 함께 녀석과 나는 달리기를 한다.

   운동장에 사람이 많다. 나는 잔디 위에서 축구하는 사람을 부러운 눈길로 본다. 녀석은 운동기구에 눈길이 간다. 벌써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운동기구에 매달려 있다. 이것저것 다 한 번씩 해 본다. 하다가 힘에 부치면 항상 이렇게 외친다. “아빠, 도와줘~” 그럴 때마다, 나는 “기다려, 갈게”라고 하면서 간다. 아직 녀석에겐 내가 수퍼맨이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요즘이다. 그냥 무심하게 흘려버리는 시간들, 시간들…… 방학이라고, 좀 집중해서 읽어야 할, 몇 권의 책도 펼치기 싫어서 팽개쳐둔 지도 오래. 책 한 권 펼치지 못한 시간이 한 달이 다 됐다.(그래도 가방엔 늘 책 넣고 다닌다. 왜 넣고 다닐까, 읽지도 않을 책을!)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옮겨 놓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

   특별히 긴장하지 않으면 삶은 대체로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 여기는 쪽을 향해 흘러간다.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도 실은 그렇다. 어떤 이가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어 보일 때, 그는 삶을 바꾸려드는 순간 더 큰 불행이 올 것을 예감하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이가 고난의 길을 자청하고 있을 때, 그는 그 고난을 피하면 겪게 될 마음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마음의 자질이 존경받을 만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그렇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태만하고 진부한 '편안함의 세계'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때로 이런 의문과 마주치는 것마저 피하기는 어렵다. 나는 왜 내가 아는 세상만을 살고 있나? 나는 왜 내가 아는 나로만 살아가는가? 그럴 때 어렵고 신기한 시를 읽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두꺼운 책도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어렵고 신기한 시를 읽을 때면 그런 것들은 문득 소용이 없어지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처음 보는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왜냐하면 시란 "내가 최초가 되어 최초의 사물을 바라보는 것"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이 글에 따르면 누구나 몸과 마음의 편안함의 세계를 떠나지 못한다고 하니까 나만 특별할 것은 없다. 그렇다면 왜 나는 편안함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을 나에게 던져보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늘 익숙한 질문을 던지고, 틀에 박힌 대답을 스스로에게 한다. 그걸 나 자신은 성찰, 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 그 자체이다. 물론 그 기저에는 낯선 세계에 대해 유독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내 성정 탓도 있을 게다.(성격이나 기질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장 안전한 자기합리화!)

   낯선 시는 낯선 세계.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세계 밖의 세계. 새로운 질서의 세계다. 그러니 내가 시를 읽지 못하는 것. 나는 낯선 시가 아직은, 두렵다. (아직은, 일까? 아니면 ‘영원히’ 일까?)

2011년 9월 30일,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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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수업

   역시나 보충수업. 이게 참 미묘하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었나? 안 하는 사람보다 나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을 보면서 좋게 생각하기로…… 아무튼 하루에 두 시간씩!(준비하는 거야 하루에 수업을 두 시간을 하나 네 시간을 하나 똑같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두 시간을 하니까 수업시간에도 훨씬 집중력이 생겨서 좋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수업했는데, 3학년 애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보충수업 교재가 EBS 인터넷수능이라서 동영상을 쭉 봤다. 한 번도 강의동영상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학생들은 보면 좀 어렵겠다 싶었지만, 선생님들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수업을 좀 더 충실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반성도 들었다. ‘수업시수가 너무 많아’, ‘학교 일도 얼마나 많은데’, ‘입시공부에만 매몰되는 거 아냐?’ 이런 푸념도 걱정도 다 맞고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내 몫은 다하면서 바꾸고 싶다.

   아내는 7월 18일부터 8월 12일까지, 나는 8월 1일부터 19일까지 보충수업을 했는데, 정작 진복이는 8월 1일부터 5일까지가 방학이었다. (하필이면 둘 다 출근하는데 진복이는 딱 그 때가 어린이집 방학기간!) 그래서 달랑 세 명인 가족이 방학동안 다 같이 노는 날이 없어서 여행 한 번 못 같다.(방학하는 날부터 2박 3일간 제주도에 가긴 갔었네! 거긴 장모님을 모시고 다녀왔으니 빼고.) 아무리 보충이 많은 때라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아쉽다.


폐렴

   진복이가 어린이집 방학 마지막 날(5일) 저녁부터 슬슬 감기 증세가 있어 병원에 갔더니 목감기라고 했다. 주말동안은 열이 오르고 기침이 잦아서 다시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고 했다. 닝겔을 안 맞겠다고 펑펑 울다가 한 번 실패하고 겨우 주사를 맞고 나니까 훨씬 괜찮아졌다.

   입원 없이 사흘 동안 통원하면서 닝겔을 맞고 조금씩 괜찮아지는데, 폐렴은 사나흘만에 다 나았으나 감기가 안 떨어져서 무척 고생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감기로 고생 중!) 폐렴에 걸린 동안은 개학한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않아서 보충수업을 마치고 난 오후에는 셋이서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집안에서 뒹굴면서 보냈다.


나는 꼼수다

   방학 동안의 나의 즐거움은 바로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 듣기였다.(잘 모르시는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세요.) ‘가카 헌정방송’이라는 컨셉트로, 김어준,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데, 처음엔 말도 잘 안 들리고 해서 뭐 이런 걸 듣는 사람이 있나, 이랬는데 들어보니까 재미가 있었다. 짧은 건 50분, 긴 건 100분 이상인 방송을 매일 한 편씩 ‘정주행’했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 들을수록 속이 시원한 게 더위에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음…. 이 분위기를 무엇으로 말해야 할까? 한 마디로, 백문(百聞)이 불여일청(不如一聽)이다. 아무튼 우리 ‘가카’를 조금이라도 존경하는 분이라면, 꼼수를!


걷기

   지난 방학 내내 밤마다 구민운동장을 걸었다. 적어도 한 번에 1시간씩, 일주일에 네다섯 번. 사실, 시작은 네 달 전부터(이 일기장 첫머리에 썼었다.)였고, 그 이후로 꾸준히 해 온 셈이다. 올해는 열대야도 적어서 밤늦게 나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아주 상쾌하다. 아주 늦게 나간 날은 그 넓은 구민운동장에 나 밖에 없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걷기 운동을 했더니 몸도 가벼워지고, 몸무게도 줄고, 기분도 좋고, 또 먹는 음식도 조절하게 되고……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이 많아졌다. 이러니 앞으로도 꾸준히 꼭 ‘걷기’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 2학기 시작이다.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무엇보다도 현실은 개학한 지 한 주가 지났는데, 아직도 마음은 방학이라 그런가 보다.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마음을 돌릴 수밖에!  

* 2학기에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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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1,2권의 초판이 나왔을 때 냉큼 읽어버렸으니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못해 어느 순간, 목이 빠져버린 건 아닌지...... 그리 기다리던 책이 나왔는데도, '어? 이제 책 나왔네?' 딱 이 정도의 감흥이었다. 

   사실, 한동안은 십자군 이야기의 부록에 실려 있는 도서 목록을 쪽 읽어나가기도 했고, 작가의 다른 책-한나라 이야기나 르네상스 미술이야기 등도 나올 때마다 후다닥 읽었다. 그러면서도, 늘 십자군 이야기는 언제쯤, 이런 미련을 떨칠 수 없었는데, 정작 책을 사면서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야기 3권을 펼쳤을 때 앞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읽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한참 전개되는 과정이라 느낌을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작가 스스로도 이제부터는 '열정'과 '재능'보다는 '책임'과 '노력'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냥 막연한, 근거가 없는 느낌일 뿐이다.)

   2011년 7월의 책읽기는 딱 1권이다. 6월에 좀 몰아서 읽은 탓도 있지만. 7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들은 제법 시간이 걸리는 책이라서 8월로 넘긴 탓도 있다.(그랬는데 정작 8월에도 책은 거의 안 읽고 산다.그러니 8월 독서 목록에도 책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별일 없이 살아지더라.) 

   6,7월엔 알라딘 이벤트에 두 번 당첨됐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인문사회책으로 서재 꾸미기>, 뭐 이런 거랑 비슷한 거였는데 정확한 기억이 없다. 인문사회 책을 사면 자동으로 응모되는 이벤트였는데, 거기서 3등을 했다. 그래서 받은 책이 두꺼운 인문학, 사회과학책 10권이었다. 내가 읽기에 벅찬 책이 많아서 필요하신 선생님을 찾는 학내 쪽지를 돌렸더니, 신기하게도 중복되는 책 없이 신청하신 선생님들은 모두 책을 챙겨가셨다. (참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양하기도 하지. 하긴, 안 그랬으면 사는 게 얼마나 똑같을까?) 

   최근에 당첨된 이벤트는 역시 알라딘에서 댓글을 달면 추첨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거였는데, 대표 인문학, 사회과학 저자의 자필 사인이 담긴 책을 한 권 받았다. (50명) 당첨되었다는 연락은 오래 전에 받아서 어떤 분의 사인이 담긴 책을 받게 될까, 몹시 궁금했었는데, 어제 책을 받았다. 바로 이 책이다.

   또 요즘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내년에 새로 쓸 교과서를 만들어서 학교에 들고 와 검토, 채택을 해 달라고 새 교과서(국어과목군의 책, 예를 들면 문학, 독서, 화법과 작문 1,2, 문법 이런 책을 새 교육과정에 맞춰서 바뀐 교과서를 선택해야 한다.) 만든 것을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교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교사들이 어떤 회사에서 만든 교과서를 선택하려면 미리 봐야 하니까 검토용으로 1부씩 보내주고 있다.)

   창비에서는 발빠르게, 내부 검토본을 미리 만들어서 일부 국어교사들에게 검토에 참여할 의향을 물었고, 내부 검토본을 보고 검토 의견을 내는 교사들에게 창비에서 발간한 책을 기념품(?)으로 준다고 했다. 교과서에 내 의견도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내부 검토본을 읽어 보고 메일을 보냈더니 8월 초에 기념품을 보내왔다. 기념품으로 받은 책은 바로 이거다. 

   그런데 경품으로 받게 되는 이런 책들은 이상하게 집에 꽂히지 않는다. 어떤 책은 나의 관심권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져도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딱 좋아하는 책은 이미 우리집 서가에 꽂혀 있기 때문에, 이럴 때 그동안 고마운 사람들에게 책으로 빚잔치하는 하는 격이다. 이런 책만 받으면 왜 갑자기 고마운 사람이 그리 많이 떠오르는지......(평소에 좀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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