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혁신 -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는다
달라스 윌라드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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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삶은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책이다. 겉모습만 기독교인이 아닌 속사람이 변화된 삶을 위해 이 책은 먼저 우리 눈이 이 목표에 고정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릇이 아닌 보배에 집중하는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략적으로 감정이나 의지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출발하여 知, 情, 意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과의 동행하에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는 행위로 드러나도록 해야함을 보여준다.또한, 영혼의 변화만이 조직자체를 위한 조직이나, 사람을 위한 예배가 아닌 빛과 소금을 감당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주를 닮아가는 것이외의 무엇이 아님과, 이 일을 위해 말씀과 기도, 인도하심과 경책에 귀기울임이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함에도 왜 자꾸 이 길을 잊게 되는지 모르겠다. 매일을 말씀묵상과 삶의 인도를 경험하는 것, 조용히 그분과 대화하는 시간을 내는 것, 꾸짖으시는 것을 바꾸어 성품이 되도록 하는 일, 다시 시간과 마음을 모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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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해설
칼 바르트 지음, 신경수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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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르트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하나님 말씀의 신학]으로 불리우는 하나님 중심적 신학으로 대표되는 분이다. 혹자는 그의 신학이 인간에 대한 균형 감각이 없다고 하나 그의 논지가 인간 중심의 극단으로 치닫는, 그래서 인간 자신을 결국 상실하게 하는  20세기적 삶의 상황을 바라보는데 그 배경이 있음을 본다면 오히려 참된 균형이 있는 것이라고 옹호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성경관이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을 파괴한다하여 이단시 하기도 하나, 그의 진정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과의 비교하에 이루어진 앞의 배경을 본다면 굳이 16세기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자 했던 종교개혁자들과 비추어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 더욱이 20세기를 철저히 이해하고자 한 그의 신학은 도리어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

바르트는 1886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하여 인본주의적 신학을 배워 35세까지의 그는 자유주의적 신학관을 따랐다.  1919년 출판된 로마서 강해 제 1 판은, 이후 1922년 제2판에서는 [전적인 타자 the otherness of God]인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씌여졌다. 또한 1927년 괴팅겐, 뮌스터 교수 시절의 [기독교교의학 Christliche Dogmatik]은 1932년 믿음과 이성에 대한 그의 견해가 수정되면서 본 대학에서 [교회교의학 Kirchliche Dogmatik]으로 다시 바뀐다. [기독론적 집중Christological concentration]으로 불리는 이 견해는 이후 일관되게 바르트의 입장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그의 신학적 입장이 정리된 1935년 씌여진 사도 신경에 대한 해설로서, 교회교의학의 바르트의 입장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개괄로서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2000년  다산글방에서 나온 다른 번역은 현재는 구할 수가 없어 1997년 초판본의 2003년 중쇄본인 이 책으로 대신 했는데 직역된 부분이 많아 독서가 용이치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2000년의 다른 번역본을 구해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사도 신경의 세 조항, 성부, 성자, 성령과 교회의 부분을 철저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이 나타내는 계시의 빛 아래, 은폐되어져 왔던 성부가 참으로 알려지며, 다시 은폐되어진 중간시대의 성령의 의미와 역할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결정적 계시 이후 다시 시작된 유보의 시기를 교회와 성령의 빛아래 살되, 직접적으로 드러난 그리스도를 아는 능력 아래 있게 하신 것이다.

바르트를 어떻게 말할까? 혹자는 [자유주의자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던져진 핵폭탄]이라고도 하지만, 나에게 그의 글은 현재를 사는 나자신과 세상 사이에 심연을 보여준 조명탄이라는 느낌이다. 세상의 방법과 이성을 엮어 무엇무엇의 선한 것을 얻으리라는 생각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다. 나자신의 죄라는 것, 나의 선함이라는 것의 정체, 이상적 삶의 방식과 의지, 이 모든 것을 십자가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목격하며 다시 처음 그분을 보던 자리에 무릎 꿇게 한다. 세상에 대한 충분한 대안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나, 승천하시고 숨겨지신 그의 능력을 무시하는 나, 은폐된 그의 나라의 다시 오심이 아닌 영원한 중간계의 지속을 누리며 사는 나를 본다. 오늘도 나에게 hurt 하는 자를 참지 못하고 복수로 응답하는 나를 보며  [주여, 제가 믿사오니,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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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쟈크 엘룰 / 대장간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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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의 역사]를 읽고 다시 읽은 이 책은 전에 느끼지 못한 강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들을 귀가 없을 때는 듣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왜 그토록 기술의 지배에 대해 경고하는지, 결국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현대사회의 심각성]을 이해치 못하고 전에는 이 글을 읽었던 셈이다.

먼저 엘룰은 1장에서, 이 땅 가운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지적한다. 삶이 변증이다. 특히, 평신도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2장은, [사실]에 대한 현대인의 복종과 ,그것을 뒤엎는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에 기초한 기술적 방법은 그 굴레에 갇힌 기술자신을 자살에서 구하지 못한다.오직 세상은 끝이 있고 심판이 존재함에 비추어 볼 때에만 [역사는 미친 광란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의 실천에 강령과 원리란 없다.현재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나라 도래의 확실성만이 잣대가 된다. 

3장은 수단이 목적이 되는 [기술사회]에 대한 이해와, 수단을 목적에 종속시키는 유일한 대안이 [그리스도의 주권]임을 제시한다. 결과는 행동강령의 도출이 아닌, 자신의 모든 상황이 하나님 앞에 노출되어진 삶이다. 말과 습관,그리고 결정에 성령이 표현됨을 의미한다. 코람데오의 삶.

4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인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성의 변화를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의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삶이다.  현실은 파악이 불가능하게 선전에 둘러쌓여있고, 지성은 기술적 수단이외의 것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의사소통의 길은 막히고, 사람들은 자포자기의 삶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다. 파악되지도 않는 세상과 가치의 척도. 맘대로 살자는 결론... 

대안은 세상과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객관적 현실을 발견하고자 이웃사이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의 실재를 보아야 한다. 오직 성령의 조명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 그때야 비로서 이웃은 [그리스도가 위해 죽으신 귀한 존재]가 되고,역사는 인류에게 발생한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사건이 비추어주는 의미있는 것이 된다. 삶에는 거룩한 영역이 존재케 되고 우리를 자살의 길에서 멈추게 할 수 있다.   

5장에서, 이를 위해 먼저 교회는 사람들로 경제적,지적,심리적, 육체적으로 인간을 회복하도록 해야한다고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 사회는 혁명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일이다. 신앙을 삶에 실천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게 한다. 반드시 공동체로서 이루어야 할 부분이다.엘룰은 또한 그 원동력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와야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세상이 좋게 변해야 한다면, 그 일을 위한 마스터플랜과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 방법이 틀렸다면 또 다른 철학으로 뒤집어 엎고 시작하면 된다는 꿈을 꾸며 청년의 때를 지나왔다. 얼마나 방법에 의존한 인간의 변화를 위해 살아왔나? 항상 의문은 나를 교육시켰던 사람도, 뒤집어 엎자던 동료도,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처음 뜻과 달리 흐르고 더욱이 나 자신에 의해 깨어졌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그리하다 내리는 결론은, [악하고 세상에 매몰된 나자신이 무슨 선한 것으로 세상에 빛이 되나]하는 것이다.

엘룰은 애시당초 우리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는다. 세상을 사랑하고 아들을 보내시고 역사를 이끄시는 분만이 소경인 우리를 인도하신다. 매일의 묵상의 시간과 기도는 이제 삶의 기준이 되어 나를 뒤집고, 나의 허접한 목표들을 부수고 말것이다. 이것이 차마 세상을 바꿀 힘이 되도록 하신다고 한다. 내 힘이 빠지고 그분을 따를 때... 정말 가능한가요? 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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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사상
프란시스 A.쉐퍼 / 성광문화사 / 199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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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퍼가 1968년 쓴 가장 초기의 저술이자 그의 사상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원제는  [The God Who Is There]. 그는 20세기 철학, 미술, 문화가 이미 절망의 경계선을 넘어 반정립이 아닌 변증적 사고로 치닫고 있으며 이제 합리적 세계가 아닌 비합리적 도피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시대에 구원의 복음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제로 하는 [예비복음]을 미리 오랜동안 설명할 필요가 있으며, 선포뿐 아니라 그 실제 삶을 보여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여 선포를 이해하도록 힘있게 하여야 함을 말한다.

라브리공동체의 설립자이기도 한 쉐퍼의 이념과 공동체의 취지를 엿볼 수 있으며 [기독교세계관] 혹은 [성경에 따르는 사고]의 혁신의 중요성을 집어낸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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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물고기 - 시편강해
계지영 지음 / 한국강해설교학교출판부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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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의 윤덕영님에게 소개받은 이 책은 시편중 21편에 관한 계지영 목사님의 강해와 사모님의 신앙에세이 묶음이다. 이 책의 강점은 무엇보다 일반 신도를 위한 말씀인만큼 적절한 예화와 어휘로 시편을 가슴으로 읽는데 좋은 책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시편의 해석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균형잡힌 것이었다. 설교를 위한 감성적 시편 접근은 자칫 현실 상황에만 매달려 본문의 의미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시편자체를 같이 공부해가며 읽은 이 책은 도리어 시편의 역사적, 신학적 이해를 도울만큼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적절히 옛것과 새것을 내오는 주인과 같다고 하셨다. 시편을 읽어가며 듣는 계목사님의 적절한 적용과 삶에의 확장은 분명 큰 기쁨과 소망을 주는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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