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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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는 2008년 7월 췌장암으로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공학 교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록을 담은 책이다. 책의 분위기가 당연히 어둡고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고 명랑하기까지 했다. 엉뚱하리만큼 꿈 많은 소년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미식축구에 푹 빠져 살았던 학창시절, 공학도에서 교수로, 디즈니 이매지니어에서 다시 교수로 변신한 이야기 등을 읽으며 어쩌면 이렇게 삶을 알차게 살았는지 놀라웠고, 48년의 짧은 생애를 남들보다 두세 배는 즐기며 살다간, 유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의 주제는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저자는 무중력상태에 있어보기, NFL 선수 되기, <세계백과사전>에 내가 쓴 항목 등재하기, 커크 선장 되기, 봉제 동물인형 따기, 디즈니의 이매지니어 되기 등 어린 시절 꿈 대부분을 실제로 이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인생의 가장 큰 재산으로 꼽는 것은 단연 '시간'. 공부도, 일도, 연애도, 결혼도 그 때 그 순간 최선을 다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이가 성장한 모습을 본다든지,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노후를 보낸다든지 하는 일은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지 깨닫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가지고 싶을 만큼 탐나는 것인데도 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얼마나 얄팍한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 살아있는 것이 행운이라든가 삶이 곧 선물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사치스럽고 오만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죄스럽더라도 산 자의 몫을 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산 자로서, 비록 자신은 세상을 떠나지만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귀한 조언을 남긴 랜디 포시 교수. 부디 그의 영혼이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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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 이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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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융 심리분석 전문가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쓴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세계 각국의 신화와 민담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여성의 잠재된 본능을 설명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선생님이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언급하고 추천하셔서 알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역시 좋았다. 오래 전부터 설화나 민담 연구라든지 신화학, 문화인류학 등에 관심이 있었고, 여성학에도 관심이 있고, 최근 몇 년 동안 심리학, 정신분석학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그 모든 독서와 공부와 배움이 이 책 한 권으로 정리가 되는 듯 했다.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빨간 구두>, <미운 오리 새끼> 등 잘 알려진 동화들을 여성학,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부분만 읽어도 참 재미있다. 물론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도 깊다.



나는 오랫동안 여성을 뜻하는 영단어 'woman'이 자궁을 뜻하는 영단어 'womb'과 'man'의 합성어인 줄 알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womb'이 아니라 'woe', 즉 늑대(wolf)의 옛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원초적인 여성성의 기저에는 야성의 늑대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실제로 세계 각국의 민담이나 신화, 전설 등을 찾아보면 늑대가 등장하는 것이 많고 대부분이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 또한 여성과 늑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과 가부장제, 근대화 등으로 인해 늑대 같은 야성적 자아는 제거되고 여성은 오로지 어머니, 성모, 천사 같은 포장된 이미지를 강요받게 되었다. 그 결과 여성은 내면의 야성적인 자아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압하며 심리적인 압박과 공황 상태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를 깨닫고 자신의 늑대, 즉 야성적 자아를 회복한다면 여성은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늑대가 상징하는 야성적 자아를 심리학에서는 '아니무스'라고 표현한다.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남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무스와 여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마가 공존하며, 두 가지를 균형있게 발전시킬 때 비로소 성숙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화나 민담에서는 아니무스를 늑대, 아버지, 오빠, 왕자 등 다양한 동물이나 남성 캐릭터로 표현한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천대받던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든지, 심부름 가던 빨간모자가 숲속에서 늑대를 만나 위험에 빠졌다는 등의 이야기도 원래 여성 내면의 다양한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단군신화나 삼국유사의 일화들이 사실은 고도의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야성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저자는 야성성과 직결되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내면의 늑대에게 삶을 불어넣으라고 충고한다. 삶의 반대말인 죽음은 단지 신체의 기능이 정지하고 목숨이 꺼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꿈이나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고 마음먹었던 계획을 이루지 않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 또한 죽음이다(그렇다면 나는 이제까지 몇 천 번은 죽었다 깨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꿈과 계획이라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산다면 내면의 늑대는 삶을 이어갈 생명력을 얻어 활발히 움직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클린턴, 레이디 가가 등처럼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한 여걸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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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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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이 나오기 전과 후 하루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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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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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체재한 내용을 담은 여행 에세이다. 하루키 에세이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국내에서만 35쇄 이상이 출간되었으며, 손미나를 비롯해 많은 유명인들이 내 인생을 바꾼 책으로 거론할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이 책이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에 비해 잘 읽히지 않았다. 그야 재미도 있고 좋은 문장도 많지만, 하루키가 머리말에 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잃어버린 듯한', '일종의 뷰유감 혹은 유동감'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루키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노르웨이의 숲>이 나오기 전과 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지만.



대부분이 현지 사람들의 모습이나 문화, 풍습 등을 묘사하는 내용이지만, 천안문 사태라든가 일본 거품경제 등 당시 국제적으로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이슈들을 거론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책 말미에서는 당시 절정에 달해 있던 일본의 거품경제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 일본을 떠나 있던 3년 동안 비행기 좌석이나 자동차 같은 물질로만 자신의 존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보면서 작가인 하루키가 얼마나 황당하고 허탈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당시 일본에서 버블의 형성과 절정, 붕괴와 몰락을 모두 목격한, 이를테면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작가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버블에 대한 글을 썼는데, 만약 그 때 하루키가 일본에 있었다면 작품 세계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니면 그 때 마침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만의 작품 세계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루키의 '잃어버린 3년'이 정말 잃어버린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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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행복한 오기사의 스페인 체류기
오영욱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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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는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건축가 오영욱 님의 스페인 체류기다. 나는 이 분을 몇 년 전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게스트로 나오셔서 알게 되었는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이과생이 그나마 미술과 가장 비슷하다는 이유로 건축을 전공으로 택해 건축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우리 아버지의 이력과 비슷해서 전부터 이 분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어보니 그림을 좋아하는 분답게 책의 절반 이상이 그림이다. 인물은 졸라맨을 살짝 부풀린 듯한, 좋게 말해 귀엽고 나쁘게 말해 어설픈 느낌의 캐릭터로 그리는 데 반해, 건물이나 사물은 놀라우리만큼 현실적으로, 자세하게 그린 점이 특이했다. 건축가라서 그런가, 건물이나 공간에 대한 묘사와 표현력은 여느 화가들 못지 않으신 것 같다. 



그림보다도 중요한 게 내용일텐데,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1년에 걸쳐 스페인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행기에 비해서는 농도가 옅은 편이다. 혼자 숙소에서 뒹굴뒹굴 거리다가 식당에서 끼니를 떼우고, 정처없이 바르셀로나 시내를 거닐고, 어학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는(그나마도 빠지는 날이 많았다)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꽃할배' 식의 여행 소울을 팍팍 자극하는 책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같은 체류기라도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이런 늘어지는 분위기가 결코 아니었던 걸 보면 중요한 건 기간이 아니라 필자의 성격이나 생활습관인지도 모르지만. 다만 체류 기간이 끝난 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바르셀로나에서 계속 지내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1년 동안의 유유자적한 생활이 썩 즐거웠던 모양이다. 제목대로 행복을 찾은 것일까. 아, 나도 꼭 한 번 바르셀로나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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