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와 남들이 아는 나는 같은 사람인가?
내가 보여주는 나는 어느 만큼 진실하게 나를 표현하는가?
인간은 자신과 타인을 어느 만큼 속일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추리 소설 주인공과는 전혀 관련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나조차도 극도의 내향성을 사회성으로 잘 포장해서 감추고 다닌다. 보여주는 나와 실제의 나가 다른 것이다. 까칠하고 사람 가리고, 새로운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내 본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마 우리집 남편 하나 뿐일거다.
프리다 맥파든의 소설은 그런 캐릭터의 변화가 사람 뒷통수를 호되게 친다. 그 의외성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의 이 더위를 서늘하게 식혀줄 책들이라고 소심하게 추천한다. 자신만만하게 추천하고 싶은데 이건 내 안의 소심한 내향성이 또 나를 주저하게 하는 것일뿐이고.....어쨌든 판단은 모든 독자의 것일 뿐.
프리다 맥파든의 책들은 대체로 공통적인 서사 과정을 보여주는데 먼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에게 위기가 다가온다. 위기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을 둘러싼 배경들이 지극히 서늘하다. 뭔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그런 느낌? 이게 뭐지? 불안한데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더 불안한 느낌이랄까? 그 불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으스스해서 무서워지는..... 결국 독자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데 추리소설의 기본을 아주 충실히 재현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반전!
추리소설은 반전을 얼마나 교묘하게 배치하는가, 의외의 결말로 독자를 깜작 놀라게 처리하느냐로 재미를 판가름할 수 있다. 솔직히 어떤 책은 반전에 집중하다가 얼토당토않은 결론으로 이끌어 독자를 김 빠지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다 맥파든의 반전은 진짜다. 일단 이게 뭐야 할 정도로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확 바뀐다. 그러니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 숨을 수 있는 껍데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순간이었어. 거북이는 등껍데기가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 <더 코워커> 166쪽
프리다 맥파든의 소설 속 여성들은 모두 이런 거북이 등껍데기, 그것도 아주 튼튼하고 육중한 등껍데기를 가지고 다니는 이들이다. 그들이 그 등껍데기 속에 무엇을 숨겼는지는 소설이 끝나야 우리는 알 수 있다. 심지어 소설이 끝나도 그들은 그 등껍데기를 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잘 숨기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모두 같은 캐릭터인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5권의 주인공의 캐릭터를 정리하면 요렇게 4가지쯤으로 정리될 듯하다. 하우스 메이드는 2권짜리로 같은 주인공이니 4가지.
뭔가 찜찜하지만 어쨌든 정의의 사도인듯도 한...
사이코인데 끝내는 정의의 사도?
정의의 사도인척 하지만 어설픈 악당
정의의 사도 필요없고 대놓고 나쁜 악당인데 남들 앞에서는 완전 평범하게 자신을 위장하는 악당.
어쨌든 맥파든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은 기존의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들이 가지고 있던 여성의 고정된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한다. 기본적으로 악당이다. 사실은 그게 가장 재밌다. 보통 피해자나 주인공의 조력자, 아니면 좀 탁월하게 똑똑한 여성으로 남성의 이미지를 덮어 쓰고는 그냥 여성이라고 우기는 주인공들이 대부분인걸 보다가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의 여성상을 보는 것은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리고 소설 속 남성들의 캐릭터도 기존 소설을 비틀고 간다.
대놓고 나쁜 놈이지만 모자란 인간들이거나 존재감 별로 없는 이들
뭔가 열심히 하는데 별 도움도 안되고 존재감도 확 떨어지는 인간들
뭔가 있을거 같은데 끝내 별거 아닌 인간들
여주인공이랑 누가 더 악당인지 경쟁하는 인간
결론은 다 별볼일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역시 프리다 맥파든의 소설은 여성 원탑 또는 투탑의 소설이다.
그리고 엑스트라들인데 이 부분에서는 조금 이 책이 모자란 부분이라고 할까? 프리다 맥파든의 소설을 진짜 재밌게 읽었지만 모두 별 5개다라고 부르기는 좀 어렵다. 바로 주변 인물이 서사가 많이 빈약하다. 심지어 어떤 작품에서는 진짜 괜찮은 사람조차도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버리는 캐릭터로 사용한다. 주변 인물의 서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바로 이 버리는 캐릭터가 많다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허술하게 버려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떡밥회수가 안된다고 할때의 딱 그 느낌이 드는 곳들이 제법 있다. 아쉽긴 한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실 우리 평범한 인간들 대부분은 좀 엑스트라 아닌가?
나는 오래전 30살이 되었을 때 좀 많이 우울했었다. 20대의 내가 상상하기로 30살이라는 나이는 진짜 어른이 되는 나이였고, 그 나이가 되면 나는 좀 근사해질 줄 알았다.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진짜 뭔가 무게도 있고, 판단력도 있고 뭔가 지혜롭고 훌륭한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데 실제 30살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어린애를 가슴에 품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그냥 이게 나구나. 받아들이고 나니 그 이후의 나이듦은 딱히 우울하지 않은.... 그래서 이렇게 살다 이렇게 가는거지 뭐 이런 느낌이랄까? 이 소설 속 엑스트라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좀 안타깝긴 하지만 길게 살든 짧게 살든 우리들 모두 그렇게 살다 가는거 아닌가 생각하니 좀 서글프지만 딱히 못받아들이것도 아닌듯 싶다. 엑스트라에게 지나친 서사를 넣어주는 것도 웃기지 않나 하고 서글프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푹푹찌는 더위에는 역시 추리 소설이다. 프리다 맥파든 소설 재밌다.
참고로 글 제일 앞의 책 순서는 내가 재밌게 읽은 순서.
여러분들은 어떤 순서일지 궁금하기도..... ^^
그리고 표지에도 반전이 있다. 제일 끔찍한 표지는 당연히 <핸디맨>인데 내용이나 주인공은 얘가 제일 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