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열걸 2
미야기 아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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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걸>은 2016년 인기리에 방영된 이시하라 사토미 주연의 일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고노 에쓰코>의 원작 소설이다. 패션 잡지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웬일인지 교열부에 배치되어 매일 같이 글씨가 빽빽하게 들어찬 원고와 씨름하고 있는 고노 에츠코의 일과 사랑을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소재로 보나 줄거리로 보나 전형적인 칙릿 소설이지만 여러 면에서 예상을 벗어나고 기대를 뛰어넘는다. 물론 좋은 쪽으로. 일단 고노 에쓰코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전형적인 일본 소설 여주인공 캐릭터와 거리가 멀다. 상대가 선배이건 상사이건 유명 작가이건 할 말이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고, 일도 사랑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기를 쓰고 얻어내는 성격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교열부 소속인데도 패션모델 뺨치게 옷을 잘 차려 입고 다니는 것 역시 고노 에쓰코의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칙릿 소설의 핵심 테마인 젊은 여성의 일과 사랑 외에 다루는 소재가 풍부하다. 고노 에쓰코가 교열을 보는 매체가 바뀔 때마다 문학계, 잡지계, 패션계의 업계 특성 및 비화를 풍성하게 소개하고, 나아가 고노 에쓰코가 몸담고 있는 출판계의 풍토와 출판사 내의 권력관계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다. 픽션인 만큼 과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업계 종사자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대목이 제법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전 3권에 달하는 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이 주제로 수렴되는 점도 흥미롭다. 패션 잡지 편집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에쓰코는 3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별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때늦은 진로 고민에 빠진다. 일이냐 사랑이냐 하는 고민은 의외로 깔끔하게 해결되는 점도 좋다. 다가오는 주말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읽을 만한 소설을 찾는다면 <교열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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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책 읽기 - 대통령에게 권하고 시민이 함께 읽는 책 읽기 프로젝트
이진우.김상욱.김윤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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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책 읽기>는 사회 각계의 명사 26인이 대통령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는 책이다. 일단 이 책에 참여한 명사의 면면이 화려하다. 목수정, 서민, 안대회, 오찬호, 우정아, 이정모, 이진우, 정희진, 주경철, 하지현 등 그동안 글과 강연,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대중과 소통해온 학자와 작가들이 주로 참여했다. 


추천 도서도 하나같이 인상적이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단국대 교수 서민은 '남성의 성공 뒤에는 아내가 있지만, 아내를 가질 수 없는 여성은 성공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며 <아내 가뭄>을 추천하고, 사회학 연구자 오찬호는 일반 주택 거주자가 임대 주택 거주자를 비하하고 멸시하는 상황을 고발하며 <사당동 더하기 25>를 소개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가족과 이성애 제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정찬의 소설 <얼음의 집>과 <완전한 영혼>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갑질을 피하기 어려운 사회이지만, 사실 세상은 '갑을' 관계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갑을병정......' 매 순간 상황이 바뀐다. 언제 어떤 위치에 있게 될지 모른다. 권력 행위는 중단되지 않는다. 삶은 자신이 참여한 혹은 개입된 권력에 대한 사유여야 한다. (정희진, 123-124쪽)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현의 추천 도서 <광기의 리더십>도 흥미롭다. 이 책에 따르면 상식적인 판단을 하고, 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하며, 타인과 잘 공감하면서 모두와 잘 지내는 소통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뛰어난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다. 위기 상황을 여러 차례 겪거나 불안이나 우울증,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은 정상성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보다 창의성과 현실주의, 공감 능력, 회복력 등이 뛰어나 우수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로봇의 부상>, <사피엔스>, <시민권과 복지국가>, <식품 정치> 등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해 있는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은 물론, <군주론>, <유토피아>, <열하일기> <명상록>, <징비록> 등 예부터 동서양의 권력자들이 즐겨 읽었던 고전도 목록에 올랐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추천 도서를 부지런히 독파한다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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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 씨 아홉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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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 요리코의 만화 <오늘의 네코무라 씨> 9권이 출간되었다. 인간처럼 말도 할 수 있고 살림도 잘 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네코'는 어려서부터 돌봐주던 도련님과 헤어진 이후 무라타 가정부에 소속되어 가정부로 일하며 도련님과 다시 만날 그날만을 꿈꾸고 있다. 

네코무라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집은 대학교수 이누가미 킨노스케의 저택. 이누가미 킨노스케는 겉보기엔 능력 있고 젠틀한 중년 남성이지만 실은 아내 몰래 젊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이누가미 교수의 아내 사에코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네코무라에게 푸는데, 정작 네코무라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뭘 잘못해서 사모님이 언짢아하시나 좌불안석이다.






이번 9권에서는 사모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급기야 네코무라는 콧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해고당할 위기에 몰린다. 이 무슨 삼류 막장 드라마 같은 줄거리인가 싶지마는 계속 보다 보면 은근 흥미진진하다. 다른 식구들은 몰라도 사모님은 대놓고 밉상인데 네코무라가 자기도 모르게 사모님 속을 긁는 모습도 재미있다(개인적으로 이누가미 집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누가미 교수의 딸 오니코인데, 오니코가 요즘 많이 안 나와서 아쉽다). 


무엇보다 이번 9권에서는 네코무라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도련님이 아주 잠깐이지만 나온다.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네코무라 씨가 가정부 일도 잘 해내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도련님을 금방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9권이 되도록 정식으로 상봉한 적이 한 번도 없다니(ㅠㅠ). 이야기 전개에 도통 진전이 없어서 답답하지만 아마도 나는 10권도 보고 11권도 보게 될 듯(대체 몇 권까지 나올까?). 작가가 하도 애간장을 태워서 결말을 못 보면 무척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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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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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허리가 아프고 목도 부어서 몸 상태가 왜 이렇게 안 좋을까 곰곰 생각해 봤더니 운동을 게을리한 게 원인인 것 같다. 운동이라고 해봤자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거나 집에서 요가를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훌라후프를 돌리는 정도인데, 그조차도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집도 춥다) 안 했더니 금세 몸이 안 좋아진 것 같다(어느덧 나도 몸으로 나이 듦을 느끼는 때가 되었구나ㅠㅠ).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제목만 보면 걷기의 효능을 알려주며 걷기를 예찬하는 책일 것 같지만(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정확히는 걷기를 통해 철학과 문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걷기와 사유,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고찰하고, 나아가 행진, 축제, 혁명 등 걷기의 정치적 의미를 모색하는 책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걷기와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걷기와 인문학 모두 출판계에서 흔하다면 흔한 주제가 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은 한참 전인 2000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대부분의 인문학 저자(주로 남성)가 남성의 관점에 치우친 서술을 하는 반면 레베카 솔닛은 - '맨스플레인(man+explain)'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답게 -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등 다수의 여성을 등장시키고 페미니즘에 관한 장(章)을 따로 두는 등 여성의 관점을 비중 있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자의 보행은 많은 경우 이동이 아니라 공연으로 해석된다. 그런 해석대로라면 여자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걷고,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남자의 경험을 위해서 걷는 셈이다. (375쪽)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 성별화하는 표현이 많다. 창녀를 뜻하는 표현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streetwalker),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 도심의 여자(woman on the town), 공공의 여자(public woman) 등이 있다. 이런 표현에서 여자를 남자로 바꾸면 공인(public man), 유행에 밝은 사람(man about the town), 건달(man of the streets)이 된다. 성에 관한 관습을 깨뜨린 여자를 묘사하는 방황한다(stroll, roam, wander, stray)는 표현은 여자의 여행에 성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또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 여자의 섹슈얼리티는 관습을 위반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375쪽)


온갖 충고들이 쏟아졌다. 밤에 밖에 나가지 마라, 헐렁한 옷을 입어라, 모자를 쓰든지 머리를 짧게 잘라라, 남자처럼 하고 다녀라, 비싼 동네로 이사를 가라, 택시를 타라, 자동차를 사라, 혼자 다니지 마라, 에스코트해줄 남자를 구해라. 현대판 그리스 돌벽. 현대판 아시리아 베일. 사회가 나의 자유를 지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행동과 남자들의 행동을 통제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충고들이었다.(386쪽) 


제14장 '도시의 밤거리: 여자들, 성(性), 공공장소'는 이 책에서 다른 장은 안 읽어도 이 장만은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좋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혼자서 길을 걸을 때 여성이 느끼는 공포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최근 동네에서 여학생이 길을 걷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요즘은 더 무섭다. 밤길만 무서운 게 아니다. 벌건 대낮에 노상방뇨하는 남자들은 왜 그리 많은지(며칠 전에도 봤다. 심지어 눈까지 마주쳤다). 골목을 돌 때마다 어떤 광경을 보게 될지 두렵다. 


저자는 여성의 공간을 집 안으로 한정하고 집 밖으로 나온 여성은 보호받지 않는 존재, 즉 함부로 범해도 되는 존재로 가정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밤늦은 시간에 밖에 있는 여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혼자 다니는 여자는 '강간 당해도 싼 존재'로 치부되고 성폭행을 당해도 귀책사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는 모든 여성에게 검은 히잡을 두르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한탄했던 실비아 플라스를 생각하며, 자유롭고 싶어서 남자 옷을 입고 남장을 한 채 파리의 거리로 나선 조르주 상드를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이제 저자가 걸어간 길 위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연대할 수 없다던 저자의 가르침이 마음에 남는다. 춥다는 핑계로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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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의 맛 꽈배기 시리즈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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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뭘 해도 재미가 없고 기운이 안 난다. 퇴근하면 전기장판 위에 누워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는 게 일상인데, 책도 재미가 없고 만화도 푹 빠질 만한 작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녁에 <오리엔트 특급열차> GV 시사회 보러 가기로 했는데 영화 보고 나면 기운이 좀 나려나(나야 할 텐데)... 


기운이 없어서 어려운 책은 못 읽고 쉽고 가벼운 책 위주로 읽고 있다. 요 며칠 동안 읽은 책은 최민석 작가의 산문집 <꽈배기의 맛>이다. 최민석 작가가 최근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 두 권을 세트로 출간했는데, 이중 <꽈배기의 맛>은 신간이 아니라 2012년에 발간한 산문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이다.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판한 지 두 달만에 절판이 된 것이 아쉬워 5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고. 


올해 초 최민석 작가의 산문집 <베를린 일기>를 읽고 '한국에 이렇게 웃기는 작가가 있었다니!'라고 생각했는데, <꽈배기의 맛>을 읽으니 최민석 작가가 최근 들어 웃기는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원래 웃기는 작가임을 알겠다. 어째서 한국의 소설가나 시인은 옆모습으로만 사진을 찍을까 하는 나름 진지한 고찰도, 자신의 시집이 고모 집 냄비받침으로 쓰이는 걸 봤을 때 느낀 참담한 심정도, 작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든다. 


자신을 고급 제과점 케이크나 마카롱 같은 비싼 과자가 아니라 분식집 한편에서 파는 꽈배기에 빗대는 겸손함도 좋다. 하지만 꽈배기가 만만한 음식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위대한 파티셰들이 꽈배기를 튀기진 않는 건, 꽈배기를 튀기는 것도 나름 오랜 연구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뜨거운 기름 앞에서 꽈배기를 튀기는 분식집 아저씨처럼 정성 들여 성실하게 글을 쓰되, 읽는 사람은 별 부담 없이 만만하게 읽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인상적이다. 서문에서부터 '나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라고 밝히더니, 출판사나 여느 매체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마감 기한을 정하고 개인 홈페이지에 매주 한 편씩 이 책에 실린 글을 써서 올렸다는 대목에선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프로 작가인데도 이른바 '돈 되는 글'에만 매달리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글'에도 정성을 들이다니(그 결과 책을 내기는 했지만).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축 늘어져 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이토록 성실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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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2017-11-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호 작가와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최민석 전 사실 처음 듣는 작가인데 저도 살짜기 의욕상실이 올 때 함 찾아봐야겠어요^^

키치 2017-11-25 09:44   좋아요 0 | URL
캔디캔디 님 말씀대로 이기호 작가님과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 덧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