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성희] 줌데렐라
고혜정 지음, 추수밭
"당신 몸매는 완전히 연예인 수준이야." TV를 보던 남편이 한마디 던집니다.
"정말? 누굴 닮은 것 같애?" 설마 하면서도 마음이 뿌듯해진 아내가 확인을 하려듭니다.
"응, 텔레토비를 그대로 닮았어. 흐흐흐." 농담 아닌 농담은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그뿐인가요. 신경 써서 화장하고 나섰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불을 지릅니다.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구나. 분장. 그러다 분장이 아니라 변장을 하겠다"라고. 이건 인격 모욕입니다.
이건 약과입니다. 서러운 꼴도 겪습니다. 학부모회의라도 다녀온 아내는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안을 치우랴, 저녁준비 하랴 핑핑 돌아갑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남편, "당신은 만날 집에서 뭐하기에 집안 꼴이 이래?"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세상 모든 부부가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만 아줌마가 된 후 한두 번이라도 속 터지고, 한숨 지어보지 않은 이도 없을 겁니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척 보면 책의 내용이 짐작될 겁니다.
'줌데렐라'는 아줌마와 신데렐라를 합한 조어(造語)입니다. 재투성이의 신데렐라가 왕자가 반할 정도로 변신하듯이 아줌마들의 화려한 비상(飛翔)을 위한 도움말을 담았습니다.
우선 잘 먹고 잘 쓰면서 멋지게 사는 여자, 그게 바로 줌데렐라랍니다. 아끼고 아끼며 살다가 나중에 무슨 일 당하고서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데…"라고 울부짖어 봤자 억울한 건 자신밖에 없다네요. 나중에 자식을 키운 뒤 혹시 속이라도 상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울고불고하는 것 역시 줌데렐라로선 있을 수 없는 얘기랍니다.
우선 아줌마가 꿈꾸는 14가지 판타지를 꼽습니다. 무쇠 같은 건강, 수퍼맨 같은 남편, 쥐도 새도 모르는 비자금, 나만 바라보는 돌쇠, 스트레스 없는 시댁, 내 마음대로 커 주는 자식, 잘나가는 형제 등등. 정말 이것들만 이뤄지면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는 방법을 귀띔합니다. 사실 뜯어보면 쉽고도 어려운 처방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아껴 자기만의 세계, 생활, 비자금 통장을 일구라는 식이니까요.
이 책의 미덕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방송작가인 지은이가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콕콕 집어내 비트는 글을 읽는 맛이 그만입니다. 또 하나 쓸모가 있습니다. 남편의 눈길이 닿을 만한 곳에 이 책을 슬그머니 놓아두는 겁니다. 책 머리에 '아내를 아프게 하는 말' 38가지가 나오는데 남편에게 이것만 읽혀도 책값은 충분히 뽑을 겁니다. '당신도 돈 벌어 봐' '가만히나 있어' 등에 뜨끔해진 남편이 입조심이라도 하면 그게 어딘가요.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중앙일보 200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