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오마이뉴스 2006-10-11 구영식 기자

<마시멜로 이야기(이하 <마시멜로>)>를 실제 번역한 김아무개씨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에 따라 <마시멜로> 밀리언셀러 신화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3일 <오마이뉴스>의 확인 요청에 대해 "저는 이렇다저렇다 얘기할 처지에 있지 않다"고 말문을 닫았던 김씨는 11일 오후 "대리번역을 조건으로 제가 <마시멜로 이야기>를 번역했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국내외 대학·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일반기업에서 간부로 일했으며, 2000년부터 전문번역자로 활동해왔다.

김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8월 12일께 제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나간다는 조건을 달고 매절당(200자 원고지 1장당) 3500~4000원 선에 번역계약을 했다"며 "당시에는 번역자를 누구로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출판사 측에서) <마시멜로>가 저작권료를 많이 준 작품이어서 마케팅상 유명인사를 내세워야겠다는 얘기는 했다"며 "그래서 자기계발이나 성공학 쪽의 전문가를 내세울 거라 생각했는데 출판 직전에 번역자를 정지영 아나운서로 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밀리언셀러에는 정 아나운서 이미지가 큰 영향"

이어 김씨는 "대리번역을 비밀에 붙이기로 한 조항이 계약서에 있었다"며 "하지만 제가 번역을 맡기 전에 다른 번역가들에게도 대리번역을 제안한 적이 있어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의리나 신의 때문에 1년 동안 대리번역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있고 이제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얘기가 나오고 있어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김씨는 "번역경험이 없는 정 아나운서가 솔직하게 '잘 아는 전문번역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얘기했다면 더 아름답고 겸손하게 보이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또한 김씨는 "1만부나 나갈까 싶었지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용은 좋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마시멜로> 열풍에 대해 "정지영 아나운서 개인의 이미지가 (책 판매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정 아나운서를 내세운) 출판사의 마케팅이 성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씨는 "'사자와 가젤' 이야기를 감명깊게 읽었다는 독자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전에 출간된 경제경영서 등에 인용됐던 아프리카 속담이지 원저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가·대필작가 배려가 정착되어야"

또한 김씨는 "<마시멜로>의 판매가 폭발적이니까 다른 출판사에서도 이런 식의 대리번역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한 뒤 "이전에도 대리번역 관행은 있었지만 이것을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지는 않았다"며 "저도 불공정거래에 가담해 할 얘기가 없지만 대리번역은 독자를 기만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번역가들은 주로 번역학원이나 전문번역회사를 통해 입문을 하는데 거기에서는 십중팔구 대리번역부터 시작한다"며 "1~2년 매절당 700~800원 번역료로 부려먹는데 이것은 노예"라고 열악한 출판번역계의 현실을 성토했다.

그는 "번역료조차 제때 주지 않고 질질 끌다 중간에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며 "문제는 그런 번역학원이나 번역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중진번역가들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마시멜로>의 원저자도 도움을 받은 사람을 공저자의 이름에 넣었고, 헨리 포드도 자서전을 낼 때 대필작가의 이름을 올렸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배려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출판사도 형편이 어렵다 보니 무리한 마케팅을 하고 편법을 강요하는데 이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라며 "이러한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유지되면 진짜 좋은 책을 내겠다는 의지는 곤경에 빠지고 번역가들도 제대로 대우을 못 받는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김씨와의 전화인터뷰 전문이다.

"<마시멜로> 직접 번역했나?" "그렇다"

- <마시멜로>를 직접 번역했나?
"그렇다."

- 언제 번역을 의뢰받았나?
"지난해 8월 12일에 계약했으니까 8월 7·8일께 의뢰받았을 것이다. 원래 이 책이 미국에서는 그 해 9월 6일에 발간됐다. 국내에 출판되기 전이어서 원고 사본(하드 카피)를 받아서 번역했다."

- 언제 번역을 마쳤나?
"지난해 9월 5일께 넘긴 것 같다. 그 전에 출판사로부터 교정인쇄본(갤리판)을 받아서 원고에 변동된 내용이 있는지 검토했다."

- 어떤 조건으로 번역계약을 했나?
"매절당(원고 1장당) 3500∼4000원 선에 계약했다. 또 대역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제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나간다고 했다. 다만 제가 계약할 당시에는 누구로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번역자를 정지영 아나운서로 정했다는 얘기는 출판되기 직전에 들었다.

(정 아나운서 측에서는 출판사로부터 초벌번역된 원고를 건네받았다고 하는데) 초벌번역은 유명한 번역가가 문하생에게 시키는 것이다. 전문번역가가 번역한 걸 초벌번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 대리번역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것은 공공연한 업계 관행이다. 사실 처음엔 수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출판사측에서 '다른 번역가들에게 부탁했는데 해주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부탁을 했다.

<마시멜로>는 선인세(저작권료)를 많이 준 작품이다. 그래서 마케팅상 유명인사를 내세워야겠다는 얘기를 하더라. 당시에는 자기계발이나 성공학 쪽의 전문가를 내세울 거라 생각했다. 정지영 아나운서 얘기는 전혀 없었다. 그건 출판 직전에 나온 얘기였다."

- 대리번역은 비밀에 붙이기로 했다고 들었다.
"그런 조항이 계약서에 있다. 제가 대리번역을 맡기 전에 출판사에서 다른 번역가들에게도 대리번역을 제안했기 때문에 다 알고 있었다. 나 혼자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의리나 신의 때문에 1년 동안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다른 사람들 입을 통해 나오고 있어 저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출판되기 직전 번역자를 정지영 아나운서로 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조금 씁쓸했다."

"다른 출판사도 대리번역 기획... 독자기만, 불공정거래"

- 그런데 <마시멜로>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는데….
"제가 마지못해 했든 거래를 위해 했든 제가 하기로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얘기할 게 없다. 번역저작권은 매절로 넘겨줬지만, 저작인격권은 양도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관련된 판례가 없어 그것까지 포기한 처지니까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

다만 번역가들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이런 식의 대리번역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마시멜로> 판매가 폭발적이니까 그런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대리번역 관행이 있었지만 이것을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지는 않았다.

몇 군데에서 대리번역자를 구해 그런 식으로 책을 내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불공정거래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저도 거기에 가담했으니까 할 얘기가 없지만, 이것은 독자를 기만한 행위라고 본다."

- 지난 3일 기자와 통화할 때는 실제 번역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입을 열게 된 이유가 있나.
"그 때까지는 덮어두고 싶었다. 이제 와서 그 얘기를 꺼낸들 개인적으로 무슨 도움이 될까, 또 공연히 배가 아파서 그런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 봐 덮으려고 했다. 또 불법적인 약속이든 합법적인 약속이든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의리가 있었다.

하지만 며칠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왕에 얘기할 거면 말하고 끝내자고 생각했다."

"대리번역은 입문절차... 번역료조차 제때 안 준다"

- 출판계의 대리번역 관행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가.
"대리번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겐 입문절차라고 봐야 한다. 물론 어떤 경로를 통해서 입문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출판사에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처음부터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가는 번역학원이나 전문번역회사를 통해 입문한다. 거기에서는 십중팔구는 대리번역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번역학원이 상당히 많다.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을 수강료로 받고 출판 알선을 보장해준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번역료는 매절당 700~800원 준다. 그렇게 1∼2년 대리번역으로 부려 먹는다. 이건 노예다. 번역료조차도 제때 주지도 않고 책이 나와야 준다며 질질 끈다. 중간에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번역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중진번역가들이라는 점이다. 다음 카페에 가면 번역카페가 많이 있다. 회원이 1만명 이상 되는 카페가 가면 대리번역 등 피해사례를 엄청 많이 모을 수 있다."

- <마시멜로> 대리번역은 다른 대리번역과 좀 다르지 않나.
"일단 너무 팔렸다는 것이다. 몇천권 팔리고 말았다면 이슈가 안 됐을 것이다.

특히 번역가들이 분개한 대목은 정 아나운서가 '하룻밤에 100쪽을 번역했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게 아무리 쉬운 책이라고 해도 읽는 것하고 그걸 이해하고 우리말로 옮기고 다듬는 것은 다르다. 번역에서는 후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하루 100쪽을 번역했다고 하니까 분개한 것이다."

"번역가들, '하룻밤 100쪽 번역'에 분개했다"

- 그동안 정지영 아나운서가 실제 번역자로 행세해온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참 안타깝다. 제가 번역원고를 넘겨준 이후에 정 아나운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정 아나운서는 번역 경험이 없다. 오히려 떳떳하게 잘 아는 전문번역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얘기했다면 더 아름답고 겸손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마시멜로>의 원저자도 전문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공저자로 나와 있는 엘런 싱어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원작자는 그걸 책에서 스스럼없이 밝혔다. 헨리 포드도 자서전을 낼 때 자기 이름과 함께 대필작가 이름을 넣었다. 이러한 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정착되어야 한다. 그나마 요즘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있어서 번역자를 3명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 넘길 때 파일명을 '마시멜로 이야기'로 했고 이걸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파일명을 그렇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자는 원래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원래 있는 제목을 넣어준다. 제목은 출판사에서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 100만부가 판매된 후 출판사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은 적이 있나.
"없다."

"조잡한 <마시멜로>,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

- <마시멜로>의 내용은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이렇게 팔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1만부나 나갈까 싶었다. 원서의 문장력도 좀 그렇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도 좀 그렇고…. 편집자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윤문을 (많이) 했다."

- 밀리언셀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나?
"못했다.

서평들을 보면, '사자와 가젤'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얘기한다. '사자와 가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뛰어야 한다. 사자는 가젤을 잡아 먹기 위해, 가젤은 사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뛴다.' 이걸 감명깊게 읽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 얘기는 이전에 출간된 경제경영서 등에 인용됐던 아프리카 속담이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에도 인용된 내용이다. 이 얘기가 부각됐지만 이것은 원저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물론 지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 사람은 나중에 커서 성공한다는 내용은 좋다. 그렇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 참 조잡하다고 봤다."

- 그렇다면 왜 <마시멜로>가 밀리언셀러가 됐다고 생각하나?
"정지영 아나운서 개인의 이미지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정 아나운서를 번역자로 내세운) 출판사의 마케팅이 성공한 것이다. 정 아나운서의 팬들도 움직였고, 젊은층에도 먹혔다. 또 책 표지도 예쁘다. 내용보다 삽화가 더 좋다."

- 앞으로 대리번역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원천적으로 없어져야 한다. 사실 출판사도 어려운 형편이다. 어렵다 보니까 무리한 마케팅을 하고 편법을 강요한다. 이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다.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유지되면 '진짜 좋은 책을 내겠다'는 의지는 곤경에 빠진다. 번역가들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너도 나도 번역하겠다며 출판사에서 유명인사들을 내세우면 번역가들이 설 자리가 없다.

<다빈치 코드>도 오역이 있어 중간에 감수를 받아 감수자 이름을 올렸다. 그런 식으로 감수자를 넣어주어야 하지만, 이것도 마케팅 수법으로 이용된다면 문제다. 유명인사를 감수자로 끼워넣고 그에게 번역자보다 많은 대가를 준다. 당연히 번역자에게 가야 할 대가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행이 시정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영어의 경우 인력이 풍부하니까 출판사에서는 '너 아니라도 시킬 사람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요즘에는 출판사보다 먼저 아마존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메신저나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 어떤 비밀도 지켜질 수 없다. 그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마이뉴스 2006-09-26 안홍기 기자

'독서의 계절' 가을이 어김없이 닥쳤다. 독서의 계절이지만,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해서 집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기 좋은 계절이 가을이기도 하다.

가을엔 책읽기보다 놀러다니고 싶은 계절이라는 것은 '독서의 계절'임에도 책이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05년 한 해 동안 교보문고 전국 10개 매장의 책 판매량 통계를 보면, 독서량의 중요한 지표인 소설은 여름에 최고 판매량을 보였다가 가을철에 뚝 떨어지고, 다시 겨울에 들면서 상승 곡선을 그리는 걸 알 수 있다. 가을에 책을 많이 안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책을 많이 안읽는 가을이 언제부터 독서의 계절이 됐을까.

'가을에 독서하기 좋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등화가친(燈火可親)', 즉 '등불을 가까이 하기 좋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는 중국 당나라의 문학자이며 사상가인 한유(韓愈·768~824)가 그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기 위해 지어 보낸 시에서 등장한다.

그 내용은 '가을이 돼서 서늘하니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 책을 펴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가을보다는 겨울을 독서의 계절로 권하는 고사성어도 있다.

'독서삼여(讀書三餘)'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말로, 후한 말기의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가르침을 원하는 이들에게 겨울·밤·비오는 날 이 세가지 때를 책읽기 좋은 때로 권하면서 한 말이다. 농사일이 없는 틈틈이 책을 읽으라는 내용이다.

예로부터 고사성어를 통해 독서와 계절을 연관지어왔지만, 독서하는 인구가 일부 계급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가을하면 독서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사회적 영향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20년대에 도서관 무료공개 행사 등 가을 독서캠페인 본격 시작

▲ <동아일보> 1924년 9월 18일자에 실린 「신량은 독서계로」 기사.

문자를 해독하는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근대에 이르러 신문과 잡지에서 가을을 독서와 연관시킨 문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20년대부터다.

이돈화는 잡지 <개벽> 27호(1922년 9월 발행)에 게재된 「진리의 체험」이라는 논설에서 "新凉(신량 :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이제 郊墟(교허 : 마을의 들과 언덕)에 入(입 : 들어옴)하엿도다. 加히써 燈火(등화 : 등불)를 親(친:가까이)할 만한 시대가 왓다. 학교는 개학을 시작하고 書生(서생 : 공부하는 이)은 簡編(간편:책)을 捲舒(권서 : 책을 펴다)할 시절이 왓다"고 독서할 것을 권했다.

1924년 9월 18일자 <동아일보>에는 「신량(新凉)은 독서계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이 기사는 '가을이 되어 독서하기 좋다'는 내용과 함께 경성도서관 방문객에 대한 통계 및 이용현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1925년 10월 30일자 <조선일보> 「경성도서관에서 본 최근의 독서방향」이라는 기사 첫머리에는 "독서계절을 당하야"라고 기사 첫머리부터 가을을 '독서계절'로 정의했다. 당시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생각하는 풍조가 이미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기사에 이어지는 「각 도서관 무료공개」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다. 이 기사에는 '도서관주간'을 맞아 경성부립도서관과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무료공개 행사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독서를 장려하는 캠페인에 대한 홍보가 이뤄진 것이다.

이 기사가 나온 1925년은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문을 연 해이기도 하다. 총독부도서관은 이 해 가을에 서울에 있던 공공도서관들을 중심으로 '도서관협회'를 조직, 매년 가을에 도서관 무료공개와 같은 독서캠페인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1925년 10월 30일「최근 경성도서관의 독서방향. 법률과 정치사회의 열람이 증가 / 각 도서관 무료공개, 내월 1일부터 도서주간을 맞아」
<동아일보> 1925년 11월 15일 「서적대 일할증 폐지운동, 도서관협회에서 독서사상을 보급식히려고」
<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 「도서관주간, 경성부내 각 도서관이 일주일간 무료공개」


1927년부터는 '독서주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각 신문들은 매년 가을 독서주간에 열리는 독서캠페인에 대한 내용을 홍보하거나 독서를 장려하는 기사들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1927년 9월 7일 「가을철과 읽을 책의 선택」
<동아일보> 1928년 9월 28일「독서할 시절이 왔다. 눈 위생에 주의 가뎡에 볌연 못할 문뎨의 하나 독서」
<동아일보> 1929년 10월 30일 「낮은 짧고 밤은 길어간다. 독서에 친할 씨-슨은 이때가 한참이다」
<동아일보> 1929년 10월 30일 「<독서주간> 글 읽을 철은 왓다」


'문화통치' 도구이면서 '실력양성' 통로이기도 했던 독서

▲ <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자 「도서관주간, 경성부내 각 도서관이 일주일간 무료공개」기사.

그런데 이 독서주간이라는 행사는 미국에서 시작, 일본을 거쳐 식민지 조선에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1919년부터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는 취지로 '어린이 독서주간(Children's Book Week)을 시행했다.

당시 가장 선진적이라고 평가되던 미국의 도서관체제와 활동을 본받은 일본에서 독서주간이 시작됐고, 이것이 다시 식민지 조선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일제는 왜 식민지에서 독서캠페인을 벌였을까. 총독부도서관의 설립이 일제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평가되는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1920년대는 일제가 무단통치를 끝내고 문화통치를 표방했던 시기다. 출판되는 책들 거의가 다 일본어 서적인 상황에서 독서는 조선인을 일본말과 일본문화에 동화시키기 좋은 문화적 도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독서를 근대적인 지식과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실력양성의 도구로 보았고, 애국계몽운동의 차원에서 독서를 크게 권장했다.

1931년 <동아일보>는 <독서주간>이라는 면을 신설, 한 해 동안 매주 1면을 독서를 권하는 내용으로 채울 정도였다. 당시 매일 4면을 발행하던 <동아일보>였으니, 당시 독서보급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의 <독서주간> 면은 세계의 철학·사상·문학 등 각 분야의 명저를 소개하고 조선 고전해설, 독서와 관련 격언 등 단순히 독서보급뿐 아니라 양서보급에도 앞장섰다.

이뿐 아니라 <동아일보>는 각 지역의 독서회 창립소식을 거의 빼놓지 않고 꾸준히 게재, 독서보급에 대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 <동아일보> 1931년 2월9일 4면 <독서주간>면 일부.

해방 뒤 독서주간 중단돼도 신문지상 가을 독서캠페인은 계속

이후부터 '가을=독서의 계절'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기사는 매년 가을만 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됐다.

해방을 맞아 <독서주간>은 잠시 명맥이 끊겼지만 신문을 통한 가을 독서캠페인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1955년에는 정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다시 가을 독서주간 행사를 시작했고, 현재는 '독서의 달'로 운영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 전 ‘다빈치 코드’ 라는 영화로 인해, 한 동안 온 나라가 떠들 썩 한 적이 있었다. 영화 ‘다빈치 코드’는 댄 브라운의 소설인 ‘다빈치 코드’가 원작이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이 책의 성공이후 실제 있었던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시킨 이른바 ‘팩선’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국내 문학계에도 ‘불멸의 이순신’ 이후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쳐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가 부쩍 늘고 있다.

이러한 ‘팩선’ 바람에 불을 댕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김탁환 소설가 이다. ‘방각본 살인사건’, ‘불멸의 이순신’ 등이 그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는 ‘리심’으로 이 가을에 역사소설의 바람을 또 다시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소설 ‘리심’은 조선말의 궁중의 무희로 1887년 초대 외교관으로 조선에 온 프랑스인 콜랭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외교관 콜랭을 따라 프랑스로 간 그녀는 조선 여인 최초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경험하고 개화기 근대여성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그녀는 조선사회의 봉건적인 억압에 끝내 못 이기고 자살하게 된다. 그러면서 조선말의 역사에 대한 재조명과 더불어 그 당시의 세계정세에 대해 심도 있게 파헤친다.

그는 KBS와 인터뷰에서 “리심의 삶이 굉장히 비운의 자살로 끝나기 때문에 이것이 개화기를 지나면서 조선의 망국과 겹쳐 상징적인 효과가 있다고 봤습니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 외교관이 쓴 리심에 대한 4쪽짜리 기록을 토대로 천 쪽 분량의 역사소설을 만들어냈다. 리심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6개월에 걸쳐 일본과 유럽, 모로코를 탐방하고 3년 넘게 치밀한 조사를 벌였다. 또한 그는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구해서 쌓아 놓으면 검은 구멍들이 생기거든요. 그 검은 구멍들을 작가 상상력으로 메워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전했다.

또 한명의 ‘팩션’ 작가로는 소설 ‘능소화’의 조두진 소설가 이다. 소설 ‘능소화’는 얼마 전 발굴작업으로 밝혀진 ‘한 여인내의 편지’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남자의 미라와 함께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 4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편지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편지에는 죽은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배어 있는 아내의 감정이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요즘 현대인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소설은 편지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조선시대 부부와 가족의 사랑을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그려냈다’고 밝혔다.
조두진 작가는 KBS와 인터뷰에서 "여필종부라는 의미는 우리가 알고 의미와는 다릅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그런 사람을 잃어야 했던 고통들....가장 큰 가치는 역시 사랑인겁니다.”라고, 주장했다.

안방극장에 ‘고구려 역사 바람’ 열풍이 불고 있는 사이 출판계에도 '역사 소설'이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역사소설에는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풍부한 상상력이 더 해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팩션’ 바람에 대해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다빈치코드의 성공 이후 부족한 소설의 소재를 역사적 사실에 찾으려는 국내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사 바로 알기와 숨겨진 에피소드의 부활, 새로운 해석이 바탕이 된 ‘팩션’이 우리 문학계의 희망이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데일리안 2006-09-30 김영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일보]

이번 주 출판계에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표적 출판사 중 하나인 김영사가 지난달 하순 출간한 ‘조선의 재산상속 풍경’(이기담 지음)이 역사학자 문숙자 박사(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경인문화사·2004년 출간)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출판사가 책을 전량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경인문화사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씨 책의 본문 204쪽 중 50여 쪽에 이르는 내용이 문 박사의 저서와 95% 이상 동일하고, 나머지 중에서도 50쪽 이상이 문 박사 저서의 내용을 축약해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영사와 이씨는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후 조치에 들어갔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사는 9월 초 문 박사로부터 문제 제기가 있은 후 이씨의 책을 출고 정지하고 이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회수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저자 이씨 역시 사과의 뜻을 전하기 위해 문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숙자 박사는 ‘4대 일간지에 사과문 게재’등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사태는 결말이 어떻게 나는 지와 관계 없이 지식사회의 ‘표절’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동안 학계에서 부분적인 표절 논란은 가끔 있었지만 대중서에서 이렇게 통째로 베끼다시피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역사소설가인 이씨는 문 박사의 학위 논문을 비롯한 여러 논문을 참고문헌 중 일부로만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대중적인 저술가가 전문학자의 연구성과를 집필에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지켜야 할 금도와 방법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번처럼 머리말이나 본문 어디에도 제대로 된 전거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은 앞으로 대중서 집필자들이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선민 출판팀장 [ smlee.chosun.com]) 조선일보 2006-09-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국민일보 2006-09-18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 중 하나인 김영사가 지난달 말 출간한 ‘조선의 재산 상속 풍경’이 표절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사는 출간 이틀 만에 이 책을 전량 회수했다.

학술 전문 출판사 경인문화사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선의 재산 상속 풍경’은 문숙자 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처음 발표하고 경인문화사가 2004년 11월 단행본으로 발행한 ‘조선시대 재산 상속과 가족’의 핵심 내용을 무단 절취하고 도용했다”고 주장하고 52군데의 표절 부분을 공개했다.

경인문화사측은 “문 박사의 저서와 논문은 500여편의 조선시대 분재기(재산을 나눈 기록)를 10여년에 걸쳐 분석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라며 “‘조선의 재산 상속 풍경’의 전체 204페이지 가운데 50여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토씨나 접속사 등을 바꾸는 변화만 주었을 뿐 문장의 표현 방식조차 문 박사의 논문이나 저서와 95% 이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김영사는 책 출간 직후 문 박사와 경인문화사로부터 표절이라는 주장을 듣고 서점에 배포된 2000권을 전부 회수했다. 그러나 출간 당시엔 표절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신은영 김영사 실장은 “책을 내고 나서 표절 사실을 알았고 곧바로 전량을 회수했다”면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의 경우 일반 편집자들이 표절 여부를 잡아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신 실장은 또 “저자 이기담씨가 문 박사를 여러 번 찾아가 표절에 대해 사과했다”며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 역사소설가라서 그런지 이 정도의 인용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줄 몰랐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문 박사의 논문을 참고문헌 목록에 수록했으나 각 페이지마다 달아야 하는 각주를 생략했다.

문 박사와 경인문화사 측은 이씨와 김영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검토 중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