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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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은 없음만 낳느니라. -1막 1장 90행, 리어  

 멀쩡한 왕국을 세 딸에게 분할하여 양도하겠다고 생각한 리어왕이 딸들에게 요구하는 양도에 합당한 조건은 말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짐을 가장 사랑하는지, 그래서 효성과 자격 갖춰 요구하는 딸에게 최고상을 내릴 수 있도록.'-. 그러한 요구에 대해서 맏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듣는 귀가 즐거워질 달콤한 말로 아버지 리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진실한 마음이 담긴 고백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감동스러울 수도 있을 그러한 사랑 표현에는 실제로 리어왕 자신이 듣고 소유하고 싶었을 그런 간절하고 깊은 사랑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다만 양도되는 땅과 권력에 눈이 먼 탐욕스런 마음을 감춘 공허하게 울리는 허영에 찬 말뿐인 것이지요. 이에 반해 셋째 딸 코딜리아는 말이 진실과 외양을 왜곡하여 전달할 수 있음을 깨닫고는 허영에 찬 말보다는 사랑의 침묵을 택합니다 - 코딜리안 뭐라 하지? 사랑으로 침묵하라 (1막 1장 62행)-. 그리고 당당하게 화려한 미사여구를 담은 사랑의 표현을 요구하는 아버지 리어에게 '없습니다, 전하.'라고 대답하고는 도리에 따라 아버지를 사랑할 뿐 자신의 마음을 겉치레를 섞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진심어린 행위에 담길 수 밖에 없는 것임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리어왕의 반응은 '없음은 없음만 낳느리라'는 냉당한 말과 함께 아무런 재산의 양도도 없이 코딜리아를 성밖으로 내어쫒아버리는 것입니다. 역자는 이러한 리어왕의 주제를 '사랑의 비어있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독자로서 이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이 작품속 주인공들의 삶과 말속에 '있음'과 '없음' -특히 코딜리아의 '있음'과 '없음', 그리고 리어왕의 있음'과 '없음'-의 의미에 대한 성찰만으로도 훌륭하게 이 작품을 읽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코딜리아의 '없음'과 리어왕의 '있음'이 동일한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극의 초반에 없음이 없음으로 강렬하게 대립하며 파국으로 내달려가는 것은, 결국 코딜리아나 켄트의 진심어린 간언을 무시하는 리어왕의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오만과 딸들의 배신에서 생긴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광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리어왕의 성격적 결함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의 비극적 서사를 따라가는 것도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듯 합니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서로 쏙 빼닮은 주플롯-두 딸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간 리어왕의 몰락과 광기어린 삶과 세 딸이 얽힌 이야기-과 부플롯-아들 에드먼드의 감언이설에 놀아나 큰아들 에드거를 쫒아내고, 에드먼드의 배신으로 반역자로 몰려 눈알이 뽑혀 쫒겨난 글로스터와 두 아들이 얽힌 이야기-이 서로 얽혀 동일한 주제를 교묘하게 연계시키면서 심화시켜간다는 점에도 있다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권오숙, p79-고 합니다. 이외에 르네상스 시대에 자신의 노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성취하려는 르네상스형 자아창출자의 전형으로서의 에드먼드의 모습을 통해서 신분이 세습되는 중세시대의 틀을 깨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전조가 표현되고 있다는 점,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서처럼 광대-바보-를 통해서 신분이 높은 이들의 근엄한 척하는 삶속에 덕지덕지 붙은 허위와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점 등도 유의해서 살펴본다면 이 작품을 더 깊이있게 대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쌍한 코딜리아! 하지만 안 그래, 왜냐하면 내 사랑은 분명히 내 입보다 무거울 테니까. -1막 1장 76-78행, 코딜리아 

 목숨 걸고 판단컨대 막내딸의 사랑은 가장 적지 아니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공허한 말 않는다고 인정 없진 않습니다. -1막 1장  152-155행, 켄트 

 그래도 전하께 간청컨대 의도 없이 말로만 기름 치는 기술이 제게 없기 때문에 -좋은 뜻이 있으면 전 말에 앞서 실천하니까요.- 이건 밝혀 주십시오. 전하의 은총을 제게서 앗아간 건 사악한 오점이나 살인 혹은 추잡함, 부정한 행위나 천한 짓이 아니라 그것이 없기에 제가 더욱 부자인 늘 조르는 눈빛과, 못 가져서 전하의 사랑을 잃었지만 안 가져서 저는 기쁜 혀라는 사실을. -1막1장 225-235행, 코딜리아 

 시간은 숨어 있는 흉계를 드러내고 감춰진 잘못을 창피 주며 비웃지요. -1막 1장 282-283행, 코딜리아 

 아저씨 없음을 이용할 줄 알아? (광대) 글쎄 몰라. 없음에선 없음만 나오니까. (리어) -1막4장 128-129행 

 그녀의 찌푸린 눈살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때 당신은 괜찮은 친구였는데, 이젠 값없는 숫자 영이 됐어. 난 지금 당신보다 낫다고, 난 바보지만 당신은 없음이니까. -1막 4장 182-185행, 바보 

 가장 천한 거지들의 쓸데없는 물건에도 여분은 있는 법. 인간에게 본능만 채우라고 한다면 사람 목숨 짐승 값이 아니냐. -2막 4장 262-265행, 리어 

 바람아 불어라. 빰 터지게! 사납게 불어라! 하늘과 바다의 폭풍우야, 첨탑들이 잠기고 풍향계가 다 빠질 때까지 내뿜어라! 참나무 쪼개는 벼락의 선구자, 생각보다 더 빠른 유황색 번갯불아, 내 흰머리 태워라! 만물을 뒤흔드는 천둥아, 둥글게 꽉 찬 세상 납작하게 깨부숴라! 조물주의 틀을 깨고 배은의 인간 빚는 모든 씨앗 한꺼번에 엎질러라! -3막 2장 1-9행, 리어 

 벌거숭이 몸으로 극도로 매서운 하늘과 맞서느니 넌 차라리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게 낫겠다. 인간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말이냐? 애를 잘 고찰해 봐. 넌 누에에게 비단도, 동물에게 가죽도, 양에게 양털도. 고양이에게 사향도 빚진 게 없구나. 하! 여기 우리 셋은 변질됐어, 넌 물 그 자체이고. 문명을 떨쳐버린 인간은 바로 너처럼 불쌍한 알몸의 두발 짐승에 지나지 않아. 벗자 벗어, 빌린 것들을! 자, 여기 단추를 끌러다오. -3막 4장 99-107행, 리어 

 이렇게 멸시받고 그 사실을 아는 것이 겉 아첨에 속 멸시보다는 낫구나. 운며의 여신이 포기한 맨 밑바닥 인생은 언제나 희망품고 공포 속에 살진 않아. 통탄할 변화는 최상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최악은 웃음으로 되돌아가는 법. 그럼, 불어라, 내 가슴에 안기는 실체 없는 바람이여. 최악으로 떠밀려 간 비참한 이 몸은 너에게 빚진 게 없단다. -4막 1장1-9행, 에드거 

 인간은 가는 것도 온 것처럼 견뎌야만 합니다. 다 때가 있지요. -5막 2장 9-11행, 에드거 

 운명은 한바퀴를 다 돌았고 난 여깄소. - 5막 3장 172행, 에드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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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리스 - 전예원 세계 문학선 325 셰익스피어 전집 325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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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야 말로 인간의 지배자다. 시간은 인간의 어버이도 되고, 무덤도 되고, 주고 싶은 사람에겐 마음대로 무엇이든 주지만, 이쪽에서 바라는 것은 전혀 주지도 않는다. -p65, 2막 3장, 페리클리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이 극은 1607년에서 1608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심벌린>, <겨울 이야기>, <템페스트>와 더불어 후기 낭만극 -로망스-로 불립니다. '로망스 극의 특징은, 첫째로 내용이 동화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며, 둘째로 전반은 비극적이고 후반은 희극적이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그래서 희비극(Tragi-comedy)라고도 함-, 셋째로 죽은 줄 알았던 이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나 가족이나 연인가 재회하는 내용이 많다' -권오숙의 <그림으로 셰익스피어 읽기>, p415-고 합니다. 이 극도 이러한 낭만극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충실히 따르면서 페리클리스라는 인물의 기구한 운명과 그러한 운명의 반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부분이 원전을 가지고 있듯이, 이 작품도 중세 영국의 시인 가워의 <연인의 고백 (Confessio Amantis)>에 수록된 '타이어의 아폴로니어스 (Apollonius of Tyre)'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이어의 영주인 페리클리스는 출중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앤티어크의 공주에게 청혼하러 갔다가 앤티어크의 왕 앤타이어커스와 공주가 근친상간에 빠져있다는 비밀을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페리클리스는 기구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비밀을 들킨 앤타이크 왕의 강력한 보복이 두려워 자신이 다스리던 타이어의 통치를 충신 헬리케이너스에게 맡기고 유랑의 길에 나섭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굶주림에 몰락해가는 타서스인데, 거기서 양식을 나눠주면 머물던 그의 일행은 다시 앤티어크 왕의 추격이 두려워 모험에 나서게 되지만, 도중에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게 되고, 페리클리스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펜태폴리스 해안에 표류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혹하던 운명이 그에게 잠시 따스한 손길을 베푸는 듯하여, 그는 펜태폴리스의 왕 시머니디스의 딸 타이사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이내 운명의 따스한 손길은 더 가혹한 시련으로 그의 앞길을 내리쳐 버립니다. 헬리케이너스로부터 앤티어크 왕의 죽음과 왕을 요구하는 타이어 백성들의 급박한 소식을 접한 그는 임신한 타이사와 함께 귀국길에 오르지만, 운명은 다시 그의 배를 폭풍속에서 표류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딸 마리나를 출산하던 타이사가 죽어 -나중에 세리먼에 의해 회생하여 다이애나 신전의 여사제가 되지만-  수장하게 되고, 이전에 들렀던 타서스에 상륙하여 타서스의 왕과 왕비에게 어린 딸 마리나의 양육을 부탁하고 홀로 타이어로 귀국합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여기서도 가혹한 장난(?)을 멈추지 않고 타서스 왕비의 질투심을 부추겨 마리나를 죽음으로 내몰고 -실제로는 죽임을 당하기 전에 극적으로 해적들에게 구출(?)되어 미틸리니의 사창가에 팔려갑니다- 자신의 성장한 딸을 만나러 타서스에 온 페리클리스는 딸의 무덤을 보며 자신의 기구한 운명 앞에서 말을 잃고 맙니다. 살아있는 마리나 역시 운명의 장난 앞에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페리클리스와는 달리 미틸리니에서 현명하게 자신의 운명을 헤쳐가던 중, 미틸리니에 도착한 페리클리스와 극적으로 상봉하면서 운명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이제까지 운명의 여신이 이런 기쁨을 위해서 페리클리스와 그 가족을 시련으로 몰아넣었다는 듯이 페리클리스와 마리나의 극적인 만남에 뒤이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부인 타이사까지 에페서스에서 찾게 되면서, 페리클리스의 기구한 운명에서 불행의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 작품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지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행복에 잠기게도 하고, 불행이 쌓여 행복이 되기도 하고,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이 더 큰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는 운명-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감상의 한 축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의 운명을 견디며 고군분투하는 영웅적인 주인공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속의 페리클리스는 햄릿이나 오셀로, 리어왕이나 맥베스와 같이 극의 중심을 형성하며 강렬한 의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운명에 등을 떠밀려 표류하게 되고 그 안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난을 수동적으로 견디는 중에 운명적으로 행복을 맞이하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패륜의 생활도 길들어지고 습관이 되어버리니 죄의식도 사라졌습니다. -p22, 1막 서사1, 가워 

 왕에게 아첨하는 자는 오히려 왕에게 환난을 줍니다. 아첨은 죄악을 불러일으키는 풀무이며, 아첨 받은 자가 작은 죄악의 불꽃에 불과하다 해도 바람을 보내주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게 합니다. 그 대신 충절하고 올바른 간언은 왕에게 약이 됩니다. 왕도 인간인 이상 과오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시뇨르 아첨이 간언을 막고 평화를 선언할 땐 전하의 목숨을 노려 전쟁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p33~34, 1막 2장, 헬리케이너스 

 불행은 단독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뒤따르는 자를 데리고 오는 법. -p43, 1막 4장, 클리언 

 성난 하늘의 별들이여! 바람이여, 비여, 천둥이여, 이 지상의 인간은 도저히 너희들을 꺾을 힘이 없다. 그러니까 나도 본성 그대로 너희들에게 머리를 숙인다. -p52, 2막 1장 페리클리스 

 고래는 돈 많은 욕심쟁이와 같다고 할까. 뒹굴며 놀며 작은 물고기들을 장난조로 몰고 다니다가 결국엔 한입에 꿀컥 삼켜 버리거든. 그런 고래는 육지에도 있다구. 그놈은 마을의 교구든, 교회든, 뾰족탑이든, 종이든, 모두 통째로 삼켜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아가릴 다물지 않는다구. -p53, 2막 1장, 어부1 

 복장의 겉모습으로 사람의 속을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p62, 2막 2장, 시머니디스 

 난 평소부터 미덕과 재능을 신분이나 재물보다 더 귀하다고 여겨왔소. 뒤의 두 가지는 그 계승자가 탕아라면 신분은 더럽혀지고, 재물은 낭비될지 모르지. 하지만 미덕과 재능은 불멸하는 것이며 그 둘을 몸에 지니면 인간을 신과도 같게 하지요. -p89, 3막 2장, 세리먼 

 당신은 믿음이 있는 척 하는 위선자예요. 파리를 죽여놓고도 겨울의 추위 때문에 죽었다고 신들에게 호소하는 사람 같아요. 아무리 그래봤자 당신은 반드시 내 뜻대로 할 사람이에요. -p116, 4막 3장, 다이어나이자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롭고 가장 멋진 한송이 꽃이 인생의 봄철에 시들어, 여기 잠들었도다. 타이어 왕의 공주는 슬프게도 죽음으로 행복스런 생의 막을 내렸도다. 이름은 마리나이며, 태어날 때는 바다의 여신 데티스가 오만하게도 지구 한쪽을 삼킬 듯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대지는 바다의 범람을 두려워했고 데티스가 낳은 아이를 하늘로 보냈도다. 그리하여 바다의 여신은 노하여 거친 파도를 보내며 해안의 바위를 내리치기만 하도다. -p118, 4막 4장 무언극 중 마리나의 묘비 비문 

 자 얘기해보렴. 네가 참아온 슬픔이 나의 슬픔의 천분의 일만 된다하여도 넌 훌륭한 대장부같이 참아 왔으며 난 한낱 아녀자 같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넌 왕들의 무덤을 지켜보는 참을성을 보이면서도 미소로서 이겨내고 있으니 모든 절망도 시들 것이다. -p142, 5막 1장 페리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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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연발 - 전예원세계문학선 308 셰익스피어 전집 8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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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서로 다른 하인을 만난 거예요. 사람들도 쭉 우리들을 잘못 보았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실수연발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p113, 5막 1장, 앤티폴러스(동생)  

 이 작품은 1590년대 초반에 씌여진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으로 원전은 플라우투스의 <메내크미>로 알려져 있고, 장르는 상황 희극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상황 희극이라는 용어가 낯설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희극적인 성격은 주인공과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나 대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 주인과 쌍둥이 하인에 대한 사람들의 착각 때문에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으로 인해서 나타나는데, 바로 등장 인물의 말이나 성격에서가 아니라 극을 꾸미는 상황이 이 희극의 웃음의 핵심이라는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두쌍의 '쌍둥이를 착각해서 형성되는 상황, 쉽게 말해서 쌍둥이들의 용모와 행동, 그리고 어투가 친부모까지도 구별하기 어렵도록 흡사하다는 상황 자체가 웃음을 빚어내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관객들이 웃음짓게 된다는 면에서 셰익스피어의 후기 희극이나 위대한 비극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등장인물의 성격 표현이나 대사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면이 부족하다거나 필요성이 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이 작품 속의 대사들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중간중간에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섬세한 표현들이 담겨 있습니다.  

 시러큐스의 상인 이지언과 이밀리어는 에피담넘에서 쌍둥이 앤티폴러스를 낳았고, 같은 시기에 태어난 다른 가난한 집안의 쌍둥이 형제 드로미오를 이들의 몸종으로 삼게 됩니다. 이밀리어가 고향으로 가서 자식들을 자랑하고 싶어해서 가족들이 귀향하던 중, 폭풍을 만나 이지언과 동생 앤티폴로스와 동생 드로미오, 그리고 어머니 이밀리어와 형 앤티폴로스와 형 드로미오가 각기 다른 배의 구조를 받아 헤어지게 되고, 이밀리어와 두 아이들은 코린스 어부들의 습격을 받아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형을 찾아나선 동생 앤티폴러스가 동생 드로미오가 형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에페서스에 나타나면서 한바탕의 소동이 벌어집니다. 작품 안에서 쌍둥이 앤티폴로스 형제와 쌍둥이 드로미오 형제는 어느 누구도 외모나 행동을 가지고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판박이입니다. 이지언이나 이밀리어도 자신의 아들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앤티폴러스 형제는 누가 자신의 몸종인 드로미오인지 역으로 드로미오 형제는 누가 자신의 주인인 앤티폴러스인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형 앤티폴로스의 부인인 애드리아너도 동생 앤티폴로스와 자신의 남편을 구분하지 못하고 헛갈립니다. 이렇게 극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두 쌍둥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되고, 이 네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뒤엉키면서 갈등이 고조되는데, 이 극을 바라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갈등의 고조가 심각한 위험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웃음의 원천이 되는 느낌입니다. 극의 등장 인물 모두가 실수연발로 인해 종일 욕을 보지만, 그 모습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실수연발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이 유쾌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작품입니다.

  나야말로 이 광활한 세계에서 하나의 물방울이 망망한 큰 바다에 떨어져 그 동료들 중의 한 방울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 동료를 찾기 위해 대해에 뛰어들었지만 눈에 뛰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는 내 자신마저 잃어버리구 말 거다. -p20, 1막 2장, 앤티폴러스(동생) 

 남자란 자유엔 주인이고 시간에 머슴인걸. 그러니 시간이 되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데 뭐. -p27, 2막 1장, 루시아너 

 자유를 지나치게 탐내다간 불행이란 난장을 맞게 돼요. 하늘 아래 있는 것들은 땅의 것이나 바다의 것이나 공중의 것이나 모두 제 분수에 알맞게 살고 있어요. -p27~28, 2막 1장, 루시아너 

 당신은 느릅나무고 전 덩굴이에요. 심약한 저도 강한 당신과 살을 섞는 부부니 당신의 힘을 받아 강해지는 거예요. 이렇게 소중한 당신을 어느 누가 제게서 뺏어간다면 그 잔 인간의 허접쓰레기요, 도둑놈의 심보인 덩굴이요, 찔레요, 쓸모없는 이끼 같은 것들일 거예요. -p41, 2막 2장, 애드리아너 

 비방이란 놈은 자꾸 새끼를 치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주 자리잡고 누워버린답니다. -p64, 3막 1장, 밸더자 

 아아, 불쌍한 건 여자예요! 귀가 너무도 여리니까 말예요.  제발 입에 발린 빈말이라도 사랑한다고 곧이듣게 하세요..... 약간 허풍을 떠는 것은 신성한 유희가 되기도 하죠. 달콤한 아침의 숨길이 싸움을 수그러지게 하니까요. -p56, 3막 2장, 루시아너 

 당신이 더 좋다구요. 오 인어 아가씨, 당신의 노래로 나를 꼬여서 언니의 눈물의 바다 속으로 유인하여 익사하지 않도록 가르쳐 바다의 요정이여, 당신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세요. 그러면 내 그 속에 빠질 것이오. 은빛 물결 위에 당신의 황금빛 머리떨를 펼치세요. 난 그것을 침대삼아      눕겠습니다. 거기서 화려한 환상에 묻힌 채 그렇게 죽는다면 저는 여한이 없겠습니다. 사랑은 가벼운 것이라고 하지만 가라앉을 수만 있다면 날 빠져죽게 해주십시오! -p67, 3막 2장, 앤티폴러스(동생) 

 내 혀가 저주는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거야. -p74, 4막 2장, 애드리아너 

 상상에 짓눌려 가슴이 빠개지는 것 같다. 상상이란 위안도 주지만 고통을 주기도 하는구나. -p76, 4막 3장, 애드리아너 

 이러나 저러나 소인은 당나귀 팔자인 걸요-기다란 귀가 말해줍니다. 전 태어날 떄부터 이때까지 나리께 봉사해 왔지만 그 대가로 매만 맞아왔지 뭡니까. 추워할 때에는 덥게 해주었고, 더울 때에는 때려서 덜덜 떨게 해 주었습죠. -p83, 4막 4장, 드로미오(형) 

 시샘하는 여자의 독기 찬 푸념은 미친 개의 이빨보다도 더 무섭답니다. 부인의 앙칼진 푸념 때문에 남편께서는 잠을 편히 못 잤으니 자연히 머리가 혼미해질 수  밖에요. 식사 때 잔소리로 양념을 쳤다고 했는데, 식사란 불편한 마음으로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p99, 5막 1장, 수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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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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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 저 순결한 별들에게 밝히진 않겠지만 이건 이유가 있단다. 그래도 난 피를 흘리거나 눈보다 더 희고 설화 석고 묘상처럼 매끄러운 그 살결에 상처를 내진 않으리라. 그래도 그녀는 죽어야 해, 안 그러면 더 많은 남자를 배신할 테니까. -5막 2장 1~7행, 오셀로   

  '온순한 데스데모나를 사랑만 않는다면 걸림 없는 내 자유를 속박하는 일 따위는 바닷속 보물을 다 준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던 오셀로가 5막에 이르러서는 이젠 그녀는 죽어야 하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되뇌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란 데스데모나가 자신의 부관 카시오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지만 거기에 대한 증거는 이야고의 끊임없는 꾀임과 그러한 속삭임에 대한 관심에서 의심으로, 의심에서 질투로 번져가는 오셀로 자신의 내적 변화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질투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것에 점령당해버린 오셀로는, 그 이유를 철썩같이 믿으며 그토록 사랑한다던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살해하고, 너무 사랑하였지만 질투에 눈이 멀어 혼란스러워져 버린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비극적으로 막을 내립니다. 순결한 사랑을 망쳐버린 허약한 남자의 질투심, 하지만 이 극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근저에는 사랑이라는 울림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스데모나의 사랑과 오셀로의 사랑...... 데스데모나의 사랑이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모습의 순결한 모습이라면, 오셀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자유를 속박 당하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든든한 기반을 가진 듯 하면서도 질투심에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허약함 또한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오셀로의 사랑도 극의 시작에서부터 모든 음모의 배후가 밝혀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순간까지 데스데모나를 향한 순전함으로 채워져 있다고 옹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질투심에 불타오르고 살인을 실행하는 이유의 근저에 깔린 감정은 그녀에 대한 오롯한 사랑이었기 때문이고, 그러한 사랑을 파고드는 이야고의 꾀임과 그로 인해 몰아치는 질투심의 폭풍을 적절히 다스리지 못한 것이 두 사람의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된 연유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데스데모나의 사랑과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 결여되어 있다는 것, 상대방의 마음과 인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의존하는 성숙하지 못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비극의 발생에 이야고라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오셀로라는 인물의 성격에 근본적으로 그러한 비극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못지 않게 이 극에서 관심을 끄는 인물이 오셀로에게 간교한 속삭임을 지껄이는 이야고일 것입니다. 자신이 오셀로에게 부관으로 임명되지 못하고 카시오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다는 앙금과 오셀로와 자신의 부인이 부정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시작되는 이야고의 음모는 흘러가는 듯한 속삭임에서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의심을 조장하는 말투 속에 질투심의 쓴 뿌리를 슬쩍 얹어놓고, 질투심의 덫에 걸린 마음이 살인의 달콤함으로 감정의 폭풍을 잠재우기를 마다하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를 않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치밀하고 천연덕스럽게 음모를 꾸미고 실행해가는 그의 모습에서 악마의 사악함보다는 간교함을 더 느끼게 됩니다. 밀고 당기면서 세치 혀로 오셀로를  요리하는 그의 모습은 비록 그 배후에 사악함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활해 보인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물론 간교함이나 사악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아무런 죄의식이나 잘못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없이 이야기 전체를 비극으로 몰고가는 이야고라는 인물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극의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오셀로와 마찬가지로 이야고도 자신의 아내 에밀리아가 오셀로나 카시오와 부정을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을 가지고 있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그에 대해 별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데스데모나가 부정을 저질렀을지 모른다며 천연덕스럽게 오셀로를 꾀여 질투의 폭풍속으로 몰아가면서도 똑같이 의심스런 소문에 휩싸인 에밀리아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이야고의 모습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오셀로의 모습과 대비되는 야릇한 아이러니가 느껴집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 17세기경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라이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는데, 상당한 재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확실히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첫째로는 양가의 규수들은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흑인하고 사랑의 도주를 하는 것이 끝내는 어떻게 되는가를 경고해 주고 있다. 둘째로는 모든 유부녀에게 손수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일깨우고 있다. 셋째로는 남편들은 비극을 빚어내는 질투심을 품기 전에 과학적인 증거를 잡으라고 일러주고 있다.'

  지금부터 애비들은 딸들의 마음을 걔들의 행동만 보고는 믿지 마오. -1막 1장 186~187행, 브라반시오 

  번쩍이는 칼들을 거두도록 하여라, 밤이슬에 녹슬지 않도록. 의원 어른, 무기보단 나이로 명령을 내리시면 더 나을 것입니다. -1막 2장 64~67행, 오셀로 

 전 이제 도리가 양분되었음을 압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생명과 교육을 주셨고 저는 그 생명과 교육을 받으면서 아버님을 존경하도록 배웠으며 아버님은 제 모든 도리의 주인이시고 지금까지 전 아버님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제 남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이 외할아버지 앞에서 아버님을 택했을 때 보여주었던 도리, 바로 그만큼이 제 주인 무어인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밝히겠습니다. -1막 3장 194~204행, 데스데모나 

 내 앞에 선 당신을 여기서 보노라니 내 만족만큼이나 커다란 놀라움을 느끼오. 오, 내 영혼의 기쁨이여, 모든 폭풍 뒤에 이 같은 평온이 깃들인다면 바람은 죽음을 일깨울 때까지 불고 불어 고생하는 돛단배가 바다의 언덕을 저 높은 올림푸스 산까지 올랐다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듯 곤두박질치게 하라. 내 지금 죽더라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리, 왜냐하면 내 영혼은 절대 만족을 맛보았으므로 이 같은 안락이 미지의 운명 속에서도 계속될까 염려하기 때문이오. -2막 1장 188~199행, 오셀로 

 오, 보이지 않는 술귀신아, 너에게 알려진 이름이 없다면 악마라고 불러주마! -2막 3장 280~282행, 카시오 

 남자를 한두 해를 가지고는 몰라요. 그들은 다 뱃속이고 우리들은 다 음식인데, 허기진 듯 집어먹고 일단 배부르면 우릴 내뱉어요. -3막 4장 105~109행, 에밀리아 

 질투하는 이들에겐 그건 답이 아니에요. 그들은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투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거라고요. 그건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태어나는 한 마리 괴물이랍니다. -3막 4장 165~160행, 에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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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하세요 - 전예원세계문학선 306 셰익스피어 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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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노래여, 나뭇가지에 매달려 사랑의 증인이 되어다오. ..... 이 나무들을 수첩삼아 그 껍질에다 내 심정을 새겨 놓으리다. ..... 그 아름답고 정숙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을 모든 나무에 새기자. -p78, 3막 2장, 올랜도  

  낭만 희극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1599년에서 1600년 경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과 비극 사이의 휴식기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 대해서 역자는 '감동적인 분위기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작품', '어둡고 냉랭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은, 암울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고 쾌적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극의 대부분은 아덴의 숲이라는 자연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사랑의 하모니를 이루어가는데, 인위적인 궁전이나 대저택에서 벗어난 이러한 배경 설정이 이 작품에 쾌적함과 상쾌함을 불어넣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소재는 토마스 로지의 <로잘린드-유퓨즈의 진주의 유문>이라는 산문 로맨스 작품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동생인 프레데릭 공작에 의해 성에서 쫒겨난 전 공작이 아덴의 숲으로 잠적하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 후에  프레데릭의 딸 실리어와의 친분으로 성에 남았던 전 공작의 딸 로잘린드가 쫒겨나게 되는 과정에서 실리어가 아버지 몰래 로잘린드와 동행하기로 하고 함께 집을 나와 아덴 숲에 거처를 마련하고 기거하게 되는 사촌간의 우정, 또 다른 형제 올리버와 올랜도와의 갈등, 올랜도와 로잘린드가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성에서의 숙명적인 만남과 아덴 숲에서 로잘린드의 남장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의 변형된 사랑 나눔, 로잘린드가 피비와 실비어스의 사랑에 얽히게 되는 이야기 등이 이리저리 얽혀서 사랑이라는 큰 주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여느 희극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여성인 로잘린드가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십이야>에서의 올리비아나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포오셔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작품의 주된 뼈대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남여간에 이루어지는 로맨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사랑이 결혼이라는 축복으로 맺어지는 과정은 숲이라는 배경과 어울려 상쾌하고 유쾌하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면이 이 작품을 읽는 이나 연극을 보는 이들 모두가 역자의 평가대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고 책을 덮거나 극장을 나올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려깊은 독자나 관객이라면 이러한 사랑이라는 주제가 주는 경쾌함에 덧붙여진 이 극의 이면에 담긴 몇 가지 요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또다른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풍요롭기는 하겠지만 배신과 음모의 음습함이 담겨있는 궁궐에서의 생활과 물질적인 빈곤을 겪지만 몸과 마음의 순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아덴 숲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 속 생활의 대비를 통해 우리의 삶의 위치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 공작의 '이런 생활이 몸에 배고 보면 겉모양만 화려한 저 궁궐 생활보다 한결 상쾌하지 않느냐 말이오? 이 숲이 저 사악함이 가득찬 궁궐보다 위험성이 오히려 없잖은가? ..... 그리고 동지 섣달 모진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쳐 살을 저미듯하고 온몸이 추워 오그라들 때에도 난 웃으면서 이렇게 의연하게 말할 수 있소, "이건 간신의 알랑수가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참다운 위치를 가르쳐 주는 올바른 충신의 직언이다."라고.....'라는 대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자연속에서의 삶에 대한 예찬은 곧 저자가 독자 -또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의 한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는 광대 터취스턴과 전 공작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 항상 우울한 제이퀴즈의 대사에 담긴 삶에 대한 유모와 풍자, 비판이 주는 일깨움입니다. 사랑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마냥 그 주제에 취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현실의 모순과 냉혹함에 대해서 일깨우는 두 인물의 대사는 이 작품에서처럼 가슴뭉클한 사랑이라는 주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수도 있는 숨겨진 우리 삶의 진정한 일면을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아름다움을 준 여자에게는 정조를 주지 않고, 정절을 준 여자에게는 추함을 같이 준다니까. -p29, 1막 2장, 실리어 

 현명한 분네들이 바보짓을 하는 판국을 바보가 현명한 말로 해서 안되다니. 젠장 알고도 모를 일이군. -p31, 1막 2장, 터취스턴 

  역경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주는 아름다운 교훈이오. 이는 옴두꺼비를 닮아 보기 흉하고 독도 뿜지마는 그 머리에 귀한 보석을 지니고 있지 않소? 속세와 멀리 떨어져 온갖 사람들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사는 우리의 나날은 수목에서 말을 듣고 흘러가는 여울물을 책으로 삼고, 작은 돌에서 신의 가르침을 얻고 삼라만상 속에서 선을 발견하지 않느냐 말이오. -p49, 2막 1장, 전 공작 

  잊혀지지도 않습니다만 제가 어떤 여자에 반했을 땐 칼로 돌을 쳐서 부러뜨리고선 한밤중에 제인 스마일을 찾아가는 놈은 이렇게 작살을 내겠다고 외쳐댔습죠. 그리고 아직도 생각납니다만 그 처녀가 쓰던 빨래방망이엔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곱싸한 손으로 짠 젖소의 젖꼭지에 입을 맞추기도 했습죠. 그리고 완두깍지를 그 여자로 생각하고 사랑을 하소연도 했으며, 그 깍지 안에서 알맹이 두 개를 꺼냈다가 도로 넣어서 그 처녀에게 준 다음 눈물을 흘리면서 "날 위해 이걸 지녀다오." 하고 말했습죠..... 정말로 참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란 묘한 미친 짓을 잘하나 봐요. 세상만사가 덧없듯이 사랑은 하면 모든 사람이 미련둥이가 되나보죠! -p58, 2막 4장, 터취스턴 

 이 세상 모두가 하나의 무대요, 남녀 모두는 한낱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제각각 무대에 등장했다간 퇴장해버리고 하지. 그리고 살아 생전에 사람은 여러가지 역할을 맡아 하는데 연령에 따라 7막으로 나눌 수 있는 바..... 우선 제1막은 아기역 ..... 제2막은 개구장이 학동 ..... 제3막은 사랑하는 젊은이 ..... 제4막은 군인 ..... 제5막은 법관 ..... 제6막은 실내호를 신은 수척한 어릿광대 노인 ..... 파란 많고 기이한 인생살이의 마지막 제7막은 제2막의 어린아이랄까, 오직 망각이 있을 뿐. 이도 빠지고, 눈도 안보이고, 입맛도 없고, 세상만사가 허무하다. -p71-72, 2막 7장, 제이퀴즈 

 시간의 걸음걸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답니다. ..... 시간은 어떤 분하고 걸을 땐 느리구 또 어떤 분하곤 종종걸음을 하구 또 어떤 분하곤 마구 달리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정지하기도 한다 이 말입니다. -p90, 3막 2장, 로잘린드  

 남자란 청혼할 때는 화사한 사월이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눈보라 치는 섣달이지요. 처녀 역시 처녀 땐 따스한 오월이지만 결혼하구 나면 변덕스런 날씨가 되거든요..... -p119, 4막 1장, 로잘린드 

 "우자는 자신을 현인인 줄 알고 현인은 자신을 우자로 아느니라"..... 어떤 철학자는 포도가 먹고 싶자 입을 딱 벌리구 포도를 집어 녛었다지 뭔가. 포도는 사람이 먹기 위해 생겨났고, 입은 벌리기 위해 생긴 것이라는 거야..... -p134, 5막 1장, 터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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