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 NEON SIGN 7
청예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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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된 영화 "파묘"는 맥락상 우리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에 대한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듯 하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듯 세계 많은 나라들에는 자신들만의 수호신이 존재하고 그들에 대한 믿음이 국민들의 신앙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호신은 특정한 장소, 사람, 집단, 직업, 문화, 직업, 민족 등을 보우하는 보호자, 수호자, 후원자 등의 역할을 맡는다고 여겨지는 신령이라고 위키 백과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민속문화에서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며 국가나 민족을 위한 수호신일 경우 호국신이라고도 지칭하는데 파묘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맥락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수호신에는 다양한 대상들이 존재하며 책의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커다란 눈에 순하기 그지없는 소를 수호신으로 여기는 집단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면 적잖히 소설의 내용이 어떤 형식을 띨 것인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우기 "파묘"와 "사바하",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의 추천이라니 믿고보는 소설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그 첫 페이지를 펼쳐 읽어본다.



이 책 "수호신" 은 철학 동아리부원인 이원이 오랫만에 열린 동아리 회식에서 신입회원 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모호하게도 한 달 전 사고사를 당한 경우에 이어 은호라는 인물도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고를 통해 동아리와 학교는 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들게 되며 사망한 두 명의 교차점에는 이원이 존재함을 설정해 놓았는데 이러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지낼법 한 일임을 느끼게 한다.

이원의 슬픔을 위로하는 설의 도움이 있지만 이원에게 나타나는 경우의 죽음 이후로 꿈꾸게 되는 흰소에 대한 의문은 결국 둘을 점을 보러 가거나 부산에 있다는 AI 승려를 만나러 가게도 하는 활기찬 전개를 보여준다.

사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을 사는 나, 우리 역시 자신의 안위에 문제가 있거나 지속적으로 반복해 똑같은 꿈을 꾼다면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을 노릇이고 그러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점집이나, 무당이든 혹은 다른 무엇을 통해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경주하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원과 설은 나, 우리의 심리적 상황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진채 지금껏 믿지 않았던 신적 존재감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에게 혹여 있을지 모를 저주나 이러한 상황을 제거하기 위해 매진한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불안감을 갖게 된다.

파묘 역시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가질 수 있는 영화이듯 소설 역시 그러함으로 이어지는 분위기임을 살펴볼 수 있다.



서양이나 중국의 오컬트 분야들과는 달리 한국만의 독특하고 무언지를 확연히 밝힐 수 없는 존재감에 대한 실증을 영화나 소설로 만나볼 수 있는 일은 무척이나 우리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신적인 존재감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터에 매우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만들어진 신이라 주장하는 그 누군가의 말을 따르면 신은 존재치 않거나 있어도 믿음을 부여할 대상으로 자리할 수 없다.

태어날 떄 부터 신과 함께라는 인간의 근본을 잊고 믿음에 거부감을 갖는 우메함을 저지르는 인간에게는 수호신 보다 악신으로의 자태가 더 자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설명하지 않으려는 것을 믿고 용서를 비는 마음.." 이라는 문구를 통해 보면 인간의 의식이나 지식만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로의 신에 대한 믿음의 여부는 그런 나, 우리에게 불안감을 갖게하거나 해소하는 등의 다차원적인 의미를 제공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수호신은 자신을 지켜주는 신이기도 하지만 해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이해해야 한다.

좋고 나쁜 신이라는 구분 역시 인간의 사유에서 비롯된 바라고 생각하면 다양한 함의를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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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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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작품으로 성경 이외에 최다 출판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한 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런 의미 없이 많이 출판되고 팔려 읽혔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익히 여러 지면을 통해 소설 돈키호테가 어떤 소설인지를 알고는 있지만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일은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유일한 취미로 하고 있는 내게도 아쉬움을 남기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생각하기 보다 무조건 행동하고 보는 사람들을 향해 돈키호테 같다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돈키호테가 허무맹랑하고 무모한 일을 쫒는 인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본다면 절실하게 이루고 싶은 꿈을 꾸고 꿈을 향해 거침없는 도전을 실천한 인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오늘을 살며 이것 저것 재느라 꿈도 없이 사는 나, 우리에겐 수 없이 많은 위로와 도전을 위한 다양한 문장이 주는 힘보다 돈키호테식 무모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꿈을 꾸고 도전을 즐기는 모험을 감내하는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떤 함의를 갖고 있든 돈키호테를 작품과 연결시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킨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 를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나의 돈키호테" 는 30살 주인공 솔이는 방송국 피디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돈키호테 비디오가게의 사장인 장 아저씨가 사라진 비디오가게에서 추억에 잠기다 돈키호테와 같던 장 아저씨를 찾기로 결심하고 그 내용을 유튜브로 방송해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장 아저씨의 오랜 과거를 찾아 관련 인물들과 인터뷰를 하며 돈키호테와 같던 장 아저씨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그가 진짜 우리 사는 세상에 약한자들을 돕고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돈키호테라는 사실을 유튜브 구독자들과 확인하는 과정들을 매력도 넘치고 몰입감에 빠지는 분위기로 열어가는 책이다.

추억속의 솔이는 돈키호테 장 아저씨를 돕는 산초였고 같은 또래의 성민, 대준, 한빈, 새롬 등과 같이 '라만차 클럽' 을 결성해 함께 꿈을 꾸던 이야기들을 반추하며 세월의 흐름에 변해버린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을 살필 수 있게 하는가 하면 돈아저씨로 불리는 장 아저씨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도 족적을 찾는데 기지를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자꾸만 머리속으로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소설의 결말을 독자가 마음속 혹은 생각으로라도 써보게 되는 일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일이자 좋은 작품이 보여주는 에너지라 할 수 있을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삶이라는, 인생이라는 시간을 향유하고 있다.

그런 삶과 인생을 그저 아무런 꿈과 희망없이 보내기에 너무도 아까운 시간임이 분명하다.

나, 우리의 성장과 오늘이 있기까지는 분명 누군가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힘이 작용했으리라고 볼 수 있고 더구나 달성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나,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인물이 있다면 적어도 나, 우리는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 우리에게 있을뿐이지만 소설속 돈아저씨의 세상을 향한 도전과 저항은 저으기 얄팍한 생각으로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나,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을 갖게 만들어 준다.

돈아저씨 스스로가 돈키호테이고 싶었지만 결국 돈키호테가 되지 못하고 산초가 되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기억속에 영웅으로, 세상을 구할 돈키호테로 인식되는 한 영원히 그는 돈키호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된다.

지금 나, 우리에게도 그런 돈아저씨같은 돈키호테가 곁에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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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룰렛
오윤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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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와 룰렛은 사실 조합나 개연적 상황을 잇기 어려운 대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면 과연 저자가 어떤 맥락으로 금붕어와 룰렛을 조합해 소설을 썼을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룰렛은 흔히 카지노에서 행해지는 도박의 한 종류로 인식할 수 있으나 매우 간단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치 않고 복잡한 내력이 숨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금붕어와 룰렛의 조합이라니, 금붕어를 의인화하면 무지한 사람 혹은 우매한 사람으로 읽을 수 있는 바, 그러한 사람 또는 삶과 룰렛의 조합은 적잔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도박과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도박에 대한 정의 역시 사람마다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기에 각각이 다르다 할 수 있지만 합법적 도박으로의 투자라는 의미는 나, 우리에게 투자와 도박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 한 편의 멋진 소설을 쓴 작가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금붕어 룰렛" 은 현실의 소설적 반영이라는 의미를 일깨워 주듯 사회적 흐름으로의 투자 대상인 가상화폐, 코인의 등장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사회적 문제로의 행태인 '사기'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작품이다.

무릇 인간의 욕망은 끊임 없으며 그러한 욕망이 부른 어처구니 없는 투자사기에 말려드는 일은 비단 소설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발생하는 개연성 측면이 농후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자산을 모으고 투자를 해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마치 금붕어가 밥을 먹듯이

일정량 이상의 모이를 먹기만 해 배가 터지는 줄 모르는 우매함을 갖듯 투자에 있어서도 욕심이 과하면 그르칠 수 있음을 하나의 사건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우리 사는 사회에 있어서도 투자관련 사기 사건은 역사를 통해 보면 무수히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조롱하고자 하는 마음 보다는 그들의 투자에 대한 환상이 잘못되었다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투자해 돈을 번다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모한 도전이자 투자임이 분명하고 보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이러한 괸계의 연속성이 바로 금붕어 룰랫과 맥락아 닿아 있다 할 것이다.



투자를 빌미로 이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은 현실 속 우리 삶이 빚어내는 다양한 관계들의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표면적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인간시장의 단면들에 저으기 실망스러움을 갖게 되는 안타까움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나쁜 것만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다양한 범죄 기록물 또는 책들을 보았지만 새롭고도 토악질 날 수 있는 범죄현장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움을 넘어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느낌으로 전해진다.

욕조에 시체를 담가 염산으로 녹여 버리는 일은 가히 끔찍함을 넘어서 그 현장에 있었거나 보았다면 아마도 평생을 기억속에서 지우고자 애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복잡한듯 하지만 흐름이 완만하고 뚜렷한 목적으로의 사건해결이라는 과제속에 코인 투자 맟 다양한 투자와 관련해 사기사건이 일어날 수 있음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재미와 몰입도 역시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라 독자들의 일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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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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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의미심장한 기운이 느껴지는듯 한 제목이다.

데...라니, 아름다우면 아름다운거지 아름다운데를 꼬집어 이야기 하는 것은 무언가 불편하고 마뜩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집필한 의도를 보면 적잖히 사회구조적인 부분에서 여성의 권리와 깨우침을 주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지난 시대를 통해 겪은 여성들의 수난사? 혹은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어 왔는지를 살펴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여성으로의 거듭남을 세기의 명작으로 치부되는 다양한 동화들, 그 속에 존재하는 주인공들, 특히 여성으로의 면모를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바로의 여성의 지위는 남성들에 의해 가리워 졌고 핍박과 억압적인 삶으로 귀결되었다 말할 수도 있다.

제목이 주는 직설적 표현보다는 내재된 의미가 남다른 중의적 의미로의 제목으로 이해하면 더욱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함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본다.

반전적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남성들의 여성에대한 시각과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는 동화속 주인공들의 새로운 면모에 대해, 어쩌면 페미니즘적인 주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 판단하는 동화 속 여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식의 틀로서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존재로의 인물상을 그려내고 그에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는 나, 우리의 모습 또한 바뀌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는 책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음을 생각할 수 있다.

언제 부터인가 모르지만 남성 위주의 사회가 형성되고 여성과 남성의 신분과 지위가 바뀌는 현상이 이뤄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동화는 무릇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울림을 주는 존재로 전문적인 의식이나 지식보다 월등히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저자의 동화를 주제로 한 여성의 지위, 삶의 변화를 이야기 하는 일은 개인의 입장으로서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표출될 수도 있었지만 오롯이 숲이라는 비교의 대상과 그 속에 존재하는 대상화 된 여성의 존재 가치에 대해 특정한 설명을 이어간다.

저자의 주장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성사회의 지난한 세월 역시 여성들에게 씻지 못할 아픔과 고통을 주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가부장적인 사회는 아니었음을, 최초의 사회는 모계사회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연유에서 남성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충분하고 다투어 볼 만 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저자의 여성에 대한 의식, 삶의 방향성에 대한 주장 등 다양한 부분에 있어 남성중심 사회에서의 모습들을 살필 수 있는 바 충분히 동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론, 본론, 결론 부분으로 나눠 보면 적지 않게 결론 부분에서 그간 이어져 온 강세가 사그러 듬을 지울 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느낌은 나만의 생각이나 의식이라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려는 의도를 생각해 보면 다분히 미진함을 느낄 수 있을것 같다.

남성과는 완연히 다른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거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입장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여성에 대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마주하는 내내 나, 우리의 의식에 자리한 고정관념적인 기제는 거부 또는 마뜩치 않음이라는 불편감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이기에 누구에게나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 있지만 인간이기에 평등을 바라는 작은 소망을 저버릴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동화를 읽어내는 이와 새로운 의미로 각색해 읽어내는 의미는 차원이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나, 우리는 어떤 의미로 동화속 여주인공들에게 대한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을까?

오늘까지의 시간이 여성들의 의식과 삶을 바꿔 왔듯이 앞으로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여성들의 삶이 비뀌어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동화를 이해하는 일도 모두 각자의 느낌과 의미를 얻게 될 일이라 생각하면 세상이라는 숲에 놓여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의 횡보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수 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는명확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하겠다.

보다 많은 여성이 아닌 남성들의 참여와 독서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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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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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는 일은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지만 무절제하고 감각적인 욕망으로의 성적욕망을 흔히 정욕이라 부르고 있음을 이해한다.

세상속 헛된 소망 또는 갈망이나 끊임없이 부채질하는 욕구를 뜻하기도 하는 정욕(情慾)은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욕망의 표현이자 포괄적인 타락적 묘사를 일컬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목은 정욕(情慾)이 아닌 정욕(正慾)으로 바른 욕망을 지칭하고 있어 과연 어떠한 의미를 담아 내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망에 대해 올바름이라는 기준을 갖다 붙이는 것은 과연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표현하는 의식들이 보여주는 욕망의 변주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이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자 이러한 주제를 던지는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사는 세상, 사회속에는 다양성이라는 표현 속에 숨겨진 의미를 쉽게 간파할 수 없지만 소설은 그러한 다양성의 경계 혹은 변주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눈여겨 보며 그들 역시도 소수이자 다양성의 주역으로의 일부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다양성 측면에서의 성적 존재감을 가진 이들,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하는것 이상의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과연 나, 우리는 그러한 다양성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 이상이거나 이하인 사람들을 마치 변태 취급하듯 하는 세상을 목도하게 될지는 나, 우리의 성에 대한 다양성 측면의 사유를 들여다 보고 고민하게 한다.

성적 흥분을 하는 사람들이 꼭 사람에게서만 성적 흥분도를 유지한다고,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올바르게 보아야 한다거나 혹은 풍선이 터지거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적 상황의 현상에 대한 흥분을 겪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다거나 하는 일은 서로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이해까지는 아니라도 그러한 상황에서의 느낌이나 흥분감을 알수는 있을 것이라 판단해 본다.

특수성애 혹은 이상성애로 지칭되는 성벽은 그야말로 다양성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의 성적 정체감과는 다르고 판이하다는 생각에 그들을 변태 취급하거나 성적 소수자로 낙인 찍는 불편한 사회가 만들어 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저자는 나, 우리에게 가장 민감하게 느껴지는 성적 정체감으로의 성벽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꼬집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가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의 문제나 해결법에 대해 보이는 우리의 의식과 생각들이 보여주는 가치관이 편협하고 차별을 가진 상태로 그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임과 동시에 정욕(情慾)이 아닌 올바른 욕망으로의 정욕(正慾)이 되어야 함을 비틀어 일깨워 주는 저자만의 독특한 표현법이라 할 수 있을것 같다.

식욕과 수면욕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표현 역시 인간의 특질적 기제로의 두가지 욕구는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동질성이자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욕망으로의 대명사로 읽을 수 있다.

그러한 욕구의 규칙화 또는 보편적이며 통합적인 욕구로의 올바름이 사회를 유지하는 규칙이라면 다양성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양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들이 느끼는 그러한 다양성이 내포하고 있는 성적욕망으로의 성벽은 차리리 나, 우리의 무지함이나 알고 싶지 않음으로 돌리는것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을 해보게도 된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다양성의 그물로 포획해 이해하고자 하는 안간힘을 쓰는 일, 그러한 일에 목숨을 거는 나, 우리의 오늘이 진짜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을 읽고 관련 내용에 대해 토로하기 보다 소설이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에 더욱 주목해 쓰다보니 횡설수설이 되었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더욱 집중해 읽게 되는 작품이라 나, 우리의 다양성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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