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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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두 원수의 숙명적인 몸에서/ 별들이 훼방 놓은 두 연인이 태어났고/ 그들은 불운하고 불쌍하게 파멸하여/ 부모들의 싸움을 죽음으로 묻었도다./ 죽음표가 붙은 이 사랑의 두려운 여정과/ 계속되는 부모들의 격렬한 분노를/ 자식들의 최후밖엔 아무것도 못막는데.... -머리말/해설자 

 1599년에 출판된 제2사절판의 표지 제목으로 쓰였다는 '참으로 빼어나고 구슬픈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아마도 이 극을 읽거나 본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구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의 처음에 해설자가 등장하여 읊는 머리말에 담긴 내용대로 원수의 집안이라는 숙명을 품에 안고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별들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마음의 열정과 영혼의 순전함을 다 불사르고자 하지만, 두 가문의 싸움속에서 발생하는 불운에 떠밀려서 불쌍하게 파멸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두 가문의 원한은 화해의 악수로 바뀌게 되고, 두 사람의 사랑 또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본으로 우러러 보이게 되지만, 이 극을 대하는 독자 또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마음 한 구석에 사랑의 아련한 아픔이 남겨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감정일 것 같습니다. 빼어나고 아름답지만 구슬픈, 맑고 순수하지만 슬픔에 닿아있는 그러한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또한 그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감정은, 두 연인의 죽음이 없었다면, 죽음에 이르는 기대와 절망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리고 두 집안의 원한에 찬 적대적인 행위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생겨나지 못하고 말았을 것일지도 모르는 것들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극속에 담긴 아이러니는 저자가 해설을 통해서 역설하는 사랑의 '모순어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갓 열세 살이 되는 소녀와 그보다 많아야 두세 살이 위였을 소년의 사랑. 현대인의 시선으로 굳이 그들의 나이를 통해서 이 극의 전개과정을 되짚는다면 철부지들의 불장난 정도로 취급될 수도 있을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순수한 사랑의 원형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루어 보고픈 모델이 되었습니다. 친구 머큐쇼를 죽음으로 내몬 티볼트에 대한 성급한 결투와 살인, 줄리엣의 죽음의 소식에 신중하지 못하고 자살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로미오의 모습이 미숙한 젊은이의 감정 조절 실패라고 책망되지 않고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평가되고, 첫 눈에 반해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을 지키려고 죽음도 불사하는 줄리엣의 모습을 세상 경험이 일천한 열세 살  꼬마 숙녀의 맹목적인 사랑으로 폄하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의 원형으로 우러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가질 수도, 이룰 수도 없는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은 아닐는지..... 정말로 줄리엣처럼 부모의 강력한 권유를 무시하고 파리스와 같은 멋진 신사를 내치고 첫사랑을 지키려던 사람의 이야기가 가끔씩은 들려오기도 하고, 자신의 사랑을 죽음으로 증명하려 한 젊은이의 이야기도 가끔씩 회자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꿈으로만 담겨 있는 바람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는지..... 냉정하고 삭막한 평가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오면 그들의 사랑을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들의 철없는 사랑 이야기쯤으로 치부하지는 않을는지..... 하지만 다른 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요.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고 빼어난 구슬픈 이야기로 부르는 것에는..... 

 사랑의 가벼운 날개로 벽을 날아 넘었죠. 돌로 지은 장애물은 사랑은 못 내치고,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면 과감히 하니까요. -로미오, 2막 2장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 인가요?.... -줄리엣, 2막 2장 

 아낌없는 내 마음을 바다처럼 끝이 없고, 사랑 또한 같이 깊어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생겨나요. -줄리엣, 2막 2장 

 애통은 사랑의 표시지만, 지나치면 언제나 지각없단 표시란다. -캐풀렛 부인, 3막 5장 

 이 금은 네 것이다. 네가 아니 팔려했던 시시한 이 약보다 영혼에겐 더 나쁜 독이고 더 많은 살인을 이 역겨운 세상에 저지르지. 내가 독을 판 것이지, 넌 내게 판 게 없어..... 자, 독이 아닌 치료제여, 줄리엣의 무덤으로 함께가자. -로미오, 5막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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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멈춤
고도원 지음, 김성신 그림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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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무한경쟁이 판치는 사회라고 비판하고는 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정직이나 희생, 배려 등의 덕목보다는 물질적인 성취가 우선시되고,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우리보다는 나를 앞세우는 모습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쿨하게 사는 방식의 하나로 인정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년전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광고에 등장해 사람들 사이에 인사말로 사용되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는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런 논란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유치해 보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생각과 가치관이 변해버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면 결국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타고 있는 삶이라는 자전거-또는 쳇바퀴(?)-의 페달을 돌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더 나은 학교에 진학하고 더 훌륭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험과 공부라는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더 나은 취업을 위한 경력과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결혼을 한 세대들은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노년의 준비를 위한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쏟아붓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시대에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런 모습의 삶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이런 삶에서 약간 벗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가 삶과 생각의 중심에서 밀려나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객체로 취급당하고, 더 많은 부와 명예의 소유가 삶의 중차대한 목표로 생각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인생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자전거를 멈추지 못하고 말지도 모를 일입니다..... 

 속도와 경쟁의 시대다. 무조건 빨라야 살아남는다.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속도와 경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휴식을 모르면 위기가 온다. 사람이 쉬기 위해 멈추면 휴식과 충전과 여유를 알게 되지만, 고장이 나서 멈추게 되면 뒤늦은 후외와 회한만이 돌아온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기까지 한다. 그렇게 때문에 틈틈이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서는 위기의 순간을 막을 수 있다. -p148~149 

 자동차는 언제 멈춰 서나요? 고장이 났을 때, 기름이 떨어졌을 때 멈춰 섭니다. 그 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안전 운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잠시 멈춰서 '쉼표'를 찍어야 참 인생,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휴식할 자격이 있습니다.  -p151  

 이 시대에 우리가 잠깐 멈춰 서서 휴식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와 그래도 잠깐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들입니다. 우리가 경주에 임할 때, 잠깐 멈춰 서서 뒤돌아보는 것은 곧 등외로 낙오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물론 마라톤과 같은 경기에서는 그 의미가 자전거 경주나 자동차 경주와는 다르겠지만- 속도와 경쟁을 앞세우는 우리 시대에서 스스로 잠깐 멈춘다는 것은 경쟁자들과 다른 종류의 삶을 살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더 속도를 올려보았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잠깐 멈춤을 외칠 수는 없을 것이고, 뒤따르는 사람들과 앞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서 스스로의 속도를 늦추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장이 나서 멈춰 서게 되면 영원히 낙오하는 것이 될터이니, 미리 잠시 휴식을 취하고 힘을 얻는 것이 필요한 것을 알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현재의 내 자전거의 페달을 잠시라도 멈추는데는 분명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저자는 80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 관심을 돌려 멈추어 설 수 있도록, 그리고 삶을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밀 수 있는 희망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멋질 수 있는 것이지, '잠깐 멈춤' 속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영양분이 숨겨져 있는지, 어떻게 삶의 속도를 멈출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우리가 속도를 늦추고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하고,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조언들을 들려 주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잠깐 멈춤'의 수단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명상, 독서, 여행, 꿈 그리기, 잠깐의 기도, 다른 사람과의 나눔....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저자가 말하는 잠깐 멈춤의 시간이나 내 안에 꿈을 그리고 채우는 시간은, 때론 많은 날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5분, 10분의 짬으로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간이나 주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대하고 다루는 방식과 기꺼이 작은 실천이라도 하겠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한다면 달리는 내 삶의 자전거 위에서 속도를 늦추기 위해 가볍게 브레이크 잡아볼 수도, 용기를 내어 아주 잠깐이라도 페달을 멈추어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오늘 하루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저자가 들려주는 80편의 보석같은 글들의 첫 번째를 꿰어보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p.s. 아래 글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떤 글을 보다가 눈길이 간 구절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아들에게 쓴 글 속에 담겨 있는 구절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전거 타기는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잠깐 멈춤과는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대조를 이루는 면이 있습니다. ^^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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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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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사에서의 동안거 기간 동안의 선방 생활을 기록한 이 책이 우연찮게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를 보면서 언젠가 들은 듯한 기억 저편의 어렴풋한 그림자가 친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 읽어보았던 책은 아닌데..... 어디선가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아니면 나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막연한 기억의 장난일 수도 있겠습니다. 겨울 세 달여 동안의 선방생활을 스물 세편으로 엮어낸 글들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굵은 한 뿌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이지만, 실제 내용보다는 표면적인 외양만을 조금 알고 있는 내게는 상당히 색다른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잠시 들러 대웅전을 둘러보고 주변의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를 찾아보고 나면 사찰의 중요한 것은 다 보았다고 생각하며 되돌아 나오던 내가, 사찰 안에서의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해탈, 성불, 열반, 그리고 그러한 각성의 길에 들어서고 도를 이루기 위해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감각도 느낌도 없이 막연한 신비(?)로움 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저자의  글을 통해서 소개되는 선방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문득 그들의 삶의 감추인 단면들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화두'를 붙들고 추상같은 의지로 고행의 시간을 채워가는 모습들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스님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구도자로서의 깊은 사색과 성찰을 이루고자 수행의 시간을 갖는 스님들의 노력을 깍아내리지는 않는 것은 그들의 중심에 있는 수행을 통한 각성과 구도에의 의지를 온연히 느끼고 인정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의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도 없이 세상에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도의 길을 나선 그들의 모습은, 바쁜 일상 속에서 조용함을 찾으며 가끔씩 우리가 바라던 모습의 한조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나서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모습이지만, 읽는 이의 내면에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바람 한줄기 스쳐가게 만들어 잠든 내면을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일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절대자의 괴뢰, 신의 노예, 그러한 천국이 있다면 차라리 나는 고통스러워도 자유로운 지옥을 택하겠습니다. 그러한 극락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도망쳐 나와 끝없는 업고의 길을 배회하렵니다." -p110-  

 나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위의 저자의 언급이 상당한 걸림이 되는 구절일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다른 말이 곧 '크리스챤'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물론 동료 스님과의 열반에 대한 이야기 중에 불자로서 불자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와 완고한 판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에 마음에 상당히 걸리는 구절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과 구도의 결과물로 얻어지는 해탈이나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면 분명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꼭두각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 안에서의 은혜와 자유를 인정한다면 불교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자기 의를 세우는 헛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상대의 종교와 가치관에 대한 열린 마음과 관심, 배려가 없이 오로지 자신의 교리에만 눈멀었을 때의 모습이, 얼마전의 젊은 기독인들이 물의를 일으켰던 봉은사 땅밟기와 같은 사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테러, 종교에 의한 살인이나 인종청소 등의 모습일 것입니다. 종교에서의 교리란 상대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부처님은 자비를 이야기 하셨고, 예수님은 사랑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로에게 먼저 앞세워야 할 것은 자비와 사랑 안에서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포용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계와 불교계의 갈등이 깊어가고, 대통령의 종교로 인해 그러한 갈등이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내 것을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우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위의 구절이 더욱더 안타깝게 여겨지는 시간입니다. 물론 이러한 언급은 책의 전체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는 지극히 지엽적인 부분이기는 하나, 종교와 종교의 마주봄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마도 이 책 전부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 붙여보는 사족같은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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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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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건 아마도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로즈 자매와 아이맨과, 플래츠버그의 스쿨버스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 후에 개미 농장과 아캄퐁의 밭에서 아이맨과 지낸 날들을 통해 자신과 인생에 대해 배운 그 모든 것들이 없었다면 말이다. 건장한 악당 브루스 역시 내가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세이블의 불속에서 나를 구하려다 죽었고 그것 역시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사랑하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세상에 오직 이 세 사람뿐이었는데, 모두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날 아침 모베이에서 마지막으로 러스를 본 날, 나는 귀여운 로즈 자매와 아이맨과 브루스가 내게 큰 재산을 남겨 주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 재산을 야금야금 꺼내 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p470 

 이야기의 마지막에, 자신을 찾아 자메이카에 온 친구 러스가 이브닝스타라는 여인의 유혹에 끌려 그녀의 저택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독백입니다. 겉은 번지르하지만 뒤로는 아동 포르노를 만드는 일을 하던 버스터 브라운으로부터 구해서 집으로 돌려보낸 연약한 여자아이 로즈, 거친 폭주족이었지만 불길 속에서 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던 악당(?) 브루스, 그리고 방황의 끝에 갈 곳 없는 본을 보살피고 지켜보면서 혼자 설 수 있도록 인도했던 아이맨..... 본이 사랑한다는 세 사람은 모두가 세상에서 연약하거나 어두운 구석에 몰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데 본은 자신의 방황의 끝에서 친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이브닝스타의 물질적, 성적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굳은 발걸음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그 세 사람 덕분이라고, 그들이 함께하는 동안에 보여주었던 삶에서 배운 것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도, 자신의 친부모나 할머니도, 번지르한 옷을 입고 달변을 자랑하던 버스터 브라운 같은 사람이나 대학까지 다녔다고 하면서도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침식당하고 만 리처드나 제임스 형제와 같이 세상의 양지에 조금 더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포르노 제작자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혹사 당하였지만 본에게 맑은 영혼의 밑바닥을 열어 보여 주었던 어린 소녀, 거칠게 세상을 대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인간애를 보여주었던 폭주족 대장 브루스, 그리고 자메이카에서 이주 노동자로 미국으로 건너와 대열에서 이탈하여 버려진 스쿨버스에서 숨어지내지만 세상을 외면하지도 다른 사람을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함께 동행해 주었던 아이맨과 같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이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평생 되새기며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을 남겨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의도하고 만들어 놓은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 것..... 아마도 그런 종류의 깨달음을 본은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삶의 법칙으로서 말입니다.  

 물론 자신의 삶을 세상의 음습한 곳으로 직접 끌고 간 것은 본 자신이지만, 그를 그러한 나락으로 밀어 넣은 이들 중 하나는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품어 안았어야 할 그의 어머니였고, 십대의 어린 영혼에 결정적인 생채기를 낸 것은 어머니의 새 남편인 그의 양아버지입니다. 본이 반항적인 아이가 되고 마약을 마다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양아버지 켄의 성적학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겉으로 보이는 본의 생활태도는 누가 봐도 불량스런 청소년이었고,  그의 가족은 그런 주인공을 이해하거나 그 방황의 이면을 보듬어 주려는 따뜻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겉모습대로 그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은 아이러니하게도 버스터 브라운 같은 사람을 통해서 겉모습의 허황됨을 비웃고, 본이 사랑한다는 세 사람을 통해서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것은 본이 아이맨을 따라 자메이카로 건너가서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난 뒤에도 여실히 증명됩니다. 거대한 저택과 물질적 풍요와 여유로움을 가진 이브닝스타와 그의 손님들이 보여주는 삶과 마약과 여자에 취해서 사는 친아버지의 모습은 육체안에 지탱되어 있어야 할 내면세계가 붕괴된 사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본은 자신이 일하게 된 요트의 손님으로 온 부부의 아이 조시와 레이첼의 모습에서 자신의 독특한 영혼의 색깔을 잃고 어른들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듯한 아이들의 삶을 느끼면서 비로소 자신이 집을 나와 길거리를 헤매면서 배운 소중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 속에 로즈 자매 별자리, 사자와 아이맨 자리, 그리고 브루스를 위한 애디론댁 아이언 자리를 그려 만들고, 그 별들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행복해 합니다. '아무리 두렵고 당황스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기'에, '그러면 가슴은 ...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부풀어 오르고... 더 강해지고 ... 정신은 더 맑아질 것'이기에.....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 아이맨에게 물어서..... 자신이 원하는 전부'인 '본, 네게 달렸어'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에..... 

 '본, 네게 달렸어', 아이맨을 기억하며 본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결국 삶의 어느 순간에는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어두운 뒷골목과 낮게 여겨지는 곳을 헤맨 본이 별을 보며 그러한 깨달음을 완성하지만, 본이 보트에서 가엾게 여기며 바라보았던 조시와 레이첼도 그들만의 삶의 모퉁이 어디에선가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기의 방황을 주인공 본처럼 거리를 헤매며 겪는 이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아이들은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겉보기에는 조용하게 보내고 있을 것이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본이 보기에는 아마도 조시나 레이첼과 비슷해 보이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러한 주인공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이 몇몇 어두운 부분과 함께 이 소설에 대해 명쾌하게 모두를 공감할 수는 없는 이유가 되는 듯 합니다. 삶을 단련하고 긍정할 수 있는 건강함은 어두운 곳의 이면에도 숨어 있겠지만 대낮처럼 밝다고 생각되는 곳에도 무궁히 담겨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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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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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록의 주된 내용이 되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저자인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는 크게 낯설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왕인 아버지에 의해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건과 죽임당한 세자의 부인으로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겪고 살아낸 여인의 삶이라는 요소만으로도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치부할 수 없는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고, 그런 극적인 면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중록과 혜경궁 홍씨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앎도 아마 거기까지 뿐일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그의 부인이었던 여인의 한맺힌 기록 정도라고 말입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한중록을 이야기 할때, 거기까지만 알고 있고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말 듯 합니다. 교실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한중록에 대해서 그렇게 배워왔었고, 실제로 한중록이라는 우리 고전자체를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호사(?)는 미처 누릴 수 없었기에..... 한중록 뿐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고전 대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는 그만큼의 차이가 존재할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대부분은 교실안에서 지식으로서 학습된 내용이지 각각을 진지하게 읽고, 소화해 낸 것이 아니니까요..... 

 한중록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록한 책이라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지식때문에, 실제로 읽기 전까지는 책의 내용을 다 아는 듯, 혜경궁이 쓴 자신의 남편의 죽음에 대한 글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하는 한중록은 세 편으로 나누어져 있네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한 '내 남편 사도세자', 그리고 혜경궁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자서전 격인 '나의 일생', 마지막으로 외척으로서 부귀도 누렸지만 당파와 권력싸움의 회오리에 속에서 풍비박산이 나다시피한 혜경궁의 '친정을 위한 변명'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랍게 여기는 것은 생각보다 두툼한 책의 분량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하게 되는 우리 고전들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 등등-의 분량을 생각하면 그 두세배는 족히 넘을 듯한데, 이 기록이 사도세자와 그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혜경궁이 겪었던 훨씬 복잡다단한 삶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혜경궁의 삶의 내용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궐 생활을 시작한 뒤에 지아비인 사도 세자가 엽기적(?)인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시기까지의 아픔과 고통이 근저에 깔려서 평생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자빈으로서의 사도세자와 함께 살았던 기간보다 그의 사후에 정조로 등극하는 세손과 왕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정조가 사망한 뒤에는 왕의 할머니로서의 기간이 훨씬 길었지만, 그녀의 삶에 영광을 드리우는 것도 그리고 그늘을 지우는 것도 결국은 그녀가 세자빈에 간택이 되어 자신의 가문이 외척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과 자신의 지아비가 죽임을 당해 생긴 이러저러한 사건이 무수히 얽혀 그녀의 평생을 휘감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재미 - 관심 또는 흡인력-는 한중록이 그러한 사건이 바탕이 되었지만 분명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는 사도세자의 광증의 발병과 진행과정을 너무 어린시절에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궁중나인들에게 맡겨진 것과 아버지 영조와의 엄격하고 냉랭한 순탄치 않았던 관계에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또한 죽음에까지 이르게되는 지아비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어찌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어린 아들 정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어미로서의 책임감이 절절히 담겨있고, 궁중 안에서의 여인들간의 유대와 반목에 대한 혜경궁 자신의 솔직한 시선, 정조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과 간혹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 자신의 집안을 비롯한 외척간의 권력투쟁과 그 과정에서 생긴 불행에 대한 변명 등은 여느 책에서 쉬이 대할 수 있었던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중록이 읽는 이의 마음을 더 뜨겁게 하는 것은 그러한 사실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사건을 대하고 기록하는 혜경궁 자신이 그 사건들의 중심에서 직접 희노애락을 맛보았고, 또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젊을 시절부터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안으로 삭이는 과정을 거쳐 생생하지만 감정으로 흐르지 않는 냉정함을 가지고 지나온 일들을 또박또박 기록하였다는 사실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글속에서 느껴지는 유려함과 역사의 페이지를 채웠던 사람들의 겉과 그 이면에 담긴 권력을 위한 정치적인 행위들에 대한 신랄함, 누가 보아도 한많은 자신의 일생을 한 여인의 삶이라는 틀에 한정시키지 않고 한 가문과 나라의 일부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바라보며 회고할 수 있었던 여유 등은 모두가 혜경궁 자신의 삶속에 녹아있는 내밀한 뜨거움과 인내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록의 가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적인 문서가 가지지 못한 여유를 지닌 사적인 기록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누구도 비할 수 없을 굴곡진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의 처절한 기록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는 진솔함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한중록은 우리가 배워서 알아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느껴야 하는 그런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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