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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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는 $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격언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작가가 자신이 정한 기호로 축약한 표현입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이 표현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에필로그의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에리히 프롬으로 이어지며 현대 자본주의 체재가 극도의 이윤추구에만 매몰됨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점차 노예화되고 도구화되는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 자유로울수 있는 시간을 사는 행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암묵적으로 각 개인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자유와 권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리 이해하는 것이 너무 관념적인 어려운 문제가 되어 마냥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무렵 저자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말한 아주 간단한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시켜 줍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적두개미의 연구를 꿈꾸는 주인공 TC는 어느날 자신의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적다가 자산으로 지닌 아파트며, 자동차, 예금등을 위하여 자신이 어쩔수 없이 끔찍한 직장생활을 35년동안은 해야한다는, 35년이라는 세월의 부채를 짊어진 빚쟁이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개미연구를 위해서는 적어도 35년은 부채를 갚기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인생의 부채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양도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게된 TC는 그 시간을 파는 사업을 구상하고, 5분이 들어있는 플라스크를 제작하고 팔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5분용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5분의 자유를 누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TC는 2시간짜리, 일주일짜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35년짜리 컨테이너까지 팔기 시작하고, 자신의 재산으로 기꺼이 35년을 구입한 사람들이 사는 어떤나라는 결국 우리가 매일 행하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중단된 혼란스런 상태로 치닫게 되고, TC는 사형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다시 국가에서 $로 T를 사는 과정을 통해 혼란은 수습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그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은 듯 합니다. 예를 들어 TC의 상사이자 사업의 동료였던 DP는 나라에서 지급한 $를 쌓아놓고 쇠똥구리연구에 자신의 T를 사용하는 선택을 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두가지 결말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과도하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삶을 꾸려 나가고 나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이전의 삶을 위해 일생을 고스란히 저당잡혀야 하는 고단한 인생들의 사회입니다. 저자의 의도된 이 두가지 결말은 아마도 우리 사회 체재에 대한 질문인 듯 합니다. 우리사는 사회가 삶을 위해 과도한 시간을 요구하는 즉 과도하게 시간을 착취하여 인간을 노예화 시키는 사회인가 아니면 영성과 사랑, 인류애, 협력 및 연대등을 통한 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답은 각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쪽에 한 표를 던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는 이 사회도 집과 음식과 의복을 유지하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일생을 저당잡힐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5년이나 10년일 수도 있고 어떤이들에게는 35년을 넘어 이 세상에서 눈감을 때까지 지속되는 악몽일 수도 있겠구요.

 잠시 개인으로서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를 생각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누린다는 의미는 어떤걸까? TC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 또는 내가 원한는 곳에 원하는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돈이 있다면 상당부분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겠으나, 결국 그 돈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야하므로 지금 당장부터 자유를 누리는 방법은 아닐듯 합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 있는 물질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내려 놓는 것, 이것이 내가 제일 쉽게 그리고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정답일 듯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무심히 나태함 속에 흘러가는 시간을 내게 붙들어 매는 것일 듯 하구요. 그렇게 시간을 관리한다면 TC에게 5분의 플라스크를 사지 않더라도 매일 몇개의 5분짜리 플라스크를 내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주께서 세상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것이 '시간'이라고 합니다. 언뜻 이 말이 진실인듯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이마저도 진실이 못되는 듯 싶습니다. 결국 있는 사람은 돈이라는 경제적인 수단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곳에 좀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는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고, 그로인해 좀 더 많은 시간적인 자유를 누릴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동일 -이것도 길게 보면 공평한게 아니지요, 40세를 못넘기는 사람도 있고 100살이 넘어사는 사람도 있으니-할지라도 상대적인 시간이나 그 시간의 질은 결코 같을 수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불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도 우리 자신이 어떤식으로 관리하고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누리는 시간의 자유의 질은 달라질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는 것은 나름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게 합니다. 즉, 내게 주어진 시간의 질은, 시간의 많고 적음보다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 내가 내리는 가치나 의미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다면  우리 각자가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그러한 경제적인 이유로 말미암은 양적인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은 적어도 5분만큼은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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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개미 박성득의 주식투자 교과서
박성득 지음 / 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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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의 말미에 주식시장을 결산하면서 어김없이 등장했던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2006년 주식시장이 2005년에 비하면 오른것도 거의 없고 위아래로 변동성이 더 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매년 어김없이 반복되는 뉴스중의 하나가 손해만 보곤 하는 개미로 일컫는 개인투자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관투자자나 외국인들은 별로 신통하지 않았던 장세에서도 벌었지만 개미들은 결과적으로 돈을 잃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오른 종목은 너무 빨리 팔고, 내린 종목은 미련스럽게 다시 오를거라는 욕심에 과감히 손을 대는, 이익은 줄이고 손해는 키우는 방식의 투자행태로 인한 결과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신문을 장식할 기사거리랄 것도 없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들이라는 골리앗과 맞서는 자체가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이미 이런 운명적인 결과를 각오한 것일테니까요. 수많은 정보를 찾아내고, 때로는 만들어 내기도 하고, 우리경제뿐만 아니라 미국과 세계경제에 대한 이해와 미래에 대한 정밀한 예측 등, 주식투자를 하는 개인이 감내하고 또는 알아내고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들을 상대는 척척 들여다보며 하는 게임이니, 그 게임에서 이겨낸다는 것이 대단한 거지, 졌다는 건 이미 시작할 때 정해진 운명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개미들의 자조섞인 모습에 '할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5세에 횟집에 들어가서 바닥을 닦으며 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한 이야기에서 부터 시작되는 초반부는 주식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흘렸던 땀과 눈물이 어린, 고단했지만 희망을 키웠던 강건한 삶의 기록입니다. 가난했던 15세의 소년이 횟집의 바닥을 청소하다가 주방보조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호텔의 요리사를 거쳐 작은 횟집의 주인이 되고, 그리고 규모를 키워 거대한 식당의 경영자로서 성공을 일구기까지의 자신의 삶속에서 겪었던 사업에 대한 철저한 준비-시장조사, 비용과 이윤의 계산 등-와 목표설정의 과정 및 필요성, 사업과 고객서비스에 대한 자세, 경영자로서 직원들에 대한 자세 등에 대한 자신의 몸으로 살아낸 내용들을 들려주고 있는데, 저자가 말했듯이 이러한 경험과 삶이 후에 그가 주식투자에 뛰어들었을 때도 그대로 적용되고 활용되는 내용들입니다. 

 저자는 서민이 주식투자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우리 국민 모두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에게 넘어간 우량회사들의 지분이 이제 몇배의 이득을 그들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챙기는 식의 우리 현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그가 하는 말입니다. 물론 투기나 도박의 성격을 갖는 주식투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열심히 공부하고 보는 눈이 생긴다면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 더한 이득을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쥐어줄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 때문인듯 합니다. 그리고 두번 망하고 세번째에야 일어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식초보들에게 들려주는 충고가 있습니다. 자기만의 시각이 생길 때까지 경제공부를 할 것, 모든 일상을 경제적인 마인드로 바라보고 주식과 연관 시키는 마인드를 가질 것, 하루하루의 주식시세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투자와 가치투자의 방법을 익힐 것, 얼치기 전문가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투자 종목을 결정하고 가상투자나 소액투자부터 시작할 것 등입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자신의 노하우에 대한 것들을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어떤 주식을 어떻게 선택하고, 필요한 정보는 어떻게 얻을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택한 주식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식으로 대할 것인지 등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독자들에게 스스럼없이 펼쳐 놓습니다.

 단순히 책의 제목에 쓰인 슈퍼개미라는 말과 100억대 주식부자라는 말에 솔깃해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지막 장을 덮으며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책의 알맹이에는 현학적인 이론이나 그럴듯한 방식의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도표나 노하우를 내놓으며 이렇게 하면 주식부자가 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다만 그가 살아오면서 익힌 그의 생각과 성공의 방법을 들려주며 이것이 내가 성공한 방법이고 자세라고 말하고 있지만, 바로 그 부분이 책을 읽는 내가, 저자가 말한 여러가지 내용에 대해서 저자만큼  치열하게 느끼며 살지 못했던 안일했던 부분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자세에서 생긴 차이가 슈퍼개미 박성득과 아직도 서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나같은 이들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끊임없는 공부와 자기 겸손, 절제 등의 덕목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쌓여서 저자는 성공하였고 무너지고 나서도 다시 일어섰으며,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 자신있게 자신의 인생을 말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이책을 대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부분입니다. 삶이란 게 부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가치있는 삶의 결과물이 쌓인 것이 결국 어느 순간에 내가 지니게 된 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느낌에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이 책을 덮으며 생각하는 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나의 감상입니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 근심에 쌓인 수많은 밤을 /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 울며 지새본 적이 없는 자 / 천국의 힘을 알지 못하나니.....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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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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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그리고 소설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 있었던 이야기(?). 국익과 진실, 거짓과 위선, 희망과 절망의 광풍을 동반한 그 이야기가 우리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것이 아득한 일인것처럼 느껴지고, 기억넘어 아스라이 묻혀졌다고 생각했는데 1년여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 기억이 다시 의식속에 삐져 나오기를 바라지 않을 것 같고, 그 사건을 다시 눈앞에 끄집어 내어 현실속에서 직면해야 한다는게 반가운 것이 아니겠지만, 당시 사건의 고리를 끝까지 놓지않고, 영원히 진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거대한 권력과 편견과 술수에 침몰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건강할 수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 살아서 그 발언권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당사자인 저자에 의해서 다시 우리 앞에 되살아와서 묻습니다. 우리사회가 아픈만큼 성숙해졌는가고.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답니다.'

 지금 눈으로 보는 이 엄기영 앵커의 멘트가 당시보다 더 생생하게 귓전을 울립니다. 당시의 시작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던 사건의 개요가 다시 파노라마처럼 살아납니다. 책을 보지 않아도 이미 그 내용의 대부분은 나의 의식속에서 삐져 나옵니다. 우리국민의 희망이었고 자존심이었고, 세계에 대고 이젠 우리민족이 힘껏 날개짓하며 날아오른다고 자랑하며 떠들었던 황우석 신화가 명확하게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고, 확정적으로 사망선고를 선언받는 판결문과도 같았던 말.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답니다. 아마도 한개나 두개정도는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마저도 모조리 뭉개버리고, 모든것이 권모와 술수와 눈속임의 결정판이었다는 것에 할말을 잃게 만든 사건의 종말이었습니다. 물론 그뒤로 줄기세포가 오염되었느니, 누가 속였느니 하는 논란이 있긴 하였지만 결국 애석하게도(?) 진실은 이겼고, 그 아픔은 고스란히 다시 이리저리 그 이야기속에 묻혀 일희일비하던 국민들의 가슴에 묻혔습니다.

 이 책을 굳이 다시 손에 잡은 이유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입니다. 민족주의니, 진실에 반하는 국익이니, 전문가 집단안에 생성된 인너써클과 고여서 썩어가는 학문의 자유니 하는 거대담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 자신이 온전히 반성하지 못하였다는 자의식에서입니다.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 나 자신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PD수첩의 난자문제에 대한 이의제기와 전문가들을 검증해보겠다는 무대뽀정신-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에 반대측에서 외쳤던 배아파하지 말고, 발걸지 말라, 비전문가가 전문가들의 검증을 부정한다는게 말이 되느냐 -물론 아직도 이부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처럼 전문가 그룹이 작동하지 못하였을 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는 등의 논리가 곧 나의 의견이 되었고, 당시 PD수첩과 MBC 측에 던져졌던 수많은 돌멩에 중에는 나의 돌멩이도 몇개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마무리 단계에서 어딘가의 게시판에 슬그머니 나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올리며 부끄러워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대하면서 아직도 나의 반성이 부족하였다는 자의식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내 삶이 따르지 않은 입에 발린, 내 양심에 평안을 주는 정도의 가식적인 반성으로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량은 두툼하지만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게 슬슬 넘어가는 이 책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며, 나와 우리를 그렇게 광풍에 휩쓸리게 한 사건들을 재구성해 봅니다. 이러한 책읽기가 온전한 반성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당시의 진실을 말해도 귀막고 돌을 던졌던 모습을 반성하고 저자의 글에 온전히 마음을 쏟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책읽기를 마치며 먼저는 저자와 그의 동료들의 용기와 인내와 투쟁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로 인해서 우리사회가 아직도 건강한 씨앗들을 품고 있다는 희망을 건져 올렸으니까요. 그리고 객관적이지 못했고, 형평을 유지하지 못하고 같이 휩쓸려 돌멩이를 던져댔던 것에 대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들이 옳았고 우리가 틀렸다고, 그리고 당신들로 인해 우리가 값진 빚을 당신들에게 졌다고. 이 사건을 통해 내 삶의 시야가 얼마나 편협할 수 있고, 내 상상의 폭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 그리고 깨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인지에 대한 값진 교훈을 얻게 됩니다. 독서를 하되 행간을 읽으라는 말의 의미가 이 사건을 통해 내게 다시금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저자는 아직 황우석교수가 진실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청와대와 조선일보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속에 커다란 배움 하나쯤은 새기게 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나 같은 범부도 이리저리 반성하고 또 반성을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씨앗 하나를 뿌린 저자와 그의 동료들에게 다시한번 감사하며, 그들이 싹틔우고자 한 곳에서, 아직도 토양이 척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씨앗들이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원하여 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제보자 K와 그 가정에 많은 사람이 누리며 살기 원하는 일상의 안식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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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김정일 - 경제전문가가 바라 본 북한 문제
김종서 지음 / 참콘(CHARMCON)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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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가! 김정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의 제목과 경제전문가가 쓴 북한관련서적이라는 점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책입니다.  최근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결국은 터뜨려 버린 핵실험,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 그리고 다시 시작된 6자회담 등 다시 한번 한반도를 긴장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들어간 중심에는 김정일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김일성이 죽고나면 무너질 줄 알았던 북한체제를 지금까지는 완벽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지탱해 나가고 있는 이 인물에 대해서 '잘가!'라는  한마디 말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굿바이 김정일, 사요나라 김정일 또는 잘가 김정일 이라는 친구에게 이별할 때 던지듯 한마디하고 그를 우리의 삶속에서 잊을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거기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에게 아직도 충성을 다짐하는 몇몇 눈먼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 그가 실각한다는 것은 이미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닌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정일 체제가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한 김정일의 사라짐이 아니라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국가에 미칠 갑작스런 붕괴의 파도는 아무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동감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김정일과 북한 체제를 다룬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제거하는데 세밀한 주의와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듯이 주변 국가들의 협조와 의견통일에 의한 잘 설계된 계획이 필요한 일인듯 합니다.  

 이 책의 논지는 큰 틀에서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결국은 붕괴할 것이다는 것과 현재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질서에 순응하여 우리의 길을 계획하자는 것인 듯 합니다, 무리한 군사력 강화와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적인 고립, 그리고 고립의 여파는 더 심해지는 경제난과 그에 따른 북한주민의 굶주림, 중간계층의 이탈등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결국 붕괴할 것이고, 그러한 북한의 붕괴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세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패권에 순응하는 지혜로운(?) 길을 택하자는 것이 저자의 주된 논조인 듯 합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라는 종속변수도 고려해야 하겠지요. 저자는 북핵문제의 접근이나 햇볕정책의 방향, 주한미군이나 전시작전권의 반환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지를 유지합니다. '미국을 인정하자 그리고 거기에 순응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자. 결국은 세계의 질서는 미국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흘러갈테니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운명을 또 다시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듯한 뭔가 허전함을 안겨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책을 들면서 기대했던 굿바이 김정일에서 묻어나는 유쾌하고 명쾌한 어감은, 이내 잘가 김정일정도로 변하더니, 사요나라 김정일이라는 일본 군국주의 색채가 묻은 보수주의자의 비웃음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저자가 여러가지 것들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 그것들은 우리나라의 보수논객들이 수없이 반복했던 논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고 조금도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답답함이 남습니다. 그리고 경제전문가로서 여러 책을 집필했던 저자의 이력에서 기대했던 북한문제와 통일이 우리나라에 끼치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통일이 될때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된다면 주식이 오르겠지만 결국은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거라는 식의 말은 전문가에게 의지해야만 들을수 있는 대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통일을 말하지만 그에 대한 국민과 국가의 통일된 의견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채 시간을 흘러보내는 나라, 보수건 진보건 상대의 통일관이나 생각들에는 귀를 닫은 채 자기들만 옳다고 소리치는 나라, 우리앞에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북한 붕괴라는 커다란 파도 앞에서도 그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민족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나라, 아무런 진보도 없이 결국은 한해를 또 마무리해가는 그런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내가 부끄러운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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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박목월.박동규 지음 / 대산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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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아들들에게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모든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박목월. 우리 중 누구나, 그의 시를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청록파' 시인중의 하나라고 시험문제에 답을 몇번씩은 했을 우리시단의 거목이지요. 그리고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나그네>의 한구절쯤은 마음속에 담고 사는 사람도 여럿일게구요. 저자는 이런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떼어내서 그의 삶을 생각하더라도 또 하나의 우리 사회의 그리고 우리 문학계의 건강한 지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저자가 굳이 자신의 아버지 박목월과 자식으로서의 박동규를 핏줄의 연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끈속에서 되돌아보는 귀한 글을 우리에게 이리 선물하였습니다. 저자는 이 글이 아버지의 우산아래서 살았던 행복을 뼛속깊이 깨달은 이후로, 아버지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의 골짜기를 함께 살았던 길을 돌아보며 글을 남기고자 했던 소망의 소산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통해 아버지 박목월이 남기고 간 삶에 대한 명징한 진실과 오늘을 보는 지혜와 미래를 바라보는 열린 시각을 자신의 가족들에게 알리고, 아버지 박목월이 살던 시대와 자신이 살던 시대라는 세월에 싸인 단층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과 자신을 위해 즐기는 삶으로 대별되는 삶에 대한 인식의 차이- 으로 인해 부모와 자식간의 소통이 막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가족관의 문제를 짚어보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식 사랑과 부모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부모사랑의 원형을 자신의 가정을 통해 밝히고 허물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I. 아버지 박목월, 남편 박목월 그리고 삶에 가득 채워진 가장의 사랑

  책의 앞부분은 시인 박목월이 쓴 일기형식의 글과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5남1녀의 아버지로서 그의 삶의 기록입니다. 다양한 주제와 사람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결국 내용의 중심은 그의 삶에 가득히 차고 넘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인 듯 합니다. 갑상선 질환으로 수술을 해야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한 사랑으로 시작되어서 자식들 각각에 대해서 이어지는 부정은 읽는이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되돌아봄과 함께 숙연함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한 속깊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난하였으되 구차하지 않고 힘든 세월이었지만 나약해지지 않고 한 가정의 중심이 되어 삶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삶을 마다하지 않은 우리 아버지들의 애틋한 세월이 아버지로 살았던 시인의 삶에서도 고스란히 은은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말로만 글로만 시를 쓰지않고 그의 삶으로 시를 쓴, 그리고 그가 쓴 시의 구절처럼 진실과 지혜와 사랑으로 생을 살다간 한 가정의 가장을 보게 됩니다. 단지 시인으로서 그를 알고 있었던 것보다 그가 더 가까이 그리고 친근하게 내 곁에 서있고, 또한 존경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산 그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II. 아들 박동규, 가슴에 남겨진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삶속에 스며든 아버지에 대한 사랑

  뒤이어 이어지는 글속에서,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박목월은 온통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단어속에 파묻혀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의 구두 뒷축이 낡았어도 아들에게 새 구두를 신기며 기뻐하고, 자신의 옷깃이 다 해어졌어도 자식에게 새 양복을 입히고 웃음지었던 아버지의 모습 말입니다. 서커스 구경을 하고 싶은 아들에게 돈을 줄게 없어 함께 서커스 천막이 보이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몰래 들어가는 아이들과 개구멍을 보고는 아들을 밀어넣고 쇼가 끝날때 까지 기다려 주었던 아버지, 남의 자전거를 정말 타고 싶어서 몰래 탔다가 고장낸 자식을 보며 '얼마나 타고 싶었으면 그랬겠니?'라고 오히려 위로했던 아버지, 자식의 마음에 조그만 그늘이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 세심히 애쓰셨던 아버지, 자신의 어머니로 인해 모처럼 간 해수욕장에서 빌려입은 수영복으로 폼을 잡고 자식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놈아, 아버지는 너하고 함께 바닷가에서 저 멀리 수평선을 보고 앉아 있고 싶은적이 한두 번이었겠니?'하고 고백하며 자식과 함께 그런 곳에 함께 가지 못한 자신의 간난을 에둘러 표현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삶에 그대로 사랑으로, 삶에 대한 교훈과 지혜로 남겨진 듯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아들이 그 모든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아무 거리낌없이 애틋하게 적고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처음 책을 들며, 아버지 박목월이라는 이름이 너무 큰 나무이기이에 아들로서의 그의 삶에 그늘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그의 삶속에 지워진 짐이 너무 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글에 절절이 얽혀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사랑을 읽으며 이내 크게 어긋난 내 시각을 반성합니다. 저자가 머릿말에서 했던, 이질적인 가족관의 문제로 인한 소통의 부재와 가족간의 어긋남에 대해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해결의 단서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가 괜한 이야기가 아님을 이내 알게 됩니다. 아버지로서의 박목월의 삶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삶으로서도 충분히 자라고 성숙한 거목이었음을, 그리고 자식으로부터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고백받는 행복한 이였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부모의 깊은 사랑과 자식의 존경어린 부모에 대한 사랑이 세대간의 벽이 생긴 우리 사회 많은 가정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들로서의 저자의 삶 또한 스스로 머무르지 않고 그의 아버지처럼 한없이 자라가는 소중한 삶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의 희망이고, 우리 이웃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이 책 하나가 내 삶에 들어옴으로 인해 내 삶의 샘에 스러져가던 물줄기가 다시 새힘을 얻고, 풍족해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 -나를 포함한- 그리고 가족들에게 소망과 감사와 사랑이 가득한 한해살이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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