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참,  힘들게 산다. 

- 너나 나나......  

-- 근데, 너는, 이게 무슨 꼴이고, 진짜!

- 당신들이나 나나......  

-- 근데, 다들, 이게 무슨 꼴이고, 정말! 

* 오늘의 참담함을 기억하기 위해서, OO참숯구이 + CHEERS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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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책을 몇 권 읽었고, 

그의 삶을 기록한 책을 몇 권 보았을 뿐인데. 

어제는 하루종일 맥이 풀려 버렸다. 

날은 어두운데,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 주던 별들은 자꾸 떨어진다.  

엄혹한 시대를 엄정한 자기관리로 버텨내신 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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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08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방향을 잃고 헤맬 것 같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느티나무 2010-12-09 00:20   좋아요 0 | URL
새벽까지 깨어 계셨네요. 어쩌면 별이 반짝이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이쯤 되니까 루쉰의 말씀인가요?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물론 리영희 선생님이야 '너절한 스승'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퍼뜩 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1. 복이 데리고 금정구에 있는 키즈랜드에 다녀왔다. 원래는 스포원 워터파크에도 가려고 물놀이 준비까지 다 해 갔으나 녀석은 무슨 까닭인지 물놀이보다는 키즈랜드(실내놀이터)에서 놀겠단다. 그래서 키즈랜드에 두 시간 놀았다. 

키즈랜드에서는 이미 익숙한 볼-풀에서 주황색 공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녀석. 미끄럼틀도 무서워서 못 내려오는 녀석이라, 저번에는 트램플린(일명, 퐁퐁)도 제대로 못 올라갔었는데 이번엔 트램플린에서 제법 뛰기 시작한다. 그래서 욕심이 나서 평소 무서워하는 놀이기구에도 좀 데려다 놓았는데, 완전 기겁을 하고... 이런, 천하의 겁쟁이 같으니라구! 복이는 아무래도 담이 좀 작은 것 같다. 겁이 무척 많다. 나를 닮았나?  

2. 어느새 키즈랜드도 사람들로 빽빽. 시간도 얼추 다 돼서 복이 데리고 나오니까 이제서야 스포원 워터파크에 들어가자고 한다. 그러나 이미 워터파크는 대기하는 사람이 100명도 넘을 정도... 안 된다고 타일러도 안 되고, 결국 녀석이 카운터에 가서 직접 물어 보고 와서야 발걸음을 돌렸다.(정말 부모 말은 안 듣는구나!) 점심 시간도 훌쩍 지나서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스포원 주변에서 사람들이 자장면을 먹는 걸 본 모양! 녀석도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집 근처에 와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었다. 아직도 단무지를 무척 사랑하는 진복이! 

3. 집에 들어 와서 얼른 씻고 나면 오후 3시, 4시부터는 낮잠 자는 시간이다. 이곳은 남향에다 강바람이 잘 불어오는 아파트라 여간해서는 더위를 잘 못 느끼는데 요즘에는 무척 덥다. 안방 문을 훤히 열고 누워도 잠드는 게 좀 힘들다. 그래도 낮에 바깥에서 씩씩하게 놀다 왔으니 잘 잘 수  밖에...모두 한숨 자고 일어나니까 저녁 7시가 다 됐다.  

4. 이번 주는 내내 집에서만 밥을 먹었고 해서 저녁도 밖에서 먹기로 하고 무작정 나갔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어느 가게를 갈까 돌아다니다 보니 거의 9시가 다 됐다. 어렵게 생각난 곳에 갔으나, 일요일은 휴업이라면서 20% 할인 쿠폰 한 장만 주시더라. 결국 집 앞에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닭갈비집으로... 닭갈비집 입구에서 바로, 우리의 선택이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이후는 뭐, 뻔한 스토리, 맛도 없고, 개념도 없고, 돈도 아까운 그런... 상황! (닭갈비집 사장님, 후회하실 듯... 저는 나름 손님을 몰고 가는 스타일인데...훗)

5. 이제 9시 30분. 요즘 이 시간이면 우리 가족이 늘 찾아가는 곳. 구민운동장이다. 강바람이 불어 해만 지면 시원한 곳. 요즘은 더위를 피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운동하는 것 같다. 우리도 정해진 코스로 운동장(한 바퀴가 650M) 두 바퀴 돌고, 가볍게 운동기구로 장난(?)치며 놀며 놀다가 잔디 블록 밟으면서 산책한다. 진복이는 구민운동장 트랙에서 씽씽카를 몰고 다니는 게 신나는 모양. 아무튼 이 정도 산책하면 1시간 정도 걸린다. 

6. 집에 오면 거의 10시 30분 정도? 복이부터 차례로 얼른 씻고, 간식 챙겨 먹고-녀석은 오늘 땀을 많이 흘렸는지 계속 물을 찾는다- 창문 열고 누우면 잠이 솔솔 온다. 복이는 벌써 자고, 나는 아직 컴터로 노닥거리는 중이다. 

7. 내일은 학교에 가 볼까 한다. 이 휴가에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누가 좀 구제해 주려나? 하기야 스스로 구제 못하는 인간을 어느 누가 구제할 수 있으리오? 내일은 피부과에도 들러야 하고, 제법 바쁜 하루가 될 듯 하니 이만 자야겠다. 

8. 며칠 전 위에 난 염증은 가라앉았는지 처방해 준 약을 먹고는 속이 아프지는 않다. 대신 위에 자극적이라는 커피를 사흘 동안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음식 조절하는 것은...음... 실패다. 두드러기는 약을 먹는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에 손발이 부었던 것 빼고는 컨디션도 정상이다. 앞으로는 내 몸을 좀 더 아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자러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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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부터 두드러기로 고생 중... 보기에 흉한 발진도 그렇지만, 가려움도 있고, 손발과 얼굴이 자꾸 부어 걱정이다. 첫날 두드러기가 났을 때 병원에 다녀와서 처방해 준 항히스타민제를 먹고는 금세 가라앉아서 별 일 없으려니 했는데 이틀 전부터 더 심해졌다. 오늘 병원에 가니 치료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만성질환이 될 거라는 엄포! 이런 피부질환 약은 복용할수록 내성이 생긴다는데... 이것도 걱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증세도 같이 왔다. 명치 끝이 무엇에 눌린 듯한 답답함. 통증이 하루 정도 계속 되어 내과를 찾아갔더니 딱 한 마디만 듣고는 바로, "위염"입니다.(솔직히 전혀, 믿기지 않았다. 무슨 점쟁이처럼...) 역시나 약을 처방 받아서 두 번 먹었는데, 이건 좀 괜찮아졌다.(사흘치 약을 받았으니 가능하면 다 먹어야겠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신경 써서 먹고 있으며(천천히 규칙적인 식사),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 

   아프니까 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지금껏 무탈하게 거의 40년을 썼으니 이제 이곳저곳 슬슬 아프기도 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부터는 꾸준히 관리를 해야 앞으로 40년을 더 쓸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몸을 이렇게 걱정해 보는 건 참 오랜만인 거 같다. 아무튼 이번 일 때문에라도 건강한 상태를 오래 관리하는데 관심을 많이 쏟아야겠다. 

   참, 사는 건 만만치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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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에 밀양여름예술축제에 다녀왔다. 밤 10시에 공연하는 오구... 이제 10년이 된 지역 예술축제의 간판극답게 강부자, 오달수, 하용부와 연희단거리패가 함께 하는 초호화 캐스팅이다. 야외에 마련된 좌석도 무려 1500석.

   배우들의 이름을 보니 좀 설렜다. 오달수 씨 때문에... 강부자 씨는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고(그래도 배우로선 살아 온 인생이 벌써 반세기라면 배우의 능력에 토를 다른 것은 실례다.), 오달수 씨가 부산에서 공연할 때 극장에 서너번 가서 본 적이 있다. 음, 정동숙 씨와 함께 '너도 먹고 물러나라'라는 공연을 하는데 정동숙 씨는 관객을 빨아들이는 열정이 넘쳤고, 오달수 씨는 치고 빠진다고 해야 할까, 관객의 감정을 긴장시켰다가 풀어 주는 능력이 탁월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밀양에서 전도연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허허실실의 송강호처럼.

   그리고 또 한 사람, 밀양백중놀이 기능보유자로 밀양연극촌장인 하용부다. 처음엔 진옥섭의 노름마치에서 하용부, 하보경. 하XX, ....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겹쳐져서 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춤꾼 하용부 선생이 맞나 싶었으나, 극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서 북을 어깨에 을러매어 치면서 춤을 추는데 '딱' 감이 왔다. (사실, 나는 소리에도 춤에도 완전 까막눈이다.) '앗, 보통 춤과 소리가 아니구나!' 연극을 보는 동안에도 특히 집중해서 봤다.  

   연극을 보고 집에 와서 노름마치를 펼치니 바로 하용부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한 번 정독하고,(이때가 새벽 2시 반?) 학교에 가져가서 같이 본 샘들에게 복사본을 나눠드렸다. 그리고 아직도 하용부 선생의 북소리와 춤사위가 어른거려서 이렇게 동영상을 찾고 기사를 검색해 봤다.

   그러다가 다시 흐릿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하용부 선생과 둘러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연극을 본 후에 그 연극에 대해서도 감상평을 전했던 기억이 났다. 꽤 지난 일이기 하지만, 어느 겨울 밀양연극촌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우리 일행(함께 학급운영 모임을 하던 선생님들이랑 밀양으로 여행을 갔었다.)들이 좀 일찍 도착해서 건물 밖에서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드럼통에 불을 지펴지니까 자연스럽게 그 주위에 둘러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분이 바로 하용부 선생이었다. (그때 우리 중 누군가가 궁금해서 뭐하시는 분이냐고 하니까, 그냥 '지역에 사는 백수'라고 하셨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뒷풀이(?) 비슷한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하용부 선생도 함께 자리에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었다.  

   아무튼 이런 오구-죽음의 형식, 공연에서 하용부 선생의 춤과 북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비록 그 피로의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고 있지만...... 

* 아래는 궁금해서 찾아 본 하용부 선생의 인터뷰 관련 기사

   195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다섯 살 소년은 할배의 춤사위를 보며 우리네 움직임과 소리를 익힌다. 밀양백중놀이를 이끈 할배와 같은 길을 걸어온 것이 벌써 50년이다. 한국적인 양식을 고민하는 무대라면 어디라도 서슴지 않고 찾아가는 한국 춤의 세계적인 전도사 하용부(54,중요무형문화재 68호) 선생을 만났다.  







   그가 '춤꾼'으로 살아온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 춤판을 열었다. 이 춤판은 영남의 춤을 대표하는 그가 프랑스 공연예술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무대에 서기 위한 시연공연으로 준비한 것이다. 한국 전통 춤꾼으로는 프랑스 '상상의 축제((Festival de L′imaginaire)'에 정식으로 초청된 것이 처음이기에 하용부 선생의 춤판은 여느 때보다 절로 흥이 솟는다.

프랑스 파리가 선택한 한국춤의 자존심…중요무형문화재 68호 하용부 선생

   '하용부 춤판 2009'의 리허설 공연에 경의를 표하는 기자에게 "늘 춰오던 춤인 것을 모…, 공연도 아닌 것을…" 이라며 털털한 웃음으로 온 몸에 비 오듯 흘린 땀을 닦으며 기꺼이 인터뷰를 응했다.

   "내가 다섯 때부터 춤을 췄다. 할배 좇아 추던 춤이 스물다섯 되니까 중요무형문화재라고 정식으로 제도권에 인정됐다. 그때서야 제대로 인정받은 것이다. 97년에 조부가 돌아가셨다. 조부가 살아 생전엔 내 감히 이런 걸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스승이 살아계시는 데 어찌 제자가 이런 걸 생각 하겠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춤'만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하용부 선생은 이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건 '춤판'을 벌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쟁에다 민주화운동에다 사회적인 혼란도 있었고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적인 그런 복잡한 시대였기 때문에,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전통을 되짚어 어떻게 해볼만한 때가 아니었다. 전통에 대해 나조차도 모르는데, 어떻게 전통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지 않나 싶다. 나 역시 현대 몸짓에 대해
이윤택(연극 연출가)을 만나서야 알게 됐고, 이제까지 내 '춤판'이 늦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판을 벌려도 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화하는 한국의 '전통 춤'… 현대와 소통하는 '우리 춤'

   하용부 선생은 1989년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를 만나 의기투합해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 안무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는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을 시작으로 '죽은 영혼' '길 떠나는 가족' '어머니' '일식' 등에 안무가로 참여한다. 이를 통해 '한국적 몸짓'을 연극무대에 담아 안무는 물론 연기까지 욕심을 부렸다.

   밀양과 서울을 오가며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는 SIDance와 춘천아트페스티벌 등 국내 유명 페스티벌에 초청돼 수많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춤판'을 벌여왔다. 이 가운데 프랑스 ART 초청 워크숍 지도를 맡기도 하며 프랑스 발드마른 국제댄스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한국 춤'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꾸준했다.

   "지금 이 시대는 전통의 재해석과 보존이라는 두 갈래에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내가 세계무대에서 기대를 거는 것은 현대와 전통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찾길 바라는 것과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야 할 것인가 그것의 중간지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하용부 선생의 춤판은 절로 흥을 솟게 한다. 어깨선을 따라 부드러운 손이 하늘을 치켜올리고 버선발을 주춤주춤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해 장난기 가득한 취임새로 자연스레 관객과 마주한다.

   그의 밀양북춤과 범부춤, 양반춤을 비롯해 창작무 영무는 서양예술과 호흡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한국 전통예술의 깊이를 더해 전통의 보존과 현대적 재해석으로 시대가 공감하는 전통예술을 꽃피운다.  

 2010.3.10  [OSEN=박희진 기자] 

 

** 아래는 궁금해서 찾아 본 하용부 선생의 밀양북춤 동영상

 

하용부 선생님의 밀양북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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