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1 - 돌 원숭이 손오공 문지 푸른 문학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김종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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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자랑스러운 책 읽기는 은하영웅전설 완독과 서유기 완독이다. 

은하영웅전설은 스무 살 때 절친의 매우 강력한 권유가 있은 지 20년만에 읽은 책이었고, 

영화가 개봉된다니 반갑다. 양웬리의 캐릭터 이외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책이다. 

일본 만화책 <쿠니미츠의 政>처럼 보여주려는 주제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편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유기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즐독하는 한 젊은 작가가 극력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 

내 가벼운 귀는 독서에 도움이 된다. 

서유기 10권은 내 인생책이 되었다. 

수백년 동안 집단창작했던 오래된 이야기를 괴테 같은 괴력의 작가 오승은이 독창적으로 재창조했고, 

삼장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텍스트와의 전쟁에서 정본으로 살아남았다는 점과, 

예전에 읽으려고 했던 이탁오가 깊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탁오의 책을 자꾸 미뤄뒀는데 <서유기>를 읽고 나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분서>는 1권만 사뒀는데 이제 2권도 구해서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그렇게도 비난했던 작품과 극작 기법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이보다 통쾌하게 걷어찬 오승은 서유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손오공을 위시한 진보적이고 건강한 민중이 툭하면 여래부처와 관세음보살을 소환해 문제를 해결하고 멈출 수 없는 독설과 조롱은 도무지 성역이 없다. 불교철학과 도교철학의 본의가 건강한 민중성과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작품 중 서유기보다 강력한 것은 못 보았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정치와 역사를 끌고 왔던 독서인층과 기득권, 권력자들을 삼장-국왕-관리-각종 기득권층 덩어리로 묶어 '위대한 서천행'에서 나름대로의 구실을 인정하고 있기에 서유기는 당대의 모든 계급과 주체를 망라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조리 성장한다. 


서유기가 다른 성장소설에 비해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부분은 '모든 것의 성장'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도가 한 자 커지면 마는 열 자 커진다"는 서유기 퀘스트의 작동 원리는 요괴도 성장하고 문제도 성장한다는 점을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읽은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주인공만 성장하거나 일부분만 성장하는 데 비해, 서유기는 악도 성장한다. 점점 고도의 스테이지로 옮기며 투쟁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전자오락 게임을 연상시킨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서유기의 플롯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여러 작품들은 서유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지적인 토양이 서유기를 철저히 배격하는 방식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서유기가 나의 인생독서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제까지의 독서흐름에서 잡히지 않았던 매우 넓고 역동적인 공간에 나는 드디어 로그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유기는 그 공간의 인증키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일단 서유기와 인사는 했으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지지고 볶고 우려먹고 해야겠다. 



"젊으신 도련님이라 세상일에 철이 덜 드셨군! 도둑질하는 놈이 밝은 대낮에 손대는 것을 어디서 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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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컨티뉴엄 리더스 가이드
J. 토마스 쿡 지음, 김익현 옮김 / 서광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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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읽기에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신의 한 수! 질문을 제시하고 글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신의 두 수! 에티카가 더 선명하게 이해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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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17-02-27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책에 아무도 댓글을 안 달아서요~~ 종종 출몰할게요^^

여울 2017-03-0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아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ㅎㅎ 자주 뵜으면 싶어요
 

그리스신화를 보면 사람은 원래 남녀가 자웅동체였다고 한다. 사람이 강력한 힘으로 신에게 도전하자 제우스가 진노해 벼락으로 내리치니 사람은 둘로 갈라져 버렸다. 남과 여로 나눠져서 반쪽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날 이후로 사람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헤매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미완성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다. 동양의 고대에도 태극(太極)에서 음양이 나뉘었다고 말한다. 동양 고대인이 생각한 사람의 운명은 서양 사람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머지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반쪽이 만나는 식이다. "0은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노자의 <도덕경>의 말처럼 음과 양이 결합해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방식이다. 이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짝이 없을 때는 짝을 찾고(서양), 짝을 찾고 나면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동양) 


나는 이 두 이야기가 결합된 방식이 인생을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자신의 나머지를 찾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의 연속이다. 오랜 방황을 통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두 아이를 낳은 평범한 이야기에서도 동서양 고대의 사고가 녹아 있다. 문제는 이야기가 무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아이의 세계 속에서 부모의 반쪽을 찾고, 아이 역시 자신의 반쪽을 부모에게서 찾는 작업을 계속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는 자기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낳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자로 표현해 보자. 아이는 '人'이고 부모는 '亻'이다 '亻'은 사람인 변(邊)이다. 부모는 아이 옆에서 아이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부모가 도우미 역할을 온전히 하고,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을 잘 해내면 드디어 '化'(화)라는 글자가 된다. 化는 왼쪽과 오른쪽에 사람이 대칭이 되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사람의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바뀌다'는 뜻을 나타낸다. 부모와 아이가 온전히 결합되고 나면 부모는 이전의 부모가 아니고, 아이 역시 이전의 아이가 아니다. 


化가 되기 위해서 부모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좋은 변화만 열거해 본다. 부모(亻)는 아이에게 애정과 '타인'과의 관계를 가르쳐 인(仁)을 만들 수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놓이려면 자신의 반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상대방을 초대해야 한다. 자기중시으로 꽉 차 있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공감할 능력을 가르쳐주려면 亻의 역할이 필요하다. 亻는 아이의 부모이지만, 아이에게는 최초의 '타인'이다. '他'(타)를 가르쳐주는 것도 역시 부모다. 


동양사람이 생각하기에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고해(苦海)라고 부르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움직이는 순간 길흉화복과 삶의 번거로움이 생긴다. 아이는 부모에 비해서 훨씬 활동적이고 많이 움직이며, 감정 역시 역동적이기에 부모보다 훨씬 많이 지치고 상처를 받는다. 부모는 아이가 기대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休'(쉴 휴)를 준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집착하면 '쉼'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어쩌면 '쉼'일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태어나서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사회활동을 하고, 심지어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 사회가 시작된다. 부모는 아이의 반(半) 사회이다. 아이가 자신의 '짝'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는 '伴'(짝 반)이 되어 주어야 한다. 반(半)은 단순한 절반을 의미하지만, '伴'은 '좋은 반쪽'을 의미한다. 부모라고 당장 아이의 좋은 반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좋은 반쪽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일 뿐이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몸을 구부려 있다가 태어나는 순간 몸을 펼친다. 하지만 감정은 계속 구부린 상태가 된다. 부모와 대화하거나 놀거나 생활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伸'(펼 신)의 상태로 된다. 자벌레는 멀리 가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구부린다. 몸을 펼친다는 것은 고통이 따를 뿐만 아니라 두려운 일이다. 조금씩 연습하다가 펼쳐낼 때까지는 수만번의 연습과 시행착오를 한다. 부모는 아이가 틀리거나 실수하는 순간을 함께 하며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도와줘야 한다. 


부모의 품에 있던 아이가 품 밖으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앉게 된다. 꾀꼬리가 꾀꼴 꾀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까닭은 자신이 머물 자리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자신의 둥지를 찾기 위해 꾀꼬리는 수만번의 날갯짓과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한다. 부모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려면 또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모(亻)가 아이를 서게(立) 만들면 아이는 자신의 '位'(자리 위)에 머물 수 있다. 자신의 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한자의 세계는 너무 많고 쓸 자리는 부족하니 이쯤에서 줄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부모가  '亻'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지만  '亻'이란 사실 '人'을 옆으로 밀고 모양을 구부린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제 자리를 잡은 것이 '亻'이다. 이렇게 제 자리를 찾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亻'을 고집하다가 '人'을 잊어버린 부모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人'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부모도 있다. 내가 아이와 책 놀이를 하다가 부모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이기도 하다. 나도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 부모이기에 매일 헷갈리는 일이다. 헷갈리고 실수하고 그르치면서 후회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이것 역시 부모가 아이를 완성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은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한자에는 왼쪽을 나타내는 左도 '돕다'는 의미이며, 오른쪽을 나타내는 右도 돕다는 의미이다. 부모는 아이의 왼쪽에서 도와주기에 佐(좌)하는 사람이고, 오른쪽에서 도와주기에 佑(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잠시 물러나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에 '何'(어찌 하)하는 사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글자 중에서 '何'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말을 덧붙인다. 


"어쩌면 좋지(如之何) 어쩌면 좋지(如之何) 하고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이 사람을 도저히 어찌 해야 할지 끝내 알지 못하겠다."(논어 위령공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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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김상곤 교육이 민생이다 - 엄마 기자가 묻고 교육감이 답하다
김상곤.김은남 지음 / 시사IN북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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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하나 하나가 맘에 안 드는 책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며 장안의 화제가 된 인물, 아니 이미 화제였던 인물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3월 5일 교육감직을 사퇴)의 인터뷰집 <교육이 민생이다>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창 유행하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안 들어"가 생각난다.


'뚜벅뚜벅'이란 타이틀 수식어를 표현하려고 했는지 김상곤 교육감의 조그만 사진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부담스럽다. 


"엄마 기자가 묻고 교육감이 답하다"는 부제 역시 주간지 책소개 란에는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책의 표지 카피로는 낯설다. 시사주간지를 모태로 하는 출판사의 타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엄마 기자가 묻고 아빠 교육감이 답하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어보고 든 생각이지만 <뚜벅뚜벅 김상곤, 교육이 민생이다>(이하 <교육이 민생이다>로 표기)라는 제목도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흡족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책이 나온 시점과 상황도 묘하다. 김 교육감이 교육감 재선을 한다면 자연스럽겠지만, 이미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마당에 교육 이야기는 오히려 경기도지사 선거의 전선을 편협하게 몰고 갈 위험마저 있지 않을까? 


누리꾼들의 반응은 어떤지 4대 인터넷서점을 뒤져 봤다. 일단 리뷰는 한 개도 없었고, 한 인터넷 서점의 100자 평이 다행히도 한 개 있었다. 


김상곤 교육감님의 평소 교육철학을 존경해서 구입했습니다. 교육계에 이런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네요.


아무리 출간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동안 김 교육감이 보여준 정책과 흔적들이 있을 텐데,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잡고 정독하면서 읽었다. 펜을 들고 몇 부분을 베껴 적었는데, 베껴 적을 구절이 참 많았다. 다 읽고 나서는 김상곤 교육감이 왜 경기도지사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교육이 민생이다>는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사교육 출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김상곤 교육감


사교육 업체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며 초·중·고등학생 논술 강의와 대입 적성고사 교재 제작, 입시 컨설팅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했었다. 대치동에서도 유명한 학원에서 시골 촌놈인 나를 뽑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사님이 '한문 실력과 동양 고전 능력'을 합격 이유로 설명하셨다. 


그 이후로도 동양고전 능력은 내 진로의 도우미 역할을 했는데, 어줍잖은 글솜씨와 철학 소양 덕분인지 회사 대표 컨설턴트의 중앙 일간지 칼럼을 손봐주기도 하고, 아예 코너를 대필하기도 하면서 어느덧 대치동 사교육의 중심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때 들고 나온 과제가 몇 가지가 되는데, 그 중에서 10년이 넘도록 고민하고 고민하는 주제가 바로 사교육 업체가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공포 마케팅'이었다. 지금은 공포 마케팅 분야가 훨씬 더 진화되고 강력해졌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문제는 선량한 학부모가 사교육계의 공포 마케팅을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을 만나면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나고 대답이 궁색해진다. 공교육도 정부 정책도 부모님의 육아 철학도 지난 10년 동안 헛발질만 거듭해오고 발전된 게 없는 데 비해,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은 하루가 다르게 규모를 키웠기 때문에 이미 '깜'이 안 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김 교육감이 이 문제를 정확히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학원이 가장 잘하는 게 불안감을 자극하는 겁니다. 사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고 믿는 부모와 학생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착시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불안을 이용한 학원의 겁주기 마케팅 전략에 넘어갔기 때문이죠. "다른 애들은 다 하고 있어요." 이 한마디면 부모건 아이건 다 끌려들어가게 돼 있다는 겁니다. 영어학원 같은 데 처음 가 테스트를 받게 되면 영어를 멀쩡하게 잘하던 아이들도 최하위급 점수를 받곤 합니다. 그래야 부모들이 더 학원에 매달리게 될 테니까요. - <교육이 민생이다>, 223쪽


마치 사교육 업계에서 근무해본 사람처럼 그 쪽의 생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사교육 업체의 입장에서 교육청이나 대학, 정부는 사실 적수가 못 된다. 오랫동안 공고히 다져 놓은 사교육 카르텔에 감히 도전하는 정권도 없을 뿐 아니라 부모와 대학, 기업 등의 이해관계는 사교육 친화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이익'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옆집 아이보다 1점이라도 더 잘 받아야 한다. 그럼 옆집 아이는 가만히 있을까? 자연스럽게 죄수의 딜레마가 만들어지고, 그 혜택을 사교육 업체가 두둑히 챙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교육 철학을 세워서 당사자들을 설득하면서 확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김상곤 교육감은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여전히 교육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을 통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가 자녀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죠. 이 때문에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던지곤 합니다. - 같은 책, 217쪽


이제 <교육이 민생이다>라는 책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이 책은 현직 교육감의 의정보고서가 아니다. 김상곤 교육감은 교육 전공의 교수도 아니다. 경영학과 출신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수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교육감 후보로 추천받고 두 번이나 당선돼 경기도교육청을 6년이나 이끌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전형적인 자기실현자 스타일이다. 


나보다 선이 굵거나 인격이 좋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하거나 얘기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기대게 된다는 사실을. 김상곤 교육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교육감'이라는 언어를 통해 표현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 나는 끽해야 10년 남짓 고민했지만, 김 교육감은 40년은 충분히 고민했다는 것이 책의 내용 안에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는 교육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이라면 모두 평생 붙들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언어가 달라진다면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요컨대 <교육이 민생이다>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들을 현장의 목소리로 드러낸 다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와 대결을 펼쳤는지를 정책과 현실을 통해서 표현한다. 교수 출신 답게 해결된 과제와 미해결된 과제를 구분하고 마치 완성도 높은 논문처럼 인터뷰집을 구성했다. 만약 당신이 한국 교육의 가장 중요하고 최신의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자 한다면 <교육이 민생이다>를 읽어야 한다. 



두 저자에 대한 추억


김상곤 교육감과 같은 지역구인 경기도 주민으로서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우연히 현실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나는 젊은 열정으로 투표 독려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티셔츠를 하나 만들어서 당시 김 교육감 후보에게 입으라고 했더니 그가 진짜 입었다. 보좌진들과 미니벤을 타고 경기도의 한 시장에서 포즈를 취해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당시 야권단일화 작업이 지지부진해 이를 패러디한 '티셔츠 단일화'를 했었다. 


그때 보았던 김 교육감은 마냥 착해 보이는 아저씨, 그런데 재미는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티셔츠를 입으라면 입고 벗으라면 벗고, 브이(V)를 하라면 브이를 하고, 미소를 지으라면 어색하게 미소를 짜냈다. 사진이 잘 나오기 위해서 볕 잘 드는 곳에 가서 찍을 수도 있고, 표정이나 포즈를 스스로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고분고분하기만 하니 선거를 이길 수 있을까 내심 걱정까지 했을 정도다. 


그때의 인상이 남아 있던 차에 '김상곤의 책'이 나왔을 때 나는 기대를 했다. 자랑도 없고 과장도 없고 세련되게 포장하는 것도 없는 그의 성품이 책으로 표현된다면 독서의 맛이 무척 흡족할 것이다. 실제로 읽어본 느낌도 그와 같았다. 


<교육이 민생이다>를 읽다 보면 김 교육감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을 것이다. 


'마을이 학교이고, 학교가 마을이다'라는 모토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지방도시에서 자랐는데, 저 어릴 적만 해도 학교 운동회에 동네 어른들이 오시곤 했어요. 학교 다니는 자녀나 손주가 없어도 마실 삼아 학교에 와 동네 아이들 크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이런 걸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같은 책, 225쪽


김은남 기자는 <시사인>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는 선임기자를 하고 있다. 김 기자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소설가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시사저널> 편집국장(시사저널 기자들이 편집권을 되찾기 위한 파업을 1년 넘게 한 끝에 창간한 매체가 <시사인>이다)을 할 때의 일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찬양 기사를 썼던 어두웠던 역사를 드디어 밝힐 때가 되었다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김훈의 '특명'을 받은 사람이 바로 김은남 기자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 유난히 찬양 기사를 많이 썼던 기자는 바로 <한국일보> 김훈 기자였다. 그러니까 김훈 국장이 자신을 내리칠 칼을 쥐어준 사람이 바로 김은남 기자다(김훈 작가와 김은남 기자에 관한 이야기는 <시사IN> 기자들이 함께 쓴 책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에 자세히 실려 있다).


언론운동을 잠시 하면서 지분거리에서 김은남 기자를 엿볼 수 있었는데, 그녀 역시 재밌는 사람은 못 되었던 것 같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바른 소리, 상식이다. 말을 묘하게 비틀어서 하는 법이 없다.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김은남은 여자 김상곤이고, 김상곤은 남자 김은남이랄까? 


경기도육청 공보관이 책을 준비하며 김상곤 교육감을 인터뷰할 사람으로 맨 처음 떠오른 인물이 김은남 기자였다는 머리말 내용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사람 느낌은 다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저자 모두 다른 것은 몰라도 속은 알찬 사람이니 책이 주인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은남 기자가 낸 책을 꼭 보고 싶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김 기자는 기사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생활 기사'라고 불릴 수 있는 이 기사의 형태는 예컨대 대형 유통점 물품 가격과 재래시장 물품 가격을 서캐훑이해서 유통점이 결코 싸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생활인 입장에서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기사가 김은남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나왔다. 이것이 내가 본 두 저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저자에 대한 사사로운 마음이 묻어 버렸다. 그렇지만 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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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퓨징 - 분노 해소의 기술
조셉 슈랜드 & 리 디바인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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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은 사람들은 호평 일색인 책


근래에 읽었던 과학 교양 서적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책을 꼽으라면 <디퓨징>을 선택하겠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아포리즘' 수준의 명언을 엄청나게 많이 구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단어를 말하는 방식은 단어 자체만큼 힘이 있다. (259쪽)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늘 이긴다. (269쪽)


이 책을 함께 읽은  "의학적인 이론 지식을 나름 쉽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마음에 들어요."라는 평가처럼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호평 일색이었다. 나 스스로도 <디퓨징>에 대해서는 마치 편애하는 것처럼 칭찬만을 해서 민망했지만 독서 반응들을 보면서 그렇게 민망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 까닭은 비판할 거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들과 친해지고 싶은 과학자의 진정성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로 하여금 무척 호감을 원인 중의 하나로는 '성숙함'일 것이다. '분노'나 '감정'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책들, 특히 심리학 책들은 마치 외과치료처럼 '제거'만 생각했지 중요한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분노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존중받지 못하고 배반당한 에너지다. 따라서 분노라는 에너지를 회피하거나 제거하면 나의 에너지를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 나와 함께 이 책을 읽었던 친구들 역시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무척 중시했다. 마태호 씨는 책에 나온 "인간에 대한 존중이 답이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영헌 씨도 "존중은 바로 이 책의 저자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족관계에 도움이 되는 책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이 책은 무척 유용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 것 아닌 것에 아이가 통곡하거나 분노하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심하다 싶으면 아이를 잡기도 한다. '심하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될 사안에 대해서 오버할 때 쓸 수 있지만, 아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도 될 경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별것 아닌 잠난감 때문에 짜증 부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다른 눈에는 아이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에 왜 그토록 화를 내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그 장난감이 대단히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66쪽)


<디퓨징>의 조언에 따르면 어른의 눈으로 보면 별 것 아닌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어른의 눈을 버리고 아이의 눈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공감을 얻고 아이의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일을 잊어버리듯, 어른들도 어릴 적의 감정이나 상황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어른도 역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처지를 고려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주의를 벗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되는 일을 어려워하고, 애를 써야만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이 어려운 것 같다. 어른들이야 변연계와 전전두엽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아이들에게 변연계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는 사실만 알아도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전전두엽은 어른에 비해 덜 발달되었고, 변연계의 지배를 받는 감정적 뇌가 더 우세하다. 신생아는 뇌간과 변연계를 모두 갖추고 태어나므로. 태어나서 몇 시간이면 화를 느낄 수 있다. 배고픈 아기는 배고픔과 불편함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화가 난다. 그러면 아기는 운다. (67쪽)


"내가 화를 내지 않으면 상대방이 화를 낼 가능성도 낮아진다."(168쪽)의 구절을 읽고 아내와의 싸움을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고마운 점이다. 포커 게임에 비유하자면 아내가 바가지를 긁거나 화를 내는 것은 베팅을 한 것이다. 그 다음 나의 선택에 따라서 판돈과 싸움의 규모가 커질 수 있다. 하루는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나는 점퍼를 챙기고 바람 좀 쐬고 온다고 말하고선 집을 나섰다. 빠른 속도로 돌던 감정이 조금씩 천천히 가면서 객관적으로 나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화낼 만한 일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미치자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도 아까의 상황이 미안했는지 좋게 넘어갔다. 첫째 민준이(6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나는 화를 내는 대신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결국 화를 키우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싸움이 커지는 상황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떤 지식이든 실생활에 적용하려는 나의 의지도 있지만, <디퓨징>의 저자가 논리적이고 접근성 좋게 글을 써 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의 행동을 바꾸었고, 그 덕분에 불행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준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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