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O.S.T
라이언 고슬링 외 노래, 저스틴 허위츠 (Justin Hurwitz) 작곡 / 유니버설(Universal)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가끔 동굴속에 들어간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그러니까 내가 왜, 어째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동굴속으로' 들어간다. 그때의 나는 누구와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아무것도 내 기분을 바꾸지 못하고 아무도 내 기분을 바꾸지 못한다. 주기를 알 수도 없어서 대비할 수도 없다. 아, 동굴속이다, 하고 내가 느낄 뿐이다.


일전에는 동굴 속에 들어와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 날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너무나 취소하고 싶었지만, 당일에 취소하자니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내 안에는 약속 취소를 싫어하는 내가 있다. 그래서 오늘 만나지 말자고 말하는 대신 꾸역꾸역 그 자리에 나가서는 억지로 말을 하고 억지로 웃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평소의 나와 다름 없이 보여야한다고, 그렇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이미 내가 평소의 나와 다르다는 걸 알아챘었다. 자리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너 오늘 무섭고 조심스러웠다, 라는 얘기를 듣고, 아 그냥 약속을 취소할걸...했었더랬다. 


어제가 바로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간 날이었다. 나는 이 때, 금세 나올 수 있다는 걸, 나오게 된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룻밤이면 된다. 하룻밤. 오늘 밤만 자고나면 나는 다시 세상을 향해 나올 것이다, 라는 걸 나는 알고 있지만, 이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의욕도 의지도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어제 퇴근 길에 라라랜드 앨범을 재생시켰다. 정말 입을 꾹 다물고.




라라랜드의 음악들은 영화를 보지 않은 자들이 그저 노래로써 들었을 때 좋아할 만한 곡들은 아니다. 만약 내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앨범을 재생시킨 후에 좋다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그 전에 재생했을 리도 없지만). 아, John Legend 가 부른 <Start a Fire>는 좋아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노래들에 대해서라면 '어?'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봤다면 달라진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이 영화속의 음악들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았더랬다. 딱히 와닿는 곡들은 아니었달까.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영화에 대한 감상이 채 지워지지 않은 채로 듣게 된 음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쑥쑥 귀에 들어왔고 그렇게 나를 만져줬다. <Start a Fire>는 물론 노래 자체로 좋았고, 제일 처음에 나온 <Another Day of Sun>은 영화의 도입부가 생각나 흥겨웠다. 군중 속의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미아가 파티에 가기 싫어 집에 처박혀 있으려다가 파란 드레스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함께 부른 <Someone in the Crowd>를 듣는 것도 즐거웠고. 그렇지만,



<Epilogue>를 듣는 내 마음은 너무나 너무나 아팠다. 분명 흥겹고 신나는 노래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슬펐는데, 에필로그가 나와버리면, 진짜 너무 슬픈 거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이 곡은 진짜 너무 치명적인 것 같아 ㅠㅠ



어제 퇴근길에 그렇게 걸었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매봉역을 지나 도곡역, 대치역, 그리고 학여울역에 이르기까지 걸으면서 들었더니 앨범 전체가 한 번 재생이 되어 끝났다. 그 음악들을 들으며 한껏 슬퍼하고 그렇게 걸었다. 한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누구와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발로 걸으면서,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음악을 듣는 일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곧 나갈거야, 라고 내가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밤이 지나면 동굴 속에서 나갈 수 있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들었다.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엘에이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속 아름다운 풍경들이 생각났다. 그때, 미아와 세바스찬이 아직 연인이 되기 전에, 저녁해가 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별 거 아니지 뭐' 라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고, 아, 여름에 캘리포니아에 갈까, 라고 생각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야기가 생각나 울컥 슬퍼지고. 나는 그렇게 한껏 감상에 취했더랬다. 



길동역에 내려 집에 걸어가려는데, 아아, 무슨 퇴근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걸리냐..물론 한 시간 정도는 내가 걷기로 선택한거지만...아니, 지치잖아.... 내일은 걷지 말아야지, 이건 뭐 퇴근하다 날 다 새겠네 ㅠㅠ 가도 가도 집이 안나오는 느낌적 느낌..




집에 돌아가 동생들과의 단톡방에서 여동생에게 라라랜드 꼭 보라고 했다. 너도 좋아할거라고. 어바웃 타임이, 뻔한 얘기인데도 뻔하지 않게 우리를 즐겁게 했잖아, 근데 라라랜드도 그래. 뻔한데도 뻔하지 않게 좋아, 날 믿고 보렴, 하고 추천했다. 그리고는 엘에이 엄청 예뻐, 라고 덧붙였는데, 이에 남동생이 이렇게 답했다. 



- 강동구가 젤 이쁨



ㅋㅋㅋㅋㅋㅋ 여동생하고 나는 빵터졌다. 오, 강동구여!




라라랜드 앨범을 두 번 반복해 들은 어젯밤, 나는 아홉시부터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 동굴 속에서 걸어나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6-12-13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언니 이 영화 꼭 보라고요. 그런데 엘에이 얘기는 없고 콜로라도 볼더가 나오니 꼭 보라고.
주말에 보려고 맘 먹고 있어요.

다락방 2016-12-13 13:27   좋아요 0 | URL
네, 나인님. 여자주인공의 고향이 볼더에요. 여자가 남자를 만나서 자신의 고향이 볼더라는 얘기도 하고, 또 여자가 상처 입고 볼더에 돌아가기도 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네, 볼더가 나옵니다! >.<
나인님은 보시고나서 어떠실지 궁금해요. 감상 적어주세요!

2016-12-13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6-12-1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달 ( 꼬박꼬박 ) 생리 3-4일 전 즈음해서 정말 기분이 바닥을 쳐요. 이유없이 가라앉고 우울함에 쩔고 운전하다 울기도 하고 ㅎㅎㅎ. 그러다가 생리 시작되면 다시 괜찮아지고. ( 미칫나보아요 ). 시간이 해결하는게 참 많지요?




다락방 2016-12-14 08:19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저도 생리전증후군이 심해요. 이제는 아, 때가 됐구나, 하고는 미리 우먼스타이레놀을 먹어서 생리전증후군으로 찾아오는 우울증에 대비할 수가 있지요. 약 먹는다고 감쪽같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좀 나아요. 저도 생리전 증후군에 기분이 바닥을 치고, 술 마시다가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다 지나갈 것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다독해요. 말씀하셨듯이, 시간이 해결하지요. 생리 시작하면 또 나아지니 말예요.

그렇지만 동굴은 다른 문제에요. 이건 생리전에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왜 찾아오는지를 몰라서 제가 대비할 수가 없어요.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이도 저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요. 이거야말로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지기 때문에,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려야 한답니다. 때로 인간은 정말 무력한 존재인 것 같단 생각을 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어떤 사람들은 곧잘 사랑에 빠지고 또 빠지는 사랑마다 뜨거워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애를 반복하긴 하지만 활활 타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연애를 할 때마다 백도씨까지 끓어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매번 육십도 이상으로만 타오르다 단 한 번만 백도씨까지 타올라, 그 기억을 평생 안고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실 어떻게 매번 백도씨까지 타오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말뿐이지, 사실은 정말 백도씨가 되어 활활 타올랐던 건, 단 한 번뿐이지 않을까? 누구나 평생 살면서 기억하게 되는 '가장' 사랑하는, '최고로' 사랑했던, '미친듯이' 뜨거웠던 연인은, 단 한 명 뿐이지 않을까? 물론 매순간 연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매순간 자신의 연인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죽기 전에 기억나는 '단 하나의' 사람 같은 게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로버트 킨케이드처럼, 이렇게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있소, 한 가지만. 다시는 말하지 않을 거요, 누구에게도. 그리고 당신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p.150)





로버트는 매디슨 카운티로 다리(bridge)의 사진을 찍으러 갔다. 길을 물으러 그 동네의 집에 들렀다가 프란체스카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고, 마침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이 집울 비웠기에, 나흘간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 때 프란체스카의 나이는 마흔다섯이었고, 로버트의 나이는 쉰둘이었다.


나는 이런 사랑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스무살에도 오고 스물 일곱에도 오지만, 마흔 다섯에도 온다는 걸 믿는다. 그리고 마흔 다섯에 온 사랑이 온 삶을 통틀어 가장 뜨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대체적으로 사랑은 엇박자인지라, 나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던 나의 연인에게, 나 역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그를 추억하는 만큼, 그는 다른 사람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추억하고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추억한다는 것을 그 둘은 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확신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강렬한 사랑이었음을,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사랑이었음을, 그 전과의 삶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강렬한 사건이었음을, 그들은 안다. 그리고 상대가 안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그들은 나흘간 사랑을 나누고, 그 후에 이십년이상 서로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는 채로 살면서,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향해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에는 단 한 순간의 기억만으로 평생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처음 본 순간부터의 강렬할 끌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믿음, 나흘간의 섹스, 그 후에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프란체스카는 그를 따라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지만, 그러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머무는 것 뿐이었음을, 프란체스카도 그리고 로버트도 안다. 이들이 함께 있는 동안 사랑하고 또 헤어진 후에 어디에 있든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까지, 순간적으로 내가 될 순 있었다. 응, 맞아, 한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지탱할 수도 있지. 나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책으로 놓고 보면 이 사랑이야기는 좀 작위적이란 느낌을 준다. 평생을 그리워하는 거, 이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작가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랑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굳이 음악가의 인터뷰까지 실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사랑이야기는 당연히 나에게 가장 특별한 것이지만, 뭐랄까, 이 사랑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하기 위해 쓸데없이 군살을 붙인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무척 흥미를 가지는 사랑의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남자 작가의 한계일지 모르겠지만, 곧잘 그들은 주인공에 자신의 로망을 불어넣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유리한 점이기도 하겠지만, 로버트는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는 사람이며 일에 있어서는 엄청난 프로이다. 게다가 근육질이고,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며 바람처럼 떠돈다. 이건 뭐랄까, 그냥 남자들의 로망 같다. 그렇게 떠돌다가 중년에 인생사랑 만나 그 사랑을 평생 간직하며 목걸이 메달로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달고 다니는 남자라니, 흐음, 로맨틱하긴 하지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소설 같다. 게다가 프란체스카는 젊은 시절 남자만 기다리는 타입의 여자였으니, 그 또한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눌러붙어 있는 사람은 사실, 내 타입이 아니다. 물론 상황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의 삶을 한 순간에 놓고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나로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는 타입의 여자랄까. 집에만 조용히 가만히 있는데 인생사랑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흠.. 뭐 어쨌든, 그렇게 외부로 발을 뻗어 나갈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나흘간의 만남과 사랑이 인생사랑이 된 걸수도 있겠다.


나는 이들이 경험한 나흘간의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내가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사랑을 하지 못한 채로 사느니, 이 나흘간의 사랑을 겪고 평생을 그리움에 허덕이는 편이 낫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주인공인 이 책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오체를 읽는게 힘들어지고 말았어...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향해, 당신이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하오. 우리가 만나기 전에는 서로를 몰랐지만, 분명히 우리가 함께 되리라는 확신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도 저 가슴 밑바닥에서 쾌활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오. 하늘의 부름을 받아 광활한 초원을 나는 외로운 두마리 새처럼, 그 모든 세월과 인생 동안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거요. (p.40)



그녀는 추억했다. 추억하고 또 추억했다. 아이오와 92번 도로를 따라 빗속을 달리던 빨간 후미등의 이미지.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안개가 내리는 가운데 살았다. 그녀는 무심결에 자기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녀 위로 그의 가슴 근육이 스치고 지나가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맙소사,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도저히 그렇게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될 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예전보다도 훨신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 (p.16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6-12-0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오..체 읽는 것이 힘든 사람 추가요~^^ 자꾸 오그라들어요 ㅎㅎ 전 이 책 별 감흥 없이 읽었는데 그 이유를 다락방님 글을 읽고 알게 됐어요. 완벽한 남주와 수동적인 여주... ㅎㅎ

다락방 2016-12-06 16:02   좋아요 0 | URL
제가 한창 할리퀸을 읽던 시절에는 남자의 하오체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젠 하오체를 견디기가 힘이 드네요. 하아-
작가가 자꾸 ‘이 사랑 완전 짱이지?‘ 이걸 강조하는 것 같아서 좀 짜증났어요. 가만 둬도 알아서 다 판단할 수 있는데 말이죠. 작가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리면 좋지 않은 글이 나오는 것 같아요. ㅎㅎ

LAYLA 2016-12-07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찬양하는 글만 봤는데 락방님 글을 읽으니
그렇지
맞아
그라췌!
막 공감하게 되고요...?
캐릭터 분석은 날카로운 지적인거 같아요.

다락방 2016-12-07 09:01   좋아요 0 | URL
그라췌! 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소리내서 해보고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 재미없었거든요. 이제 프란체스카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다시 읽으면 어떨까 싶어 읽은건데, 음, 찬양할만한 책은 아니에요. 책은 그대로인데 제가 변한거겠죠... 하하하하하
 
싸울 기회 -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박산호 옮김 / 에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산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전문가들도 파산에 이른 사람을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으로 판단한다는 것에 대해 '엘리자베스 워런'은 충격받는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왜 그들이 무능하다는걸까? 엘리자베스 워런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파산이 게으름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은행은 기나긴 계약서상에 변동금리를 명시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렇게 대출로 차를 사고 집을 샀다가 결국 높아진 이자를 갚을 길이 없어지며, 그걸 갚겠다고 또다른 대출을 받다가, 갚지 못할 이자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집을 잃고 차를 잃는다. 삶을 송두리째 잃는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래서 이들을 위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아이를 돌봐야하고 아침을 먹어야하고 출근할 준비를 해야하던 시절, 토스터에 빵을 넣었다는 사실을 잊어서 집에 불을 낼 뻔했던 일을. 그 당시의 토스터는 자신이 알아서 구워진 빵을 꺼내도록 만들어져있었고 그래서 매우 위험했다. 그 후에 토스터는 시간을 정해놓으면 자동적으로 빵을 빼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안전한 토스터가 되기 까지는 소비자 보호원들이 역할이 컸다. 아이들 장난감에서 납을 빼라고 지시하는 일, 토스터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들을 소비자 보호원들이 해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금융에도 그런 게 필요한 게 아닌가. 대출을 받을 때 소비자는 은행과 상대하지만 거기엔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 그 기나긴 계약서를 다 읽어보지 않을 뿐더러, 읽었다해도 거기에 쓰여진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명을 하고 대출을 받는다. 그리고 추락하는 삶에 맞닥뜨린다. 이 과정에 소비자 보호가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엘리자베스 워런은 하게 된거다. 


그녀는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에 옮긴다. 잘못은 빚을 갚으려던 소비자들에게 있었던 게 아니다. 고객을 속이고 돈을 강탈한 대형 은행들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중재하는 기관을 만들자고 한다. 계약서를 읽고나서 문제되는 사항을 지적해주는 기관을 만들자고, 어느 소비자가 읽어도 이해될 수 있는 계약서를 만드는 그런 기관을 만들자고 하는 거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은행에게 구제기금을 주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을 구제하자고. 그래야 결국 은행도 산다는 것을 엘리자베스 워런은 깨달은 거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 이 기관에 대해 설명하고 텔레비젼에 나가서도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를 알려서 정말로 이런 기관을 만들자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미 거대한 은행들이 그녀를 반대하고 또 그 은행들로부터 로비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반대한다. 이 기관을 만드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알지만, 아주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반대한다. 이에 그녀는 힘겹게 싸우면서 이것을 법안으로 만들어줄 국회의원들도 만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까지 만나게 되는데, 아아, 백악관에서 그녀의 제안을 가장 긍정적으로 밀어주는 이가 오바마 대통령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비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구제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그렇게 미국에 <소비자보호금융국>이 만들어진다.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국장으로 그녀를 앉히고 싶지만, 이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녀조차 끔찍하게 생각한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을 앉힐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당신이 상원의원이 된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62세에 상원의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맹렬하게 싸운다. 정치에 뛰어든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서 실수도 있었지만, 곳곳에서 늘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밤 열한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달라며 그녀에게 정치후원금을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은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상원의원은 아니지만 나와 우리 가족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 같으니 당신을 지지하겠다는 소방대원들을 만난다. 작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장애아이를 가진 부모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를 만난다. 그들로부터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에 더 좋은 곳으로 세상을 바꿔달라는 말을 듣는다. 트랜스젠더 아이를 가진 아버지도 만난다. 당신은 아이를 위한 미래를 꿈꾼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중에 트랜스젠더도 포함되는거냐고 그는 묻는다. 워런은 그렇다고 한다. 또한 워런은, 여성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여성들의 몸의 권리는 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소리내어 말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그녀를 지지하게 되고, 결국 그녀는 상원의원이 된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에 대한 법안을 발의한다. 그녀가 원하는대로 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한걸음씩,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전화상담원 엄마와 빌딩 정비원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을 가지 못할 위기에 처했지만 어떻게든 대학을 가서 공부를 했고,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내며 행동한다. 결국 그녀는 세상을 바꾸는 데 크게 한몫을 했다. 아, 진짜 흥분되지 않는가!



나는 요즘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또 행동에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워런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가치 있는 것의 최고봉에 서있는 게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미국의 대통령이 힐러리였다면, 이번에 힐러리가 됐다면, 힐러리와 엘리자베스 워런이 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어냈을까, 자꾸 생각해보게 됐다. 아, 너무나 안타깝다.



똑똑하고 당차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이 즐거웠고,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서 같이 밥을 먹던 동료에게도 책을 읽다가 내용을 말해주었고, 여동생에게도 말해주었다. 세상 어딘가에서 똑똑한 여자가 힘차게 앞으로 걷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건 진짜 신나는 일이다. 앞으로도 엘리자베스 워런이 지금처럼 계속 싸워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싸우는 여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짜릿한 독서였다.



그래도 한가지 불만이라면, 이 책은 쪽수가 많고 매우 무겁다. 나는 들고다니면서 책을 읽는데 진짜 며칠동안 고생이 많았다. 내 추천으로 친구도 이 책을 샀는데, 받자마자 너무 무거워서 책장에 그냥 꽂아뒀다고 한다. 나야 어차피 종이책을 선택하는 사람이지만, 무거운 것보단 전자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이 전자책으로도 나와줬으면 좋겠다. 이 책 들고 다니느라 팔에 근육이 생긴 것 같다.








브루스와 내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돌아간 뒤 하버드 법대 학장이 가끔씩 전화를 걸어왔다. 그들의 제안은 아직 유효하다며 재고해볼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아니, 별로요. 우린 필라델피아에서 잘 살고 있었다. 어밀리아도 가까이 있었고, 비 이모와 보니는 오클라호마에 돌아와 우리 집 이층에 살았으며, 앨릭스는 아직 학교에 다녔다. 10년 넘게 무수히 이사를 다닌 뒤 마침내 한곳에 정착했음을 아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p.84)

하지만 브루스는 먼저 말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이었고, 그전부터 하버드대에서 한 제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펜실베이니아 대학도 훌륭하지만 사람들이 내 생각을 듣게 만들고 싶다면, 내가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산에서 소리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브루스는 내가 하버드에서 일한다면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좀더 높아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p.85)

진짜 심각한 문제들은 초반부에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나머지 원고에 가장 잔인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일단 가족들은 돈이 떨어지면 빚을 지게 된다. 그렇게 신용카드 빚이 계속 쌓인다. 무담보 단기 소액 대출상품이 사방에서 등장해 곤경에 처한 가족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다 결제일을 놓치거나 연체하게 되면 빚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그 결과는? 10년 동안 1500만 가구가 파산 신청을 했고 셀 수 없는 수백만 가족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 있다. 심지어 1990년대와 2000년대부터 주택 압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빚이라는 괴물이 많은 사람을 해칠 것임을 말할 때 영화 [조스]의 배경 음악을 틀어놓으면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p.129)

2010 년 봄에 [타임]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월가의 새 보안관들"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의 묘미는 바로 그들이 기사에 실으려는 세 사람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연방예금보험공사 총재 실라 베어, 증권거래위원회 위언장 메리 샤비로 그리고 나였다.
(......)
그렇더라도 우리 셋 다 이 사진 촬영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왜 월가가 좀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우리 셋 다 이 표지 기사가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비록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주제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건 바로 금융업계의 최고 경영진 중에는 여자가 거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이 저지른 사고의 설거지를 하게 된 사람은 모두 여자일까, 라는 물음이었다. (p.207-208)

그 후 몇 년동안 실라와 메리와 나는 그 주제를 여러모로 다르게 표현해서 이야기했다. 우린 항상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그 주제는 아픈 곳을 찔렀다. 어쨌든 당시 경제 잡지 [포춘]이 선정한 상위 500대 회사 리스트에 들어간 20개 시중 은행 가운데 여자 CEO는 단 한 명이었다. 딱 한 명. 난 오랫동안 수많은 금융 회의를 다녀봤지만 한 번도 여자 화장실에 줄을 서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TARP의 세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COP가 활동해온 근 2년 반동안 10명의 위원이 들어오거나 나갔다. 그 10명 중에 나만 빼고 모두 남자였다.
금융업계에는 왜 그토록 여자 경영자가 적은 것일까? 그리고 정말 왜 이 세 여자는 지금 월가의 보안관이 된 걸까? 실라와 메리에 대한 답은 내가 할 수 없지만, 내가 왜 이자리에 오게 됐는지는 생각해봤다. 그건 내가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난 한 번도 대형 금융업계의 고위층이 있는 안락한 세계에 살아보지 않았고, CEO 네 명과 짱을 맞춰서 골프를 쳐본 적도 없었으며, 클럽에서 시가를 피운 적도 없었다. (p.208-209)

몇 달이 지난 뒤 알게 됐다. 다른 대안이 없었을 때, 소비자 호보 기관을 지지하는 강력한 투사가 내부에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는 백악관이 일반인드를 도울 수 있는 개혁 방법을 지지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믿고 있었으며, 소비자 보호 기관이야말로 그걸 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봤다.
그의 이름은 버락 오바마였다. (p.247-248)

대통령은 몇 년 전 차를 한 대 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서명한 계약서의 자세한 조항을 잘 몰랐던 자신이 바보였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렇게 속았던 것에 대해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새 기관이 훌륭하긴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도 법안에서 자동차 중개인들에 대한 조항이 삭제돼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될 걸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조금 놀랐다. 난 대통령이 지금은 승리를 만끽할 순간이고 그럴 권리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비자 보호 기관을 법으로 제정한 업적은 그에게 아주 큰 승리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신이 이룰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는 정치적 승리뿐 아니라 그가 한 일의 영향을 받게 될 서민들을 잊지 않는 이 사람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p.283-284)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갔을 때 50대 중반의 한 여자가 내게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더워서 벌겋게 달아올랐고 곱슬머리는 사정없이 엉켜있있었다. 그녀는 아주 덥고 지쳐 보인 데다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멈추더니 말했다. "여기 오려고 2만일이나 걸어왔어요."
맙소사, 이 사람 말을 안 들어볼 수가 없겠군.
그러더니 그녀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내가 여기까지 걸어온 이유는 제대로 작동하는 차가 없기 때문이에요. 내게 쓸 만한 차가 없는 이유는 직장이 없기 때문이고요."
우리가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 동안 그녀는 몇 마디 말로 그녀의 인생을 묘사했다.
"나는 박사학위를 두 개나 땄다. 난 똑똑하다. 난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배웠다. 그런데도 1년 반 동안이나 실직자로 살았다. 수도 없이 이력서를 내보고, 자원봉사도 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열일곱 살 때부터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혼자 힘으로 학교도 나왔다. 그리고 항상, 언제나, 늘 열심히 일했다. (p.354-355)

"내가 여기에 온 건 희망이 없기 때문이에요. 난 오랫동안 당신에 대한 글을 읽어왔어요. 그래서 당신을 직접 보고 이 말을 하려고 온 거예요. 당신이 필요해요. 날 위해 싸워주세요. 그게 얼마나 힘들지는 상관없어요. 당신이 싸울 거라는 걸 알아야겠어요."
나는 그녀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싸울게요."(p.355)

스테파니는 여성들에게 공직에 출마하라고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내가 출마하기로 결정한다면 선거 유세 내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내가 이 선거에 뛰어들길 원했지만 이 싸움이 얼마나 힘들지에 대해서는 사탕발림으로 얼버무리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중에 한마디가 가슴에 남았다. 우리는 시도해야 합니다. 한 여자가 선거에 출마하면 다음번 여자가 훨씬 더 쉽게 출마할 수 있고 ㄱ런 식으로 여자들이 승리하게 될 것이란 말이었다. (p.377-378)

이제까지 몇 달 동안 선거 유세를 하면서 어린 여자아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엘리자베스란다. 상원의원 선거에 나왔어. 그게 바로 여자가 할 일이거든." 이제 그 말이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됐다.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모가 사진을 찍자며 부탁해고 나는 그 작은 갓난아이들을 안거나 허리를 숙여서 수줍어하는 꼬마 숙녀들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곤 했다. 10월에는 손녀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온 근사한 노부인을 만났다. 그 부인은 아주 작고 노쇠했지만 내 손을 잡고는 자안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난 죽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급히 갈 생각은 없어요. 당신이 이기는 걸 보고 갈 계획이에요." (p.438-439)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6-12-0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러리에 대해선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을 거 같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1373 시간 나실 때 33. 힐러리 vs 트럼프 에피소드 한 번 들어 보세요.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투표를 많이 안해서 트럼프에게 더 승산이 갔단 의견도 있죠. 우리나라도 좀 걱정되는 게 일전에 지인과 얘기하다 이재명 아니고 문재인이 나오면 투표를 안하겠다, 그것도 내 권리다 라고 말해서 버니 샌더스 얘길 해주기도 했죠. 미국 일이라고 귓등으로 듣는 듯 했어요~_~;;;

다락방 2016-12-05 00:32   좋아요 0 | URL
저는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민주당 여성의원이 앞으로 일을 하고자 할 때 대통령이 트럼프라면 무산되는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을 진행시키는 면에서 트럼프는 엘리자베스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것 같아서요. 그런 면에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방송은 시간날 때 들어보겠습니다.

cobomi 2016-12-05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며칠 전에 올리신 글 읽고, 대체 얼마나 설레는 기분인지 궁금해서 이 책 샀어요. 토요일에 배송된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어요ㅜㅜ 주말에 못 읽어서 아쉽고, 이 글 읽으니까 얼른 읽고 싶네요.

다락방 2016-12-05 08:12   좋아요 0 | URL
크- 코보미님께도 설레는 기분을 안겨주는 책이 되어야 할텐데요! 저는 정말이지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구석구석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느낄 수가 있어서 참 좋았어요. 빨리 배송되어서 코보미님이 읽으셔야 할텐데.. ㅜㅜ

psyche 2016-12-0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대선후 멘붕상태에서 가족들이 모여 다음번 대통령에 대한 (아직 트럼프는 시작도 안했는데 ㅋ)이야기를 하게되었어요. 그때 제가 엘리자베스 워렌을 꼽았었죠.
이번 힐러리의 패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다는게 제 생각이에요. 흑인에 이어 여자가! 하는 백인 남성들이 있었고 또 여자이기 때문에 힐러리가 더 박한 평가를 받은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있습니다만) 하지만 트럼프가 워낙 개판을 칠게 뻔하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혹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저혼자 기대해봅니다. 이 책 저도 꼭 읽어보고싶네요. 두껍다고 하시니 영어로 시작할 엄두가 살짝 안나고 한국에 누가 다녀오기를 기다려봐야겠어요.

다락방 2016-12-05 12:03   좋아요 0 | URL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을 읽는데 너무 신나는 거에요! 똑똑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게 그대로 다 드러나더라고요. 사실 자서전은 자뻑 되기가 쉬운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정말로 솔직담백한 글이랄까요. 트럼프 보다야 엘리자베스 워런이 이천배쯤 낫지 않을까요? 제가 위의 댓글에도 쓴것처럼, 엘리자베스와 힐러리가 만나면 시너지가 있을것 같았어요. 반면 트럼프가 대통령인 곳에서 엘리자베스가 어떤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지... 하아- 오바마는 엘리자베스의 지원군이었는데, 트럼프는 지원군에 1도 못미치고 오히려 방해세력이 될 것 같아요 ㅠㅠ

이 책은 정말 강추합니다, 꼭 읽어보세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요!!

종이달 2022-03-1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떠날 테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지금 아침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가 있다는 사실인 것처럼. (p.185)



이 책, 『여름의 끝』의 원제는 『LOVE AND SUMMER』이다. 번역된 제목은 원제와 좀 다르지만, 그러나 그것이 품고 있는 속뜻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사랑이 언제나 여름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사랑이야말로 여름에 제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여름과 사랑을 떠올리노라면, 가장 근사하면서 끝이 보이는 것이라는 느낌이 확- 왔다. 그러니 여름의 끝, 이라는 제목도 적절하리라. 만약 이 책의 제목이 가을의 끝이었다거나, SUMMER 대신 WINTER 혹은 SPRING 이 들어갔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진 않았을 것 같다.

소설책을 대할 때, 첫 책장을 넘기면서, 나의 경우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 나갈까, 이 책은 분명 사랑 이야기인데, 여기선 누가 누구와 사랑을 하는걸까 궁금해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그러다가 이 책의 엘리가 이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는 걸 짐작했을 때, 나는 책장을 덮고 말았다. 

세상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여자, 홀아비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갔다가 그 남자와 결혼한 여자, 단조로운 일상과 평안한 삶을 살고 있던 여자, 이 젊은 여자가 이 뜨거운 여름의 사랑을 대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이 새로이 빠질 사랑, 처음 빠지게 될 사랑, 유일하게 빠진 사랑이 떠날 것을 알고 있다면, 이 여자 엘리가 대체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나는 엘리가 들어가버린 그 사랑의 끝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종국엔 펑펑 울어버리는 게 아닐까, 책장을 덮고 한참을 망설였지만, 망설임 끝에는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 다시 책을 펼쳤다.


그림을 그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플로리언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난 뒤, 사진에 취미를 갖게 된다. 그런 그가 이웃 마을로 사진을 찍으러 가고, 거기서 농부의 아내인 엘리를 만난다. 플로리언에게는 잊지 못하는, 계속 기억 속에 함께 하는, 못 다 이룬 사랑의 여자가 있는데, 그러면서 엘리에게 다가간다. 엘리는, 자신과 남편의 부부생활이 평안했고 또 익숙했지만, 그래서 뭔가 이 낯선 기운에 저항하려고 하지만, 속절없이 플로리언에게 빠져든다. 매일 그와의 비밀 만남을 조용히 유지하다가, 그로부터 집을 팔고 떠날 것이란 말을 듣는다. 아, 플로리언, 진작 말했어야지. 매일 '오늘은 말해야지' 하다가도 말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서 엘리의 감정을 크게, 더 크게 만들어놓고, 이제와서 나는 떠날 거에요, 다른 나라로 갈겁니다, 라고 말을 해버리면, 엘리한테 남아서 뭘 어쩌라는건지... 


이 수줍고 조용한 여자가, 그러나 나보다 낫다. 그녀는 플로리언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이런 제안 혹은 부탁-떠나지 말아요-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입밖에 냈을 때, '안돼'라는 부정의 대답을 들을 확률이 큰데, 그 말을 듣고 대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차마 내가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엘리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떠난다고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다. 여자는, 남자의 집이 팔리고 다른 나라로 가는 그 일들이, 어딘가 흐트러지고 잘못되기를 바랐다. 어쩌면 그의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엘리는 속절없이 이제, 이별을 받아 들여야 한다. 

물론 엘리는, 같이 떠나고 싶었다. 같이 떠나기 위해서 새로 캐리어도 장만 했었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 엘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눈을 뜨면 이제 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녀의 곁에는 늘 일상을 함께 해오던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짧았던 여름을 자꾸 떠올릴텐데, 겨울에도 여름은 떠오를 것이고, 다시 다가오는 여름에도 역시 지난 여름이 떠오를 것이다. 플로리언은 밤에 떠나서, 낮을 지나, 그리고 다른 시간을 지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를텐데, 엘리는 이곳에서, 마치 그가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가 존재했음이 자신에게 너무나 선명한데, 그런데 마치 그렇지 않았던것처럼 ....


엘리가 얼마나 아플지 알아서, 그래도 그렇게 사랑을 해보는 게 나았다고는, 차마 말해줄 수가 없다. 평소의 내 신념이 그렇다해도. 그녀에게 남은 건 이제, 다음 여름을 무사히 보내는 것, 그 다음 여름도, 그 다음 여름도.... 그리고 가슴 속엔 계속 그 여름을 간직하는 것, 그것 뿐이다. 


엘리,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이 판단해줄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 편이 더 나았던 걸수도 있어요. 그게 여름을 여름으로 남겨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엘리 딜러핸에게는 이게 끝이로군, 코널티 양은 혼자 중얼거렸다. 모두 끝난 것이다. (p.288)







"플로리언 킬데리." 그가 말했다. "기억하세요?"
그는 구둣방 옆 폐업한 가게 창문 앞에 자전거를 두고 서 있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가 엘리에게 미소 지었다. "기억 못하시는군요." 플로리언이 말했다.
엘리는 그때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처럼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고 도저히 제 것 같지 않은 비뚤어지고 생소한 생각들이 가득 찼다. 물론 기억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가 궁금했고,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궁금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가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을 때 누구인지 바로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그가 제안했다.
"아뇨." 엘리의 대답은 의도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p.111)

그는 떠날 테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지금 아침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가 있다는 사실인 것처럼. 눈을 뜨면 분홍색으로 칠한 벽과 빈 벽난로 위의 성화, 그리고 창가에 놓아둔 자신의 옷이 지금 처럼 보일 것이다. 그는 사라질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가 떠났다는 사실은 부엌에서도, 마당에서도,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 테고, 레이번 스토브에 넣을 무연탄을 부엌으로 옮길 때도, 교유기를 끓일 때도, 암탁에게 모이를 줄 때나 토탄을 쌓을 때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들판에서도, 달걀을 들고 사제관 문이 열리길 기다릴 때도, 코널티 양이 동전을 세는 동안에도, 보천기를 낀 남자가 단열용 전기제품 보호구나 소젖 패드 등을 찾을 때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 옆에 누워 있을 때도,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빵을 자를 때도, 올드타임 춤곡이 흘러나올 때도.
"떠나고 싶어요?" 엘리가 물었다.
"이제 나한테 아일랜드에 남은 게 없어요."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p.185-186)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을 놓기가 힘들어지죠. 그래서 더더욱 놓아야 하고요." (p.205)

"저 사람은 누구지?"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가자 딜러핸이 물었다. 엘리는 플로리언 킬데리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고, 지금 리스퀸 저택 뒤편의 관리인 주택으로, 두 사람이 자주 만나던 장소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가 자신이 남긴 쪽지를 발견할 거라고, 그걸 찾으러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누군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p.211)

매매가 성사되지 않으면 엘리는 고해성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속죄와 순종을 결심했었다. 일생 동안 하루하루를 순종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결심했었다.
"다음 달 17일에 넘겨요." 그가 말했다.
한세월 걸릴 거다, 그는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서류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니까. 아마 10월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엘리는 그가 아직 이곳에 있는 동안 앙상해질 가을 나무와 엷은 11월의 안개를 상상했었다. 9월 17일까지는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p.216-217)

하는 말마다 내뱉는 순간 실수처럼 들렸다. 플로리언은 자신이 스스로 창조한 포식자 세계이ㅡ 일원이 된 것 같다고, 그런 무자비한 포식자의 한 변종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것을 취했고, 그렇게 다시 한 번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유령을 쫓아내려 했다. 비록 다정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애정을 느끼긴 했지만,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그녀에게 지옥을 만들어주고 말았다. (p.219)

"안 먹어도 돼요." 엘리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자른 빵을 그가 잘랐기 때문에 먹었고, 그가 따른 차도 마셨다. (p.221)

코널티 양이 그녀에게 인사했음이 분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으로 보아 무슨 말잉ㄴ가를 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찌된 노릇인지 알 수 없지만, 코널티 양이 갑자기 그녀의 귀에 대고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속삭였다. (p.261)

엘리가 집 밖으로 나간 것은 단지 암탉에게 모이를 주고 토탄 창고 방수포 밑에서 꾸러미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포장지를 벗겨냈고, 강가 들판 근처의 담에서 주운 돌을 여행용 가방에 채운 뒤 가방이 탁한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p.276)

그녀가 이 집에 온 뒤로 모든 게 더 편해졌다, 그날 저녁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와 결혼한 뒤로 모든 게 더 나아졌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p.281)

그녀는 플로리언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며 제대로 보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왜 왔는지 다시 묻자 그는 기다렸다고,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했다고 대답했다.
"당신이 준 사랑은 잊지 못할 거예요." 그가 말했다. "날 미워하지 마요, 엘리. 제발 날 미워하지 마요." (p.283)


이기적인 새끼네..

"어떤 사람들은 혼자가 되려고 달아나요." 그가 말했다. 혼자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p.283)

"당신을 어떻게 미워하겠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p.284)


미워해, 그냥.

그럼 엘리 딜러핸에게는 이게 끝이로군, 코널티 양은 혼자 중얼거렸다. 모두 끝난 것이다. (p.288)

코널티 양은 침대 맡의 등을 끄고 몇 분 뒤 눈을 감았지만 잠이 들지는 않았다. 큰 응접실 카펫 위에서 아기가 그녀를 향해 기어왔다. 그곳에는 나무블록도 있었고 구석 벽장에는 인형이나 장난감 병정도 보관되어 있으며 헝겊으로 만든 책과 숫자놀이판도 있었다. 엘리 딜러핸 인생의 은밀한 사랑이 큰 응접실을 뒤덮었고, 나중에는 코널티 양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스냅과 루도 카드게임이나 핀볼게임 등도 나타났다.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p.289)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6-11-2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친구가 보내준 영상에서는 스트레스에 스쿼트가 제격이란다. 자, 스쿼트를 하러 가자꾸나.

blanca 2016-11-2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엘리의 앞으로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네요.. 저도 스쿼트 해야 되는데...

다락방 2016-11-25 17:4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엘리가 선택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을 거에요. 만약 도피를 선택했다해도 온전히 행복했을지 모를 일이니까요. 그 선택이 이해가 되면서 또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그 결과에 대한 것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넘치면 넘치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너무 아파요, 블랑카님.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 31편의 명작 소설이 말하는 사랑과 연애의 모든 것
잭 머니건.모라 켈리 지음, 최민우 옮김 / 오브제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애지침서를 읽는 것은 매우 따분한 일이고, 그것이 뭐 내게 별로 쓸모도 없지만, '연애에 관한 수다'라면 얘기가 다르다. 여자사람을 만나든 남자사람을 만나든, 연애에 관해 수다를 떠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는 일! 원제는 『MUCH ADO ABOUT LOVING』인데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이라는 다소 부끄러운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연애지침서인가?? 했다가, 연애에 관한 수다로구나, 싶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발랄한 '모라 켈리'라는 여자사람과 굉장히 감성적인 '잭 머니건'이란 남자사람이 이 책의 저자들인데, 아아,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잭 머니건'한테 홀랑 반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잘생긴 남자보다는 똑똑한 남자한테 끌리는데, 여기서 똑똑이란 아이큐 198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생각할 줄 아는 걸 의미한다. 잭 머니건은, 그런 남자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하는 사람! 그는 연애에 관련된 이 글을 쓰면서, 그러나 자신이 아직 싱글임을 밝히고 있는데, 아아, 내가 달려가서 연애하자고 물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또, 좋아하면 또, 대시를 어마무시하게 하는 스타일이거든. 적극적 애정공세로 결국 연애에 이르게 만드노니, 잭 머니건이라면 나의 적극적 구애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그간 나의 적극적 구애를 받았던 애인을 돌이켜보면, 정말 잘생김과는 관계가 1도 없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 매력이 푱푱 터졌었는데, 잭 머니건은 그런 남자인 것 같다. 게다가 스윗트하고 따뜻할 것 같아.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톨스토이를 읽으면서도 그 안의 인물들이 되고 상황을 이해하려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게다가!! 내가 진짜 가장 반했던 건, 그의 '바람' 혹은 '불륜'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는데, 얼마전에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에서 '바람기는 남자의 본능 같은 것'이라는 구절을 읽고 대단히 빡이 쳤던 나로서는, 미야모토 테루에게 잭 머니건하고 얘기 좀 해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자, 보자.



남자들은 바람을 피우게 마련이야.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안 그래? 우리는 여전히 직립원인과 더 비슷한지라, 치마만 두르고 있으면 다 쫓아가라는 생물학적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전형적인 논리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책임 회피다. (p.221)



얼쑤~ 말 잘한다. 잭 머니건은 남자사람이다. 그는, 바람을 피우는 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도 안되는 책임회피라 일갈한다. 크-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이 바람을 다룬 꼭지에서 그의 모든 말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죄다 밑줄 긋고 싶어졌달까.



설사 사회생물학자들이 주장하듯, 남자들이 여전히 몸에 생가죽을 걸치고 있던 시절에는 연애관계 같은 것도 없었고 종의 생존이 가능한 한 많은 여성 호미니드 들을 임신시키는 데 달려 있던 게 사실이라 쳐도, 그게 뭐 어쨌다고. 똑같은 얘기로, 내가 오늘 버팔로 버거를 생으로 먹는 대신 석쇠에 구워 먹는 쪽을 택하는 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더 즐겁게 식사를 한다는 건, 교양 있는 남자라면 선사 시대적 충동에 그냥 굴복할 수는 없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우리는 섹스가 그저 유전 물질을 전달하기 위한 행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하는 지점까지 진화해 온 것이 아니었나?

오해 마시라. 나는 일부일처제로 살아가는 게 목탄 그릴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 훨신 더 어렵다는 사실쯤 잘 알고 있다. 고백건대 나 또한 전형적인 남자에다 얄팍한 욕망의 소유자다. 나도 눈이 있고, 가끔은 뱃속이 부르르 떨리며, 내 자아의 일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여자나 저 여자랑 자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어쩔 수 없이 품는다. 우린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우리중 문명화된 인간들은 가능한 한 자기 자신에게 이런 점에 대한 면역을 걸어둔다. (p.221-222)



그러니까 설사 바람을 피우는 게 본능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진화해왔잖아?



물론, 잭이, 단순히 진화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말해 뭐해. 그는, 그 이면을 보고, 알고 있다.



우리는 남자로서 자기 자신이 되길 원하지만, 그 일에 타인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깨닫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파트너와 함께,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만 쌓을 수 있는 편안함, 친밀함, 신뢰, 그리고 역사를 누리며 인생을 보내길 꿈꾼다. 하지만 그 목록에는 '자기self'라는 이득이 빠져 있다. 그리고 그게 모든 일의 열쇠다.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유혹하고 행위하고 만들어가고 얻어가면서 자아를 획득한다고 믿는데, 많은 남자들은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온갖 시련과 승리를 겪는 와중에 나누고 소통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더욱 깊고 의미 있는 자아를 결코 경험하지 못한다. (p.223)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게 우선이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이 꽤 매력적이고, 그 사람에게 홱 잡아 채인 느낌이 드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품은 환상이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멋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새로 만나는 그 사람을 안 지 오래되었나? 좋다. 그건 좀 힘든 케이스다. 하지만 왜 이제 와서? 어쩌면 그건 당신이 현재 맺고 있는 관계에서 섹스가 침체돼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그게 당신 잘못일까, 아니면 파트너의 잘못일까? 게으름 때문일까, 아니면 더 깊은 문제가 있는 걸까? 이런 점들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당신은 아마도 그저 육체적 쾌락이 그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당신의 현재 파트너와 함께 성생활을 되살려보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파트너와의 성생활은 괜찮은데도 유혹이 주는 스릴이 그리울 수도 있다. 그건 당신이 여전히 유혹이라는 것을 당신의 자아를 떠받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고, 따라서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당신 생각이 필요한 만큼 믿음직스럽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도 당신은 자신이 뭔가 필요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 건지, 혹은 파트너가 당신이 필요한 걸 해주지 않고 있는 건지 물어야 한다. 아니면 둘 다 물어야 하거나. 누군가를 유혹할 필요를 느낀다는 건, 당신의 삶이 다른 영역에서 자아에 관한 필요한 만큼의 만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신호가 돼야 한다. 그러니 당신이 사랑하는 파트너를 속이기 전에,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p.225-226)



자, 잭 머니건의 가치 있는 말은 바로 이제 나온다.



부정은 증상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바람을 피우고자 하는 충동이 결국 당신을 나쁜 관계에서 빼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는 건 그 관계가 애초에 고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점이다. 한 번에 한 사람만 만나는 원칙은, 현재 직면한 어려움에 맞섬으로써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사실 그것만이 제대로 된 방법이다. (p.226-227)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남은 평생 오직 한 사람하고만 섹스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벅찬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은 과연 섹스가 뭘 뜻하는 건지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장기간의 성적 행복을 누리는 열쇠는 섹스를 유혹, 에고, 힘이라는 상징적 감각보다는 쾌락, 느낌, 친밀함의 표현에 더 많이 연관짓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최고의 섹스는 당신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이고, 또 그것은 점점 더 좋아지게 돼 있다. 나는 섹스를 하는 데는 정말 많은 방법이 있고, 당신이 가끔은 지금의 섹스가 판에 박힌 것 가다고 생각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파트너와 함께 그동안의 습관들에서 벗어나고, 편안함을 느끼던 지점에서 떠나고,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도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번 더욱 충만한 성생활에 도전함으로써 당신은 더 나은 사람, 더 창조적이고, 더욱 자신을 잘 표현하고, 잘 인식하는 사람이 된다. 오직 한 사람과 섹스하는 건 힘든 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가장 알찬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p.227-228)



와- 외국으로 성매매 원정을 떠나기도 하고, 접대로 성매매하는 것을 당연한 문화인듯 얘기하고, 배우자가 있음에도 회사및 거래처 여직원들을 성희롱하고 폭행하는 게 너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한 사람과 지속된 관계 및 섹스에 관한 가치를 알고 있고 이렇듯 말하는 남자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당연한건데, 이건 너무 당연한 건데, 이런 남자가 너무 드물지 않나. 물론 나는 많은 남자들이 이렇게 제대로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발언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카톡에서 성희롱 대화가 벌어지고 있을 때,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신의 생각이 달라도 말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고, 그걸 또 자신의 변명이나 핑계로 삼는데, 이렇게 어딘가에서 어떤 남자들은 '제대로 된 건 한 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야' 라고 힘차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한 생각을 가진 남자의 글을 본다는 것은 오랜만이다. 반갑고 좋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거침없이 발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단톡방에서도 '니네 그렇게 말하는 거 잘못된거야'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안되는 건 아닐까' 라고, 멍청한 발언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여자들이 만나야 하는 남자, 여자들이 만날 가치를 느끼는 남자는, 여자들의 가치를 후려치고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 충실하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또 한 명의 저자 '모라'는 잭의 이 글을 읽고 이렇게 자신의 글을 덧붙였다.



얼마 전, 나는 잭이 여기서 계속 던지는 질문을 내가 데이트하던 남자에게 해봤다. 인간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바람을 피우도록 프로그램 돼 있나요? 그의 대답은 이랬다. "우연히 마주치는 여자 중 5~10% 정도와는 진짜로 자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진화한 인간으로서 저는 그 욕망을 통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쪽을 택한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나와 하는 섹스보다 더 원하는 건 당신과의 관계이고, 당신과 맺는 신뢰거든요. 내가 만약 다른 사람과 자면 당신은 상처받고 즉시 날 차버리겠죠. 그러니 충실한 남자가 되는 편이 훨씬 쉬워요." (p.229)



아, 건강한 남자다. 모라는, 건강한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구나.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건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생기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건강한 게 아닌가. 



잭 머니건은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해서 톨스토이, 프루스트, 플로베르, 버지니아 울프, 주노 디아스 등 많은 소설 책들을 읽었다. 그가 지금처럼 건강한 사고방식을 갖고 건강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된 것은, 그가 그동안 읽어온 소설들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설을 읽는 남자라니, 게다가 거기에서 이렇게 연애에 관해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남자라니. 잭 머니건 은 정말 멋지다. 


너무 길어서 인용문은 그만 넣고 싶은데, 이 멋진 잭 머니건은, 완벽한 관계에 대해서도 보란듯이 글을 쓴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읽고 완벽한 결혼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가 그 책에서 인용한 문장이 글쎄, 이런 문장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훌륭한 여자야. 그런 고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같은 사람이지. 살아갈수록 점점 더 좋아져. 할멈만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p.288, 황폐한 집, 재인용)



아, 이런 문장을 좋다고 인용하는 사람이라니. 진짜 온몸이 짜릿짜릿해지지 않나. 책의 본문에서는 싱글임을 밝히던데, 책날개를 보면 '여자친구가 있다'고 되어있다. 그런 그가 사귀는 여자라면 또 얼마나 건강한 여자일까. 크- 건강한 상대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 아닌가. 그러나 건강한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부터 건강해야 한다. 살아갈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는 문장을 인용하는 남자라니, 참 기쁘기 짝이 없다. 이런 남자를 보는 것은 너무 즐겁다!!









관계란, 좋은 부분이 얼마나 좋은가를 근거로 판단하면 안 돼. 긴 안목으로 볼 때 나쁜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계를 오래 지속하게 하는 거야. (p.41, 잭)

길고 풍요로운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카리스마 넘치는 난봉꾼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늘 부정해 왔다. 하지만 그런 전통이 존재한다 해서 우리가 현실을 부정하려는 본능에 항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불만족스럽거나 비참한 대접을 받은 경우라면, 그 푸대접 자체보다는 우리 자신의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남자들이 우릴 좌절시킨 이유를 이리저리 꼬아 가며 억지로 만들어내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놈이 당신을 바람맞혔다면, 그의 행동이 어째서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경솔하고, 실망스럽고, 부적절하며 노골적으로 무례한게 아닌지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내느라 그에게 호의를 베풀지 마라. 호의는 당신 자신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에게 예의 바르고 조용히 물어라. 왜 전화한다고 해놓고선 전화하지 않았는지, 답메일을 보내는 데 어째서 거의 일주일이나 걸렸는지, 저번 휴일 파티 때 당신이 옆에 서 있는데도 왜 다른 여자애 번호를 땄는지. 마찬가지로 남자들을 그저 성gender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짜 로 답이 없다고 여기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p.63-64, 모라)

물론 남성다움이라는 것은 데이트 능력이라는 컵케이크 위에 뿌리는 설탕장식 같은 것이다. 데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따뜻한 마음, 소통하려는 욕망과 능력, 신중함과 공감 능력,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진실한 욕구다. 이런 자질들은 마초들에게서는 드문 것이고-까놓고 말하자면 남자 전체에서 드물다-, 아마도 마초들은 대개 그들이 그런 자질들을 소유하거나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그럴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내유외강의 미덕을 갖춘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 꽉 잡아라. (p.121-122, 잭)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6-11-20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화 속에서 인간은 경험의 유용성, 짜릿함을 좋은 것, 이익이라고 생각해 온 거 같아요. 종족 보존이라는 DNA 성격과 성적 자유도 그 연장선이 된 거 같고요. ˝자아˝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개인의 성적 만족도 더 중요시되었고 개인화되었다고 하겠죠. 요즘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도 저는 개인의 행복 추구 권리가 커지면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속궁합 이야기도 있지만, 관계에서 두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하느냐 문제겠죠. 사람은 정말 다종다양해서 잘 맞춰 함께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인연을 만난다는 건 확실히 행운.

다락방 2016-11-21 08: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갈마님. 세상에 진짜 나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행운인 것 같아요. 저는 그간의 경험들을 다 돌이켜보고 저에 대한 판단을 내렸어요. 저는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이란 걸요. 저는 이기적이라서 남에게 잘 맞춰주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와 다르면 걸리적거리고요. 이런 사람은 누구랑 짝이 되느니 그냥 혼자 사는 게 장땡인 것 같아요.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혼자 사는 게 나은 사람이 있는것 같고, 저는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되렵니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