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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 완전판 9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5월
평점 :
7권까지만 해도 현실과 닮은 구석이 있기는 해도 현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8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는 현실을 떠올리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건'이란, 만국박람회로 전보다 훨씬 더 막강한 힘을 얻게 된 '친구'가 인류의 90퍼센트를 절멸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살포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한 일이다. 이로 인해 전 세계의 교통과 무역이 단절되고, 사람들은 먹고살기에 급급해 권력의 정당성이나 인권 존중 같은 가치는 무시한다. 이걸 그저 현실과 '닮았다' 정도로 볼 수 있을까.
9권에도 현실과의 관련성을 무시할 수 없는 놀라운 장면들이 나온다. 친구력 3년. 바이러스로 인해 인구가 크게 줄어든 도쿄는 바이러스의 피해가 적은 일부 지역에서만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친구'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쿄에 군림하며 사람들을 감시한다. 벽을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는 사람은 '지구방위군'이 아무런 경고 없이 총으로 쏴 사살한다. '친구'의 오랜 적인 켄지 일파의 이름을 입에 담거나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이 발견될 시에는 바로 제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켄지 일파의 존재를 알게 된 소녀가 있다. 바로 사나에다. 사나에와 동생 가츠오는 고장 난 텔레비전을 수리하러 간다는 명목으로 동네를 빠져나와 켄지 일파를 찾으러 간다. 이 과정에서 오래전에 버려진 전차와 그 안에 붙어 있는 신문 광고를 보게 되는데 거기 적힌 문구들이 이렇다. '전 세계 대공황 30억 명 사망?!', '이것만은 알아두자! 내 몸을 지키는 필수품 알람, 악수하지 않는 인사법, 창문 열지 말 것은 사실인가?', '여러분 주위는 안전합니까? 죽음의 바이러스 증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들 아닌지...
사나에는 볼링장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음 여왕'을 찾아간다. '얼음 여왕'의 정체는 바로 칸나! 켄지의 하나뿐인 조카인 칸나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켄지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규합해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켄지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떤 노래'를 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노래는 칸나가 아는 - 삼촌의 노래와 조금 다르다. 과연 그 노래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음 권이 기대된다.