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상적 대화에서는 혐오표현임에 분명한 대화들이 섹스 중에 오고간다면, 그것은 그저 연인들 사이의 더티토크가 되는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의 혐오표현이 침대에서는 혐오가 아닌 것이 되는걸까. 혹은 혐오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 내밀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그것을 말하기를 허락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혐오인데 참고 있는 것일까, 분위기 깨기 싫어서?


나는 섹스중에 사실 그다지 어떤 험한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혐오 표현이라고 하면 섹스중에 어떤게 오고갈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이 혐오인가 아닌가, 혐오이나 허용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게서 나오는 답이 진리일 수도 참일 수도 없겠지만, 친구가 묻는 말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러나, 행위에 대해서라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행위에 대해서라면 나는 요즘 매우 생각이 많았다. 요즘 포르노에 대해, 음란 영상물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계속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는데, 시작은 DSO 계정의 음란물 신고 트윗 덕분이었다. 다른 SNS 를 잘 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트윗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음란물들이 아주 많이 올라온다. 아예 성을 매매하는 계정에서부터 오프라인에서 만나 섹스를 하자는 계정까지 수두룩하고, 지인들의 사진으로 음란사진에 합성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성관계 영상까지. 신고를 하면서 알게됐는데, 거기에 올라오는 성관계 영상은 소위 내가 알아온, 내가 경험해온 성관계 영상이 아니었다. 가학적인건 물론이고 불쾌함을 넘어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웠으며 혐오스러웠다.



나는 살면서 포르노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는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감정 없는 육체관계에 대해 통 흥미를 느낄 수 없는게 아닌가, 해서도 그렇고 포르노를 어디서 어떻게 봐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십대 초반에 [터보레이터]를 본 게 전부라 할 수 있는데, 터보레이터의 영상속 내용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터미네이터를 본따 만들었으나, 내용은 확 뒤집어져서, 미래에서 여자를 강간하기 위해 온거다. 그런데 영상 속 여자들이 매우 특이했던 게, 처음엔 강간하러 온 남자들을 보고 놀라지만, 이내 강간을 즐기고 헤어지면서는 다시 오기를 바란다는 거다. 이것이 강간판타지라는 것인가.



강간은 다른 사람의 몸에 성적으로 침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간은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나 내 몸에 억지로 밀고 들어옴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라면 사람이 몇살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본능적으로 싫어할 것이며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어떤 여자들은 강간 판타지가 있다'는 말은 매우 갸웃한 것이었다. 그래, 다른 사람의 판타지에 대해서 내가 뭐라할 순 없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왜, 어째서 강간 판타지를? 그리고 내게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어'라고 말한 여자는 한 명도 없었던 반면, '강간 판타지 있는 여자들이 있다'고 말하는 건 왜 모두 남자였을까. 여자들은 스스로 강간판타지가 있다는 것을 남자가 아니면 말하기 두려워서였을까.


나는 최근 DSO 계정에서 같이 신고해달라고 음란 계정들을 올리면 그것을 부지런히 신고하고 있다. SNS특성상 성인 인증 없이도 가입이 가능하고 거기엔 초등학생도 그리고 고등학생도 모두 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영상들을 맞닥뜨릴 수 있다. 내가 본 영상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그걸 보면 성인의 영혼도 온전치 못할 것 같았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보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 미성년자들이 이런 식으로 성인 남녀의 나체를 보는 것도, 그리고 성관계를 알게 되는 것도 끔직하게 싫어서(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성인남자의 고추를 보게됐고, 그것을 폭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지런히 신고를 하고있다. 신고를 해도 박멸할 순 없고 계속 생겨나지만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 신고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신고하고 있다.


신고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영상쯤은 보게 된다. 동물들과 관계하는 변태적인 성행위도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여자를 피멍들게 때리는 영상들을 보았고, 여자 얼굴에 정액을 쏟아붓는 것도 보았다. 아주 많은 영상들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고추를 물고 있었다(더러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침을 뱉거나 오줌을 싸거나 하는 것들도 있었고, 입 안에 정액을 쏟아붓는 것도 있었다. 더 쓰는 건 이 페이퍼 자체를 음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만하겠지만, 나는 그걸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영상 속에서 여자들이 설사 즐기는 것 같은 표정과 신음소리를 보인다해도, 내게 그것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모든 행위들에 있어서 나는 너무 소름끼치고 수치스러워서 '여자들아 그런 거 하지마' 하고 간절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나는, 그 영상들의 모든 행동들에 있어서 백프로 자유로운가?



아니었다. 나도 그 안에 어떤 행위들이 내 것이었던 적들이 분명히 있었다. 어떤 것들은 상대가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로 참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그렇게 참을 필요 없이 가능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분명 저 영상들을 보며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봤을 때 그것은 분명한 폭력이었다. 애시당초 그들의 자세 자체가 달랐으니까. 그렇다면 외부에서 보기에 폭력이지만, 그것이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외부에서 보면 폭력인 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괜찮아지는 것이 되는 것일까? 외부에서 봤을 때 폭력이지만 우리 둘 사랑하는 사이, 연인사이에서는 허용되는 것이야, 너 좋고 나 좋고 우리 둘다 좋으니 이것은 섹스야, 가 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어느 순간 그것들 중 일부를 즐겼다는 사실을 놓고 보았을 때, 내 허용치는 그만큼이지만 저들 혹은 다른이들은 나보다 허용치가 더 넓다고 판단하면 그뿐인걸까.



우선 나는 그 영상들을 보고 매우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아프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찍고 그리고 즐겨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건강할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상이, 남자와 여자가 어떤식으로든 성관계를 맺고 있는 영상이, 내게는 분명 끔찍하게 느껴졌다. 정말 싫다, 는 감정을 갖게 했다. 이런 영상 싫다, 이런 행위가 싫다, 는 생각을 갖게 한거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다른 성에게는 이것이 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안다. 그 지점에서 나는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같은 영상을 보고 어느 한쪽은 아 싫어, 괴로워, 고통스러워를 느끼는데 어느 한 쪽은 네 얼굴로 내 정액을 받아줬으면 해, 같은 욕망을 느낀다는 게, 따라하고 싶어한다는 게 정말이지 처절하리만큼 괴로웠다. 이걸, 이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왜그럴까. 이게 어째서 가능할까,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여자들은 이 영상이 끔찍하고 남자들은 영상속의 남자처럼 하고 싶은 건 왜그럴까.

그건 아마도 굴복하고, 무릎꿇고, 더러운 걸 몸에 받는 쪽이 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은 힘을 쓰고, 핥는 걸 느끼고, 배설하는 쪽이고. 남자들이 영상속에서 고통스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자들에게는 없었다. 고통스럽지 않으면서 쾌락과 배설이 따라온다면, 게다가 자신의 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 영상은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왜 여자인 나는 고통스럽고 왜 남자인 너는 흥분하는가.



당신이 받은 폭력은 그 남자에게 흥분이고, 당신이 받은 고문은 그 남자에게는 쾌감이다. 당신을 보는 것은 이제 그 남자에게는 마스터베이션 거리가 된다. (p.24)



다시 강간판타지 얘기로 돌아가면,

나는 강간판타지를 가진 어떤 여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부터 본인의 판타지였을까?

그러니까 만약 세상에 포르노가 없었다면, 강간하는 영상들이 없었다면, 그걸 찍고 보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저 스스로 '내 몸이 침범당하길 원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섹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했던 섹스들도, 내가 '내 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나는 이건 별로지만 네가 좋아하니까' 참았던 것들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이 아닌' 것이 될까.

나는 우리에게 포르노가 준 수치가, 포르노가 공급한 폭력이 내재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이러는 게 섹스에서는 응당 당연하다는 것이, 이것이 은밀한 관계가 가진 '특권'이라는 것이 내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버린 거란 생각을 하게된 거다. 만약 내가 그런 영상들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런 영상을 찍고 보는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내 섹스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었을 것들은 과연 몇 개나 될까. 게다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수치스럽지 않았나. 수치스러움을 참지 않았나. 어떤 요구들에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하는 마음에 '싫어, 그건 하지마' 라고 요구할 순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이정도 까지는 그래도 할 수 있지' 로 폭력을 내재화하지 않았나. 포르노를 보고 남자들은 폭력을 자신의 것처럼 만들고, 여자들 역시 그것을 자기 안에 쌓아버린 것 같다. 나는 포르노를 보지 않는 사람이고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포르노 보기를 꺼려할 것이다. 물론, 보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포르노를 보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라도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정도를 어느 틈에 알고 있잖아.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채로 시작하는 섹스가, 과연 평등한 관계에서 오는 섹스일까?

섹스에서, 네가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평등한가? 평등했나?

단순히 어떤 자세를 취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시작과 끝의 순간들에, 나는 폭력을 내재화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그러지마' 하게되는 것들을 나는 하고 있었나. '내가' 하면 괜찮은 게 되는건가.

나는 수치스럽지 않았나.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수치심을 배우며 이 수치심을 성적 허세로 가리는 법을 익힌다. (p.28)






이 책 《포르노에 도전한다》의 원제는 《only words》이다. '단지 말' 이라는 제목인건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얼마나 적절한 가져옴인지, 그러니까 국내에서 '포르노에 도전한다'는 제목을 이끌어올 이 책이 왜 '단지 말'이란 제목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어휴, 따먹고 싶게 생겼네' 라는 말을 내가 들었을 때, 그는 나를 '아직' '따먹지'는 않았으나, 그런 욕망을 가짐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하며, 언제든지 저 남자가 그 말을 실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표현'인건가? 그저 말만 한건데 뭐 어때, 하며 웃을 수 있는가? 저 '말' 자체에 성적 희롱이 담겨있다. 그것이 그저 말뿐인가.

맥키넌은 이 책 only words 를 통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백인 전용'이라는 간판은 '유대인 사절'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차별행위로 간주된다. 인종 격리는 "나가!" "당신은 여기 못 들어오게 되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다. 상대를 높이는 것이나 깎아내리는 것이나 모두 의미 있는 기호나 의사 전달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p.36)



인종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서, '평등'은 '단지 말'에 불과하고, 그러나 차별적 '표현'은 그저 말뿐인 게 아니다. 그것은 행위에 다름아니다. 폭력적 말은 폭력적 행위다. 포르노에서 강간이 벌어지고 정액을 쏟아낼 때, 그 안에는 강간을 당하고 정액을 받고 있는 행위가 있다.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로 변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르노 안의 행위들은 게다가 실생활에서도 행위로 이어진다. 그게 맥키넌이 '반포르노'를 주장하는 이유이고,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 이유이다.





캐나다는 이미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그러한 견해를 거부했다.- P10

이 책은 사람들에게 표현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해악의 실상, 즉 표현이라는 것이 여성과 어린이에게, 피억압 집단을 위한 평등의 가능성에, 특히 여성들의 인권에 무슨 짓을 하는지를 바로 볼 수 있게 하려는 시도이다. - P11

상당수의 포르노가 인종적·민족적 적대감을 섹스와 연결시킨다. 또 포르노는 공격행위를 쾌락으로 제시함으로써 힘없는 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P17

전쟁중에는 세르비아 파시스트 군인들이 이슬람 여성과 크로아티아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기 위해 수용소에 감금했다. 이런 강간·살해 캠프에는 포르노가 판을 치고 있었다. 그 캠프들에 있었던 여성들에 따르면, 군인들은 포르노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행위를 자신들에게 그대로 실행했다고 한다. 또 그녀들에게 자행된 성적 잔학행위가 그대로 포르노르 만들어지고 있다고도 보고된다.- P17

포르노는 뿌리 싶은 성적 부속물을 만들어내는데, 여성 혐오가 바로 그것이다. 그 여성 혐오는 다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르노 옹호를 추진하고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P18

이렇게 수천 년 침묵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카메라가 발명되고,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카메라에 담겨지게 된다. 당신이 고통받는 동안 그 고통의 리듬에 맞춰 셔터 누르는 소리나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그 영상물들이 다른 어딘선가 매매되고, 사람들에게 돌려가며 보여지거나 서랍 속에 감춰져 있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그 영상물 속에, 당신이 겪었던 일들은 영원히 남게 된다. 남자들이 그것들을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 또 누구나 그 속에 담긴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남자가 당신을 포르노 제작에 사용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은 그 영상물들을 통해 늘 다시 행해지고 되살아나며 또 느껴지고 있다. 당신이 받은 폭력은 그 남자에게 흥분이고, 당신이 받은 고문은 그 남자에게는 쾌감이다. 당신을 보는 것은 이제 그 남자에게는 마스터베이션 거리가 된다. - P24

당신에게 표현이란 마치 영화를 향해 소리지르는 것과 같다. ˝누구든 저 남자 좀 말려요!˝ 하고 소리쳐도 관객들은 아무 소리도 못들은 듯이 행동한다. 꼼짝도 하지 않고 영화를 보거나 당신에게 방해받았다는 듯이 자세를 살짝 고쳐 앉는다. 영화 속 장면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된다. 당신이 지른 소리의 여운이 귓속에서 사라지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기나 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당신 자신의 경험은 마치 당신 눈에는 보이나 멈출 수 없는 영화처럼 더이상 당신에게 현실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이렇게 현실의 삶이 예술을 모사模寫한다. 당신의 현실은 포르노 대본이 그리는 대로 규정된다.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수치심을 배우며 이 수치심을 성적 허세로 가리는 법을 익힌다. 또 성적 무능과 이 성적 무능을 매력으로 만드는 법을 배운다. - P27

성의 은밀함을 배우고, 아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말하지 않는 습관을 익힌다. 이런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당신은 자기 몸을 빠져 나와 대신 다른 사람을 가장하는 법을 배운다. 당신은 애교가 넘치고 고분고분하며 곧잘 남을 흉내내는 아주 수동적이고 말이 없는 자아를 개발해낸다. 한마디로 말해 당신은 여성다움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P28

미국 여성의 38%가 소녀시절 성추행을 당한다. 우리 여성 중에 24%가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강간을 당한다. 우리 중에 거의 절반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강간 피해자가 되거나 강간당할 뻔한다. 많은 수가 두 번 이상 이런 경험을 겪고, 특히 유색인 여성이 심하다. 또 많은 여성이 여러 남자들한테, 그것도 대개 아는 남자들한테 당한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85%가 사용자들한테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의사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섹스를 위해 매매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언제든지, 심지어 불황 속에서도 항상 돈 주고 성을 산다는 것이다.- P29

포르노를 옹호하는 것은 표현으로서의 성적 학대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또 동시에 포르노 및 포르노 옹호가 여성들로부터 표현, 특히 성적 학대에 대항하는 표현을 박탈해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강요된 침묵과 우리를 둘러싼 포르노 논쟁의 소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성들은 강요된 침묵 속에서, 여성들을 속박하는 굴레(이것에는 성적 특징이 주어지기 때문에)를 마치 스스로 좋아서 택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한편, 포르노 논쟁은 헌법의 보호 아래 활보하며 제대로 된 담론으로 (심지어 여성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통용되는 검열의 정의는 힘없는 사람들의 표현을 막는 정부의 행위라는 것에서, 국가권력의 배후에 숨어 힘없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폭력이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P31

수정헌법 제1조(譯註:1789년에 만들어지고 1791년에 효력 발생. ˝미합중국 의회는 특정종교를 옹호하거나 자유로운 종교행위를 금지하거나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또는 평온하게 집회하고 피해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 청원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가 이러한 생각과 감정의 교환 과정을 보장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포르노에서 일어나는 일은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일어난다.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 두어야 하는 것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에게 섹스를 강요하고, 공갈협박하고, 압력을 넣고, 속이고 꾀는 것은 포르노에 들어 있는 사상이 아니라 포르노 산업이라는 것이다. 포르노에서 여성들은 윤간 장면을 찍기 위해 윤간당한다. 여성들은 윤간이라는 생각에 의해서 윤간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섹스 영화를 만들려고 여성을 폭행하고, 성기를 삽입하고, 사지를 묶어 재갈을 물리고, 옷을 벗기고, 음부를 벌려 래커와 물을 뿌리는 것은 포르노 때문이지 거기에 담긴 사상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포르노를 위해 섹스 영화를 만들려고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것이지 섹스살인의 사상이 그녀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포르노가 표현하는 사상을 사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짓들이 필수적이다. - P38

마찬가지로 포르노의 최종 소비단계를 보면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포르노에 들어 있는 사상이 아니라 남자들이다. 포르노를 보고 만들어진 남성, 포르노를 보고 바뀐 남성, 포르노를 보고 충동을 느낀 남성들이 여성을 공격한다. 포르노가 시렁에서 뛰어내려 여성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론상으로 여성들은 포르노가 가득 들어찬 창고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그래도 포르노는 껍데기 안에 조용히 들어 있다. 문제는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 저질러지느냐, 포르노를 사용하면 무슨 일이 발생하느냐 하는 것이다.- P39

포르노 소비자들은 어떻게든 그 포르노를 3차원의 세계에서 실행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조만간 어떻게든 그렇게 한다. 포르노는 그들에게 욕구를 일으킨다. 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그 행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낄 때, 그들은 실행한다. 그들은 매일매일의 생활로부터 흥분을 느껴 항상 성기가 발기돼 있을 수 있도록 이 세상을 포르노 천지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택한 활동 영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포르노 소비자로서의 교사들은 여학생 제자들을 자신과 잠재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고 무의식중에 강간범의 입장에서 강간에 대해 가르칠 가능성이 있다. 의사들은 마취 상태의 여자들에게 성적 가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고, 분만 장면을 구경하거나 고통을 주면서 즐길 가능성이 있다. 또 의대에서 성교육을 하면서 포르노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 P43

화장실 벽에 낙서나 하는 수준의 포르노 소비자들도 있지만, 사법적 의견을 쓰는 보시자들도 분명히 있다.
아마도 포르노 소비자들 중에는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상원 법사위원회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전화를 받는 경찰관도 있을 것이고,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 기사를 편집하는 사람ㅗ 있을 것이고, 일반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포르노 소비자들 중에는 자기 처나 딸, 환자나 제자, 또는 매춘부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면서 거기 나오는 대로 시키는 사람도 있다. 또 그들 중에는 자기 종업원과 환자를 성적으로 괴롭히고, 자기 딸을 성추행하고, 자기 처를 구타하고, 매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마다 포르노가 옆에 있고 그런 행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친목회에서 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성들을 집단 강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그들은 포르노를 높이 쳐들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그대로 흉내 낸다. - P43

이들 중에 어떤 자들은 연쇄 강간범이 되거나 연쇄 강간살인범이 된다. 이런 행위들에서는 때로 포르노 사용과 제작과의 경계가 애매하다. - P43

그렇다고 해서 모든 포르노가 학대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일부 포르노가 강제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들어 모든 포르노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모든 포르노는 성의 불평등 상황하에서 만들어진다. 거기 사용되는 사람들은 거의가 어렸을 때 성적으로 학대받은 가난하고, 절망에 빠져 있고, 가정이 없는, 팔려 온 여성들이다. 포르노 산업은 이런 상황을 악용하면서 이윤을 착취한다. 또 포르노 산업은 이윤을 낵 위해 이런 상황을 유지시킨다. 이런 상황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한다. 노골적인 폭력이 들어 있지 않은 포르노의 경우조차도 여자들에게 그 장면을 연기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P45

안드레아 드워킨과 나는 포르노를 ‘영상물과 말을 통해 여성을 복종시키는 생생한 성적 묘사물‘로 정의하는 ‘반反포르노법‘을 제안한 바 있다. - P48

포르노는 단순히 경험을 표현하거나 해석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대체한다. 메시지를 현실에서 가져오는 것을 넘어, 포르노는 현실의 자리에 대신 들어서서 실존적으로 거기 존재한다.- P51

포르노는 여자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여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내고, 여자에게 해서 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시각에서 ‘여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혹은 ‘여자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여자를 다루는 남자는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사회적 현실을 구축함으로써 그 제작과 사용 과정을 통해 세상을 온통 포르노 천지로 만든다.
사회가 포르노로 넘쳐나게 되면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이 바뀌고, 포르노 내에서의 표현 문제라는 관점에서 섹스 자체의 본질이 바뀐다.- P51

포르노에 나오는 여자들은 실제로 즐기는 것이고 강간은 시뮬레이션 기법이라는 주장은 하면서 왜 그 반대의 경우, 즉 여자들의 쾌감은 시뮬레이션 기법이고 강간은 실제라는 주장은 안 하는지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답은 소비자가 쾌감을 느끼려면 시나리오가 남자의 강간에 대한 환상, 자신은 여자를 학대하고 여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환상에 부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돈을 주고 처음에는 저항하는 것처럼 하다가 결국 굴복하도록 시킨다고 해서 그 섹스가 서로 교감하는 섹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포르노를 매춘의 수단으로 만든다. 그 섹스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돈이 강제력의 매개체가 되고 동의同意의 외양을 제공한다.- P55

섹스를 하면서 보는 것도 나중에 사진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사진들은 전리품이며, 사진을 보면서 성적 만족을 느낀다. 나체춤을 에로티시즘의 ‘연출‘인가 아니면 에로티시즘 그 자체, 즉 하나의 섹스행위인가? 라이브 섹스 쇼는 어떻게 다른가? 영화에서 실제로 행해진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과, 영화에 나오는 집단강간을 흉내내는 실제의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 또는 실제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 사이에는 남자들이 성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놓고 볼 때 아무런 차이가 없다.- P56

미국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은 지배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종속된 집단에 대해 사실상 무엇이든 말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동시에 힘있는 개인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핑계로 삼아 힘없는 사람들이 표현수단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매체의 권한을 뒷받침하는 효과만 낳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피해를 입는 쪽은 종속된 집단이며, 자신들을 나쁘게 보이도록 하는 진술은 사실이더라도 제소하겠다고 확실한 위협을 할 수 있는 쪽은 대부분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P119

영상물을 갖고 생각해 보자. 포르노를 금지하는 현행법은 우선 포르노가 여성들에게 해악을 준다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포르노가 퍼지면서 새로운 시장(예를 들면, 비디오나 컴퓨터)과 합법적인 장으로 영역을 넓혀가서는 여성에 대한 학대가 점점 더 학대로 보이지 안게 되자, 즉 여성에 대한 학대가 점점 더 섹스로 보이게 되자 현행법은 더욱 약화된다. 그래서 법원은 무엇이 포르노이고 무엇이 포르노가 아닌지를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 P131

성인 여성들을 사용한 포르노에 관한 법의 역사에 비춰 보면 아동 포르노의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동 포르노는 성취향이 다른 소수파의 표현(실제로 그렇더라도)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이들이 어린이와 섹스에 관한 ‘사상‘을 주장하는 것(실제로 그렇더라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아마도 심의를 받는 영화에 사용된 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런 결론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동 포르노가 유해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순전히 어린이들과 성인들 사이에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 터인데, 여전히 그런 불평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 P133

이러한 표현과 평등 문제의 맥락 속에서 다시 한번 나와 안드레아 드워킨이 성안했고 인디애나폴리스시에서 통과시킨 반포르노 조례에 대한 사법적 의견을 살펴 보자. 이 조례에서는 포르노가 행하는 해악들을 정리해서 평등권에 대한 침해로 정의하고, 그런 해악들을 차별행위로 간주하여 소추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조례에서는 포르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학대에서 차지한 포르노의 역할을 입증하고, 박탈된 자신들의 민권을 회복하고, 포르노를 중지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는 이것이 사상에 대한 검열로 간주되고 있다.- P133

평등이 단지 말에 불과한 게 아니라 현실인 사회에서는 인종족 또는 성적 공격과 모욕의 말들은 의미 없는 소리가 될 것이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섹스, 인간과 종이조각 사이의 섹스, 현실세계의 남자와 비현실세계이ㅡ 여자 사이의 섹스는 성적 흥분을 깨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학대의 골동품들은 박물관의 공룡 뼈 옆에 있는 유리상자 속에나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침묵의 상황이 그 뒤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하나의 권력 행위이고 침묵 속에 침잠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무권력의 경험이지만, 그 날이 오면 침묵의 상황은 권력행위도 아닐 것이요 강요된 무권력의 경험도 아닐 것이다. 그 날의 침묵은 생각을 넓힐 수 있는 휴식이 될 것이고, 표현에 모양을 지어주는 매력이 될 것이며, 새로운 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P155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여성운동가들은 콤스톡의 후예가 등장했다며 긴장했다. 그러나 제2의 콤스톡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수호하려는 남성이 아니라 포르노는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이에 대한 제재가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캐서린 맥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이었다. 변호사인 맥키넌과 작가인 드워킨은 포르노가 미국 사회의 여성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장려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평등권이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포르노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포르노의 규제를 주장한 사람들은 성도덕과 윤리적 차원이나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그릇된 영향 등을 고려애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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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쓰고 났더니 오늘치 에너지 다 소진되어버렸다..

단발머리 2019-12-10 12:33   좋아요 1 | URL
인용해주신 글들은 아직 다 못 읽고, 본문만 읽었어요.
읽기에도 힘든 글을 이렇게 정리하고 완성해 낸 그대에게 휴식 시간을 드리고 싶네요.
포르노에 관심이 없는데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하네요 ㅠㅠ

다락방 2019-12-10 12:44   좋아요 1 | URL
힘들긴 하지만 너무 좋은 독서였어요. 어서 빨리 드워킨 책도 읽고 싶어요. 드워킨 책중에 <MERCY>란 원제를 가진 [신에게는 딸이 없다]라는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은데 역시나 절판이고요 ㅎㅎ 출판사들이 분발해줘야 할텐데 말입니다.

[21세기에 지켜야 할 자존심] 보면 정희진 쌤이 앎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알아가는 과정 역시 그러하리라고 생각해요.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편이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또 그건 그게 아니니까요.

열심히 읽을거에요, 단발머리님. 열심히 읽고 쓸거에요. 그래도 일단 오늘은 치킨 좀 먹어야겠어요 ㅎㅎ

잠자냥 2019-12-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킨 먹을 만한 페이퍼네요. 두 마리 드셔도 될 거 같은데요. ㅎㅎ

전 여태까지 살면서 포르노 본 적 진짜 없는데, 이걸 또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는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ㅠ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포르노 권장하는 사회도 참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휴... 글에서 묘사된 부분만 읽어도 끔찍한데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니 세상 참....

암튼 치킨 많이 드세요. (참, 근데 발은 꼭 씻고 드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10 17: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치킨 허락 받았다. 만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르노를 어떻게 보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남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보는걸까요? 포르노를 보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봐요. 그게 그 위디스크.. 그런 데서 보는걸까요? 예전에 고등학생 때 목사 딸과... [동물적 본능]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아마도 포르노 보다는 에로 영화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자꾸만 야한 거 보자고 저를 불렀는데, 저는 매번 갈 순 없었어요. 그렇지만 포르노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알음알음으로 남자들끼리는 수단이 있는가 봅니다.

사실 포르노 본 여자들은 드물지 않나요? [터보레이터]도 같이 비디오방에서 보던 친구가 보다말고 토할 것 같다고 나가자고 해서 중간에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토할 것 같아서 못보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해보고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다니, 정말 괴이하지요?

아무튼 저는 퇴근을 하면 빨래를 돌리면서 치킨을 먹겠습니다.

발 씻고.. 꼭 씻고요... 냄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주말이 다 갔다. 어제 마시다 남겨둔 와인을 따라서 텔레비젼 앞 거실에 앉았는데 이 시간에 사람들은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걸까? 리모콘을 들고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볼만한 게 없다. 흥미를 끄는 프로그램이 없어. 다시보기로 걸어서 세계속으로나 세계테마기행을 볼까, 하다가, 다시 텔레비젼을 끄고 책 앞에 앉는다. 역시 책이 최고야. 책과 와인이 있는 일요일 저녁. 


낮잠을 좀 자둔 터라 아마도 오늘 늦은 밤까지 깨어있을텐데, 역시 책만한 친구가 없다.






















그리고 개인중고샵에 책들을 등록했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새책까지 저렴하게 내놨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usedshop/wshopitem.aspx?SC=12609



일요일 저녁 19:51

먼데이 모닝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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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대화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각자 어떤 대화냐는 다르겠지만, 아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친밀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나의 경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에너지를 듬뿍 받는 타입이다. 앞으로의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힘이 된달까. 사랑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며 사랑이 언제나 답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랑 없이도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는 확신에서 오는 충족감은 그 자체로 고유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은 많은 경우에 대화로 가능해진다.


슬퍼하거나 짜증날 때 유독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내 안에 사랑과 욕망이 가득찼을 때, 기쁨과 환희가 가득찼을 때 그걸 털어놓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내가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 그리고 사랑을 받는지, 내가 얼마나 지금 기쁜지 얼마나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진다.


며칠전 읽었던 책으로 리뷰도 썼지만, 공부뽕 가득 찬 것에 대해서도 마구 수다를 떨고 싶다. 그 날 당장 친구와 문자메세지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직 나는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더 하고 싶다. 저자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했는지에 대해서 조잘조잘 얘기하고 싶다. 아직 그 공부뽕에 대해서도 다 얘기하지 못해 뭔가 가슴 속에 쌓여있는데, 그런데 또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다. 'E. M. 포스터'의 《모리스》를 읽고 그런게 생겨버렸다.


상대의 눈을 보고 묻고 싶은데, 너라면 어떨것 같아 묻고 또 그 답을 듣고 싶은데, 한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모리스에 나를 대입해 이야기나눠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나는 욕구불만이다. 자, 글로라도 쓰도록 하자.



















모리스는 대학에 다니며 클라이브랑 사랑을 하게된다. 남자와 남자이니 동성애다. 그들은 3년간 사랑을 나눈다. 그들에게 생애 처음 사랑이었고 또 그들은 서로에게 반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클라이브의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모리스는 예전처럼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클라이브는 묘하게 달라졌어. 그러더니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가 싫어져서' 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정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자를 사랑했던 그는, 이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다. 동성애는 감춰야하고 병이고 죄악이었던 그 당시에 클라이브는 자신이 이제 '정상'이, 무려 '정상'이 되었다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하는 거다.



이것은 모리스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나랑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성(SEX)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하니, 대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성애를 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 아닌 타인은 '남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연애하던 시절 나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고 이성(SEX)적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연애를 했다. 우리는 그 시절 많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나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 사랑을 줬고 열정을 줬다. 시간과 에너지도 줬다. 우리가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와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어느날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 이제 더이상 너랑 연애를 할 수 없어, 나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어." 라고 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걸까. 나는 어쩌지? 다른 성(SEX)을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나에게로 돌아와'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먹힐까? 아예 성적 취향이 바뀌어버린건데, 그런 사람에게 나에게 돌아와,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클라이브는 이제 '정상'이 되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리스와의 사랑도 끝나버렸다고. 그러나 모리스에게 이 얘기는 갑작스럽고 모리스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 사랑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너는 이미 정리가 되었고 다른 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연히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클라이브가 여자랑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을 때조차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그 기대는 그렇게나 오래 간다. 그러나 클라이브에게 동성애는 이제 역겨운 것이 되어있고, 모리스가 어서 빨리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클라이브와 모리스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가 이제 그 누구보다 멀어진 사이가 된다.


그러나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사랑했던 시절, 그 강렬한 우정은 진짜였으므로,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다시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그렇게 되어야지. 그러나 모리스의 동성애를 고쳐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리스의 사랑, 모리스의 성적 취향은 고쳐질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선천적인 것이었다. 그런 모리스 안에는 다른 남성을 향한 욕망이 들끓어 오른다. 플라토닉 한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그 모든 걸 나눌 애인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치료도 받으려 해보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모리스가 되어, 나에게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나의 이성애인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는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나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성적 취향이 바뀌었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긴 거라면, 다른 사랑을 하는 거라면, 기다릴 수 있다. 어쩌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라도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쯤은 있는 거니까. 동백이 엄마는 용식이에게 '기다리면 안와, 기다리는 사람은 쳐들어오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쯤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그가 좋아하는 성별에 내가 속하니까.

그러나 그가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나의 기다림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거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가 이성애를 하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다시 이성애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만약 그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나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이 끝나버렸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친구로 남는 방법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관계는 나와 그의 관계와 다르고, 나는 모리스가 아니다. 나는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내 안에 애정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소식을 전하며 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을 접고, 연인의 포지션은 세이 굿바이 해야겠지만, 친구의 포지션으로 새롭게 헬로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잡아도 소용이 없잖아. 그러면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라는 포지션을 내 안에 되새기면서.



"그러면 우리 좋은 일 있으면 알려주는 사이가 되자."

"그래."

"음, 나쁜일도 알려주자, 그냥 일어나는 일 모두 다."

"그게 사귀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러면 30프로만 이야기하자."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친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동성애인을 질투하게 될까? 모르겠다.




모리스는 스물네살이다.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 모리스는 젊다. 나는 모리스가 참 젊구나, 생각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그는 이미 성숙한 어른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보는 모리스는 젊다. 계급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우리 함께하자, 라고 말할 수 있는 데에서는 아, 나는 그가 한없이 젊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답이었을지도 몰라. 현실감각 없이 무조건 사랑하니까 우린 함께하자, 라는 것이 궁극적 답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어야 했을까?



나는 아무 상관 없어. 누구라도 만날 거고, 어떤 일도 피하지 않을 거야. 의심하려면 의심하라고 해. 그런 건 이제 지겨워. 형한테 표를 취소해 달라고 해. 비용은 내가 댈 테니. 그게 바로 우리가 자유를 얻는 출발점이 되는 거야. 그리고 나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거지. 모험이지만 이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은 없어.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잖아. (p.329)



그러게.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그런 선택들을 하고 결국은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 최선이었을까? 나는 잘하고 있는걸까? 나는 최선을 선택한걸까? 이게 맞는건가? 이게 나한테 더 나은건가?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모리스와 그의 애인에게는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러니까 모리스가 '그가 어디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약속을 한 것도 아니지만, '어딜가야 그를 볼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그가 있는 장소, 그가 있고자 하는 장소, 그에게 그곳에서 만나자, 했던 바로 그 장소, 펜지의 보트하우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펜지의 보트하우스 같은 장소를 꿈꾸었다. 나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거기에 가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러나 애인과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런 장소를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장소가 없었으니까. 올림픽공원의 어느 호수앞 벤치, 이런거 정해뒀으면 좋았을텐데.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으면서, 나는 외로울 때면 항상 여기를 와요, 나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꿈이었어, 나는 모든 생각을 여기에서만 해, 나는 여기에 오면 마음에 안정을 찾아, 여기 이곳을 내가 무척 좋아해, 여기서 저 호수를 바라보면 그곳이 천국인 것 같아, 나는 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내, 여기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완벽해, 나는 항상 당신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 나만의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런 곳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에게 그걸 언급한 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를 만나고 싶어질 때, 그러나 대체 어디로 가야 나를 만날지 알 수 없을 때, 아 맞다 거기에 가면 그녀가 있어! 이런거 확신하고 달려올 수 있을텐데. 다다다닥 숨이 차게 뛰어 오면 벤치에 여느때처럼 가만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혹은 책을 읽는 나를 만날 수 있을텐데. 그러면 그는 가쁜 숨을 다독일 수 있을텐데. 헉헉, 숨을 내쉬면서 진정시키고, 여기에 오면 너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여기에 있는 건 변함이 없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에 있는 거 알면서 왜 뛰어왔어, 하면서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가만 옆에 와 앉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넬텐데. 땀 닦아, 냄새난다...


(응?)



모리스와 애인에게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는 게 너무 부럽다. 너무 부러워.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 나도 갖고 싶어, 펜지의 보트하우스. 그리고 그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도 몰라, 나는. 그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그가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몰라. 아, 자기 방 침대... 그런 거 말고. 나도 그런 거 있어야 되는데, 오고 싶을 때 와서 나 만날 수 있게.


자, 잘들어라.

내가 이제 말해줄게.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를.

어디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말해줄게.

약속없이 나를 만나려면 어디로 와야 하는지 말해줄게.

잘 들어, 두번 말하지 않아. 이 여자가 어디있을까, 어디로 가면 이 여자를 볼 수 있을까, 안타까워 뛰어오고 싶다면, 나는, 바로, 언제나,




회사에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일곱시반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그 시간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회사에 있다!!!!!!!!!!!!!!!!!!!!!!!!!!!!!!!!!!!!!!



내 사무실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말고, 어디에 있을까 발 구르지 말고, 안타까워하지말고, 애태우지말고, 그냥,



회사로 와! 내 사무실로 와! 내 회사가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 다!!






어제 집에 가서 바질페스토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오전에 그걸 만들 생각에 들떠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만들었어. 그렇게 상을 차려냈다.





그러나 맛은.. 내가 기대한만큼은 아니었어. 흐음. 나는 내가 만든 파스타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만들어서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파스타 를 안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거 먹다가 결국 밥을 갖다 먹었는데, 왜냐하면 저 사진만 보면 우아한듯 보이지만, 사실 감춰진 솔직한 사진은 이것이다.





갓김치랑 총각무김치가 있었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술상이여. 저렇게 먹다가 밥 먹고 싶어서 밥 가져와서 먹으면서, 역시 나는 밥과 김치가 좋아. 내가 만든 파스타는 싫어.. 하게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만든 파스타를 나는 싫어해. 으하하하하.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배도 좀 불렀고. 넷플릭스 화면을 열고 뭘 볼까 하다가, <인간중독> 포스터를 보았다.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송승헌의 섹스씬 연기가 매우 구렸다고 기억하고 있고, 영화도 별로였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송승헌에 비해 꽤 열연했다고 기억하는데, 그런데 여자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자 매우 속상해졌다. 한 영화에서 여배우에 대해 기억하는 게 노출이 많고 섹스씬 열연이라니, 이제와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니. 물론 내가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뭔가 배우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다시 오만년만에 인간중독을 재생시켰다. 여전히 송승헌의 섹스신은 엄청 구렸다. 도무지 움직일줄 모르는 남자였다. 저렇게 잘생겨서 연기를 어쩜 저렇게 하냐 싶었다. 여자배우가 확실히 훨씬 더 열심히 연기하는 것 같았다. 여자배우 이름은 '임지연' 이었다. 이 영화 당시에 에로틱하다고 엄청 선전하고 배우의 노출씬으로 얘기도 있었던것 같은데, 그 후에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그 당시 그녀의 노출이나 에로틱한 장면들로 이슈가 되었을지언정,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 그녀의 일은?





영화를 다시 본 게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니, 임지연은 분명 다른 필모들을 채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본 임지연의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다.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을텐데, 분명 뭔가 했을텐데.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보니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더라. 그러나 그중에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워낙에 한국 영화를 안보고 텔레비젼을 안보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뭔가 하나를 더 보자, 싶었다. 어쩌면 이렇게 볼만한 게 없을까. 내가 좋아할만한 작품이 아무것도 없네.. 그나마 다운로드가 가능한 게 [럭키] 였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 아아, 나에게 내적갈등 찾아온다. 간신도 보기 싫은데 그렇다면 럭키 뿐인가.. 럭키.. 넘나 내 취향 아닌 영화.. 관심이 1도 없는 영화인데, 나는 임지연을 보기 위해 럭키를 보아야 하나. 나여..


넷플릭스에 럭키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있었다. 그래, 넷플로 보자. 임지연님, 님을 보기 위해, 님을 기억하기 위해 저는 럭키를 봅니다. 럭키를 다운로드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좋은 작품을 필모에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말이다 보니 다들 시간이 빠르다, 벌써 12월이다 얘기를 한다. 그만큼 많이 하는 얘기가 아마도 '한 것도 없이 시간만 갔네'일 것이다. 해놓은게 뭐있나, 아무것도 없다, 하는 얘기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무언가를 했을거다. 하다못해 맹렬히 살아오기라도 했잖아.


회사에 입사한지 이제 1년 되어가는 막내가 며칠전에 그랬다. 차장님 벌써 12월이에요, 입사하고나니 시간이 빨라요,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나이만 먹어요, 하고. 이제 이십대 초반의 막내가 자신이 일년간 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씨가 한 게 왜 없어, 회사에 입사해서 돈 벌고 있고 2개월전부터는 운동도 시작했잖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 두 가지를 올해 시작했는데, 얼마나 대단해."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날까지 살아오면서도 '살면서 한 게 없어'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또 말을 하기도 하고. 이번 해에 나에게는 어떤 뚜렷한 사건도 업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시간이 흐른 건 아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무사히 마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가.



일 년간 일상을 보내느라 다들 고생하지 않았나.





오늘 아침엔 집에서 밥을 안먹고 나왔는데 회사 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스벅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굳이 사진 찍어 올린다.







아, 그리고 이 얘기 저 얘기 해서 까먹었을까봐 끝에 다시 쓰는데,



태사자는 집에 있고

나는 회사에 있다.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회사로 오면 된다.

까먹지마.






그는 반듯하게 살기로 했지만, 그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도 속이지 안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이것이 시금석이었는데-남성에게만 끌리는 마음을 두고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남자를 사랑했고,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남자를 끌어안고 싶었고 자기 존재를 그들과 융합시키기를 열망했다. 이제 자신의 사랑에 응답해 준 남자를 잃어버리고서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P85

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너댓 명가량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그도 클라이브와 마찬가지로 홀어머니에 여자 형제만 둘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둘 사이의 유대감을 설명하기에는 클라이브의 두뇌가 너무 냉철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홀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고, 그건 최소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둘이 다시 만나자마자 그는 솟구치는 감정에 휘말려 친밀한 관계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남자는 부르주아였고 세련미도 없고 어리석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더럼은 집에서 일어난 문제를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가 채프먼을 무시하고 돌려 보낸 일에 정도 이상으로 감격했다. 홀이 장난을 치기 시작하자 클라이브는 매혹되었다.- P99

「모리스, 모리스, 모리스 ……아, 모리스 ……」
「알아.」
「모리스, 사랑해.」
「나도.」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키스했다. 그런 뒤 모리스는 올 때처럼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P102

그 뒤로 2년 동안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남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누렸다. 그들은 천성이 다정하고 굳건했으며, 클라이브 덕분에 날카로운 분별력도 발휘되었다. 클라이브는 황홀한 감정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향한 길을 낼 수 있음을 알고, 지속적 힘을 가진 관계를 꾸려 냈다. 사랑을 만든 것이 모리스라면, 그것을 보존하고 사랑의 강물로 정원에 물을 댄 것은 클라이브였다. 그는 냉소나 감상 때문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낭비되는 걸 참지 못했다.- P137

클라이브는 요즘 온화한 태도를 잃었다. 모리스가 볼 때 그것이 가장 심각한 증상이었다. 그는 작은 악의가 담긴 말들을 심심찮게 했고, 모리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이용해서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그는 모리스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랬다면 강건한 자의 사랑을 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따금 그가 외면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듯 보이는 것은 반응을 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부터 다른 뺨도 내주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합일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분개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때로 평행을 다리는 대화를 자못 유쾌한 태도로 진행하면서 가끔 클리이브가 곁에 있음을 확인하듯 그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가 뒤따라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홀로 빛을 향해 나아갔다.- P154

「알렉, 너한테 친구가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니? 오직 <내 친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사람, 너를 도와주고 너도 그를 돕는 사람. 친구.」모리스는 갑자기 감상에 젖어 되뇌었다. 「너의 온 생을 함께하고 너도 그의 온 생을 함께할 사람. 그런데 나는 꿈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P278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애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불가피했다. 그런 뒤 눈이 아파 오기 시작했고, 그는 지난 경험으로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곧 자제력을 찾았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선 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고, 어머니를 달래고 만찬 주최자에게 사과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는 평소처럼 출근햇다. 산더미 같은 일이 그를 맞았다. 그의 삶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도 없었다. 클라이브를 만나기 전에 그랬듯이, 그와 헤어진 뒤 그랬듯이, 그는 다시 외로움을 안고 남겨졌고 그것은 이제 영원할 것이다. 그는 실패했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알렉도 실패하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한 사람이었다. 사랑은 실패했다. 사랑은 이따금 기쁨을 가져다주는 감정일 뿐이었다.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P330

그는 지난 6년 동안 피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고 로맨스가 시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렉은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저 모리스처럼 사회에 파묻힌 한 남자였으며, 그를 위해 바다도 숲도 산들바람도 태양도 찬미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밤 호텔에 가지 말아야 했다. 그 때문에 너무도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빗속에서 악수만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P332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너져선 안 된다. 그는 클라이브 때문에 무수히 무너졌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컴컴해지는 폐허에서 무너진다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마음을 굳게 먹는 것, 냉정을 유지하는 것, 믿음을 갖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 P339

모리스는 손을 폈다. 빛나는 꽃잎들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그래, 너는 내게 얼마간은 마음을 쓰지.」그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 얼마간에 내 인생 전부를 걸 수는 없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앤한테 네 인생을 걸고 있어. 너는 그 관계가 플라토닉한지 어쩐지 하는 건 걱정하지 않고 그저 그게 네 인생 전부를 걸 만큼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 나는 네가 앤과 정치에 쏟고 남는 5분 동안 써주는 마음에 내 인생을 걸 수는 없어. 날 만나는 일만 없다면 너는 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해줄 거야. 이 지옥 같은 1년 내내 그랬으니까. 너는 내가 네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또 나를 결혼시키려고 아낌없이 수고할 거야. 그래야 손을 털 수 있을 테니까. 너도 나에겐 얼마간은 신경을 쓰지. 나도 알아.」- P346

클라이브가 항변하려 하자 그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네가 원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네 사람이었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른 남자의 것이 되었어. 평생 한탄 속에 방황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그 남자는 네게는 충격적인 의미로 내 사람이야.」-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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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2-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 왜 푸짐해요? 설레게? ㅋㅋㅋㅋㅋㅋㅋ 저 새우 봐 동해바다 새우 다 들었네! 나 왜 신남??

다락방 2019-12-05 14:25   좋아요 0 | URL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저 새우 베트남산 새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모리스 관련 내용 읽으면서는 아련했는데 갑자기 파스타에 총각무에서 빵터지잖아요. ㅋㅋㅋㅋ 파스타에 갓김치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다락방 님 덕분에 모리스 다시 한번 읽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9-12-05 14:45   좋아요 0 | URL
파스타에 갓김치 먹으니 갓김치가 파스타를 죽여버렸어요. 결국 갓김치승!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 책 읽고 뭔가 막 아!! 이렇게 되어서 토요일에 모리스 영화 충동적으로 예매해뒀거든요. 근데 극장 가자니 세상 귀찮음이 밀려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소할까, 또 이러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5:31   좋아요 0 | URL
우아 이 영화 엄청 좋아요. 근데 거의 막 내렸던데 어디서 예매를!
전 시간 안 맞아서 결국 스크린에서 보는 거 놓쳤어요. ㅠㅠ
(아 뾰루지 글 봤어요. 집에서 쉬세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05 15:53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KU시네마테크 에서 합니다. 건대.. 건대는 저희 집에서 멀지 않아 예약했건만..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 봐서 다시 예약하든가 해야겠어요.

하늘초록 2019-12-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봤어요..글 읽어보니 책이 훨 좋을것같네요..^^

다락방 2019-12-06 17:41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하는 분들 많던데, 저도 읽으니까 좋더라고요.

보슬비 2019-12-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꾸떡한 파스타가 좋아서 자주 막해서 먹어도 맛있던데요 ㅋㅋㅋㅋㅋ
사실 저도 바질페스토로 파스타는 성공 못했어요. 오히려 바질 페스토는 호밀빵에 발라서 치즈 올려먹거나, 맛있는 빵에 찍어 먹는쪽이 더 맛있더라구요. 그리고 이번에 저도 파스타 먹으면사 갓김치 먹었는데, 다른점은 푹 삭은 갓김치를 씻어서 달달고소하고 볶아서 같이 먹으니 피클보다 더 낫더라구요 ^^

다락방 2019-12-08 13:05   좋아요 1 | URL
바질페스토는 역시 빵에다 발라먹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스파게티는 정말 별로였어요. 그냥 오일파스타가 나은 듯..
보슬비님은 진짜 요리왕이신 것 같아요. 갓김치를 씻어서 볶아 먹을 생각을 하다니... 와, 저는 읽으면서도 그 맛이 상상도 안돼요. 오늘 아침은 늦게 일어나 라면 끓여서 밥 말아 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12-0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2-08 13:04   좋아요 1 | URL
https://blog.aladin.co.kr/fallen77/9985143

이 페이퍼 참고하세요. 태사자를 아실 수 있습니다!!

clavis 2019-12-1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생했어요 ㅠㅠㅠ락방님 누구세요? 누구시기에 저의 1년을 위로해주시나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로맨틱하게 만드시는 회사에 계신 락방님!

저도 가장 작은 것을 가장 열정적으로..
체육과목 레포트하러 떠나겠습니다

다락방 2019-12-17 14:19   좋아요 1 | URL
체육과목도 레포트가 있나요... 어지러운 세상이네요.
아니, 클래비스님이야 말로 누구보다 고생하신 분이 아닙니까.
그 먼 나라에서 시험보랴 공부하랴 연습하랴 적응하랴..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일 년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클래비스님. 연말과 연초에는 그토록이나 고생한 클래비스님께 평안과 안정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오늘 친구와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내 인생에 내가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의 자아'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그렇게 보여' 라고 말했다.


나는 좀 더 깊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거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닌, 내 힘으로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계속 사랑하면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게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이지만, 끊임없이 계속 읽고 쓰기를 지속하고 싶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라는 것, 사유라든가 통찰이라 불리는 그 모든 것들을 놓지 않고 싶다. 책을 읽는 족족 지식이 되어 머리에 쌓인다면 나는 박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 같은 것은 아니기에, 읽는대로 족족 그것들을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도 계속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글로 써내는 것은, 내가 나를 좀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 되게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출근길의 독서를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출퇴근의 독서는 일상이긴 하지만, 퇴근길의 독서는 포기할 때도 있는 한편(그럴 땐 영화를 본다), 출근길에는 결코,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경험상 출근할 때 지하철 안 집중력이 하루중 최고다. 그 때 읽는 것들은 정말로 내 몸이 쭉쭉 빨아들이는 것 같고 사고가 확장되는 게 막 느껴져. 그래서 너무 좋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그 순간을 다른 일로 낭비할 수 없어. 그 때만큼은 꼭 책을 읽으려고 한다.




















요즘 출근길에는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를 읽고 있는데, 와, 이 책은 진짜 너무 좋다. 내가 다 읽으면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또 리뷰를 잘 못써? 그렇지만 이 책은 내가 아침에 생각하며 읽기에 진짜 맞춤한 책이고, 저자의 통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라 너무 좋다.


레이첼 모랜은 인생의 순간순간을 어릴 때부터 그냥 넘겼던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눈앞에 닥친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거기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것인지,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분명히 파악하는 사람이었고,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거나 비판하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얻어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렇게나 좋은 책이 나왔겠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깊은 사유와 통찰이 가득해서 형광펜 들고 밑줄 긋기를 수시로 하고 있고, 포스트잇 플래그도 덕지덕지 붙여가며 이제 겨우 절반을 읽었다. 매번 이렇게나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한 문장들을 토로할 수 있다니, 이런 책을 써줌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응원도 격하게 보내고 싶다. 당신은 글을 더 써야 합니다. 이 책은 이 책 자체로 매우 의미있고 대단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당신의 생각과 통찰을 드러내는 글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매 꼭지가 다 인상적이지만, 특히나 나는 '타락의 상호작용'에서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성구매자와 성매매여성이 서로 함께 타락해가는 것.


성구매 경험이 있는 남자, 그리고 성구매를 계속 하는 남자들은 무수히 많다. 남자사람 친구들로부터 그런 경험을 듣기도 했고, 애인으로부터 들었던 적도 있다. 애인이나 아내가 있으면서도 성구매를 하고, 그것을 굳이 숨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건 우리 모두가 아는 일 아닌가. 일전에 회사 남자동료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내 여자친구는 자기 임신하면 내 성욕 어떻게 참냐고 성매매 하라고 했어' 라며 자랑했다. 오, 신이시여. 그는 여자친구가 매우 이해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맙소사. 그런 과정에서 아마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성매매를 대체 왜 하냐는 물음에 '거기서는 아내나 여자친구가 해주지 않는 걸 해주거든.' 어떤가, 다들 들어보지 않았는가.



자, 바로 이 지점에서 타락의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그 남성은 생리혈에 성적으로 도취되었다. 그의 성향은 평생 성매매 여성을 방문하도록 이끌었는데, 당연히 사생활에서 만나는 여성들과는 이런 욕망을 공유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성매매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자신과 인생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이성적으로 기대를 할 수 없는 변태 성향을 다른 계층의 여성에게 떠넘기려는 남성의 고집이다. 여성들은 존중과 경멸, 품위와 천박, 종경과 비난이라는 두 부류로 구별되게 나뉜다.

내 친구는 생리혈이 가장 많이 나올 때 그 구매자와 만나기로 하고 적어도 만나기 하루 전에 탐폰을 착용해서 피에 흠뻑 젖도록 했다. 그 구매자는 항상 단호하게 탐폰이 완전히 젖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만나면 그녀는 탐폰을 빼고 그 구매자는 어린 시절 경험을 다시 살게 된다.

나의 친구와 그 캐나다인 성구매자 사이 특이한 타락의 상호작용은 이렇다. 그 친구는 그 구매자가 만났던 모든 여성들과 감정적으로 거리를 갖게 만드는 그의 더럽고 역겨운 습관이 지속되어 그 구매자가 자신의 가치를 낮추도록 도모했으며, 그 구매자는 다른 어떤 여성에게도 제시하지 못할 역할을 감히 그녀에게 제시함으로써 그녀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성매매 내 타락의 상호작용은 바로 이와 같다. 영향을 주고, 반영하며 합병하면서 쌍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요구되면 제공되고, 찾으면 충족되고, 제시되면 받아들여진다. 타락은 스스로 갱신하고 재생하는 데 고수이고, 특정 박테리아가 습한 장소에서 가장 잘 번식하듯이 타락은 성매매를 가장 최적의 환경으로 여긴다. (p.146)




아, 너무 소름끼치게 완벽한 구절이 아닌가. 여기서 예로든 생리혈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변태성향이긴 하지만, 다른 요구라 해도 마찬가지다. 감히 아내나 여자친구에게는 요구하지 못할 거라는 걸 스스로 알면서 성매매 여성에게는 요구하는 바로 그 지점, 그것으로 일단 여자들은 나뉘어진다. 이 변태를 요구할 수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로. 그리고 성매매시 그 요구가 허용됨으로써 그 남자의 그 변태성향, 사라져야 할 잘못된 욕망은 지속,유지될 수 있다. 그가 나쁜 행동을 없애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성매매 여성은 다른 여자들이 허락하지 않을만한 행위를 허락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게 된다. 레이첼 모랜은 이것을 '타락의 상호작용'이라고 표현한다. 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이런 일들을 듣고 보고 경험하면서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닌가. 그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 를 레이첼 모랜은 깊이 들여다보는 거다. 게다가, 그걸 글로 정리해 써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나는 너무 어마어마한 글을 만난 것 같다. 이 어마어마한 글을 만나는 바람에 나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을 생각해보게 되고 들여다보지 못했던 지점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아, 리뷰 써야되는데 여기다 너무 할 말 다 해버렸네. 



이런 독서를 대체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나는 더 읽고 싶다. 더 읽고 더 알고 더 생각하고 싶다.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 역시 나의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확장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내 안에 많은 것들을,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차곡차곡 쌓고 싶다. 사람이 단단해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정말이지 독서가 으뜸이다. 독서가 진짜 최고되는 것이야.



여러분, 책을 읽자. 여러분 페이드 포 읽자. 페이드 포 진짜 너무 너무좋다. 너무 너무 좋아 진짜. 한 인간이 사유랄 수 있는 최대치, 통찰할 수 있는 최대치가 바로 이 책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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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1-30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최고! 에 공감합니다. 책은 사랑이죠ㅎㅎㅎ. 명료하고 깔끔한 리뷰 읽고 많이 생각하고 도움받고 갑니다.

다락방 2019-12-02 09:00   좋아요 1 | URL
으흐흐 알라딘은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좋아요. 독서 좋다는 말에 호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예요.
월요일 아침입니다. 즐겁게 시작하세요!

붕붕툐툐 2019-11-3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길 지하철 독서의 매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도 읽고 싶지만 젤 안 읽히는 책을 그 시간에 읽어요~ 페이드포 읽고 싶은 책에 눌러 담았습니다:)

다락방 2019-12-02 09:01   좋아요 0 | URL
오오 븅븅툐툐님도 출근 시간에 제일 집중이 잘 되시나요? 후훗.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책을 읽으면서 왔어요. 그럴 때는 정말이지 출근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집니다. 우리 언제나 좋은 책 읽으면서 생각 많이 많이 하면서 살아갑시다!
 


















기존에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볼 때마다 재미있고 좋다는 말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읽어보자 싶어서 사두었는데, 정작 내가 이 책을 읽게된 건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때문이었다. 보부아르는 이 책이 지식을 가진 남자가 창녀를 구원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다. 물론 다른 책을 깐 거에 비하면 잠깐 언급하는 정도로 넘어가긴 하는데 나는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 어차피 사둔 책, 보부아르 님이 무슨 말을 하는가 보자, 하고 읽기 시작했다.


일단 이 책은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그러니 고전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것일테다. 누군가 이 책 재미있냐, 라고 물어오면 나는 고민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게다가 의미도 있다. 남자 주인공 '래리' 는 어떤 면에서 너무 닮고 싶고 부러우니까. 내가 딱 원하는 그런 타입이다. 물론 내가 만나고 싶다거나 사귀고 싶은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다'는 그런 타입. 삶 전반에 걸쳐서는 절대 닮고 싶지 않지만, 그가 공부를 열망하고 알고 싶어하고 열심히 해서 외국어도 몇 개나 마스터하는 그 과정들에 있어서만큼은 '으윽 나도 이러고 싶다'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지적한 부분이 무엇인지는, 아마 최근에 몸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이 책 속에서 그려내는 여성, 그 여성을 보는 편협한 시각에 대해서. 이 책속에는 다양한 생김새와 다양한 성격의 여자가 나오지만, 그러나 그 여자들 모두 남자에게 기대어 사는 여자들이다. 이것은 그 시대의 한계 때문에 그런 면도 분명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중산층의 백인 남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래리'와 '이사벨'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참전한 군인이었던 래리는 참전으로 인한 상처를 갖고 살면서 세속적인 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계속 공부하고 싶고 삶의 진리를 알고 싶다. 이에 이사벨은 그를 설득하고자 한다. 세상이 그런 게 아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취업을 해야 한다, 고. 계속 공부만 하고 살고싶다는 건 나태하고 책임회피라고. 그러나 래리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내 대답은 이거야. 모든 미국인이 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길을 따라가니까. 당신이 미처 모르고 있는 건, 공부하고 싶다는 내 욕구가 대단히 크다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레이가 큰돈을 벌겠다는 열정을 가진 것처럼 말이야. 몇 년쯤 공부를 하며 보낸다고 해서 그것이 조국에 대한 배신이 되는 일일까?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게도 미국에 기여할 만한 무언가가 생길지도 몰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 말이야. 물론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 하지만 설령 실패한다 해도, 적어도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보다 더 궁색하게 살게 되지는 않을 거야." (p.119)



이사벨은 그런 그가 너무 답답하다. 결혼을 해야 되는데, 결혼할 남자가 공부만 하겠다고 하니 미치겠다. 자기는 파티에도 가야 하고 예쁜 옷도 입고 다녀야 하는데.



"당신은 정말 너무 현실감각이 없어. 내가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구. 나는 아직 젊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 남들이 하는 것들을 하고 싶단 말이야. 파티에도 가고, 춤추러도 가고 싶고, 골프도 치고 승마도 하고 싶어. 예쁜 옷도 마음껏 입고 싶고. 친구들처럼 멋진 옷을 못 입는 게 여자한테는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알아? 친구들이 싫증나서 파는 헌 옷을 사서 입는 게 어떤 기분일지, 누군가 딱한 마음에서 새 옷을 선물해 주면 그것을 고마워하며 받아야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하러 좋은 미용사한테 가지도 못할 거야. 전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난 싫어. 내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싶어. 당신이 도서관에 책이나 읽으러 가 버리면, 나더러 하루 종일 혼자 뭘 하라는 거야? 가게의 유리 진열장이나 들여다보며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뤽상부르 공원에 앉아서 애가 놀다가 다치지 않는지 보기나 하란 말이야?" (p.121)




나는 위의 래리의 입장도 밑의 이사벨 입장도 둘다 너무나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는 래리 같은 삶을 살고 싶을지언정, 내가 만나는 남자가 래리 같은 남자라면 나 역시도 거침없이 이별을 말할 것이다. 공부하면서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가 먹고 살아갈 돈은 누군가가 벌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자신은 계속 공부를 하고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아, 너무 싫다. 그런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책 속에서 래리는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돈을 상속받아 괜찮다. 다만, 이사벨이 원하는 그런 부유한 삶을 사는 데에는 못미칠 뿐. 이사벨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을 가져야만 한다. 래리가 원하는 삶은 지금 래리의 형편으로 가능한데, 나 역시 그러한 형편이라면 아마 래리처럼 말하고 래리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건 지금 현재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책 읽고 여행다니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데. 책 읽고 영화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고 글 쓰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데.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에 출근해 퇴근까지 갇혀있다가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삶은, 그 자체로 짜릿함도 없진 않지만, 나는 좀 더 여유있게 좀 더 오랜 시간을 책 읽으며 살고 싶다. 물론 노력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겠지만, 래리처럼 공부에만 몰두해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단인 외국어들도 다 배우고 싶다. 그렇지만 회사에 출퇴근 하면 퇴근 뒤에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의 내 삶이야. 알고 싶은 게 많아서 공부하고 싶고 여기와는 다른 세상을 돌아보면서 삶이란 무엇인가 자꾸 질문하는 삶을 사는 것 자체는 내가 하고 싶은 거다.


또한 이사벨의 입장도 역시 알겠다. 나 역시 편하고 부유하게 살고 싶다. 이사벨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파티며 춤.. 같은 거 안좋아하고 골프.. 관심 없다는 게 .. 뭐 그렇지만 승마라면 좀 좋은데? 아무튼 나도 좋은 곳으로 여행 다니면서 먹고 싶은 거 맛있게 먹고 즐기는 삶을 살고 싶어. 그러니까 젊은 이사벨이 요구하는 삶이란 것이, 나랑 디테일은 다르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다. 이사벨이 저런 얘기를 몇 년전의 한국에서 글로 쓰거나 말로 했다면 아마 남자들이 김치녀 된장녀라고 욕했겠다, 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했다. '뭐야, 남자가 고생해서 돈 벌어오면 너는 그걸로 예쁜 옷이나 산다는 거냐?!' 하는 비난을 아마 대부분의 한국남자가 하지 않을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 여기서 이사벨과 나의 차이가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왜? 내가 직장에 다니니까.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서 회사에 나를 가둬두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내가 살고 있어. 그렇게 한달동안 일하면 통장에 잠깐이지만 월급이 똭- 꽂힌다. 나는 그 돈으로 책을 사고, 와인 냉장고를 채우고(요즘은 못채우고 있다. 돈이 ... 돈이.. ), 비행기를 예약한다.



내가 원하는 삶과 상대가 지향하는 삶이 다르면, 같이 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일테다. 한쪽은 공부만 하고 싶고 한쪽은 놀고만 싶은데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어울리는 한쌍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저들은 어떻게도 헤어지는 게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또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도 더 낫다고 보여진다. 나였어도 래리랑 헤어질 것이었지만, 그것은 삶의 방식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사벨이 래리랑 헤어지는 건, 래리가 그녀에게 그녀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벨에게는 그것이 어렵다.


무슨 말이냐면, 이 책의 초판은 1944년에 쓰여졌다. 게다가 이 책의 배경은 1940년대 전이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자체가 지금의 나와 달랐다는 거다. 여자들에게 일자리도 그리고 남자와 같은 임금도 보장되지 않았다. 여자의 삶은 전적으로 남자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 여자가 부자로 살고 싶다면, 부자인 남자랑 결혼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여자에게 돈이 필요하다면 아버지에게 그 다음엔 남편에게 기댔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이사벨이 래리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나와 다르다. 그 후에 이사벨은 부자 남자 '그레이'를 사귀고 결혼해서 대단한 부자로 산다. 게다가 그레이는 이사벨을 너무나 사랑해 굉장히 다정하게 잘 대해준다. 그러니까 래리를 선택하지 않은 것까지는 나와 이사벨이 같지만, 그 후의 삶은 나와 이사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사벨은 1940년대를 살아가고 있고 나는 2019년을 살고 있으니까. 남녀 임금차이가 결코 그때보다 나아지진 않았지만, 나는 내가 일을 한다는 선택지가 내 앞에 있고 이사벨에게는 다른 남자라는 선택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다.



나는 예쁜 옷을 마음껏 입고 싶다고 말하는 이사벨을 그려 넣은 것이 여성 혐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건 그저 이사벨이란 사람 자체의 욕망일 것이다. 게다가 남편에게 그걸 기대하고 바라는 것 역시도 여성혐오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이 책 전반에 걸쳐 서머싯 몸이 그 시대적 배경과 여자들이 놓여있었던 상황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서머싯 몸은 '이런 여자도 있고 이런 여자도 있지' 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단지 썼을 뿐이고, 딱히 그런 여자들에 대해 나쁜 시선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자들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해 자체는 전무한 것. 그에게 삶을 아름답게 구성하고 삶의 진리에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달려가고자 애를 쓰는 건, 남자들만의 몫이었다. 이게 너무 당연한 지점인 거다, 그에게는.

쉽게 얘기하자면, 서머싯 몸 속의 소설에서 남자들에게는 미래가 있었지만 여자들에게는 현재만 있다는 것.



래리는 남편을 잃고 알콜 중독에 약물중독이 되어 이 남자 저 남자랑 자고 다니는 구제불능의 소피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어릴 적에 알았던 소피는 시를 쓰는 맑은 영혼이었다며. 이에 이사벨은 격분한다. 그렇게 막돼먹고 지저분한 여자에게 래리를 줄 순 없다고. 하아..


자, 래리가 소피랑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왜 결혼하려고 한걸까? 그것은 막돼먹은 소피의 인생을 구원하고자 한 것. 이것부터가 너무 괘씸하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랑 함께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구원이 가능할거라고 믿은 것. 내가 소피였다면, 내가 아무리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내 인생을 바꿔줄 의도로 결혼하자고 한 남자에게 예스를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도대체 자기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몸은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 남자가 매춘부를 현모양처로 바꾸는 일. 화자인 몸이 분노하는 이사벨에게 말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매춘부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있지. 한 명은 스페인 사람이고 두 명은 동양 사람인데, 전부들 아내를 현모양처로 바꿔놨다구.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줬으니 고마워서라도 잘하겠지. 게다가 남자를 만족시키는 방법까지 잘 알고 있으니까." (p.343)



매춘부란 무엇이고 현모양처란 무엇인가.

인생의 저 깊은 수렁에 빠진 건 매춘부이고 궁극적으로 추구할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은 현모양처란 말인가. 게다가 그렇게 해주었기에 남자에게 감사해야 하는것이 그녀들의 몫인가. 그렇다면 매춘부를 매춘부로 만드는 건 누구인가..

몸은 매춘부에 대한 나쁜 인식을 가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여자라고 할 순 없지.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고 아무하고나 자는 사람도 많아. 물론 좋은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지.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 혹은 불친절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거든." (p.341)



이런 몸의 말에 이사벨은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고 방방 뛰는데, 그러니까 이거다. 매춘부가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들을 혐오하거나 하진 않아, 그렇지만 그 인생은 남자들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어, 그건 가능해!


이게 뭐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매춘부는 왜 매춘부다? 매춘부로부터 성을 구매하는 건 누구다? 다시 말하지만, 여자들에게 일자리가 풍족하고 남녀와 같은 임금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여자들에게도 자신들이 관리할 수 있는 경제권이 있었다면 여자들이 매춘부로 내몰렸을까? 참나원 어처구니가 없고요. 이러니까 보부아르 님이 제2의 성에서 까주신 겁니다. 네? 알겠어요? 나는 성매매를 하는 남자도 싫지만, 매춘부에 대해 시혜적인 시선을 가진 남자도 개역겹다 진짜. 그래봤자 동등한 위치에 놓고 보지 않는거니까.



그렇게나 망가진 여자를 비난하는 이사벨과, 그런 여자들이 나쁘진 않지만 어쨌든 남자들은 그녀들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몸에게, 요즘 읽고 있는 책,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에서 가져온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회적으로 더 권력 있는 남성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은 줄곧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망칠 수 없었기에 우리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착취를 경제적으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는 일이었다. 성매매를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뒷받침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성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은 내렸기 때문이다. 성적인 요소는 즐길 수 없었고 견뎌야 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업주에게는 빈 업소가, 성구매자들에겐 빈 필름이 남았을 테다.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p.127)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오래 함께 간다는 것도,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오래 함께 간다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바라보는 곳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사소한 많은 부분들이 다른 걸 이해하며 지낼 수 있지만 가장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그것이 선이라는 바로 그 지점으로(어쩌면 악이라도) 같아야 한다는 것. 또한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윤리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의 윤리와 나의 윤리가 충돌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함께할 수 있을까.



요즘 페이드포 읽으면서 또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페이드포 추천사는 정희진쌤의 것인데, 드워킨의 포르노그라피 책을 언급한다. 아, 또 얼마나 포르노그라피 읽고 싶어지는지! 그러나 알다시피 그 책은 절판인 상태. 어딘가에서 재출간을 앞두고 있는 게 맞긴 한건가요? 진행되고 있나요?


나는 안되겠다, 원서라도 사서 천천히 매일 한 줄씩이라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나... 얼라리여~ 원서도 절판이여? 알라딘에서는 살 수가 없어. 나는 아마존으로 갔다. 얼라리여~ 이것은 새 책으로 구매하려면 몇 만원을 줘야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또 중고가 몇 권 나와있어? 나는 배송료 포함 2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일단!! 주문을 마쳤으나, 그러나... 그 다음은 어찌될 것인가.. 나는 매일 한 줄 읽기에 도전할 것인가. 내가 이 책을 샀다는 소식에 친구는 앞으로 밑줄 긋는 부분 공유해달라 했는데, 아아, 신이시여, 저는 그 책에 밑줄을 그을 수 있겠습니까?




자, 면도날로 시작한 이 페이퍼는 포르노그래피로 끝마친다. 이제 밥 때가 되었으므로. 이만총총.














그가 말한 남자는 이전에 그녀에게 두세 번 수작을 건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적당히 거절했더랬다. - P283

˝직업이야 구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문젭니다. 직업을 구하려고 노력을 안 하니까요. 아무 일도 안 하는데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아마 전쟁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테니 좀 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벌써 1년이나 쉬었는걸요. 그 정도면 충분하잖습니까.˝
- P39

이사벨은 매우 아름다웠다. 새하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좁고 긴 스타일의 치마 밑단이 통통한 다리를 감춰 주었다. 드레스의 가슴께로 풍만한 젖가슴 라인이 도드라져 보였다. 맨살이 드러난 양팔도 통통한 편이었지만 목선은 매우 아름다웠다. 다소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틀림없이 굉장히 아름답고, 탐나도록 매력적인 아가씨였지만, 만일 몸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보기 흉하게 뚱뚱해질 것이 분명했다. - P43

그녀는 확실히 다른 아가씨들보다 말수가 적었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끝이 약간 위로 들린 조그만 코와 큰 입, 녹색이 도는 푸른 눈을 가진 재미있는 얼굴이었다. 엷은 갈색 머리는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굉장히 마른 몸매라서 가슴이 남자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납작했다.- P43

˝나는 내 형제들과 달리 케임브리지 대학에 가지 않았다네. 기회는 있었지만 거절했지. 그보다는 사회에 나가고 싶었거든.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말이야. 케임브리지에 들어갔더라면 그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네. 경험 많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면 더 빨리 많은 걸 깨닫게 되지. 이끌어 줄 누군가가 없으면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어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법일세.˝- P58

그즈음 엘리엇의 나이는 65세였다. 이제 머리도 더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도 늘었으며 눈 아래에 살도 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세월을 당당하게 버텨 내고 있었다. 변함없이 날신하고 자세도 꼿꼿하게 유지했다. 언제나 모든 생활 습관에서 절제와 적당함을 추구했으며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세월이 자신을 유린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은 사람 같았다. 옷은 런던의 최고급 양복점에서 맞췄고, 머리 손질과 면도는 단골 이발사에게 맡겼으며, 최상의 컨디션과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마사지를 받았다.- P199

당시에는 여자들이 보통 낮에는 짧은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녀 역시 그런 치마를 입고 있었다. 샴페인 색깔의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늘씬하고 맵시 있게 뻗어 있었다. 얼굴이 예뻐도 다리가 유일한 콤플렉스인 여자들이 많지만, 이사벨은 처녀 때 볼품없던 다리는 사라지고 이제 보기 드문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과거에 넘치는 건강미와 쾌활함과 젊음이 매력적인 아가씨였다면, 이제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는 인공적인 기술과 육체적인 노력과 절제에서 기인한 것일 테지만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P228

˝그이를 진짜 사랑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구요. 마음속 깊이 래리를 갈망했지만, 눈앞에 안 보이니까 그럭저럭 버틸 수 있더라구요. 전에 선생님이 그러셨죠? 드넓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으면 사랑의 고통도 어느 정도는 누그러든다고. 그땐 참 냉소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맞는 얘긴 것 같아요.˝
˝래리를 보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우면 안 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천국과도 같은 고통인걸요.˝- P270

˝성적인 열정 없이 사랑이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간혹 열정이 죽은 후에도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 일테면 애정이나 온정, 혹은 취향이나 관심사의 공유, 아니면 습관 등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야. 그중에서도 습관일 가능성이 높지. 평소에 밥 먹던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지듯이 성관계도 습관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어. 물론, 사랑이 없어도 욕망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욕망하고 열정은 엄연히 다른 거야. 욕망은 성적 본능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라구.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다른 기능과 똑같은 거지. 그러니 남편들이 적당히 때와 장소를 봐 가면서 시시덕거리는 걸 갖고 여자들이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그게 꼭 남자들한테만 해당된다고 할 순 없죠.˝- P279

이 그림으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리게 된 그는 돈과 지위를 가진 과부와 결혼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던 수잔은 그에게 독설을 퍼붓기보다는 그와의 관계가 끝났음을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P284

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강렬한 욕정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색욕의 가면 같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토록 방자하고 음탕한 표정이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짐슴에 가까웠다. 그녀의 얼굴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음탕한 표정 때문에 섬뜩하고 무섭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마치 교미 중인 암캐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듯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래리의 손뿐이었다. 무심하게 등받이를 감싼 그 손이 그녀를 광란의 욕정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P313

˝저는 여자들을 잘 알아요. 여자는 한 번 그렇게 망가지면 그걸로 끝이에요. 절대 회복될 수 없다구요. 소피가 그렇게 된 건 원래부터 그런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소피가 래리한테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조만간 헤어질 거예요. 타고난 피가 그런 애니까. 소피가 원하는 건 야수같은 남자예요. 그런 남자와 있을 때 흥분이 되니까요. 그러니 결국 야수를 찾아 나설 거예요. 래리까지 지옥으로 밀어 넣고 말걸요.˝- P342

우리는 하숙집에 방 두 칸을 얻어 하나는 침실로, 하나는 거실로 썼죠. 일은 그만둰다고 했지만 그녀가 계속 하겠다고 했어요. 저 역시 낮에 혼자 있을 수 있으니 그 편이 좋았죠. 부엌도 맘대로 쓸 수 있어서 그녀는 출근 전에 제게 아침을 해 주고 정오에는 집에 들러 점심을 만들어 줬어요.- P426

˝이제 진짜 그 사람을 잃은 거군요.˝
그녀는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의자 등받이에 얼굴을 기댄채 흐느꼈다. 사랑스러운 얼굴이 숨길 수 없는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내가 전한 소식이 산산이 부숴 놓은 그 희망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따금씩 그를 만나면서 적어도 그가 자신의 세상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그녀에겐 얄팍한 유대의 끈이 되어 왔다는 정도만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 유대의 끈을 마침내 끊어 버림으로써 그는 그녀에게 영원한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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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1-27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너무 좋아요!!!!!!
피곤한 오후인데 눈이 번쩍 뜨입니다! @@
왼쪽에 코너 하나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다락방과 함께 하는 고전 다시 읽기>

공쟝쟝 2019-11-27 21:36   좋아요 1 | URL
다락방과 함께하는 고전 뚜까패기!! ㅋㅋㅋ

공쟝쟝 2019-11-27 21:37   좋아요 0 | URL
다락방 그는 오래 전 보부아르가 철학자를 먼지로 만들어 버렸 듯 숱한 고전들을 가루가 되어 흩날리도록 두드려 부쉇다고 한다..

단발머리 2019-11-27 21:37   좋아요 1 | URL
뚜까패기,가 훨씬 낫네요!
역시 공쟝쟝님 감성~~~^^

공쟝쟝 2019-11-27 22:03   좋아요 0 | URL
감성이라뇨.... (폭력에 대한 열린 감슈성..???ㅋㅋㅋ)

다락방 2019-11-28 08:18   좋아요 1 | URL
어휴 여러분 ㅋㅋㅋㅋㅋㅋ
무슨 말씀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지들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우 좋아하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있다)

다 뚜까팹시다!! 으르렁-

초록별 2019-11-2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을 통해 많은 분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 낙입니다~~^^;
오늘 글은 피로회복제 박...스네요. 시간도 없으실 텐데 재미난 글로 한바탕 웃었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연재 부탁드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다락방 2019-11-28 08:17   좋아요 0 | URL
제 글 되게 긴데 초록별님 꼬박꼬박 잘 읽어주시네요. ㅎㅎㅎ
북플로 보면 엄청 길텐데요. 제가 너무 피씨 서재활동 하는 사람이라.. 글이 길어요. 하하하하.
즐거운 북플활동 하세요!!

비연 2019-11-28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의성> 다 읽은 후 (꼭!) 이것도 읽어야지!

다락방 2019-11-28 08:16   좋아요 1 | URL
비연님, 이제 12월입니다. 한 달 남았습니다?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으하하하

비연 2019-11-28 13:12   좋아요 0 | URL
흠? 흠? 흠!!! ㅜㅜㅜㅜ 한달 남았다니. 지금 수많은 송년회를 뚫고 나름(!) 열심 노력 중입니다..(철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