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카 한국사 - 고구려.백제
히스토리카한국사 편찬위원회 엮음, 전호태 감수 / 이끌리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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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먼저 생각하게 되는 대답입니다. 다른 어떤 정의보다 탁월한 대답이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할 것입니다. 정답이라고까지 표현한다면 상당한 과장이 섞인 것이겠지만....... 이러한 의미로 시대에 따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시대와 사회의 정신을 반영하는 역사에 대한 서적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새로운 견해들이 받아들여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매번 역사에 대한 기록들을 접할 때마다 뭔가 새로움을 기대하고, 또한 기존의 것들과 뭔가 다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기록자들에 의해 새롭게 기록되는 역사를 통해서,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배우는 오늘의 의미가 또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히스토리카 한국사 - 고구려+백제>, 이 책을 대하며 책 구성이나 서술방식의 독특함에, 내용의 해석만이 아니라 기록의 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느끼며 잠시 생각하는 '역사'에 대한  짧은 생각입니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지배하며 중국의 중화사상에 맞서 독자적인 세계관 아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역사를 남긴 동아시아의 강대국 고구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문화 중개자로서 역할만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수준높은 문화를 창조하고 후손에게 남긴 비운의 문화 강대국 백제. 책의 내용을 통해 두나라에 대해 뚜렷하게 내게 각인되는 이미지입니다. 비록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멸망을 당한 비운의 왕국이지만 우리에게 자신들의 역사에서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뚜렷이 새기고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고구려에는 고구려의 하늘이 있다는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확고한 의식이 기록된 광개토대왕비문과 중국의 통일왕국 수/당 의 침략을 당당하게 물리치던 고구려의 모습은, 그 이후로 중화사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던 뒤이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모습에 자꾸 왜소해지던 우리역사에 대한 생각을 극복하고 우리민족이 자주성과 진취성을 가지고 대륙을 호령하던 호쾌한 기상을 지닌 민족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알려진 것보다는 베일에 싸인 것이 많은 백제의 역사도, 단순히 멸망한 비운의 왕국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역동적인 문화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고대의 강국으로서의 백제, 그 가운데서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독자적인 백제문화를 창조한 창조자로서의 백제도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임을 백제인들이 남긴 서산 마애삼존불, 무령왕릉의 발굴품, 금동대향로 및 일본에 전해준 문물들을 통해서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형식면에서 살펴보면, 이 책은 기존의 우리 국사교과서나 한국사에 대한 책에서 볼 수 없었던 몇가지 특징이 보입니다. 우선은 각각의 페이지마다 내용과 연관되는 여러 사진이나 지도가 다양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것이 유물에 대한 사진이기도 하고, 역사적 장소의 현재 사진이기도 하고, 중요한 역사적 시기의 지도이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을 서로 비교한 도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더 재미있게 읽고, 또한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각 시대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시대조망>, <집중탐구>, <생활문화>, <인물탐구>라는 네개의 분야로 나누어서 서로 독립된 분야를 깊이 들여다보면서도 또한 서로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게끔 꾸며졌습니다. <시대조망>에서는 나라의 기원과 발전, 성장과 변화,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의 흐름을 따라 중요한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집중탐구>에서는 동북공정 논란이라든가, 고구려의 무기 변천사를 따른 막강한 전쟁능력에 대한 탐구, 백제의 도읍지에 대한 논란, 백제의 요서 영유설에 대한 논쟁등 현재까지 논란이 되거나 중요한 한가지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생활문화>에서는 두 나라의 천하관, 의/식 생활, 놀이 문화, 건축, 미술, 고분, 신앙과 종교, 학문과 교육, 신분제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인물탐구>에서는 두나라의 흥망성쇠에 관련되었던 인물,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영웅들에 대한 삶과 논란, 그리고 시대에 따른 평가의 변화등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중의 하나는 이 책이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고,  여러 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성과들을 기록함으로 인한 다양한 역사에 대한 시각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기록에 대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책을 보며 비록 내 자신이 우리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동북공정에 대한 시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과 이름정도만 알고 있던 고선지나 이정기, 흑치상지에 대한 기록과 역사속에서 그들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좀더 알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백제의 금동대향로에 대한 조금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대하게 된 점 등은 내게 즐거움을 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뿌듯함이 자란 것도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일수도 있지만, 언젠가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책도 이리 멋진 그림과 사진, 재미로 엮어진다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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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 틱낫한의 평화 이야기
틱낫한 지음, 보-딘 마이 그림, 권선아 옮김 / 그린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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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사11:6-9a)

 <두 친구>의 고양이와 생쥐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났던 구절입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이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읽어보더라도 충분히 마음속에 평화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구절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을 때면 반신반의 하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은유로 -현실이 아닌- 받아 들이곤 하였는데, 두 친구의 고양이와 생쥐의 사는 모습을 보며, 정말 문자 그대로 될수도 있는 일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멋을 부리고 과장하기 위해서 표현한 시적인 문구가 아니라, 나중에 정말로 우리에게 주어질 평화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 크리스챤이 아닌 분들과 논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니, 그대로 보아 넘겨 주시기를...-

 <두 친구>는 '코코넛 스님'으로 알려진 다오 두아 스님의 삶을 바탕으로 씌여진 이야기라고 합니다. 베트남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 종교 공동체를 세워서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친구>에 소개된 평화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첫째는 스님의 사는 모습에 표현된 평화입니다. 코코넛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고, 평화를 위해 머나먼 길을 묵묵히 여행하고, 감옥에 갇혀서도 부족한 음식을 나누고, 풀려나서도 그의 코코넛 나무 아래로 돌아와 명상하며 가부좌를 한 모습에서 '평화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되물음을 듣습니다. 두 번째는 고양이와 생쥐의 다정히 어울리는 모습에서 보는 평화의 상징성입니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짐승이 다정히 노닐며 친구가 되는 모습, 그리고 '고양이와 쥐가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다면 우리 인간도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하는 물음이 주는 평화가 세상에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진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셋째는 전쟁의 파편들을 모아서 아름다운 종을 만들고 '너희들은 지금껏 전쟁놀음을 해왔지. 이제는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도울 수 있단다.'라고 말하며 매일 밤 평화로운 종소리를 울리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갈망과 전파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궁에 찾아가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분연히 행동에 나서는 결단성과 힘으로 저항하지 않고 감옥에 갇혀서도, 부족한 음식을 나누며 평화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우는 실천하는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서로에 대한 포용과 적극적인 평화를 만들기 위한 삶, 그리고 비폭력.... 이런 말로도 이 책에서 코코넛 스님이 주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야기 속의 코코넛 스님은 메콩강의 피닉스 섬에 종교 공동체를 세워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자취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천국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불교, 도교, 기독교 신자들이 다양하게 모였고, 농부도 미군도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참상속에서도 평화를 이룬 사람, 그리고 평화로운 섬. 이것이 코코넛 스님이 아마도 이 시간 내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일 듯 합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고양이와 생쥐의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있듯이, 전쟁의 참상속에서도 노력하며 힘쓴 자들은 평화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아마도 갈수록 삶이 무겁게 느껴지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는 나의 삶이란 것도 결국은 나의 것을 손아귀에 쥐고, 나누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욕심 때문인 듯 합니다. 평화를 적극적으로 구하지 아니하고 나누지 아니하고, 내 것을 먼저 챙기는 데서 오는 세상과 사람들과의 불화가 쌓이고 쌓여서 -조금 과장되이 부플리면- 코코넛 스님을 가두고 핍박하던 권력이 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포탄을 퍼붓는 전쟁이 되었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내 아이들에게 이 책이 주는 평화의 메시지를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움켜쥔 손을 펼치고 그 안에 든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철로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연습하는 욕심에서 벗어나 그 무기들로 쟁기를 만들어 땅을 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한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요? 하지만, 내가 읽은 성경에는 코코넛 스님이 이루었던 평화의 나라(땅)에 대한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의 세대에는 그러한 소망이, 믿음이 아닌 좀더 가까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을 대한 어른된 이들 -나를 비롯한- 의 소중한 실천이 싹으로 자라서 열매로까지 맺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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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홀릭 1 - 귀차니즘 선생님과 교복 입은 악마들의 엽기발랄 학교로망 스쿨홀릭 1
신의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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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득 그 시절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난 것이 두자릿수를 벌써 넘긴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안에 갇혀 있을 땐 감옥처럼 느껴졌지만, 벗어나서 살면서 되돌아보면 분명 그곳은 우리를 위한 온실이었다는 느낌입니다. 저자가 기록한 것들이 부정적인 것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학창시절의 추억과 아직은 학교라는 곳이 충분히 다닐만한 밝고 희망찬 곳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였기에 더더욱 그리 느낀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학생들에게 비판보다는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따뜻한 눈길에 더 공감이 가기에, 여러가지 부정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한번쯤은 돌아가고 싶은 거겠지요.......

 책을 받아들자마자 서너 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슴에는 따스함이 남았습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이랬었지 아마....'하는 생각에서 부터 ' 어! 요즘 아이들은 다르네...하지만 귀엽기는 마찬가진데...'하는 생각들까지 다양한 웃음띤 감정들이 내 가슴에 피어 오릅니다. 떡볶이 먹다가 목에 걸릴 뻔 했다는 분, 냉랭한 사무실 분위기를 파악못하고 깨버렸다는 분, 미친듯이 배꼽 쥐어잡고 웃었다는 분.... 그 분들의 감정표현도 모두 나의 것이 됩니다. 저두 아이들이 자는 옆에서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웃음 참느라고 몇번이고 키득거리며 괴로웠(?)거든요. 아뭏든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합니다.

 내 학창시절의 기억과 닮은 꼭지도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16의 '평가'에서 학생들의 자화상에 대한 평가를 하며 되뇌이시는 선생님의 독백 ' 학교에서 미술 배워서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학생다운 성실함과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를 보며 문득 중학교 때 미술시간에 나의 그림들 평가해 주시던 미술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이리 저리 번지는 수채화 물감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시절, 스케치북에 대각선으로 큰 길 하나를 그리고 원근법이랍시고 가로수를 쭉 일렬로 그리고, 나머지 여백을 논으로 채워간 그림을 그려갔는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와! 이 그림이 원근법을 제대로 표현해 왔네.' 하시며 이런 저런 그림의 좋은점을 칭찬해 주셨는데, 솔직히 그 당시 내 무성의함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저자처럼 우리 천사같은 미술 선생님은 좋은 점만 보아주시고는 점수도 무척 후하게 주셨거든요. 아마도 다 늙어서도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의 민망함과 또한 선생님의 배려에 대한 감사함으로 인해서 말입니다. 또 하나는 에피소드 36 '가혹한 벌'에 나오는 교련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쩌면 학창시절의 우리 교련 선생님하고 꼭 닮으셨습니다. 교련시간만 되면 숨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실습시험 하나보고 도장 하나 받을 때면 정말 온몸이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될 지경이었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뒤돌아서시면 역시나 교련이 너희들 앞길에 장애물이 안되기를 바란다고 되뇌이시며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제가 괜히 겁이 많아서 미리 얼어붙었던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련쌤^^.

 .... 어떠한 경험이든 그것이 현실이라면 /  현실에서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보다 /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이 /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 우리 자신을 다스리고 참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 가고 싶은 곳도 많고 /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 내가 그것을 참는 법을 배울 때까지  기다려 주는 곳은 / 학교밖에 없었다. / 우리의 대부분은 학창시절이 끝나면 / 더 냉혹한 곳으로 내 던져질 운명을 /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그곳에서는 아무도 미숙한 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p 174)

 내 아이가 얼른 자라서 이 책을,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학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자와 같은 선생님들이 더 가득한 학교가 된다면 아마도 그때는 더 다닐만한 곳, 더 나아가서는 다니고 싶은 곳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어림없는(?) 상상도 해봅니다. 학교 화이팅!!! 그리고 선생님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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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관한 17일간의 성찰
존 러벅 지음, 노지양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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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관한 17일간의 성찰"

 이 책을 읽으면서 몇번이고 '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을 하였던 적이 언제였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자처럼 거창한 주제들을 가지고 17일간씩이나는 아니더라도 잠시 잠깐이라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게 언제적이었는지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핑계일 수 밖에 없겠지만, 현대사회라는 것이 지난 시간을 천천히 곱씹고 돌아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듯도 하고, 그 동안 산다는 것이 아마도 일을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조용한 독서의 시간마저도 스스로를 비춰보고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보는 시간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데 더 의미를 두고, 삶의 예민한 한 모퉁이가 자극을 받게 되면 짧은 감상으로 나 자신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기회의 시간들을 외면해 버리곤 한 것이 아닌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주관적이고 의미가 애매한 '깊이에의 강요'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 삶이 한달에 한 번 정도라도 저자가 말한 여러가지 주제들 - 인격, 근면, 자기계발, 신앙, 사랑, 희생, 독서, 돈, 부, 건강 등 -에 대해서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분명 더 건강하고 활기 찬, 그리고 의미가 담긴 윤택한 삶을 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처럼 17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인생을 돌아볼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여기에는 저자 자신의 생각도 있지만, 많은 부분 여러 철학자나 위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나 성경의 문구들을 인용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인류에게 쌓인 지혜를 그가 정리하고 편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 위인들과 작가들이 남긴 주옥같은 문구들을 인용하여 자신이 정한 주제들의 알맹이를 그대로 표현하고 주장하고 읽는 이를 설득해 가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주장들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 줄을 그으며 그 문장들이 주는 고귀한 정신들의 조언을 놓치지 않고 내 안에 받아들이고 싶은 열망도 내안에 자라납니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는 순간은 책을 다 읽어냈다는 생각보다는 시간을 내어 다시 천천히 곱씹어서 훌륭하게 소화시키고 싶다는 아쉬움 곁들인 소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 시간입니다. 삶에 대한 나의 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해 줄 수 있는 귀한 이야기들이라는 기대와 찬사와 함께 말입니다.

  책의 17가지 주제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책의 향기'와 '신앙에 대하여'라는 주제가 가장 관심이 가고 마음에 담기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왜 책을 읽고, 거기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어떤 소녀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있는 매콜리의 다음과 같은 글과 사냥에 따라 나서지 않고 플라톤의 책을 읽고 있던 애스컴의 고백이 내게는 희미해졌던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한 줄기의 빛을 뚜렷이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고, 신앙에 대하여는 작가가 술술 풀어낸 성경의 인용을 통한 내 신앙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화력 때문입니다.

 ' 누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만들어주고 궁전과 정원과 진수성찬과 와인과 마차와 아름다운 옷과 수백 명의 하인을 준다고 해도 책을 읽을 수 없다면 나는 왕이 되지 않겠다. 나는 독서를 사랑하지 않은 왕이 되느니 책이 가득 찬 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콜리-

 ' 그 분들이 사냥터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제가 플라톤을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에 비하면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답니다.' -애스컴-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8:3-4-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책을 다 읽고도 아직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우물물을 한번 길어올려 그 시원함을 맞보고는 외면하지 못하듯이, 내 눈길이 한 동안은 이 책에 담긴 지혜로운 문장들에서 떨어지질 못할 듯 합니다. 짧게 짧게 이어지는 시간이라도, 이 책의 내용들을 다시 되새김질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내 삶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고, 반성하고 기초를 더 공고히  다지는 그러한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많이 읽고 많은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더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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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 개정판
맥스 루케이도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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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맥스 루케이도. <예수님처럼>과 <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속삭이실 때>를 통해서, 그리고 아이들의 책 <너는 특별하단다>와 <아주 특별한 너를 위하여> 그리고 애니메이션 Hermie series를 통해서 만나게 된 복음주의 작가입니다. 자신은 스스로를 '작가이기 전에 목회자입니다.'라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의 노작들을 통해서 그가 들려주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은 목회자로서 신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서의 강력함 보다는 때로는 시적이고, 때로는 조단조단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그러한 온화함이, 부드러움과 포근하게 감싸주는 따스함이 먼저 느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여느 선지자적인 외침을 들려주는 저자들이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복음을 설파하는 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방식으로 복음과 신앙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그의 색다른 장점이고 또한 하나님께 작가로서 쓰임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이전의 그의 저작들이 그러하였듯이 이번에도 그는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영혼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그분의 손길과 보살핌에 대해서 부드럽게 일깨워주는 글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일방적인 강요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일화들을 통해서 그 안에서 발견되는, 그리고 우리의 일상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건들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손길과 위로, 그리고 영적인 진리들을 온화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알려주는 그의 은사는 이번 책에도 여전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정하셨고, 우리가 그의 친절과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시작된 맥스와의 티타임은 하나님에 대한 찬송의 기쁨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사랑과 하나님의 연단방식을 통해 깨닫게 되는 인내와 끈기, 염려와 스트레스를 하나님께 맡기기,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에 대하여, 내게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따르는 삶에 대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과 눈물을 알고 계신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믿음과 기도와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열한번의 티타임을 통해서 저자는 신앙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 주고 또한 그만큼의 깨달음을 내게 선사해 줍니다. 특히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에서 사랑이란 단어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다보니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용감한 고백을 보며 나 스스로도 한번 따라해보지만 결국은 첫번째에서부터 막히고 맙니다. 거기에 예수님을 넣어 읽으면 막히지 않고 술술 이어지는 것은 보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부끄러운 고백일수 밖에 없지만 결국 그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대한 자신만의 외침을 들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안다고는 하지만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에 대해서 오늘도  이리 자신의 은사를 사용해서 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신앙이란 앎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열한번의 티타임내내 내게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의 신앙을 말한 것이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를...-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식대로 한다면 ' 정해진 시간과 장소.... 펼쳐놓은 성경.... 경청하는 마음' 즉 준비된 자세로 마음문을 열고 매일 하나님을 내 삶에 초대하는 일이 될 듯합니다.

  내가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고 하나님과 교재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하지만 내 삶을 주체하지 못하고 생의 언저리에서 매번 헤매고 있을 때, 내 영혼에 진실로 필요한 진리를 알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내가 이미 배워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생활에 적용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저자는 조용히 나에게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시고 당신의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쉼도 사랑도 평안도 능력도..... 이런 모든 당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당신을 향해 조용히 지켜보며 서 계십니다. 미음문을 활짝열고 진심으로 마음속에 예수님을 초대하세요. 내가 이리 당신과의 조용한 티타임을 제안했듯이 그분과 단둘이서 차 한잔 하세요.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당신의 마음의 문만 활짝 열어 반갑게 맞아들이면 됩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아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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