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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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 p25 

 화사한 책표지와 어울리지 않게 이 책을 대하면서 가장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가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였습니다. 시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내 또래라면 학창시절 어느 때쯤엔가 국어책에 실렸던 이 시를 배웠을 것이고, 그때는 시험을 보기 위해 시를 이리저리 분해해서 공부했을 터이지만, 생각지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것을 보니, 시인의 감성은 감수성이 스폰지 같았을 어린 영혼에 그대로 흡수되어 평생을 지속되고 있었던가 봅니다. 화사함보다는 가보지 못했던 길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담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저자의 속마음과 이 책을 손에 들고서 제목을 대하고 있는 내 마음 모두에 딱 들어맞는 느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1부 자신만의 밑줄에서 작가는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마당, 그리고 그 마당의 잔디와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여, 공간으로는 자신의 고향 개성에서부터 서울과 구리, 지리산 자락의 시골마을을 넘어 일본의 홋카이도 여행의 기억까지 아우르고 있고, 시간으로는 아득한 기억으로 남은 개성에서의 유년시절, 해방과 중학교 졸업, 대학에 진학하자 마자 겪게된 6.25 전쟁을 거쳐 작가가 되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되고, 노작가가 된 현재의 자신에 이르기까지 마음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현재의 삶과 과거의 기억속에 담겨있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해맑은 꿈을 품었던 소녀로, 때로는 자신의 가정에 닥친 어려움을 온몸으로 지탱해야 했던 억척스런 여인으로,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마당 잔디밭의 잡초와 씨름하는 평범한 노인으로.... 자식을 먼저 보내야만 했던 아픔을 품은 어머니로..... 두고 온 고향을 애타게 그려보는 실향민으로.... 2002 월드컵때는 축구의 맛에 빠져 마음만은 젊은이들과 똑같이 붉은 악마였던 축구팬으로.... 손자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는 할머니로....  자신의 삶의 길목에 있었던 일들을 이리 소담스럽게 풀어낸 작가는 그래도 글의 처음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꿈에 비해 현실에서 이룬 것들이 더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읽는 이에게는 충분히 아름다워 보이고, 또한 밋밋한 삶에 의미를 묻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따끔함과 주어진 삶을 더 따뜻하고 소중하게 살라는 노작가의 격려의 손길이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들인데도 말입니다. 

 2부 책들의 오솔길에는 작가의 감성이 담긴 12권의 책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서평도 독후감도 아니'라는 첫머리의 고백처럼 어떤 형식이나 틀을 갖춘 글이라기 보다는 '책을 읽다가 오솔길로 새버린' 듯한, 그리고 때로는 오솔길을 거닐다가 문득 생각난 책의 세계로 쏙 들어온 듯한 이야기들입니다. 책이야기라기 보다는 책을 핑계로 한 자신의 생각과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일 것 같습니다. 3부 그리움을 위하여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부친 추모의 글과 토지라는 커다란 유산을 우리에게 남긴 작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추도사, 철없이 명문대생이라는 허영에 들떠 있던 미군 PX 위탁매장의 점원시절 만났던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쓴 박수근 화백에 대한 추모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 글들은 그들이 묵묵히 만들어냈던 큰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미처 다 알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끼친 풍성함이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이었는지를 새롭게 새기게 해 줍니다.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저자의 이 고백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 손끝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이야기라기 보다는, 삶의 무게가 켜켜이 쌓이는 동안,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자신의 삶을 간간히 되돌아보았던 순간마다 마음 속에서 잔잔히 우러나오던 자연스러웠던 감정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묵묵히 짊어지고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고백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생의 선택의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했던 기억, 주변 환경에 의해서 가보고 싶었지만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길, 젊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알고서도 나이를 핑계로 뒤로 미루기만 했던 꿈에 대한 회한(?) 등은 각각의 모양은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며 살고 있는 것들일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훨씬 초라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가는 길목에서 요령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살아낸 삶의 열매들이 현재의 우리 자신과 가정,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이만큼 풍요롭게 이룬 자산이 되었고, 지난 날의 삶의 이야기가 투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겉만 번지르하게 변해가는 현실의 삶에 대해서 따끔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꿈에 비해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각자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여전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는 하겠지만, 그 아쉬움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아직도 꿈을 꾸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살고 있다는 희망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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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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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코비츠와 그의 여자 친구 -또는 부인- 리우바, 그리고 친구 로페즈, 페트로빅, 주코틱과 라라가 등장하는 스무편의 짧은 이야기..... 하지만 이 소설에는 형식과 전개 방식에서의 뚜렷한 특색이 있습니다. 기존의 소설이 일반적으로 고정된 등장인물 -때와 장소에 따라 여러 사람이 번갈아 등장할 수도 있겠고, 반드시 주인공이 사람이 아닐수도 있지만^^- 에 대한 시간과 공간 또는 심리적인 변화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반면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비스코비츠와 그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유지되는 것은 이름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역할의 중요함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 이야기에 등장하던 비스코비츠는 뒤따르는 이야기에서는 더 이상 앞에서 언급된 비스코비츠가 아니고 그의 동료들도 더 이상 앞 이야기의 그들이 아니니까요. 처음에 비스코비츠는 겨울잠쥐로 등장해서 들쥐로서의 꿈과 욕망을 간직하며 살아가지만, 뒤따르는 이야기에서는 느림보 달팽이로, 그리고 이어서는 사마귀와 되새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 가며 등장하고..... 마지막에서는 세균에서 진화해서 완성된 동물로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스무편의 이야기에 스무가지의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스코비츠는 일관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기 보다는 자신의 모습이 된 각각의 동물의 생태에 얽매이고 충실하게 적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마귀로 태어난 이야기에서는 사랑의 결말로 여느 수컷 사마귀처럼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되새가 된 이야기에서는 결혼하기 위해서 집을 만들고 결혼해서 알 -새끼-을 가지게 되지만 뻐꾸기에게 당하는 모습으로, 상어로 등장한 이야기에서는 자식에게 잡아먹히고, 전갈로 등장한 이야기에서는 꼬리와 집게로 살생을 밥먹듯이 저지르는 독곤충의 모습 등 각각의 동물의 생태에 충실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자웅이체 번식을 거부하고 자웅동체 번식을 이루어내는 달팽이, 자신의 약점을 권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개미, 춤을 통해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돼지, 재산을 모으고 권력을 탐하는 쇠똥구리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 등에서는 동물의 생태를 따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생태(?)를 그대로 옮긴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성의 특이함과 이야기들의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을 한권의 소설로 다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스무개의 이야기를 읽은 혼란스러움보다는 무언가 이야기들의 일관된 주제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닐것 같습니다. 이솝 우화를 읽고 뭔가 교훈적인 가르침을 얻었다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분명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서 눈에 보이게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우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동물들에 대한 매우 세밀한 생태를 표현했다는 사실감으로 인한 호소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만,  그 부분도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수는 있겠지만 뭔가 그럴 듯하다는 느낌의 본질은 아닐 것 같습니다.....  

 ..... "장하구나, 너는 이제 동물이다. 하지만 아직 네게는 배울 게 남아있단다." "....?" "죽음이다, 비스코." "농담하지 마세요." "이제 너는 병원체가 아니다, 비스코. 동물은 죽는단다."  "잠깐..... 모든 걸..... 단념하는 건가요?" "그래, 모든 것을."..... 세균에서 시작하여 동물로 진화하여 진짜 생명의 시작에 대한 기대를 품는 순간, 비스코비츠에게 어떤 목소리는 '너는 동물이고 아직 배울게 남았는데, 그것은 바로 동물은 죽는다는 것,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임을 가르치며 이야기는 끝나고 있습니다. 황홀한 사랑을 꿈꾸던 겨울잠쥐 비스코비츠도, 자웅동체의 사랑을 이룬 달팽이 비스코비츠도, 부와 권력을 이룬 돼지 비스코비츠도, 되새와 상어와 사마귀와 쇠똥구리의 모습을 가졌던 비스코비츠도 결국을 죽는다는 것, 죽음이란 결국 후손을 통해 하나의 종으로서의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는 하겠지만 개체로서의 단절,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하고자하는 모든 욕심과 행위와 의도를 단념하고 태어났던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이러한 일깨움은, 땅 위 한구석을 차지하며 살 수 있었던 생명체로서의 의미와 한계를 깨닫고 감사하고 겸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아닐는지..... 여러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비스코비치를 통해서 표현된 우리의 일상속에 담긴 다양한 삶의 모습과 '결국 죽는다'는 마지막의 대화속에 담긴 일깨움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철학적이기도 한 '난 누구일까?'라는 의문은 작가가 비스코비츠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 한데 네 이야기를 읽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지?' .....' 비스코비치! 난 누구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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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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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 않았습니다. / 나는 이리저리 부는 바람이며 /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 당신이 숨죽인 듯 고요한 아침에 깨면 /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 날아오르는 말없는 새이며 /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 

  몇해 전에 우연히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책을 대할 기회가 있었고, 당시까지 전혀 모르던 사람을 글을 통해서 만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한 모퉁이를 돌아서면 만나게 되던 낯익은 풍경과 다정한 벗들을 대하는 듯한 즐거움.... 사사로운 감정들을 모두 뒤에 두고 마음 편히 속닥거릴 만한 사람을 만난 듯한 편안함.... 그리고 내 삶에 따라 붙어 있던 소소한 것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움.... 아마도 이런 감정들이 뒤섞인 기쁨이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올 해에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만났습니다. 작가의 죽음과 겹치는 이런 저런 것들 때문에 괜한 선입견에 멀리하다가, 계절이 두번 바뀌면서 마음이 달라져 읽었습니다. 화려함도 격렬함도 학문적인 심오함도 담겨 있지 않지만, 그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긍정과 희망을 읽고서 내내 마음이 더 넓어지고 세상이 더 사랑스럽고 살만한 곳이다는 생각에 잠못 이루고 감사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인생에 대해서 그 어떤 책이 말하는 것도다 더 화려하고 격렬하고 심오한 이야기가 작가의 투명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관조를 통해 읽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이리 단 두권의 책을 통해서 만난 장영희라는 사람은, 비록 내가 얼굴을 마주대하고, 딱히 더 잘 알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책읽기를 통해서 만난 내 삶의 한 축을 위로하고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머리의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를 읽으며, 이 책에 정말 어울리는 글을 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1주기가 된 지금, 많은 말과 칭찬과 추도사의 긴 행렬보다 이 기도문 하나로 더 많은 이야기를 작가와 나눌 수 있고, 또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삶의 소소한 것들에서, 아니 소소하다기보다는 내 삶을 이루는 각각의 조각들 안에 내 삶의 진실이 담겨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삶이 되고 인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사랑이 된다는 것을 내 귓가에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도문 속의 인디언은 주변의 생동하는 자연이 곧 자신이라고 말하였다면, 책으로 작가를 만났던 많은 이들에게 작가는 여전히 그녀의 책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고, 살아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어요. 나는 내 무덤속에 있지 않답니다. 나는 나를 기억하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여러분의 책장에 놓여있는 책속에, 그리고 여러분이 넘기는 책장속에, 여러분의 눈이 따라가는 내 이야기들 속에 있답니다....' 그리고 독자로서의 내게도,작가는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내 손에 들린 책과 그 책속에 담기 이야기들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이랍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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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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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라도 다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건 틀렸어. 아첨은 돈으로 돼, 알랑방귀는 돈으로 돼, 비위 맞추는 것도 돈으로 돼, 여자도 그래. 하지만 편한 잠은 돈으로 살 수 없어, 영혼의 평화도 안돼, 이런 빌어먹을, 우정도 안 된다고, 빌어먹을. 난 친구가 하나도 없어,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삶과 죽음을 더불어 이야기할 친구가 한 놈도 없어....." p244, 토볼드 

 "나무의자에 앉아 나무들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도 단순한 기쁨없이 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난 더이상 두 다리로 길을 걸을 줄 몰라, 밤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길 따라 걷는 행복도 더이상 몰라, 내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모르고, 내가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빵값이 얼만지도 모르고, 배고프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춥다는 게 뭔지도 몰라, 내가 아직도 이 세상 사람이긴 한가? 자기 집 문 앞에 앉아 있는 노인들도, 그 무릎에서 생각에 잠긴 고양이들도,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갈돌과 나뭇가지로 짐짓 얌전하게 노는 아이들도 난 더이상 만날 수 없어. 죽음을 물리치는 이 자잘한 기쁨들 모두 난 이제 만나지 못해. 내가 미쳐가고 있나봐요, 엄마." - p249 토볼드 

 지상 최대의 부자 킹사이즈 햄버거 회장님 토볼드와 그가 주창하는 제3복음서-전기-를 집필하기 위해 -실제로는 받아쓰기 위해- 고용된 여류작가..... 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두 인물입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스트립쇼장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킹사이즈 햄버거를 창업하여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유시장주의를 전파하는 토볼드는 자신의 적을 가차없이 내치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쓸어내버리고, 돈의 전능함과 자신의 무소불위를 믿으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전기-소설속에서는 복음서로 이야기됩니다-를 받아쓰기 위해 고용된 소설 속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은 고상한 문학의 숲에서 잠깐 외도를 하려다가 토볼드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안락에 푹 젖어 반항하지 못하고 애완견처럼 꼬리를 흔드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그것들을 누리는 것에 영혼을 점령당한 작가입니다. 자신을 고용한 회장님의 천박함과 경박함에 몸서리를 치지만, 그가 제공하는 한번도 빠져보지 못했던 물질적인 안락함에 영혼이 질식하는 것도 잠시(?) 용납한다고 할까요..... 하지만 누구나 예상하듯이 잠시 용납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는 말일 수도 있겠지요..... 

 앞에 언급한 두 문단은 회장 토볼드가 자신의 권력과 금권 앞에서 얼굴빛를 좋게 하던 이들이 실은 자신을 더러운 쓰레기 같이 증오하고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뱉는 말들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과대망상증의 부차적 증상인 '회한 망상'의 일종에 걸린 상태에서 내뱉는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사람의 고뇌에 찬 되뇌임입니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선인들이 무던히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깨우치곤 했던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식견이 묻어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된 이슈는 이것이 아니겠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이 부분이 그래도 제일 마음이 가는 부분중에 하나였습니다. 돈이면 다 되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모든 가치에 앞서가는 듯한 이 시대에, 그래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우리 삶의 행복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그런 물질적인 것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생히 담고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토볼드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선사업가로 변모를 하지만, 여전히 삶의 방식은 킹싸이즈 햄버거를 운영하던 때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다만 겉모양이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던 것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주는 방식으로, 또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거슬리면 치워버리던 무모함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자선사업가-그에게는 이것도 사업의 일종입니다-로 변신한 킹싸이즈 햄버거의 회장은 여전 자신이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며 도움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을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회장님의 애완작가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회장님의 정서적인 몰락과 변화과정에서 영혼이 확 깨임을 당하는 듯 합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복음서 집필을 접고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는 세상을 좌충우돌 신나게 깨부수며, 주인공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남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을 속물근성이나 없어서 그렇지 많이 가졌다면 결코 마다하지 않고 물질만능주의에 찌들 각오가 되어 있을 우리 영혼의 가벼움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솔직해지자면, 우리 영혼 대부분은 끝내주는 회장님을 알아서 모시게 된 주인공 애완작가처럼,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자신만의 끝내주는 회장님을 모시고 그의 목줄에 스스로 목을 걸어매고 순종하며 살고 있는 길들여진 존재인지도 모를 일이니, 냉정하게 자신을 한번 쯤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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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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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고나서, 문득 진화론에 길들여진 사람들-우리 과학교육에는 진화론 외에 대안은 없으니까-에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진화의 산물인가, 창조의 산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듭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본, 인류 행적의 전단계라고 여겨지는 호모 에렉투스-물론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는 전혀 다른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런 정확함 보다는 일반적인 발달 또는 진화단계의 과정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할 때-의 입장에서 볼때, 그들을 압도하고 이 지구상의 패권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진화된 모습으로 여겨질지, 아니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창조된 능력을 지닌 자들로 여겨질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입장이라면 간단히 더 진화된 존재라는 가정에 만족할 수 있겠지만, 뒤처진 입장의 호모 에렉투스의 입장이라면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진화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이룩하지 못한 능력을 부여받아 자신들을 초월한 새로이 창조된 존재처럼 느껴지지는 않을는지......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유지한다면 모든 진화의 다음단계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진화의 정점에 있는 인류의 입장에서는 뒤돌아보는 발자취는 자신이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켜켜이 쌓인 흔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고, 그러한 과거의 존재와는 다른 자신의 장점 또는 특징 등에 대해서 우쭐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어디까지의 변화 또는 발전(?)을 자신의 연장인 진화된 존재로 인정할 수 있고, 어느 지점부터 자신과 전혀 다른 별종인 새로운 창조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되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빠져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생각과 결말의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인류의 뒤를 이어 이 지구상의 패권을 차지할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면, 그 존재를 인류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거나 새로운 창조물로  생각하게 하는 기준을 현재 인류의 입장에서 어찌 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조금 황당해 보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렇게 황당하게만  생각되는 의문이 아닙니다. 

 작가에 의해 그려지는 현세계 이후에 이어지는 지구는 전쟁과 질병으로 모두 파괴되고, 극단적으로 고립된 지역에서 외부와의 방벽을 쌓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사람들을 가정으로부터 격리하여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세계와 같은 사회구조를 지향하여 노동자, 군인, 기술자, 철학자의 4계급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각각의 계급에 걸맞는 교육과 사회적 직능을 수행하게 하고, 아이들은 낳자마자 부모와 격리되어 공동 양육되고, 연애는 허락되지만 결혼은 허가를 받아야 하고, 결혼하더라도 남녀는 따로 벌어들인 공유시간수당 외에는 자신이 속한 작업장에서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회를 이룹니다. 그러한 사회의 규율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외부인의 접근거부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땅에 상륙하도록 도운 '아담' 포드이고, 사회의 노동자나 군인 계급의 잡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보된 로봇을 만들어 가던 중 탄생한 것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지능을 가진 모델인 '아트'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배반에 대한 처벌대신 '아트'의 진보를 위한 모델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고 24시간 아트와 함께 지내도록 배려(?)됩니다. 그리고 '아담'과 '아트'의 상호 소통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아트와 같은 로봇과 인간의 차이점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설 속 이야기의 진행은 '아낙시 맨더'가 '페리클레스'라는 스승의 지도를 받아, 통치기관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관들 앞에서 4시간 동안의 대면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 담겨 있습니다. 공화국의 창립과 아담의 배반, 아트의 탄생과 아담과 아트의 탈출.....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암시되어 있는 그 이후의 세상..... 그 세상을 인류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담과 아트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나누었던 논쟁만큼이나 이리 저리 생각할 구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제목에서처럼 아마도 그 세상을 창조로 말하고 싶어한 듯 하지만 말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를 위해서는 절대로 마지막 두세 페이지를 먼저 읽지도, 먼저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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