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평전
필립 솔레르스 지음, 김남주 옮김 / 효형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모짜르트는 어릴 적에 제일 먼저 접하는 위인이었다. 그의 업적도 업적이려니와 그 천재성으로 말미암아 나의 뇌리에 더 깊숙이 남아 있는 모짜르트에 대해 언젠가는 위인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짜르트를 진실되게 알고 싶다는 소망을 키워왔다. 그런데 막상 모짜르트를 찾다 보니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모짜르트를 알 수 있는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위인이 아니라 인간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평전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책은 나에게 반가움과 흥분을 안겨다 주었고 나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듯 주저없이 이책을 사들였던 것이다


평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일생에 대한 진지한 탐구다. 평전에서는 인간의 업적이나 실력이나 공헌을 재확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러한 성취를 이룩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과정과 고통과 번민을 같이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인가? 모짜르트는 온데 간데 없고 저자만 있을 뿐이다. 모짜르트는 주변에 밀려나 철저히 소외당하면서 저자는 무엇이 그리 신나 있는지 여행지에서의 소회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모짜르트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고찰은 흔적도 없고 이미 세상에 알려진 그의 편지나 모짜르트 주변 사람들의 객담만 무슨 대단한 정보인양 전달하고 있다. 이게 무슨 평전이란 말인가.  평전은 기행문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며 신변잡기나 늘어놓는 팔자 늘어진 한가한 장르도 아니다. 제발 좀 속이지 마시라!


어이없다. 어쩌다가 나는 평전이라는 타이틀만 믿고 덥썩 책을 사고 말았는가!. 저자와 역자와 출판사가 원망스럽지만 결국은 사리분별 제대로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평전이 아니다. 그리고 모짜르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짜르트를 이용한 저자의 본인 알리기에 지나지 않는 책이다. 따라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모짜르트와 진실되게 만나려던 소망이 처절하게 좌절되었다. 무슨 이유로 어떤 명분으로 나와 모짜르트의 만남을 방해하려는 것일까? 서운하다. 그리고 억울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없는 이 안 2004-07-0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언제나 속이 시원하네요. 읽어보기 전이지만 어떤 류의 글일지 짐작이 갑니다.
이럴 때 억울하지요... ^^

반조 2005-03-1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이 책 원전의 제목은 "Mysterieux Mozart"이죠. 그러니까 "신비로운 모차르트" 쯤 되려나요? 모차르트 해석서라고 할 만하죠. 확실히 "평전"과는 어울리지 않은 글인데, 번역한 출판사에서 "평전"이라는 이름을 붙힌 것은 의도적인 잘못이라고 봅니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충청도 사투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정겨운 느낌이 들때도 있고 때로는 듣기에 따라서 서운함을 먼저 느끼기도 한다.  팔도 사투리 중에 가장 단순하고 또 가장 쉬운면서도 막상 직접 따라해 보거나 음미해 보면 충청도 사투리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을 사전에 조금이라도 알지 못하고 무작정 책읽기에 나섰다가는 낭패보기 쉽상이다. 우선 낱말 자체 부터가 보기에, 듣기에 낯선 데다가 충청도 사람 특유의 미묘한 감정이 실리는 억양이나 말하는  이의 심리를 제대로 간파하지 않고서는 일단 작품은 고사하고 언어조차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충청도 사투리다


이문구는 어렵다. 그리고 그가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와 그 사투리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도 완주에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속독파는 십중팔구 이문구에게서 실패하리라. 그 속독파가 만일 자신은 이문구에게서도 쉽게 성공하였다고 자평한다면 나는 곧이 곧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책읽기 환경속에서도 이문구를 찾게 되고 그를 잊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가 줄기차게 추구하고 있는  옛 추억으로의 서정과 그 추억속에서 살아 숨쉬는 정감어린 인간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삼촌, 어머니들이자 우리 친구요 그대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풍경과 상황은 사투리가 아니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고 이문구는 판단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아쉽다. 작가가 문학활동을 벌여 상을 받는 것을 추호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 상을 주관한 신문사를 향하여 수상소감으로써 찬사를 보내는 모습은 바라보기에 민망하다. 작가는 작가로서 자유로이 활동하면 되는 것이지 특정 신문사가 수상자를 결정하기 위하여 벌였던 선정주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수상이 자기에게로 귀결되자 문학을 생각하는 언론 운운하는 것은 그냥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봐주기에는 너무 속이 들여다 보일뿐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 행해온 그 신문사의 과오를 이문구가 나서서 은폐할려는 의도로 비치지 않을까 하여 심히 우려스럽다. 부디 내가 오해하고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당평전 2 (반양장)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신서 32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완당의 학자로서 또는 예술가로서의 성취와 업적은 눈부시다. 우리 역사에 이 정도 인물을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실제로 우리의 조상으로서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축복이라고 머뭇거림없이 말할 수 있다. 완당을 지키고 더 빛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그나마 지금 시대에 유홍준이라는 발군의 학자가 있어 완당의 가치를 더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면서 그 자신 또한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완당은 중장년 이후의 삶을 거의 귀향지에서 보냈다. 당파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자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당파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고 그는 불행하게도 정치적으로 패배를 거듭하는 당파에 속하는 인물로 분류되어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젊은날의 고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년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후반부에 몰려있었던 것이 완당의 인생을 더 한층 고통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 세상은 무정하고 정치는 무자비하다. 당시 완당 정도의 위치를 점하였다면 그의 업적과 성취를 고려하여 비록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사면이나 감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척박하고 살벌한 시대환경은 완당이라고해서 예외를 두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지금 완당을 찬양하도록 만드는 학문과 예술에서의 업적과 성취는 그가 속세에 나아가 임금을 모시며 관직에 내몰리어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평온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속세로부터 멀리 벗어나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 귀향살이야 말로 오늘날 완당이 우뚝 솟을 수 있도록 한 최고의 환경이자 공로자인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지야 않은가. 완당이 지속적으로 당파정치에서 승리하여 관직에서 살아남아 현실적으로 무엇을 이루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나 오히려 당파싸움에서 패배하고 맞게된 귀향살이를 통하여 이룩해낸 학문과 예술에서의 성취와 업적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벌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병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드가 앨런 포의 작품 세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그는 복잡한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벌인 작가였다. 크게는 공포와 환상 그리고 추리 영역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다. 공포와 환상! 그가 개척자였고 선구자였으니 거기에 걸맞는 문학적 위치와 평가에 대해 나는 시비걸 생각이 없다. 그리고 공포와 환상은 나의 책읽기 취향에도 맞지 않으니 그 부분에 대해 리뷰를 쓴다는 게 영 마음이 움직여 지지 않는다. 나는 오직 그의 추리 세계에 대해서만 몇자 적을 뿐이다. 이 말은 본 저서에는 추리 장르뿐 아니고 공포와 환상을 테마로 하는 장르도 있으나  나는 잘 알지도 못하고 흥미도 없는 공포와 환상에 대한 부분은 이번 리뷰에서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포의 추리소설에는 추리만 있을 뿐이며 소설은 없다.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찾아야 하므로 포는 사건 현장에 남겨진 단서를  차근차근 훑어가면서 이윽고 범인을 찾아내는데 성공하지만 독자는 그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오직 포 혼자서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 어느 누구의  동행도 거부하면서 오직 혼자서만 범인을 추적하고 그리고는 직접 그 그물을 던져서 멋지게 생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는 어떻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는 지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하지만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포의 설명이라고 하는 것은 추리 그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연구 성과 또는 평소 신념을 그저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범인을 잡아가는 과정속에서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독자의 참여와 판단을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와 배려는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포의 작품에는 결국 어려운 추리학만 남아 있고 호기심으로서의 추리과정과 재미로서의 소설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독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면 소설이 아니라 학문이요 보고서일 뿐이다. 그는 소설 쓰기를 한 것이 아니라 학술회장에서 연구자료를 공표한 것에 불과하다. 개척자로서 포의 노고와 업적은 마땅히 치하할 일이나 추리작가로서의 능력에 있어서 글쓰기 방식이나 추리기법에는 왠지 채워야 할 구석이 많아 보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판단일 뿐이며 나의 평가에 의해 애드가 앨런 포라는 작가의 문학사적 성취가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4-06-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만 있고 소설은 없다' 정말 정확한 표현이군요. 제가 맨날 포의 작품들을 읽고 느낀 허전함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지나치게 문장의 기교를 부린 요즘 작품들이 더 후지다.라구요.^^

청휘 2007-02-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세상에 포만큼 최고의 작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 봤을 때.. 뭐야? 이게.. 라며 손사레를 치게 하는 게 그의 작품이죠. 하지만 웬지 또 읽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읽다보면.. 어느덧 빠져들고.. 어느덧 포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 때 느껴지는 마음의 찌릿찌릿함이란.. 아직 이걸 느끼지 못 하신 것 같은데.. 시간이 좀 흐른 후 포의 책을 한번 더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제가 봤을 때 정말 소설다운 소설이고 '이런 게 문학이구나..' 라고 생각되더군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신이란 무엇이며 누구인가? 인간은 신을 전지전능하다고 말한다. 못 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며 하기 싫은 것은 또 곧 죽어도 안할 수 있는 게 신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추앙하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예배를 드리고 나아가 그들의 힘을 빌어 세상에서 원하는 그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신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목적하는 것을 얻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구체적인 성과는 검증하지 않은 채 무조건 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신이란 정말 대단한 존재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다. 신같지도 않은 것들이 신입네 하고 거들먹 거리는 꼴이란 정말이지 도무지 꼴사나워 볼수 없는 지경이다. 서로를 불신해서 항상 감시하고, 제 능력만 믿고서 다른 신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며 서슴치 않고 일탈을 행한다. 또한 자신들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인간들 위에 군림하면서 평화를 깨뜨리기도 한다. 능력은 타고나서 제 마음대로 휘두르지만 수양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반목하고 투쟁하고 시기 질투하면서 세상을 오히려 어지럽힌다. 마치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재주 하나 믿고서 오만 방자하게 구는 인간 세상의 패륜아들을 보는 듯하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엄마며 아빠며 가리지 않고 주먹질에 단말마의 비명에 자기 뜻을 관철할 때까지 무한정 보채기만 하는 버릇없는 어린아이들을 보는 듯하다. 신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시기를......


사실을 정확히 보자. 신은 죽었다. 아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아득한 먼 옛날에 정당성 없는 독재자는 그의 권력을 영원히 지키고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어 무지몽매한 백성을 대상으로 하여 그 대리인으로 자처했을 뿐이다. 애초부터 신이 있어 독재자에게 그의 능력과 권한을 위임을 해준 것이 아니라 독재자는 스스로 살기 위해 신이라는 모델을 창조해 내어 이용했을 뿐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신에게 의지해 그 무엇을 구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지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