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데이브의 일화는 그와 그의 친구 다섯 명이 길거리에 서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매력적인 여성이 그들 앞을 지나가고 그들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중 한 명(편의상 '밉상'이라고 부르자.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나불거리는 그런 타입 있지 않은가)이 그녀를 향해 외친다. "거기 언니, 완전 섹시한데! 내가 죽여줄까?" 이런 경우 대부분 여성들은 밉상의 부적절한 발언을 익숙한 듯 무시하고 지나가곤 했는데 그날만은 달랐다. 그 여성이 뒤돌아보더니 제대로 쏘아붙인 것이다. 

그녀는 욕을 섞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로 밉상을 따끔하게 혼내주었다. 그녀의 말발 센 공격을 받고 나자 데이브와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우우" 하고 외쳤다. 나는 데이브에게 이런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 데이브는 친구들이 여자에게 굴욕당한 밉상을 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씨름에서 여자에게 지는 것은 남자에게 지는 것보다 더욱 치욕스러운 일이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쪽팔리게 여자에게 당한 것이었고 맨박스에 따르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중략)

.

이 여성은 밉상의 남자다움을 위협하며 그를 맨박스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절망적이 되어 화가 치민 그는 이윽고 욕을 하며 여성을 때릴 듯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뛰쫓아 가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데이브 말로는 결국 자신과 나머지 친구들이 밉상을 붙잡아서 제지해야 했다고 한다. 그가 계속해서 여성을 위협하고 비인간적인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이내 여성이 물러서자 밉상은 그제서야 남자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p.120-121)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인 동생과 함께 집근처의 독서실에 다녔었다. 밤늦게까지 독서실에 있다가 나오면 독서실 문 앞에서 아빠가 우리를 집에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밤늦게 독서실에서 나왔는데 우리가 전보다 약간 빨리 나왔던건지, 아빠는 채 독서실 문앞까지 오시지 못한 채, 저기 저 횡단보도 앞으로 다가서고 계셨다. 우린 아빠를 발견했고 아빠도 우리를 보셨다. 횡단보도 앞에 도착해 신호가 바뀌면 아빠가 우리 쪽으로 오거나 혹은 우리가 아빠 쪽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우리도 그렇게 횡단보도 앞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맞은편에서 남자 아이들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도 아마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을 갔다 왔는가보다. 그들은 네명 혹은 다섯명이었는데, 그들 중에 한 명이 나와 내 여동생 옆을 지나면서 우리에게 뭐라고 했다. 그것이 나 혹은 여동생 혹은 둘다의 외모 비하였는지 성적 대상화에 관련된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완전 화가 나서 그 놈한테 욕을 했다. 개새끼야 닥치라고 했던가, 뭐 그런 식으로 소리치며 욕을 했던 거다. 



그 무리는 우리를 지나쳐가고 있었고, 그 학생이 우리에게 비하 발언을 하고 내가 욕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이는 한걸음 두 걸음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 무리 아이들이 우리를 욕한 그 학생에게 낄낄대며 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낄낄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화가 난채로 걸었고 그렇게 점점 그들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다다다닥- 하고 뛰면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나한테 욕을 먹었던 놈이 우리를 향해 주먹진 손을 위로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아아, 이러다 얻어 터지겠구나, 생각하고 겁먹은 나는, 금세 저 횡단보도 앞에 우리 아빠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크게 "아빠!" 하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우리 아빠를 가리켰다. 당연히 뛰어오던 놈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던 방향을 보았고, 거기엔 우리 아빠가 이 새끼야 죽고싶냐며 돌을 들고 서 계셨다. 그러나 신호가 아직 초록색으로 바뀌지 않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건지, 이 놈은 멈추지 않고 우리 앞까지 뛰어왔고, 마침 독서실 옆 순댓국집 사장님이 밖에 나와 식칼을 갈고 계시다가 그 칼을 들고는 우리쪽을 향해 뛰셨다.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하고. 이 사장님을 본 녀석은 잽싸게 뒤를 돌아 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히(?!) 그 놈에게 맞지 않은 채로 무사히 아빠를 만났고, 아빠는 뛰어와서 순댓국 사장님과 잠깐 이야길 나누셨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그리고 집에 돌아가고 나서도, 나는 이 일로 아빠 엄마에게 엄청 혼나야 했다. 미쳤냐고, 왜 거기서 남자애들한테 욕을 하냐고, 겁도 없이 왜그러느냐고, 너 그 때 아빠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냐, 너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 등등...아 진짜 많이 혼났다......



중학교 때도 그랬어 ㅠㅠ 나를 포함한 여자애들 세 명이 하교중이었는데, 저 쪽에서 걸어오던 우리 또래의 남학생 세 명중 한 명이 우리에게 '기집애야 조용히들 걸어!' 라고 했던가, 뭐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해서 내가 또 나도 모르게 '너나 조용히해 이새끼야' 이래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해놓고 나서 맞을까봐 졸 무서워했더랬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나여.. 맞을까봐 무서워하면서 왜 버럭버럭 맞서는가... Orz




고등학교 시절 밤길에 마주친 그 남학생은 친구들 앞에서 쪽팔림을 느꼈을 것이다. 여자애가 자기에게 욕을 했고, 친구들 앞에서 그 욕을 먹어버렸으니.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친구들 앞에서 쪽팔림이 먼저였겠지. 그 쪽팔림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에 세다는 걸 다시 보여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나를 때리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 나를 죽도록 팼을지, 한 대 때리고 도망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들 앞에서 나를 때려야만 자신의 기가 다시 산다고 느꼈을 것이다. 애초에 놀리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말이다. 아아, 오만년만에 내 고딩시절 생각났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있는듯 없는듯한 아이였는데,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도 아닌, 그냥 구석에 쭈그러진 여고생1 이런 거였는데, 그런 아이가 저런 상황에서는 개새끼, 이새끼 이러면서 욕을 했어..... 난...뭐냐? 


나는 내가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묻힌 과거를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니 '싸우자!' 하는 그런 사람이었는가보다. 나는 나를 잘 몰랐던건가...




이 책의 저자 '토니 포터'는 남자들이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등등)이 남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남성이라고 말한다. 선한 남성들이 거기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폭력을 가하는 남성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남자가 남자에게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뀌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일단 남자들이 여자들 말은 무시하면서 남자들의 말엔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래서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이 당연한 일을 생각하고 행하는 것에 대해서 어마어마하게 감사한 마음도 든다. 이런 식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남자가 적은데 토니 포터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남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여기엔 한계가 있구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할 때, 그걸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는 이유가 '네 딸이 다른 남자들로부터 그런 대상이 되어 그런 말을 듣는다면 어떨것 같냐?' 이니까. 나는 여기서 한계를 느끼고 씁쓸해지는데, 남성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면 안되는 이유에 '네 딸이, 네 여동생이, 네 누나가, 네 어머니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를 전제해야 하는걸까. 그걸 인간이 인간에게 그러면 안되는 일로는 이해하기 힘든걸까. 실제로 이렇게 물었을 때 많은 남성들이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깨닫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이 전제는(우리가 성적대상화 하는 대상이 우리의 딸, 애인일 수도 있다) 습관처럼 누군가를 성적대상화 할 때 번번이 떠오를까? 이건 얼마나 유효할까. 게다가 '나는 딸 안낳을건데?' 라는 식으로 자기가 대상화 하는 대상과 분리시켜 버리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은 거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될 짓, 지켜야 할 기본 선, 이런 걸로 이해하라고 하면 내가 너무 이상적인걸까?




수천 명의 남성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성공한 적도 실패한 적도 있었다. 만약 남성들 중 하나가 내가 보는 앞에서 여성을 "XX년"으로 지칭하면 나는 대개 이런 식으로 대응하곤 한다.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알겠스니다만 제가 한 가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우선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를 잠시 생각해볼까요? 만약 선생님께서 아는 다른 여성분들이 그 단어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만약 따님이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그 단어를 들었다면 어떨까요?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p.152-153)



게다가 이 일을 '나의 딸이나 애인이 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라고 하면 우선적으로는 '나와 관계된 사람에게 일어나면 기분 나쁘다'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결국은 '그런 소리 안듣게 잘 하고 다녀' 라고 여성들에게 또 책임을 미루지 않을까? 나는 아무리 생가해도 그럴 것 같은데? 야, 나는 니가 그런 말 듣는 거 싫어, 성적 대상화 되는 거 싫으니까 옷 야하게 입지 말고 화장 진하게 하지 말고 밤에 다니지 말고 기타등등...으로 되어버리지 않을까? 나는 사실 많은 남자들이 이미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걸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더 조심하고 다니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게 어떻게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그래서는 안된다, 를 주입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는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고 다닐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누군가 나를 대상화 시켜서는 안된다 그 말이다. 너도 나도 똑같은 인간이다, 이걸 인지하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네 주변의 누군가가~ '하고 대입시키는 건 답이 아닌 것 같아...




남자들에게 주어진 성역할, 남자들은 강해야 하고 울지 말아야 하고 감정 표현을 느끼는대로 다 하면 안되고 등등 '강요된 남자다움'을 맨박스라고 하는데, 이것부터 일단 없애버리는 것, 이 맨박스로부터 나오는 것이 가장 우선된 순서이다. 남자들은 이래야 한다~ 를 말하는 순간 자연스레 '여자들은~ '도 생겨버리니까. 게다가 남자들에게 강인함을, 냉정함을, 객관적임을 주입하는 순간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와 동시에 '그래서 열등하다'가 되어버리니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여자들은 남자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약하니 우리를 보호해줘, 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너네 폭력을 쓰지마!'를 말하는 거지. 토니 포터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사회에서 차별을 없애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는 길은, 남자의 사회화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고. 이런 사람이 알고 있고 또 여러 사람에게 얘기하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백 명이 듣는다고 백 명이 다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그 중의 일부는 그동안 자신이 '선한 남자로서' 폭력이 행해지는 데 어떻게 도왔는지 인지할 것이고 또 잘못을 뉘우칠 것이며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 사람이 점차로 많아지면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라고 있다, 나도. 




여성들은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성이 폭력을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성들은 해법의 일부분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 된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존중한다면 여성의 안전은 자연히 뒤따라 올 것이고 여성 폭력도 감소할 것이다. 먼 훗날엔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맨박스가 언제까지 선한 남성들의 핑계가 되어 줄 수는 없다. (p.174-175)





폭력적인 남성은 우리 같은 평범한 남성들로부터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다. 남자들이 ‘나쁜 놈‘들을 용서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간섭하지 않고 자기 일에나 신경 쓰는 것이 이에 속한다. 남자들의 남의 가정 폭력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부하는 저변에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그 사람의 아내 혹은 여자 친구)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남성들이 침묵을 지킬 때 그 침묵은 폭력적인 남성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는 남성들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방해물로 작용한다. (p.25)

<빌의 이야기> 요새 몇몇 여자들은 남자들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남자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도 합니다. 여동생이 이런 소리를 자주 하는데 저는 이게 결혼할 남자가 없는 걸 정당화하려는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여자가 남자 따위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하는 걸 증오합니다. 그런 행동이 남자들의 기를 죽이기 때문이죠.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이 "난 남자가 필요 없어요. 돈도 있고 집도 있고 좋은 차도 뽑았어요.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다고요" 라고 말하는 건 남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에요. 저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이런 성향을 이해하고 일부러 자존심을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리 하기 싫지만, 저는 여자들이 여성 폭력 문제를 스스로 초래했다고 봅니다. 누군가를 때리는 게 괜찮다는 게 아니라(저야 폭력은 당연히 반대하지만), 여자들도 자기들이 폭력 문제를 발생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좀 알아야 합니다. (p.88-89)

빌은 스스로를 ‘꼰대‘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성의 손으로 자행되는 여성 폭력을 여성들 스스로가 초래한 면이 있다는 주장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서도 종종 들려온다. 여성이라면 남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남자의 자존심이 상처 입지 않도록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는 발상은 남성들이 매우 자주 언급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집단이 힘없는 피해 집단에 강압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강요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성들이 강압적인 처사에 반기를 들거나 평등을 주장한다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반작용(폭력)은 스스로 불러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시각을 반영한다.
그리고 빌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데 바로 여성들이 남자에 대한 반발로 동성애를 선택한다는 인식이다. (p,89)

"남자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뭐냐면요. 여자에 대한 인식과 여자를 대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껏 몸에 깊게 밴 인식을 재정립해야 하는 거죠. 전 남자들이 어떤 이슈에서건 여자들의 의견과 생각, 제안, 충고를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남성만큼 존중할 때 우리는 남자가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성차별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이 자신을 ‘덜 남자답게‘ 느끼는 게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순히 기분이 나쁘다, 신경질이 난다 또는 여자들에게 화가 난다, 이렇게 반응하죠. 맨박스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반응해도 된다고 가르치거든요." (게리의 이야기중 p.123-124)

"성폭행의 가해자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정답은 당연히 남성이었다. "만약에 여학생들을 구내식당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실어 나르는 대신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봐야 하죠?" 회의에 참석한 여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동의를 표했다.
우리의 가히 ‘혁명적인‘ 대응책은 일부 남성 교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심지어 한 남성은 우리가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젠더 프로파일링‘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그렇다면 캠퍼스 내에서 자행되는 성폭력도 엄연히 젠더 프로파일링임을 상기키셨다. 캠퍼스의 모든 여성들에게 셔틀 차량을 이용할 것을 촉구하는 것 또한 젠더 프로파일링일 터였다. (p,136)

우리는 ‘진정한 남자다움은 최대한 여자드레게 관심을 두지 않고 여성들의 경험과 거리를 두는 것‘이라는 믿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해보고, 그 세상 속에서 다른 남성들이 자신의 딸을 어떻게 대할지를 그려보고 나면 대화에 임하는 남성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내 자기 내부에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주변 남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잠자는 시간만 빼고 딸들을 쫓아다니며 다른 남성으로부터 방패막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딸이 겪게 될 세상을 상상하며 자신의 평소 행실을 더욱 통력하게 반성하게 되고 마침내 전구의 스위치가 반짝 켜진 듯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p.142)

여성들이 지켜야 할 갖가지 수칙만큼이나 많은 질문들이 여성들을 따라다닌다.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면 이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왜 그랬는데?" 류의 질문들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면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왜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습니까? 왜 그렇게 야한 옷을 입고 외출한 겁니까?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습니까? 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니지 않고 혼자 길거리에 나왔습니까? 가정 폭력 케이스에 등장하는 매우 고질적이고 고약한 질문인 "남편이 그렇게 폭력을 쓰면 헤어져야지 왜 안 헤어집니까?"도 마찬가지다. 한술 더 떠 "맞으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거 보니 좋은가 보지"라고 내뱉기도 한다.
이런 질문들은 ‘피해자 책임 전가‘라고 부르는 현상의 일부다. 우리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남성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지도록 강요한다. 가정 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에게 습관처럼 "왜 그런 남편하고 안 헤어집니까?"라고 물으면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게 "왜 폭력을 멈추지 않습니까?"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p.149-150)

온라인 속 남성들의 비상식적인 발언들은 여성을 겨냥한 경우가 많다. 앞서 보았듯 여성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경향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내용은 워낙에 남성들이 소화하기 버거워하는 주제이므로 그나마 남성의 편으로 보이는 나 같은 남성이 말할 때 조금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반면 여성이 가르치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성들의 마음속에는 ‘어디서 여자가 자꾸 이런 시비를 걸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여성 강연자가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나보다 더 상냥하게 전달한다고 해도 결국 남성들은 같은 남성이 가르치는 것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건 남서들이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남성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맨박스 일화들에서 보았듯 착한 남성들도 다른 남성들만큼이나 성차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그 어떤 남성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p.155-156)

노력과 인내심, 용기를 가지면 맨박스를 벗어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첫 단계로 뜻이 맞는 남성들을 모아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남녀평등 이슈를 다시 새각하기 시작한 남성은 이것이 아주 장기적이고 힘든 (하지만 보람찬) 과정이란 걸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려면 주변에서 동기부여를 도와줄 이들이 필요하다. 내 경우 가장 큰 동기 부여는 내 딸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과 내 앋르들이 자라났을 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큰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p.164)

남성ㄷ르은 곧잘 자신의 성별 때문에 제공받은 특혜와 이점을 마치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처럼 여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화적 규범은 이런 믿음이 옳다고 편들어준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며 여성의 역할은 남성을 대접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고 억압하며 학대하는 행위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해악은 남성들이 먼저 책임을 인정하고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고쳐질 수 없다. 선한 의도를 가진 남성이라고 해서 이토록 많은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계속해서 무시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사랑하는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문제이기 때문이다. (p.170)

남성들이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폭력 행위의 책임을 가해 남성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남성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같은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대로 정확히 명칭을 정하자면 행위의 가해자인 남성을 지목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처럼 말이다. (p.171-172)

남성들은 여성 폭력 문제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여성 폭력 문제는 모든 남성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일처럼 폭력 근절을 약속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은 남성 모두가 연대적 책임감을 느끼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난 모든 남성들이 자신의 사회화 학습 내용과 여성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보길 요청한다. 이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의무감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로 말이다. (p.173)

그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비폭력적으로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평소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절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죠. 그들은 자신의 아내나 여자 친구를 빼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폭력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폭력성이 정신병 때문이었다면 폭력 행동은 여성 앞에서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나타났겠죠. 정신병 증상이 발현된다면 상대방을 가리거나 성별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남성의 폭력만큼은 여성 앞에서만 발현되는 듯했습니다. (p.187)

여성들은 신변의 안전을 지키고 남성들의 폭력을 피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을 기울이며 살고 있습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은 하루에 세 명꼴로 현재 혹은 과거 배우자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가정 폭력과 성폭력은 여성들의 가장 흔한 신체적 상해 원인으로 꼽힙니다. 미국 기준으로 매일 응급실에 방문하는 여성들의 35% 정도는 남성에 의한 폭력의 직간접적인 결과입니다. 우리는 극히 소수의 남성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대략 15~20%의 남성들이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성폭력을 저지릅니다. 열 중 여덟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우린 이 여덟 명의 남성이 다른 두 명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고 말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른 남성들이 던지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폭력과 학대를 반대하는 남성들이 폭력을 쓰는 남성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우리가 고대하는 변화가 현실화되고 남자다움이 재정의될 거라 믿습니다. (p.191)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2-2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2-21 22:03   좋아요 0 | URL
앗 저 안그래도 밑줄긋기 하러 들어왔다가 오타 발견하고 수정했어요. 히힛. 새당 보고서 응? 새누리당 쓸라 그랬나? 했지 뭡니까 ㅋㅋㅋㅋㅋㅋ 대상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고마워요!

오늘의 안주는 없습니다! 오늘은 술 안마시고 밑줄긋기만 다 올리고 잘거예요. 혹시 날아갈까봐 일단 저장 한 번 해주고 다시 덧붙이러 갑니다. 히힛.

님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시군요! 우먼 파워!! 얍!!!

나와같다면 2017-02-2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만 해도 갈고 있던 식칼을 들고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라고 소리치는 순댓국집 사장님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회적 믿음 이란게 있었는데..

지금은 각자 살아남아야 되는 세상인것 같아요..

다락방 2017-02-22 07:56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성평등에 대해 가르치고 교육한다면 지금보다 확실히 더 나은 세상이 될텐데요. 우린 너무 차별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이었을 때부터의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와같다면 님.

아무개 2017-02-22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강의 주제가 맨막스와 유리천장이었어요.
이 두가지를 같은 방식의 억압기제로 보이지만,
실제로
유리천잗은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사회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기제이지만
맨박스는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맨박스에 헌신하는 남성(강하고 남자다운 남성)일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할수 있는 기제가 된다.
이렇게 두가지를 같은 억압기제로 보기 때문에 남성들이 우리도 맨박스 때문에 힘들어요. 징징징 거리는 거라고
강사가 이야기 하더라구요.
아차...싶었습니다.
저도 맨박스 읽으면서 여러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아시겠지만, 네 딸, 부인 뭐 여튼 아는 여자로 상상해라 등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맨박스에 갖힌 남성들이 안됐다, 너희들도 힘들겠다 그러니 같이 페미니즘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맨박스에 안에서의 삶이 맨박스를 깨고 나오야 하는 삶보다
더 많은 이득이 주어질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남성 개인에게 왜 그 박스를 부수고 나오지 않냐고 하는 것은 멍청한 소리였어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손해 볼것이 없으니까요.

개인의 변화가 먼저인가, 사회의 변화가 먼저인가.
답을 알겠다 싶으면 그 답이 틀렸나 싶어지고....

다락방 2017-02-22 09:13   좋아요 5 | URL
저는 맨박스가 유리천장과 같은 식의 억압기제라고 생각하진 않았었어요. 맨박스는 강요된 사회화로 이해했거든요. 이건 오르려 해도 오를 수 없는 유리천장과는 다르니까요. 저는 이 책의 저자가 남자인만큼 더 유효하게 작용할 거란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래서 한계가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리뷰에도 썼지만, ‘니가 아는 여자가 당했다고 생각해봐라‘ 는 전 진짜 답이 아닌 것 같거든요. 남자가 여자가 되지 않는이상, 그 수많은 성적대상화의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 ‘니가 아는 여자가 당했다고 생각해봐‘는 부질없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예를 들면 남자들이 아! 하고 깨닫는다고 하더라고요. 글쎄요, 저는 남자들이 이미 많이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여자들이 억압당하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저자가 맨박스로부터 나오자, 라고 하는 건 충분히 의미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보여져요. 그렇지만 제가 거기다 대고 ‘맨박스로부터 나와‘ 라고 말하는 건 아예 들리지도 않겠죠. 그래서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게 고마우면서도 한계가 느껴지고 ... 책장을 덮었을 때는 개운한 기분이 아니더라고요. 저도 계속계속 공부하고 계속계속 생각하는데 뭔가 뚜렷한 길이 딱 눈 앞에 나타나는 기분은 아니에요. 순간순간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참고 문헌 없음] 텀블벅에 후원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제가 선택한 오늘의 할 일이었어요! 눈뜨자마자 후원! 후훗.

레와 2017-02-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페이퍼를 읽으면서 또 배우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다락방 2017-02-22 20:58   좋아요 0 | URL
배우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해주어 내가 고마워요!
우리 계속 얘기해요!
:)
 
좋아서 껴안았는데, 왜? - 202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어린이인권도서 목록 추천, 2021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 바람그림책 40
이현혜 지음, 이효실 그림 / 천개의바람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 서적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성적 대상화'란 말이 쉽게 와닿질 않았다. 일상적으로 늘 겪고 있는, 경험하고 듣고 보는 일이면서도 그 용어 자체는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 더 쉽게 쓰여진, 더 잘 읽히는 페미니즘 서적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성적 대상화, 가시화 등의 용어들을 처음 접했을 때,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아 페미니즘은 어려운 거구나' 라고 자칫 관심을 닫아 버릴까봐 조금 더 쉽게 쓰여진 책을 원했던 거다. 훅- 다가설 수 있도록.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는지 이제는 쉽게 쓰여진 페미니즘 책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전에, 그러니까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의 설명도 어려울 때, 그때는 어떤 책이 좋을까? 



어릴 적에 누구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견뎌야했던 적이 많을 거다. 수시로 치마를 들추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끌어안고 뽀뽀하고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고... 내 경우엔 지금 언급한 모든 일들을 수차례 당했는데, 사실 나는 가만있는 성향의 사람이기 보다는 해결해보고자 하는 타입이었다. 선생님께 일러바친 적도 있었는데(선생님, 쟤가 저 껴안아요!), 그때 선생님은 내게 '너 좋아해서 그러는건데 그런걸로 이르지마라' 고 했더랬다. 여자 선생님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그 뒤로는 선생님이 안계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 숨었던 적도 있더랬다. 종치면 나가야지, 하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치마를 들출 때도 마찬가지. 선생님한테 일러봤자 해결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소문만 무성해진다. 쟤가 쟤를 좋아한대요~ 하고. 다른 반 남자아이가 쉬는 시간에 찾아와 공개적으로 날 좋아한다고 말하고 가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얼마나 얼굴이 시뻘개졌는지는 어휴- 말해 다 무엇해. 한 번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하는 틈을 타 내 앞자리 남자아이가 내 다리를 만지면서 니 속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마 개새끼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랬다. 휴- 이런 일화야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선생님에게 일러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게 폭력이었다. 크- 나는 나를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을 때렸다. 나를 안을라 치면 주먹으로 때리고 또 안으려고 다가오면 필통을 들고 때렸다. 그냥 막 때렸다. 내 옆에 오지 못하게 저리가! 이러면서 맨 손을 때로는 무기를 휘둘렀다. 체육 시간에 한 번은 몸이 아파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는데, 혼자서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가 뭔가를 가지러 교실에 들어왔다가 내게 다가왔다. 아무도 없을 때 안아보자며 내게 다가오길래, 나는 거침없이 녀석의 뺨을 때렸다. 꺼져, 라고 하면서. 언제였더라, 수학여행 때는 내가 자고 있는 여학생들 방에 다른 반 남자아이들이 떼로 몰려왔다. 밤이었고 우리는 불을 켰는데, 찾아온 남자아이들 중에 대장은 일전에 우리 반에 와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놈이었다. 여자아이들이 꺅 소리를 지르며 애들에게 나가라고 하는데도 애들은 히죽거리면서 방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자다 깨서는 그 애들을 향해 말했다.



야,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



그러자 남자 아이들은 '나가자' 이러면서 다같이 나갔다. 나는 하도 폭력을 휘둘러서, 당시에 깡패로 소문이 나있었다. 깡패로 소문나기 전까지의 나는, 전교부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갔었고(떨어졌지만), 신문과 티비에 나온 적도 있었으며, 공부잘하고 예쁘기로(응?) 소문이 났었더랬다. 그런데 깡패...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6학년이 되어서는 남자아이들 때리는 걸 멈출 수 있었는데, 그때는 남자아이들이 안는다는 식으로 내게 접근하지 않았었다. 


내게 다가오는 남자아이들을 때리면서 나는 진짜 피곤했다. 어린 나이에 피곤했어 ㅠㅠ 아이들과 맞서 싸우면서 피곤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황 자체가 피곤했던 것 같다. 나는 싸워서 피곤했지만, 나처럼 남자아이들을 때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대로 피곤했을 것 같다. 싫은데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이게 좋아해서, 예뻐서라고 하니까 다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자신만의 소극적 저항을 하면서 얼마나 피곤했을까.




일전에 조카가 아래 위로 까만 색을 입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예쁘다, 귀엽다 했더니 조카는 그렇게 입기 싫다고 했다. 아빠가 자꾸 놀린다는 거였다. 나는 조카의 그 말을 듣고 '아빠가 타미 귀여워서 그러는거야' 라고 했는데, 그때 조카가 그랬다.


이모, 귀여우면 귀엽다고 해야지 놀리면 어떡해!



아!! 내가 지금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무심결에 내가 어른들로부터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말을 해버렸어! 문제 해결엔 아무것도 도움이 안되는 말을 내가 했어! 그 때 진짜 내가 무서웠다. 나는 얼른 아이에게 사과했다. 아 미안해 타미야. 타미 말이 맞아. 귀여우면 귀엽다고 해야지 놀리면 안되는거야, 타미 아빠가 잘못한거네, 라고. 이 일이 내게 오래 남았다.





'좋아해서' 여자아이를 끌어 안던 남자아이들은 자라서 '좋아하니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어른이 된다. 여자들이 싫다고 해도 그것을 '에이 좋으면서 뭘그래' 라고 받아들인다던가, '이렇게 좋아하는 데 내 마음 왜 몰라줘' 라고 하면서 강제적으로 스킨십을 시도한다. 진짜 씨발스러운 경운데, 이건 헤어지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하나씩은 갖고 있는 찌질한 전남친들의 경우, '연락하지마' 라고 하는데도 계속 연락하고 찾아오고를 반복하지 않나. 새벽 두 시에 '자니?' 라는 것도 싫고,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차단을 걸어도 계속 다른 식의 접근을 시도하는 그 행위는 폭력이다. '너를 잊지 못해서' 라고 상대에게 그 이유를 덮어 씌우지만, 그건 실제로 자기 자신을 위한 거다. 너를 잊지 못해서 '나는' 너를 다시 가져야겠어, 다시 내 옆에 두어야겠어, 라는 이유. 그래놓고 '너를' 잊지 못한다고,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징징댄다면, 그건 상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안돼' 라고 하면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서를 떠나,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안돼 라는 말은 안된다는 거다.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도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그렇게 주장해왔다. 물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야 매번 든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밀착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상대의 마음이 아니다. 그렇기에 매번, 좋아하면 할수록,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면 그럴수록, 더 조심하게 된다. '조심하지좀 마' 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아마도 내 스스로가 내 경계선 안으로 침범하려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허락한 적 없는데 밀고 들어오는 거 진짜 너무 싫고 소름 돋는다. 나한테 밀착하려는 것도 싫고,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밀고 들어오려는 거 싫고, 나를 열 번 찍는 것도 싫어한다. 그럴수록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 사람들(대체적으로 남자사람들)은, 왜 내가 싫다는데도 이렇게 밀고 들어오지? 싫다고 하면 '너는 왜이렇게 자신을 압박하냐' 등의 개소리를 하기도 하더라. 좀 더 마음을 열어야 되지 않겠냐 등등.... 내 마음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열겠다는데 지들이 뭔상관? 나는 이 남자들이 다들 경계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쳐둔 경계선을 멋대로 무시하려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글 썼던 것처럼, 상대의 허락받지 않고 상대 얼굴 사진을 전시하는 일 따위, 그런 건 상대가 쳐둔 경계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이며 상대의 몸을 상대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들에게 '경계'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부터 교육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들 모두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하고 싶다.




'준수'는 '지아'가 너무 좋아서 껴안았는데 지아가 싫어한다. 준수로서는 좋아서 끌어안았는데 왜 지아가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선생님은 경계선에 대해 설명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나라를 구분해주는 선이 있고, 인도와 차도처럼 차와 사람 사이에도 선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락없이 넘어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다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친구의 장난감을 내 마음대로 갖고 놀지 않아야 하고 친구의 과자를 내멋대로 먹어서도 안된다. 친구의 공간에 들어갈 때, 친구의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을 때, 우리는 반드시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다. 몸도 마찬가지. 지아의 몸은 지아의 것이다. 그런데 지아의 몸을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끌어안아서는 안된다. 지아에게 묻지 않고서는 지아에게 무엇도 해서는 안된다. 친구를 놀리는 것도 마찬가지. 상대가 '싫어, 하지마' 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게 아니다.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나쁜 짓은 나쁜 짓이다. 이 경계선에 대해 이해하게 된 준수는 지아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다. 네 몸은 네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 라고.



우리에게 어릴 적이 필요했던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의 모든 찌질한 전남친들, 잘 헤어지지 못하는 옛 연인들과 또 세상에 모든 '성적대상화에 익숙해진' 성인남성들에게 부족했던 게 바로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내 몸은 내 것이듯이, 다른 사람의 몸 역시 다른 사람의 것이다. 그것을 상대의 허락도 없이 품평하고 대상화 시켜서는 안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우리는 어릴 적에 교육받지 못했던 것같다. '좋아해서 그래'라니, 이 말은 얼마나 많은 성희롱과 성폭력을 잠재하고 있는가. 더이상 '아이스케키~' 가, 끌어안는 일이, '좋아서 그래'로 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기 몸의 주인은 자기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자랐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쥐뿔도 모르고 마음대로 경계를 넘으려 하는 성인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싫다고 했으면 싫은 거다.

안된다고 했으면 안되는 거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내 의사에 반해 네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되는 거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니까. 나의 주인은 나니까. 당신은 내 경계선을 내 허락없이 넘어서도, 지워서도 안되는 거다.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살자.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래서 이 책은 조카에게 선물할 것이다.

조카야, 누가 네 경계선을 넘으려 하면 안된다고 말해주고, 너 역시 다른 사람의 경계선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노크를 하도록 해. 

이 말을 내 대신 이 책이 해주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7-02-2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

이 책 보관함에 넣고, 선물할 리스트에도 넣을게요.

참 좋은 글이다. 다락방! 땡큐!!

다락방 2017-02-20 10:19   좋아요 0 | URL
히힛. 좋다고 말해주니 기분이가 참 좋으네요. ㅎㅎ
고마워요!
:)
 
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치다

깁다



바늘과 실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고 옷감을 꿰맨다. 굵고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고 두꺼운 헝겊을 맞댄 뒤 이불 홑청을 호듯 듬성듬성 꿰매기도 하고, 가늘고 작은 바늘에 가는 실을 꿰고 바짓단을 접은 뒤 바늘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꿰매기도 한다. 옷감을 이어 붙인 뒤 바지 안쪽에 세로로 난 바늘땀처럼 안쪽에서 마치 용수철을 꿰듯 감아 꿰매기도 하고, 해진 자리에 다른 옷감을 대고 꿰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죽죽 줄이 가게 박음질하드 ㅅ꿰맬 때도 있다. 순서대로 쓰면 시치고, 공그르고, 감치고, 깁고, 누빈 것이다. 시치는 일은 시침질, 공그르는 일은 공그르기, 감치는 일은 감침질, 깁는 일은 기움질, 누비는 일은 누비질이라고 한다. 

바늘과 실이 지난 자리엔 바늘땀과 함께 이렇듯 낱말도 남는다. 하물며 사람이 지난 자리야. 시친 듯 지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친 듯 지난 사람도 있고, 공그른 듯 지나는가 하면 기운 듯 지나기도 하며, 때로는 온통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드물지만 바늘과 실이 사람 몸을 지난 자리도 있다.

어머니의 가슴과 왼쪽 종아리에는 각각 스무 땀과 서른 땀의 꿰맨 자국이 남아 있다. 꽉 막힌 관상 동맥 대신 다리의 혈관을 떼어 내 심장에 연결한 흔적이다.

"사람 몸을 이렇게 누더기처럼 만들어 놓고, 의사들은 참……." 하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목숨을 건졌는데 그깟 바늘땀이 대수냐고 나는 무심히 대꾸해 버리지만,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다. 남이 입을 옷을 짓느라 평생 바느질을 해 온 양반이, 누군가 당신 몸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 아닌가.

어머니 몸에 남은 바늘땀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영 형편없네." 하고 내가 짓궂게 놀리면 "그러엄, 이게 누더기처럼 기운 거지 무슨 바느질이니. 이렇게 해 가지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어야." 하며 어머니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깔깔 웃는다.

'감치다'는 '감쳐, 감치니, 감치는, 감친, 감칠, 감쳤다'로, '깁다'는 '기워, 기우니, 깁는, 기운, 기울, 기웠다'로 쓴다. (p.36-37)




총 302페이지의 책인데 62페이지까지만 읽고 쓰는 리뷰임을 먼저 밝힌다. 대체적으로 책을 읽을 때 앞부분이 좋아도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으므로 이만큼만 읽고 리뷰를 쓰는 건 지양하는 편인데, 이 책에 대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확신이 든다. 제목 그대로 동사에 대해 마치 국어사전을 펼치듯 설명해 놓았는데, 거기에 대해 저자는 에세이와 또 (본인이 쓴)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그는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얘기를 자주 풀어놓는다)로써 예를 든다. 동사의 뜻과 활용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풀어놓다니, 이 책은 책장에 반드시 꽂아두고, 동사를 찾아보고 싶을 때 국어사전보다 먼저 꺼내들어야 할, 그런 책이다. 동사의 '맛'이라는 제목은 어찌나 적절한지! 다루는 동사마다 감칠맛나는 글을 덧붙여 두었는데, '감치다'와 '깁다' 편의 저 이야기는 특히나 좋았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완전 생생하지 않은가. 

이것은 사전이면서 동시에 에세이이며 소설이다! 게다가 글을 진짜 지독하게 잘썼어!! 아름다워!!



책 뒷편에 '서평가 로쟈 이현우'가 '바라건대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 주기를!' 라고 추천사를 썼는데, 완전 공감한다. 나 역시 김정선이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여러분, 이 책 진짜 좋다. 읽자.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자. 동사의 활용이 헷갈릴 때 펴들면 유익할 것이고, 잔잔하고 차분하며 아름다운 글을 읽고 싶을 때 펴들면 또 그대로 만족할 것이다. 진짜 질투나게 글 잘 쓴다.



부르르(질투에 떨리는 소리)-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2-0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2-07 14:02   좋아요 0 | URL
아 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이란 닉네임을 쓰는 다른분 인듯 합니다.

이진 2017-02-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왜 같이 소개를 안 해주셨나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7-02-07 14:28   좋아요 1 | URL
소이진님, 안녕?

동사 하나하나에 대해서 짧은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종종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와의 대화가 들어가 있어요. 소이진님, 이 책 꼭 읽어보세요. 소이진님은 꼭 읽어보셔야 해요. 글 쓰는 분이시라, 이거 진짜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아무개 2017-02-0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임호부님 글 참 좋죠?
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있는데 왠지 소설 준비중이신게
아닐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ㅎㅎ

다락방 2017-02-07 14:36   좋아요 0 | URL
글 정말 질투나게 잘 쓰시더라고요.
게다가 단어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니, 이런 분이 소설을 쓰신다면 어떤 소설을 쓰실지 너무나 기대 됩니다. ㅎㅎ
소설의 첫문장도 좋은가요? 저도 봐야겠어요.
이 분이 [이모부의 서재]내신 후로 그냥 줄기차게 쭉쭉 책을 뽑으시네요.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ㅎㅎ
그렇지만 이 분에겐 기본기가 너무 탄탄해서...
정말 질투나고 기죽어요ㅠㅠ

2017-02-08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야 2017-02-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그렇군요!! 다락방님께서 질투까지 나실 정도면 정말 얼마나 글을 잘 쓰시는건지 궁금하네요!! 갑자기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군요!! 장바구니에 넣어둬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7-02-17 09:41   좋아요 0 | URL
심야님, 에피소드나 예문 자체도 가만가만 좋고요 동사에 대해 정리도 잘 되어 있습니다.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예요! >.<
 
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려는 십 년 전부터 꽃에 새롭게 눈을 떠, 우리 집 꽃도 그가 장식한다. 들꽃을 취급하는 꽃가게 주인과 친해지는 바람에,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꽃을 꽂는다. 그런데 의외로 감각이 좋다. 내가 말하자니 뭣하지만, 때로는 '우와!' 싶을 정도로 꽃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수반이나 꽃병 같은 것드은 내가 전에 취미로 모은 것이지만……. (p.167)




저자는 자신의 남편을 '반려'라 칭하며 시종일관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어느정도의 거리도 느껴지고 또 담백한데, 저렇게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자신의 반려에 대해 칭찬한 게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친근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결혼이나 동거를 하게 된다면, 나도 나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건조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들 부부는 삼십년 이상을 함께 살았는데, 그렇다면 함께 사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일텐데, 이렇게 글로 쓸 때는 건조함을 유지하는 게 신기하고 좋아 보였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난 이렇게까지 건조하진 못할 것 같아. 


자연스레 신형철이 자신의 책에서 낯뜨거운 감사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그 부분 때문에 그 책을 안샀고 신형철에 대한 관심을 끊었더랬지... 



자신의 반려에 대한 건조한 시선이 독특했지만 이 책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잘 살아야 한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또 그런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인상적이었지만, 확실히 제목이 제일 근사한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7-02-0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느낀 그 지점이 겹쳐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나친 칭찬, 헌사는 왠지 저도 거부감이...그냥 요새는 왠지 건조하고 좀 담백한 글들이 좋아지더라고요.

다락방 2017-02-07 08:34   좋아요 0 | URL
네, 그간 신형철을 좋아했었는데 자신의 책을 마치 청첩장인듯 쓴 걸 보고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자신의 책이고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거지만 어휴, 제 취향은 아니더라고요. 그런참에 이 책의 저자는 어찌나 건조하던지. 그 건조함이 나쁘지 않았던게, 건조하다고 해서 그들 사이가 심드렁하거나 무심한 사이는 아닌걸로 보였거든요. 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또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서로 얘기한 거라서 그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로 함께 오래 살아온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반려‘라 표현하며 건조하다니, 참 좋더라고요.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요?
김연지 지음 / 처음북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인과 이별한 지 며칠 안됐을때였다. 여전히 마음이 아팠고 헤어지자고 말을 했던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웠고 또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남아있을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택시 기사님께 애인하고 헤어져서 슬프다고 얘기를 했다. 이 위기를 넘겼어야 했는데 나는 넘기지 못해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래서 그게 몹시 미안하다고. 그 날 나를 처음 본 기사님은 내게 '아가씨가 그 사람을 좋아한 만큼은 딱 그 만큼이었던 거예요" 라고 하셨더랬다. 나 역시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낯선 사람으로부터, 그간의 내 사정과 성격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그 말은 당시의 꽤 큰 위로가 되었다. 맞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은 딱 이만큼이었던 거야. 나는 스스로를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김연지'라는 저자에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데이트하는 어플 을 통해 뉴욕에 사는 남자를 알게 된 저자는, 일년반 동안 그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그가 있는 뉴욕으로 그를 보기 위해 슝- 날아간다는 게 큰 줄거리다. 연락을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친해지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또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여느 연인들처럼 싸우고는 '다시는 연락하지마!'를 반복하기도 하고, 그렇게 싸우다가 '사랑해' 한마디에 풀리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연인. 물론, 그들이 아직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은 보통의 연인과 아주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엇갈린다. 여자가 화가 나 데이트하는 어플을 지우고 있다가 다시 설치해보니 그로부터 연락이 와있었고, 그 사이에 그는 한국에 나흘간 머무르면서 마지막 날 네 얼굴 잠깐 볼까 연락했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연락이 안돼 만나지 못해 돌아가야 했고, 그를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여자는 결국 3개월간 뉴욕에 머무르고자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지만, 남자는 그 기간동안 시애틀로 출장 가있다가 바로 한국으로 휴가를 간다고 했다. 열네시간을 날아 뉴욕까지 갔지만 여자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그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여자는 혼자 술을 마시고 외로움에 흐느끼기도 하지만, 뉴욕의 생활에 차츰 적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에 대한 욕망도 샘솟는다. 많은 것들이 여자를 자극하는 가운데 남자를 이곳에서 만나지 못할거란 생각으로 계속 괴로워하긴 하지만, 긍정적인 그녀의 성격은 이렇게라도 뉴욕에 올 수 있게 해준 그에게 감사한다.



사랑은 내밀한 것이고 연애 역시 둘만의 것이라, 제삼자가 알지 못하는 둘 만의 은밀한 사연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그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여자도 책의 말미에 자신이 남자를 더 많이 좋아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이 여자를 많이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가 화나고 토라졌을 때 전화선을 통해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여자를 달래주고 여자를 순간 구름 위로 올려놓기는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만큼은 딱 그만큼, 그러니까 나흘간 한국에 갔을 때 마지막날 '잠깐 만나볼까' 하고 연락하는 딱 그만큼이었던 것 같다. 여자가 열네시간을 날아 뉴욕에 온다고 하지만, 자신의 출장과 휴가 스케쥴을 변경할 순 없는, 딱 그만큼. 이렇게 열정적이고 뜨겁고 게다가 뉴욕에서는 아주 많은 낯선사람들로부터 예쁘다, 근사하다, 모델이 되어달라 등등의 찬사를 듣는 여자가, 자신에게 움직이는 데에는 좀 망설이는 남자를 마냥 좋아하는 것은 좀 무모해 보였지만, 사랑이란 게 어디 이성으로 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랑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게 있다. 여자는 남자를 보려는 목적으로 뉴욕에 갔지만, 뉴욕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한다. 결국 뉴욕이란 곳에 다시 가고 싶게하고 또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좋은 동기가 '사랑'이었다. 이런 여자라면 앞으로 무얼 하고 또 누굴 만나도 쭉쭉 뻗어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것은 과연 사랑일까, 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에미와 레오는 많은 감정을 나눈다. 상대로부터 이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컴퓨터만 쳐다본다. 영화 《her》에서는 심지어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나온다. 사랑이 주는 설레임과 두근거림, 그리고 사랑이 주는 서운함과 고통까지도 그들은 모두 느낀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나고나면?



그건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포온세엑스로 알게 됐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되는 영화 《나의 PS파트너》에서 둘은 어쩌다보니 상대가 지성이고 상대가 김아중이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다고 해서 내 사랑이 더 굳건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로, 문자메세지로, 통화로 서로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해도 만나서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만났는데 이 사람이 술에 취해 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는 지켰던 예의를 보이고 나서는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습관, 냄새, 버릇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전화 상으로 '사랑해'라고 수없이 속삭였지만 쩝쩝거리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만나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만나서 좋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고 더 좋았던 경우가 있었는데, 만나서 훅 갔을 때는 정말이지, 상대가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멀었는데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더랬다. 이처럼 만나서는 아주 많은 '다른' 경우의 수가 생긴다. 사랑한다는 말은 흔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물론 '나는 지금 이순간 사랑을 느끼고 이걸 그대로 표현할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한다는 말에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히 문자로, 목소리로 사랑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다른 면들을 보지도 않은 채로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자는, 책 속의 묘사로 보건데, 똑똑하고, 사랑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고. 나는 여자에게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고 또한 조언할 위치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또 각자의 사랑을 한다. 이 책은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는 굵직한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붙은 많은 가지들은 뉴욕 여행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타이틀에도 <여행 에세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뉴욕을 좋아한다. 게다가 책 속 주인공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책이었지만, 그런데 이 책이 좋지는 않다.


이 책은 여행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녀의 '미스터 프린스턴'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랄까. 읽다가 중간에 '이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잠깐 궁금했다. 저자는 이 원고를 들고는 출판사로 찾아간걸까?



음, 남자는 딱 그만큼만 좋아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 책은 딱 이만큼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2-0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등록하려는데 ‘광고,도박,음란성 글은 게시가 안된다‘고 에러 뜨길래

데이트앱→데이트하는 어플
폰섹스→포온세엑스

로 부득이하게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니까 등록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38   좋아요 1 | URL
광고, 도박, 음란성 글은 자제해주세요ㅋㅋ

다락방 2017-02-02 08:11   좋아요 0 | URL
네 주의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같다면 2017-02-01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기억.. 끊없는 자책과 후회..

‘그 사람을 좋아한 만큼은 딱 그 만큼이었던 거예요‘ 딱 그만큼..
비로서 숨이 쉬어지고 위로가 됩니다

다락방 2017-02-02 08:11   좋아요 1 | URL
위로가 된다니 다행입니다, 나와같다면님.
딱 그만큼인 정도가 끝나면 또다른 관계, 또다른 감정이, 또다른 방식으로 시작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숨 잘 쉬고 삽시다, 나와같다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