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파트리스 쉐로 감독, 케리 폭스 외 출연 / JC인더스트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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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식으로 자꾸 만나는 건 좋지 않아요. 당신에 대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지니까요. 점점 더 헤어지기 힘들고 갖고 싶어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여전히, 또 만나고 싶어요. 가지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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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쿡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죄책감'인것 같다. 그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감추고 살아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 마음 깊은 곳의 불편한 그 느낌. 그래서 언제나 토머스 쿡의 책을 무겁게 읽을 수밖에 없는것 같다. 싸이코패스를 그리는 게 아니라, 토머스 쿡은 '우리'를 그린다. 나쁜 의도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쁜 의도가 아니었는데 작은 실수-혹은 장난-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혹은 죽음까지도-남기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그 잘못이나 실수 전과 후에도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지는 않지만, 그 한 번의 실수가 불러온 것은 치명적이었던,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인 줄리언 웰즈가 자살을 했고, 그의 친한 친구와 여동생은 도대체 왜 줄리언이 자살한건지 그간 그와 했던 대화들을 돌이켜보고, 그가 썼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고, 그가 갔던 장소에 다시 가본다. 줄리언은 언제나 공포를 주는 사람, 잔인한 사람, 학살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냈는데, 그 중에 《쿠엥카의 고문》이란 책의 이야기는 다른 책들의 이야기보다 더 아팠다. 아래 인용문은 쿠엥카의 고문을 다시 읽은 친구 필립이 요약한 줄거리이다.



사건 당일, 그리말도스는 가끔씩 일을 했던 프랑시스꼬 루리즈의 농장에서 자신의 초라한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다음 날 여동생이 치안당국에 오빠의 미귀가 사실을 신고했다. 그녀는 실종 당일 오빠가 양 몇 마리를 팔았는데 오빠가 양을 팔고 받은 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적어도 두 남자가 알고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발레로와 산체스라는 남자였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그들은 틈만 나면 그리말도스를 조롱하고 괴롭히고 학대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리말도스의 돈을 빼앗고 살해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수사가 시작되었고, 다른 주민들도 수사관들에게 발레로와 산체스가 의심스럽다고 진술했지만, 그리말도스의 시신이나 직접적인 살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1911년 9월에 수사가 종료되었다. (p.58-59)



그리말도스의 가족들이 오빠를 찾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잠깐 며칠전에 읽었던 《리뎀션》이 생각나는데, 그들은 발레로와 산체스로부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점점 더 그들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들은 용의자들을 계속 주시하며 때를 기다렸고, 1913년 쿠엥카에 새 판사가 임명이 되자, 증거부족을 이유로 발레로와 산체스 사건을 기각한 전임 판사와는 달리 새 판사가 이를 번복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칼을 빼들었다.

새 판사는 젊고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미해결 사건이라는 망령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발레로와 산체스는 다시 체포되었고, 이번에는 치안경비대가 호세 마리아 로뻬즈 그리말도스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했다.

발레로와 산체스에게 끔찍한 고문이 가해졌다. (p.60)



이 책을 다시 읽는 줄리언의 친구 필립은, 여기에서 줄리언이 고문 장면을 고문 피해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자세하고 잔인하게 묘사했는지를 얘기한다. 고문자의 얼굴 표정이라든가 채찍 소리 같은것들. 그러나 나는 이 책 속의 책, 쿠엥카의 고문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끔찍한 결말이니 당연히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그러나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랐다. 



고문을 당한 발레로와 산체스는 호세 그리말도스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했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말하지 못했다. 줄리언이 주목했듯이 이 사실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추가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p.68)


그리고.


수많은 범죄 혐의에 대하여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은 스페인 사법부의 미로 같은 방들을 거치면서 질질 끌었고, 1918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피고인들에게 각기 18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들은 6년 후에 가석방 되었고, 그러부터 2년 후인 1926년 봄, 줄리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토록 오랫동안 잔혹하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던 가엾은 엘 세빠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엘 세빠는 그 십수 년 동안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p.69)



아...나는 이 책을 책 속의 책으로 만났기에 다음 책장을 넘길 수 있는거란 생각을 했다. 만약 쿠엥카의 고문이란 책이 현실에 존재하고, 내가 지금 이자리에서 그 책을 읽었다면, 엘 세빠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는 문장을 읽는 순간 책장을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답답하고 또 답답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내 가슴을 몇 번이나 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에서 내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왜 엘 세빠는 다른 마을에 살면서 식구들에게 안부를 전하지 않았을까. 한 마디 안부만 전했던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들에겐 대체 무슨일이 있었기에, 어떻게 지냈었기에, 그들은 그간 어떤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일이 이렇게 된걸까. 사랑하는 가족이 사라지고, 거기에 분명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사람이 연루되었을 거라는 느낌, 그것을 단순히 피해망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고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의심은 확신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 확신, 그 확신은 얼마나 위험한가. 발레로와 산체스는 자신들이 벌이지도 않은 일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자백을 하고, 수감된다. 그들의 그 고통의 시간들을, 이제와서 '판단을 잘못했구나' 라고 말한들 어떻게 돌이킬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숨 막히는 작은 공간 안에서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살해되지 않은 자 엘 세빠는 쿠엥카의 먼지 자욱한 거리들을 그리워하면서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부담이 가장 적은 운수 게임의 복권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지만, 관 속 같은 공간에 갇혀 그 어둠 속에서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자신의 죄를 잊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p.69-70)



자신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오랜동안 아무에게도 자신이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단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된 엘 세빠 역시, 편안한 삶을 살 수는 없었다. 줄리언 웰즈는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고, 그런 줄리언 웰즈가 자살을 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악에 가득찬 사람들을 혹은 고통스러운 피해자들을 책 속에 녹여냈던 줄리언 웰즈가 자살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다뤘지만 정작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줄리언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책을 한 권 내고 또 내고 또 내도, 자신이 저지른 일, 그리고 그 일이 불러온 그 결과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 그리고 그 잘못이 가져온 치명적인 결과는 결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일테니까.


나 역시 잘못 혹은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불현듯 초등학생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내가 저질렀던 잘못. 내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때 그게 잘못이란걸 알지 못했다는 것뿐인데, 지금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안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혹여라도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군가가 그 일을 살아오며 내내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에. 아무리 어렸다고한들, 나는 왜그랬을까. 이 생각을 하면 끝도없이 벼랑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기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추락하고 있는데,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 않는다. 애초에 추락의 길로 들어선 게 나였으므로.


줄리언은 세상에 일어났던 많은 악한 일들을, 그 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으로 알렸다. 그가 자신의 죄를 사하는 방법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꽤 고마운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좋은 일을 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주기도 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저지른 잘못이 기억에서 지워지지는 않는다. 좋은 일 하나에 나쁜 일 하나를 상쇄시키는 일 따위, 인간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나는, 스스로 다독이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이것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겠지만, 내가 그 실수를 저질렀고, 그 실수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실감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줄리언 역시 마찬가지였을텐데, 줄리언에게도 이런 합리화가 있었다면 자살까지 이르지 않았을 수 있었을텐데,  줄리언이 가져온 결과는 지독하게 끔찍하였으므로, 그는 다시 일상에 발붙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일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만, 일이 그렇게까지 되었다. 이 책속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아이들은 장난으로 개구리를 죽이지만 개구리는 정말 죽는다'는. 잔인한지 모르는 채 인간은 가장 잔인해질 수 있지 않은가.



그제 아침에 출근길에 길고양이를 만났다. 잽싸게 멈춰서서 가방을 뒤져 소세지를 꺼냈다. 소세지 껍질을 벗기고 소세지를 고양이 쪽으로 던졌는데, 고양이는 잠깐 경계하고 도망가더니 좀처럼 소세지 근처로 오지는 않고 쳐다보기만 하는거다. 내가 없어야 먹겠구나 싶어 나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어제 퇴근길. 또 고양이를 마주쳤고 나는 얼른 가방에서 소세지를 꺼냈는데, 이번 고양이는 경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얼른 먹을 걸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껍질을 까고 소세지를 던져주니 잽싸게 물고는 뛰어가는거다. 오호라. 소세지가 두 개 남았는데 하나는 내가 좀 먹어야겠다. 배가 고프네. 각설하고,



토마스 쿡은 이 책에서 인간의 잔인함이 비단 인간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투견장의 장면이 그것인데, 와, 나는 특별히 더 동물을 사랑하고 애착을 갖는 사람이 아니고, 집에서 동물을 기르거나 하지도 않고, 길고양이에게 소세지를 준 것도 이제 겨우 시작한 사람이지만, 와- 나같은 사람도 보기 힘든 이 장면을 동물에게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굉장히 힘들겠구나 싶었다. 개들을 훈련시키고 싸움터에 내보내는 인간들, 그 싸움을 보며 즐거워하고 흥분하는 인간들. 그들이 대체 뭐가 다른가. 그러나 투견에 가장 능숙한 개인 '도고 코르도바'는 멸종이 됐다고 한다. 



"도고 코르도바는 이젠 멸종이 됐네." 개싸움에 대한 묘사를 마치면서 소보로프가 말했다. "투견장에서 죽기도 많이 죽었고, 살아남은 놈들도 아주 예민해져서 딴 놈들과 붙여만 놓으면 서로 물어뜯고 죽여버렸거든. 그래서 멸종된 거야." 그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흉포성만 가지고는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 맞아." 그가 말했다. "어디서 들었는데 마음에 와 닿는 말이더구먼." (p.259)






흉포성만 가지고는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 내게도 와 닿았다. 흉포성만 가지고는 삶이 유지될 수 없고, 먹을거리가 있다고 해도 삶이 유지될 수는 없다. 삶에는 그보다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감정을 건드리는 것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이 끼어들어야만 한다. 얼마전에 조카와 함께 서점에 가서 보았던 그림책인 《프레드릭》이 떠올랐다. 모아놓은 식량이 없어지자 많은 쥐들이 프레드릭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배경은 이탈리아 로마이고, 주인공인 '젭'은 65세의 노인이다. 어마어마하게 부자인 그는 파티를 즐겨하고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첫사랑의 남편이 찾아와 첫사랑의 죽음을 알린다. 젭의 일상이 그 일을 계기로 갑자기 변하거나 하진 않지만, 그는 점점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시간이 흘러 첫사랑의 집에 찾아가보니 첫사랑의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을 했다며 자신의 아내를 소개시킨다.


젭은 그들과 헤어지기전, 그들에게 '이제 무얼할거냐' 라고 묻는다. 젭과는 형편이 많이 다른 그들은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듯' 아내가 다림질을 마치면 같이 와인을 한 잔 마실거고, 그 후엔 티브이를 보다 잘 거' 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젭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무얼할거냐고. 그러자 젭은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를 할거고 술을 마실거라고 말한다. 아마 당신들이 일어날 때쯤 자신은 잠이 들게 될거라고.


이때, '다림질을 마치고 같이 와인을 마시고 티브이를 보다가 잠드는' 그 부부가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요란한 파티가 아니어도, 사람들 틈에서 들썩이거나 화제가 되질 않아도,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저 일상의 조용조용한 장면장면마다 누구와 평화롭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 일상은 딱히 누군가에게 강요받지도 또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가장 행복한 장면은 가장 조용하게 찾아오고, 굳이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것. 인생 최고의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 주는 게 아닐까.




로레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 여행도 끝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미리 말해두는데, 오빠랑 함께 해서 즐거웠어. 오빠랑 함께 여행하고 이야기를 하고 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어."

"나도 그래, 로레타."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를 책에서 읽는다면 손발이 오글거리는 장면이겠다, 그렇지?"

"그래, 그럴 것 같네."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상에 젖는 순간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일 때가 많아." (p.272)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 것, 사소하지만 조용한 시간들을 함께 하는 것이 '감상에 젖는 순간'으로 바로 직행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일상 틈틈이 나라면, 감상에 젖기엔 충분하다. 그래서 그 순간들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어제 꾸었던 꿈 생각도 난다.


어제 꿈에 나는 한 남자와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무슨 학원인지는 모르겠는데 수강생이 엄청 많았고, 학원 근처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학원이 끝나고 그와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이 무척 다정하게 느껴지는거다. 그 다정함에 힘입어 나는 슬쩍 그에게 팔짱을 꼈다. 이러지 말라고 말하면 어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는 이러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조용히 내 팔짱을 빼면서 그대로 손을 잡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손을 잡는 사이는 아닌데, 이렇게 손을 잡아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래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 그러나 그와 손을 잡은 게 무척 좋아서 모르는 척 손을 잡고 그 다정함을 한껏 즐기며 걷고 있는데 손에 너무 땀이 차는거다. 내 손이 아니라 그의 손에서 나는 땀 같았는데, 다한증인가, 하고 생각하며 나는 손을 살짝 놓고는 '땀' 이라고 작게 말한 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손을 닦아주었다. 닦아주고 나니 그는 잠깐 갈 데가 있다며 어딘가로 가버려서, 아이씨 땀 나도 그냥 잡고 있을걸, 하고 생각하다가 깼는데,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으면서 으응, 이 꿈은 뭐지, 왜 이런 꿈을 꿨을까, 했다.



앗! 그러고보니 저 영화 그레이트 뷰티에 다한증으로 고생하는 수녀 얘기가 나오는데, 그래서 꿨나??????????????????????????????????????????????? 어쨌든.




토머스 쿡의 번역된 소설은 이제 《심문》을 빼놓고 다 읽었다. 처음 《붉은 낙엽》을 읽었을 때는 내가 이 작가의 책을 계속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채텀 스쿨 어페어》가 좋아서-다른 말로 엄청 불편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내 나름의 순위를 정해봤다. 《줄리언 웰즈의 죄》가 좋은데, 그럼에도불구하고 내 순위 안에서는 4위다. 이 정도가 4위라면, 앞으로 나올 그의 소설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믿을만한 작가다.












며칠전에 만난 친구가 나더러 회사 그만두고 세계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방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흐음, 그거 하다보면 금세 200키로 찍을 것 같아 거절했다. 역시 나한테는 평범한 직장인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밥이나 먹자.



마지막으로 어제 친구가 보내준 독특한 노래.









"줄리언은 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의 죄수들이 감방벽에 다른 어떤 단어보다 더 많이 써놓은 단어가 있다고 했네.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단어, 어머니나 아버지, 하느님 같은 단어가 아니라고 했지." 에두아르도는 또 내 오랜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심각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쳄'이라는 단어였네."
"자쳄이 무슨 뜻이죠?"
"'왜'라는 뜻이지." 에두아르도가 대답했다. 당혹스럽고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 말이 줄리언의 마음에도 쓰여져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배신이 적어놓은 단어라는 생각도 들고."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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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0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6-20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저는 지금 누구누구님들이 좋다고 강추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절반 정도 읽었습니다.
참...특이한 소설이네요.

2.'왜?'라는 질문은 부조리한 세상속에서는 더욱더 절망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아무리 왜냐고 자신에게.... 신에게.... 물어봐도
자신이 겪는 이 일이 이해가 될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그저 뭐 내 팔자가 이렇지 뭐 자포자기 하고 사는것이 오히려 조금은
더 편하게 살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잘 쓰는 뭐라더라
그...지금의 시련은 하나님이 다 널 사랑해서 그런거다 뭐 이딴거 믿으면서요....

3.기분이 계속 우울하니까 댓글도 삐딱~~ =..=


다락방 2014-06-20 11:52   좋아요 0 | URL
1. 저는 지금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고 있습니다. 뜨끔한 문장들이 나올때마다 뜨끔뜨끔 합니다. 유권자와 소비자 부분에서 특히..

2. 지금의 시련은 하나님이 다 날 사랑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을 이겨내야하는 거구나, 하며 내 몫인가보다, 체념하게 되는 경우가 저도 더러 있긴 합니다.
아니, 그래야 버텨지기도 하고 말이지요.
너무 싫잖아요, '너를 사랑해서 그래' 라는 말. 싫어요 진짜.

3. 저는 조울증인듯 우울했다 웃었다 합니다. 얼마전엔 다정한 남자사람 친구로부터 '요즘 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줘?' 란 말을 들었어요. '며칠전엔 짜증냈잖아' 하면서요..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레와 2014-06-2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더욱 탄력붙은 다락방의 리뷰러쉬~ 좋아요!!! (엄지척!) 히히..

다락방 2014-06-20 11:52   좋아요 0 | URL
탄력붙었다는 말은 종종 듣고 있는데 댓글은 점점 줄어요...뭐징.. ㅎㅎ

자작나무 2014-06-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 - 길 잃은 아이들의 길 찾기 프로젝트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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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동안 아이에게는 카메라가 지급되고, 그는 이것을 통해 보는 연습을 한다. 돌아간 후에는 추억을 담은 사진첩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출발할 때 그에게 여행 수첩을 주고, 걷는 동안 기록하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다른 몇 가지 요소들도 젊은 보행자의 정신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게 된다. 쉬는 날에는 일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관광지를 방문할 수 있다. (p.157)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감옥에 보내는대신 '걷기'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사실이 꽤 매력적으로 들린건 사실이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물론 걷는걸 좋아하고, 걷는 동안 아주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지만, 설사 그렇다한들 걷는것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좀 더 나은방향 혹은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른과 함께 걷는다고 해도 그저 무심히 자기가 갈 길만 가고 자신이 선택한 음악을 듣고, 핸드폰으로 SNS에 몰두한다면, 그건 별로 가져다주는 게 없을것 같은데? 3개월간 걸으며, 그저 몸이 건강해지는 것, 그것 뿐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는 확실히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멀리 내다볼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걷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속한 곳과의 단절이 필수였다. 동행하는 어른의 핸드폰으로 간혹 가족들과 통화를 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들이 핸드폰을 소유할 순 없었으며 음악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허락되어지는 건 하루에 3유로의 용돈과 카메라 뿐이었다. 프랑스의 아이들, 불어만 할줄 아는 아이들은 독일이나 스페인 이탈리아등 낯선 곳을 걷는다. 그저 걷는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같이 걷는 동행자(어른)와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설거지를 하고, 함께 텐트를 쳐야하며, 혹여나 닥쳐오는 난관들 역시 함께 극복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청소년 범죄는 그들의 어릴적 좋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비롯되고, 그 아이들의 대부분은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3개월간 낯선 길을 낯선 이와 함께 걸으면서 그들은 어른과 대화를 하고 함께 행동하고 이해하면서 어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도 한다.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을 마주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걸 배우고, 그들에게 환영받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그간 자신들이 속한곳에서 잘 해내지 못했던 사회화를 경험한다. 


물론 갑자기 낯선이와 걷기, 라고 한다면 거부반응이 올 수밖에 없을터. 쇠이유에서는 이들이 걷기에 참여하기전 일단 동행자와 함께 연수기간을 준다. 가방을 싸는 것도 함께 배우고 앞으로 가야할 여정에 대한 것도 공유한다. 낯선곳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연수과정을 갖고 걷는걸 연습한다. 걷기가 끝나고나도 마찬가지, 그것으로 끝, 이 되는게 아니라 그들은 다시 연수 과정을 거친다.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느꼈는지 걷는 중에도 주간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그들은 걷기를 마치고나서 앞으로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충분한 상담을 거치고 다시 '이곳'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 



왜 어른 하나에 아이 하나일까, 어른도 여러명이며 아이도 여러명인 것이 재미나 협동심 면에서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대한 의문 역시 이 책은 풀어준다.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 두 명과 함께 걷는 일은 매우 어렵다. 우리는 초반에 이 방법을 시험해보았지만,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2인조'(네 달 동안 아이 두 명과 2,500킬로미터를 걷는 것)보다 짧고 더 효과적인 '솔로'(세 달에 1,900킬로미터를 걷는 것)를 선택했다. 같은 시기에 오이코텐도 이 방식을 채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p.66)



미성년자 사법 보호 감찰기관 또는 아동 상담소의 교육자들이 걷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첫 번째 요인은 쇠이유가 걷기 이후의 계획을 확실히 세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집단적인 관리는 현 상황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쇠이유에서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책임지며 담당 성인의 지원하에 아이가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p.108)



쇠이유 프로젝트의 독창성은 성인 동행자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만남과 시간을 제안한다는 데 있다. 소수가 만들어내는 긴밀한 관계는 주도권 다툼과 집단적 흥분, 그리고 정체성의 상실을 피하게 해준다. 아이는 이 긴 모험 속에서 스스로를 책임지며, 자신의 역할을 정의하고 실천한다. 예상치 못한 일과 직면했을 때는 아이도 어른도 각자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 (p.l54)



중간 코스마다 보조 동행자가 참석하고 또 중간에 상담사도 동행하는 등, 걷는 중에도 계속 아이에게 신경을 쓰는 이 걷기 프로젝트는 실제로 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해결방법은 아님은 명백하다. 쇠이유는 이 걷기 프로젝트를 마쳤음에도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수감되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 걷기가 빠른 시간에 아이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고도 말한다. 천천히 변화할 수도 있고 설사 지금 당장 다른 범죄를 재차 저지른다해도, 이 걷기에 몰두했던 시간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걷기를 함께한 사람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일이다. 걷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그러나 재발 가능성 때문에 의사가 치료를 단념해야 할까? 범죄자가 재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그들을 다시 교도소에 보내는 것보다 비용이 훨신 덜 든다는 걸, 이 사회는 언제쯤 깨달을까? 재범의 위험에 대해 우리에게 자꾸 묻는 이유는 우리의 방법을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p.45)




하지만 쇠이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걷기가 즉각적인 효과를 얻진 못했을지라도 아이에게 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서 결국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걷기 여행이 끝나고 나면, 아이는 '머릿속에서' 걷기를 이어나간다. (p.82)


이 걷기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그 효과에 대해 미심쩍어 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이 계획이 내 생각보다 훨신 더 철저하게 잘 짜여져 있음에 감탄했다. 내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준비했다는 생각도 들고. 제일 처음 청소년 범죄자들과 함께 걷기를 실행했던 벨기에도, 그리고 지금 이 책의 배경인 프랑스도,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청소년들과 함께 3개월간을 걷고 또 그 전과 후에 연수과정을 함께하는 동행자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곳으로 가 있는 자원봉사자들인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과 낯선 곳을 단 둘이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것이다. 그러나 분명 용기를 가지고 이 일에 임하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나는 자원봉사자가 되어서 그들과 함께 걷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단체가 혹여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기부금을 낸다든가, 걷는 도중 읽을 책을 기증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작게나마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법부에서는 자꾸만 청소년범죄자들을 '가둬두려고'만 하며 그 아이들이 '나쁘니' '처벌해야한다'고만 할때, '그 아이들의 환경이 좋지 못한 것이지 아이들이 나쁜게 아니다' 라는 걸 믿고 함께 하며 그 아이들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려고 하는 이런 어른들과 이런 단체라면, 기꺼이 도울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저 좋은 의도만으로 무작정 시행하는 게 아니라, 쇠이유처럼 철저한 연구와 검증으로 계획을 세웠다면, 믿을만하지 않겠는가.



걷기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다시 쇠이유로 돌아와 연수 프로그램까지 마쳐서 이제 어떤식으로 사회의 일원이 될것인가를 결정하고 나면, 그제서야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난다. 그리고 그때, 이 청소년의 가족들과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함께모여, 아이들의 '귀환파티'를 해준다. 그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는 '내가 무언가를 이뤘다'는 느낌에 그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들이 그전보다 더 성장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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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6-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올린 트윗에서 이 책을 보고, 어떤 책일까 궁금했어요.


^^

다락방 2014-06-18 09:39   좋아요 0 | URL
이 세상엔 정말이지 놀라운 사람들로 가득해요.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말이죠. 읽기를 잘한 책이었어요. 흐흣.
잘 보내고 있습니까, 오늘 아침?

레와 2014-06-20 10:07   좋아요 0 | URL
어제 쓰다가 지운 댓글인데,
세상엔 바보같은 사람들이 천지삐까린데, 그중에 한명이 그 바보들을 이끌고 가는듯한 느낌?
내가 그 한명이 될 생각과 행동은 못하고, 난 그냥 바보같은 인간이야. 뭍어가자..고 결론지어 버리는 변명만 늘어가는 감..

2014-06-18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4-07-1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워낙 책을 많이 올리시니 ㅋ 당선 된 것도 까먹으시겠지만 ㅋ
축하드려요! 당첨 ㅋ
 
왜 하필 포르투갈인가요?

얼마전 나의 후버까페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이런 멘션을 보냈다. '이것은 마치 《저지대》의 가우리가 혼자 산책하고 혼자 앉아 다른 사람들을 보았던 바로 그 학교의 풍경같다' 고. 그러자 후버까페는 맞다며 자신도 《저지대》를 읽으며 이런 풍경을 떠올렸었다고 했다. 


이 대화는 조금 시간이 지난후에, 며칠 뒤에 아주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먼 곳에 있는 친구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 같은 풍경을 상상하고 떠올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이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해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나이나 성별이 같은 것도 아닌데,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혼자 가만히 이 일을 떠올리면서도 씨익 미소지을 수 있었다. 아, 행복해. 


지난 금요일. 그 날은 먼 곳에서 오는 친구를 만나는 날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나는 까페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졸음이 쏟아져왔고, 결국 나는 그 친구와 그 날 함께 묵기로 했던 호텔에 짐을 두려고 혼자 먼저 들렀다가, 침대의 강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웠다. 아, 그리고 잠에 빠졌다. 한 삼십분간, 정말로 자고 일어났고,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하하, ㅂㄱㄹㄴ님을 처음 뵙게 됐는데, 나는 그 앞으로 가 겁도 없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 뒤, 저 누구게요? 라고 물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는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했다. 또한 그 날 두번째로 뵙게 되는 ㅅㅂㄷㅇ님께도 인사를 건넸는데, 그 분은 내게 '책은 잘 팔려요?' 라고 물으셨고, 나는 '아니요 안 팔려요' 라고 답하면서 함께 웃었다.


또한 오랜 벗인 ㅅ 님과 내가 친구라는 사실이 기뻤다. 나를 보자 알은체를 해주시는 ㅅ 님에 대해 솟아오르는 다정한 마음, 이랄까. 히히.


나는 내가 오랜 시간 다정한 벗을 옆에 둘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이, 다시 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이 모든 작은 일들이 자꾸자꾸 생각났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건, 내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어서,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 지난주에 강하게 나를 공격했던 외로움과 우울증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내며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안락함이, 편안함이, 소중함이, 다정함이, 그리고 행복함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여도 무척 좋을거라고, 이대로도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영화를 봤다.



영화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매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져, 나는 영화속 등장인물들 중 누구에게도 몰입을 할 수가 없었고,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으니 영화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감동이어야 할 장면이, 사랑스럽거나 슬퍼야 할 장면이 그 감정 그대로 내게 다가오질 못했다. 그 자리에는 의문들만 찾아왔다. 왜? 왜 갑자기 저렇게 리스본으로 떠나? 왜 갑자기 혁명이 사랑이 됐지? 왜 사랑이 갑자기 이별이 됐지? 그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님은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을 자연스럽게 풀어내지 못해서 나는 그들이 될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뭐야 별로잖아,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 책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이 영화속의 결말을 책에서 어떻게 자세하게 풀어냈을 지 그걸 꼭 읽어보고 싶었다. 안그래도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 영화만 보고 책 읽기는 포기할까 했는데, 영화속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거다. 그 결말을 꼭 책으로 확인해야지, 하는 마음에 책을 다시 펼쳐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어려웠던 이유는, 책 속의 등장인물인 '아마데우'가 쓴 책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념과 관념으로 가득찬 그의 책이 도무지 내가 읽어 소화해낼 수 없는 책으로 여겨진거다. 내가 딱 싫어하는 책 스타일이랄까. 이를테면 이런거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28)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p.384)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이런 문장들에 푹 빠져서 그를 찾아 리스본으로 떠나지만, 나는 도무지 이런 문장들에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는거다. 이토록 추상적인 문장들,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문장들이 내게는 벅차게 느껴지는거다. 그레고리우스는 고전학자이고 여러개의 외국어를 습득한 사람이니, 이런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를 그대로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좋아했지, 나는 이런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면 몇 장 읽지도 못한채로 멘붕에 빠졌을 것 같은거다. 이게 뭔말이여...하고. 이것이 글이 아니라 말이었어도 마찬가지. 만약 처음 만나는 누군가가 내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일까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할까?' 라고 물었다면, 나는 그 사람과 두번째 만남을 기약할 수는 없었을 거다. 글쎄요,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네요, 돈까스 좀 드셔보세요, 라고 나는 대꾸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레고리우스가 푹 빠진 책에 나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어서 이 책과 내가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드는 데는, 당연히 많은 생략과 각색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제 늦은밤까지 책을 다 읽은 지금, 마리아 주앙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스테파니아와 아마데우의 관계도 좀 달라 안타깝지만, 안과의사인 '마리아나 에사'에 대한 과도한 생략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처음 포스트잇을 붙였던 부분이, 이 마리아나 에사가 나오는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영화속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책 속의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다. 전문적이고 세심하며 따뜻한 여성인데, 이는 내가 오랜 기간 안경을 맞추면서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그녀가 포르투갈에서 행하고 있었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안과의사를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아마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의사인 것이다.



지독한 근시인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에 도착해 그 낯선 곳에서 안경을 깨뜨린다. 그래서 안과를 찾아가는데, 마리아나 에사는 그곳에서 만난 안과 의사이다.



그는 의사가 보조안경을 재보고 일상적인 시력검사를 한 다음 안경점에 가져갈 진단서를 끊어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선 온갖 단계적 상황과 불안을 포함하는 그의 근시 내력을 듣고 싶어 했다. 이야기가 끝난 다음 그가 안경을 내밀자 그녀가 주의깊게 살펴보며 말했다. 

"잠을 푹 주무시지 못하는군요."

그러고는 기계가 있는 한쪽 구석으로 가라고 했다.

진찰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의사는 마치 새로운 풍경에 익숙해지려는 사람처럼 아주 세밀하게 검사했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세 번이나 반복되는 시력검사였다. 그녀는 검사 도중에 잠깐씩 쉬면서 그를 왔다갔다 걷게 하고, 그의 직업에 대해 묻기도 했다.

"시력을 결정하는 건 여러 가지 상황이거든요." (p.83-84)



근시에 대한 내력을 듣고 싶어하고, 쉬는 시간을 줄 정도로 검사를 반복하는 게 내게는 정말 신기했다. 나는 라식수술을 할 때조차도 검사가 빠른시간내에 끝났으니까. 지금도 많은 안과에서는 예약만 하면 그날 검사와 수술까지 모두 마칠 수 있다는 광고를 하지 않는가. 안경을 쓰던 그 오랜기간, 나는 안과에 가서 시력 검사를 받은 기억도 없다. 그저 안경점에 가 후다닥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혹은 렌즈를 맞추었을 뿐. 안경점의 직원 그 누구도, 그리고 그간 몇차례 갔던 안과에서의 닥터들도 아무도 내 시력에 대한 내력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진찰하고 다음 환자를 혹은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하니까. 이건 비단 안과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비인후과, 내과도 마찬가지다. 나는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곧잘 찾는데, 그곳에서 닥터가 나를 진찰하는 시간은 콧구멍을 들여다보고 콧물을 다 빼내는 일까지 다 포함해도 삼 분도 채 되지 않는다. 대기실에는 환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주고 말을 걸며 시력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안과 의사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런 의사를 신뢰하지 않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그레고리우스 역시 익숙한 것에 신뢰감을 갖던 사람이었지만, 이 안과 의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검사가 모두 긑난 다음 나온 안경 도수는 다른 때와 아주 달랐고, 두 눈의 시력 차이도 평소보다 많이 났다. 의사가 어리둥절해 있는 그의 팔에 손을 살짝 대며 말했다.

"일단 한번 써보세요."

그레고리우스는 방어 심리와 신뢰감 사이에서 흔들렸지만, 결국 신뢰감이 이겼다. 의사가 안경 가게 주인의 명함을 주고,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포르투갈어를 듣자 키르헨펠트에서 만난 신비한 여자가 "포르투게스"를 발음할 때 느꼈던 요술 같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 갑자기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물론 이 의미는 특정한 이름으로 불릴 수는 없었고, 또 말로 표현함으로써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되는 의미였다.

"이틀 후면 된답니다. 세자르 말로 더 빨리는 도저히 안 된다는군요." (p.84)



시력 검사를 하고 이틀후에야 안경을 찾아 쓸 수 있다니, 너무 오래걸리는 바람에 나라면 아마 미쳐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모든걸 잽싸게 진행하는 이곳에서 내가 지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지, 만약 내가 포트루갈에서 오랜시간 살고 있었다면, 이틀후의 안경은 아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듯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출 진단서를 다 끊어주고 나서 안과 의사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안경이 다 되면 한번 들르세요. 제가 올바르게 진단했는지 알고 싶으니까요." (p.85)



아...진짜, 너무 멋지다! 나를 진찰한 닥터와 조금 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더 나은일인지 혹은 옳은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한 명의 환자 라고만 대하는게 아니라 시력이 나쁜 한 인간으로 대하는 것 같아 다정하게 느껴지는거다. 멋지다. 이런 닥터를 만나는 게 이 곳에서도 가능할까? 포르투갈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하나가 더 추가되는건가?



그리고 마리아 주앙.

아, 마리아 주앙.



마리아 주앙은 아마데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였다. 오랜 시간 그의 친구였고, 그녀는 그에게 언제든 부엌을 내주어 그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며, 그의 글을 보관하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데우는 마리아 주앙이 아니라 파치마와 결혼했고, 마리아 주앙이 아니라 '에스테파니아'를 사랑했다. 에스테파니아에 대한 아마데우의 사랑이 어떠했는지는 '주앙 에사'가 잘 말해준다.


그전에는 눈치만 챘다고 한다면 난 이때 확실하게 알았소. 아마데우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 그와 파치마 사이가 어땠는지 난 당연히 몰라요. 그때 브라이턴에서 두 사람을 본 게 다니까. 하지만 에스테파니아를 향한 그의 마음이 그때와는 아주 다르다는 건 확실했소. 훨신 거칠었고, 폭발하기 전의 들끓는 용암 같았지. (p.370)


거칠었고, 폭발하기 전의 들끓는 용암같은게 어떤 것인지,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몇해전의 여름에 나도 들끓는 용암 같았으니까.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해 힘이 들었으니까. 이 마음을 조금쯤은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억지로 입술을 깨물면서도, 그러나 그게 잘 되질 않아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소파에 가만히 앉아, 그 힘든 시간을 눈물로 보내던 때가 있었으니까. 차라리 그때 폭발했어야 했는데. 폭발하고 터뜨려서 가라앉았어야 했는데..



아마데우는 에스테파니아를 향해 들끓는 용암 같았고, 마리아 주앙은 아마데우의 플랫폼에 서있는 여자였다. 학창시절부터 그와 친구였고, 오랜 시간을 그의 친구로 남아있는 여자, 마리아 주앙. 그러나 나 역시, 에스테파니아 보다는 마리아 주앙이 되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을 옆에 머무를 수 있도록. 그의 '여자'가 되기보다는 그의 '친구'가 되어, 한때 옆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다 사라지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오페라글라스로 날 찾던 귀족 집안의 아들. 그건‥‥‥, 뭔가 특별한 일이었어요. 이미 말했듯이 희망을 품게 했지요. 그 희망은 아직 순진한 형태였고, 또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물론 확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흐릿하기는 해도 함께하는 삶에 대한 희망이었어요." (p.459)


물론 마리아 주앙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나는 너의 여자 대신 너의 친구가 될게, 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마리아 주앙은, 만약 아마데우가 그렇게 하자고만 했다면,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함께하는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희망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마데우는 저기, 저 창문 옆에 앉아 있었어요. 모두 아는 내용이라 심심했던 그는, 저에게 짧은 편지를 써서 쉬는 시간에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곤 했어요. 그건‥‥‥, 그건 연애편지가 아니었어요. 내가 바라던 게 쓰여 있는 편지가 아니었어요. 늘 아니었죠. 아마데우는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적었어요. 아빌라의 테레사나 그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어요. 그는 나를 자기 사유세계의 주민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가 말했지요. '그곳에는 너밖에 없어. 나 말고는.'

하지만 그는 내가 자기 인생에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어요. 난 그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지요. 설명하기 무척 힘들긴 한데, 그는 내가 바깥에 있길 원했어요." (p.460)



오페라글라스로 날 찾는 게, 쉬는 시간에 쪽지를 넣어주는 게, 왜 사랑이 아니었을까. 



"아마데우는 기차를 좋아했어요. 기차는 그에게 삶의 상징이었어요. 난 같은 칸에 함께 타고 싶었지만, 그가 원하지 않았어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플랫폼도 함께 떠나길 바랐어요. 난 기차와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플랫폼에, 그 공중의 플랫폼에 천사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였죠." (p.460-461)



마리아 주앙은 그와 하나의 부엌을 함께 쓸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내 부엌은 니 부엌, 그것은 우리의 부엌, 이 될 순 없었다. 그러나 나의 부엌을 그에게 빌려줄 수는 있었다. 그는 잠깐 들러 내 부엌 식탁 의자에 앉아 자신이 쓰고 싶은 말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마리아 주앙이 희망했던 함께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렇게 되기는' 했다. 



"어쨌든 그렇게 되기는 했지요. 함께하는 삶 말이에요. 가깝지만 먼 곳에서, 멀지만 가까운 곳에서 둘이 함께한 삶‥‥‥,"(p.460)



내가 은근히 품고 있는 희망이 절망이 될 것임을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함께하는 삶을 꿈꿨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켜보는 것도 슬픈 일이고.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가 내 옆에 오래 머무른다는 건,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 다른 방식에서 의미를 찾고, 또 그 의미가 행복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함께 기차를 타고 그렇게 옆자리에 앉는 것만이 사랑은 아닌 것이다. 우정도 사랑의 수많은 갈래들 중 하나이고, 플랫폼에 서 있는 것, 그것이 그가 편하고 또 내가 편하다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사랑인 것이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가슴속에 무한한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던 것처럼, 내 이름이 그의 입에서 소리가 되어 나온 순간, 내게 닿아 미소를 불렀던 것처럼, 나는 그마음 그대로를 담아 플랫폼에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는 함께 기차에 타는 것이 내자리일 것이고, 그리고 그를 만났을 때에는 플랫폼에 서 있는게 내 자리일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내 자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내가 이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내 행복은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내가 선택할 것이다. 때로는 기차에 올라탈 것이고, 때로는 플랫폼에 서있을 것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자꾸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 다이어리를 펼쳐 일기를 썼다. 잊지 말아야지, 지금 이렇게 행복하다는 생각, 잊지 말아야지. 금요일과 토요일에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들, 그들이 건넨 말들, 그리고 내가 건넨 말들, 함께 앉았던 순간들, 함께 걸었던 순간들. 모두 기억해야지. 


어젯밤 23:42. 나는 이 책을 읽다말고 책에서 시선을 들어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 시간, 어딘가에 나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이것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다만 순수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이 늦은 시간, 잠을 자는 대신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할까? 하는.



일요일인 어제는 날이 좋았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일자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지만, 올라가는 길에는 전효성의 노래를 들었다. 키야- 





그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 즉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독서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금방 알 수 있으며, 사람 사이에 이보다 더 큰 구별은 없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들으면 놀랐고, 그의 괴상한 성격에 머리를 가로젓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레고리우스는 알고 있었다. 정말 알고 있었다. (p.101-102)

"옷을 좀 사지 그래요?" 첫 줄에 앉은 학생이었던 플로렌스는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내가 되었을 때, 이런 태도는 곧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스어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아요." 다시 혼자 살게 된 19년 동안 옷 가게에 간 적은 두세 번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도 옷 때문에 잔소리를 하지 않는 생활을 즐겼다. (p.118)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친자식을 동물처럼 도살하라고 요구했음을. 이런 말씀을 읽을 때 느끼는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신과 논쟁하려 한다고 욥을 비난하는 신은 도대체 어떤 신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기가 겪는 상황을 도저히 이애할 수 없는 욥을? 욥을 그렇게 만든 게 누구던가? 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불행에 빠드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이 그러는 것보다 덜 부당할 이유는 뭔가? 욥이 풀평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았던가?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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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1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이런 얘기 하는거 좀 이상하다는 거 알지만서도, 금요일에 다락방님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는데요.
나도 다락방님 만나고 싶었는데.... T.T 눈에 뭐가 나서, 엉엉....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고......
너무 보기 흉해서요.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지만, 단정한 모습으로 다락방님 만나고 싶어서, 금요일에 다락방님 있는 곳에 갈 수가 없었어요. 만약에 나갔으면, 용기내서 다락방님한테 전화했을텐데... 아니면, 단번에 알아봤을수도... 엉엉.....

2. 저는 바깥에는 못 있어요. 특히 오래는요. 그리고, 플랫폼에도 오래는 못 있어요. 빠이~~ 하고 가버릴거예요.

3. 욥기는, 저도 한 두 번 읽어봤는데. 성경을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읽을 수는 있지만.....
많이 재미있지는 않고. 하지만, 작가들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에 공지영씨도 욥기에 대해 쓴 글이 있더라구요.
욥의 친구들이 주저리주저리 한 마디씩 하는데요. 하일라이트는 끝부분 '하나님의 대답'이예요.
웬지 다락방님은 안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다락방 2014-06-16 11:19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대체 어떻게 아시죠, 단발머리님? 전 지극히 조용히 움직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단발머리님이 전화하셨다면 저는 기꺼이 단발머리님께 가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을 겁니다. 하핫. 어쩌면 저를 단번에 알아보셨을 지도 모르고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정말.

저도 바깥에, 플랫폼에 있어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렇게는 싫었죠. 그렇지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고 있답니다. 저란 인간은 워낙에 변덕이 심해놔서 말이지요. 확실히 플랫폼에 서 있는 쪽이 제게 더 잘 어울리고 또 제게 더 편합니다.

욥기를 한두번 읽어보셨다니, 오, 놀랍습니다, 단발머리님.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일전에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고서도 성경을 읽어보고 싶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또 그러네요. 어쩌면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제가 안 좋아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요. 읽지는 않았는데 벌써부터 말이지요. 하핫.

월요일이에요. 그나마 이제 점심때가 가까워옵니다. 히융-

레와 2014-06-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아 주앙은 영화에서 안나왔던 인물이죠? 다락방 페이퍼를 보니 영화와 책이 다른책 같은데. ㅎㅎㅎㅎ 책을 읽어봐야겠소!

다락방 2014-06-16 11:59   좋아요 0 | URL
네! 저렇게나 중요한 인물이 영화속에선 아예 존재가 없었다는.. ㅎㅎ
게다가 놀랍게도 영화와 책의 결말이 완전히 달라요, 완전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4-06-16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6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6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씨가 좋아서 자꾸 니 생각이 나.



















아..이 책을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오늘 출근길까지 70페이지 가량을 읽었는데 흑흑. 너무 힘들다. 


가뜩이나 회사 때려치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정도까지 읽었을 때 이 책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성실히 잘해오던 교수직을 때려치고 포르투갈로 가는 기차에 훌쩍 몸을 싣는게 아닌가. '포르투게스'라는 포르투갈 여자의 그 발음에 이끌려 그 순간부터 그동안 지탱해왔던 그의 삶이 흔들리고, 그는 어학교재를 사서 집안에서 밤이 새도록 포르투갈어를 공부한다. 포르투갈이라니, 내가 프란세시냐 때문에 엄청나게 가고 싶었던, 바로 그곳!


만약 그레고리우스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이토록이나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나같은 사람이었다. 여행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만족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사람. 자기가 머무르는 도시를 편안해하고 낯선곳을 두려워하는 사람. 그것마저도 나와 같은데-지금의 나는 눈이 (수술의 영향으로) 나쁘진 않지만-, 그런 그가 떠난다. 기차를 탄다!!



그리고리우스는 부벤베르크 광장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평생을 살아온 이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여기가 집이었다. 심한 근시인 그에게 이런 낯익음은 중요했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자신이 사는 도시는 비닐하우스나 동굴, 안전한 건축물이었다. 그 외의 것들은 위험했다. 그의 안경만큼 두꺼운 안경을 쓴 사람만이 이런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p.29)




낯익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기차로 스무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을 향해 떠난다. 아...미치겠다. 


물론 그가 나와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언어에 탁월한 감각을 지녀 외국어를 잘 익힐 수 있는 것은 나와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진 점이고, 그는 비행기 여행을 싫어한다는 게 그렇다. 



그가 왜 비행기 여행을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비행기에 올라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한다는 사실-그 중간에 놓인 개별적인 모습들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은 그레고리우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건 옳지 않아. 그의 말에 플로렌스가 "옳지 않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더 자주 혼자 비행기 여행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목적지는 대개 남아메리카였다. (p.30)



아, 나는 열 몇시간동안 공중에 떠있다가 새로운 곳, 내가 알지 못했던 전혀 낯선 곳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두근두근하는데, 그래서 비행기 여행을 싫어하지 않는데, 그레고리우스는 그 점 때문에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레고리우스의 생각을 이렇듯 읽노라니 그래, 어쩌면 반칙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새로운 곳, 완전히 낯선 곳에 도착하는데, 그러기 위해 지나가는 과정들을 깡그리 무시해야하다니, 반칙같잖아? 물론 그렇다한들 나는 계속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토요일에 이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그 전에 이 책을 다 읽는건 당연히 무리이겠고, 아, 이 책을 읽어나가는 건 그 자체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것 같다. 안그래도 뛰쳐나가고 싶은데 등을 떠밀고 있는것 같달까. 아흑.



점심을 배터지게, 푸짐하게 먹어야겠다. 마음 단단히 먹자.





덧. 아니 그런데 책 속의 그레고리우스는 대머리..인데 영화에서는 이 역할을 제레미 아이언스가 한다니...아아 너무 간극이 큰 거 아닙니까. 제레미 아이언스 때문에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거려. 흑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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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는 나의 이름을 불렀고 나는 플랫폼에 서 있기로 했다.
    from 마지막 키스 2014-06-16 09:47 
    얼마전 나의 후버까페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이런 멘션을 보냈다. '이것은 마치 <저지대>의 가우리가 혼자 산책하고 혼자 앉아 다른 사람들을 보았던 바로 그 학교의 풍경같다' 고. 그러자 후버까페는 맞다며 자신도 <저지대>를 읽으며 이런 풍경을 떠올렸었다고 했다. 이 대화는 조금 시간이 지난후에, 며칠 뒤에 아주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먼 곳에 있는 친구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 같은 풍경을
 
 
하루 2014-06-1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실 저도 아직 소설을 다 읽지 못했어요.
사실 영화가 충분히 완벽했다랄까 :)

다락방 2014-06-12 14:03   좋아요 0 | URL
저는 소설을 다 읽고 보고 싶은데 흑흑 시간이 없어서 아마도 영화를 먼저 보게될 것 같아요. 영화가 완벽하다니. 기대됩니다!

blanca 2014-06-1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보고 싶은데 흑흑. 책은 어떤가요? 책이라도 읽을까요? 제레미 아이언스라니. 너무 하잖아요.

다락방 2014-06-12 14:06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읽은거로는 책은 괜찮아요. 근데 문장이 뭐라고해야하나 음...약간 산만한 경향이 있다고 해야하나..그래서 내용이 좋아도 별 다섯을 주지는 못할 것 같은 책이기는 해요. 그렇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 포르투갈로 향하는 여행, 낯선 이들과의 만남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니 블랑카님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하핫

레와 2014-06-1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악 >_<
완전 기대하고 있소!

책도 궁금한데..ㅎㅎㅎ;;;;

다락방 2014-06-12 14:06   좋아요 0 | URL
나는 무엇보다 포르투갈을 영화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요. 포르투갈과 스위스!! 꺅 >.<

아무개 2014-06-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남자 사람도 좋아합니까? 의외로군요.

점심을 배터지게 '먹는'것과
마음을 단단히 '먹는'것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기차타고 부산 가고 싶어요.
태종대 검푸른 바다가 보고 싶어요.....
하지만 여름엔 바다에 가지 않으니
10월까지 기다려야겠어요.

다락방 2014-06-12 14:08   좋아요 0 | URL
저는 지적이고 차가워보이는 남자도 물론 좋아합니다. 물론 남자보다 술이나 책이 더 좋긴 하지만....여튼 제레미 아이언스는 무척 섹시하잖아요? 근데 제레미 아이언스라면 뭐랄까 동경 쪽인것 같아요. 쉽게 예를들자면 제레미 아이언스가 사귀자고 하면 거절할겁니다.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하하하하하. 이거 사람들이 보면 나 미친줄 알겠네요. 미쳤나 제레미 아이언스가 지한테 왜 사귀자고 해..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집에 가고 싶어요.. ㅠㅠ

자작나무 2014-06-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씨. 내가 많이 생각해 봤는데 즐거운 일을 하고 사세요. 일단 지금 회사 그만두고 알라딘에 취직하세요. 알라딘중고매장 말고 도서팀이나 기획팀 쪽으로 취직하세요.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아마 매일매일 출근이 신나고 퇴근이 싫어질 거예요. 그리고 차근차근 승진하거나 경력을 잘 쌓아 다른 서점 혹은 출판사로 이직하세요. 잘되면 한턱내시구요.
ps. 제레미 아이언스는 세월이 앗아갔더군요.

다락방 2014-06-12 14:1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저는 직장이란 곳에 다닐거면 여길 계속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싶은거에요. 쉬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먹고 살아야하므로 아무것도 안할 수가 없으니...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제가 알라딘에 취직할 수 있을까요? ㅎㅎ 엄청 힘들것 같은데요. ㅎㅎ

그렇지만 즐거운 일을 하고 사는건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계속 고민해볼게요.

자작나무 2014-06-12 16:52   좋아요 0 | URL
아무것도 안하면서 잘 먹고 사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죠...

건조기후 2014-06-1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프란세시냐... 생각납니다. 먹어본 적도 없는데 만드는 것만 봐도 엄청난 고칼로리 덩어리가 그득그득 뱃속에 들어찬 기분이 들던 그 프란세시냐. ㅎㅎㅎㅎㅎ 이거 먹을 때 다락방님부터 떠오를 알라디너 여럿일 듯 ㅎㅎㅎ

저도 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동경하는데 그러면서도 막상 여행은 별로 즐기지 않는 거 같아요. 나이 먹으니까 점점 고소공포증같은 게 생겨서 비행기도 무섭고. ㅡㅡ 그러면서 또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로망은 갖고 있고... 인간 참. ^^

다락방 2014-06-13 09:40   좋아요 0 | URL
제가 그게 그렇게나 먹어보고 싶어서 포르투갈을 가고 싶었고, 포르투갈은 너무나 멀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어서 꿩대신 닭이라고 마카오를 갔다온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작년에 홍대근처에 포르투갈 레스토랑이 생겼다더군요! 당연히 프란세시냐도 팔고요. 조만간 친구들하고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저처럼 그거 먹어보고 싶은 사람들은 비행기 예약해서 먼 나라로 갈 필요가 없는겁니다. 크- 진작 생길 것이지 ㅠㅠ

저는 고소공포증은 있는데 비행기는 별로 안무서워요. 그렇지만 낯선 곳에 가는 것은 많이 무서워요. 저는 현실안주형인가봐요. 히융- 지금도 사실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게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ㅠㅠ

단발머리 2014-06-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음절, 한 음절, 다락방님이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거 얘기가 나오는군요.

프.

란.

세.

시.

냐.

안 먹어 봤는뎅...... 먹고 싶네요.....

다락방 2014-06-13 09:42   좋아요 0 | URL
홍대근처에 포르투갈 레스토랑이 생겼다니 꼭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http://blog.naver.com/dydy0105/80210678615

중간에 이 레스토랑의 프란세시냐 비주얼 등장합니다. ㅎㅎ

다락방 2014-06-1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4-06-12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2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6-13 09:4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두 분!! 영화 잘 보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4-06-12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3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2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6-13 09: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차가운 장미도 보고 싶고 볼 영화가 많더라고요! >.<

dreamout 2014-06-1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 리스본에 도착한 이후의 분위기는 또 달랐던 것 같아요.
수전 손택이었나.. 우울증을 멜랑콜리에서 매력을 뺀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던게 떠오르는데요..
바꿔말하면, 이 소설은 우울증에 매력을 더한 것. 멜랑콜리 했던 분위기로 기억... 저 같은 경우는요. ㅋ

다락방 2014-06-13 09:45   좋아요 0 | URL
리스본에 도착해서 지금 아마데우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어요. 근데 책 읽으면서 그레고리우스랑 아마데우 때문에 저는 자꾸 아마데우스라고 읽게돼요. 하핫.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날지 참 기대돼요. 그런데 뭐랄까, 너무 쉽게 사람을 찾는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고요. 여튼 끝까지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봐봐 2014-08-2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을 2주에 걸쳐 읽게 되었네요.
책에 대한 사전정보는 락방님 포스팅 뿐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더랬죠)

빨리 뒷장으로 넘어가고 싶으면서도, 천천히 읽어내리고 싶은 이율배반적 욕망때문에 속도조절이 참 힘들었어요.
다 읽고 난 지금에는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가 싫네요. 이 여운이 사라질까봐.

이 책을 뭔가 한문장으로 정리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만, 전 이렇게 쓰겠어요.
언어에 대한 순결한 사랑, 이 언어로 삶에서 명료함을 얻고 삶을 규정지으려한 자의 내면과 행적을 쫓아가는 책.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푹 빠질 수 밖에 없는 책인 것 같네요.
그래서 더욱 책을 읽고 난 지금, 다락방님의 '후기'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올려주시겠어요? (독자요청)


다락방 2014-08-25 14:11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fallen77/7041630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한 페이퍼는 지금 링크한 것 한 편이 더 있습니다. 이 페이퍼가 다 읽고나서 쓴 것이고요. 그래서 아마 더는 쓰지 않게 될 것 같은데요. 하핫;;

봐봐님은 이 책이 엄청 좋으셨군요! 저는 그렇게까지 막 좋진 않았어요. 분명히 매혹적인 부분들이 있었지만 또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말이지요. 저는 특히나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들이 아주 좋았어요. 저도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어질만큼 말이지요. 이 책은 저보다는 봐봐님이 훨씬 더 잘 읽으신 것 같아요. 봐봐님을 더 많이 건드린 것 같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