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초등 낱말편 1
김경원 외 지음, 오성봉 그림 / 열린박물관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나름대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살고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잘 쓰는 글을 아니지만, 글에 나의 마음을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꼭 우리말에 대한 책들을 체계적(?)으로 읽어 보리라고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며 결심만 하던 내게 이 '어린이 국밥'이 쥐어졌습니다. 어린이 책이니까 가볍게 읽고 소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알고 있는 우리말 지식이 혼란스러워지고, 자신감은 아래쪽으로 자꾸만 곤두박질 칩니다. 그리고 각 단원의 내용을 다 읽고 풀어보는 연습문제의 오답의 갯수가 늘어갈수록 얼굴이 붉어집니다. 결심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고 허영심(?)에 자신만만하던 나에게 어린이 국밥이 먹인 멋진 하이킥입니다. 영어공부라면 불을 켜며 달려들고, 아이들에게도 심하다 싶은 정도로 강조하던 내가 정작 우리말에는 무심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데, 몇번의 결심만을 가지고 그래도 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 읽고 난 소감중의 하나는 좀 엉뚱하지만 왜 우리가 열심히 영어를 해도 원어민들을 따라 가기가 어려운지에 대한 명확한 깨달음입니다. 아무리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살며 우리문화에 푹 젖어 지내지 않았다면 어찌 '붉다' 와 '빨갛다', '기쁘다' 와 '즐겁다', '삶다' 와 '찌다' 등의 세밀한 차이를 감각으로 구별해 내고 느끼지는 못할테니까요. 한국사람이라면 물론 헷갈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정도의 구분은 하며 사는 어휘들이구요. 물론 정확하게 구분하여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딱히 구분하여 배우지는 않았지만, 문법공부를 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구분을 하고 말이 통하며 사는 것은 한글이 통용되는 문화권에 젖어 살기 때문이겠지요. 두번째 소감은 우리말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적당히 구분하고 쓸줄은 알지만 결코 그 이상은 못되는 것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대학생들도 두꺼운 영어사전을 뒤적이며 산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중학교나 잘 하면 고등학교의 어느 지점에서 국어사전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나만을 보더라도 책꽂이에서 사라졌던 국어사전이 작년에야 다시 돌아왔는데 -그것도 초등국어사전으로- 이유는 학교에 가게 된 아이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 국밥을 통해 명확하게 각 단어들의 의미의 차이를 배우면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던 우리말에서도 이리 배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숨어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우리말인데도  정확한 뜻과 쓰임을 미처 알지 못했던 데 대한 부끄러움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우리말을 좀 더 잘 쓰고 가꾸기 위해서 배우는 것 마다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말로만 아름다운 우리말, 자랑스런 우리말 하지 않고, 정말로 아름답고 자랑스런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린이 국밥은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의 내용에서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어휘 열여섯 쌍을 골라내어 어린이의 눈높이로 삽화와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텔리비젼에서 '국밥'이 새로운 시도에 의해 기획되고 출판된 책이라는 보도를 본적이 있습니다. 출판전에 펀드형식으로 투자자들에게 돈을 투자받고, 성공해서 얼마 이상 팔리면 원금의 두배, 그 이상이면 얼마더...등의 투자조건으로 시작된 것이었는데, 투자자들의 대부분은 이 책의 성공으로 거둬들인 수익을 다시 재투자하는데 기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였다는 기분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더 좋은 책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했던 기억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국밥'을 읽으며, 그들의 마음만큼이나 우리말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아름다워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나처럼 많은 이들이 우리말에 대해서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좀더 가까이에서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깨달음을 가졌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영어사전중에 'Thesaurus'라는 종류의 사전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어휘력사전'정도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의미의 말들을 설명하고 반의어들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전을 비롯한 다양한 영어사전의 종류들을 보며, 우리 국어사전에는 저런 것이 왜 없을까? 하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얼굴이 붉어진 경험을 한 뒤에 용감하게 서점에 가서 우리말에 관한 책 몇권을 사고, 인터넷 서점들을 뒤지면서, 내가 미처 관심이 없어서이지 그 사전들과 비슷한 종류의 우리말에 관한 책들이  이미 있었고, 요즈음 그 종류들이 조금더 다양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물론 영어사전류만큼 체계적이고 다양한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모양의 배움의 기쁨을 얻게 된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어야 한다고 권할 책의 목록에  다시 한 권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아이들은 나보다 더 아름답고 명확한 우리말을 쓰는 현명한 이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이런 종류의 책은 우리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나중에 이 책을 권한 내게 나의 아이들이 이리 고백할지도 모릅니다. '아빠! 어린이 국밥이 밥보다 더 맛있어요'  아니면 밥 대신 치킨이나 햄버거라고 할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
문현식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큰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긴장감 넘치던 시간들이 문득 생각납니다. '아이가 잘 해나갈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부터 시작하여 혹시나 왕따 당하는 건 아닌가, 우리가 부모로서 제대로 가르치긴 한 걸까, 선생님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의 처음 대하는 낯선 일들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걱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년 초에 아이들 생일파티에 다녀온 아이들 엄마가 다른 엄마들이 초보 학부모라서 그러는데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고 태평스러이 이야기하더라는 대화도 기억이 납니다. 이미 큰 아이를 윗학년에 올려보낸 엄마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매사에 조심스러워 하는 우리같은 초보 학부모들의 모습이 아무래도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신기한 생각이 들었을 듯 합니다. 

 이 책을 대하며 그 때 이책을 대했다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걱정들을 모두 잠재워줄 수 있는 것은 실생활에서 부딪힌 경험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런 경험이 부족한 학부모들에게 눈에 안보이는 많은 믿는 구석들을 만들어 줄 수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초등학생들을 위한 일기에 관한 책들이 아이들의 일기를 보여주고 선생님들의 짧은 평가를 달아 놓은 것들이거나 아니면 글씨기나 일기에 대한 이론적인 면에서 설명한 일기를 어떻게 쓰도록 지도할 것인가하는 식의 서적들이었는데, 이 책은 그나마 선생님의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학생이 일기를 쓴 배경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솔직하고 자세히 적혀 있어서 아이들의 세계를 대하는 선생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단편적으로나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럴 땐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는구나 하는 이해와 공감들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기쓰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부모의 이해를 키우는데 한 걸음 진보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교 생활과 거기에 대한 선생님으로서의 고민과 느낌과 생각들을 함께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으로 해서 무한하게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의 가능성과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들을 인도하고 지도한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될 듯 하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의 내용이 학교생활과 학생들 지도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이나 단상들에 대한 선생님의 자유로운 주제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학생들의 일기를 예문을 삼듯이 앞세우고 그 내용에 대한 선생님의 답글 형식을 취함으로 인해서 너무 교육적인 면으로 흐른, 중간중간 진솔한 감정이나 느낌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에 한정시켜서 아이들의 글에 대답한 형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좀더 선생님들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들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사적인 것들을 공적인 곳에 들이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매일 또는 매주 아이들 일기를 보아주시는 선생님들 중에는 꼬박꼬박 자신의 일기장도 곱게 메꾸어 가시는 분들이 꼭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고, 교육현장에서의 기쁨과 슬픔의 기록들, 나름대로 고민하며 그것들에 대한 해결책이나 길을 구하는 기록들이,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을 위해서도  더욱 다양하게 나와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책 말미에 있는 일기 쓰기의 중요성과 일기 쓰기가 잘 안되는 이유, 올바른 지도 방향에 대한 글들은 나오같은 학부모들이 깊이 새겨 읽고 소화시켜서 우리 아이들에게 내어놓는다면 참 좋은 지도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전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게 해주고, 세상에 아직 물들지 않은 눈처럼 희고 계곡물 처럼 맑고 고운 생명의 속삭임을 듣게 해주고, 교만하지 않은 겸손하고 낮은 곳에 처할 줄 아는 마음과 착하고 슬기로운 아이들이 세상을 보게 해준, 그리고 그러한 보배로운 아이들을 정말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보살피고 있는 저자와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기한 스쿨버스 11 - 아널드, 아인슈타인을 만나다 신기한 스쿨버스 11
조애너 콜 지음, 이강환 옮김, 브루스 디건 그림 / 비룡소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를 처음 만난 것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입니다. 유치원생들을 위한 <신기한 스쿨버스 키즈> 시리즈를 구입한 뒤에 조금은 어려울 듯한 내용의 책들을 두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한권 한권 쌓아가며 읽어 가던 시간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의 책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느끼며 부모로서 더 없이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어린아이들이 십여권을 앉은 자리에서 읽어내곤 하는 모습에 신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가 이젠 아이들 책장에 빼곡히 꽂혀 시간이 날 때 마다 아이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리즈를 구입할 적마다 아이들은 항상 대단한 관심과 열심으로 책을 내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는 내가 보기에도  조금은 혼란스럽게 뒤엉킨 본문과 그림, 설명과 말상자들이 뒤엉켜 있어서 산만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데도 아이들은 더 재미있게 읽는 것을 보면 어른인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아이들과만 통하는 뭔가 특별함이  이 책의 이야기와 구성요소들 속에 숨어 있는 듯 합니다.

 아널드 아인슈타인을 만나다.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의 11번째인 이 책의 제목입니다. 며칠 남지않은 과학 발표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아이들은 아널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학교옆의 워커빌 과학관에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갑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건 항상 같이 다니던 스쿨버스가 아닌 과학관에 있는 종이 스쿨버스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여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만큼 완벽한 버스입니다. 멋진 기념촬영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버스는 위대한 과학자들과의 만남을 위한 멋진 여행을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였으며 과학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과학 발표회 준비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들을 제공해 줄 생생히 살아있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증명해낸 갈릴레이를 거쳐 만유인력의 법칙의 발견으로 태양과 행성과 위성의 운동에 대한 답을 제시한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서 태양과 행성의 운동에 대한 과학의 발전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어깨위에 갈릴레이가 올라탔고, 그의 어깨위에 뉴턴이 있는 모습처럼 과학은 그리 발전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작은 세계에 대한 탐험입니다. 현미경을 만든 로버트 훅에서 시작된 과학의 발전은 레벤후크의 미생물의 관찰로 이어지고, 파스퇴르에 이르러서는 더욱 발전하여 질병의 원인으로서의 미생물을 증명하고 질병 치료와 예방에 새로운 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은 퀴리부부의 방사성 원소의 발견에서 시작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는 "E=mc2"을 생각해낸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여행을 통해 자신들이 과학 발표회에 가져갈 멋진 아이디어들을 얻어 옵니다.

 50여 페이지가 채 안되는 이 책의 지면에 저자는 참으로 많은 것을 담아 놓았습니다. 형식은 과학자들의 업적을 따라가는 여행의 형태이지만 과학의 어떤분야가 태동하여 단계적을 발전하여 하나의 거대한 업적으로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되고 우리가 우리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데에 까지 이르는 길에 대한 자연스런 안내를 해주고 있으며,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과학자의 단편적인 과학적 업적을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을 얻기위한 과학적인 방법론과 생각습관, 노력들에 대한 삽입을 통해 과학이란 어떤것이며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있음에는 작가의 놀라운 재주를 감탄스러워할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디어를 얻어 온 아이들이 자신의 과학발표회 주제를 정하여 작품을 만드는 모습에서는 위대한 과학자들만이 다루리라고 생각하던 과학적인 방법들이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서 자연스럽게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아마도 아이들이 그 주제중의 하나를 골라서 함께 실험해보자고 우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잘 인도만 한다면  책속에만 그리고 멀리 실험실속에만 있는 과학이 아닌 주방에도, 안방에도 그리고 놀이터에도 있을 과학에 대한 흥미를 아이들이 관심있게 찾아볼 수 있는 계기다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날과 밤을 계획된 책에 대한 자료수집과 자신의 이야기거리로 소화시켜서, 이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우리 삶에 끼친 영향과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눈높이에서 훌륭하게 써내고 그려낸 저자들의 이와같은 변함없는 노력과 수고가 아마도 신기한 스쿨버스에 숨겨진 특별한 힘이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런 정성과 마음이 아이들에겐 고스란히 전달되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는 이 순간 이 책을 손에 들려주자 책상앞에 앉아서 흥미롭게 읽어 내려가던 아이의 모습이 문득 눈앞에 선합니다. 내용자체가 좀 난해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끝까지 즐거워하며 읽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도 물론 기뻤구요. 이 시간 그 즐거운 기억에 아이가 그들을 위해 특별한 노력들 기울인 저자의 정성만큼이나 살아있는 지식들로 이 책의 내용들을 체험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덧붙여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들아, 아빠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 늘 바쁜 아빠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윌리엄 란드 리빙스턴 원작, 코하세 코헤이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이홍렬 옮김 / 깊은책속옹달샘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들과 살갑게(?) 지내는 아빠인지라 특히 둘째 아이는 무척이나 아빠를 괴롭게(?) 하곤 합니다. 틈만 생기면 '아빠 게임해요.' ' 다이아몬드 게임 한 판만요.' '오늘은 저랑 축구하러 가실거죠?' '목마 태워 주-세-요' '피터팬 책 읽어 주세요' ' 말타고 싶은데 한번만 태워 주세요' 등등등..... 끝없는 요구를 하고, 조금이라도 소홀할라치면 휙 돌아서서 뾰로통해져서는 시위를 하곤 합니다. '밥을 안먹을거야'는 기본이고, 심할 때는 훌쩍이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으니 '짐을 싸서 집을 나갈거야'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부모들은 버릇 고친다고 정말 짐을 싸들려서 문밖으로 내 보낸다고도 하지만.... 아직까지 거기서 아이를 억지로 이기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이제 초등 2년이 되는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동생덕에 다 큰 아이 취급을 받아서인지 분위기가 아닐 듯 하면 이내 자기의 의견을 접고 아빠의 말에 따르곤 합니다. 아빠에게 안기는 것도 동생이 안 보이거나 아빠가 정말 기분이 괜찮아 보일 때만, 또는 아빠가 정말로 안된다고 하지 못할 약점을 잡혔을 때만 당당히(?) 요구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부모가 안된다고 하면 이내 '그럴께요' 하고, 매번 동생과 물건이나 먹는 것으로 다투다가도 시끄러워질 듯 하면 알아서 먼저 양보를 해 버리곤 합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아버지로서의 나의 관점은 항상 '이제 우리 첫째가 다 컸네' 하는 식이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을 다 헤아리지도 못했고, 헤아려 볼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게으른 아빠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두에 이리 나의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문득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통해 아이들 앞에서 아빠로서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나도 잃고 있었다는 반성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내가 작은 아이의 요구들을 때로는 괴롭게 생각하고 큰 아이의 어른스러움을 당연하게 생각하곤 하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반복되는 부모의 요구나 간섭, 또는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어찌 받아들여질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참 괴롭고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도 들고, 좋은 것을 골라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세상살이가 바쁘다는 핑계와 다른 사람들과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경쟁관계 안에서 생각하게 됨으로 인해서, 아이에게도 사랑과 소망이 담긴 그런 관계맺음 보다는 공부를 하는 것이나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하는 것, 영어공부를 잘 하는 것 등으로 먼저  칭찬하고 관심을 보였던 모습을 뒤돌아보면 못내 부끄러움이 고개를 숙이게도 만듭니다. 아이와 나의 관계는 그런 것이 기초가 된것이 아닌데,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모습속에서 아이에게 가르친 것도 그런 형식적이고 눈에 나타나는 성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가르친 것 밖에 안 되었다는 반성도 들구요. 그러고 보니 내 아이들에게 단지 그들이 나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기쁘다는 고백을 하고,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 것이 언제적인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부모들에게 바랐던 그 소박한 꿈들의 꾸러미를 아득하게나마 간직하고 있는데, 그게 어른이 된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마음의 다락방 한 구석에 그리 처박혀 있습니다. 그걸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고 풀어보았다면,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많이 부끄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속에서 장난감을 치우지 않는다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옷을 더럽혔다고, 인사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고 사사건건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호통치고, 매번 비꼬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나도 모르는 아버지로서의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이를 잘 이해한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나의 아이들의 눈높이로 고개 숙이지 못하고, 나의 눈높이로 그들을 대하고, 그들에게 요구하고, 또한 훈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속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아빠가 기도했던 고백도 고스란히 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다만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둘러보고,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조용히 들여다 보는 반성의 시간이 많이 부족했음을, 그래서 그들이 잠시 나의 천사들이었음을 잊고 살았다는 고백을 덧붙입니다.

 '아이들아!  아빠가 미안해!  너희들이 나의 천사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거든....'

 나의 천사들 앞에 선 나는 누구일까요? 

 이제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는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이들을 내려다 보지 않고 무릎을 꿇고 똑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고 웃고 우는, 사랑스런 두 천사를 가진, 자랑스런 이름,  아빠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나리자 - 세상에 무슨 일이? 2
질 칼츠 지음, 이상희 옮김 / 책그릇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속에 신비한 미소를 지닌 채 여전히 보는 사람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는 '모나리자'. 사람들은 모두가 명화라고 하지만 그림을 보는 눈이 까막눈인 내게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는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모나리자의 미소의 원인이나 이유를 밝히는 가십성 기사들을 대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림속의 여인은 결코 내 누이나 어머니처럼 친근해지지 않는 이질감을 지닌채 여전히 그림속의 이방 여인으로만 느껴지곤 했습니다. 피카소나 다빈치의 그림보다는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이 주는 분위기가 더 좋은 사람이기에 전문가들이나 미술하는 사람들의 설명이 아무리 거창하다고 해도 아직은 자연스럽게 모나리자의 미소를 친근하게 그리고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못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 눈의 안경이라고 모든 사람 각각이 자신의 취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공통된 취향에서 벗어나 이리 외떨어진 말을 하고 있는 나의 안목에 -그것이 아니라면 그림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모나리자라는 그림과 그림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티브로 시작하지만 전체적인 전개는 그가 살던 세상과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조류를 큰 틀에서 반영하며 진행됩니다. '모나리자가 그려지던 시절에 세상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라는 틀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간다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듯 합니다.
 
 오늘날에는 화가이자 조각가, 기술자, 건축가, 과학자로 기억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책의 소개대로 그냥 천재가 아니라 '만능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물입니다. 다빈치가 살던 그리고 활동하던 시대와  장소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르네상스가 그 절정기를 이루던 시절이었습니다. 중세의 종교적인 권위와 억압(?)에서 벗어나 인간의 지성과 지상에서의 삶이 중요시 되고, 그러한 사상과 철학의 영향으로 바스코 다가마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메리고 베스푸치 등의 전설적인 탐험가들에 의해서 서양세계의 지리적인 확장 및 정복과 약탈이 이루어지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공간적 시간적 역사조류의 복판에서 살았던 다빈치도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화가로서, 음악가로서, 기술자로서, 때로는 건축가가 되기도 하고 조각가가 되기도 하면서, 또 때로는 연극의 연출가, 인체 해부학자 등의 삶을 살다 갑니다. 너무 앞선 천재의 비운이랄까? 수많은 획기적인 구상들이 너무 앞선 생각으로 인해 그것을 실현할 수단이 없어 사장되거나 시간이 없어 묻히기도 하였구요.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다비드>상과 <천지창조>의 작가인 미켈란젤로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그와 동시대-그 보다는 한 세대 더 젊은-사람이었다는군요.
 
  책의 핵심 메뉴인 모나리자의 미소로 들어가 봅니다. 이 그림에는 르네상스에 새롭게 등장한 두가지 그림기법인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명암법)가 적용되었는데요, 선들이 부드러워지고 색채들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또는 증발하면서 서로 섞여 보이는 스푸마토 기법이 모나리자의 긴 웃옷과 그 유명한 미소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암법은 두손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게 그린 기법인데, 일정부분에 닿는 빛의 양을 변화시켜 여러 부분들에 입체감을 주고 3차원 형상을 묘사하게 해준 기법이랍니다. 그리고 그림의 상반신을 그림을 보는 사람 쪽을 행해 2/3쯤 몸을 돌게 해서 그린 것은, 그림속의 인물을 앞쪽으로 한껏 다가오게해서 친밀감을 불러 일으키게 한 거랍니다. 인체해부학을 연구한 다빈치의 지식이 그림의 각 부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사실중의 하나이겠구요. 이러한 독특한 기법과 지식에 기반을 둔 작가의 손놀림이 모나리자가 이리 신비스러운 미소를 짓게 만든 이유가 될 듯한데, 나같은 초보자들에게는 이러한 기법이나 지식에 대한 설명보다는 책에 소개된 다른 이들의 초상화에 나타난 인물들의 표정과 모나리자의 미소를 비교하는 것이 이 그림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데는 더 간단한 방법이 될 듯 합니다. 비교하면서 바라보노라면 너무도 그녀의 미소가 살아있는 사람이 미소짓듯 너무도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되니까요. 아! 이래서 사람들이 그리도 감동하나 봅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앙증맞다고 해야하나요....... 그럼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리사 게라르 디니 델 조콘다'라고 하는데,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연인, 여자로 꾸민 소년, 레오나르도 자신, 또는 이상적인 여성의 표현이라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로 알려진 그림 - 빨간색으로 그려진 머리가 대머리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얀 할아버지 초상화-은 아마도 학교다닐 때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던 듯 한데, 이 그림이 기껏해야 위조품이나 모사품 밖에 안될거라고 합니다. 이런때의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아무튼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조류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한껏 뽐내고 살다간 한 '만능 천재'의 삶을 통해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귀중한 유물들을 둘러보며, 신이 그에게 내린 재능이 곧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그린 모나리자라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말입니다. 앞으로는 나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며 낯선 그 느낌보다는 부드럽고 따스한 한 천재의 숨겨진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안목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되었음에, 그리고 나의 아이들과 이 그림의 의미와 이 천재의 삶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합니다.
 
 " 화가가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본보기로 삼으면 사원찮은 그림을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만인 자연 속의 소재들을 연구한다면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