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제가 뭐라고 대답할지 알아요? 상관없다고 할 거예요. 이건 내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을 누릴 자격이 있고, 이게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 P206

시간이 지나면 그걸 분명 극복할 수있을 거야. 하지만 너무 금세 극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클러크가 비명을 질렀잖아. 아프다고. 나는 네가 나와의 이별을 극복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비명이 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자는멕시코에서 그 아이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아파해도 자업자득이었을 거야. 자기 아들에게,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저지른 짓도 있잖니. 하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면, 나아가고 있는 내 옆구리의 상처처럼 작은 고통이 아니라 결정타를 날리면 흉터가 남거든. 몸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지. 사소한 게 아니니까. - P378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녀는 다시 말을 하다 말고 멈추고, 재킷 소매로 눈을 훔친다. 이곳은 춥다. 하지만 섬세한 정적이 흐른다. 까마귀들마저잠든 아주 이른 시각이다.
"그걸 하는 동안에는요. 그러니까.………." 그녀는 머뭇거린다. 그 단어를 말하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슬픈 걸 잊을 수있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잊을 수 있었어요. 여기가 어딘지 잊을 수 있었어요..... - P4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소개를 보면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분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서 사진기자가 되어 미국의 주류 언론사에서 활동하셨다. 평생을 사진기자로 살면서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받으셨다고 하니 사진이 좋을 것은 뭐 말하나 마나이다. 특히 제주 화산섬 사진과 고라니가 뛰어가는 고령 가야고분군 사진은 압권이었다. 


저자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와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문화에 관심있는 외국인에게 알리고 싶다는 의도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필요한 일이고 훌륭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도에 따라서 본문은 영어와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영어와 한국어가 같은 내용은 아니고, 영어로는 해당 문화재나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고, 한국어 문장에서는 좀 더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어는 대충 읽다가 일단 기본적인 소개가 주를 이루고 거기다 짧은 영어로 번역기 돌려가며 보는것도 귀찮아서 몇개 보다가 그냥 다 패스하고 한국어에 집중했다. 


그런데 해외교포라는 저자의 위치와 함께 이런 종류의 글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글의 내용들이 아쉬움이 많았다. 이 책이 사진과 만듦새의 훌륭함으로 인해 정말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보류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맘이 들기까지..... 일단 생각의 차이로 넘길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세상에는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문화에서 약간의 국뽕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정말 많으니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술서도 아닌 이 책에 과한 비판이 되리라......


다만 한국어 소개 글의 내용 중 오류와 맥락상 틀리게 읽힐 부분이나 비교가 잘못된 부분, 검증되지 않은 것들 등은 다음 인쇄에서는 꼭 고쳐서 다시 쓰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저자가 이렇게 썼더라도 이 분이 외국에서 오래 사신 분임을 감안하면 편집자가 찾아내서 저자와 의논해서 수정 했어야 되지 않나 싶은데 아닌가? 이 책을 펴낸 출판사가 작은 출판사도 아니던데 말이다. 


1. 중국 남조 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남제서>에 백제 동성왕이 선비족을 크게 무찌르고 중국 허베이성, 산둥성, 장쑤성, 황해 유역에 여러 왕을 임명했다는 기록, 2백제 멸망 후 백제의 난민들과 귀족들이 왜로 건너가 정착하고서 '일본'으로 국호를 정해 불렀다는 기록 등은 3. 백제가 아시아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동아시아의 많은 제후국과 교류하면서 융성하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해양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 25쪽


과거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많지만 현대의 우리가 그 모든 기록을 다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어떤 역사서든 그것을 쓴 사람의 어떤 의도, 역사관, 당대의 상황이 반영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과장이나 의도적 비의도적 왜곡, 입증되지 않은 소문을 그대로 사실인양 기록한 것 들 등이 횡행하는 것이 역사기록이다. 따라서 현대의 역사가들은 그런 기록들을 당대의 다른 역사서, 실제 상황이나 세력들의 역관계, 사회상황등을 고려하며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제야 사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기록 하나가 나오면 무조건 그것을 숭배하면서 봐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이걸 무시하는 주류 역사학자라는 놈들은 전부 매국노, 친일파일세 저격하기 바쁘지만 어쩌겠는가? 아닌 건 아닌거다.


밑줄친 1번부터 말하면 <남제서>라는 책에 실린 기록은 사실상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 정말 많은 내용이다. 일단 남북조시대 선비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중원을 빼앗긴 한족의 입장에서 쓰였다는 것, 따라서 선비족에 대한 증오나 무시, 그리고 그를 상대한 나라들에 대한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 그리고 제나라의 뒤를 이은 양나라의 소자현이라는 개인이 쓴 역사서임을 감안하면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졌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당대의 상황을 고려하여 살펴볼 수 밖에 없는데 동성왕대의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으로 웅진으로 천도해 웅크리고 있다가 중흥을 도모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외교전을 다양하게 펼치는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의 일환이 바로 중국 남조와의 외교였다. 이로써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있던 선비족의 북위를 압박하고 고구려를 압박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고구려를 막기에도 어렵던 백제의 국력이 대군을 보내 당대 승승장구하던 선비족의 북위를 정면대결로 무찌르고 그들의 땅을 빼앗아 봉건제후 왕들을 임명했다라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남제서>라는 책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록을 그대로 믿고 이를 기정 사실처럼 이렇게 쓰는 것은 역사 왜곡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꼭 중국과 일본만 역사왜곡을 하는 것처럼 떠드는데 솔직히 우리나라도 두리뭉실 얼버무리면서 하는 역사 왜곡 많다. 역시 아닌건 아닌거다라고 말할 밖에.....



밑줄친 2번에서 일본이 국호를 '일본'이라 부른 것은 나라 시대(710~794)부터이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 이후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이후 일본 내에서 어느 정도의 세력권을 형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단정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정말로 미스테리이다. 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서로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실제 몇가지의 사례들을 보면 이건 뭐 한 집안 같다고나 할까? 백제의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고 하고 이전 시대에는 백제계 귀족들이 일본 정계를 휘둘렀던 시기도 분명 있었으니 서로 위 아래를 가리기 어렵다고 할까? 하여튼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 우리가 일본의 뭐든 만들었다고 주장할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이 시기의 국뽕이 가장 심한데 일본 문화에서 백제의 영향력이 많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시기 일본의 문화가 확 뒤떨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일본 나라 가서 나라국립박물관에 가보면 당대 일본의 문화수준 역시 굉장히 뛰어났음을 순식간에 확인할 수 있다. 


밑줄 친 3번 역시 저 설명에 부합하려면 4세기 말 근초고왕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의 해양 제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역시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근초고왕대 백제의 전성기에서 100여년이 훌쩍 흐르고 난 뒤에도 백제가 저 설명에 부합했을지는 의문이다.


이 설명은 모두 백제 금동대향로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저렇게 무리하게 역사를 과장하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신 중 하나는 인쇄술이 발명된 것이다. 고려는 목판 인쇄와 금속 활자 인쇄까지 모두 가능한 나라였다. 이는 1. 기동성 있게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몽골 기마병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문명이었다.  2. 고려의 인쇄 기술은 소수의 학자들만이 누려 온 지식을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44쪽



고려의 인쇄술을 설명한 내용은 틀림이 없으나 비교대상이 몽골이라는 것이 좀 안타깝다. 미국에 사신 분이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하다고 알려져있는 동양인을 비교대상으로 삼은건가? (칭기즈칸은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지난 천년간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문제는 칭기즈칸도 몽골제국도 위대했으나 인쇄술에 있어서는 이들은 전혀 위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심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목민족의 특성상 몽골은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에 정착민들만큼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은 자랑이 될 수 있으나 몽골보다 인쇄술이 발달했다는건 좀 뭐랄까? 마이클 조던이 아이슈타인한테 "내가 당신보다 농구 잘해"라고 자랑하는 느낌이랄까? 비교대상 선정 실수라고 하겠다. 


그리고 2번째 문장은 우리나라의 인쇄기술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바로 이부분이다. 지식의 다양한 계층으로의 확산과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쇄술이 그토록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몇 백년간 더 조선후기가 되기까지 지식은 소수의 지배층 지식인들-사대부 양반들-에게 독점되어 광범위한 계층으로의 지식의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저 지식을 독점한 지배층 - 사대부들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이다. 이것은 인구증가 때문이지 인쇄술 덕분은 아니다. 서양의 인쇄술 발달이 성경의 자국어 번역과 이어지면서 종교개혁과 이어지고 광범위한 지식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과 비교되어서 흔히 안타까움으로 이야기 되어지는 부분이다. 



현재의 위치인 국립 경주 박물관으로 성덕 대왕 신종을 옮겨 올 때 종의 무게를 견딜만한 쇠막대기를 특별히 제작했다. 하지만 1. 종을 매다는 구멍에 끼우기에는 너무 굵어 어쩔 수 없이 이전에 썼던 녹슨 쇠막대기로 종을 매달아야 했다...... 성덕대왕신종은 1000년이 넘도록 바깥 공기에 드러나 있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답고 장엄한 소리를 내고 있다. 2. 신라 사람들의 철기 다루는 기술이 가히 놀랍기만 하다.  - 117쪽



단순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성덕대왕신종을 옮길 때 문제가 되었던 쇠막대기(쇠막대기가 아니라 쇠고리로 알고 잇는를 당시 포철에서 만들었었는데 구멍에 끼우기에 너무 굵었던게 아니라 실제로 끼워서 들어올렸을 때 이 쇠막대기가 휘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원래 종에 있던 쇠고리를 그대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밑줄친 2번 부분은 저자가 몰랐을리는 없고 서술상의 실수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 책의 전체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성덕대왕신종이 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결정적으로 밑줄 친 2번으로 인하여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성덕대왕신종은 청동이다. 이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만 철기로 제작된 것이다.  저자가 쓰면서 금속과 철기를 같은 단어(iron)로 쓰는 영어때문에 혼동한 것 같은데 사실 이런 건 편지자가 잡아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진짜 크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일본이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하자 국어학자들이 모여 한글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1. 비밀 단체인 조선어 연구회를 만들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기 시작했다. 2. 일본에게 원고를 빼앗기기도 하고 학자들이 투옥되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인 <조선어 사전>을 발행했다. 그리고 3. <조선어사전>을 이어받은 <큰사전>이 1957년 총 6권으로 완성되었다.  -161쪽



밑줄 친 1에서 조선어 연구회는 비밀단체가 아니었다. 지금의 한글날의 원류인 '가갸날'을 제정하고 잡지 <한글> 발간, 조선어 강습회 개최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쓴 공개된 한글 연구단체였다. 저런 활동은 비밀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밑줄친 2번, 조선어 연구회는 1931년 그 유명한 조선어 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본격적인 우리말 모으기와 사전 편찬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2번의 서술에서는 마치 조선어 연구회가 일본에 원고를 빼앗기고 투옥된것처럼 연결되는데 이는 조선어 연구회가 아니라 조선어 학회다. 동시에 1938년 발행된 <조선어 사전>역시 조선어 연구회에서 발행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데, 이 시기 조선어 연구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어 학회가 있었다. 더 큰 오류는  이 사전은 문세영이라고 하는 분이 다른 몇분의 도움을 받아 발행한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조선어 학회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전이 조선어 학회에서 만든 <맞춤법 통일안>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비공식적으로 조선어 학회와 어떤 관련이 분명히 있을듯은 하지만 이부분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는 듯하다. 따라서 밑줄 친 3번에서 말하는 <큰사전>이 <조선어 사전>을 이어받았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 


다음 인쇄에서는 저자와 내용을 잘 살펴서 틀린 부분만이라도 수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2-11-02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금동 향로는, 뭐라 말로 할 수 없고요, 직접 봐야 뒤집어지더군요. 아휴 당시에 깜놀했던 감격이라니요!!! 근데 부여까지 가서 본 것이 복제품이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흑흑흑......

바람돌이 2022-11-02 20:27   좋아요 1 | URL
반전!! 저 금동향로가 자주 서울이나 다른 박물관들 기획전 할 때 나들이를 갑니다. ㅎㅎ
그래서 진품 보려면 어디 있는지 미리 찾아보고 가야 한다는.... 그런데 금동향로는 복제품도 워낙에 잘 만들어서 사실 구별 못해요. 진짜 똑같아요. ㅎㅎ

2022-11-02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2-11-02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대단하세요. 이런 지적을 할 수 있는 독자라니 저는 감탄을 하며 읽었습니다. 몽골보다 인쇄술이 발달했다는 건 제가 봐도 좀 생뚱맞아 보이네요.
훌륭한 사진들에 걸맞게 내용이 좀 더 고 정확했다면 좋았을 책인데 아쉽네요.

바람돌이 2022-11-02 20:38   좋아요 2 | URL
에고 저 대단한거 아네요. 저 역사과 출신이라 이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물론 제대로 공부 안하고 겉만 대충 아는 전공이긴 하지만요. ㅎㅎ 그래도 사진들은 굉장히 잘 찍었고 기획 의도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coolcat329 2022-11-02 20:43   좋아요 2 | URL
아 그렇죠! 역사 전공하셨죠! 그래도 대단하신거에요.😆
종고리는 철 몸통은 청동이라고 짚어주신 부분에서 속으로 아! 감탄했답니다. ㅋ

그레이스 2022-11-02 2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지적하시는 바람돌이님 정체가 궁금합니다.
존경합니다 ~♡
앗 이 글 쓰고 위에 보니 역사과 나오셨군요.
반가워요
우리 막내가 역사 전공인데 ...^^

바람돌이 2022-11-02 21:37   좋아요 3 | URL
앗 집에 역사전공인 따님? 아드님? 역사가 공부는 재밌어요. 그런데 우리집에는 왜 저 따라서 역사전공하는 놈이 하나도 없는지..... ㅎㅎ

scott 2022-11-02 2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이 책에 바람돌이님 리뷰 끼워넣고 주말 박물관으로~@@@

바람돌이 2022-11-03 21:51   좋아요 2 | URL
주말에 서울 중앙박물관 산책도 좋겠네요. ㅎㅎ 금동대향로는 지금은 어디에??? 아마 부여박물관에 있겠죠?

mini74 2022-11-03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금동대향로랑 성덕대왕신종 작게 만들어서 외교 선물한다는 기사 본 거 같아요. 넘 부러웠던 ㅎㅎ몽골과 인쇄술 비교 예 드신거 넘 재미있어요~ 바람돌이님 진짜 이런 리뷰는 작가님을 위해서리도 링크 보내주셔야 합니다 ㅎㅎ 👍

바람돌이 2022-11-03 21:53   좋아요 1 | URL
그거 박물관 기념품점가면 팔아요. 물론 굉장히 비싸다는게 함정이지만..... 금동대향로는 실제크기로도 복제품 만들어서 파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도 100만원이 넘었던것 같은..... ㅎㅎ

mini74 2022-11-04 15:25   좋아요 0 | URL
헉. 백만원 ㅠㅠ 그렇군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11-03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수정해서 꼭 개정판이 나오면 좋겠네요. 책의 타겟이 전문가들보다는 대중일 것 같은데 그럴수록 오류를 최소화해서 내용을 점검하고 나왔어야 할텐데 말이죠. 바람돌이님 리뷰 엄지척입니다!!!

바람돌이 2022-11-03 21:54   좋아요 1 | URL
독자로서 저의 일은 여기까지요. 나머지는 출판사에서 판단하겠죠. ^^

책읽는나무 2022-11-03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목조목 오류를 잡아내신 꼼꼼함에 감탄했습니다. 아마 제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런가 보다. 하며 읽었겠죠??
바람돌이님이 짚어 주신 부분을 상기하며 읽어 보니 책의 빠른 수정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책 제목 자체가 <우리 문화유산>이니까요^^
그리된다면 책의 퀄리티가 훨씬 더 올라가겠죠??^^
예전에 미니님도 다미여 책의 오류를 잡으시고, 바람돌이님도 이 책의 오류를 잡으시고...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이 알라딘 친구분들이라 자랑스럽네요^^
덕분에 좋은 역사 공부가 되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11-03 21:58   좋아요 2 | URL
아유 제가 역사부문에서 이정도 찾아내는건 자랑이 아니고 당연한거고요. 미니님이 진짜 대단하신거죠. 예전에 어떤 영어선생님이 자기 영어 잘하는걸 은근히 자랑하는데 어찌나 어이없던지.... 아니 영어선생이 영어 잘하는건 당연한거지 자랑이 아니잖아요. 제가 역사를 이정도 하는것 역시 자랑이 될 수 없고 못하는게 나쁜거죠. ㅎㅎ
나무님 선물인 책이라서 이 책이 다시 좀 더 내용을 수정보완해서 나오면 좋겟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희선 2022-11-06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으로 이민 간 분이었군요 바람돌이 님 역사 잘 아셔서 잘못된 부분 쓰셨군요 편집자가 역사를 잘 알고 고칠 부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바람돌이 님이 이렇게 쓰신 거 출판사에 보내면 좋겠네요


희선
 

그날 저녁에 빌리는 오락실에 있는 대형 TV로 넷플릭스를이리저리 돌려 본다. 요즘은 이게 대세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지금까지 살펴볼 생각조차 않지 않았던 건 읽을 책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 P65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지금이렇게 쓰고 있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이렇게 아플 줄 어느누가 알았을까? - P110

"의미 있어." 빌리는 창문에 대고 말한다. "내 이야기니까." -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일생의 전반부를 이용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후반부를 이용해서는 시나리오에 따라 영화를 찍는다. 우리들은 완성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수없다. - P98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비밀의 존재를 숨기고 없는 척할수록 그 비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어디를 가도 그 비밀이 따라온다. 시간이 쌓이면서 그 비밀을 지키고 싶기도 하고 없애버리고 싶기도 한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며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 P111

어떤 사람이 아주 희소한 언어를 익혔다면, 그 사람은 남은 삶을 모두 쏟아서라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타인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찾을 수있다면 그들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에도 그 희소한 언어를 이용해 서로 소통할수 있을 것이다. - P147

인간은 왜 기억이라는 걸 간직할까? 기억의 존재가 인간이 소멸을 향해 단호히 걸어가도록 할 뿐이라면,
그런 심리 메커니즘이 왜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어 사라지지 않은것일까? 인간은 왜 자신을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 기억을 삭제할수 없을까? - P179

오드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또 울려는 줄 알고 장중쩌는 ‘울지마세요‘라고 말하려 했다. 다행히 그녀는 이내 눈물을 삼켰고, 눈빛에 희미한 빛 같은 것이 어룽거렸다. 너무 외로웠으니까요. 그녀의 대답에 장중쩌는 콜라를 마시다 말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순간 아래로 쑥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아래를내려다봤지만 두 발은 바닥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그는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오드리의 목소리가 장중쩌의 마음을 관통했다. 너무 외로웠으니까요. 그녀는 장중찌가 오랫동안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던 이해하기 힘든 당혹감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 P246

몸안에 거대한 자물쇠가 있는데 열쇠는 내가갖고 있지 않은 듯한 기분이었다.  - P3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 P27

사람은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P102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숨은 부지허는 것이여." - P137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 P138

질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81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