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물들지 않는 사람으로 살되, 불의한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다만 불의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라. - [前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이대규 교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 손을 얹고 되돌아 본다. / ......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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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휴, 내일이 개학이다. 해마다 개학 전날은 잠을 설치는 징크스가 있다. 지금도 그렇다. 올해는 비담임의 유혹(?)을 물리치고 담임을 맡았다. 40명. 이제 이들 40명의 인생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인생에서 나름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됐다.

 

   갑자기 이 직업에 대한 무게감이 확 느껴진다.

 

   어쨌든 내일부터 정성을 다해서 부딪혀 보는 거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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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새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은 모처럼 얻은 휴가 덕분에 집에서 푹 쉬었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새봄을 위해 겨울 잠을 자는 곰처럼 집에서 책만 읽으려고 애썼는데, 정작 1월말에 결산을 해보니 어쩐지 빈약한 느낌이 든다. 작년에는 1월에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던 거 같은데...(그래놓고 뒷심이 달려서 연말까지 몇 권 읽지도 못 했는데, 올해는 어떨까?)

 

   그래도 1월엔 괜찮은 DVD를 네 편이나 봤고,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이것저것 기웃거린 책들도 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은 덜하다. 또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연작이라 다 읽은 다음에 목록에 올려야겠다. 1월에 읽은 책을 보니 소설 책이 세 권, 만화가 한 권이다. 그리고 논술특강 준비로 읽었던 원자력 관련 서적이 두 권(12월에 읽은 책을 포함해서 원자력 관련 서적은 세 권이다.), 그리고 얼떨결에 사게 된 달려라, 정봉주까지! 합쳐서 모두 일곱 권을 읽었다. (지금 보니 리뷰를 썼던 건 달랑 소설만 두 권!)

 

 

 

 

 

 

 

 

 

 

 

   두근두근 내인생은 나에게 문체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소설이다. 워낙 문체에 둔한 사람인지라 처음 읽을 땐 잘 몰랐다가 리뷰 정리를 위해 슬금슬금 책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읽으면서 보니까, 의외로 글이 좋았다. 젊은 작가의 인생에 대한 상상력도 재기발랄한 문체와 함께 빛났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잘 읽힌다.

 

   도가니는 소설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 소설이다. 소설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가, 소설에 작가의 신념(?)은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던져 주었다.(물론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건 아니고,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지영 작가가 조금 더 유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느낀 아쉬움을 도가니에서 비슷하게 느꼈다.(자세한 건 리뷰에 써 두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최규석이 만화로 쓴 우화이다. 최규석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만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 속에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는데, 주로 우리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빗대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고, 분량도 짧아서 1-2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금방 잊히는 그런 내용은 또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하거나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여전히 어려운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떠오르는  한 인물은 박정희였다. 그런데 조원장처럼 박정희도 진정성이 있었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완전히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문둥이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문둥이=민중, 처럼 읽혔다. 이청준의 본심은 이랬던 것일까? 아무튼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천국은 '나'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 천국을 강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2011년의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면 정봉주,여야 하지 않을까? (오세훈이나 박원순이나 나경원과 경합해야 하려나?) 사실, 달려라 정봉주는 살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게 되었다. 음, 읽은 느낌은 살 생각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았다. 흠, 다른 건 모르겠고, 그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 그것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본인에겐 슬픈 일이겠지만!)

 

   원자력, 대안은 없다는 책은 특강 준비만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내용의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특히나 한국어판 해설이나 감수를 하신 분들이 북한의 핵문제에 침묵하면서 핵발전소를 비판한다는 소리는 유치하고 황당하다. 그런 수준으로 비판론자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책의 내용은 핵발전소 강국인 프랑스의 클로드 알레그르라는 지구화학자와 도미니크 드 몽발동이라는 기자와의 인터뷰 글이다. 핵심은 핵발전소는 현존하는 에너지 생산 수단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도 별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논의하고 있어서 의아스러웠다.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도 특강 준비로 읽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학자들이 최근 부쩍 강조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의 원자력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짧은 논문 형태의 글이다. 비판의 핵심은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원자력에 대한 논의만 풍성하지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무관하게 울진 삼척에 추가로 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해서 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더욱 답답해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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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2-02-0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노는 밤, 잠은 덜 오고... 숙제처럼, 이달의 책읽기 목록을 올려둔다. 이대로 꾸준히 12월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무탈하게 한 해가 가고, 다시 새해가 오고... 다시 또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모든 게 참 좋은 시절이다.(이상한 세상만 빼고는)

열매 2012-02-0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랑 겹치는 책이 두 권 있어요.^^ 저도 1월 달에 최규석 우화랑 이청준 소설을 읽었거든요.

당신들의 천국은 저에게도 어려운 소설이었어요. 주제가 상당히 무겁기도 했구요! 이 책을 읽으며 박정희를 떠올리셨다니, 저도 좀 공감이 가는 부분^^;; (아마 조원장을 박정희로 생각하셨겠지요??) 저는 소록도 섬을 보며 제가 속해있는 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렸어요.. 넓게 보면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두..이렇게 정리해서 페이퍼를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읽은 책 목록만 줄줄 나열해놔서..;; ㅋㅋ 1월달에 이어 2월달에도 쭈욱, 열심히 독서하고 서재에 흔적을 남기려고 해요^^ 좋은 책은 꾸준히... 추천해 주세용~ㅋㅋ

2012-02-04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권력과 웃음의 상관성>

 

   승리의 2012년을 시작한 지 열흘 째! 몸은 감기로 계속 고생중이지만, 초저녁에 잠깐씩 들었다가 깨는 잠 때문에 한밤 중에도 깨어있는 일이 요즘 잦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것도 시들해지는 날이면 가끔 '다음'에서 영화를 다운받아 보게 된다. <루키>라는 영화를 보려고 했으나 다운로드 목록에 없어서 결국 고른 영화가 <장미의 이름>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예전에 읽었지만, 내가 예전에 읽어 온 책이 대부분 그랬듯이  스릴러 넘치는 소설이었다는 정도만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영화를 보다 보니까 조금씩 줄거리가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수도원 수사들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 낸 윌리엄 수사와 호르헤 수사와의 논쟁이었다. 호르헤 수사는 수도원의 장서관에 보관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편'에 관심을 보이는 수도사들을 죽인다. '시학 제 2편'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대한 이야기인데, 호르헤 수사는 종교(기독교)는 인간의 두려운 마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데, 바로 웃음이 그 인간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떄문에 이 책을 읽었던, 또는, 읽으려던 수사를 죽이는 것이다. 웃음은 종교(권력)의 가장 큰 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호르헤 수사는 장서관에 불을 지르고 수많은 책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 

 

   이 장면의 대사를 듣는 순간 번개 같이 머릿속에 떠오른 한 구절은 한나 아렌트가 했던 "권위의 가장 큰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웃음이다." 라는 말이다. 확실히 웃음에는 두려움을 없애는 극복하는 에너지가 있다. 또한 웃음의 전파력은 강력한 것이라 현실의 권력은 웃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이를 증명하는 실례가 바로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아닐까? 

 

   사람들이 나꼼수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꼼수가 전달하고 있는 내용이 거대 보수 언론이 외면하던 사실인 까닭도 있지만,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나 방식에 있다. 이들은 현실과 소설-합리적 추론-의 영역을 넘나들지만, 언제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는 거침 없이 당당하다. 소위 말해서 '쫄지 않는다'. 여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웃음이 더해지면, 뭔가 조마조마하던 청취자도 그 순간 어느새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눅들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결국 나꼼수의 힘은, 이 웃음에 있다. 이 나꼼수의 웃음은 이제 공공연히 전파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권력의 눈치를 안 보게 되었다. 나꼼수의 웃음이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을 없애버린 것이다. '쫄지마, 씨바',는 이제 내 친구가 새해 문자 메시지로 보내기도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답장으로, '그래 씨바!'로 답장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승리의 2012년'을 기대하고 있다. (1년 전을 생각해 보면 정말 상전벽해가 아닌가 싶다.) 이 모든 게 가카 때문이 아니라, 그 웃음 때문이다. 2012년 말에, 웃음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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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1-1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정봉주 구속 때, 저만은 아니었을걸요.
눈물 흘리지만, 뜨뜻해져 오고 벅차오르는 희망을 동시에 느낀 사람들~


'울면 지는거다, 웃자'

근데 말이죠,'쫄지마, 씨바''그래 씨바!'...땡큐, 유아 웰컴처럼 관용어 아니었어요?@@

느티나무 2012-01-14 16:28   좋아요 0 | URL
뭔가 거대한 민심의 흐름이라는 게 있지요. 그게 옳든 그르든 어떤 한 방향이 정해지면 그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불행히도 이명박이 당선될 때도 그랬죠. 이젠 다른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나꼼수가 그 흐름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게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물론 폄하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비속어 사용을 못 해서..ㅠㅠ(자기 검열이 심해서 그런가 봐요...) 쉽게 그래 씨바.. 이런 말이 안 나와요.ㅠㅠ

2012-01-14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4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실의 성장, 그리고 아이들과의 사소한 이야기>

 

   ...... 아이들 내면의 성장은 안중에도 없는 오늘날과 같은 교육 풍토 속에서는 아이들에게 진실한 교사가 능력 있는 교사로 대접받기는 매우 어렵다. 교사의 능력이란 것이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수치로만 계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나쁜 교사가 되겠노라고 아예 공공연히 말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 자조 섞인 말 속에는 좋은 교사는 곧 무능한 교사라는 등식이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등식은 관리자의 시선만이 아닌, 학생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들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억울한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요즘 이런 난제를 조금씩 풀어 가고 있다. 그 방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느리게 다가가는 것. 아이들의 행동에 느리게 반응하는 것.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잠자코 있어 주는 것. 느린 속도로 아이들의 진실을 채취하는 것. 그렇게 '진실하고 느리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여유를 부리며 느린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느려터진 교사가 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서서히 아이들의 힘을 빼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이의 진실을 성장시켜 주는 것. 말하자면 싸움의 도를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신사적으로 대하는데 상대가 비굴하게 나오면 지는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아이의 진실을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과 닭싸움을 곧잘 한다. 내가 이길 때도 있고 아이들이 이길 때도 있다. 누가 이기든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진실이 이기면 되는 거니까. ......(후략)

 

책을 펴내며 중에서[10-11쪽]

 

   며칠 전에 안준철 선생님께서 책을 보내주시겠다는 <댓글>을 내 서재에 써 놓으셨다. 얼마 전에 내가 교육공동체 벗에서 엮은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책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 그걸 보시고 연락을 주셨다. 나는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좀 쑥스러워서-전화를 받으시면 뭐라고 말씀을 해야하나 싶어서-그냥 답글로 주소와 이름을 남겨놓기만 했다. 그리고는, 선생님께서 여기에 들어오셔서 다시 보실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는데, 달리 어떻게 하기가 그래서 어물거리다가 그만 잊고 말았다.

 

   오늘 점심 때쯤에 방학하고 거의 일주일만에 학교에 갔다. 공문 처리할 게 있다며 학교에서 호출을 받고 가는 길이어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사실, 오늘 오전은 딱히 갈 데가 없어서 학교에 가기는 가야 했지만!) 내 자리에 앉으려는데 우체국 소인이 찍힌 누런 봉투가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뭐지, 하면서 발신자를 보니, 바로 안준철 선생님이셨다. 그때서야, 와! 책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뜯어보니 선생님께서 쓰신,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안준철의 시와 아이들)>이 들어있다. 속지에는 <존경과 우정을 담아서 OOO샘께>라고 써 주셨다. 아마 보내신 날이 12월 27,8일 쯤이라 진작에 학교에 와 있었을텐데, 오늘에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전에도 썼지만 안준철 선생님과의 인연은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선생님께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오마이뉴스에 연재하시는 글을 틈틈이 읽으면서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죽을 쑤고 있는 내 처지에서는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에이, 설마 이렇게 좋기만 하겠어?'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쓰신 <세상 조촐한 것들이>,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라는 시집도 읽었고,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교육에세이를 꼼꼼하게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회활동하면서 선생님을 모시고 초청강연을 열기도 했다는 얘기는 전에도 했다. 강연도 그랬고, 뒷풀이 자리에서도 조용조용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하시는 말씀에 진정성이 느껴져서 나 혼자 했던 괜한 오해가 풀리기도 했다. 그때쯤이었나, 선생님께서 부산에서 지인들을 만나는데 같이 '맥주 한 잔 하자'고 하시며 전화를 하셨는데, 마침 그날 북부지회에 일이 있어서 못 가 뵈서 안타까웠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가끔 메일을 보내드리기만 했을 뿐, 다시 뵐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선생님께 새로 책을 받고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이처럼 작은 인연을 귀하게 여시는 분이시니, 아이들과 맺은 인연도 귀하게 여기시고 정성을 다하시는 분이실 것 같다. 나도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교사이고 싶다. 선생님께 말씀으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행동으로 배우는 것이 더 오래, 더 깊이 남을 것 같다.

 

   2년 동안 쉬었던 담임을 올해는 신청을 했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담임을 맡게 될 것이다. 막상 담임을 신청하고 나서는 올해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나는 아이들과 어떤 1년을 지내게 될까, 설렘과 기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과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마침 선생님께 책 선물을 받고 서문만 읽었는데도, 불안과 걱정은 조금 덜은 것 같다. 느리게 다가가면서 녀석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면 뭐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져 본다.

 

   이제부터 천천히 선생님의 새 책을 펼쳐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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