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초안(1822,1828)-역사서술의 여러 양식
   역사서술의 세가지 양식
    1. 근원적 역사
         직접 본 것을 표상을 위한 표상의 작업으로 개조하는 것
         체험하거나 실제 생활했던 것에 대한 직관
         역사의 주류계층이 작성
    2. 반성적 역사
        1) 개관하려하므로 역사물을 엮어가야 한다(발췌,요약)
         사유와 오성이 가장 강력한 개념작용을 한다
        2) 지나간 시대와 그 생활에 대한 표상을 마련하는 실용적 방식
         현재성을 띤 것으로서 과거의 이야기를 활성화한다.
         정신적으로 현현된 하나의 세계, 보편성이 나타남
         이념에 대한 깊은 의미파악이 따라야만 한다
        3) 비판적 역사-주관적 착상을 역사적 사실과 대치시켜 현재를 과거 속으로 끌어들임
        4) 특수사-국민의 다양한 생활이나 관련 속에 있는 일반적 관점
          일반성에 있어서 철학적 세계사로의 이행가능(내면적이며 계도적인 혼)
    3. 철학적 역사
        구체적이며 단적인 현재에서 끌어낸 일반성, 영도하는 정신을 깨우쳐 알아내는 것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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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초안(1830)-철학적 세계사
   역사의 철학이란 역사에 대한 이론적 고찰
   일어난 일인 역사에 대해 원인과 근거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
   이러한 개념의 자유와 필연성의 대립이 세계사 속에서 즉자대자적으로 해소되어있다.
 
A. 세계사의 일반적 개념
  세계사에서 사태는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욌다고 하는 이성에 대한 확신
  철학적 고찰은 결국 우연적인 것을 떨쳐버리는 것
  세계사 속의 신적 의지는 큰 위력으로 세계사의 내용을 결정짓는 능력있는 것이다.
  철학적 세계사의 정신적 원리는 모든 관점의 총체성
  역사의 개체, 역사적 개인은 바로 세계정신이다 Weltgeist
  역사사상의 범주
  1. 변화의 범주-세월은 덧없이 흘러간다.
  2. 부활의 범주-정신이 젊음을 되찿는다. 끊임없는 자기확장과 소모, 그리고 이를 다시 소재로 사용
  3. 즉자대자적 궁극목적, 이성 그 자체의 범주- 세계속에 지배하는 이성에 대한 믿음
   1) 이성이 지배하지 정신 그 자체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의 비난-상세한 규정이나 구체적 전개로 전진할 수 없는 한계
   2) 하나의 섭리가 세계의 모든 사건을 이끌어간다-종교적 진리
    구체적 적용에 이르지는 못함. 인간사와 인간인식의 피안에 머물게 됨
    다루어야 할 개체는 국가라는 전체.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전제가 문제임-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시기도래(기독교)
    기독교는 신의 본성과 본질을 드러내준 종교임
    세계사는 영원한 이성의 산물이며 이성이 세계사의 모든 대혁명을 규정해 왔다.
    이 때 신앙과 지식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둘다 어떤 대상을 자기의 의식 전면에 놓고 이를 확인함을 의미한다.      
    역사란 신의 본성이 어떤 특수적이며 규정된 요소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므로 규정된 인식이어야 충분한 것임
       부정적인 것이 종속적 입장에서 극복된 것으로서 소멸되는 긍정적인 것의 인식 통해 화해 이루어짐(변신론,라이프니쯔) 
       이성을 규정대로 파악하면 사실,事象이지만 이성일반에 머물면 공허한 낱말에 불과
 
B. 역사 속에서의 정신의 실현
     세계사는 정신적 기반 위에서 진행된다
     본질적 내용에 이르도록 하는 실체적 목적은 실체적이며 특정한 종교,학문,예술(특종의 개념)
     궁극목적에 비추어 세계사 고찰, 궁극목적은 현세 속에서 욕구되는 바로 그것이다.
     궁극목적, 고찰의 대상은 인간적인 자유의 이념 The idea of human freedom
     정신은 세계사 속에서 가장 구체적 현실성을 나타낸다.
 
 a. 정신의 규정-자유
    -자유는 정신의 실체, 끊임없이 자유의 지양과의 부정 속에 존재
     정신으로 하여금 비로소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오직 자유에 대한 감각 The feeling of freedom
    -나는 나의 규정성을 벗고자 분열되며, 다시 나를 해소하려는, 결함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나의 규정성으로부터 나를 보존하고 결함을 지양하고자하는 충동을 갖는다.
     인간은 이 충동과 만족 사이에 관념을 즉 사상를 개입시킨다(내적 자립성)자신의 직접성 자연성 타파
      정신적 인간은 직접적 존재가 아닌 본질적으로 자기내면으로 복귀한 것
      우러러볼만한 예 혹은 진리 그 자체는 신의 본성 자체 (기독교에서 신이 이성으로 계시됨?)
    - 개별자로 환원될 수는 없다.국민정신이다.
      정신의 자기의식은 시간적으로 제한된 실존을 지양하며 자기본질인 순수정신과 관계한다
    - 정신의 즉자적 자유를(섭리) 모르고 개인의 자유만을 알면 전제자가 될뿐(동양)-소수의 자유(그리스로마)-인간의 자유(게르만)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 속에서의 진보
      자유는 자유가 수행하려는 자기의 목적이며 정신의 유일한 목적  
    -국민정신은 정신적으로 사상으로 파악되며 이것을 포착하는 것은 우리자신
      정신은 본질적으로 행동한다. 모든 국민의 행위,이것이 국민 자신
    - 정신 활동의 범주에서의 진행: 자신을 스스로 작품으로 삼아 즉자태와 현실과의 괴리가 지양되면 자기만족이 온다(진보)-목적 달성후 정신은 쇠잔하고 사멸-다른 국가정신으로 이행(새로운 탄생, 정신의 보존이며 정화)
    -교양의 범주에서의 진행: 교양(일반적 관점의 파악)-국민의 퇴폐
    -개별자의 경험은 이런 진행을 부당하게 느끼나 이는 보편성 보지 못하는 주관적 힐책
    -철학은 현실의 위안이 아닌 참다운 감득. 현실적인 것만이 이상이며 이것은 스스로 감득케 한다.
  
b. 실현의 수단-열정적 의지
  -개체의 실현의 동기는 흔히 이기심이다. 정신 일반과 이기심의 조화 혹은 이념자체와 인간적 정열의 융합이 야성이 폭발하는 정신의 세계사적 행동을 만든다.
   세계속의 어떤 것도 열정 없이는 이루어진 것이 없다
   세계사의 전 과정은 일반적 목적과 더불어 그대로의 자연으로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세계사의 작업은 이런 내적 충동을 의식화하기 위한 노동이다.(의욕, 관심, 활동)
  -직접적인 행동에는 그 행위자의 의지와 의식속에 포함된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담겨있을 수 있다. 개인은 자기의 목적에 관한 앎으로써 인륜적이 된다. 자아는 유한자로서 타자인 신과 화해를 이룸으로써 행복을 획득한다.  
   이때 다시 개별화된 유한자적인 의욕의 활동은 보편적 타당성을 획득함으로서 인륜적인 것이 된다.  
   어느 누구도 자기 민족의 정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개인은 그 민족이 요구하는 의지를 자신안에 의식화하여 언표하여야만 한다.(국민교육헌장)
   이러한 국가의 보존과 함께 질서있는 영역의 보존, 공동작업으로, 각종분야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야함. 이로서 결국 국민정신은 완성되고 탕진됨으로써 마침내 세계정신이 진전됨.
  -세계사적 개인이란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을 의욕하고 완수했던 사람들. 이들은 보편적 실체에 대한 통찰력으로 말미암아 이 역사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한다.(비스마르크, 히틀러)
   그들은 각고의 노력과 고통을 겪으며 결코 행복하지 않으나 스스로 만족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념과 일치된 열정으로 한 곳에 무작정 집중한다.
 -세계사적 관심 아래 개인은 희생되고 포기되는 이외의 가치는 없는가? 개인은 그 자체로 영원자의 성질을 띠며 이것이 도덕 인륜 종교성이다. 인간이 목적인 것은 그 안에 신적인 것이 있음 때문.
   세계목적은 이런 선량하고 인륜적인 모든 목적으로 가야하나 현실은 미치지 못한다. 이는 이 내적 본질성이 내적으로는 무한하고 자유로우나 현실성의 발전에는 제한되고 우연에 맡겨진 때문이다. 세계정신만이 이런 권위를 넘어선 권리를 지닌다.
 
c. 실현의 재료-국가의 재탄생
  -주관적 의지에 의한 구체적 삶에서의 형태는 국가der Staat이다
    인간은 결국 국가안에서만 본질을 지닌다.(국가는 목적,시민은 도구)
    보편적 이념은 국가안에서 현상화한다. 이 현상이 곧 정신개체인 국가의 본질이다.
    국가안에서 인간의 주관적 의지가 법률에 굴복할 때 자유와 필연의 대립은 해소된다.
          국가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 자연의 미개상태를 극복한다.(1984년!)
          법률의 형식으로 완성되어야 보편적 형식을 띄고, 국가는 합리성의 계기를 이룬다.
  - 국가는 그 분화된 모든 갈래인 종교,헌법,학문,예술의 규정적 요소를 지닌 정신이다.
     종교는 최고의 본질에 대한 민족의 의식이다. 국가는 종교와 동일한 공동원리 가짐.
     종교는 필연적으로 헌법,통치,현세적 삶으로 이행됨
     예술은 종교와 연관되어 보편을 형상화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학문은 특히 철학은 종교의 표상을 사유하여 개념으로 파악한다.
     학문은 민족이 어떻게 진리의 의식에 다다르며 충만케 할 수 있는가를 나타냄
  - 실존적 요소-풍속, 산업,私法,학문
     관습,풍속은 상징적이나 우연적 요소를 가짐
     산업활동은 자연을 어떻게 파악하고,무한히 부의 축적을 할지,근면성 요구에 있어 국민정신과 연관
     사법은 자유와 소유권에 대한 견해(기독교의 개인의 가치와 재산 소유의 자유)
     실용학문은 직업, 즉 국가내 계층 구별의 기초가 됨    
 
d. 정신의 현실성
 - 헌법은국가가 생명과 현실성을 얻도록 하는 것
    헌법은 전체역사와 도정에 규정된 계기로서 최고의 필연성을 이루는 것임
    최대의 자유가 주어지는 국가이념이란 객관적 의지와 일반의지의 통일을 의미
    역사로부터는 현재 국헌형태의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vs 루소)
 - 자유란 자의로 행하는 것 아닌, 일반의지의 통찰을 따라 그 계기가 자유로이 발달함을 의미함
    주관적 동의가 아닌 헌법이 개인을 인격적 존재로, 실체성을 정신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는가가 본질
     국헌의 구별은 현상화의 형식: 은폐-헌법의 성립-모든 범위의 자립성과 보편성으로의 운동
  - 다른 나라에 대하여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립성을 지닌다. 어느나라도 절대정신의 권리독점 못함 (프랑스)
 
C. 세계사의 도정
 a. 발전의 원리
   완성을 향한 노력과 진행, 질적인 변화
   정신은 자기자신을 적대자로 극복해가는 투쟁을 통해 자신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정신은 순환하지 않고 정정되어간다.정화되어가며 시간 속에 개진되어 세계사를 이룸
   단계의 구분; 동양(정신과 자연의 통일)-그리스(정신의 내적 반성)-로마(국가 목적에로의 귀결)-게르만(객관적 정신과 주관적 정신의 조화)
   정신은 그 무한한 가능성으로부터 시작할 뿐이다(완전한 것을 씨로 가지며 충동함 dynamis, potentia)
 
 b. 역사의 始原
    역사는 스스로의 노동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이념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가능하다.
    자기의식화된 의지의 도야,이를 위한 노동을 통하여 자연과 정신이 들여다보인다
    자유는 보편적 대상 즉 법률과 정의를 의식허고 의욕함으로서 비로소 국가를 산출
    사건,행위와 구별되는 역사의 기술은 하나의 내면적 공통의 기초를 시사(국가)
    국가는 과거의 의식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불완전한 현재이다.
 
 c. 발전의 과정
     자유에 관한 정신의 의식과 그 발전은 하나의 단계적 도정, 각 단계는 특유의 원리가짐(규정성)
     이런 규정성에 어두우면 선험성을 끌어들임(칸트), 또는 모든 단계를 형식적으로 동일하게 취급
     이런 객관적 혹은 탈역사적 형식주의는 사유하나 공허로 치달음
     형식적 교양의 필연성,예술, 철학의 존립근거 등은 모두 국가 생활에 있음
     동양의 감각적 동기의 포기-그리스의 국부적 특수성을 소멸하는 보편성의 발견-규정한계의 인식과 새로운 규정의 창출
     이런 끊임없는 재생의 목표는 자기자신으로의 복귀에 있다.자기자신의 궁극적 충족 혹은 자기포착 (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
     역사는 과거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나, 또한 현재를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념은 현재적이며 정신은 불멸인 까닭이다(현재적 신의 무시간성)
     현재화된 세계의 정신은 정신이 자기자신에 관하여 이루어논 개념, 즉 정신이 세계사의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낸 것.
     개인은 교양을 쌓아 정신에 관한 자기의 개념을 확립, 앞선 시대의 각기 다른 영역을 경과하여야 함(개체발생,계통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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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예나

 

1부 의식
1. 가장 빈곤한 풍요-감각적 확신

  개별적인 것은 오직 일반자로만 파악이 가능하다.

  이것,지금, 여기의 개념과 언어는 개별자가 일반자임을 폭로한다. 

 

2. 추상의 유희-지각

  지각은 대상을 일반자로 파악하며 그 안의 여러 속성이 드러나면서 통일성과 일반성의 모순에 빠진다

  결국 지각도 知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공허한 추상의 유희에 빠져들고 만다.  

 

3. 장막 뒤를 바라보기-힘과 오성

  오성은 다수성을 개념안에서 대상 안으로 복귀시켜 통일성을 만든다.

  사물은 그 내부에 있어 결속시켜 주는 근원적 범주인 힘kraft를 갖는다.

  자기안에 떠밀려 들어온 힘이 결국 대자와 대타의 통일을 이루어 오성의 산물로 남게 된다.

 

4. 진리가 거주하는 곳-자기의식

  知는 이제 대상적 지를 넘어 자신의 지에 대한 지로 바뀐다. 즉 지는 자기의식이 된다.

  이 자기의식(주인)이 욕구를 위해 실천적으로 대상에 부여하는 자기의식(노예)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1) 가면극-주인과 노예

    두 자기의식은 투쟁하고 서로를 소멸시키려하나 결국 누구의 승리도 없고 서로 인정하며 서로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2) 암담한 전망-불행한 의식

   서로 인정한 두 의식은 통일을 위해 나아간다.

   주인 중심의 통일은 자유가 있으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내적 자유이다.

   노예 중심의 통일은 변화는 가능하지만 우연에 지배되는 혼미와 무질서의 부정이다.
   이런 자기의식의 내적 분열의 경험이 불행한 의식이다.

3) 자기의식을 위한 행복한 종말-이성
    행복한 의식의 가능성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에 대한 느낌이다

   개별성을 밖으로 밀어내어 낳게 한 후에 다시 거두어 들이면서 세계의 대상성에 대한 집착을 상실하게 되는 이 지점이 이성이다.

   사유가 현실의 토대에까지 내려간 연후에 현실의 총체성은 달성된다.


제2부 이성
5. 대단한 요구-이성의 확신과 진리 
   이성은 타자의 존재에 대하여 긍정적이 되며 현실에 대해 관념론적이 된다.

   이 때 개별성은 절대적 본질이 될 수 있으며, 자기의식은 세계를 자기의 새로운 현실적 세계로 발견한다.

    세계는 이 틀 안에서 관념으로 빨려들어오며 내 의식안에 존재하는 세계가 된다.

    이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변화시킴을 의미하는데, 범주에 의한 자기의식과 존재의 통일이다.

    범주의 구별은 사실 양분된 사유와 현실 사이를 오가는 변증법적 운동에 의하며, 그러므로 운동의 결과로는 구별인 동시에 운동자체로는 통일이다. 모든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다.

  

1) 새로운 원정을 향한 출발-관찰하는 이성 (새로운 시작, 이제 이성을 업은 감각,지각,의식의 과정)

   헤겔의 이성은 세계 자체이다.

   현실에서 올라온 관념인 이성은 세계속에서 자기를 확인하고자 한다. 감성을 개념으로 존재를 사유로 또 사유를 존재로 변화 시키므로써 이성은 통일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제 관심은 보편성에 있다. 그리고 궁극적 완성은 정복이 아닌 그 이성 자신의 완성이다.

  (1) 지각과 사유 속에서 변증법적 교란을 감지한 이성은 자연속에서 법칙들을 발견하려하며 이것을 발견한다.

       법칙은 사유의 이성이며 동시에 사물에 내재한 이성이다.

       정신은 이질적인 것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2) 유기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즉자-대자적이며, 개별성 자체로 보편적이다.

       유기체는 물질화된 자기의식과 같다.

  (3) 정신이 현실과 만날때 순응과 거부의 방법으로 사유는 부정하는 힘을 갖는다.

  (4) 신체에 대한 관찰은 그 애매모호함으로 정신의 표현을 잡기 어렵고, 표상만을 취한다면 정신의 깊이에 다다르지 못하고 무지에 머물게 된다.


2) 인륜성으로 향한 걸음-자기의식의 실현

  관찰하는 이성이 지나가면 대상은 지양된다. 정신은 자기의식의 이중화 속에서 자기자신과 통일을 이룬다. 자기의식의 통일은 다른 한 개체를 의식하는 자기의식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실천이성 혹은 인륜성이 등장한다. 자기의식안의 보편자와 개별자 사이의 긴장을 다른 사람의 자기의식 안에서 해소함. 서로의 이런 관계가 실천이성의 나라를 형성. 그 단위는 민족volk

  이 때 향유의 자유로 치우치면 인륜성 자체를 소멸시키게 되며(젊은 파우스트), 봉사의 규정으로 치우치면 자기를 보편화하므로서 분노하게 된다.(소외, 늙은 파우스트) 그렇다고 덕으로 희생하려들면 그 자체로 순작용을 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손]을 붙잡아 매고 만다.(노대통령)

 

3) 성급한 즐거움-실제적 개체성
  그 자체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개별성에 이미 보편성은 들어있다.(물과 물고기) 타자와의 관계는 지양된다. 이제 실제적 개체성,즉 개별성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실천과 행동의 옹호) 그러나, 실제적 개체성의 실현은 모든 개체성의 사태이어야만 한다.(개별적 행동과 보편성의 통일이 필요) 개체의 본질은 개별개체와 모든 개체의 행동.(정신적 본질)

  인륜적 실체, 정신적 본질이라는 목적을 건전한 이성은 알고있다. 그러나 그 법칙의 내용은 추상화되므로 소유하지 못한다. 이 법칙에 대한 시험조차도 정당하지 못하므로 자기의식의 정당함은 그냥 영원한 정당함으로 간주한다.    인륜적 내용은 사회현실을 포함하여야 가능, 즉 보편과 개별이 만나는 장소에서.. 칸트적 보편윤리란 없다.


제3부 정신
6. 역사로의 걸음-정신
  인륜적 행위는 이제 문턱을 넘어 사회적 현실,인륜적 공동체에서 가능

  정신은 한 민족의 인륜적 삶(프랑스 민족을 바라보며 독일 민족을 탄생시킴)

  신적 법칙은 가족에 적용, 인간적 법칙은 국가에 적용됨

  개인의 개체성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위해 국가는 때떄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결정되어있는 인륜적 의식(성격)의 행위는 대립을 야기한다.(법칙과 개체의 적대)

  개별자는 죄를 인정함으로써 인륜성으로 귀환하나 개별적 행위자는 몰락함. 타자가 없어진 인륜적 공동체도 몰락함.(그리스 폴리스)

  개인들의 원자로 분리된 후 몰정신적 한점(지도자)에게 결집(참주,로마황제,나폴레옹)

  정신은 자기본질을 되찾고자 이런 소외로부터 귀환을 원한다. 개인은 개별성을 깨고 사회적 현실에 들어가고자 한다.(정신의 국가)

  이것은 도야를 통해 일어나며,도야는 [요지부동한 현실로 간주하는 현실세계에 대한 지배적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마키아벨리)

  개인의 도야의 방법은 국가권력에 봉사하거나, 노동과 행동의 결과인 경제(부)에 봉사하는 것 

  의식이 국가권력을 억압자, 부를 이기적 향락으로 여길 때 의식은 비열하다.

  도야의 세계 아닌 사유의 세계 또한 연결되어있다. 신성(성부)은 자기희생하는 현실적 절대본질(성자) 안에서 정신으로 귀환하므로, 믿음을 신에 대한 기도가 아닌 신을 사유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1) 종말 앞에서의 소외-계몽

  고유한 자기가 절대적 본질이므로, 피안적 신앙은 미신에 불과하다. 어떤 처방도 무효하고 오직 계몽의 승리가 있을 뿐이다.

  형이상학이 없는 순수물질적 세계, 즉 지상에 하강하여 뿌리를 내린 하늘에 있어 모든 사물의 의미는 인간적 안녕과 복지에 이바지하는가라는 [유용성]에 모아진다.(계몽의 이상은 오류없는 완전한 사회)

  모든 개별자의 의지인 절대자유의 의지는 완전평등을 요구하며,이 보편의지는 폭력적 권력유지를 통해 개별자의 죽음을 부른다. 절대자유의 권력유지는 개별자의 테러에 불과하다. 테러를 통해 사람은 자신이 해방시키려는 것을 파괴한다.(단두대의 평등)
   

2) 마지막의 진전 단계-도덕성과 양심

   현실과 분리된 이원적 도덕의 자율성(칸트)는 잘못이며, 도덕과 자연은 원래 통일되어있다. 도덕은 진보하나 결코 완성되지 못하며 결국은 제거될 것이다. 궁극목적은 개별행위의 도덕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의 자기확신인 양심은 자기자신에 대하여 자신의 진리를 갖는다. 의무는 자기를 위한 법칙이지 그 법칙을 위해 자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의무는 규정성이라는 개별적 결점을 그 자체로 지니고 있다.

   자기 절대확신의 자기수렴성과 양심행위에 의한 비보편성의 갈등이 생긴다. 이 갈등의 화해는 양심 자신의 완전한 외화인 동시에 자기자신의 확신인 神이다.

  
7. 완성 이전의 정신-종교

  종교로서의 정신은 운동중에 있다. 정신의 생성은 여러형태로 나타난다.

  자연적 종교(빛으로서의 신-동물종교)-예술종교(제작자-언어-제사, 살아있는 예술작품의 현실행위-정신적 예술작품인 서사시-비극-영웅-희극)-계시종교

  자신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 절대정신, 한 인간으로 나타남(신을 그 안에서 인식),본질이 직접적 자기의식으로 직관됨

  교회공동체의 보편적 자기의식이 발생, 개념을 표상으로 표현함(창조,타락,십자가의 죽음, 개별자의 죽음-날마다 십자가에 못박힘), 외화된 본질의 대립이 해소됨. 그러나 표상으로부터의 분리가 필요 


8. 막이 내려지다-절대지
   정신의 외화 즉 공간과 역사안의 나타남은 정신을 현상함. 인식이 가능해짐. 순수한 개념의 실재성. 學으로 고양됨. 목적은 운동자체(과정이 목적이다)

   결국 절대지는 현상들에 대한 학적 파악이다.

   지는 진리의 왕좌에서 내려와 자신에게 현상한 대상과 대립을 관찰하기 위한 자유를 취함

   절대지는 내면의 모든 기억을 간직한채로 새롭게 자신을 형성한다. 이 심연으로부터의 계시인 절대개념이, 즉 절대정신의 무한한 지속적 계시가 역사적 목적, 종말론적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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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의 분석-[아름답다라는 진술]은 무엇인가?

  趣美판단-미추의 판단
1) 성질의 관점에서 본 취미판단의 분석(1~5)

   취미판단은 미적이다(주관적이다)

   대상에서 쾌,만족을 느끼는 상태

   감각쾌(쾌적함)와 선에 대한 쾌는 대상과 연관되나 미에 대한 쾌는 자유롭다

   취미의 성질은 모든 관심을 떠나 만족 불만족을 통해 판단하는 능력 

2) 분량의 관점에서 본 취미판단의 분석(6~9)

   아름다운 것은 개념 없이 보편적인 만족의 대상을 표상하는 것

   감각취미(사적 판단) 반성취미(동의를 요구)

   반성취미판단의 양적인 계기는 보편적 동의의 요구이다.

   보편적 만족으로 인해 논리적 판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보편적 기초인 감각느낌은 긍정적 판단의 진술에 근거한다.

   감각느낌은 그래서 쾌적감과 달리 수동적이 아니라 인지적 능동성 갖는 능력.(또 전회)

   인지적 능동성은 인식판단과 달리 엄격한 보편타당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인식판단과 달리 오성에로 포섭치 않고, 자유로운 직관의 다양성과 범주의 규정 사이에 머문다. 

   취미판단은 대상에 대한 쾌감에 선행하며, 상상과 오성의 두 인식능력의 조화에 대한 쾌의 근거.

   오성은 개념을 규정하지만 취미판단에서는 개념으로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3) 관계의 관점에서 본 취미판단의 분석(10~17)

   합목적성은 쾌를 일으킨다.

   목적은 행위자의 의지가 개입된 산물

   원인을 어떤 의지안에 세워두지 않아도 어떤 의지로부터 원인을 이끌어내어 목적을 상정할 수 있는한 합목적성은 목적 없이도 존재한다.

   취미판단의 기초는 대상의 합목적성의 형식일 뿐이다.

   취미판단은 주관적 목적인 쾌감과 관련이 없다. 1) 참조

   취미판단은 객관적 목적인 대상의 객관적 속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2) 참조

   주관적 합목적성만이 취미판단을 규정하는 근거이다.

   취미판단은 결국 선험적 기초를 갖는다.(상상과 오성의 상호작용에 의하므로)

   취미판단은 유용성이든 완전성(바움가르텐)이든 객관적 합목적성 없슴

   자유미와 부수미(대상에 대한 개념과 개념의 완전성을 전제하는 것) 존재

   미의 이상은 오직 자기실존의 목적을 스스로 갖는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도덕적 이념의 표현이다. 따라서 취미판단은 무관하다 

   미는 어떤 대상이 목적을 떠나 지각될 때 합목적성의 형식이다
4) 양상의 관점에서 본 취미판단의 분석(18~22)

   합목적적인 취미판단은 필연적으로 쾌에 이르는가

   이 필연성은 보편적이나 개념적이지 않고 예시적일 분이다.

   취미판단의 근거는 감정상태가 상이한 주체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체험하는 상태(공통감)

   공통감으로 인해 전달가능성이 생기며,공통감이 상대 동의를 확신하는 규준이 된다 
5) 미의 분석에 대한 일반적인 주석: 상상력의 역할

   상상력의 합법칙성은 오성에 제한되나,그 협동이 오성에 의해 강제되지 않으므로 자유롭다

 

2. 숭고의 분석

미에 대한 쾌는 질적 표상과 관련되고 숭고에 의한 쾌는 양적인 쾌와 관련됨

미는 직접적이나 숭고는 간접적이고 중개된 쾌이다.

미는 대상에 대한 합목적성에 따르나, 숭고에서는 대상이 숭고한 것이 아니라 규정된 이성 이념이 숭고한 것이다
1) 수학적 숭고(25~27)

 크기가 직관으로 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감정이 주는 만족(주관적 비합목적성)

 직관이 개념의 분화에, 이성이념이 숭고개념 이해에 결정적이다.

 모든 현상의 파악이라는 이성의 욕구를 좌절시키는 숭고는 먼저 불쾌, 그리고 쾌를 일으킴  

 자신의 무능력이 곧 자기의 무제한적 능력의 의식(전체성의 이성이념)을 드러냄(주관적-합목적적)
2) 역동적 숭고(28~29)

 자연이 우리에게 강제력을 갖지 않는 위력으로 드러날때

 역동적 숭고는 우리를 절멸할 자연에 대해서도 상대화하는 능력이다.

 숭고의 감정을 부여하는 삶의 형식은 진보된 이성의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혹은 실천적 이념에 대한 감정의 소질) 
3) 반성적인 미적 판단에 대한 일반적인 주석

  숭고에 대한 미적 경험은 이성이념(선,신,자유)를 의식케 한다.

  대상 표상과 이성이념 사이의 결합-숭고의 선험적 원칙

  수학적 숭고-크기로 인한 직관 불능으로 이성이 작동-전체성이념

  역동적 숭고-파멸시킬 정도의 위압적인 대상 앞에서 실천이성의 이념으로 치달음 

 

3. 순수 미적 판단의 연역(30~42)

   미의 주관적 합목적성에서 연역이 가능. 숭고는 이성능력에 대한 의식으로 연역의 정당성 주어짐

   

   미적 판단의 보편성 필연성은 어떻게 정당화되나?

   -미적 판단의 보편성 요구는 직접적 만족과의 결부에 있다.(오성판단에 대해 자율적)

   -이때 만족은 직접적이며 관습에 매이지 않으므로 도야가 가능(제한적 타율성의 가능성)

   -자율적 타율성 수용은 모방 아닌 계승임.

   -자율성의 예술이론은 그래서 취미판단이 감상과 창작주체의 주관내에서만 예술이 되게 한다.

   -반성적인 판단인 미적 판단은 오직 상상력의 자유와 오성의 합법칙성이 유지되는 범위에서 포섭적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아름답다라고 하는 만족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미적 경험은 순수한 반성적 쾌로 전달 가능하다.

  -이런 공통감은 인간의 상호이해와 연대감을 가능케 한다. 미는 철저히 사회에서만 의미가 있다

 

  미와 선의 결합

  -자연미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즉 자연이 우리 만족과 합법칙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 도덕적 선에 대한 자기 관심의 기초로 서로 병행한다.

  

4. 예술이론(43~54)
   예술은 그 자체로 실현되어 즐기면서 관찰하는 대상

   규칙에 일치하는 정밀함 따라 만들어짐 그러나 규정을 창조하는 능력이 더해짐

   이런 예술적 재능은 자연에 의해 부여됨(미적 이념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미적 이념(개념으로 설명안되는 상상력의 표상)을 정신과 결합시킨다

   예술가는 천재적 아이디어를 취미의 관심하에 둔다

   문학, 조형, 감각유희 예술의 구분

   감각의 질료(자극과 감동)가 전면에 오면 합목적성이 죽는다.

 

5. 미적 판단력의 변증법과 취미의 이율배반(55~60)
   변증법-선천적 보편판단의 갈등

   취미판단은 비규정적이다.

   비규정적인 개념들이 인간성의 초감각적 토대일수 있다.

   미적 경험은 미적 관점의 세계와 표준적인 방식에서 조화를 이루는 인간지성의 자기반성이다.

   미와 도덕의 관련성

    -만족의 직접성, 보편타당성을 요구,관심을 떠나 만족을 주거나 실천적 판단 통해 일깨워짐,

    -미는 오성과 상상력의 조화이고, 실천판단에서는 의지가 보편이성 법칙의 규준에 의거하여 자신과 합치된다.

   결국 미와 이성과 실천인식간의 이런 통합은 합목적적인 세계현상의 관점아래 주체 인식능력을 강제성 없이 결합한다.

 

2장 목적론적 판단력비판
1. 목적론적 판단력의 분석(62~68)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에서는 대상의 속성, 객관적 합목적성에 관심이 있다.

  객관적- 형식적;기하도형

             질료적-상대적; 유용성-우연적 관계에 의한 경험적 목적 성취

                       내적;자연목적-그자신이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인 것,

                                            유기적 존재는 자기속에 형성하는 힘을 가짐.창조자가 있어야함

 

독후감:  자연과학에 있어 생물체안의 인과적 메카니즘은 작동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인과적 설명은 有機體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 연후에야 가동이 가능하다.

2. 목적론적 판단력의 변증법(69~78)

  기계론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이율배반

  생명체에 있어 각부분이 서로서로 합목적적인 관계에 있으며 전체와 관련지어 존재한다.

  담론적 인간오성은 사물들이 구성주체에 의해 산출되는 인공적 메커니즘인 것처럼 가정하며 사유한다.(한몸의 비유)


3. 방법론(79~91)
  반성의 실행에 기초하여 어떻게 인식체계를 만들 수 있나(합목적성이 설명하기).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목적론적 명제의 역할은 자연의 궁극목적에 따른 개별대상의 위계설정

  인간은 이 자연의 최종목적으로 합목적적으로 자연의 목적 체계를 만드는 유일한 존재(환경보호의 이유)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독특한 자연스러움은 문화이다.

  반성적 판단력은 절대적 세계존재자의 궁국목적을 추구한다. 도덕적 인간만이 목적 달성

  판단력은 반성적 기능에 의해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중개하고 절대자안에 통합되어 우리주체안에 들어오도록 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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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베를린 출간

 

1장 의심
1.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의 문제 제기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이고 왜 사느냐는 것이다.
2. 자연 사물의 속성들의 규정성

   속성은 정해진 수와 양만을 갖는다.
3. 자연 사물의 변화(속성들의 변화)

   자연은 필연적 인과의 법칙안에 갇혀있다.
4. 속성들의 담지자(실체)인 개체의 활동적 힘(근원적 자연력)

   계기는 규정성 밖에 있는 힘에 있고 이것으로 자연은 하나로 연관되어있다.
5. 자연력에 의한 인간 존재의 규정성

   나의 외부에 규정된 힘으로부터 될수있고 되어야 했던 바가 나이다.
6. 인간의 자유의식에 관한 자연 필연성의 체계 내적 설명

   인간의 자유는 자연이 부과한 것을 모두 이루어가며 제지받지 않는 것이다.

7. 외부세계와 타인의 존재,인간의 도덕성에 관한 자연필연성의 체계 내적 설명

   자연일반을 근거로 외부세계가 이해되며, 나와 같은 사유하는 존재에 대한 추론에서 타인 파악.

   인간성과 분리되지 않는 욕구의 힘이 도덕적 법칙임.

8. 자연필연성의 체계에 따른 인간의 이해

    나는 자연의 필연성 아래 놓여 잇고,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결정론)

9. 자연필연성의 체계에 대한 심정적 저항감

    오성의 결론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10.심정이 요구하는 자유의 체계

   나는 나자신의 근거이고자 한다. 나의 사고와 의지가 자연을 거슬를 수 있어야 한다.

11.자연필연성의 체계와 자유의 체계의 대립

   인간의 지성은 자연필연성 아래 있지 않고 飛上을 꿈꾼다(조나단 시갈)

12.대립하는 두 체계 사이에서의 갈등과 미결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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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지식
1. 나의 상태의 지각으로서의 사물의 지각

   나는 오직 사물에 대한 나의 봄과 느낌만을 의식할 수 있다.

2. 감각된 속성의 주관성

   나는 나의 상태를 감각할뿐 대상의 상태를 감각하진 않는다.
3. 속성 담지자의 주관성

    대상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그곳에서 우리의 봄과 느낌 등이 끝난다.
4. 근거율에 입각한 대상 정립

   대상은 직접적 앎과 그로부터 촉발된 추론을 통해 정립된다.
5. 정신의 자발성에 따른 무의식적 대상 산출

   대상의 의식은 결국 수동적 감각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수행하는 대상정립의 능동적 의식일 뿐.
6. 주관의 공간구성의 활동성으로서의 직관

    내가 내 밖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은 오직 나 자신일 뿐이다. 직관

7. 사물 속성의 감각,사물자체의 직관,그리고 그 둘의 연관으로서의 사유

    우리 밖의 사물의 의식은 우리자신의 표상능력의 산물일 뿐이다.

8. 자아자체도 표상으로 화하는 관념론적 체계애 대한 비판 

   표상은 결국 그림자일 분이고, 이때 자아의 표상도 헛깨비가 되고 만다.

   결국 지식에 의해 지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오직 지식일뿐, 그 이상은 지식이 접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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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믿음
1. 인간의 사명인 행위를 통해 실현되어야 할 목적의 실재성

   인간은 행위하기 위해 존재한다.행위를 통해 내안에 설정된 목적개념을 개념밖으로 설정한다
2. 그 실재성을 파악하는 기관으로서의 믿음과 관심

  결국 사유와 행위가 의미있게 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소유한 믿음 때문이며, 진리에 대한 확신은은 양심에서 나온다. 이리로 이끄는 것은 실재성에의 관심이다.
3. 자유로운 믿음

  나의 주인인 나는 나의 충동을 비준하고 인정하여 사유를 이끌어간다.
4. 나의 진리 추구의 사명
  사유는 나의 행위와 연관되고 그 수단을 고찰하는데만 의미가 있다.(실용주의,반회의주의)

  자연은 나의 사유법칙에 의해 형성되며 인식가능, 탐구기능하다

 

I.양심의 윤리

5. 양심에 근거한 진리와 실재성의 믿음

  양심에 복종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사명,현존의 전체 목적(칸트의 정언적 명령)

  더 나아가 순수이성 비판은 실천이성비판의 틀안에서 파악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행위의 요구로부터 실제적 세계의 의식이 도출된다 

 

II.地上적 목적(혁명과 인터내셔널)
6.행위와 행위 목적과의 관계

  행위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목적이 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다른 세계이다.

7.보다 나은 삶을 실현시켜야 할 인간의 사명,자연지배의 이념

   적대적 자연을 지배하고, 더 가공할 동료인간들을 문명화시켜야 한다.

8.보편적 교육의 이념,헌법국가의 이념

   인류의 역사가 발전한다 할 수 없지만 분명 교육은 확산되고 있다(계몽)

   국가내부의 전체국민을 위한 헌법의 정립과 국가간의 보편적 평화의 확립 아래 선은 번성하게 됨(인터내셔널의 깃발아래)

    각 개인에게는 大我를 위한 헌신만이 남고 서로의 투쟁과 이기심은 종식됨

9.지상에서의 이념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믿음

   이것이 이성이 설정하며 실현을 보장하는 지상적 삶의 목적임.

 

III.超地上적 목적(도덕)

10.지상적 목적을 넘어서는 초지상적 최고목적의 필요성

   지상적 목적은 우리의 목적이 아닌 상위의 알려지지 않은 힘의 목적이기도 하여야만 한다

11.도덕법칙에 복종의 절대성과 그 복종이 지향하는 초지상적 체계

   도덕적 이성과 일치하는 초지상적 목적이어야 한다

12.감관세계를 넘어서는 자유의 확실성

   행위의 법칙아래 자유는 불필요하고 반목적적임

   그러나 자유가 주어져있다. 자유로운 규정만이 우리의 가치를 형성한다

13.물질적 감관세계와 정신적 이성의 세계(의지의 세계)의 관계

   물질은 행동으로, 비물질은 의지로 시작된다.

   영생을 소유한 나에게,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양심에 대한 복종만이 목적의 나라 시민임을 말해준다.

14.현재의 삶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목적으로서의 미래적 삶

   선한 의지의 비물질적 결과에 의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삶의 확고한 출발점을 얻음  

15.미래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현재의 삶

   선한의지의 결과로 올 미래의 삶으로부터 도출되는 현재의 삶은 그래서 믿음의 삶,직관의 삶

   도덕적 명령에 근거한 초지상적 목적에서 선한의지의 결과인 미래 세계에 대한 직관이 가능하다.

16.초감성적 세계의 진리와 영원성의 원천으로서의 의지

   두 질서가 병행함. 초감성적 질서에 따르는 나의 의지가 진실한 삶과 영원성의 원천

   의지 자신을 위한, 목적 도달가능성을 무시한 믿음

17.감성적 목적의 포기와 영원한 삶의 믿음

   의지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감성적인 목적을 실제 포기하고 희생함으로 얻을 수 있다.

18.믿음으로부터의 참된 자유와 의지의 개선

   의지의 개선만이 나의 현존과 나의 사명에 대한 진정한 현명함으로 이끈다

.

IV. 무한한 의지(종교)

19.초감성적 법칙으로서의 의지, 그 양심과 복종

   정신세계의 법칙은 자기활동적 의지. 이 무한한 의지안에 나자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규정됨 

   무한 의지 안에 또 그것에 의해 나는 一者와 연결됨(양심과 복종)

20.자유로운 정신들의 일치의 원천으로서의 일자(스피노자)

   개별적 의지가 서로 연결되고 공통성을 갖는 것은 무한의지의 존재를 입증

   감관세계에 대한 각 개인의 일치 또한 무한의지의 결과이다.

   무한의지는 창조주이며 유지자이고 영혼불멸의 이유이다.

   그 무한의지의 본질은 알 수 없으나, 내가 그의 앞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자유로운 복종이 영원성의 결과를 가지므로 복종하길 원하심

21.무한한 의지에 있어서의 선의 실현

   무한의지의 목소리에 따르면 자연의 결과는 의미없어지고 악조차 선으로 귀결된다(라이프니쯔)

22.감관세계의 관념성의 재평가: 초감성적 도덕세계의 반영으로서의 감관세계

   인간은 감관세계의 산물이 아니다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가 바로 실천적 초월적 관념론자이다

23.절대자로부터 의무로서 주어진 나의 도덕적 사명,타인의 자유와 존중

   나의 이 사명에 내 전체현존이 교착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이 의무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함

   타인에 대하여는 그들의 자유를 존중-오직 확신과 의지에만 영향을 줌, 힘이 아님

24.영원한 자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그 관점에서 본 감관세계와 정신세계

   윤리성의 진보 자체를 위한 진보

   결과는, 판단은, 무한의지의 승리일 것이므로 평안함

   자연을 따르는 자를 그들의 부자유에 대해 분노할 수 없슴

   신체적 괴로움, 질병은 자연의 사건이며 자연을 넘어선 나에게 관계치 못함

   자연에 편만하며 인간을 하나로 묶는 인간성의 근원

   현재의 세계는 완전한 세계를 감춘 베일이며,믿음은 이곳에서 우리가 보는 것 이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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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

 

An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Enlightenment?"

 

Konigsberg in Prussia, 30th September, 1784.

 

 

Enlightenment is man's emergence from his self-incurred immaturity. Immaturity is the inability to use one's own understanding without the guidance of another. This immaturity is self-incurred if its cause is not lack of understanding, but lack of resolution and courage to use it without the guidance of another. The motto of enlightenment is therefore: Sapere aude! Have courage to use your own understanding!

 

Laziness and cowardice are the reasons why such a large proportion of men, even when nature has long emancipated them from alien guidance (naturaliter maiorennes), nevertheless gladly remain immature for life. For the same reasons, it is all too easy for others to set themselves up as their guardians. It is so convenient to be immature! If I have a book to have understanding in place of me, a spiritual adviser to have a conscience for me, a doctor to judge my diet for me, and so on, I need not make any efforts at all. I need not think, so long as I can pay; others will soon enough take the tiresome job over for me.

 

The guardians who have kindly taken upon themselves the work of supervision will soon see to it that by far the largest part of mankind (including the entire fair sex) should consider the step forward to maturity not only as difficult but also as highly dangerous. Having first infatuated their domesticated animals, and carefully prevented the docile creatures from daring to take a single step without the leading-strings to which they are tied, they next show them the danger which threatens them if they try to walk unaided. Now this danger is not in fact so very great, for they would certainly learn to walk eventually after a few falls. But an example of this kind is intimidating, and usually frightens them off from further attempts.

 

Thus it is difficult for each separate individual to work his way out of the immaturity which has become almost second nature to him. He has even grown fond of it and is really incapable for the time being of using his own understanding, because he was never allowed to make the attempt. Dogmas and formulas, those mechanical instruments for rational use (or rather misuse) of his natural endowments, are the ball and chain of his permanent immaturity. And if anyone did throw them off, he would still be uncertain about jumping over even the narrowest of trenches, for he would be unaccustomed to free movement of this kind. Thus only a few, by cultivating their own minds, have succeeded in freeing themselves from immaturity and in continuing boldly on their way.

 

There is more chance of an entire public enlightening itself. This is indeed almost inevitable, if only the public concerned is left in freedom. For there will always be a few who think for themselves, even among those appointed as guardians of the common mass. Such guardians, once they have themselves thrown off the yoke of immaturity, will disseminate the spirit of rational respect for personal value and for the duty of all men to think for themselves. The remarkable thing about this is that if the public, which was previously put under this yoke by the guardians, is suitably stirred up by some of the latter who are incapable of enlightenment, it may subsequently compel the guardians themselves to remain under the yoke. For it is very harmful to propagate prejudices, because they finally avenge themselves on the very people who first encouraged them (or whose predecessors did so). Thus a public can only achieve

enlightenment slowly. A revolution may well put an end to autocratic despotism and to rapacious or power-seeking oppression, but it will never produce a true reform in ways of thinking. Instead, new prejudices, like the ones they replaced, will serve as a leash to control the great unthinking mass.

 

For enlightenment of this kind, all that is needed is freedom. And the freedom in question is the most innocuous form of all freedom to make public use of one's reason in all matters. But I hear on all sides the cry: Don't argue! The officer says: Don't argue, get on parade! The tax-official: Don't argue, pay! The clergyman: Don't argue, believe! (Only one ruler in the world says: Argue as much as you like and about whatever you like, but obey!). All this means restrictions on freedom everywhere. But which sort of restriction prevents enlightenment, and which, instead of hindering it, can actually promote it ? I reply: The public use of man's reason must always be free, and it alone can bring about enlightenment among men; the private use of reason may quite often be very narrowly restricted, however, without undue hindrance to the progress of enlightenment. But by the public use of one's own reason I mean that use which anyone may make of it as a man of learning addressing the entire reading public. What I term the private use of reason is that which a person may make of it in a particular civil post or office with which he is entrusted.

 

Now in some affairs which affect the interests of the commonwealth, we require a certain mechanism whereby some members of the commonwealth must behave purely passively, so that they may, by an artificial common agreement, be employed by the government for public ends (or at least deterred from vitiating them). It is, of course, impermissible to argue in such cases; obedience is imperative. But in so far as this or that individual who acts as part of the machine also considers himself as a member of a complete commonwealth or even of cosmopolitan society, and thence as a man of learning who may through his writings address a public in the truest sense of the word, he may 'indeed argue without harming the affairs in which he is employed for some of the time in a passive capacity. Thus it would be very harmful if an officer receiving an order from his superiors were to quibble openly, while on duty, about the appropriateness or usefulness of the order in question. He must simply obey. But he cannot reasonably be banned from making observations as a man of learning on the errors in the military service, and from submitting these to his public for judgment. The citizen cannot refuse to pay the taxes imposed upon him; presumptuous criticisms of such taxes, where someone is called upon to pay them, may be punished as an outrage which could lead to general insubordination. Nonetheless, the same citizen does not contravene his civil obligations if, as a learned individual, he publicly voices his thoughts on the impropriety or even injustice of such fiscal measures. In the same way, a clergyman is bound to instruct his pupils and his congregation in accordance with the doctrines of the church he serves, for he was employed by it on that condition. But as a scholar, he is completely free as well as obliged to impart to the public all his carefully considered, well-intentioned thoughts on the mistaken aspects of those doctrines, and to offer suggestions for a better arrangement of religious and ecclesiastical affairs. And there is nothing in this which needs trouble the conscience. I; or what he teaches in pursuit of his duties as an active servant of the church is presented by him as something which he is not empowered to teach at his own discretion, but which he is employed to expound in a prescribed manner and in someone else's name. He will say: Our church teaches this or that, and these are the arguments it uses. He then extracts as much practical value as possible for his congregation from precepts to which he would not himself subscribe with full conviction, but which he can nevertheless undertake to expound, since it is not in fact wholly impossible that they may contain truth. At all events, nothing opposed to the essence of religion is present in such doctrines. For if the clergyman thought he could find anything of this sort in them, he would not be able to carry out his official duties in good conscience, and would have to resign. Thus the use which someone employed as a teacher makes of his reason in the presence of his congregation is purely private, since a congregation, however large it is, is never any more than a domestic gathering. In view of this, he is not and cannot be free as a priest, since he is acting on a commission imposed from outside. Conversely, as a scholar addressing the real public (i.e. the world at large) through his writings, the clergyman making public use of his reason enjoys unlimited freedom to use his own reason and to speak in his own person. For to maintain that the guardians of the people in spiritual matters should themselves be immature, is an absurdity which amounts to making absurdities permanent.

 

But should not a society of clergymen, for example an ecclesiastical synod or a venerable presbytery (as the Dutch call it), be entitled to commit itself by oath to a certain unalterable set of doctrines, in order to secure for all time a constant guardianship over each of its members, and through them over the people ? I reply that this is quite impossible. A contract of this kind, concluded with a view to preventing all further enlightenment of mankind for ever, is absolutely null and void, even if it is ratified by the supreme power, by Imperial Diets and the most solemn peace treaties. One age cannot enter into an alliance on oath to put the next age in a position where it would be impossible for it to extend and correct its knowledge, particularly on such important matters, or to make any progress whatsoever in enlightenment. This would be a crime against human nature, whose original destiny lies precisely in such progress. Later generations are thus perfectly entitled to dismiss these agreements as unauthorised and criminal. To test whether any particular measure can be agreed upon as a law for a people, we need only ask whether a people could well impose such a law upon itself. This might well be possible for a specified short period as a means of introducing a certain order, pending, as it were, a better solution. This would also mean that each citizen, particularly the clergyman, would be given a free hand as a scholar to comment publicly, i.e. in his writings, on the inadequacies of current institutions. Meanwhile, the newly established order would continue to exist, until public insight into the nature of such matters had progressed and proved itself to the point where, by general consent (if not unanimously), a proposal could be submitted to the crown. This would seek to protect the congregations who had, for instance, agreed to alter their religious establishment in accordance with their own notions of what higher insight is, but it would not try to obstruct those who wanted to let things remain as before. But it is absolutely impermissible to agree, even for a single lifetime, to a permanent religious constitution which no-one might publicly question. For this would virtually nullify a phase in man's upward progress, thus making it fruitless and even detrimental to subsequent generations. A man may for his own person, and even then only for a limited period, postpone enlightening himself in matters he ought to know about. But to renounce such enlightenment completely, whether for his own person or even more so for later generations, means violating and trampling underfoot the sacred rights of mankind. But something which a people may not even impose upon itself can still less be imposed upon it by a monarch; for his legislative authority depends precisely upon his uniting the collective will of the people in his own. So long as he sees to it that all true or imagined improvements are compatible with the civil order, he can otherwise leave his subjects to do whatever they find necessary for their salvation, which is none of his business. But it is his business to stop anyone forcibly hindering others from working as best they can to define and promote their salvation. It indeed detracts from his majesty if he interferes in these affairs by subjecting the writings in which his subjects attempt to clarify their religious ideas to governmental supervision. This applies if he does so acting upon his own exalted opinions (in which case he exposes himself to the reproach: Caesar non est supra Grammaticos) but much more so if he demeans his high authority so far as to support the spiritual despotism of a few tyrants within his state against the rest of his subjects.

 

If it is now asked whether we at present live in an enlightened age, the answer is: No, but we do live in an age of enlightenment. As things are at present, we still have a long way to go before men as a whole can be in a position (or can ever be put into a position) of using their own understanding confidently and well in religious matters, without outside guidance. But we do have distinct indications that the way is now being cleared for them to work freely in this direction, and that the obstacles to universal enlightenment, to man's emergence from his self-incurred immaturity, are gradually becoming fewer. In this respect our age is the age of enlightenment, the century of Frederick.

 

A prince who does not regard it as beneath him to say that he considers it his duty, in religious matters, not to prescribe anything to his people, but to allow them complete freedom, a prince who thus even declines to accept the presumptuous title of tolerant, is himself enlightened. He deserves to be praised by a grateful present and posterity as the man who first liberated mankind from immaturity (as far as government is concerned), and who left all men free to use their own reason in all matters of conscience. Under his rule, ecclesiastical dignitaries, notwithstanding their official duties, may in their capacity as scholars freely and publicly submit to the judgment of the world their verdicts and opinions, even if these deviate here and there from orthodox doctrine. This applies even more to all others who are not restricted by any official duties. This spirit of freedom is also spreading abroad, even where it has to struggle with outward obstacles imposed by governments, which misunderstand their own function. For such governments now witness a shining example of how freedom may exist without in the least jeopardizing public concord and the unity of the commonwealth. Men will of their own accord gradually work their way out of barbarism so long as artificial measures are not deliberately adopted to keep them in it.

 

I have portrayed matters of religion as the focal point of enlightenment, i.e. of man's emergence from his self-incurred immaturity. This is firstly because our rulers have no interest in assuming the role of guardians over their subjects so fir as the arts and sciences are concerned, and secondly, because religious immaturity is the most pernicious and dishonourable variety of all.

But the attitude of mind of a head of state who favours freedom in the arts and sciences extends even further, for he realises that there is no danger even to his legislation if he allows his subjects to make public use of their own reason and to put before the public their thoughts on better ways of drawing up laws, even if this entails forthright criticism of the current legislation. We have before us a brilliant example of this kind, in which no monarch has yet surpassed the one to whom we now pay tribute.

 

But only a ruler who is himself enlightened and has no far of phantoms, yet who likewise has at hand a well-disciplined and numerous army to guarantee public security, may say what no republic would dare to say: Argue as much as you like and about whatever you like, but obey! This reveals to us a strange and unexpected pattern in human affairs (such as we shall always find if we consider them in the widest sense, in which nearly everything is paradoxical). A high degree of civil freedom seems advantageous to a people's intellectual freedom, yet it also sets up insuperable barriers to it. Conversely, a lesser degree of civil freedom gives intellectual freedom enough room to expand to its fullest extent. Thus once the germ on which nature has lavished most care --man's inclination and vocation to think freely--has developed within this hard shell, it gradually reacts upon the mentality of the people, who thus gradually become increasingly able to act freely Eventually, it even influences the principles of

governments, which find that they can themselves profit by treating man, who is more than a machine, in a manner appropriate to his dig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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