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랫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어른을 위한 동화 12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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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릴 적 기억은 이제는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다 세월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고 아주 극히 일부만이 내 안에 떠돌고 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을 부여잡고 싶어도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양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나 스스로를 옹골차게 관리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 기억 중에는 예쁜 것,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들도 있고 반면에 아픈 것, 추한 것, 부끄러운 것들도 있다. 어른이 된 이 시점에 어린 시절을 무조건 애타게 그리워하며 추억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때도 이미 인간으로서 오늘날 겪고 있는 희노애락의 미추를 고스란히 경험하였기 때문이리라. 마냥 되돌아갈 수 없으니... 


아이도 이미 인간이다. 모랫말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하고, 어느 순간은 즐거웠다가 또 다른 순간은 참을 수 없는 두려움속에 지새우는 것이다.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뭘 알겠느냐며 무시하고 폄훼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다 컸으며 어른 못지 않게 알 것은 다 안다고 말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어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도 엄연히 가지고 있어서 이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른들을 원망하며 때론 분노하지도 않았던가! 애어른 같다거나, 발칙하다거나 혹은 당돌하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감정을 깍아내릴 것이 못되는 것이 그들이나 어른이나 인간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다. 다들 알지 않는가!


황석영의 어릴 적은 전쟁시절이다. 물리적인 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거나 아니면 그 전쟁 후 인간들의 삶의 전쟁이 진행 중에 있거나. 어른들이 펼쳐놓은 무자비하고 살벌한 세상속에서 아이들은 제힘으로는 어쩔 도리없는 운명에 순응하며 나름대로의 세상살이를 통해 인간, 삶, 정, 진실, 이념 따위를 체득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시절에 아이들이 이 무슨 고통이냐며 측은히 여길 필요는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면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의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그대로 물려주기 때문이다. 총성있는 전쟁이든 총성없는 전쟁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어차피 우리는 무수한 이름의 전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오늘을 회상할 때에는 전쟁속의 추억으로 그릴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은 재미없다.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재미도 없거니와 그의 문체는 대체로 건조하다. 전후 맥락이 매끄럽게 연결되었다고 보기 힘든 구석이 있다. 정신 단단히 차리고 엄숙히 몰입하지 않는다면 그가 풀어가는 이야기들을 평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갈등과 대립, 싸움과 상처, 잔학과 소외의 깊은 바다에 우릴 빠뜨려 놓고서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과 일상적인 부조리를 같이 체험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남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세상,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상, 언제라도 나에게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세상속에서 거칠게 부대끼고서는 며칠동안 그 진하고 독한 여운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것만은 확실히 선사해준다. 밉거나 혹은 고맙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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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0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구찜님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몰개월의 새 황석영 중단편전집 3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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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것 저것 재어보고 비교해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은 행복하다. 사람에게 선택이 남아 있다는 것은 기대를 가지고서 해야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며 아직까지 절망은 아니라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이라는 인간이 비통해하며 내뱉었던 말이런가?  고로 햄릿은 행복한 인간이다.  왜? 그는 그래도 양자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만큼 여유로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 햄릿은 세익스피어의 비극에 절대로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에 양자간의 결단으로 고민하지 않는 인간이 또 어디 있으랴! 햄릿이 비극이라면 세상은 온통 비극뿐이고 또 사람들은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다자간의 아주 복잡한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며 그 어떤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햄릿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

 

한병장과 미자는 둘 다 인생의 종착역에 서 있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한병장은 월남전으로 파견되어 자기 목숨을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한상병은 곧 죽어도 월남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미자는 딴거 없다. 뭇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고 몸을 팔지만 그녀가 그러한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는 그녀를 선택하는 남자와 함꼐 그 세계를 떠나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 창녀로서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창녀 생활은 역설적이게도 창녀 생활을 탈피하는 기회를 엿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절망이라 부른다. 한상병과 미자는 바로 그 막다른 골목에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절망이라는 늪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뽀족한 수가 있는가? 절망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여지는 널려있는 것인가? 희망조차 꿈꾸지 못하는 삶속에서 한상병과 미자는 그저 순간적인 생명을 연명해갈 뿐이다. 희망없는 사람끼리 만나고 정을 나누는 일상! 같이 밥먹고 같이 한이불을 덮으며 의미없는 안부를 물어보지 않으면 그대로 죽음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은 그것으로 희망이 생긴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상병은 월남전에서 살아오면 그 다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미자는 한상병을 떠내보내면 그걸로 끝이다. 따라서 미자의 선물을 무심코 남지나해에 던져버린 한상병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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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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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배워서 사회의 가장 낮은 일에 매달려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 가진것이 없어 가진자가 제공하는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도 마다할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해하며 가진자 들의 부의 재생산을 위해 고단한 하루살이형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힘없어 억눌리고 아니꼽고 더러워도 풀어가는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마냥 당하고야 살아가는 답답하고 가여운 사람들 등등의 인간 유형에 대해 황석영은 관심을 가지며 지금까지 몰두해왔다. 세상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나보다 더 비천하고 곤궁한 인간들에 대한 탐구는 기본적으로 그들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같은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한사람 두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쌓였던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게 되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침내는 개선과 시정을 위한 행동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대중도 서로 합치고 힘을 모으면 당당한 민중이 되어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타파하는 데 한몫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낱 대중이 민중이 되어 우리 사회의 개선을 위해 기여한 사례는 그 성공보다는 실패로 끝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대중이 민중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는 대중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각개격파식으로 전개되는 외부의 회유와 압력에 여전히 무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사회를 바꾸고 나라를 변화시킨다는 원대한 꿈은 그들에게는 없었으며 오직 현실의 고단함과 억울함이 시정된다면 적어도 나 하나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을 외관적으로 결속할 수 있도록 만든 민중이라는 외투는 얼마든지 벗어던질수 있고 스스럼없이 무리속에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위와 동혁은 끝까지 투쟁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나 나머지는 그렇지를 못했다. 억울한 호소가 수용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성취한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순진하였고, 위기모면을 위해 펼치는 공사소장의 쇼와 기만책에 그대로 무너질 만큼 그들은 여전히 어리석었으며, 수없이 단련되고 경험을 축적하여 단계적으로 대응책을 조절할 수 있는 노련한 작업반장류에 비해 그들은 여전히 즉흥적이었고 미숙했다. 중상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던 대위를 남겨두고 동혁은 스스로 산화해버리고 말았다. 힘없는 대중이 민중으로 전환하여 모이고 외치고 싸웠어도 대부분 실패로 끝난 아픔과 공포를 동혁은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극복하고 승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순리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한 개인의 목숨이 필요로 하는 사회는 비상식적인 사회다. 지금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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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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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에 대한 관심은 최근의 일이다. 그가 우리 문단의 거목이며 보수의 이문열이 있다면 진보에는 황석영이 있다는 문단의 평가는 그간 나의 눈과 귀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전혀 잡히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요즘처럼 강렬하게 내 의식을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나는 기억한다. 최초로 그를 만난 것은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텔레비젼 화면속이었으며 그때 그는 김대중 대통령후보 찬조 연설자로서 지지연설을 하고 있었다. 1987년이다. 기골장대하고 길게 드리워진 모발을 가지런히 빗고서 눈은 가느다랗고 폭은 짧은 편이었지만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남은 끝이었다가 느닷없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국보법 위반으로 큰별을 달게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외피적인 근황만 그저 뉴스속에서나 내 시선을 붙잡았을 뿐이었고 끝내 그의 정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소신과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건만 나에게는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 운동은 꾼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작가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두가지 일을 모두 진정으로 잘 할 수는 없으며 소설가 황석영은 어디까지나 소설가이어야 하며 그때서야 비로소 황석영다울 수 있다는 믿음은 소설이외의 딴길로 외도하는 그를 진정성있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 버렸다. 물론 나의 시각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 나는 나의 오해 일수도 있고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 지금까지의 태도가 그릇된 것이었다면 기꺼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주 그를 만날 작정을 하였다. 작가가 현실에 참여하여 그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간혹 작품세계와 실제 세계가 들어맞지 않아 날 당혹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황석영은 아니다. 그가 정녕 현실에 계속해서 참여하자고 한다면 일관된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단편이라서 그런가. 여태까지의 나의 책읽기는 주로 장편에 치중되어서 축약의 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황석영은 대단히 불친절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내 성질이 몹시도 급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의 작품은 독자의 편한 책읽기를 용납하지 않는 어려운 것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차분한 음미를 통해서야 진가가 드러나므로 독자의 인내를 필요로 하거나이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황석영이냐 아니면 작가 탓만 일삼는 천박한 본인인가? 아무튼 첫 대면한 황석영은 그리 호락하게 나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독자라면 으레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함을 넌지시 알려주듯이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황석영과 소통하며 과연 무엇이 사실인지를 밝혀낼 것이다. 물론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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