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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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모든 글들이 다 좋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몇몇 글들만이 좋았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글, 이 책을 읽고자 했던 나의 의도에 부합했던 글은 '정주영', '신충진', 그리고 '노항래'의 글이었다. 정주영(전속 이발사)과 신충진(전 청와대 요리사)이 가까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시간을 회고해서 울림을 주었다면, 노항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뒤에, 스스로 싸움을 지속해 나간 것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노항래는 검찰청에 있을 노 전대통령을 작게나마 위로하고자 검찰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들에게 잡혀갔고 다음날 풀려났는데, 다음해에 집시법 위반으로 30만원의 벌금을 내라며 검찰이 기소를 한거다. 이에 노항래는 정식재판을 청구한다. 



재판을 받으며 나는 거듭 "그날 '집회'에 참석한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주관적으로 집회에 참석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냥 팬클럽 회원 같은 사람이었다. 이런 주장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검찰을 비난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이…….", "석고대죄 드려야 할 집단인데…….", 뭐 이런 주장들이었다. 이런 말을 내뱉으면 공판검사는 제지하려 하고 판사는 흥분하지 마시라고 훈계했다. 그러나 나는 공판 때마다 거듭 검찰을 비난했다. 그것이 내가 내 수고를 스스로 위안받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p.214-215)



30만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재판을 청구하고 재판을 받는 것보다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신 싸움을 택한다. 2심 판결에서 벌금은 10만원까지 내려갔지만,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싶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30만원 내고말지' 할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는 두 해동안 그 재판을 받는다. 그는 이 과정을 스스로 '이건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항거'(p.216) 라고 명명하는데, 나는 이 일을 대하는 그의 고집이 무척 좋았다. 이런 고집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도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알게되고 그리워하게 된 것은, 그의 서거 직후가 아니라 지금이다. 나는 무지했고, 무관심했으므로, 그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를 지내고 박근혜정부를 보내고 있는 지금,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자꾸만 언급되는 노무현을 알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이제는 잘 알것 같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잃은 건지도. 그리고 그의 살아생전 그를 알지 못했던 나도 그가 그립다.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자폐증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 웅그린 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또한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엎드려 살아야지 했습니다. 그 변명의 끝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있었죠. 나는 소심하니까, 나는 겁이 많으니까. 하지만 `겁 많고 소심하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자기변명 속에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남보다 더 잘 상처받고, 남보다 더 자주 겁에 질리는 저 같은 사람에게야말로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무서울 때마다, 사람들이 무서울 대마다, 더 깊이 저만의 누에고치 속으로 숨었던 저는 잊고 있었지요. 겁 많고 소심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 지켜야 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저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아주 작은 용기부터 내 볼 작정입니다. (정여울, p.20-21)

우여곡절 끝에 당신은 대통령 후보가 되셨고 이때는 저도 이발사로서 당신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무척 기뻤답니다. 그리고 진짜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그 이틑날 오셔서 "사장님 덕분에 됐습니다."라고 하셨을 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져 본 감정 중에 감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 느껴 본 순간이었습니다. (정주영, p.107)

"선거철이 되면 `이번에는 누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자리가 나오잖아예. 그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예. 옛날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말하더라. 우리도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면 투표를 잘해야 한다. 그러면 내 자식이 좀 수월케 살고 내 손자가 수월케 산다 하더라. 그러니까 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정치인 싫어서 투표 안 한다 하지 말고 먼 날을 생각해서 조금 더 좋은 사람에게 투표하러 가야 한다. 그렇게 말을 하고 싶습니다." (김상철, p.121)

그녀와 나는 부부이고 매우 친한 사이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바퀴벌레처럼 엉켜 사는 것이 피차 취향에 맞지 않아서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자 우리는 거처를 따로 두기로 결정했다. 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밥 해 먹으면서 따로 산다.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가 사는 집에서 가족 상봉을 하는데 날마다 비비적대는 것보다 낫거니 싶은 때가 많다. 서로 반가워하니까. (김갑수, p.140)

토론은 길어졌다. 그리고 찬성 일곱 표, 반대 두 표로 반전 의견서를 채택했다. 당연히 파란이 일었다. 민주당 여러 의원이 인권위원회를 비난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의견서 채택 과정을 자세히, 그리고 가장 크게 보도했다. 나는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각오했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여기저기 방송에도 나가 반전 의견서의 내용을 되풀이했다.
"가령 큰 댐을 건설하려고 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적극 추진하겠지만 환경부는 반대할 수도 있지 않나요? 인권위는 헌법 가치를 지키고자 합니다."
한바탕 회오리를 각오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외 반응에 크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는 평상시 어조로 지극히 낮게 말했다.
"인권위원회, 그런 일 하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유시춘, p.168)

제가 3년간 국정원 안에 설치된 위원회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단 한 번도 국정원을 자신의 개인적 이해 때문에 이용한 일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관계로 본다면 더할 수 없이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관계라 한다면 양측의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대통령만 그랬지, 국정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을 변하게 하려면 제도의 개혁과 사람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해외 정보와 국내 정보의 분리, 대공 수사권 폐지와 같은 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고 그가 지휘했던 과거 청산은 사람의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한홍구,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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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을까?
게일 브랜다이스 외 지음, 정미현 옮김 / 문학테라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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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읽지 않았을 때는 유머도 없는 이 책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딱히 재미있는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 더 집중하게 됐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니 이렇게 다를 수도 있나, 하고 들여다보는 일에 내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거기에 있다. 결혼이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각자의 결혼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은 행복과 안정감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불화하고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결혼을 한 번 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심지어 다섯번 이혼한 남자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다섯 번 이혼한 남자와 교제중인 여자는 다섯 번 결혼한 아버지의 딸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든든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굳이 책을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서 역시 근사한 동반자를 얻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난 뒤, 함께 살아가는 시간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얘기하고 그때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얘기한다. 다른 누군가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얘기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경우들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알게됐는데, 그건 인간이 저마다 얼마나 다른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바와 다름없다. 누군가에게는 아기가 절실해서 섹스가 단지 수단이 될 수있고, 누군가는 더 큰 쾌락을 위해서 성을 사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간 둘이 만나 커플이 되었을 때 당연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마찰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일 테다. 우리는 모두 기쁨이 다르고 괴로움이 다르고 고민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스무살에 결혼한 사람이 있고 쉰이 넘어서 양욱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나이는 '앞으로 이걸 할 것이다' 라는 걸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결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동거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내 미래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결정하든,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결정을 한 이후 우리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앞으로 길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이 책의 누군가가 언급한것처럼 고독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부정적인 생각도 커다란 단점도, 반드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가 바람을 폈을 때 한 번 뿐이니까 흔들릴 수 없다고 결심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도 인상깊고, 남편은 러시아에 살고 자신은 미국에 살면서 일년에 반 정도만 만날 수 있는 커플의 이야기도 인상깊다.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낯설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독서였다. 읽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별과 고통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일종의 희망 같은 것이 내게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옛날 언젠가 나는 그에게 내 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뭘 하느냐고 물었다. "저녁 만드는 중."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파이 굽고 있어. 버섯 치즈 파이." 나는 파이 굽는 남자를 원했다. 그가 해동하고 있는 게 실은 그의 어머니가 만든 파이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이미 우린 셔츠를 같이 입는 사이가 된 후였다. (펀 쿠퍼,p.55)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그녀의 고운 마음씨를 가장 높이 산다. 그녀가 자기 엄마한테 휴가가 꼭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휴가 보내드린다는 얘기를 하거나 도시의 보행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애쓴다는 얘기를 할 때면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세포 하나하나가 사랑에 겨워 팔딱대는 기분을 느낀다. 내 연애사를 차지한 몇 번의 기나긴 짝사랑을 거친 뒤 정말 굉장한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번엔 내가 그 사람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늘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이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생각이다. (린다수전 울리히, p.131)

나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단순히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의 역사에 포함되는 이 한 조각에 비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우리의 관계는 더 크고 깊고 중요하다. 살다가 어느 시점에 혹시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할지라도, 그게 싫다고 마냥 이상적인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진 않다. 나한테는 에밀리가 필요하다. 음정이 안 맞지만 열심히 노래 부르는 모습, 바겐세일에 목숨 거는 모습, 사용설명서 독해 장애는 아닌가 의심되는 헐렁한 모습, 심지어 나를 상처 입히는 능력까지 나는 다 원한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이 그녀의 아찔한 미소와 영성, 총명함, 열정, 그리고 우리의 깊은 유대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함께하겠다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아주 잘. (린다수전 울리히, p.140-141)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딸과 함께 코네티컷에서 지냈다. 나는 거기서 글을 쓰고 근처 대학 두 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더군다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뉴잉글랜드식 가치관을 지닌 나의 부모님, 그러니까 딸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가까이 살면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댄은 그의 주 거처를 모스크바로 삼기로 했다. 자기 일에 진심으로 매진할 수 있는 곳이 거기니까. 딸의 방학 기간과 우리 부부의 각자 작업 일정을 요리조리 맞춰서 우리 가족은 1년에 반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댄은 사랑하는 이들과 부대끼고 사는 일상을 그리워한다. 나는 매일 감당해야 하는 자녀 양육의 책임을 나눌 사람이 절실할 때가 많다. 우리 딸은 확연히 다른 두 문화를 접하는 혜택을 누리지만 일상의 연속성이 끊기는 경험을 자주 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양쪽 집안 모두 우리 가족의 삶을 지지해줘서 참 다행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살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만족스럽다. 좀 희한한 방식이긴 해도 우리 부부는 마침내 결혼 생활에서 평등을 이뤄 냈다. (팡 메이 나타샤 창, p.188-189)

나는 결혼 경험이 많다. 말하자면 꾸준히 배필을 물색하는 연속일부일처주의자(*일정 기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연속 단혼의 결혼 형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욕정부터 죽음까지 같이 짊어지고 갈 수 있다고 꾸역꾸역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이스 톰슨,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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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2-17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에 한껏 끌리네요. 다락방님 리뷰 읽고나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던지고 바로 읽고 싶네요^^

밑줄문장도 좋아요~~ 그건 냉동파이였고 우리는 이미 ㅎㅎㅎ

다락방 2016-02-17 16:52   좋아요 1 | URL
이미 가정을 이룬, 혹은 이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걸 들었다고 해서 제가 더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른 방식으로 살고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음, 제가 `이렇게 사는 건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어서 참 희망차게 여겨졌어요. 으하하하핫.


밑줄긋기는 몇 개 추가했습니다.

mira 2016-02-17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생에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책 읽고 희망을 가져볼까요 ㅎㅎ

다락방 2016-02-17 16:52   좋아요 1 | URL
미라님은 희망을 가지시게 될지 혹은 역시 없어 없어, 하시게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결혼하고나서 우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행복했든 우울했든 그리고 이미 끝나버렸든 계속 진행중이든, 미이 해보았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읽는 것은 제게 유익했습니다. 흣 :)

[그장소] 2016-02-1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읽고 싶어요.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남자도 필요하지만 역시 ㅡ다함께 책임을 나누고 함께 행복할 가족이란 단위가 필요하구나..가끔은 생각해요.
그런데 일반적 가정은 아니예요.
제가 꿈꾸는 가정은요..파괴적인 가정이랄까..지금으로썬.ㅎㅎㅎ

다락방 2016-02-18 09:43   좋아요 1 | URL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파괴적 가정에 대해 조금쯤 짐작이 되네요. 가족이란 게 구성원들 사이엔 가장 친밀함을 나눌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구속력이 어마어마하기도 하죠. 또한 타인에게 가장 배타적인 집단이기도 하고요. 일전에 [준벅]이란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걸 느꼈거든요. 아, 가족이란 게 이렇게나 배타적이구나, 하고요. 그러니 그장소님이 생각하신 파괴적인 가정이란 건, 제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옵니다. 하핫

[그장소] 2016-02-18 16:21   좋아요 0 | URL
베타 ㅡ적이고 말고요. 그래서 집안 일 이라며
공공연한 폭력이 자행되기도 하는 집단이기도 하고 말예요.
뭐, 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비슷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ㅡ합니다.
구상은 ㅡ^^ 다락방 님과..
멋진 ㅡ신세계 ㅡ랄까..
아님 막장 신세계랄까..ㅎㅎㅎ

네꼬 2016-02-1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습니다. 다락님 글이 좋아요.

저 역시 희망을 가져보았고 그게 저를 결혼하게 만들었어요. 누구나 다른 종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락님 좋아요.


다락방 2016-02-18 15:37   좋아요 1 | URL
저는 계속 혼자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이 책에 제가 생각하는대로 사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 음.. 좋았어요. 그래, 거봐, 이렇게 살 수 있잖아,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고통과 배신 체념등으로 결국 돌아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는데도 희망적인 느낌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헷.

오늘 네꼬님 글 되게 좋았어요. 제가 좋게 읽은 책을 네꼬님도 좋게 읽어서 막 신나고 뿌듯하고 그랬어요. 게다가 네꼬님은 글을 참 재미있게 써서, 아 참 좋으네, 하면서 읽었어요. 고마워요. 히죽히죽 ^_____^

moonnight 2016-02-18 17:36   좋아요 0 | URL
와 다락방님 글도 좋고 네꼬님 댓글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저 역시 희망을 가져보았고 그게 저를 결혼하게 만들었어요. 라니요@_@;;;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희망을 가지길♡♡♡♡

다락방 2016-02-19 09:24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댓글도 좋아요. 알라딘에서 오래오래 문나잇님을 알고 지내는 거 참 만족스런 일중에 하나입니다. 히힛

네꼬 2016-02-19 17:26   좋아요 0 | URL
뭐죠 이 살랑이는 댓글의 물결. 달달하여라.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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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p.51)




내가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때 조차 나는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가 무얼 뜻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때조차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끊임없이 '왜 나만?', '왜 여자만?', '왜 나는 너(남자)랑 같은 행동을 하면 안돼?' 라고 의문을 가져왔고 그렇게 목소리를 내 발언했었다. 내가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페미니스트 였다. 그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린 셈이다.


한편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있고, 그걸 드러내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불리한 위치에 여성이 놓여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성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나는 하이힐을 신으면서 기분 좋아하고 예쁜 원피스를 나풀거리면서 걷는 걸 좋아한다. 요즘엔 눈화장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이는 눈을 만들 수 있을까 섀도우를 바르며 갸웃갸웃 한다. 보습이 잔뜩 들어간 크림을 새로 샀고, 예쁜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다. 


나는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자기들만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환상을 이제는 공공연한 기준으로 세워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성을 소비하는 사회에서 모델들은 전부 남자들이 바라는 바로 그런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육체를 바로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순간도 없다. 너네는 저렇게 마른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니네들이 세워놓은 니네들만의 기준이고, 나는 그렇게 살진 않겠다, 라고 늘 생각해왔다. 나는 내 욕망에 충실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어. 그것이 비록 항아리처럼 배가 나온 모습이라도, 그게 내가 좋다면 나는 그런대로 살거야. 너네한테 예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먹고 싶은 걸 참고 하루종일 운동하면서 살진 않을 거야. 만약 내가 먹고 싶은 걸 참고 운동하는 데 빡세게 노력한다면, 그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어야 해. 혹여 '남자들은 그렇게 뚱뚱한 여자, 관리 안하는 여자 싫어해' 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싫어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남자가 있어야만 삶이 충족된다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가 함께할 때 불행한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나지만, 내 스스로 여전히 많은 고정관념들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나는 재이슨 스태덤의 근육을 볼 때마다 좋아 죽는 것이다. 이렇게 강한 남자를 보는 게 너무나 짜릿해, 이것은 사회가 맞춰놓은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에 그대로 굴복하고 있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단지 나는 미에 대해 나만의 기준을 가진 것인가... 내가 재이슨 스태덤의 근육가득한 몸을 보고 좋아하는 게, 그러니까, 그냥 나의 취향적인 문제인걸까? 아니면 나는 길들여진건가? 여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강한 남자가 그러니까 나만의 고유한 판타지인건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내가 갇혀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쳐나가야 할 점이 있다면, 그건 내가 갇힌 고정관념에 대한 것일 거다. 그렇지만... 나는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하지만....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내 연인에게 재이슨 스태덤처럼 되라고 말하진 않아, 재이슨 스태덤이 저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페티시즘에 더 가깝지 않을까? 단단한 근육, 강인함에 대한 페티시즘? 



그러면서 약간 갸웃하는게, 내 주변의 여자사람들은 나처럼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보다는 잘생긴 얼굴, 마른 몸, 아름다운 미소 같은 것으로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강동원한테 1도 관심이 없고(정말이다, 영화 개봉해도 안궁금하고 안본다) 오로지 재이슨 스태덤한테만 관심있다. 아, 이것은 그러니까 나의 취향의 문제인가..




내가 지금껏 써놓은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 작은 책 한 권에 그대로 들어가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자신의 남자사람 친구, 동료, 할머니의 얘기들을 풀어놓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한다. 실제의 사람들과 실제의 대화, 본인의 경험으로 풀어놓은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힌다. 스웨덴에서는 이 책을 전국의 청소년에게 모두 배부했다고 하니, 이 책에 대한 접근이 쉽다는 것을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될테다. 얼마전에 여자지인에게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했는데, 그 책 읽기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더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읽어보면 사실 그간 자신이 느껴오고 생각한 게 정리되어 있었을테지만, 거기에 접근하는 용어라든가 그걸 툭툭 건드려서 꺼내놓는 걸 읽는 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선물하기로 했다. 이 책이라면 접근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아서. 페미니즘을 다룬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타자화'라는 단어 자체부터 일반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들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는 그런 어려운 용어들로 페미니즘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초적인 책이 될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남성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기는 좀 더 꺼려지는데, 나는 이 책을 남동생에게 읽어보라 권했다. 이거 되게 짧아, 한 시간도 안걸릴거야, 그리고 쉬워, 그러니까 꼭 읽어봐, 라고 했더니 남동생은 읽었다. 다 읽고나서는,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데, 이 책은 남자보다도 아직 이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여자들이 읽는 게 중요할 것 같아, 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김을동 같은 사람이 읽어야 되지 않겠냐고... 김을동.......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나 확고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크게 그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아직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혹은, 이건 뭔가 이상해, 이건 좀 불공평하잖아? 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그래 맞아! 라고 고개 끄덕이며, 그렇다면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생각하게 될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입문서로 권한다.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 이론으로 설명한 게 아니라 경험으로 접근한 책이라 책장을 넘기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남동생이 다 읽은 이 책을 제부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또 한 권을 준비했다. 남동생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여성들이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소리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말한다면, 귀기울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하게 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을 경험으로써, 제공한다. 



이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8,82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음, 조금만 더 저렴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어떤 기념일에, 명절연휴에, 크리스마스에,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이 상대에게 건네며 선물하기에 좋은 가격 아닌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책의 말미에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p.52) 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아니,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나라에서 뭐하냐, 역사교과서 가지고 지랄하지말고 이 책을 청소년 모두에게 배부하라!!




다른 사람의 페미니즘 테드 강연까지 더해서 책을 이거보다 살짝 두껍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겨 별을 하나 뺀다.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p.13)

나는 간절히 반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시험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반장은 남자아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선생인믕 그 점을 사전에 밝히는 걸 잊었는데, 어차피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시험에서 이등을 한 아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남자아이가 반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욱더 재미있었던 점은, 그 남자아이는 회초리를 들고 교실을 순찰하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상냥하고 온화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너무너무 그러고 싶었지요.
하지만 나는 여자였고, 그 아이는 남자였으므로, 그 아이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p.15-16)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p.16)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Wangari Muta Maathai 는 이 형산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p.20)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p.23)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p.31)

한번은 알고 지내는 어느 나이지리아 사람이 내게 나 때문에 남자들이 위축될까봐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위축될 남자라면 애초에 내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 타입이니까요. (p.33)

나는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심지어는 직장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을 하도 많이 받은 나머지 등 떠밀리듯이 나쁜 선택을 하고 만 젊은 여자들을 많이 압니다.
우리 사회는 일정 연령에 다다른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심각한 개인적 실패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p.34)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 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p.35)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화가 그 차이를 더 강화합니다. (p.39)

내가 아는 한 여성은 남편과 똑같은 학위를 받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집안일을 거의 도맡는데, 이건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렇죠. 내가 그보다도 놀란 점은 남편이 아기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내가 "고마워요"라고 말한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그녀가 남자가 자기 자식을 돌보는 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면 어떨까요? (p.41)

나는 내 여성성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만하니까요. 나는 정치와 역사를 좋아하고, 사상에 관해서 훌륭한 논쟁을 벌일 때 행복합니다. 나는 하이힐을 좋아하고, 립스틱을 바릅니다. 남자에게 받는 칭찬도 여자에게 받는 칭찬도 다 좋지만(솔직히 털어놓자면 스타일 좋은 여자들의 칭찬이 더 기쁘긴 합니다), 가끔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옷을 좋아하고, 그 옷을 입으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요. "남성의 시선"이 내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바는 대체로 부수적입니다. (p.42-43)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묹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4)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게 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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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마야 2016-0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교과서 대신 이걸 읽게 하자는 다락방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는 모든 남성들에게 선물하려구요. 모두가 평화롭게 존재하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요^^

다락방 2016-02-12 15:20   좋아요 1 | URL
네네, 저도 쟁여두고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회사 동료에게 한 권 선물했어요. 히힛. 좋은 책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레와 2016-02-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완료! 땡큐!

다락방 2016-02-15 08:03   좋아요 0 | URL
금세 읽을 거에요, 레와님. 무엇보다 생활에서 나온 얘기들이라 쉽게 접근 가능했고요. 추천!

2016-02-12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5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스티븐 킹 걸작선 4
스티븐 킹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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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은 전혀 가혹하다 여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돌로레스가 남편 조를 죽인 일이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살인은 나쁜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게 더 나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조가 그랬다. 조가 돌로레스를 '패는' 남편이어서가 아니다. 그것도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짓을 그는 저질렀고, 그래서 그의 살아있음이 누군가에게 내내 두려움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라면,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내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그렇게 옷의 먼지를 털듯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낼 수도 잊혀지는 종류의 일도 아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돌로레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갇혀 살아야 했으니까. 



오래전에 스티븐 킹의 단편선을 한 권 읽고는 우앗, 너무 무서워서 나는 앞으로 스티븐 킹을 읽지 않을 거야, 라고 결심했더랬다. 그때의 그 공포라니! 기억하기로는 <옥수수밭 아이들>이 가장 무서웠다. <트럭>도 무서웠고, <금연 주식회사>도 무서웠고 ㅠㅠ 아아, 이 사람이 쓰는 소설을 나는 읽어낼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해서 이 책도 사두고 몇 년을 그냥 꽂아두기만 했는데, 하필이면 연휴끝인 어젯밤 집어 들었고, 아아, 스티븐 킹 아저씨가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게 쭉쭉 빨려들어가게 글을 써주셔서 ㅠㅠ, 아니, 그랬기 때문에!! 나는 새벽녘까지 책을 한 순간도 덮지 않고 다 읽어버리고 만것이다. 덕분에 세 시에 잤어요. ㅠㅠ 잠들기전에 이런 책을 읽으면 안되는데.. ㅠㅠ 오늘 아침에 내가 일어나기 힘들었겠어, 안힘들었겠어.


게다가 세 시에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잘 오지도 않았다. 이 책에서 느꼈던 공포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에. 무서워 ㅠㅠ 그래서 뽀송뽀송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자꾸 끄집어내야 했다.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킹 아저씨 작품을 이제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다 읽어봐야겠다. 공포물은 좀 빼고 ㅜㅜ


곳곳에 명문들이 있다. 이런 문장들을 만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의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자네는 항상 착한 아이였지. 남자 아이치고는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자네가 공정한 사람이라는 얘기야. 게다가 이제는 버젓한 남자가 됐어. 하지만 너무 으스대지는 말라고. 자네도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자랐으니까.빨래를 해 주고, 콧물을 닦아 주고, 자네가 잘못된 쪽을 향하고 있을 때 돌려세워 줄 여자가 항상 옆에 있었다는 얘기야. (p.16-17)

우리 아버지가 벌을 내리면 엄마는 그걸 받아들였어. 하지만 아버지나 엄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은 없어. 어쩌면 엄마는 남편의 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엄마를 벌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으면 항상 같이 일하는 남자들한테 얕잡아 보였을지도 몰라. 그때는 시절이 달랐으니까. 지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하지만 말이야, 내가 애당초 얼간이처럼 조하고 결혼했다고 해서 그 인간이 그런 짓을 하는 것까지 참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남자가 여자한테 주먹질을 하는 거냐, 나무 상자에서 꺼낸 장작개비로 매질을 하는 건 절대 가정 바로잡기가 아냐. 그래서 나도 조 세인트 조지 같은 사람, 아니 그 어떤 남자라도 나한테 그런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거야. (p.98-99)

내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까 그 여편네가 좀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마치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 못된 년이 되는 수밖에 없어."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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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2-1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대단한 작가이지요. 저도 가끔 그의 작품을 손에 들면 그대로 끝까지 갑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6-02-12 15: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 새벽까지 읽느라 고생했어요. 그리고 내내 감탄하며 읽었답니다. 명문이 가득한 좋은 소설이었어요!

moonnight 2016-02-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예요. ^^

다락방 2016-02-12 15:15   좋아요 0 | URL
저도 기꺼이 엄지를 줄 수 있는 작가에요! 다른 작품들도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스티븐 킹의 작품이 많아서 좋아요! 꺅 >.<

hnine 2016-02-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옛날, 극장 (영화관이 아니라 극장이라고 부르던 시절)에서 봤어요. 미저리의 여주인공, 누구더라...캐시 베이츠! 그녀가 돌로레스 클레이본으로 나오지요? 미저리만큼은 아니지만 이 영화도 꽤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스티븐 킹이 쓰고 재미없는 책이나 영화도 있을까 싶어요.

다락방 2016-02-12 15:16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전에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던 기억이 나요. 이 책을 읽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아 정말 읽기를 잘했어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책이었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영화도 좋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저도 기회가 되면 영화를 봐야겠어요. 물론 책으로도 충분했지만요.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clavis 2016-02-1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만개의 좋아요를 던집니다용♡♡

다락방 2016-02-12 15:17   좋아요 0 | URL
백만개의 좋아요를 기꺼이 받습니다용 ♡♡

2016-02-1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2-1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한다는
소설의 한 구절이 인생의 한 단면을 축소시킨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사람은 한번씩 못된 사람이 되어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인 것 같아서... *^^

다락방 2016-02-15 08:27   좋아요 0 | URL
특히나 여자들이라면 못된년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못된 년은 문자 그대로 못된 년 이라기 보다는 남자들이 보기에 못된인거지만요. 정말 좋은 소설이었어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 소박한 미식가들의 나라, 베트남 낭만 여행
진유정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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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는 좋을 확률이 적다. 내게는 그렇다.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알아볼까 싶어 찾아봤다가는 지루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글과 사진들만 보게 되어서 심드렁해지곤 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도무지 여행기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기란

 

1. 가보고 싶게 만들 것

2. 지나치게 자기 감상에 젖어있지 말 것

 

이었는데, 이 두가지의 조건을 충족하는 여행기를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우연히-도무지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 모르겠다 ㅎㅎㅎㅎㅎ- 읽게된 이 책은 내가 생각하는 이 두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베트남에 대해 그간 관심이 1도 없었는데 베트남에 가고 싶어지는 거다. 게다가 글들이 정갈하고, 저자가 좋아하는 국수에 대해 성심성의껏 적어둔 터라, 아, 나는 면덕후도 아닌데, 심지어 면은 별로 좋아라 하지도 않는데!! 국수 먹으러 베트남 가고 싶어지는 거다. 꺅 >.<

 

책을 읽다 말고 달력을 펼쳐두고서는 언제쯤 가볼까, 가만가만 따져보았다. 비행기 가격이 저렴하다 싶으면 내가 시간이 안되는 때였고, 내가 시간이 되는 때에는 비행기 가격이 높더라. 에헤라디여~ 한 이박삼일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저자는 베트남을 사랑하는데,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수를 찬양한다. 국수 때문에 베트남에 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딱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여행이며, 딱 내가 원하는 바로 그런 여행기가 아닌가. 이 여행기는 자신이 해야할 몫을 충실히 해냈다. 국수 먹으러 베트남에 갈것이다!!

 

먹고 싶은 국수에 대한 글들을 밑줄긋기 해놓고 이 책을 중고샵에 팔려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 옮겨 적다가 팔 빠질 것 같아 일단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다. 와, 국수 먹으러 베트남에 가고 싶어지다니. 살면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여행은 결국 먹는 것인가...

 

 

 

 

살면서 꼭 한 번은 만난다.
아무도 내가 당도할 것을 모르는 먼 곳으로 떠나는 낯선 정거장에서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그리운 얼굴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설사 그런 행운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떠나고 싶은 곳, 닿아야 하는 곳이 있다는 건
틀림없이 멋진 일이다. (p.25)

(분보후에) 살짝 데친 야채를 넣고 맛본 첫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힘줄이 섞여 쫄깃쫄깃한 소고기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싹 비워버렸다. 학교에 가기 전이라 땀을 그렇게 쏟으면 안 되는데 화장이 지워지는 것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 이후로 분보후에를 혼자도 먹고, 학생들과도 먹고, 호찌민에 놀러 온 친구들과도 먹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먹으면서도 질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p.60)

뭐니 뭐니 해도 분짜의 가장 큰 매력은 직화에서 비롯된다. 불 맛을 풍기는 고기에 달콤한 소스가 살짝 스미면 그야말로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동남아시아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한 입만 먹어보면 앉은자리에서 두 그릇도 먹게 되는 음식이 바로 분짜다. 하노이를 여행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 분짜 냄새와 연기에 꼼짝없이 이끌리게 될 것이다. 숯불에 굽는 맛있는 냄새와 연기에 사로잡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길모퉁이에 작은 선풍기가 놓여 있다면, 탄을 피우고 있다면, 석쇠에 무언가 굽고 있다면 일단 못 이기는 척 들어가라. 한번 맛보면 뿌리칠 수 없는 맛이 거기에 있다. (p.106)

이별 후에 무엇을 먹어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헤어진 그날에는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람이란 존재는 간사해서 곧 허기를 채울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이 진짜 배고픔에서 기인하든 마음의 허기에서 비롯되든 말이다. 바로 그때, 아직은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힘은 없지만 어김없이 배가 고파와 당혹스러울 때 국수만큼 어울리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p.120)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동네에 모여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들이 나를 위해 모여 살아주겠는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겠지만 상상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 허무맹랑한 그 바람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내가 사랑하는 나라들이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행운을 얻었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테국이 모두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으니 여행자로서 나는 대단한 행운아다. 다정하게 옆에 붙어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나라들로 언제라도 훌쩍 넘나들 수 있으니. (p.187)

손님이 그릇을 비우면 가인항은 의자를 한쪽에 걸고 유유히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눈앞에서 바로 요리해주는 따뜻한 음식이 길거리에 넘치는 나라, 베트남. 멋진 시설을 갖추고 빠르게 달리는 푸드트럭 부럽지 않은 수천 개의 `푸드 가인항`이 여기에 있다. 여행에 지쳐 걷기도 힘들고, 식당을 찾아 헤매기도 싫다면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려보라. 푸드 가인항이 곧 당신에게로 걸어올 것이다. (p.155)

(퍼싸오보) 재빨리 소고기를 볶고, 라우까이라고 불리는 야채를 숨이 죽을 정도로만 살짝 볶고, 거기에 미리 볶아둔 면을 넣어 한 번 더 볶아 수분을 날려준다. 이 과정으로 면발은 더 쫄깃해진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삭힌 고추 소스를 더해주면 금상첨화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하고 매콤한 자극에 야채의 신선함까지.

안 되겠다.
아무래도 맥주 한 병 시켜야겠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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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L 2016-02-10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베트남 호치민입니다 ㅋㅋ
이렇게 맛있는 국수는 못 먹고 귀국할 것 같지만... 다락방님 글을 보니 반갑네요ㅋㅋㅋ;;

다락방 2016-02-11 12:04   좋아요 0 | URL
아니, 호치민에 계십니까!!
저는 베트남에 다른 음식들은 뭐가 더 있는지 몰라서, 일단 국수 먹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국수를 못 드시고 귀국하신다뇨. ㅎㅎㅎㅎㅎ

반가워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힛.

프레이야 2016-02-1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트남쌀국수 좋아하는데‥훅 당기네요. ^^ 마음 먹으면 가까운 곳인데 말이죠

다락방 2016-02-11 12:0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우리가 간혹 먹는 그 쌀국수 말고 다른 국수들이 지천인가봐요! 어쩐지 신나요! 꺅 >.<
물론 언제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예요. ㅎㅎ

단발머리 2016-02-1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날 연휴에 아빠랑 단 둘이 만나 베트남 쌀국수를 후르룩 먹었다지요. ㅎㅎㅎ
역시 여행에는 음식이 가장 중요한가요?

다락방 2016-02-11 12:07   좋아요 0 | URL
여행에는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기 보다는... 저는 음식 때문에 여행 가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6-02-1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