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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저자 파올로 조르다노는 <소수의 고독>으로 중견작가들만 받아온 '스트레가 상'과 '캄피엘로 상'을 25살에 수상하며 화려하게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는 입자 물리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지성인 저자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인류를 향한 집필을 지난 2월 29일부터 시작하여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의 저자 인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자를 치료하는 이탈리아 현지 의료 단체와 구로 단체에 전액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 세계 26개국 동시 출간되었다고 하니 많이 구매하여 좋은 일에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전염이 우리 자신에 대해 폭로하는 것에 귀를 막고 싶지 않다. 두려운 비상사태가 종료되면, 우리의 일시적 자각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질병의 본질이다. p10
전염의 시대에 감염 가능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호해야 한다. 감염 가능자들은 각자가 하나의 방역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38
설마 하는 안일한 마음이 끈질긴 질병으로 번져가고 있다. 재확진자가 계속해서 출현하는 이유 또한 느슨해진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모두가 각성을 하고 있었더라면, 이 불행은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만 걸리지 않으면 돼'가 아닌 '나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다'라는, 더구나 나 때문에 가족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매사에 주의해야 한다. 나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사람의 본성을 깨우는 건 싶다. 공포를 주면 된다. 그 공포로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 지켜보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기적인 상황이 닥칠 경우 책임자를 찾는다고 한다. 역추적을 하며 최초 발생 원인을 찾은 다음 마녀사냥을 한다. 마녀를 응징할 게 아니라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개인적인 위생관리가 중요한데 말이다.
중국을 향한, 아시아인들을 향한 분노는 정말 무섭고 처절했다.
에볼라, 사스 사태는 남일 같았다. 실제 주변에서 목격을 하지 못해서 체감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아니면 금세 그때의 감각을 잊어버린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이 다르다. 세계를 삼킬 해일 같은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번 코로나19가 장기전이 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겹의 장갑과 의복으로 무장을 하고 흥건하게 땀 흘리며 확진자들을 보살피는 의료진들을 보며 감동했고, 기초연금으로 살아가는 할머니께서 마스크와 쌈짓돈을 경찰관에게 전달해 주는 뉴스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들의 미래인 아이들도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있다.
그 누구도 고립되기를 원치 않는다. 세상과의 단절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저 참아내기에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절실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사이에 있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과 2미터 이상의 사회적 거리를 두고 싶지 않다. 그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욕구이다. p33
코로나는 끊임없이 변형,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이번 코로나19로 인류는 전염병에 대한 플로우를 확립하고 예방하는 철칙을 만든다면 미래에 우리는 조금만 아플지도 모른다.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음 편히 지낼 날들을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보냈으면 좋겠다. 확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애초에 없었으며 계획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고달픈 그들에게 외면이 아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줬으면 좋겠다. 온 힘으로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대한민국 파이팅!!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