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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성의 정치학 - No.1, 2007 ㅣ 부커진 R 시리즈 1
그린비 + '연구공간 수유+너머' 기획 / 그린비 / 2007년 4월
평점 :
표지의 R은 혁명의 그 R이다.
이념이라고는 다 씻겨가버린 것 같은 시대에, 혁명이라고는 구시대의 유물 내지는 잔재로 퀘퀘먹은 냄새나 뿌리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21세기에 다시 혁명이라니.....
하지만 조금만 정직해져 볼까?
87년 이래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민주화가 되었다면 고통받는 사람의 숫자가, 삶의 주변부로 몰려나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그 절대적 수치조차도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지....
곳곳에서 국가와 사회에서 막다른데까지 몰리고 몰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혹시 민주화 된것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실감을 느끼는 것은 일부 중산층 내지는 중산층 진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일부에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부자의 것을 나눠 가난한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것을 뺏어 어중간한 중산층의 입을 막은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는 아닌지....
그렇다면 민주화를 말하고 진보를 말하는 당신의 입, 나의 입은 위선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래서, 그러므로 여전히 혁명의 R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혁명은 더이상 87년의 그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제는 무너진 사회주의체제에서 찾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부커진의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혁명은 뭘까?
87년 체제에 대한 대다수의 연구들은.... 87년 체제가 가지는 불안정성을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에서 찾고 있다.....이들에게 중요한 과제는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87년 운도의 기획을 완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의 완수를 위해 시민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시민사회의 민주적 요구를 반영하는 권력구조의 합리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이질적인 성분으로 구성된 대중은 시민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성으로 환원되어 그 이질성과 다양성을 상실하게 된다. 더불어 시민이라는 주체성 외부에 있는 자들, 즉 이주노동자들, 장애인, 성매매여성 등과 같은 비-시민들은 한국사회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182-183쪽)
부커진의 필자들의 입장은 대체로 위에서 말하는 저 시민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질성과 다양성의 존재들 자체에 주목한다. "
그들은 권력에서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소수자다.
그러한 소수자의 정치가 저항이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투쟁과 저항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내용이라 하겠다.
오늘날 기존의 민주화 운동이라 불리던 것들은 -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조차도 - 거의가 체제내의 운동으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정권의 토대를 한치도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운동일뿐이다.
그러면 거칠것없어 보이는 자본주의 세상에 흠집을 내고 홈을 파고 돌발을 일으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올해도 농사짓자고 얘기하는 대추리의 농군이며, 새만금 갯벌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는 어민이며, 대한민국법으로 포섭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동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이주노동자의 삶과 투쟁이며, 이동권과 활동보조인의 법제화를 위해 싸우는 중증장애인들의 싸움, 그리고 KTX여직원들의 투쟁같은 비정규직철폐를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끊임없는 탈주, - 국가가 정해준 틀, 법이라는 틀, 아니 아예 국가라는 틀 자체를 탈주하는 이들 소수자의 싸움과 연대야말로 21세기 혁명의 새로운 내용이다.
자 여기까지 일단 동의하자.
사실 동의 안할려고 해도 별로 그럴 부분이 없다. 적어도 내 능력으로는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탈주들은 권력에 의해서 고정된 것들을 벗어나는 움직임들이다. 심지어 국가라는 고정불변인듯 보이는 괴물조차도....
그런데 여기서 근원적인 질문을 참을수가 없다.
과연 이러한 탈주들 만으로 사회의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대추리의 농민과 이주노동자와 새만금의 어민이, 중증장애인이 연대의 손을 뻗고 어깨를 거는 날은 과연 올것인가?
그들이 분명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이 사회의 다른 면을 부각시키고 문제시하고 싸우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직화되지 못한 이러한 탈주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은 언제가 될것인가?
그리고 갈수록 지능적이고 고도화되어가는 자본의 횡포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부커진의 필자들은 의외로 낙관적인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좌절보다 몇 백 배 더 큰 희망을 보았다. 권력과 자본은 대중들을 추방하고 주변화하지만, 대중들은 그만큼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탈주하고 소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권력과 자본은 추방을 명령했지만, 대중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다른 삶을 실험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기에 거기에 몇퍼센트의 가능성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답한다. 투쟁은 길을 묻지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