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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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인 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던 소설과는 상당히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시작은 작가와 이름이 같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라는 미국인이자 유대인인 주인공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나치로부터 구해 주었다는 오거스틴이라는 여인을 찾아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것으로 이야기가 비롯되지만, 주인공과 여행했던 알렉스라는 청년과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암캐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주니어의 여행기와 알렉스가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들-여행과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한 것들을 주로 이야기한- 그리고 과거 트라킴브로드에서 조너선의 조상들의 삶이 시작되어 나치의 학살로까지 이어지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함께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편지를 통해 나누는 간접적인 방식의 접촉을 통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밝혀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고, 끝까지 읽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밝혀진 것들에 대한 진실은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 과거 할아버지의 생명의 은인을 찾아 미국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달려온 것은 단지 조상들의 과거에 대한 되새김보다는 그러한 과거에 대한 기록의 목적이 더 컸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여행내내 그의 수첩에 뭔가를 적곤 하였고, 알렉스의 편지에도 조너선이 여행을 통해서 얻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그것을 알렉스에게 보내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말입니다. 아마도, 조니선은 여행의 시작에서는 실제 내용이 어찌되었든 상당한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이 변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할아버지가 살았던 트라킴브로드의 모습을 보게 되고, 과거 그 안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오거스틴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에 대한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몇가지 파편정도는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주인공이나 안내자들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여행에 나선 일행은 이내 조너선이 찾는 트라킴브로드라는 지명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아예 기억되지 못하고 망각에 잠겨 있고, 그 안에서 일상을 일구다가 나치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에 대한 흔적은 망각된 트라킴브로드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오거스틴이라고 주장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할머니가 트라킴브로드로 데려가 주긴 했지만, 거기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아마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얼마만큼의 진실을 알고는 있는 듯하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고, 그 전에 만났던 많은 우크라이나 인들은 아예 트라킴브로드라는 지명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크라이나의 트라킴브로드와 그 주위에 있던 마을들에도 세계대전의 회오리가 몰아쳤고,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학살이 잔혹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791년 트라킴브로드에서 트라킴 B의 마차가 브로드 강바닥에 빠진 뒤 그 시체를 찾지 못하고 한 아이만이 떠올랐던 사건에서 비롯되어 150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1942년의 트라킴 데이 축제 때, 이 마을에 나치의 폭격이 몰아쳤고, 그 폭격을 피해 강물로 뛰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엉켜 익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를 더듬으러 온 주인공에게 현실속의 우크라이나는 그러한 과거의 악몽을 깨끗이 망각하고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트라킴브로드에 살던 사람이 누구였고 어디에 있는지도,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그곳에 트라킴브로드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확실하게 알려주지 못한채 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속의 망각을 헤집어 벌려놓은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밝혀진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이 주인공의 여행을 통해서 얻어진 사실이라기 보다는 단편적인 사실에 소설적인 상상력을 이어서 만든 이야기일지라도,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망각된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의식아래로의 소멸을 강요당한 망각의 교묘함,  그 망각속에 담긴 진실과 그에 대한 진솔한 반성.... 바로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현실속에서 완벽하게 망각된 트라킴브로드..... 아마도 함께 살던 유대인의 학살을 차마 항의하거나 막아서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인들의 과거의 부끄러운 상처에 대한 현실적인 반응의 결과물이겠지만,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완벽하게 망각되는 트라킴브로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한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그러한 것들이 우리가 진정 깨닫고 알아야 할 것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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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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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삶이 허락한 작은 웃음을 즐겨라!' 책의 부제가 참 그럴 듯하게 저자의 글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버트 풀검이라는 이름은 잘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긴 제목의 멋진 책은 기억할 겁니다. '우리가 뜻있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복잡하고 대단한 행동이나 사상이 아닌,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배웠던 사실들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사실을 전했던 그 책에 담겼던 메시지가 고스란히 이번 책에도 담겨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에 나왔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초판의 표지에는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소박한 아름다움, 거창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쉬운 진리, 작은 일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만들어낸 53편의 그림같은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그때와 같이 세상에 숨겨진 소박한 아름다움과 알고보면 쉬운 진리, 그리고 우리 주변의 작은 일에 담겨 있는 기쁨과 감사의 제목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방법들, 우리 삶에 허락된 작음 웃음을 찾는 방법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시애틀과 모앱 사막, 그리고 그리스의 크레타 섬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들..... 하지만 저자가 그곳들을 글쓰기를 위한 목적으로 여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의 삶의 한 영역이자 공간으로서의 시애틀의 집과 모앱 사막, 그리고 이국의 땅 크레타 섬에서의 생활속에서 얻어낸 소박한 소재들을 저자 자신의 예리한 통찰력과 유모와 해학을 담아, 그러한 삶속에 담긴 웃음과 삶의 이유, 그리고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크레타 섬에서 처음 살게 되었을 때, 조깅을 하면서 미국인과 다른 손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현지인의 관습을 몰라 실수를 연발하는 그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과 놀림받음에 멋지게 응수하는 저자, 그리고 그러한 복수(?)를 또한 여유로운 크레타인의 웃음으로 받아내는 현지인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웃음' 편을 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지구에서 웃으면 산다는 것에 대한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웃음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는 것, 바로 거기에 우리가 세상을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이유가 있고 비결이 있고, 그리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서로를 기꺼이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와 앞뒤를 재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과 단순함 정도가 필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저자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바로 세상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또한 그런 웃음과 생각을 퍼뜨리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크레타인의 웃음과 같은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그리고 무엇으로도 무찌를 수 없는 웃음...... 

 '인생의 성공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얼마나 멀리 뛰었는지 혹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에 상관없이, 마지막에 자신이 가진 것을 좋아하는 지에 달려있다...' 점프를 해서 멋지게 착지를 해내는 메뚜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것도 말해보시오.'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 주는 어머니가 엉뚱한 짓을 저질렀을 아이를 책망하는 소리를 듣고서 그 안에 담긴 이런 심오한 질문을 유추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삶에서 성공했다는 기분은 어디에서 놀아야 할지 아는 데 달려 있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고 통통하고 느린데 월드컵 팀에서 뛰어야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삶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리그를 잘못 고른 것이다. 그러나 동네 운동장에서 키 작고 통통하고 느린 사람들과 축구를 하며 골키퍼를 하는데 만족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성공한 축구선수이다. 리그를 제대로 고른 것이다.' 삶에서의 리그와 영역의 문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는 것..... 이러한 이야기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도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몇가지 방법들을 이미 내 삶속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웃음과 멋진 착지와 진지함.... 그리고 내게 어울리는 리그에서 인생이라는 공을 굴릴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가지는 것.....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그런 방법 몇 가지쯤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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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의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지음, 이건우 옮김, 배은미 그림 / 일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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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 슈워츠..... 미치 앨봄의 소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의 주인공입니다. 소설속의 그의 모습은 루게릭 병에 걸려 점점 온몸이 마비가 되고 쇠약해져 가지만, 그 육신을 채운 영혼으로는 죽음을 용감하게 마주하며 평화롭게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가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통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보고, 자신의 삶과 가족과 이웃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볼 만한 여유를 가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의 삶을 바라보며, 가슴속 깊은 감동을 간직할 수 있었고, 그러한 감정이 바탕이 된 격려와 박수와 감사를 그에게 보낼 수 있었겠지요.  

 이 책은 모리 슈워츠 교수의 잠언집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가 말한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짧은 글이나 단상에 대한 모리 교수 자신의 해설을 곁들인 내용인데, 내용이 우리가 논어나 맹자 등을 볼 때와 같은 난해함이나 철학적인 것들을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평이한 단어와 문장과 주제들을 통해서 자신이 죽음을 향하는 여정에서 말하고 싶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얼마전 우리에게 소개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와 맥락에서는 유사한 면이 있다 하겠고, 랜디 포시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듯이, 모리 교수 또한 병과 죽음이 육신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중에도 결코 자신과 또한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놓치지 않고 꿋꿋이 지켜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이고,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 앞에서도 꿋꿋하고 의연한 모습..... 하지만 모리 교수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은 것은 그런 외적인 사실보다는 그러한 의연함의 근원이 되는 삶의 소중함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것들이겠지요.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비참한 최후 또는 실패가 아니라 삶의 연속이며 성숙한 삶의 완성이라는 사실과 그러므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충실할 수 있고 충실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우리가 인생의 깊이있는 교훈이나 체계있는 배움을 원한다면, 논어 등의 사서삼경류의 책을 펼치고 진지하게 배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리 교수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한 잠언구들과 비슷한 의미의 경구들은 다른 많은 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모리 교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아낸 삶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말한 내용들을 자신의 육신과 영혼으로 사람들 앞에서 실천하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과 그의 삶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교훈과 하나의 감동을 진하게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책속에 담긴 모리의 가르침은 지금보다 더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 마음이 울적할 때, 세상과의 사이에 벽이 하나 생겨버린 느낌이 들 때, 주변의 누군가가 힘들게 할 때, 삶에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을 때, 누군가가 미워질 때, 또는 어느 순간 죽음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 등등.... 그러한 삶의 어느 순간엔가 다시 한번 우리 마음에 끼어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가르침과 위로와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책꽂이의 한자리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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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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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지체장애 아들 둘을 키운 아버지, '아빠 어디가?'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던 아들에게 '고속도로 타러 간단다. 역방향으로 말이야... 알라스카에 가지. 가서 백곰을 쓰다듬어 주자꾸나. 그리고 백곰에게 잡아먹히는 거야... 버섯을 따러 간단다. 독버섯을 따서 그것으로 맛있는 오믈렛을 해먹자꾸나... 수영장에 가자. 가서 제일 높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자. 물한방울 없는 풀장으로 말이야....' 등의 대답을 하였던 아버지, 정상적이지 않았던 아이들을 몇번이고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아버지, 그리고 글을 모르지만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꼭 선물하고 싶어했던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아버지의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도 못하고,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잊어먹는, 다 커서도 인형을 빨고 다니고, 자신의 손과 이야기하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눈물로 호소하고 동정을 구하는, 또는 불평불만을 가득 담아 세상을 향해 내뱉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만 적당하게 웃길 줄도 알고, 적당하게 눈물짓게도 만드는 유머로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아버지는 두 아이를 통해 두번 세상의 종말을 맞이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자신의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생기고, 멍청하다고 인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고 제대로 실패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비웃기도(?) 하고, 자신이 세상에 남긴 흔적(아이들)이 깨끗이 닦은  바닥에 흙 묻은 발로 발자국을 남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는 당혹스러운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과연 아이들을 만들어 낸 것이 잘한 것인가라는 부질없는 질문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의 머리속에는 지푸라기 밖에 든 것이 없다는 표현도 피해가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고, 장애를 가진 두 아들을 참아낼 수 없었던 적이 많았고, 그런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기에는 너무 버거웠으며,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천사의 마음과 인내가 필요했겠지만 자신은 천사가 아니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가 들려주는 그런 이야기가 읽는 이로 불편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너무 진지해지지 않고, 너무 동정하지 않고, 너무 피상적이지 않게 이 아버지가 겪었을 삶에 대해, 그리고 두 아이들의 살았을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책을 읽으며 그리 생각했습니다. 이런 삶을 이리 살아낸 사람도 있구나... 이리 살아온 사람도.... 그리고 그런 삶을 이리 써내는 사람도....

 내게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저자의 아이들처럼 자라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옷을 입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으로 자라고, 말과 글도 유창하게 사용하고, 마음껏 뛰어다니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귀여운 아이 둘이 있습니다. 저자의 아이는 "아빠 어디가?"라는 말밖에 할줄 몰랐고, 거기에 대해서 저자는 이런 저런 유머스런 답을 하면서 길을 갔지만, 나의 아이들은 나를 힘나게 하고, 기쁘게 하는 말도 곧잘하고, 또한 이런 저런 흥미있는 이야기들로 내가 귀기울이도록 만드는 재주도 있습니다. 저자가 아이들을 바글바글 낳아서 하고 싶어했던, 흥겹게 노래를 부르면서 산길을 걷고, 나무와 새와 별의 이름을 가르쳐줄 수 있고, 농구하는 법을 가르치고 함께 시합을 할 수 있고,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등등의 일을 멋지게 해 낼수 있는 아이들이 내겐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자는 운이 없어서 유전자 로또에 도전해서 본전도 못 뽑았다고 한탄하지만, 내게는 멋지게 당첨되었다고 뽐낼만한 아이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저자가 두 장애아이를 키우며 살았던 삶의 모양과 다른 멋진 것들을 쉽게 찾아낼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문득 내게 다가섭니다. 어찌보면 나와 아이들의 삶속에 담겨있는 평범함 자체가 멋진 선물일 수도 있겠지만, 장애아 둘을 키우며 멋지게(?) 살아온 저자에 비해서 내게 주어진 아이들에 대한 감사와 경이, 기쁨과 환희 등이 결코 더 풍요로웠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깊이를 모르는 절망이나 아이들을 창밖으로 던지고 싶은 충동같은 극단적인 감정은 훨씬 덜 하였을 수 있지만, 아이들로 인한 감사의 마음은 저자보다 훨씬 덜하지 않았을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낫지 못한 것을 책망하고 몰아세우며 비교하지나 않았는지.... 내 인생에 주어진 아이들로 인한 풍요로움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내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가는 것도 너무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등등의 많은 상념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내게 아무런 극적인 선물이 될 수 없었던 삶의 어느 순간부터, 난 저자가 느꼈던 아이들을 통한 삶에의 성찰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너무나도 솔직한 이야기들과 그 안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이 보이니?'.....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잊고 지내던 나의 삶에 채워진 것들, 앞으로 채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밝히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리 주어진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저자와 두아이의 삶이 곧 그들만의 삶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감당하며 끌어안아야 할,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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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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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키라코람 산맥의 K2를 사랑한 , 그래서 그 정상을 정복하고 싶어한 한 산악인이 있었습니다. 죽은 누이동생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열렬히 그 산의 정상에 서고 싶어했고, 오로지 그 곳에만 눈길을 향하고 있었기에, 등정에 나선 동안에는 그 주변에 있던 것들에는 마음 한자락 주지 않았던 서구의 오만함을 지닌 건장한 산악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웅장한 그 산은 그의 건장함과 오만함, 그리고 짧은 안목을 질책하고 시기하듯, 그가 정상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혼자 외떨어져 길을 헤매며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는 고난을 안깁니다. 마치 사자가 자신의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사는 녀석만 품에 키운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처럼, K2는 자신이 품은 그 땅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할 일에 그가 합당한 사람인지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자신에게 도전한 그가 길을 잃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합니다. 그의 이름은 그레그 모텐슨, 하지만 그가 일하는 파키스탄 지역에서는 보통 '닥터 그레그, 또는 '그레그 사하브'라고 불리웁니다. 자신의 조국 미국에서는 군인이기도 했고, 간호사로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일하는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사람, 가난한 그들에게 조국인 파키스탄도 해주지 못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우리들 식의 사회사업가나 박애사업가라는 말이 더 폼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에게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부르는 '닥터 그레그'라는 호칭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의미있고, 폼나는 말일 듯 합니다. 

 다시 그가 등정에 실패하고 길을 잃고 헤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가 단순히 오만한 서구인으로서 K2를 정복하기를 원했던 사람에서, 그 땅을 근거삼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공감하고, 자신의 일을 총과 미사일과 탱크로도 이루지 못한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완벽한 승리 비결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한 시작이 바로 K2 등정 실패뒤에 따라온 길잃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길잃음의 끝에 다다른 코르페 마을, 그리고 촌장 하지 알리와의 만남과 병약해진 그에 대한 가족같은 환대와 보살핌 속에서, 그의 눈에 그가 오르기를 원했던 산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황량한 땅만큼이나 힘든 삶을 사는 그들은 병원이나 의료서비스를 생각할 수도 없어서 상처의 고름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고, 그를 위해 잡은 숫양의 고기 뿐 아니라 뼈를 으깨 골수까지 뜯어 먹는 굶주린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지붕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아무 책이나 필기구도 없이 땅에 글씨를 쓰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마 그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동생을 위해 정상에 목걸이를 걸기위해 K2를 등정하려고 했던 일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그리고 죽은 동생을 위해, 허허벌판에서 변변한 도구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로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지 알리에게 한 약속이 평범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더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 그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립니다. "제가 학교를 지어드리겠습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첫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는, K2가 자신에게 부여했던 삶이 코르페에 학교 하나를 짓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그의 삶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두개, 세개, 네개..... 의 학교를 짓는 일로 이어졌고, 이제는 십년이 넘게 파키스탄에 학교를 지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9.11사태 이후로는 그의 사업영역이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어집니다. "테러란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어딘가의 사람들이 단순히 우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죽음보다 삶을 선택해야 될 만큼 밝은 미래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는 그의 말에 아마도 그가 하는 일의 진정한 가치가 담겨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단순한 테러에 대한 예방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죽음보다 삶이 더 가치 있다는, 너와 나를 구분해서 총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손내밀고 미래를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삶이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과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는 면에서 그가 하는 일, 그가 사는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는 속삭임을 들으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함께 얻게 됩니다. 그의 삶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발티스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 방식을 존중해주어야 하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교육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라네. 우리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또 살아남을 사람들이야." - 그레그에게 일을 빨리 마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하지 알리의 조언 (p219) 

 "..... 전쟁이 벌어지면 기독교고, 유대교고, 이슬람교고 간에 지도자들이 '신은 우리 편'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신은 피난민과 미망인과 고아 편이에요." - 탈레반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아프카니스탄 난민의 실상에 대해 무관심한 백악관과 의회, 유엔 등을 거론하며 그레그 모텐슨이 덧붙인 말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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