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왜
강만길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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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쪽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패배한 쪽의 반역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서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궁예는 왕건에게 패퇴하고 도망다니면서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민가에서 무를 훔쳐 먹다가 백성들에게 발각되어 돌로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아무리 몰락한 군주라 하더라도 죽음의 처참함이 그 정도로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거라며 승리한 당사자의 왜곡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본 서는 우리가 대충 교과서를 통하여 외피적으로만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그 내부속까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 있는 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역사다. 삼국통일은 누가 했느니, 고려는 누가 건국했느니,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장수는 누구인지 등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알만큼 알고 있다는 자만감과 자부심에 홀려 있는 게 우리 자신들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꼼꼼이 따져 보고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 역사 중 고대사 또는 근대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럼 현대사는 정당하게 또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평가되어 지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살고 있고 버젓이 두눈 똑똑히 뜨고 바라보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은 가해지고 진실은 가려지며 어처구니 없는 평가가 따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역사란 정말 정답이 없는 것인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관에 따라 달리 보여지는 구석은 있을지언정 정말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사실이라 여겨지는 것조차도 버젓이 뒤틀리고 삐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단언하건대 지금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가 아니다. 정확히 기득권자의 역사다.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장치를 장악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 배후의 세력이 조정하고 평가하며 단죄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들은 과거의 승리를 바탕으로 기득권을 형성하여 악착같이 유지해온 변형된 승자에 다름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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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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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배워서 사회의 가장 낮은 일에 매달려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 가진것이 없어 가진자가 제공하는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도 마다할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해하며 가진자 들의 부의 재생산을 위해 고단한 하루살이형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힘없어 억눌리고 아니꼽고 더러워도 풀어가는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마냥 당하고야 살아가는 답답하고 가여운 사람들 등등의 인간 유형에 대해 황석영은 관심을 가지며 지금까지 몰두해왔다. 세상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나보다 더 비천하고 곤궁한 인간들에 대한 탐구는 기본적으로 그들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같은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한사람 두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쌓였던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게 되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침내는 개선과 시정을 위한 행동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대중도 서로 합치고 힘을 모으면 당당한 민중이 되어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타파하는 데 한몫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낱 대중이 민중이 되어 우리 사회의 개선을 위해 기여한 사례는 그 성공보다는 실패로 끝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대중이 민중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는 대중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각개격파식으로 전개되는 외부의 회유와 압력에 여전히 무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사회를 바꾸고 나라를 변화시킨다는 원대한 꿈은 그들에게는 없었으며 오직 현실의 고단함과 억울함이 시정된다면 적어도 나 하나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을 외관적으로 결속할 수 있도록 만든 민중이라는 외투는 얼마든지 벗어던질수 있고 스스럼없이 무리속에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위와 동혁은 끝까지 투쟁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나 나머지는 그렇지를 못했다. 억울한 호소가 수용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성취한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순진하였고, 위기모면을 위해 펼치는 공사소장의 쇼와 기만책에 그대로 무너질 만큼 그들은 여전히 어리석었으며, 수없이 단련되고 경험을 축적하여 단계적으로 대응책을 조절할 수 있는 노련한 작업반장류에 비해 그들은 여전히 즉흥적이었고 미숙했다. 중상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던 대위를 남겨두고 동혁은 스스로 산화해버리고 말았다. 힘없는 대중이 민중으로 전환하여 모이고 외치고 싸웠어도 대부분 실패로 끝난 아픔과 공포를 동혁은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극복하고 승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순리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한 개인의 목숨이 필요로 하는 사회는 비상식적인 사회다. 지금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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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송이 장미 - 한국인이 좋아하는 러시아 로망스 베스트
Various Artists 노래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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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내게 언제나 차가웠다. 눈과 얼음, 겨울바람, 시베리아 벌판, 오랜 독재시대에 걸친 냉전의 강대국,  그리고 무엇보다 하얀얼굴에 발그스레하게 상기된 차가운 눈동자를 가진 러시아 사람들을 대하면 달리 가질수 있는 느낌은 없었다. 단지 차갑다는 것과 그 차가움이 무섭게 느껴진다는 것! 지금까지 나의 의식세계를 지배해 온 러시아에 대한 그리고 러시아인에 대한 나의 감상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러시아도 사람사는 곳이며 그 사람들 몸속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차가울수록 그 차가움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은 더더욱 진실된 것이며 따스함에 대한 열망은 한층 더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나는 이 음반을 통해서 새삼스레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느리든 빠르든, 경쾌하든 차분하든 결국 러시아 음악에서 뿜어져 나온 온기는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러시아와 러시아인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일시에 녹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러시아가 차가운 나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따스함은 용광로의 절대적인 뜨거움이나 한여름 뙤약볕의 끝간데 없는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다 타다 남은 장작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한토막 숯불의 온기라고나 할까?. 결코 넘치지 않지만 한사람 정도의 차가움을 녹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따스함! 이게 바로 러시아 음악의 따스함이며 실제 러시아에서 나는 이러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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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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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촌수필에는 지금의 내 나이또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해방이 되고 6.25사변을 겪는 그들이 어렵고 불우한 환경속에서 어떻게 모진 풍파를 부대끼며 헤쳐나갔던가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인간적이라고 할때는 소위 해피하게 살아가는 경우를 두고 말하지 않는다. 죽도록 고생하고 처절하게 좌절하며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한을 품고 있는 자의 삶을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질 속에는 이미 비극 또는 시련이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지도 모를 일이며 나는 이러한 인간적인 이야기속에 당연히 나 스스로가 인간임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다

옹점이, 대복이, 복산이, 석공 등은 그대로 우리 시대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다. 관촌수필에서 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힘겨운 한때를 살다가 죽는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같다. 신분의 고하, 부의 차이가 그들을 표시나게 구분하고 있었지만 나약한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환경속에서 결국은 같은 종류의 삶을 살고 간 것이다. 몰락해서 과거의 부귀영화가 헛된 추억이 되어버린 주인공, 부잣집 큰며느리 같이 일 잘하고 붙임성 있고 싹싹해서 시집가면 누구보다 잘 살거라고 기대받았으나 끝내 약장수 패거리에 섞여 딴따라 가수로 추락한 옹점이, 마을 대소사를 불문하며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제일처럼 해치웠으며 그 자신 살림살이 조금 나아지려던 순간에 백혈병으로 세상 등지고 마는 석공, 재주를 과신하다가 절도범으로 몰리어 콩밥 먹게되고 결국은 징용으로 끌려가게 되는 대복이 등 인물 하나하나가 앞서 간 세대의 슬프고도 고달픈 상처고 눈물이다. 내가 살지 못한 시대상황을 이처럼 절절하게 묘사하고 생생하게 풀어감으로써 한시대의 삶에 몰입하도록 만든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

덧붙여 약간의 아쉬움이라 할까? 저자의 태생이 충청도이므로 그리고 관촌수필의 내용또한 저자의 것이므로 충청도 사투리가 모든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나는 새삼 놀라웠다. 충청도 사투리는 조선8도 사투리 중에 가장 단순한 것이라는 내 편견이 여지없이 깨졌기 때문이다. 너무 어렵다. 그저 그 시대의 사물이라서 오늘날에 남아있지 않아 이해가 곤란했다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에도 버젓이 쓰이고 있는 말인데도 충청도 사투리로 변환되니 알아듣기가 벅차다. 지방의 토속성을 살리려 사투리를 동원한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독자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지금 시대의 말로 바꾸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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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맛과 추억
황석영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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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나보다 훨씬 더 연배다. 그러니까 그가 이 책에서 풀어가고 있는 여러가지 음식들 중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또 모르는 것은 훨씬 더 많다. 황석영이 자라나던 그 시대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보리고개를 겪을 만큼의 어려운 시절이었고 끼니때마다 본능적으로 배를 채우는 밥 말고 다른 먹을거리는 쉽게 근접할 수 없었던 빈곤의 나날이었다. 비단 황석영뿐만이 아니고 30대 중반의 나같은 나이에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잘 먹지 못하고 자라만 세대들은 드물게 찾아오는 밥 이외의 다른 음식에 대한 섭취기회와 그 추억이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으리라


황석영은 젊었을때부터 한반도 구석구석을 두루 다녀본 지라 자연히 각 지방의 음식을 접할 기회도 아주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내가 모르는 음식들이 너무 많다. 즉 나는 지금까지도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요 근래에 먹어본 것 중에 홍어라는 것이 있다. 저자는 홍탁이라하여 홍어무침이나 홍어회에 막걸리 한사발을 앙상블로 하여 먹으면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음식이라 칭한다고 하였고 또 실제 주변에는 홍어를 미각적인 측면에서 아주 최상품의 음식으로 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는 첫 젓가락 집어들고는 그만 포기하였다. 도무지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한마디로 썩은 냄새가 입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이 음식이 무에 그리 맛이 있다고 즐겨 찾는지.....


어쨌든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음식이 아닌 음식과 연루되어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자에게 음식은 그저 혀를 즐겁게 하는 도구에 불과할 것이지만 어려운 시절 어렵사리 음식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음식을 만들고 요리하고 대접하는 이의 마음과 정성과 정을 함께 먹는 것이기에 음식에 대한 추억은 도저히 기억속에서 지워질수 없는 것이리라. 저자는 어머니가 임종하면서 남긴 '노티 한점 먹고싶다'라는 유언같은 한마디가 못내 가슴에 걸리는 모양이다. 저자는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도 없는 노티를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밀려 올 것이다. 이처럼 음식과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유난히 찌개를 좋아한 나, 아니 반찬이라고는 찌개가 유난스럽게 자주 올라와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 오늘 갑자기 어머니가 해주시는 김치찌개에 양껏 밥을 비벼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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