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짜리 기획력 - The Planning Power
하우석 지음 / 새로운제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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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직장인이라면 직위고하, 근무부서를 불문하고 기획이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에 항상 갇혀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결재권자가 요구하는 기획에 100% 부응하는 직장인들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기획은 어려운 거고 이 어려운 기획을 어느정도 해내는 직장인이 상사에게 인정도 받고 승진도 빨리할 수 있는 것이리라! 승진의 지름길이다 보니 직장인들이 원하는 부서 중 으뜸인 것이 기획하는 부서이다. 직장의 명운을 좌우하며 때에 따라서는 직장과 자신에게 엄청난 대박을 터뜨려 주는 업무가 바로 기획이기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심심찮게 자주 목격하는 것은 능력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기획업무를 맡았다가 무능한 인간으로 당장에 낙인 찍히고 더 나아가서는 회사를 말아먹게 만드는 지경으로 끌고가는 경우이다


기획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펼쳐보이고 있는 이 책은 지극히 일반론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즉 본서의 내용들은 비단 기획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직장 또는 사회생활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활동 인구들에게도 두루 적용될 수 있는 사회인들의 행동양식 같은 내용이다. 중간중간 기획에 한정해서 바라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크게 봐서는 직장 생활 잘하기에 대한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에 관한 것이지 기획 분야에 특화된 내용은 발견하기 어렵다. 또한 저자는 기획를 잘하기 위해서 직장인들에게 삼라만상 모든 것에 통달한 초인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아무리 조직내에서 기획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또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의도는 이해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수용하고 실천할 것을 상상해보니 그냥 숨만 턱 막혀온다. 물론 책대로 그대로 따라하는 순진한 인간은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왕 그 정도로 기울이는 노력이라면 차라리 대통령 하겠다.


100억짜리 기획력! 회사에 100억원의 이윤을 안겨줄 수 있는 기획이야 누구든지 바라는 것이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향상된 기획력을 얻기 위해 본서를 읽었지만 솔직히 가슴을 파고드는 100억짜리 내용은 없었다. 어쩌면 저자나 출판사는 내용보다는 책 제목에 승부를 건 듯하다. 이것도 출판기획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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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과 김용옥 - 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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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나의 사고체계와 그마나 갖추어진 논리성 형성은 이문열에 힘입은 바 크다. 그 당시 이문열은 대한민국 최고 소설가 중 하나였고 그에 대해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로서는 신문이나 방송의 이문열에 대한 그러한 평가를 그저 믿고 수용하고 책 구입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소설을 통하여 접한 이문열은 세간의 평가가 단순한 덕담이 아닌 그럴만한 사정에 기인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문열이 구사하는 문장의 유려함과 논리성은 나는 지금도 대한민국의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탁월한 것이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고 스스로의 판단능력이 생기게 된 후부터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문열은 보수주의자라는 것을. 그리고 보다 폭넓은 직간접적인 경험과 정보수집을 통해서 이문열 스스로도 그렇고 세상의 일반 평가도 그를 보수주의자라 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다 소중한 가치관이고 세상은 하나의 획일적인 가치체계로 굴러갈 수도 없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혹은 보수주의자를 적대시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나는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더나아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수구반동으로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나 또한 문득문득 이문열은 보수가 아닌 수구적인 사람임을 확인해 나가고 있다


보수! 도대체 보수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냥 어느 한순간에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방식으로 찰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갖은 시행착오를 겪고 오랫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타협과 공통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소중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지키면서 물려주어야 할 것이지 고치고 바꾸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가치체계다. 다 맞는 말이다. 지킬 것인가 또는 바꿀 것인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이의 인식과 판단의 차이이며 따라서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왜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무조건,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맥락이 전혀 와닿지 않는 궤변으로써 그저 죽자사자 지켜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이미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특히 사회 전체의 발전과 개선을 위해 바뀌어야 함이 정당함에도 소수 특권 세력의 이익유지나 향상을 위하거나, 정권에 아첨 또는 정권 획득을 위한 방편으로써 사회안정이나 질서유지를 원하는 일반대중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그야말로 수구의 전형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이문열에게서 이러한 수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순수냐! 참여냐! 예술가 본인에게도 그렇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아직까지 시원하게 결론나지 않은 문제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술가는 예술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기가 노는 물은 따로 정해져 있다. 팔방미인치고 제대로 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작가적 역량으로 볼 때 그 누구도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이문열이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지향을 공표하는 것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에 안 들수는 있어도 말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왕 참여한다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논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문열은 작품 따로 현실 따로 놀고 있다. 작품속에서 나타나는 논리정연함이 현실에서는 왜 어거지로만 표현되는지 정말 알수 없는 일이다. 그가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그래서 수구반동이라고 욕 먹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주장과 비판이 있어야 하나 너무나 자주 나는 그의 주장들에서 단지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넘어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는 것이다.


건전하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의 진면목을 보고싶다. 지금의 이문열에게서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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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2 (반양장) - 고독의 나날속에도 붓을 놓지 않고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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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편 뿐만이 아니고 2편에 나오는 우리 선조예술가의 대부분은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그들이 불우했던 것은 딴 이유가 아니라 그림 가지고서는 밥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점은 도화서의 화원들도 마찬가지다. 환쟁이가 천대받던 그 시절에 화원이라고 해서 무슨 팔자고칠 정도의 녹봉을 받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들도 엄연히 신분상으로는 중인에 속하였기 때문에 재산모으기 또는 불리기에는 현실적인 한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등 따스고 배부르면 예술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 한다. 현실에서의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잊고 달래고 위안을 삼고자 하는 노력이 곧 예술로 승화 발전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크게 빗나가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에외없는 원칙 없듯이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도 나태해지거나 현실에 안주함이 없이 부단히 갈고 닦아 경지에 이른 특출난 예술가를 우리는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불우한 환경 아래에서만 뛰어난 예술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며 뛰어나 예술가가 될려면 반드시 환경이 불우해야 하는 것 역시 절대 아닌 것이다


저자 유홍준은 단연코 말한다. 단군이래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는 김홍도라고. 작품의 수에 있어서나, 다양한 장르에 있어서나, 그 품질에 있어서나,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정신에 있어서나 그리고 평소의 반듯하고 깔끔한 인격적인 생활자세에 있어서나 어느모로 보나 김홍도가 최고라는 것이다. 또한 김홍도는 비록 화원출신으로서 크게 곤궁한 삶을 살지 아니했음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으로 예술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김홍도는 졸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그의 사망년도가 미스테리인 사실에 비추어 인생말년에 그가 일본에서 활동했다는 소리도 들리며 일각에서는 이를 기정사실화하여 영화화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물론 유홍준은 확신에 찬 어조로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튼 진실은 하나니까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화인열전 1,2권으로 우리 회화를 섭렵할 수 있다고 까분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하며 나같은 완전 초보가 우리나라 회화에 쉽게 접근할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을 지어줄 것을 저자에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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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반양장) -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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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하지만 관심은 줄곧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 때가 되면 관련책을 꼭 구입해서 보리라 마음 먹은 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여기에서 당연히 그림은 우리 한국화를 일컫는다. 난 늘 생각해 왔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은 결코 예술이 아니며 그것을 만들어낸 자의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따라서 내가 유독 그림 중에서 한국화에 그것도 근대이전 그림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은 서양화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내가 어느 정도 노력을 하면 쉽게 그 세계에 다가갈 수 있다는 확신때문이었다. 마침 유홍준는 완전 초보인 내가 한국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근대 이전 한국화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였으니 나로서는 정말 둘도 없는 찬스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는 송구스러움과 참담한 자괴감 뿐이다. 익히 교과서에서 이름 석자를 들었고 그림 몇점을 볼 수 있었던 그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나는 너무나도 얕잡아 보았던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잡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디 내세울 것도 없는 초라하고 왜소한 인간이 책 한권으로 우리 회화의 대강을 꿰뚫어 보겠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으니 그저 낯 뜨거울 뿐이며 지금에야 정신차리고 보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다. 나는 조선시대 우리 그림은 거의 다 비슷한 부류에 속한다고 보았고 따라서 세부적으로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커다란 한줄기 틀로서 담을 수 잇다고 보았다. 왜냐고? 겉으로 보니 거의 다 비슷하게 보여서. 그래서 내 조금만 노력하면 이 그림은 누구거며 이 사람의 특징은 이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아니 한 90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내뱉을 수 있다고 기대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흔히 얘기한다. 우리는 우리가 마치 우리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착각이다. 눈과 귀에 익은 것과 가슴에 담긴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 역사가 그러하고 또한 우리 회화가 그러하다. 나는 내 뜻대로 우리 회화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당연하지만 비로소 깨달았으며 나아가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그래서 한국화의 세계로 인도해 준 저자가 고맙기도 하지만 괜시리 얄미워진다. 하지만 그나마 눈요기라고 했으니 2편에서는 가슴속으로부터 밀려오는 조금의 느낌이라도 가지고 책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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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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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은 태생부터가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초적인 비극성때문에 일생을 비극적으로 살다가 마감하였다. 또한 그의 딸들 역시 하나같이 비극적이다. 세상을 간단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비극과 희극만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비극이 아니라면 희극이고 조금이라도 희극적이지 않으면 그냥 비극적이라고 쉽게 나눌수 있기에 그래서 김약국 딸들의 삶도 조금이라도 비극적인 구석이 있기에 한마디로 비극적이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삶의 결정과정이나 그 결정으로 인해 떠안게 되는 삶의 억눌림이 그대로 비극적이기 때문에 나는 단연코 그녀들은 비극적이라 칭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딸들의 삶은 많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김약국의 딸들이 살아갔던 시대의 딸들은 자신의 삶조차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의 결정에 그대로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삶이었다. 그래놓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과 피해는 순전히 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억눌린 시대속에서 인생의 중대사를 운명에 맡겨야 하는 것이 하나의 비극이요, 스스로 관여하지 않은 결정이 초래하는 온갖 불행을 또 그대로 감수하여야 하는 삶이 또 하나의 비극성이다. 그리고 김약국 딸들에게는 죽음, 정신이상, 불륜, 방황 등 최악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박경리 소설에 불만이 있다. 대하소설 토지도 읽었고 이번 장편소설도 읽었지만 나는 단언하건대 박경리는 사건에는 강할지언정 묘사는 약하다. 사건을 일으키고 그 시작과 끝을 서술하는 솜씨는 뛰어나나 사건을 움직여가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에는 그 뛰어남을 인정할 수 없다. 어쩌면 전혀 성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일방적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설명하고 난 뒤 독자들은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한다. 소설에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이 있고 그 판단의 자료로서 저자는 세부적인 상황묘사를 제공해야 할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경리는 이를 소홀히하며 어쩌면 이런 점에서 대단히 불친절하다. 김약국 딸들의 삶이 비극적인 것은 저자가 그렇게 몰고 가니 알아차리겠는데, 그 딸들이 왜 그렇게 내몰리는지 그녀들은 왜 그런 삶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하여는 저자는 너무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다. 저자와 독자간 교감이 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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