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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비를 위로 치웠다.' 헤르브란트 바커르의 데뷔작 『그곳은 평화롭겠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단순하지만 참으로 뛰어난 첫 문장이다. - 헤트 파롤


이 책의 뒷표지에서 이런 추천사를 봤다. '아비'? 아비라니, 아버지를 말하는건가? 아니면 이름이 아비(Aby) 라는건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비가 아버지를 지칭하는 건 맞지만 그게 호칭으로서의 아비인지 이름으로서의 아비인지 아직 분간이 안된다. 



이 책은 네덜란드 소설이고,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 원서를 찾아 첫 문장을 확인해보면 금세 확인될 수 있을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마존닷컴에서 검색한 네덜란드 원서는 미리보기가 안되더라. 해서, 영어로 번역된 책을 찾아 첫 페이지를 봤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아비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호칭이 맞았다. 아직 이 책의 50페이지까지 밖에 읽지 않아서 왜 굳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않고 아비라고 하는지, 영어에서는 father 로 번역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아비'라고 번역한건지 그 이유를 갸웃해하며 생각해본다. 아버지를 아비라고 칭해야 할 이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아비'는 '아버지의 낮춤말' 이라는데, 어쩌면 굳이 낮춤말을 써야 했던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은 아버지를 현재, 50페이지까지에서,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홀대하고 있으니까. '배고파' 라는 아버지의 말에 '가끔은 누구나 배가 고파요' (p.16) 라고 대꾸하고 '목말라' 라는 아버지의 말에 '가끔 목마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p.21) 라고 대꾸하니까. 그 홀대의 의미에서 굳이 아비라고 번역했을거라 짐작은 하지만, 굳이 그래야 했던걸지는 모르겠다. 네덜란드 원서에도 아버지를 낮춤말로 표현했을까? 여튼 읽는데 아비 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툭툭, 걸린다. 그리고 '위로 치웠다'고 되어 있는데 위층으로 옮긴거니만큼 '위층으로 치웠다' 고 쓰는게 낫지 않았을까. 난 위로 치웠다고 해서 침대를 반으로 갈라 윗쪽에 놨다는 줄 알았다, 처음엔. 그러나 위층으로 옮긴거였다. 



내가 이 소설을 어떻게 알게된건지를 모르겠다. 내가 이 소설을 어떻게 알고 읽으려고 사둔거지? 그건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아비'가 자꾸 소설에서 나를 튕겨져 나오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오랜만에 만나는 꼭꼭, 천천히 씹어 읽고 싶은 그런 소설이다. 차악- 가라앉은 분위기, 비밀스런 무언가가 그 가라앉은 분위기에 숨겨져 있을거란 어렴풋한 짐작.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천천히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게다가 네덜란드 소설이라니, 이 얼마나 낯선가! 모르는 단어, 모르는 문장들마다 친절하게 붙어있는 페이지 하단의 주석은 이 책을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나는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주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모르면 모르는채로 넘어가도 괜찮은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띄엄띄엄 읽긴하는데, 네덜란드라는 아주 낯선 나라, 그 나라의 풍경에 대한 주석은 아주 흥미롭다.



길을 뺑 돌아 양들의 방목장으로 가서는 양들의 숫자를 세어본다. 암양 스물세 마리, 숫양 한 마리, 모두 모여 있다. 빨개진 암양들의 엉덩이를 보니, 숫양을 치울 때가 된 것 같다. (p.18)



위의 문장에 주석이 달려 있는데 그 주석은 이렇다.



* 양들의 번식을 위해 매년 가을 숫양 한 마리를 빌려 암양들과 교미시키는데, 숫양의 배에는 빨간색 스탬프 통이 채워져 있어 숫양이 암양과 교미를 하면 암양의 엉덩이에 스탬프가 찍힌다. (p.18)



앗. 신기하다. 재미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네덜란드에 가게 된다면, 양목장을 방문해 암양의 빨간 엉덩이를 보게 된다면, 나는 그 때 아마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저 양, 좀전에 숫양과 교미했구나, 하고. 

또 있다.



"신터클라스 파티 했으면 좋겠어." 아비가 말한다. (p.20)



신터클라스? 나는 이 문장의 이 단어를 보자마자 이것은 '산타클로스'의 오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자꾸 '신터클라스'라 나오고 역시 내가 궁금해할 걸 알았는지 주석이 달려있다.



* 매년 12월 초면 스페인에서 신터클라스가 선물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흑인들과 함께 네덜란드로 오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12월 5일이면 이 신터클라스가 집 안의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두고 간다고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매년 12월 5일은 축제일로 네덜란드 가족들은 신터클라스를 기념하기 위해 선물과 직접 지은 시를 주고받는데, 여러 명의 가족들이 파티를 하는 경우에는 누가 누구에서('누구에게' 로 고쳐야 할듯) 시와 선물을 줄 것인지를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제비뽑기 결과는 선물을 주고받을 때에야 알 수 있다. 신터클라스는 성 니콜라스라고도 불리며,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 전통은 미국으로 건너가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타클로스를 신터클라스의 변종으로 간주하여, 신터클라스와 산타클로스를 각각 달리 칭하고 동일시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는 12월 5일에 오고,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 때 온다. (p.20)



오오! 재밌다. 신터클라스는 산타클로스의 오타가 아니었어!! 게다가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타클로스를 변종이라 간주한대. 오오. 이 책이 이 때부터 재미있어진 것 같다. 앞으로 읽다가 내가 모르는 네덜란드에 관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주석으로 보여질까, 그걸 알고싶다는 생각이 막 드는거다. 물론, 주인공이 왜 아버지를 홀대하는지, 그 홀대의 배경은 어떤것이었는지, 이 가라앉은 분위기와 그 분위기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천천히 읽고 싶어지는 소설을 만나서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부디 끝까지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구글로 이 책의 네덜란드 원서를 검색하려다가, 오, 이 책이 작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게됐다. 그러자 이 책을 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끝까지 재미있을까? 





아 무척 기대된다, 이 책의 책장을 덮는 그 순간이. 내가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이 가라앉은 분위기가 결국은 나에게 묵직한 감동을 주게 될까? 나는 읽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게 될까? 나에게 어떤 느낌들이 찾아들지, 어떤식으로 나를 후려치게 될지 알 수가 없어 설레이고 기대된다. 나는 오늘 기차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갈건데, 그 기차 안에서 이 책은 내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지. 부디 퇴근후 피곤에 쩔어 쿨쿨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엔 광어회와 화이트와인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실컷 수다를 떨어야지. 건배, 하고 입 밖으로 내어 말해야지. 그나저나 알라딘에서 계속 문자가 온다. 주문한 상품이 배송되었다부터 시작해서 중고등록 알림문자 까지...아아- 중고등록 알림문자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나는 여전히 판단할 수가 없다.



울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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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4-02-1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서재로 들어와서 저 첫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근친을 떠올렸어요. 일을 끝낸 후 위로 밀어버린 건가.. 했다는. ;; 난 쓰레기 변탠가봐요... 아니면 어제 읽은 <작가란 무엇인가>의 이언 매큐언 인터뷰 때문이던가. ㅡ,ㅡ

네덜란드는 재미있는 나라네요. 가보고 싶다 ㅜㅜ 전 이번 올림픽 중계를 한 번도 안 보다가 어제 이상화 1,000m 경기를 봤는데, 해설자가 막 한탄하더라고요. 네덜란드가 우리나라 빙상 기술을 다 빼가서 메달을 휩쓸고 있다고. 히딩크 데려와서 월드컵 4강했던 건 뭐냐 하고 피식 웃었는데... 암튼, 다락방님은 크로아티아에 이어 가고 싶은 곳이 한 곳 더 생긴 건가요? 나도 다른 나라 좀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데... 돈과 시간이 같이 받쳐주는 날은 대체 언제쯤 올까요? ㅎㅎ ㅜ

다락방 2014-02-17 10:03   좋아요 0 | URL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어이쿠야, 워낙에 하드하지요. 그런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이 글을 보셨다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근친, 떠올릴 수 있는 겁니다.

저도 네덜란드 가보고 싶은데 또 막상 닥치면 무서울 것 같아요. 낯선 나라니까..전 아무래도 익숙한 걸 선호하는 것 같아요. 변화를 싫어하고 모험을 꺼려하는 수줍은 다락방인거죠. ㅋㅋㅋㅋ 돈과 시간이 같이 받쳐주는 날은 올 리가 없습니다. 안오죠. 그럴라면 로또 당첨되든가 해야하는데 그건 흥, 내게는 오기 힘든 일이고 재벌집 남자가 나에게 푹 빠지는 일도 있을 수 있겠으나, 흥, 이것 역시 로또 당첨만큼의 확률인거죠. 역시 빚내서 다녀오는게 답입니다. 다녀와서 뼈빠지게 일해 갚는 수밖에...Orz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장까지 읽고 대체 이 느낌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옮긴이 공경희가 정리해줬다. `나는 소설이 끝난 순간, 완전히 몰입했던 연극 무대의 불이 한순간에 꺼진 듯한 느낌을 맛보았고, `나`를 보았다` 그래, 준비가 안됐는데 한 순간에 불이 꺼진 느낌, 바로 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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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2-1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엄청 궁금한데요!!

다락방 2014-02-14 10:30   좋아요 0 | URL
아, 좋더라고요. 애거서 크리스티를 그동안 별 관심두지 않고 지냈는데 이렇게 좋다니..다른 책도 한 권씩 읽어보려고요. 이건 추리소설 아니라 순수소설인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순수소설도 계속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크아이즈 2014-02-1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한 번 좋은데요. 여긴 미스 마플은 안 나오지요?^^*
장바구니로 당겨 넣습니다. 한 순간에 불이 꺼진 느낌, 나를 보는 맛이 어떤 걸까요?
다락방님께 책임지란 말씀은 안 드릴게요, 헤헤~~

다락방 2014-02-14 10:30   좋아요 0 | URL
네네, 미스 마플이 나오는 책이 아닙니다. 이건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필명으로 낸 순수소설 이에요. 끝까지 서늘한게 참 좋네요, 팜므느와르님. 읽으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1
정여울 지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당선작 외 사진 / 홍익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특히 음악박물관들은 파리, 베를린, 런던 등 대도시뿐 아니라 아주 작은 도시에도 놀랍도록 잘 갖춰져 있다. 나는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하우스와 빈의 음악박물관을 무척 인상 깊게 관람했다. (p.265)


올해 초에 잘츠부르크에 가보고 싶어져서 오스트리아 행 비행기를 예약해뒀었다. 달력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가을에 짬이 날 것 같아 큰 맘 먹고 할부로 비행기 티켓을 질렀다. 첫 할부를 갚아해 했던 날,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나는 '할부가 우리를 후려치는데 우리 선택이 잘한걸까' 다시 고민했고, 그래도 여전히 결정은 '가는' 쪽으로 났다. 돈 모아서 가려면 어느천년에 가나, 일단 빚내서 다녀오고 갚아나가자, 돈 생기고 시간 생긴 후에 가려면 못간다, 여태 직장생활하면서 돈 생기고 시간 생긴 적이 있던가.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오고자 했다. 그런데 며칠전, 대한항공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가 예약한 비행편의 스케쥴이 변경됐다는거다. 바뀐 일정으로 우리는 갈 수 없었고(하루 차이었지만), 여름으로 바꿀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는 오스트리아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항공사 스케쥴 변경이니 취소수수료는 없었고, 카드 승인은 취소되었으며, 이미 결제된 할부금액에 대해서는 이틀 뒤, 환불되었다. 가뜩이나 빈곤모드였는데 그래, 이걸 취소하길 잘했다 싶으면서도, 그럼 또 언제 기회를 노려보나, 이렇게 주저 앉아야 하나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정확히 그런 반반의 마음에서, 나는 정여울의 책을 넘겨보다 저 글귀를 만났다. 무심한 저 한 줄이, 내게는 좀 쓰라렸다. 누군가 다녀왔다, 고 말하는 걸 보노라니 살짝 우울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면서 그렇게 유럽의 여러곳을 만나보면서 다시 가고 싶어지는 나라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맙소사, 그간 아무 관심 없었던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에 가보고 싶어지고야 말았다. 바로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아, 저 싱싱한 굴과 화이트 와인이라니! 이것은 헤밍웨이도 극찬한 최상의 먹거리가 아니던가. 나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으며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내 입 안으로 굴을 넣고 싶어서, 굴을 씹다가 화이트 와인을 입안으로 넘겨 꿀꺽- 삼키고 싶어서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사실 그 해, 겨울에 친구는 나를 위해 생굴과 화이트와인을 준비해줬지만, 굴과 화이트와인은 역시 상상으로 더 맛있었다. 상상으로 더 근사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비행기를 타고 크로아티아로 날아가 반드시, 기필코 저 음식을 맛보고 싶어지는것이다. 그래서 지구본을 돌려봤다. '크로아티아'란 이름에서 주는 느낌은 내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가까워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 책은 유럽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나 지구본에서 유럽에 떡하니 자리한 크로아티아를 보고 포기했다. 유럽은 역시 내게 너무나 멀고도 비싼 나라로구나.



크로아티아에는 해산물요리로 유명한 음식점들이 많다. 통오징어구이나 새우요리도 유명한데, 스톤 부근에 있는 모든 해산물요리에는 이 천연소금이 듬뿍 들어간다. 스톤의 천연소금은 다른 소금보다 훨씬 맛있어서 요리할 때 다른 조미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생굴에 이 소금을 뿌려 먹는 요리가 가장 유명하다. 굴과 소금, 레몬만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요리지만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이다. (p.92)



아, 생굴과 화이트와인아, 크로아티아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내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고 여유라는 게 생기면 한 번 가주리. 가서 실컷 맛보아주리.



여러 지역의 사진들중 유독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진은 언제나 이탈리아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 색색깔의 마을도 바로 이탈리아. 해변마을 친퀘테레 라고.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평소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간혹 이탈리아가 배경인 영화를 보면 오, 정말 예쁘다, 하는 감탄이 쏟아져나오곤 한다. 책에 실린 사진으로도 그 감탄은 어김없이 터져나온다. 크-



아주아주 방탕하고 문란하게 이 마을에서 얼마쯤 살아보면 좋겠다. 하는 일이라곤 그저 눈뜨고 먹고 웃고 얘기하고 술마시고 술주정하고 사랑하는 게 전부인채로, 속옷을 벗어던진 채 하늘거리는 원피스만 입고 신발도 벗어버린 채 맨발로 마을을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다. 그랬다가 미친여자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추방당할지도 모르지만..



정여울의 글은 훌륭하다. 여행기로 만나는 정여울은 참으로 근사해서, 앞으로 정여울이 여행기를 낸다면 계속해서 보고 싶어질 지경이다. 가뜩이나 글도 잘 쓰는데 곳곳에 삽입한 인용문마저도 보석같다. 나는 그녀가 언급한 책들을 메모하기에 바쁘다.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저의 집 지붕위에 드리우듯이

저로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이성복, <금기> (p.41)





자동차가 확실히 해낸 것이 있다면,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만들어진 까닭에 은밀하고 겸손한 몇몇 사람들에게는 걷기가 신비롭고 즐거운 것으로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샛길, 오솔길, 그리고 초원은 신성하고 달콤한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낡은 바지를 입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담배 파이프와 지팡이를 지닌 채 점심과 저녁 사이에 15마일을 걸을 수 있으며 인간을 향한 신의 길을 찬미할 수도 있다. -크리스토퍼 몰리, 《예술로서의 걷기》 (p.188)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서적들의 잘못된 점은, 행복의 진부한 상투어를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이루지 못할 기대를 일깨워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원래 어떤 삶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지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 삶의 기복, 존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영원한 건강, 갈등 없는 배우자 관계, 물질적인 소원의 성취를 뒤쫓는 사람보다 어쨌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많다. 게다가 경이롭게도 행복은 외적인 상황과 무관하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가족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극도로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데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영원한 행복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물질적인 부만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결단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중에서 (p.203)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서야 비로소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역시 크로아티아였다. '자다르 바다 오르간' 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데 설명은 사진에 실린 글귀로-거기에 내가 초록색으로 밑줄을 그었지- 대신한다.




이 책이 어떠한 계기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함께 '기획한 상품'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정여울의 글은 분명 대단히 매혹적이지만, 간혹가다 주제에 맞춰서 쓸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의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대한항공이 정여울을 선택한거라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러나 정여울의 여행기로는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정여울의 글이 더 살기 위해서는, 정여울의 글이 더 내게 팍- 다가오기 위해서는 정여울의 여행기가 백프로 정여울의 이야기와 사진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나는 대한항공이 제공한 사진이 아닌, 그녀가 돌아본 시선에 꽂힌 바로 그 곳, 그 장면의 사진을 보고 싶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처럼, 그녀가 가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댔던 바로 그 곳과 그 순간의 이야기들이 그녀의 이야기속에 가득 담겨졌으면 좋겠다. 그 점이 몹시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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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2-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아티아..................!!!!!!!!!!!!!!!!
내가 이번에 비행기 스케줄을 알아보고 결제 직전까지 갔던 바로 그곳!!!!!!!!!!!!!!
'꽃보다 누다' 덕분에 이제 그곳은 한국사람들이 바글바글 하겠죠.
뭐.. 그전부터 여행족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했지만.

무튼. 크로아티아. 언제가 꼭 갈꺼에요!! 으악. 크로아티아!!!!!!!!!!!!!!!

다락방 2014-02-14 10:31   좋아요 0 | URL
일전에 마카오 갔을 때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싫었었거든요. 아, 난 여기 싫어..하는 느낌. 아마 지금 크로아티아 가면 그런 느낌을 받겠죠? 크로아티아는 나중으로, 아주 나중으로 미뤄야겠어요.

dreamout 2014-02-12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항공 이라는 글자가 있길래.. 안 샀어요.
책이라기 보다는 매거진에 가까운 느낌일것 같아서.. ^^;

다락방 2014-02-14 10:33   좋아요 0 | URL
정여울의 글이 좋아서 매거진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건 아닌데, 그래도 간혹 '자 이 주제에 대해 써봐' 하고 툭 던져진 걸 받아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좀... 정여울의 백프로 여행기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확실히.

BRINY 2014-02-1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1개월후에 유럽여행 가려고요. 늘 시간과 돈에 쫓겼는데, 다음 겨울에는 시간이 될 거 같아 지르려고 작정했어요.

다락방 2014-02-14 10:33   좋아요 0 | URL
시간과 돈에 쫓기다보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요.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게 뭐가 되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BRINY 님. 아무쪼록 여행을 맘껏 즐기실 수 있기를요!!

달걀부인 2014-02-1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아티아 다녀온 일인입니다.^^ 그 때 동양인이라곤 저 하나였었는데...깃발 아래 여러사람들이 줄서서 가니는 풍경들 생각하니 저 역시 슬프네요.거긴 혼자서 위로받기 위해 다녀오는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이었어요. 꿈같은...

다락방 2014-02-14 10:34   좋아요 0 | URL
혼자서 위로받기 위해 다녀오는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 이라는 말씀에 크로아티아에 더 가보고 싶어지네요. 그렇지만 지금은 줄서서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겠죠? 한참 나중으로 미루렵니다. 제가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을 달걀부인님은 이미 다녀오셨다니, 부럽네요.
:)

자작나무 2014-02-13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이랑 화이트와인은 크로아티아 안가도 서울에 많이 있어요
굴 철이라 굴요리 많이 해먹는데 굴이 그렇게 정력에 좋다지요
그리고 난 정여울보다 다락방책이 더 좋아요...아시아나항공은 다락방을 선택하길...

다락방 2014-02-14 10:35   좋아요 0 | URL
굴이랑 화이트와인을 먹으려면 서울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자작나무님? 이게 제가 다니는 레스토랑에선 눈에 띄질 않아요. 굴을 팔면 소주를 팔고 와인을 팔면 생굴을 안팔고...Orz

하하, 전 여행기는 자신없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정여울에 맞서기 위해 더 강한 작가를 찾아봐야겠죠. 전 그저 한 명의 블로거에 불과할 뿐...

하양물감 2014-02-13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작나무님 댓글에 한표!!

다락방 2014-02-14 10:3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하양물감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4-02-1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여울의 다른 책도 시간 되길때 함 보세요.
꼭 보시라는건 아니구^^::::
락방님이 이 책 읽을줄 몰랐음 ㅋㅋㅋ
여행기라서 궁금했었나봐요?

여행이라...아직 제주도도 못가본 저로써는 해외는 뭐.. 꿈도 못꾸고 있음둥~
굴 먹으러 통영이나 갈까요? ㅎㅎㅎ

다락방 2014-02-14 10:36   좋아요 0 | URL
한창 잘츠부르크 갈 생각에 들떠있어서 유럽여행기 보자, 했던거에요. 역시 여행기는 제 취향이 좀 아닌 것 같긴해요. ㅋㅋㅋㅋㅋ

아무개님,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여행이나 가볼까요? 가서 진탕 마시고 취해볼까요?
 















고작 69페이지 까지 읽었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서늘해진다. 주인공 '조앤'이 사막에 발이 묶인동안, 그녀가 돌아보게 될 그녀의 삶, 69페이지까지 돌아본 그녀의 삶이 이정도인데 앞으로 며칠동안 더 돌아보게 될 그녀의 과거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는 얼마나 많이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걸까. 그녀는 얼마나 강하게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리고 또 믿고 있는가.


이야기는 '조앤'으로부터 시작한다. 조앤이 바그다드에 있는 딸 바버라의 집에 갔다가 돌아가려는 기차역 숙소 식당에서 고등학교 동창 '블란치'를 우연히 만나면서부터. 학창시절 블란치는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초라해진 모습으로 혼자 앉아있다. 마흔여덟살인 그녀는 마치 예순살처럼 보인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지를 조앤은 생각한다. 궁핍한 생활을 하는 블란치에게 언젠가 돈을 빌려주었던 생각도 나고. 그러나 블란치 역시 조앤을 발견하고 조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던 조앤의 모습이 사실은 남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된다. 조앤이 그렇게 안다는 게 아니라 독자인 내가.


변호사로 일하는 유능한 남편과 제 각각의 몫을 알아서 잘 해내고 있는 성실한 세자녀들. 그러나 블란치는 그녀에게 '네 딸이 불행한 가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맨 처음 청혼한 남자와 결혼했다'(p.17) 는 소문이 있다고 얘기하고 '네 남편이 연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더라'(p.18) 는 말을 한다. 조앤은 믿지 않았다. 말도 안된다고 일갈했다. 조앤이야말로 블란치를 가여워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소리람. 그런데 그 한심하게 여겨졌던 블란치가, 그 어리석게 보였던 블란치가, 실패한 인생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블란치가, 조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블란치는 그런 생각이 재미있는 듯했다. "넌 친절한 사람이야. 하지만 함부로 동정하진 마. 난 지금까지 꽤 재미있게 살아왔으니까." (p.20)



그러나 사람의 삶이란 게 그렇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판단할 수가 없는거다. 내가 보기에 한심해 보인 사람이 나름 자신의 삶을 최대한 즐기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의 눈으로 보는 나 역시 한심하고 초라할 수 있다. 늙어보이고, 늘 초라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 여자가  오히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삶 앞에 당당할 수 있다니. 조앤은 코웃음을 치지만, 기차가 기후사정으로 연착되어 사막에 발이 묶이고나자 의도치않게 블란치가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떠올려지는 과거의 삶 앞에, 나는 이제 조앤이 살고자 했던 삶이 어떤 삶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조앤이 원했던 건 '인정받는 삶' 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삶,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삶,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삶. 그리고 그것이 조앤의 가족들을 얼마나 숨막히게 했는지를, 이제 나는 서서히 알게 된다. 단, 조앤은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농사를 짓고 싶어. 리틀 미드 농장이 매물로 나왔어. 상태가 나쁘긴 하지만-홀리가 농장을 방치했거든-그 덕분에 싸게 나온 거야. 정말 좋은 땅이지, 잘 들어봐 ‥‥‥"

그는 빠르게 계획을 풀어놓았다. 전문 용어들이 쏟아져나오자 조앤은 적잖이 당황했다. (p.42)



조앤은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철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파트너 변호사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대체 왜 그걸 마다하고 농사를 짓고 싶어한단 말인가. 조앤은 끊임없이 남편의 생각을 바꾸고자 설득한다. 남편은 변호사 일을 해보니 정말 나는 이 일이 싫더라, 고 얘기하지만 조앤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생각을 바꿔서는 안된다며,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행복할 거라고 장담한다. 



"아니, 난 싫어해. 오 년동안 거기서 일했어. 내 마음이 어떤지는 내가 똑똑히 알아."

"적응할 거예요. 게다가 이제 사정이 다르잖아요. 아주 달라요.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결국은 업무에-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될 거예요. 두고봐요, 로드니. 결국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질 테니까."

그 순간 로드니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픈 눈길로 오래도록. 사랑이 깃들었지만 절망감도 있었고, 그와는 또다른 뭔가도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희망이 슬쩍 번뜩인 것 같은 ‥‥‥

"내가 행복해질지 당신이 어떻게 알지?" 로드니가 물었다.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두고보면 알아요." 조앤은 재빨리 명랑하게 대답했다. (p.45)



아, 너무 싫다. 끔찍하다. 어떻게 타인의 행복을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본인에게 맞는 행복의 기준이 타인에게도 맞다고, 대체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조앤이 그렇게 장담한 건, 그녀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자신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남자가, 그렇게 가족이 되어 함께 사는 남자가 자신과 다를 리 없다는 착각. 그에게 이토록 끔직한 희생을 강요해놓고 명랑해 질 수 있는 여자, 너무나 당당하게 너는 행복할 거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리석은 여자.


저 순간, 남자는 자신의 결혼을 후회했을런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좇지 못하는 상황을 원망했을테니까.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을 택했고, 그걸 선택한 이상 자신의 꿈만 좇자고 설득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사랑과 이상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이상의 방향이 다른 사람, 행복의 기준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사랑이 둘을 함께 살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순 있지만, 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나와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른 사람이라면, 나와 바라보는 방향이 맞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사는 것 보다는 따로 떨어져 살며 사랑을 유지하는 쪽이 더 현명할 것 같다. 그게 서로의 행복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법일 테니까.


여자가 떠올리는 며칠전의 바그다드. 자신에게 좀 더 있다가 돌아가라고 딸이 말하는 이유가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조앤은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녀가 회상하는 장면에서 나는 알 수 있다. 딸이 엄마를 붙잡은 까닭은 아빠를 좀 더 내버려두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딸이 그렇게 일찍 결혼해야만 했던 이유를. 


'난 알고 싶지 않아' 라는 책 뒷표지의 문구를 보면, 아마도 내가 아직 읽지 못한 부분에서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진실을 알게 될 것 같다. 그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됐을 때 그녀는 얼마나 휘청이게 될까.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이 책은 결국 어떻게 될까. 무너지는 그녀가 회복하게 될까? 아니면 무너지고나서 끝나고 말까? 현실을 부정할까? 무너지고나서 다시 일어서게될까? 어서 이 책을 읽고 싶고, 똑같은 마음으로 더이상 읽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무척 우울했다. 아, 우울해지는 때가 또 왔구나. 나는 아침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를 지하철 역에서 youtube 로 찾아본다. 오늘은 책 읽지말고 음악을 듣자.








아! 우울한 기분이 이 영상을 보는데 풀리기 시작했다. 아, 너무 좋아. 나는 자꾸 웃었다. 저 병약해 보이는 남자가 힘차게, 안간 힘을 써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무척 좋은거다. 남자보다 300배는 더 강해보이는 핑크의 모습도 무척 마음에 들고, 높은음에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힘들게 노래를 해내는 남자를 보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다. 아, 좋다, 좋아! 저 남자는 노래 한 곡을 끝내고 몸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듯하다. 당장이라도 수혈을 받아야 할 듯하지만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이 온 몸 전체에 퍼지는 것 같다. 하하하하하. 핑크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래, 이 기분을 유지하자 싶어 마이클 잭슨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사랑스런 영상을 또 찾아봤다.





아 좋다 좋아. 브리트니의 저 건강함이 좋다. 야채만 먹고 비쩍 마른 여자들보다 나는 저런 단단함, 건강함이 좋다. 앗, 그러보고니 핑크도 건강건강! 아이쿠, 이 멋진 여자들. 좋구려~



오늘은 올림픽이고 뭐고 보지말고 일찍 자야겠다. 



핑크 노래가 아침부터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음반하나 사자, 하고 알라딘 검색창에 '핑크' 넣었더니 '에이핑크'가 좌르륵 떠서 깜놀했다. 에이핑크, 니네 뭐냣. 어디서 핑크 검색하는데 껴들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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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02-1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핑크 욕하지 말아욧! 그나마 데뷔한 걸그룹 중 유일무이하게 노섹시컨셉으로 버티고 있는걸요..!!
(말이 섹시지 아주 요즘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더군요.)

다락방 2014-02-12 14:23   좋아요 0 | URL
후덜덜..저 테러당하면 어떡하죠? 저 문장..지울까요? 후덜덜..

기억의집 2014-02-12 19:22   좋아요 0 | URL
그녀들의 노래가 노섹시컨셉으로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전 요즘 에이핑크의 nonono 하루 종일 들어요~

다락방 2014-02-14 10:37   좋아요 0 | URL
전 그 노노노 노래가 참..시끄럽더라고요. 하핫 번잡스런 느낌이랄까. ( ")

가넷 2014-02-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핑크... 좋아요. ㅋㅋ

다락방 2014-02-12 17:20   좋아요 0 | URL
아아- 에이핑크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핑크가 더 좋습니다! ㅎㅎ

그랴그랴 2014-02-12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상태로 어쩌면 이렇게 공감가는 글을 쓸 수 있나요? 아마도 책의 힘? 독서 수련의 힘? 부럽습니다.

다락방 2014-02-14 10:37   좋아요 0 | URL
아이고, 별말씀을요. 쑥스럽네요. 하핫 ^^;;

2014-02-12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작나무 2014-02-13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체가 굵은 여자가 좋습니다

다락방 2014-02-14 10:40   좋아요 0 | URL
전 건강미가 넘치는 여자가 좋습니다.
팔과 배 다리가 단단한 남자가 좋고요.

하루 2014-02-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이클잭슨 공연 찾아보다가 저 공연 봤는데 스피어스가 멋지다는걸 이때 알았어요 :)

다락방 2014-02-14 10:40   좋아요 0 | URL
전 이 공연영상 처음 봤을 때 와, 정말 좋더라고요. 스피어스도 마이클 잭슨도 다 너무너무 근사한거에요. 특히 시피어스의 건강함이 물씬 풍겨지잖아요. 가끔 생각나면 이 영상을 찾아보고 싶어져요.

감은빛 2014-02-1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핑크를 아주 좋아해요!
제 블로그 주소는 핑크를 좋아한다는 고백이에요. ^^
핑크 초기 노래들을 무척 좋아했는데,
여러 해 전부터 노래를 잘 안듣고 살아서 이젠 모르는 노래가 더 많은 것 같네요.
노래 잘 들었습니다.

다락방 2014-02-20 08:27   좋아요 0 | URL
오, 감은빛님이 핑크를 좋아하신다고요? 지금 감은빛님 서재 주소를 봤더니, 오, 핑크를 좋아한다는 찐한 고백이로군요. 하하하하하.
전 영상 올린 저 노래가 너무 좋아서 시디를 구매했는데, 들어보니 흐음, 이건 내 취향이 아니로군, 싶어지지 뭡니까. 건강한 핑크가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는게 저로서는 더 좋은 것 같아요.
 

 

 

 

 

 

 

 

 

 

 

 

 

 

J님의 서재에서 이 시집을 알게 됐다. 쉼보르스카, 라면 그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지 그의 시를 본 적은 없었던것 같다. 이름에서 주는 난해함이 시에 가득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다가서지 못하게 했다. 나는 워낙 시라면 잘 읽지 못하는데 시인의 이름이 '쉼보르스카' 라니. 그런데 J 님이 서재에 올린 시는, 아 너무나 좋은 게 아닌가!

 

 

가장 이상한 세 단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나는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시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시가 주는 느낌이 참 좋아서, 다른 시들이 궁금해진거다. 그래, 나도 쉼보르스카, 그녀의 시를 한 번 읽어보자.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의 첫번째 연을 읽게 된다. 이 시가 주는 느낌은 대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열쇠

 

 

열쇠가 갑자기 없어졌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갈까?

누군가 내 잃어버린 열쇠를 주워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리라 -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텐데.

걸어가다 그 쓸모없는 쇠붙이를

휙 던져버리는 게 고작이겠지.

 

 

너를 향한 내 애타는 감정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이미 너와 나,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니.

누군가의 낯선 손에 들어 올려져서는

아무런 대문도 열지 못한 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쇠'의 형태를 지닌 유형물로 존재하게 될

내 잃어버린 열쇠처럼.

고철 덩어리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녹(綠)들은 불같이 화를 내리라.

 

 

카드나 별자리, 공작새의 깃털 따위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점괘는 종종 나온다.

 

 

내가 시의 해설을 유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 시에 대한 해설을 모두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해줄 수 있을텐데. 그러나 해설은 커녕, 나는 이 시가 주는 느낌이 무엇이라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데 참 좋다. 나는 그것이 없어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누군가에게 그것은 쓸모없는 쇠붙이에 불과할 거라는, 저 시가. 그렇게 내 사랑이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쇠붙이가 되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저 시가 말이다.

 

 

 

 

 

심은경은 노래를 잘하지 못했다. 극중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소울'이 담긴 노래로 든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였는데, 그렇게 해내기에 그녀의 목소리도 노래도 부족했다. 그녀가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동안,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서도 눈물을 뽑아내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부득이하게 '과거 고생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관객들의 감정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그 장면장면들을 삽입하는 것이 필요했으리라고.

 

영화의 마지막. 젊은 시절로 되돌아갔던 그녀는 '내새끼' 를 위해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자신이 젊은 시절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 가수라는 꿈을 이뤄냈고, 두근두근- 심장이 떨리게 되는 남자를 만나 연정을 품게도 됐는데, 그 모든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장면이 불편했다. 왜 그래야 하는가, 왜 그녀는 '새끼'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가. 새끼를 위해 과연 나라면, 젊고 풋풋한 시절을, 비록 그것이 '또한번' 살아내는 것이라고 해도 포기할 수 있을것인가, 저것은 '엄마' 라는 것에 대한 강요된 선택이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젊음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를 그 순간 앞에서 나는 흐느껴 울었다. 그거 포기하지 마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요, 하는 기분.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떨것 같냐, 젊음을 포기할 것 같냐, 라고 내가 물었다. 친구는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거라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그 젊음이 좋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잖아, 사랑도 느꼈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잖아, 그거 포기하기 너무 힘들지 않겠어? 친구는 맞다고, 다 맞는데,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일이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생명을 포기하고 젊음을 선택한다고 그 삶이 즐거울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래도, 그래도, 젊음을 포기할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내가 사랑에 대해 갖는 생각에 희생은 없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어요, 라는 건 누군가는 가질 수 있는 신념이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살아야지, 라는 마인드로 나는 여태 세상을 살아왔으니까. 난 진짜 저런 선택 못할 것 같아, 난 젊음 포기 못하겠어, 나를 선택할거야, 라고 말했다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대입해보았다. 그러니까 관념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넣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나문희가 선택해야 했던 대상인 '내 새끼'에 '나의 조카'를 대입해본거다. 만약 내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조카를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렇다면 그 때도 나를 위해 젊음을 선택할 것인가? 라고 구체적인 물음을 던졌더니 답이 나왔다. '아니다' 였다. 나는 '조카를 위한' 선택을 할거였다. 아, 나도 그런 선택을 하는구나, 영화속 여자와 같은 선택을 해! 이건 단순히 '모성' 이라 불리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인것 같았다. 누구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게 되는 구체적 상대, 그 구체적 상대를 그 입장에 넣으면 대답이 달라지는 거였다. 평소의 내 신념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거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 라고 하지만 '그렇지만 상대가 그사람이라면 달라지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조카를 사랑하듯, 여자가 자신의 손자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자 영화의 결말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엄마라고 그냥 쉽게 결론내린 거 아냐' 라고 생각했다가, 거듭거듭 나에게 질문을 하고보니 영화속의 선택이야말로 그녀가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거다. 그녀라고 그 선택을 쉽게 한 것이 아닐거라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젊음을 안타까워했을 거라고. 만약 그녀의 선택지가 '내 새끼' 가 아니라 다른 대상이었다면 그녀의 선택도 달랐을거라고, 그녀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택한 건 아닌거라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반전에 대해서도 m 님에게 물어 알고 있었는데, 아뿔싸, 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될 줄이야. 게다가 보면서 내가 그렇게나 흐느낄줄 몰랐다. 어깨를 들썩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킁킁 -0-

 

 

영화속에서 이진욱이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있다. 여자는 집이 좋다며 '너의 집'이냐고 묻는다. 남자는 전세라고 말한다. 집은 넓고 깨끗했고 전망이 좋았다. 아, 나도 저렇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굳이 집을 살 필요가 무어람, 살 돈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좋은 원룸하나 전세 얻어 살면 되는거 아닌가, 그게 좋을것 같은거다. 그렇지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원룸은 전세로라도 내가 얻기에 힘든...가격이겠지. ㅠㅠ

 

 

 

오후에 엄마와 외출을 하고 낮술을 했다. 엄마도 엄마대로 나는 또 나대로 스트레스와 고민을 안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는건 핑계고 낮술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두전골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아우, 책 읽고 싶은데...나는 그냥 잠을 택했고, 잠에서 깨니 열시반이었나...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자자 싶어 일어났는데 남동생이 내 손을 잡고 할 말이 있다며 내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누나 나 이력서 냈어.

 

헉. 아니, 이력서 낼거라고 한 번도 말한적이 없었는데 뜬금없이 이게 뭐람? 싶어 물어보니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 매니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는 거다. 그런데 마감이 9일까지였다고, 그걸 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부랴부랴 급하게 냈다는거다. 너 거기 지금 니가 다니는 회사보다 월급이 많이 적을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라고 물어보니 그래도 '된다면' 알라딘 중고서점을 택하겠다는거다. 아...놀랐다. 정말 놀랐다. 내가 아니라 내 남동생이, 알라딘에 입사원서를 넣다니... 자기소개서에 누나가 다락방이라고, 책을 낸 작가라고 썼어야 뽑힐텐데 그걸 못썼다고 아쉬워했다. (읭?)

 

잠시후, 나는 친구와 내 방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제방에 있는 남동생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읽어보니 이렇게 써있었다.

 

 

 

(그 일을)존나 하고 싶다

 

 

아....갑자기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도..낼까? 지난 금요일,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가, 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 매니저가 되면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텐데, 마음이 더 편할텐데, 월급을 적게 받아도 그 스트레스 대신 이걸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등등. 나도 원서 내볼까? 그러자 남동생으 그래보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내라고.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다. 되든 안되든 선택은 나중문제고 일단 원서를 내보자, 그런 생각으로 피씨 화면을 열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알라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자유양식이었고, 나는 이력서며 자기소개서를 써 놓은게 없어 새로 쓰기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이메일 화면을 열어두고 그냥 메일로 보내자 싶어 작성하기 시작했다.

 

연락처와 희망연봉을 적고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일곱 줄 쓰고나니 더이상 쓸 말이 없었다. 그나마 일곱줄도 내가 왜 지금 앉아서 이 이력서를 쓰고 있는가에 대한 얘기였다. 한 줄을 더 쓰게 된다면 그건 남동생은 분당점에 지원했고 나는 강남점에 지원한다는 얘기가 될 듯 했다. 십몇년만에 써보는 자기 소개서는 멘붕을 가져왔다. 커서는 깜빡이고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깜빡이는 커서를 아무리 들여다보았자 한 줄도 더 써지질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젠장, 너무 충동적이었어, 포기하자. 아, 그렇지만 한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몇 시간 후면 출근을 해야하고, 출근을 하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그동안보다 조금 더, 나의 회사가 싫어질 것만 같다.

 

 

새벽 한 시 삼 분, 내가 아직 깨어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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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2-1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어있으니 배고프구나..

2014-02-10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0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4-02-1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다락방님은 홀몸이시다보니...주먹 불끈쥐고 "그래 월급이 적어도...!!!"라는 선택의 폭이 넓은게 아닐까요..^^

다락방 2014-02-10 17:20   좋아요 0 | URL
그쵸,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자기소개서 쓰다가 막혀버렸어요. 전 어쩌면 월급이 더 적은곳에 사실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머릿속이 복잡합니다. Orz

Mephistopheles 2014-02-11 09:18   좋아요 0 | URL
들어오는 급료가 반으로 줄었을 때. 생각보다 포기해야 할것이 제법 많습니다. -유경험자-

착한시경 2014-02-1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집 정말 좋아해요~ 오래 전... 이 시인을 알고 계신 분을 만남적이 있었는데 다락방님 글을보니 생각이 나네요^^
열쇠라는 시도 좋으네요~ 고민 너무 많이 하지마시구요,,,되어지는 일이 운명이라네요^^

다락방 2014-02-10 17:21   좋아요 0 | URL
되어지는 일이 운명..이라.
마음먹고 자기소개서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제가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다음번에 또 기회가 오면 그 때는 내봐야겠죠.
그런데..저는 정말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걸까요? 아니, 저는 일하고 싶은 곳은 없고 일하기 싫은 곳만 있는 것 같아요. 휴..

무스탕 2014-02-1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셨구려.. 생각보다 괜찮았죠? ^^
제가 민원부서에서 엄청 오래 일해온 경험으로 민원인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정말 장난 아닙니다.
좋아하는 책 속에 파뭍혀 있는건 분명히 좋은 일인데 그게 생업이 되고 손님들에겐 숙이고 들어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ㅠㅠ

다락방 2014-02-10 17:22   좋아요 0 | URL
네,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전 그 무슨 페스티벌에서 엄청 유명한 락가수 얼굴 클로즈업 씬에서 빵터졌네요. 그리고 반전은 으흐흐흐흐흐흐흐 알고 봤는데도 '후달리'더라고요. ㅋㅋㅋㅋㅋ

blanca 2014-02-1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영화들.. 아쉽네요.
아, 저도 쉼보르스카 서재에서 소개받고 애정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다락방님도 동생분도 뵙게 되기를...저는 종로였나요? 알라딘 중고서점에 집에서 (동대문) 거기까지 한시간 걸려 걸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걷기 운동에 필받아서 거기에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올 때는 너무 힘들어서 ㅋㅋ 후회했었어요. 그런 좋은 곳에 계신다면 다락방님도 행복해지실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다면 저도 또 가볼게요.

다락방 2014-02-10 17:23   좋아요 0 | URL
시간내어 천천히, 틈틈이 시들을 읽어봐야겠어요. 또 훅- 다가오는 시가 있으면 좋겠어요. 흣

'알라딘 중고서점' 이란 것도, '중고서점' 이란 것 자체로도 다 좋은데, 가보셔서 아시겠지만...손님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죠. 거기서 과연 제가 추구하는 '서점의 낭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제 남동생도 그걸 기해다는 것 같은데...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흑흑 ㅜㅜ

달사르 2014-02-1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동생이라는 생각이..^^

최근에 제 남동생도 기존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 중인데요. 그 설레임과 불안함이 두근두근, 심장 소리처럼 제 귀에 들리는 것 같더라구요. 아무래도 누나라서 그런지.

락방님 동생분에게 팟팅을!

다락방 2014-02-10 17:24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의 남동생은 어떤 일을 시작하려는 걸까요?
저는..잘 모르겠어요. 제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그렇다고 막상 무엇을 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어서...어제 괜히 자기소개서 쓴다고 놋북 앞에 앉아있어서, 그 뒤로 머릿속만 복잡해졌네요. 마음이 이상해요. 싱숭생숭..

네, 달사르님의 동생에게도 그리고 제 동생에게도 파이팅!!

마노아 2014-02-1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에서 성동일의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내 새끼는 내가 살릴 테니까 어머니 인생 사시라는 말이요. 당장 내 피붙이가 죽게 생겼는데, 그거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못 잡잖아요. 자기 어머니가 자기 하나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차마 붙잡지 못하는 그 염치가 굉장히 마음을 뜨겁게 했어요.
아, 우리도 나이 70까지 열심히 살았으면, 인생에서 다만 한달이라도 스무 살로 돌아가서 해보고 싶은 것 맘껏 해보라고 보내주는 휴가가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의 까메오는 알고 봐도 후덜덜하죠? 으하하핫, 정말 빵터졌어요.^^

다락방 2014-02-10 17:4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부분에서 완전 대성통곡 했네요. 자기 새끼가 누워 있는데도 어머니한테 어머니 인생 사시라고 말하는 그 부분이요. 어휴. 손수건 꺼내서 눈물 닦으면서 어깨를 들썩들썩. 말그대로 흐느꼈어요. 그런데 심은경 노래가 생각보다 좀..구렸어요. -0-

거기 이진욱 있잖아요. ㅋㅋㅋㅋㅋㅋ ㅇㅍㄹㅅㅅ 님 닮지 않았던가요? 전 보면서 아, 똑같네 똑같아 이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14-02-1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다락님과 동생분이 모두 알라딘의 직원분이 되시는건가요? 알라딘 좋겠다. +_+;;;;;;

영화는 안 봤지만, 저는 스무살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고생해서 먹은 나이인데요. -_-;;;;;;;;;;
어쨌든;;; '내새끼'에 '조카'를 대입해보고 마음이 바뀌셨다는 건 아주 공감되어요. 저역시, 어떤 상황이더라도 조카를 위한 선택을 할 거거든요. ^^


다락방 2014-02-12 11:40   좋아요 0 | URL
저는 자기소개서 쓰다가 포기했으니 알라딘의 직원이 되지는 못할것 같고요;; 남동생은 서류전형 합격했다고 연락왔습니다. 고민이 많은것 같아요. 옆에서 보는 저도 고민이고요. 흐음.

저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지만 결국 선택지에서는 지금의 저를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지금의 저가 저 자신과 가장 잘 맞는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요. 하핫.
영화는 폭풍 눈물 흘리면서 봤습니다, 문나잇님. 저도 제가 이 영화를 울면서 볼 줄은 몰랐어요. ㅠㅠ

단발머리 2014-02-12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카하.... 저는 저 아름다운 두 개의 시가 핸폰에 문자메시지로 있다는 거 아닙니까. 제가 사모하는 락방님이 보내주신 걸로... 영구보관^^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 저는 영화를 안 봤지만, '내새끼'의 생명이 걸린일이라면.... 아...
그런데, 그건 자주 생각하게 되요. 생명이 걸린일이 아니라면요, 그 정도까지가 아니라면, 그래도 '내'가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어른들 하시는 말씀, "자식들 다 소용없어."가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거기에는 '조카'를 넣어도 되지요. 다 소용없다,는 말은 모든 걸, 자신의 모든 걸 다해 사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요. 모든 마음을 모아 사랑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희생을 해도 말이예요, 사람은 변하고, 사랑은 떠나고, 아이들도 그렇지요. 그렇다고 사랑하지 말자,는 아니구요~~ ㅎㅎ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사랑하고, 아껴주고, 격려해주고, 그리고 도와주다가, 그리고 제 스스로 선다고 할 때, 나와 잠시 떨어져 있고 싶다 할 때, 그 때는 '다 소용없어' 이런 말 하지 않고, 그냥 쿨하게 시간을 내주고 싶어요. 아.... 슬픈가요? 참고 1) 락방님 조카는 자기 엄마한테는 독립선언해도, 이모한테는 안 할 수도 있어요. 엄마보다 이모~~ 참고 2) 이미 알고 계시듯, 저는 날라리 주부, 설렁설렁 엄마입니다.

3. 락방님 동생분이랑 두 분 사이, 너무 좋아보이고, 또 부러워요.
저도 동생이랑 그렇게 하고 싶어, 전화를 하니, 안 받네요.. 뭥미...

다락방 2014-02-12 11:42   좋아요 0 | URL
너무 지나친 사랑을 주는건 주는 사람에게도 또 받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는건 당연해 보이지만, 내가 일단 내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해져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레 잘 되겠죠. 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언제나 모든걸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진 않지만, 모든 조건에서 예외가 되는 그런 사람이 누구나 있기 마련이니, 그 사람에 대해서라면 기준 자체를 새로 쓸 수도 있겠죠. 제겐 조카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남동생도 여동생도, 제겐 정말이지 신이 저를 사랑해서 내려주신 선물 같은 존재들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둘 다 제 동생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천사들이에요 천사 ㅠㅠ

기억의집 2014-02-1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 다락방님 글은 경쾌하면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요~
간혹 미즈넷에 고등학생들이 쓴 이런 글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엄마가 바람을 펴요. 자식인 제가 어떡할까요? 라고요. 그러면 의외로 대부분의 답들이 엄마인생은 엄마인생이니 너는 자식으로 너 인생 살고 엄마 내버려 둬.라고요. 거의 80%이상이 엄마인생이라고 신경 끄라는 덧글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엄마 인생으로 자신을 위해 살봐엔 뭐하러 애 낳고 키울려고 하는지. 자기 인생 자유롭고 편하게 살고 싶으면 결혼하지 말고 자유연애 하면서 살면 되지 뭐하러 자식은 낳아서 저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지. 엄마 인생을 찾기 이전에 자식에 대한 책임은 져야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예요.... 전 요즘 사람들이 탁 트인건지 제가 좁은건지 잘 모르겠지만, 결혼전의 자기 성향이 결혼해서 누군가를 책임지지 말아야할 봐엔 결혼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배우자에 대한 책임은 성인이기 때문에 아내보다 여자인생으로 살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아이를 낳았다면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진 엄마로서 우선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저는 나문희의 선택이 결코 쉬운 건 아니였다고 힘든 결정이었다과 봐요. 흐흐 근데 저 아직 저 영화 안 봤어요~

저도 원서 한번 내 볼까요? 아이들도 다 컸겠다 손도 별로 안 가는데... 다락방님 저는 월급 많은데가 좋을 것 같아요...나중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려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 못 하더라구요...

다락방 2014-02-12 11:50   좋아요 0 | URL
하하. 저는 이제 너무 나이 들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엄마한테 가끔 그러거든요. 나가서 다른 남자들도 만나보고 다른 연애도 좀 해보고 그러라고. 그럴때마다 엄마가 퉁을 놓지요. 너나 잘해! 라고요. ( ")
엄마와 자식이 분리된 인생을 살 수는 없죠, 당연히. 글쎄요. 어떤식으로 접근해서 말하는 게 옳은건지 잘 모르겠지만 무조건 '너는 너인생 살어 엄마는 엄마인생 살게 '라기 보다는 '엄마에게도 엄마의 인생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바람을 피운다' 라니, 그런 극단적인 행위 앞에서는 뭐든 조심스러야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자식으로서도 엄마가 '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계속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고등학생에겐 너무 어려운 일일까요?

저 역시 기억의집님과 어느 부분 생각이 같아요. 누군가와 함께 사는게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있다고 보거든요. 그렇다기 보다는 혼자 사는게 더 행복한 사람 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제 경우엔 그런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제 선택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현재로서는 말이죠.


저도 최후엔 월급을 선택할 것 같은데, 그간 받아온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따위 돈, 포기하자 싶어지기도 해요. ㅠㅠ

꿈꾸는섬 2014-02-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엄마의 강요된 희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어차피 인생은 그 순간만 살 순 없는거니까, 그녀가 다시 노인으로 돌아가도 후회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쉼보르스카, 이름이 어렵지만 시가 정말 좋네요.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다락방 2014-02-12 11:51   좋아요 0 | URL
관객,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엄마가 젊음을 반환하는 것은 모성을 강요한 걸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처음에 그렇게 받아들였고요. 그러나 페이퍼에 쓴것처럼 그 입장이 되었을 때 내가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내 젊음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할 때 어마어마한 고민이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결정도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네, 다시 노인으로 돌아가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고, 저 역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

유부만두 2014-02-1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까 그 동화책 페이퍼 수정했어요. 본문 박스 넣다가 실패... 박스 아래 다른 글은 못 하겠더라구요. 어떻게 하셨어요???

다락방 2014-02-12 11:52   좋아요 0 | URL
아, 제 경우엔요 글 다 써놓고나서 박스를 넣어요. 원하는 부분만 블록 지정해서요. ㅎㅎ

주태백 2014-02-12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사담입니다.
// 분명 다락방님 블로그에서 본걸로 기억해서 책을 한권 주문하고 ... 그책을 다 읽기도전에 여자 동창에게 선물했다가...
// 시끕한기억이... "말할수 없는 애인" 김이듬 지음. 아하하.....

// 감기조심하세요~ 매일 와서 눈팅은 하고있답니다~!

다락방 2014-02-12 11:54   좋아요 0 | URL
오, 그렇지만 주태백님, 그 시집은 뭐 꼭 애인에게 선물하지 않아도 좋은 시집이니깐요. 시집이잖아요, 시집. 제 경우에도 사귀지 않는 남자사람친구에게 그 시집을 선물했었는걸요. 괜찮습니다. 하하하하.

최근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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