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사극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이태주 옮김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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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랭커스터 4부작]중 [헨리 4세 1,2부][헨리 5세]와 [리차드 3세]를 묶었다. 랭카스터왕조의 시조인 헨리 4세(1399 ∼ 1413)는, 플랜테지넷 왕조 에드워드 3세(1327 ∼ 1377)의 손자로 1398년, 사촌형인 당시의 국왕 리처드 2세(1377 ∼ 1399)에게 역모를 저지른 혐의로 프랑스에 추방되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리처드 2세가 랭커스터의 땅을 몰수하였기 때문에 급히 귀국하여, 왕군을 무찌르고 리처드 2세를 퇴위시킨 뒤 즉위하였다. 그의 아들인 핼은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로 악명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5세로 왕위계승 후 현군으로 변모한다.

[헨리 4세]는 실제 그 주인공이 헨리 4세가 아닌  아들인 왕자 핼(Hal)이다. 이상적이고 민중과 친숙한 지배자로서 뒤에 헨리 5세가 되는 왕자 핼은 이 작품의 중심 테마를 이룬다. 왕자시절 어울리던 불량배 같은 친구들과 결별하면서 핼은 황태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핼이 수행하는 전쟁과 치리의 이면에는 헨리 4세의 [왕위찬탈의 짐]이라는 주제가  그 중심을 차지한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 헨리 4세는 내내 자신의 성공한 반란에 대한 가책과 그로 인해 언제든 자신도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운데 사는 인물로 묘사된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왕조의 풍성한 시기에 이 극을 통해 정치적 수완의 권력세계와 권력에 따르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사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로서의 왕권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올바른 통치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15세기판 클링턴], 사생활과 무관한 정치적 역량에 대한 평가라고 할까? 즉 인격과 통치를 연결해 생각치 말라는 거다. 백성이 호의호식하고 평화롭게 살게 하는데 통치의 목적이 있으므로... 이는 정치를 도덕과 분리시킨 하나의 [역량 virtu]으로 보는 마키아벨리적 사고이면서 동시에 단테가 말하는 종교와 분리된 정치의 고유목적의 달성이다. 셰익스피어를 보며 항상 느끼는 것은 어떻게 1500년대 후반에 이런 작가가 나타날 수 있나하는 놀라움이다. 심리묘사, 극의 진행방식과 형식의 자유로움, 인생에 대한 고대와 중세가 어울어진 사고 위에 그 자신만의 위트를 섞는 방식 모두...앞세대와의 단절을 느끼게 하는 천재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바하와 헨델을 들으며 느끼는 [어떻게 이런? ] 그것과도 비슷한 느낌이리라.

이 극의 주변인물중 단연 주목받는 사람은 불량배 친구 팔스타프(Falstaff)이다. 그는 허풍장이, 유혹자, 술주정뱅이에 도둑이다. 험담과 욕, 자기변명과 합리화, 방탕과 치기어린 악행의 대변자인 그는 결국 핼에게 버림받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분명 그는 셰익스피어를 다른 작가와 차별시키는 중요한 존재다. 왕도 인간임을 알기에, 그는 왕이 자신에게 비정함을 이해할 수 없었고, 왕이 됐다고 얼굴 바꾸는 것은 왕 생각에는 대의를 생각하는 훌륭한 결정일지 모르나 모든 것이 궤변인 이 세상 삶에서 그것도 어불성설이라는거다. 이런 태도는 [헨리 5세]중에 전투전날 영국군 병영에서의 하급군졸과 자기신분을 숨긴 왕과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웃기지 말라. 정치가 우리삶을 위한 것이라구? 법은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구? 그건 인생을 보는 그들, 왕과 귀족의 해석이다. 법 또한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자들을 위한 폭력적 억압도구일뿐...그래서 [그대들의 역사는 항상 그대들의 것일뿐]이라는게 세익스피어의 속마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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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시집
셰익스피어 지음, 피천득 옮김 / 샘터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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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서른을 바라보던 1593년부터 96년 사이에 대부분 씌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154편으로 묶어져 출판된 것은 1609년 토마스 쏘오프에 의한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출판당시의 시의 순서의 배열은 이 소네트를 셰익스피어 자신의 자서전적 경험으로 보려는 의도로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글들이 그의 습작기에 써진 점과, 그의 개인적 경험과 일치되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점을 들어 도리어, 작가로서 틀을 잡던 그가 시도한 여러 형태의 시 모음 자체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 시들을 [이상한 우정]을 나누는 남자친구와, 작가를 버리고 그 친구에게로 변심한 [얼굴 검은 여인] 사이에서 읍소하는 셰익스피어의 넋두리보다는, 개별적 시로 읽는 것이 훨씬 즐거워 그냥 시 한편 한편으로 즐겨읽었다.

비록 이른바 셰익스피리언 소네트라 하는 abab cdcd efef gg의 음율을 원문으로 즐길 수는 없다해도 피천득 시인의 번역은 매끄럽고, 마지막 두 행의 반전을 살려내는 맛이 있었다.(사실 이 번역본의 시 전체가 마지막 두행이 그림이 놓여있고 뒤로 물러나 앉아있다!) 더욱이 셰익스피어가 장중한 맛의 기존 소네트를 비웃으려는 의도로 쓴 것을 드러내듯 번역자는 해학과 장난기를 담아냈다. [내게 필요없는 하나를 더 달고] 나왔다느니 하는 표현은 압권이다. 그리고 후반부의 [윌과 윌의 경쟁]과 [아이버리고 닭 좇아가는 엄마]같은 시는 요절복통감이다.

시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시는 함축된 언어의 뒤를 넌지시 비추는 암시라고 생각된다. 다 까고 말하지 않아서 더 멋들어진 무엇. 그러나, 이런 언어를 직설적이고 도구주의적인 현대인은 반기지 않는다. 최근 [시가 내게로 왔다]가 우리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물론 훌륭한 시들의 묶음인 때문도있겠지만, 이 괄시 받는 언어가 가진 함축성을 산문으로 풀어낸 때문은 아닐까?  

시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우리 선조도 옛 서양인들도 그러했건만, 아이에게 시 한수 외어보라던 스승도 어른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살기가 힘들어진 때문인가, 아니면 좀머씨처럼 누군가 우릴 좇고 있듯 살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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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A. 보에티우스 지음, 정의채 옮김 / 열린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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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망일로를 걷기 시작한 서로마는 476년, 게르만계 부족 출신의 용병의  대장인 오도아케르가 황제에 오르면서 막을 내린다. 동로마제국의 황제 제논은 그의 이탈리아 지배를 일단 묵인하였으나, 뒤에 동고트왕 테오도리쿠스에게 오도아케르 토벌을 위탁하였다. 489년 이탈리아에 쳐들어온 테오도리쿠스는 가는 곳마다 오도아케르의 군을 쳐부수고 493년까지 전이탈리아를 지배하에 넣었으며, 라벤나를 수도로 삼아 동고트왕국을 세우고 눌러 앉아버린다.

서로마의 땅을 점령한 동고트왕 테오도리쿠스는 로마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 책의 저자 보에티우스 등을 등용하여 유화정책을 꾀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힘은 없지만 끊임없이 서로마를 회복코자하는 동로마에 대한 경계만은 늦출 수 없었다. 520년 집정관 알비누스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와 내통하였다는 이유로 고발되었는데, 이때 보에티우스는 법정에서 알비누스를 옹호하다 그 역시 반역혐의를 받고, 파비아(Pavia)의 감옥에 갇혔다가 524년에 처형되었다.

이 책은 보에티우스가 사형을 기다리며 파비아에서 쓴 것으로, 그가 당하는 억울함과 고통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철학의 여신의 입을 빌어 대답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시들은 각 진술들을 요약하고 시적 형태로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는 보에티우스가 단순히 자신의 처지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위해서뿐 아니라, 유일신 사상에 근간한 그의 종교철학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서는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는 도입부이다. 2서는 이生의 좋은 것이라 여기는 행운, 권력, 명예, 부의 별볼일 없음을 이야기하고, 3서에서는 결국 [참된 최고선으로서의 신에 대한 추구]를 제시한다. 4서는 다시 이런 최고의 목표에 비해 악인들의 초라한 실체를 설득한다. 5서는 다소 사변적인 장으로, 선의 지배에 수반되는 신의 [절대의지적 섭리의 세계]와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의 가능성]과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전체적 흐름에서 첨언처럼 보이기도 하는 5서의 긴 논변은 [철학의 위안]보다는 논증과 공격에 대한 변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던 사람들도 5서는 다소 힘겹다. 하지만,  이 글은 앞뒤로 어거스틴과 아퀴나스를 이어주며, 이후 스콜라철학이나 이와 연관된 근세철학의 논변의 뿌리가 되는 부분이므로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보에티우스의 위치로 인해 19세기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보에티우스가 실존하는 하나님과의 신앙이 아닌, 그리스로마 철학적 신개념에 의한 사변적 종교를 논한다하여 그를 폄하하기도 한다.

감옥에 갇힌 두사람을 본다. 보에티우스와 바울. 한 사람은 최고집정관 출신의 철학자 그리고 다른 이는 전도유망했던 바리새인 출신의 전도자. 둘은 삶의 진정한 의미가 눈에 보이는 것이라 믿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삶의 해답은 오직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추구하는데에만 있다는걸 알았고 또 그렇게 살았다. 어떤 모양으로나 그리스도만이 높여지길 원했던 옥에 갇힌 바울과, 마지막까지 인생의 파편인 부귀,권력보다는 절대자에게 돌아가기를 권하는 보에티우스. 그들은 옥에 갇히지 않은 나를 향해 지금 무얼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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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0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리뷰도 있군요! 에코의 에세이 <철학의 위안>을 읽고서 원 저서명인 보에티우스의 이 책을 찾아다녔는데, 아쉽게도 아직도 못구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보고 싶네요~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 대학고전총서 12
김영국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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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군주론 번역본의 미덕은 책의 1부를 이루는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저작]이다. 2부인 [군주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중요인물 뿐 아니라, 그의 다른 저작까지 소개하여 마키아벨리를 이해한 상태에서 군주론을 읽는 기회를 준다. 타출판사에서 덕이라 번역한 바 있는 virtu도 이 책의 역량이라는 번역이 고어적 의미로 또한 문맥적 의미로 더 적합하다. 다만 꼭 필요치 않은 부분에 등장하는 한문은 다소 한글세대에게는 글읽기를 매끄럽지 않게 할 수는 있겠다.

메디치가에 의해 前정권에 협력한 죄로 1512년 파면 당하고, 반역 모의의 누명으로 고문까지 당한바 있던  이 영민한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는, 1516년 집권자를 위해 [군주론]을 써서 헌정했다. 로마의 정치기술에 정통하며, 다양하고 폭넓은 외교, 군사, 정치 경험이 있었던 그는 이 책을 통해 복권과 권력에의 재진입을 원한 것 같다.

정치를 도덕과 분리시켜 하나의 자체적 성공을 지향하는 기술로 바꾸었을 때, 그 효율성은 최고에 달한다. 이 정치기술의 창시자 혹은 재발견자로서 마키아벨리는 후대에도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정치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순진한 뜻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일반시민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고...

그가 말하는 정치기술의 일부는 당 태종의 정관정요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백성의 지지 확보라는 점이다. [백성은 물과 같아서 정권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거스르면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동서양 모두 알고 있었던거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얻어내는 백성의 지지란 그리 순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당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법은 힘과 시늉이다. 이것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나 보다.  현대정치는 이런 면에서 프로파겐다의 활용으로 더욱 효율적이고 기만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뛰어난 정치기술에도 불구하고 運七技三(!)의 인생에서 결국 그는 실패한 인물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이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절반이나, 나머지 절반은 자기손에 있다고 믿었다. 또한, [운명의 신은 여신]이어서, 가혹하게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모델로 삼은 체사레 보르지아처럼, 결국 뛰어난 기술적 지식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오직 운이 따라주지 않아,그도 파멸을 맞는다. 기술을 숭배하는 자는 운명의 맞은편에 서게 되어 그 운행에 깔려죽게 된다는 교훈일까? 그래도 우리의 충성스런 정치테크노크라시는 기술이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믿음만은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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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세계의 사상 7
에라스무스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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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40세가 되던 1509년, 뜻이 맞는 영국의 친구 토머스 모어경을 방문한 그는 당시의 세태를 비웃는 재미있는 글을 써 모어경에게 헌정한다. [광우예찬], 내가 배울 땐 [우신예찬]이라 했는데 번역자는 Moria라는 말을 사회와 인간조건의 부조리라 해서 狂愚라 했다.

광우예찬에서 에라스무스의 당시 사회와 인물들에 대한 비판은 루터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기존의 관행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기준으로서 성서의 판단을 제시한다. 하지만 에라스무스의 비판은 처음부터 우회적이었다. 비유로 하는 간접적 비판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강도를 낮추고자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나이브한 비난으로 상대의 증오나 비난을 일으키길 꺼린 것이다. 대신, 성직자 뿐 아니라 당시의 철학자, 왕, 지식인 일체가 도마위에 오른다.

루터는 직접적 도전으로 당시 교권의 首長들을 공격한다. 에라스무스는 이런 혹독한 비난은 상대가 선한 자라 하더라도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분노케하고 악을 드러내게 함을 우려했다. 하지만, 강한 비난은 상대로 방어적이 되게 하는 반면, 약화된 비난은 상대로 잘못을 깨달을 수 없게 함을 생각하면 과연 루터가 취한 방법이 꼭 틀린 방법일까? 에라스무스가 지적한 교황권의 오류와, 섬기는 자가 아닌 지배자가 된 추기경과 독일의 주교들. 루터는 이 문제에 대해 에라스무스와 같이 느꼈으나 다른 방법으로 반응했다.  느낀 문제에 대한 각 사람의 스타일이다.

에라스무스가 우려한대로 급격한 개혁의 흐름은 프로테스탄트의 탄생과 더불어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기반을 뒤흔드는 소동을 몰고왔다. 누가 더 옳은가? 모른다. 내 스타일은 에라스무스 쪽이다. 균형감각이 있으며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되고자 했다. 최선의 이성적 의지적 선택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역사는 에라스무스를 새로운 변화의 주축이 아닌 주변인으로 파묻고 만다. 사실 어떤 여건에 의해 에라스무스의 의견이 더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져서, 프로테스탄트의 필요가 없는 가톨릭의 개혁이 선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충돌로 내달았고 에라스무스에게 어느 편인지를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온건우파인 그는 교황편에 섰고, 그의 [광우예찬]에 나타난 생각과 다르게 후대에 평가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중간에 선 사람의 양측으로부터의 배척이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우리가 땅에서 하는 많은 생각과 학문, 합의와 대안들. 더 나아가서는 평생 마음을 두고 해 온 사명과 인생 자체가 쓸모없는 것임을 인생 마지막에 깨달을 수도 있다. 쓸모있게 써 주는 분이 없다면...

盡人事 待天命. 사명을 깨닫고 그것에 집중하며 사명을 완수한다 할지라도 세워주시지 않으면 어찌할까? 헛되고 헛된 것 뿐인 인생임을 토로하며 떠날 수 밖에...오늘하루 만날 사람, 그들에 대한 선한 뜻조차도 좌절과 고민만 일으키고 마는 일상 가운데서, 주께서 내 하는 일로 열매맺게 하시며, 복 주시어 기쁨 얻게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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